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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의 스승 장량

위리 지음 | 더봄


제왕의 스승 장량

위리 지음

더봄 / 2021년 3월 / 371쪽 / 20,000원



복수




승상부의 공자(公子)


장량은 한(韓)나라 승상부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는 ‘희량’으로 불렸다. 장량의 집안은 가문의 바탕이 중후했고, 모친도 장량을 위해 적지 않은 훈장을 초빙하여 공부를 시켰다. 하지만 장량의 부친이 세상을 떠난 지 20년 만에 장량이 추구하던 한나라 재상의 꿈은 철저하게 파괴되었다. 그 무렵 진나라는 일련의 개혁 정책을 시행하여 이미 천하에서 첫손가락에 꼽히는 강국으로 성장했고, 가장 먼저 상대적으로 약소했던 한나라를 공격하여 멸망시켰고, 한나라 땅은 이때부터 진나라의 영천군이 되었다.

동방의 은자


『사기』에 다음과 같은 대목이 나온다. ‘동방에서 창해군을 만나다.’ 장량은 동쪽으로 가서 은자인 창해군을 만났다고 한다. 그곳에서 장량은 12년을 보냈고, 그의 나이는 서른으로 접어들었다. 이 기간 동안 창해군은 장량에게 마음을 쓰면서 자신의 문객들을 몰래 움직여 적당한 자객을 찾았다. 진시황을 암살하려는 장량의 결심에 도움을 주려는 호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창해군이 장량에게 힘센 역사(力士) 한 사람을 추천했고, 그는 장량이 자신에게 진시황 암살 임무를 맡기고 싶다고 했을 때 바로 승낙했다. 장량은 때가 오기를 기다렸고, 드디어 진시황이 3번째 순행에 나선다는 소문이 돌았다. 장량은 창해군의 건의에 따라 구체적인 암살 과정과 도주 노선을 세밀하게 마련했다. 하지만 결국 장량과 역사의 박랑사 저격 사건은 성공하지 못했다. 그리고 진시황이 자객 체포령을 내렸지만, 당초 장량의 계획이 주도면밀했기 때문에 두 사람은 신속하게 황하 연안 샛길을 따라 몸을 피할 수 있었다.



천애




병서 이야기


하비에 몸을 숨기다: 진나라의 체포를 피하기 위해 장량은 황하 연안을 따라 동쪽으로 달아났고, 마지막에는 하남 땅에서 강소 땅으로 방향을 바꿔 하비라는 곳에 몸을 숨겼다. 장량은 진나라 군사의 수색과 체포를 피하기 위해 본래 성과 이름을 숨겼는데, 이때부터 진ㆍ한(秦ㆍ漢) 교체기를 풍미한 장량(張良)이란 이름이 정해졌고, 이 이름에 장량 인생 중후반기의 영광과 적막이 깃들게 되었다.

황석공을 위해 신발을 주워주다: 장량이 하비에 은거하고 나서 순식간에 몇 달이 흘렀다. 외부에서 철저한 수색 소문이 전해왔으므로 장량은 인적이 드물어지면 혼자 집 밖으로 나가 인근 들판을 거닐 뿐이었는데, 그가 늘 가는 곳은 기수라는 강이었다. 어느 날 저녁 장량은 또 기수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 장량이 다리 위를 걸으며 깊은 생각에 빠져든 그때 거친 베옷 잠방이를 입은 한 노인이 맞은편에서 그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장량의 면전을 지나치려는 순간 그 노인은 어찌된 영문인지 갑자기 신발을 다리 아래로 떨어뜨리며 장량을 보고 말했다. “젊은이! 얼른 내려가서 내 신발 좀 주워 와!” 장량은 불쾌한 기분이 들어 자리를 뜨려 하다가 상대방이 노인임을 깨닫고는 화를 누르고 다리 아래로 내려가서 신발을 주워 올라왔다. 그러자 그 노인이 감사 인사도 하지 않고, 다리를 앞으로 내밀며 “신발을 신겨줘!”라고 말했다. 장량은 좋은 일을 잘 마무리하자는 생각에 무릎을 꿇고 노인에게 신발을 신겼다. 노인은 신발을 신고 나서 고개를 끄덕이며 껄껄 웃다가 몸을 돌렸다. 그리고 며칠 후, 노인은 죽간 한 권을 꺼내 장량에게 건네주며 말했다. “이 책을 숙독하면 제왕의 스승이 될 수 있다. 10년 후에 너는 하산하여 제왕을 보좌할 것이다. 또 13년 후에 네가 제북 땅을 지날 때 나를 다시 만날 것이다. 그곳 곡성 산 아래에 놓인 황석(黃石) 한 덩어리가 바로 나다.” 노인은 말을 마치고 장량만 다리 위에 남겨둔 채 몸을 돌려 바람처럼 사라졌다. 장량은 그 책이『태공병법』임을 알아보았다.

