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자,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다
김승석 지음 | 북코리아
묵자,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를 꿈꾸다
김승석 지음
북코리아 / 2021년 12월 / 308쪽 / 17,000원
묵자 신상 털기
공자 이후 묵자에서부터 한비자에 이르기까지 제자백가는 모두 자신의 학파를 위해 서로 비판하고 논쟁하는 이데올로기 투쟁을 전개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논쟁은 단순한 논쟁이 아니라 중국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웠던 춘추전국시대의 혼란과 무질서를 극복하고자 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인간과 사회 또는 국가에 대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었지요.
묵가(墨家)는 전국시대에 피지배계층인 일반 백성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상을 주장하여 민중으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고, 그래서 유가와 더불어 사상의 양축을 이루고 있었지요. 그러나 진시황의 중국 통일 이후 묵자의 사상은 돌연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묵가가 혈연에 의한 세습을 부정하니 당시 지배계급은 못마땅하게 생각했겠지요. 절대권력을 가진 진시황이 이데올로기적 탄압을 했을 것이고, 묵가의 구성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묵가라는 정체성을 감추고 살았으리라 추측합니다. 통일되기 전부터 묵가들이 진나라로 가서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하급관리 역할을 하며 살기도 했으니까요.
그 후 2천 년 동안 『묵자』는 도교의 도서관에 유폐되었다가 청(淸)나라 말기에 이르러 필원과 손이양에 의해 다시 조명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학자에 의해 묵자 개인에 대한 고증이 시작되었으나, 너무나 오랜 기간 잊힌 인물이라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별로 없지요. 묵가가 사상적 탄압을 받으면서 진시황 이후에 사라졌지만, 선진(先秦) 시대에는 영향력이 가장 큰 학파의 하나였음은 당시의 문헌들이 모두 인정하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 점을 인정하면서 이제 묵가를 창시한 묵자의 신상을 한번 털어보겠습니다. 우선 묵자(墨子) 하면 묵(墨) 선생님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묵자는 성은 묵(墨) 씨이고, 이름은 적(翟)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습니다.
그리고 여러 연구자의 의견을 종합하면, 묵자는 기원전 490년에서 459년 사이에 태어났고, 기원전 406년에서 376년 사이에 죽은 것으로 나타납니다. 일반적으로 묵자는 공자가 죽은 이후에 태어났으며, 맹자가 태어나기 이전에 죽었다고 받아들여집니다. 또 사마천의 기록과 달리 묵자는 대부가 아니라 하층계급 출신입니다. 참고로 그가 살았던 시대는 춘추시대(약 B.C.770~B.C.403) 말기에서 전국시대(약 B.C.403~B.C.221) 초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춘추시대 초기에는 140여 개의 제후국이 있었고, 전국시대 초기로 가면 20여 개의 나라만 남게 됩니다. 360여 년간 치른 전쟁의 결과 나라 수는 줄어들고 각국의 영토는 넓어지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요. 이리하여 전쟁은 규모가 커지고 일상화되었으며, 이러한 정복전쟁은 백성을 죽음과 공포로 몰아넣고 그들의 삶을 송두리째 파괴했겠지요. 묵자는 바로 이러한 현실을 목도했으며, 『묵자』는 이러한 시대적 환경의 산물입니다.
묵자의 사상은 『묵자』라는 책에 잘 나타나 있지요. 『묵자』역시 묵자가 쓴 책이 아닙니다. 모두 묵자의 제자들이 스승의 언행을 기록한 글입니다. 『묵자』는 목록을 제외하고 총 71편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53편만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존하는 53편의 글은 내용과 성격에 따라 <입문(入門)>, <십론(十論)>, <묵경(墨經)>, <대화(對話)>, <병법(兵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노동하는 인간
인간과 동물의 차이인간의 특징을 도출하는 데 ‘성선 vs. 성악’이라는 인성론의 유효성이 없지는 않지만, 몇 가지 문제점으로 인해 인간을 이해하는 접근방식으로서 한계가 있습니다. 인성론과 관련을 가지면서도 인간과 동물의 차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으로 접근해보는 편이 더 보편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묵자는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달리 노동을 통해서만 생존이 가능하다고 강조하면서 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노동에서 찾고 있습니다. 묵자의 육성을 직접 들어보시지요.
