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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

판덩 지음 | 미디어숲


나는 불안할 때 논어를 읽는다

판덩 지음

미디어숲 / 2022년 3월 / 320쪽 / 17,800원





제1편 학이(學而) 배움에 대한 ‘마인드셋’이 천하를 다스린다



학이시습지 學而時習之 : 논어 한 문장으로 인생의 변화가 시작된다


공자가 말하길 “배우고 제때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답지 아니한가?”子曰 “學而時習之, 不亦悅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溫, 不亦君子乎?”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논어』의 제1편 제목은 ‘학이’이다. 공자의 후세들은 『논어』를 총 20편으로 구성했다. 그리고 첫 문장에 나오는 단어를 제목으로 삼아 20개의 소제목을 달았다. 첫 문장은 누구나 학창 시절에 한 번쯤은 들어 본 적이 있는 익숙한 문장이다. 공자가 이른다. “배우고 제때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답지 아니한가?”

옛사람들은 책을 쓸 때 주제를 담은 문장을 맨 처음 쓰는 경우가 많았다. 배움은 사람이 평생 동안 계속 정진해야 할 일이다. 제때 올바르게 배우라는 말이 첫 문장에 배치된 까닭은 바로 ‘배움’의 중요성이 그만큼 크다고 강조하기 위함이다.

송나라 재상 조보는 “『논어』 절반으로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라고 말했다. 조보는 많은 공을 세운 송나라 개국 공신이지만, 그가 공부한 책은 『논어』 하나였다고 전해진다. 혹자는 한 나라의 재상이 어떻게 책을 한 권만 읽었겠냐며 그 사실을 의심한다. 그러나 조보의 말은 그만큼 『논어』의 중요성을 설파한 것이라고 받아들이면 그만이다. 『논어』의 중요성에 대한 나의 생각은 조보보다 더 크다. 나는 ‘『논어』의 절반이 아니라 한 문장만 알고 있어도 천하를 다스릴 수 있다’라고 생각한다. 그 누가 『논어』의 절반을 외울 수 있겠는가? 『논어』의 한 문장이라도 머릿속에 각인되도록 ‘주문’처럼 외워 보자. 그러면 난제를 만났을 때 답을 얻을 수 있다.

위 문장에서 ‘아니한가?’라고 번역된 ‘불역(不亦)’의 의미는 무엇일까? 공자는 간단히 설파하면 될 말을 왜 독자들에게 물어보듯 말했을까? 우선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 보자. ‘나는 배우고 제때 익히는 일이 즐거운가?’ 대답은 ‘아니’다. 배우는 것, 즉, 공부가 마냥 즐거운 일은 아닐 것이다. 공자도 대부분의 사람이 ‘배우고 제때 익히는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이 또한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역설적으로 독자들에게 되물으며 배움의 세계로 반갑게 초대하는 것이다.

내가 운영하는 지식 서비스 프로그램인 ‘판덩 독서’에서 나는 종종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선생님이 읽어 주는 책을 매일 듣는데도 어째서 제 삶은 더 좋아지지 않는 걸까요?” 이유는 ‘배우기’만 하고 ‘익히지’ 않기 때문이다. 배운다는 건 지식을 이해하는 것이고, 익힌다는 건 배운 지식을 꾸준히 응용하고 시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평상시 우리가 마주하는 배움에 대한 어려움을 두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아예 배우려 하지 않는 경우이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공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았다. 『논어』는 주로 스승인 공자와 제자들이 대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미 배우고 있거나 배우겠다는 마음을 가진 제자들과 토론했기 때문에 배우지 않는 경우는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두 번째 상황은 배우기만 하고 응용과 실천을 통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경우이다. 배운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짧은 시간 안에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사람일 경우, 배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거나 배움이 삶을 바꾸지는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쉽고 빠른 지름길로 가고 싶은 초조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책을 정독하는 대신 오디오북으로 흘려듣고, 한 가지 지식을 배운 것으로 삶의 변화가 즉시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야 할 것이다. 배움에 있어서 초조해하는 사람들에게 공자는 말한다. ‘결과에 연연해하지 말고, 단숨에 목표를 이루려 하지 말고, ‘배우고 제때 익히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고 말이다.