『태공병법』을 깊이 연구하다: 장량은 거처로 돌아와 죽간 책의 내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황석노인이 건네준 것은 병법 책 한 권이 아니라 드넓은 도량과 인내심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장량은 지모와 책략을 갖춘 큰 인물이 될 수 있었다. 장량의 사상은 확실히 이때부터 수준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장량은 세밀한 분석과 되새김을 통해 이전의 협객들이 기실 혈기만 믿고 만용을 부리는 사람에 불과했고, 그렇게 해서는 근본적으로 한나라 부흥의 소망을 실현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뿐만 아니라 장량은『태공병법』을 읽은 후 천하만사에 대한 이해도 더욱 철저해져서, 천하를 얻어서 잘 다스리려면 반드시 “요점과 근본을 잡아야 하고”, 이 ‘요점’과 ‘근본’이 바로 ‘청정하고 텅 빈 마음’(淸虛)과 ‘낮고도 부드러운 태도’(卑弱)임을 깨달았다. 참고로 이러한 것은 모두 도가에서 중시하는 사상이지만 “요점과 근본을 잡고”, “청정하고 텅 빈 마음과 낮고도 부드러운 태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유가의 인의와 예학도 융통성 있게 운용하여 함께 조화를 이루도록 해야 했다.

하비에서 협객으로 살다: 장량은 하비에서 ‘협객 활동’을 가장 중요한 일로 삼았다. 구체적으로 협객 활동을 어떻게 했는지는 사마천이 아무것도 기록하지 않았다. 그러나 앞뒤 기록을 분석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활동을 한 듯하다. 첫째, 마음에 맞는 벗을 널리 사귀었다. 둘째, 사람들의 불공평함을 해소해줬다. 셋째, 뛰어난 언변을 과시했다. 넷째, 돈을 잘 썼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장량이 늘 의협심을 발휘하며 재산을 희사하는 협객이라는 사실을 알고 모두 그와 사귀기를 원했고, 장량의 주위에는 점점 큰일을 추진할 만한 인재와 역량이 쌓이게 되었다.



풍운




유방과 교유하다


진시황이 병들어 일어나지 못하다: 기원전 120년(진시황 31년), 황제는 죽음의 순행을 시작했다. 이번 순행에서 진시황은 주로 신선을 찾으려 했다. 하지만 천하를 거의 한 바퀴 돌았는데도 진시황은 신선을 만나지 못했고 무슨 영단이나 불사약도 구하지 못했다. 오히려 도중에 피로가 쌓여 병이 위중해졌다. 병세가 갈수록 위중해짐에 따라 진시황은 자신의 생명이 한계에 도달했음을 감지하고 유조를 내려 태자 부소에게 황위를 물려주려 했다. 그러나 조서가 출발하기도 전에 진시황은 목숨을 거뒀다.

장량이 봉기하다: 장량이 은인자중하며 2년을 더 기다리자 천하가 분할되었다. 진승이라는 젊은이가 대택향에서 ‘왕후장상의 씨가 어찌 따로 있겠는가?’라며 고함을 치자 전국에서 진나라에 반대하는 봉기가 폭풍우처럼 일어나 대지를 휩쓸었다. 그 시절 하비에서 멀지 않은 유 땅에 진가(秦嘉)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진승의 부하로 군사 한 부대를 이끌고 그곳에 주둔했다. 진가는 전국시대 초나라 왕실의 후예인 경구를 초왕으로 옹립한 후 초나라 깃발을 걸고 진나라에 항거하며 군사를 모으고 군마를 사들였다. 장량은 자신이 모집한 의군을 인솔하고 경구에게 투신하기로 결정했다.

유방을 만나다: 장량은 경구에게 투신하려 가는 도중에 뜻밖에도 유방을 만났다. 유방은 자신의 군대를 거느리고 하비성을 치러 가는 길에서 장량을 만났는데, 유방이 장량에게 말했다. “공이 이미 진나라에 항거하는 군사를 일으켰다면 어찌 나와 함께 하비를 치러 가지 않으시오?” 장량은 처음 전장으로 나가는 길에 후덕한 모습의 유방을 보고 바로 대답했다. “좋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패공을 따르며 저의 군대를 단련하겠습니다.” 이에 장량과 유방은 처음으로 친밀한 교류를 하게 되었다.