‘사람은 본래 사슴 같은 들짐승, 새 같은 날짐승, 벌레와는 다르다. 들짐승과 날짐승, 벌레는 깃털을 옷으로 삼고, 발굽과 발톱을 바지와 신발로 삼으며, 물과 풀을 음식으로 삼는다. 그래서 수컷이 농사짓고 나무를 심고 가꾸지 않으며, 암컷이 길쌈하고 베를 짜지 않더라도 입고 먹을 재화가 이미 갖추어져 있다. 사람은 이와 달라서 힘들여 일하는 자는 살고, 힘들여 일하지 않는 자는 살지 못한다.’
아마 당시에는 ‘노동’이라는 용어가 없었나 봅니다. 그러나 ‘힘들여 일하다’라는 말은 누가 보아도 지금의 노동에 해당하는 말이지요. 인간은 노동하면 살아갈 수 있지만, 노동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는 의미로 읽히지요. 이처럼 노동은 인간 자체, 나아가 생명과 생활의 재생산에 필요한 물질의 근거라고 말하고 있네요. 노동하는 존재는 인간의 일반적 경향성을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는 인간의 필수적인 생존조건을 이야기하고 있는 거지요. 선악이라는 본성 이전에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노동하고, 노동을 통해 자기를 실현하면서 자신의 본성을 구현하는 게 아닐까요? 이와 같은 이유로 묵자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징을 ‘노동하는 인간’에서 찾고 있습니다. 이러한 견해는 제자백가 중 독특한 혜안을 지닌 묵자의 가장 가치 있는 공헌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근대 이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동을 아주 천시하는 경향이 매우 강했거든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인간과 동물의 차이를 노동에서 찾았다는 사실은 인간이 만들어가는 사회에서 노동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사회질서를 도출하게 됩니다. 이는 직접생산자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노동의 결과물을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는 사회를 말합니다. 노동하지 않고 노동생산물을 빼앗는 행위는 역사적으로 절도와 착취가 일반적인 형태이지요. 그래서 묵자는 먼저 절도 행위를 비난합니다. 원시사회가 붕괴하면서 ‘나의 것’이라는 소유 관념이 생기고, 자신이 욕망하지만 가지지 못한 경우 ‘남의 것’을 훔치게 됩니다. 이런 경우를 예로 들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지금 여기 사람이 있어 남의 농장에 들어가 복숭아와 자두, 오이와 생강을 훔쳤다고 하자. 위에서 알면 그에게 벌을 내리고, 뭇사람이 들으면 그를 비난한다. 왜 그런가? 노동에 참여하지 않고 과실을 취했기 때문이다. 그가 가져가야 할 이유가 없다.’
묵자는 남의 과수원에 들어가 과일을 훔치는 행위를 예로 들면서 일하지 않고 과실을 획득하는 것을 비난합니다. 노동에 참여하지 않고 그 과실을 따 먹는 행위는 타인의 노동성과를 무상으로 점유하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마땅하다는 의미이지요. 교조주의자들은 이를 근거로 묵자가 사유재산을 옹호했다고 비난하지만, ‘절도와 착취가 비도덕적이라는 근거를 제시했다’라고 하는 표현이 더욱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노동하지 않고 그 과실을 향유하는 귀족을 향해 던지는 경고로 해석될 뿐 아니라, 오히려 ‘노동에 의한 소유’를 전제로 제공한 노동이 많으면 그 성과도 더 많이 향유해야 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따라서 노동을 많이 하는 사람이 일하지 않는 사람보다 더 많은 부를 가질 수 있다는 빈부의 격차를 어느 정도 용인하고 있다고 보여 집니다. 그래서 당연한 말이지만, 목자는 누구나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하지요. 아무튼 묵자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 노동과정에 공정하게 참여할 수 있는 사회, 노동의 결과는 공평하게 분배받는 사회를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의 지배층은 부를 독점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한 반면, 재화를 생산하는 하층민은 계속되는 겸병전쟁 속에서 추위와 굶주림의 공포에 내몰리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묵자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백성에게는 세 가지 근심이 있다. 굶주린 자가 먹지 못하고, 추운 자가 입지 못하고, 일하는 자가 쉬지 못한다. 이 세 가지가 백성의 커다란 근심이다.’