“배우고 제때 익힌다”로 시작되는 이 문장이 <학이>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인생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명쾌하게 알려 주기 때문이다. 어려운 문제에 마주쳤을 때, 갑자기 인생의 흐름에 변화가 생길 때, 열심히 노력했는데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을 때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괴로울 때 공자는 이를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 준다. 공자의 대처 방법은 단 한 글자이다. 바로 ‘락(樂), 즐거움’이다!

공자가 말하는 문제 해결 방법의 가장 큰 특징이자 장점은 ‘즐거움’이다. 『량수밍 선생이 말하는 공자와 맹자』에 나오는 공자의 즐거움의 핵심은 ‘구하지 않음’에 있다. 즐거움은 외부를 향해 있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힘써 자기 자신을 설득하거나 싸우며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의 말에서 ‘즐겁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생긴 즐거움을 말한다. 만약 우리가 즐거움의 사용법을 알게 된다면 학습의 어려움, 협력의 어려움, 다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 것에 대한 불만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 구절을 살펴보자.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한가.” 먼 곳에 사는 친구가 찾아온 일에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공자가 생존했던 시대보다 훨씬 풍요롭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올 때 주로 두 가지 이유로 기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는 생활 리듬이 깨지는 것, 다른 하나는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자는 다른 사람으로 인해 자신에게 생긴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일단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왔다는 것은 ‘나와 마음이 맞아 친해지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괜히 지레 겁을 먹고 불편해야 할 필요는 없다. 마음이 맞으니 그 친구는 나의 개인적인 상황을 공감할 수 있을 것이고, 상대방이 불편해할 일들도 알아서 피할 것이다. 또 만약 불편한 일이 생긴다면 그것을 솔직히 말해도 이해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공자의 세 가지 말은 우리의 인생을 관통하고 있다. 먼저, “배우고 제때 익힌다”는 공자의 말은 공부의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다음으로 “친구가 먼 곳에서 찾아온다”라는 문장은 사람과 협력하고 대응하는 법을 알려 준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화내지 아니하니 군자답지 아니한가”는 수련의 경지를 설명해 준다. 공자는 한 사람의 인생에서 마주칠 수 있는 모든 어려움에 대처하는 방법을 한 번에 설파한 듯하다. 우리가 이 세 가지를 항상 마음에 새기고 살아간다면 삶에서 가장 어렵고 피할 수 없는 문제를 만났을 때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담담한 마음으로 문제를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는 모습이 바로 군자의 모습이다.

오일삼성오신 吾日三省吾身 : 마음을 울리는 세 가지 물음


증자가 말하길 “나는 매일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않았는가? 친구와 사귀면서 믿음이 없지 않았는가? 전수한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曾子曰 “吾日三省吾身, 爲人謀而不忠乎? 與朋友交而不信乎? 傳不習乎?”증자왈 “오일삼성오신, 위인모이불충호? 여붕우교이불신호? 전불습호?”

학문에 열중했던 증자의 성품은 정직했다. 공자는 증자의 됨됨이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증삼은 미련한 사람이다.” 그러나 이는 증자의 어리석음을 지적한 말이 아니다. 증자가 미련해 보일 정도로 정직했다는 표현이다. 언뜻 어수룩해 보이는 증자는 안회처럼 총명하지 못했고, 자공처럼 말도 잘하지 못했지만, 그의 말에는 항상 정직함의 힘이 깃들어 있었다.

첫 문장을 살펴보자. “매일 세 가지로 자신을 반성한다.” 그는 매일 자신을 돌아보며 세 가지, 혹은 그 이상으로 삶을 반성했다.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이다. 우리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어야 한다.