장량은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유방을 따라 하비로 진격했다. 의군들은 사기도 높고 작전도 뛰어나 단번에 하비성을 함락시켰다. 장량은 귀족 가문 출신이고, 유방은 평민 출신이라 겉으로 보기에는 신분이 매우 달랐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두 사람은 단번에 마음이 맞아 마치 오랜 친구를 다시 만난 것 같았다. 당시에 유방은 장량이 서생티가 강하고 생긴 모습도 다소 수척한 것을 보고는 적진을 치는 전선에 배치하지 않고 말을 관리하는 구장에 임명했다. 하지만 장량은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유방의 임명을 선선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즉시 군마를 모으고 조련하기 시작하여 군대의 수요에 부응했다.

장량은 전투가 멈춘 틈틈이 유방에게『태공병법』을 이야기했는데, 군대를 다스리는 방법에서 공수를 주고받는 대책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깨우친 내용을 들려줬다. 그런데 뜻밖에도 유방의 이해 능력이 매우 뛰어나서『태공병법』에 깊은 흥미를 보였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해하지 못한 내용도 쉽게 알아들으며 훌륭한 병법이라고 연이어 칭찬했다. 유방의 입장에서는 군마를 관리하는 일개 구장의 학식이 보통 사람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가 제시하는 계책은 이전에 들어보지 못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갈수록 장량을 존중하며 늘 자신의 곁에 두고 지모와 계책을 발휘하게 했다.



쟁패




유방과 항우의 쟁투


광무산 대치: 항우는 스스로 서초패왕이라 일컬었지만 초한전쟁에 참여한 이후 아주 곤란한 일을 당했다. 이미 몇 달 동안 유방은 성고를 점령했고, 항우는 형양을 점령하여 쌍방은 황하 강변 광무에서대치했다. 유방이 군대를 이끌고 광무산으로 들어간 것은 장량의 책략이었다. 광무는 형양과 성고 사이의 황하 남쪽 연안에 위치한 작은 구릉지대여서 통칭 광무산이라고 한다. 광무산 동쪽은 몽택과 이어져 있고, 서쪽은 사수와 연결되어 있으며, 그 중간은 끊어진 협곡인데, 이 협곡이 산을 둘로 깎아 세워 마치 봉우리처럼 보이게 한다. 초나라와 한나라 군대는 이 협곡을 사이에 두고 강경하게 대치하며 한 발짝도 양보하려 하지 않았는데, 초나라의 역량은 여기서부터 급속하게 쇠약해지기 시작했다.

항우는 광무산 전선을 제외하고도 형양성 안쪽의 사병과 백성에게 식량 보급도 해야 했는데, 항우는 이에 대한 부담을 느꼈을 뿐 아니라, 불행하게도 당시 천하의 식량 창고 오창은 유방의 통제 아래에 있었다. 유방은 장량의 건의로 항우와 함께 고양이가 쥐를 잡는 놀이를 했다. 우선 성고는 본래 항우가 점령했지만, 유방은 팽월에게 황하를 건너오도록 명령을 내려 초나라 성 동아를 공격하게 했다. 항우는 이 사실을 알고 자신이 직접 군대를 거느리고 팽월을 공격하러 갔다. 한나라는 이 기회에 군사를 움직여 항우 배후의 식량과 치중(양식과 군용물자를 실은 수레)을 모두 불태웠다. 그런 후에 유방은 항우가 서둘러 팽월을 추격하기를 기다려 즉시 군대를 이끌고 황하를 건너 성고를 점령했다.

항우는 전투를 마치고 회군했을 때 팽월이 또 미꾸라지처럼 돌아와 자신의 군량 보급로를 끊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팽월은 또 초나라 후방으로 잠입하여 기만전술을 쓰며 끊임없이 초나라의 군량 보급로에서 소동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항우는 마음이 매우 어지러워져서 유방을 버려두고 다시 팽월과 싸우러 돌아갔다. 그러나 항우가 떠나자 유방은 다시 그 기회를 노리고 불의의 반격을 가했고, 이후 계속 항우와 성을 뺏고 뺏기는 싸움을 했다. 진격하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하는 가운데 팽월과 유방은 암묵적으로 매우 긴밀한 연대를 과시했다. 항우는 용맹했지만 온종일 동분서주하느라 실로 힘든 나날을 보내면서 결국 한나라 군대에 대처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항우는 또 다른 한 가지 일 때문에 울분을 떨치지 못했다. 당시에 그는 팽월을 공격하러 가기 전에 성을 수비하는 대사마 조구에게 일렀다. “조 장군! 성고를 단단히 지켜야 하오.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경거망동하지 마시오. 모든 일은 내가 다시 돌아온 후에 처리하도록 하시오.” 그러나 한나라 군사들의 도발 솜씨가 더욱 수준이 높았다. 항우가 떠나자마자 조구는 성 밖에서 들려오는 욕설을 참지 못하고, 그들과 싸우러 달려 나갔다. 처음에는 조구가 승리하는 듯했고, 한나라 군대를 사수 강변까지 추격했다. 사수는 남에서 북으로 흘러 성고와 형양 사이를 통과한 후 마지막에 황하로 유입된다.