생산직 노동을 담당하는 백성은 사시사철 일 년 내내 일해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입지 못하고 쉬지도 못한다고 한탄하네요. 묵자는 당시 노예 같이 일하며 금수 같은 취급을 받았던 백성을 먹여주고 입혀주고 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지혜로운 하늘의 뜻이고, 그 뜻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지배자의 역할이며, 그 역할이 잘 수행되어야 나라가 안정되고 잘 다스려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사회적 약자에게도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생활을 보장해주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따라서 모든 재판과 정치는 백성의 의식주를 해결하는 데 이바지해야 한다는 것이 묵자의 문제의식이었지요.
동시에 다음과 같은 사회질서를 제시하는데, 이와 비슷한 문장은 『묵자』여기저기에서 관용구처럼 종종 나오며, 아마도 묵가에서 금과옥조처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큰 나라(또는 가문)가 작은 나라(또는 가문)를 공격하지 않고, 강자가 약자를 업신여기지 않고, 다수가 소수를 해치지 않으며, 영리한 자가 어리숙한 자를 속이지 않는다. 또한 귀족이 천민에게 오만하지 않고, 부자가 가난한 자에게 교만하지 않으며, 젊은이가 노인을 약탈하지 않는다.’
의로운 정치를 하면 이렇게 된다고 하네요. 구구절절 옳은 말이긴 하지만, 현대 세계에서도 달성하지 못한 사회질서이지요. 그런데 눈에 띄는 부분이 있습니다. 다수와 소수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마 당시에도 다수가 소수를 해치고, 영리한 자가 어리숙한 자를 속이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입니다. 저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신체적 소수자인 장애인과 성 소수자가 우리 사회에서 법적ㆍ제도적 보호를 ‘거의’ 또는 ‘전혀’ 받지 못하고 너무나 차별받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정치적ㆍ이념적 소수자들도 마찬가지이지요. 사회적 약자이면서 동시에 소수이기 때문에 그들은 더욱더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어렵고, 그래서 기댈 언덕이 없는 사람들인데, 묵자는 그들을 해쳐서는 안 된다고 하네요.
하느님의 마을 & 하느님의 백성
왜 국가가 필요한가?제자백가는 혼란의 상징이었던 춘추전국시대의 산물이라고 말씀드렸지요. 그래서 그들의 사상은 대부분 당시의 혼란을 극복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이론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국가와 사회제도에 대해 설명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계급 문제에 대한 많은 암시를 포함하고 있지요. 그러면 국가적 혼란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중국 고대의 사상가들이 제시한 혼란을 해결하는 방식은 3가지로 유형화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욕망을 줄여서 사회구성원 사이에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공자와 맹자가 제시하는 해결 방법이지요. 교육을 통해 스스로 수양하고 덕을 쌓으면 이익을 마음에 품지 않게 된다고 하지요. 그리하여 각자의 욕망을 줄이면 다른 사람의 이해관계와 충돌이 적어지거나 없어지고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는 식이지요.
다른 하나는 인간 내부의 수용이 아니라 외부의 힘을 빌려 이기적인 개인의 욕망을 제어하는 방식입니다. 이는 순자와 한비자가 제안하는 방식입니다. 순자는 인간의 욕망을 식욕과 성욕으로 보고 예(禮)를 통해 자제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비자는 인간의 탐욕을 주로 권력욕, 소유욕, 명예욕으로 규정하면서 법(法)으로써 개인을 제어하면 효과적이라고 주장합니다. 앞에 언급한 두 방식은 사회 혼란의 원인이 인간의 욕망과 탐욕에 있다고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묵자는 개인의 욕망을 제어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고, 적극적으로 욕망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갑니다.