증자의 첫 번째 질문 “다른 사람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충실하지 않았는가?”에서 ‘충실하다’는 것은 최선을 다해 열의와 성의를 쏟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근로자에게 ‘충실하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상사가 지시한 업무에 최선을 다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증자가 말하는 최선은 매일 야근을 하면서 몸을 고생시키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려는 정신적인 태도를 말한다.

증자가 말한 충실함은 사장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사장이 자신에게 일을 맡긴 목적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일본에서 가장 존경받는 3대 기업가로 꼽히는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첫 직장 생활은 화려하지 않았다. 작은 회사의 말단 직원이었던 그는 청소 업무를 담당하는 등 푸대접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실망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청소를 효율적으로 잘할 수 있을지’ 매일 고민했다. 그리고 편리한 청소 도구를 발명하기도 했다. 아무리 하찮은 일이라도 회사 업무를 자기 일처럼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나모리 가즈오처럼 사장을 대신해 회사가 처한 문제를 고민하고, 사장의 요구를 파악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충실함을 바탕으로 ‘생각을 갖고 일하는 방식’이다.

증자의 두 번째 질문, “친구와 사귀면서 믿음이 없지 않았는가?”는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이다. 친구를 사귈 때 ‘믿음’은 필수 덕목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들의 신뢰성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설사 다른 부분이 부족하더라도 약속은 잘 지킨다고 믿는다. 그런데 약속을 지킨다는 건 정말 쉬운 일일까? 예를 들어 싫은 일을 부탁받았을 때 대체로 체면 때문에 또는 관계가 껄끄러워지는 것을 피하기 위해 부탁받은 일을 해 주겠다고 쉽게 약속한다. 그리고 정작 그 일을 해야 할 때가 되면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미룬다. “미안해, 내가 요즘 너무 바빠서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네. 어떡하지?” 아마도 이런 답변은 누구나 몇 번씩 해 봤을 것이다.

증자의 마지막 질문을 살펴보자. “전수한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 이는 두 가지로 해석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공자가 가르쳐 준 지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노력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이는 바로 앞에 소개한 ‘배우고 제때 익히다’와 일맥상통하는 공자의 가르침이다. 공자가 전한 지식을 제자들이 ‘배우고 제때 익히지 않았다’면 ‘전수한 것을 익히지 않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증자에게는 공자만큼 많은 제자가 있었다. 공자의 손자인 자사도 증자 밑에서 공부했다. 배움에 대한 증자의 생각은 공자보다 더 멀리 나아간다. “전수한 것을 익히지 않았는가”라는 질문은 스승으로서의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것이다. 가르치기만 하고 실천을 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스승이 모범을 보여야 제자들에게 제대로 된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다. 자신이 가르친 내용을 스스로 익히려 노력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자신을 단련하려는 사람이 진정으로 좋은 스승이라 할 수 있다.

가르침을 업으로 삼은 자가 아니라도 배운 것을 익히는 일은 누구에게나 중요하다. 우리 모두는 항상 누군가의 스승으로 살아가게 된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가장 가깝고, 가장 친밀한 스승이다. 따라서 부모는 아이들에게 한 말들, 가령 남을 속이지 말고, 배움에 충실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고 가르친 것을 자신 또한 지키고 있는지 물어봐야 한다.

나는 지금껏 살펴본 증자의 세 가지 반성을 ‘마음의 세 가지 물음’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매일 자신에게 세 가지를 물어보아야 한다. 첫째, 비즈니스 측면에서 적극적인 생각을 가지고 일을 제대로 처리했는가. 둘째, 인간관계 측면에서 약속을 지키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했는가. 마지막으로 수양의 측면에서 다른 사람에게 한 요구를 스스로 지키며 더 좋은 사람으로 변하려 노력했는가, 즉 가르치면서 동시에 스스로 익히려 했는지를 돌아봐야 하는 것이다.