초나라 군사들이 강을 중간쯤 건넜을 때 한나라 군사들이 대비하고 있다가 몸을 돌려 달려들어 초나라 군사들을 대파했다. 조구는 또 다른 초나라 장수 사마흔과 그 광경을 보았다. 그는 패배를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칼을 뽑아 목을 찌르고 자결했다. 한나라는 초나라를 대파한 후 다시 성고를 점령했다. 이에 유방은 바로 성고를 거점으로 삼고 그곳에 주둔했으며 오창을 통해 식량을 공급했다. 이후 유방은 다시 형양을 단단히 포위하여 초나라 수비대장 종리매를 곤경에 빠뜨렸다.

이 무렵 항우는 이미 팽월이 점령한 10여 개 성을 함락하고 서둘러 서쪽으로 돌아와 형양의 포위를 풀고 종리매를 구원하려 했다. 항우는 군사를 이끌고 광무로 달려가 유방과 묵묵히 대치했다. 하지만 항우 입장에서 이런 묵묵한 대치는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는 일과 같았다. 왜냐하면 항우에게는 몇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 팽월이 여전히 항우의 후방에서 소란을 피우며 그의 군량 보급로 끊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둘째, 용저가 피살된 후 항우는 무섭을 한신에게 보내 유세하게 했으나 아직 소식이 없었다. 셋째, 한신이 제나라 왕에 봉해달라고 자청한 일이 성사되었으므로, 한신이 만약 남하하여 유방과 연합군을 구성하면 항우는 상당히 어려운 지경에 빠지고 만다. 이 때문에 항우는 가능하면 빨리 유방과 마지막 결전을 치르고 싶어 했다.

항우가 유방의 부친을 삶아 죽이려 하다: 항우는 이 무렵 특이한 계책을 시행했다. 그 계책은 범증이 생각해낸 것이다. 범증이 항우를 깨우치며 말했다. “우리가 팽성에서 대승을 거둘 때 유방의 부친 태공과 그의 아내 여치를 모두 포로로 잡지 않았습니까? 지금 두 사람에게서 승리의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항우는 범증의 말을 듣자마자 알겠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항우는 명령을 내려 유방의 가족을 데려오라고 했다. 유방 부자를 전선에서 만나게 할 참이었다. 그런 후 항우는 초나라 진영 앞에 큰 칼과 도마를 설치하고 유 태공을 그 위에 묶어놓은 후 유방을 향해 선언했다.

“유방 네 이놈! 어서 나와서 결전을 치르자. 그렇지 않으면 태공을 삶아 죽이겠다.” 유방은 보고를 들은 후 괴로웠다. 그는 즉시 장량을 찾았다. “항우의 포악한 행위는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소. 어서 방법을 생각해 보시오.” 장량이 말했다. “이것은 분명히 항우의 음모입니다. 혈연의 정과 관계된 일이지만 조심스럽게 처리하지 않으면 전군의 안전에까지 위험이 미칩니다.” 유방은 기다릴 수 없다는 듯이 다그쳤다. “이번에는 목숨을 걸고 항우와 결사전을 치르겠소.” 장량은 유방을 제지했다. “전하! 절대 안 됩니다. 그건 항우의 계략에 말려드는 행위입니다. 그렇게 하시면 태공을 구출할 수도 없고 전하의 목숨도 보장할 수 없게 됩니다. 전하께서는 항우의 만행을 아무 말 없이 바라보기만 하십시오. 지금 전하께서 항우를 두려워하지 않을수록 항우가 오히려 전하를 두려워하게 됩니다. 반대로 전하께서 항우를 두려워하면 할수록 항우는 전하를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자가 전하를 두려워할수록 태공을 쉽게 살해하지 못하고, 그자가 전하를 두려워하지 않을수록 마음대로 태공을 살해할 것입니다.”

장량이 이렇게 말하자 유방도 잠시 생각하다가 마음을 다잡고 옛날 풍읍에서 불량배로 살던 때의 배짱으로 진영 앞으로 달려갔다. 그는 짐짓 아무 상관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항우에게 말했다. “지난날 나는 네놈과 함께 회왕의 면전에서 명령을 받들고 결의형제를 맺었다. 그러니 내 아버지는 네놈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네놈이 정말 우리 아버지를 삶아 죽이면 내게 그 국물 한 사발이라도 나눠다오. 내가 맛있게 들이키겠다.” 항우는 득의양양하게 이제 유방을 잡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다가 이처럼 깡패 같은 대답을 들었다. 항우는 기가 막혀 어쩔 줄 모르다가 바로 태공을 삶아죽이라고 명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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