춘추시대 이전의 아주 먼 옛날에는 개인들이 자신만의 욕망을 추구하게 되면 욕망 자체가 실현되기 어렵고 오히려 손해를 초래한다고 묵자는 생각했지요. 그래서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조화시켜 공동의 이익으로 일치시키는 방식을 제안합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조화시키고 통일시키는 권력체계를 창출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하지요. 그래야만 금수 같은 혼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현대식으로 표현하면 국가는 개인의 욕망을 충족시켜 그들의 이익을 보호하고, 나아가 전체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다는 의미이지요.
묵자가 바라는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국가는 어떻게 구성되어야 할까요? 묵자는 정복전쟁이 본격화되는 시대에 살았습니다. 전쟁의 승자는 영토와 백성을 독차지하고, 전쟁의 패자는 모든 것을 잃고 노예로 전락하는 그런 시대였지요. 이런 살벌한 현실을 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모든 나라는 크기에 관계없이 모두 하느님의 마을이며, 사람은 나이와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하느님의 백성이다.’
마치 예수의 말 같지 않나요? ‘모두 하느님의 마을인데, 왜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가?’, ‘모두 하느님의 백성인데, 왜 서로 죽이고 죽임을 당하는가?’ 이렇게 생각했지요.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묵자는 한편으로 귀천에 따른 불평등한 질서를 인정한 유가를 부정하며 모두 하느님 앞에 평등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나아가 혈연에 의해 세습되는 신분제를 비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질서를 담보하는 국가의 필요성을 제기하지요. 국가에 대한 그의 생각은「상동(尙同)」상ㆍ중ㆍ하 편에서 중점적으로 거론되는데, 각 편의 내용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묵자는 원시시대 같은 아주 먼 옛날 정치권력이 생기기 이전의 상태를 상정합니다. 정치권력이 공백인 상태에서 사람들마다 의로움이 달라 서로 비방하고 원망하여 천하가 금수의 세계와 같이 혼란스럽다고 사유하지요. 여기에서의 의로움은 유가에서 말하는 윤리적ㆍ도덕적 의로움이 아니라, 이익 또는 이해관계를 의미합니다.
‘지금 옛날로 돌아가 백성이 처음 생겨 아직 정치의 우두머리가 없었을 때 “천하의 사람들은 의로움이 다르다”라는 말이 있었다. 한 사람이 있으면 하나의 의로움이 있고, 열 사람이 있으면 열 개의 의로움이 있으며, 백 사람이 있으면 백 개의 의로움이 있다. 사람의 수가 늘어나면 소위 의로움 역시 늘어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의로움은 옳고, 다른 사람의 의로움은 그르다 하여 서로 비난했다. 안으로 어버이와 자식, 형과 동생이 원수가 되고 모두 마음이 흩어져 서로 화합할 수 없었다. 힘이 남아 버리더라도 서로 돕지 않으며, 좋은 방도가 있어도 감추어 서로 가르치지 않으며, 남은 재산이 썩어도 서로 나누지 않았다. 천하의 혼란은 금수의 세계와 같았다.’
여기에서 인용한 묵자의 말은 사회과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선, 인간 최초의 상태를 전제합니다. 태초에 정치와 국가권력이 없는 상태가 역사적 사실인지 또는 논리적 가설인지는 분명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당시로서는 대단한 사유의 실험이지요. 그런 상태에서 인간은 욕망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자유의지를 가진 개별적이고 독립적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독립적인 존재가 저마다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면 이익이 충돌하여 싸움이 일어나고 세상이 혼란스러워진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태초의 혼란은 약 2천 년 후에 홉스가 근대국가를 도출하기 위해 상정한 ‘자연상태’와 놀라울 정도로 유사합니다. 그가 『묵자』를 베낀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요. 홉스는 자연이 인간을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평등하게 만들었다고 전제합니다. 즉, 인간 최초의 조건인 자연 상태는 근본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의미이지요. 그는 자연 상태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논리적 가설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공통의 권력이 없는 곳에서는 정의도 불의도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같은 전쟁상태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하지요. 이와 같은 전쟁상태에서는 예의도 지배권도 없으며, 내 것과 네 것의 구분도 없기 때문에 혼란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