온, 량, 공, 검, 양 溫, 良, 恭, 儉, 讓 : 평생 지향해도 얻지 못할 공자의 다섯 가지 덕목
자금이 자공에게 묻기를 “스승님께서는 한 나라에 도착하면 반드시 그 나라의 정사를 듣는데 구해 들으시는 것입니까? 아니면 주어서 듣게 되시는 겁니까?”자공이 대답하길 “스승님이 온(溫), 량(良), 공(恭), 검(儉), 양(讓)으로 얻으시는 것이다. 그러니 스승님이 구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이 구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겠느냐?”

공자의 제자, 자금과 자공이 당시의 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 대화를 기록한 문장은 『논어』에서 가장 유명한 것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소인의 마음을 갖고 있는 자금은 군자의 마음을 추측하는 내용의 질문을 한다. 자금은 실용주의적인 관점을 지닌 인물로 스승인 공자를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자금은 공자와 사이가 가까웠던 자공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스승님이 정나라, 위나라, 제나라 등 다른 나라를 방문하면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국사를 의논하고 사회의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묻는데, 스승님이 구해서 듣는 것입니까?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것입니까?”

공자의 경지를 이해하지 못했던 자금의 질문에 자공은 뭐라고 대답을 해야 옳을까? 언변이 유창하고 외교적 수완이 뛰어났던 자공은 “온, 량, 공, 검, 양으로 얻으시는 것이다.”라는 적절한 대답을 찾았다. 사람들이 공자를 존중했기 때문에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국사를 상의하려 하는 것이지, 금전을 제공하거나 파벌을 사용하거나 자신을 홍보해서 얻어 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공자는 온, 량, 공, 검, 양한 사람이었다. ‘온(溫)’은 온화하다는 뜻으로 극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량(良)’은 선량하다는 의미이다. 다른 사람을 상냥하게 대하며 적대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공(恭)’은 공손하다는 의미로 함부로 허풍을 떨거나 앞에 나서지 않는 것을 뜻한다. ‘검(儉)’은 검소해서 사치를 부리거나 가식을 부리지 않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양(讓)’은 겸양하다는 의미이다. 공자는 정적과 첨예한 갈등을 빚은 적이 거의 없었다. 공자는 사람들이 자신을 비방하거나 무시하거나 신뢰하지 않아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그 자리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했을 뿐이다. 공자는 자기 삶의 리듬을 가진 사람이었고, 무엇도 구하지 않았다.

공자는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이루었다. 그리고 공자는 그가 뜻하는 바를 성취하기 위해서 자신의 원칙을 배반하지 않았다.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공자는 어떤 과업을 이루려면 인간의 한계를 확장하고, 시야를 넓혀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준다.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풍부한 경험을 쌓은 공자는 이렇게 자신의 원칙을 배반하지 않고, 온화함, 선량함, 공손함, 검소함, 겸양함을 유지하며 뜻한 바를 이룰 수 있었다. 역사는 그의 이름을 기억하고, 미래에도 그러할 것이다.

공자의 능력과 성품을 익히 알고 있는 자공은 자금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질문으로 받아친다. “스승님이 구하시는 것은 다른 사람이 구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겠느냐?” 이 질문에 자금이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두 제자의 대담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우리는 항상 자신에게 충실하고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매일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나머지는 순리에 맡겨야 한다. 아무리 많은 재물과 명성을 가진다고 해도 내면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온화함, 선량함, 공손함, 검소함, 겸양함은 개인에게 가장 값어치가 높은 덕목들이다. 눈앞의 이익을 위해 우리 내면의 것을 버려서는 안 된다. 조급해하며 무엇이든 싸워서 얻으려 하면 결국에는 씁쓸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싸우길 좋아하는 사람은 마음이 항상 초조하고 부정한 수단을 쓰기 쉽다. 그리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태도를 자꾸 바꾸다 보면 적이 많아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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