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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 반하다

김석 지음 | 북오션
논어에 반하다



김석 지음

북오션 / 2018년 11월 / 272쪽 / 16,000원





논어 스스로 말하고 싶은 것



군주가 군주다워야



《논어》<안연 편>에는 누구나 한 번쯤 들어보았을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합니다.



제 경공이 정치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씀하였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버지는 아버지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합니다.”

그 유명한 ‘君君臣臣父父子子(군군신신부부자자)’입니다. 그런데 원문이 동어 반복의 간단한 문장인데도 공자의 정치적 성향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그 해석이 달라집니다.

첫째는 이를 ‘존재 명제’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글자 그대로 ‘임금은 임금이고, 신하는 신하고, 아비는 아비고, 자식은 자식이다’로 읽는 것인데, 이는 ‘위계적 신분질서 그 자체를 강조하고 이를 공고히 하는 것이 정치’라는 뜻이 됩니다.

둘째는 이를 ‘당위 명제’로 읽는 것입니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각자 맡은 바 직분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 (좋은) 정치’라는 것입니다.

셋째는 ‘조건 명제’로 보는 것입니다. ‘임금이 임금다워야 신하가 신하다워지고, 아비가 아비다워야 자식이 자식다워진다’는 것입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고, 지배층이 모범을 보여야 좋은 정치가 이루어진다는 솔선수범의 논리,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하는 해석입니다.

넷째는 ‘명령 명제’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비록 임금이 임금답지 못해도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가 아비답지 못해도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는 것으로, 맹목적으로 충효를 강요하는 그야말로 봉건적인 논리입니다.

이처럼 《논어》의 문장은 매우 압축적이어서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그 뜻이 크게 달라지고 보수적으로도 진보적으로도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제 경공에게 답한 공자의 진심은 무엇이었을까? 그는 ‘존재 명제’를 말한 것일까요? ‘당위 명제’를 말한 것일까요? 우리는 이를 ‘조건 명제’로 읽어야 할까요, 아니면 ‘명령 명제’로 읽어야 할까요?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이 각자 기록하여 가지고 있던 공자의 말씀을 나중에 서로 토론하여 편찬한 책입니다. 책 이름을 ‘공자’라고 짓지 않고 굳이 《논어》라고 지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문제는 공자에게 수많은 제자가 있었고, 그들은 각각 생각과 처지, 성격과 기호가 달랐으며, 따라서 그들이 스승 공자의 말 중에서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전하고 싶은 말만 전하게 되면 공자의 뜻은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인 편>에 다음과 같은 장면이 등장합니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삼아! 나의 도는 하나로 관철되어 있다.”

증자가 말했다. “네.”

공자께서 밖으로 나가자 문인들이 물었다. “무슨 뜻입니까?”

증자가 말했다. “스승님의 도는 충(忠)과 서(恕)일 뿐이다.”



공자가 한 말은 ‘나의 도는 하나로 일관한다’는 것뿐입니다. 정작 그 도가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공자의 도가 충과 서라는 것은 증자의 생각이지요. 물론 증자는 아버지 증석과 함께 대를 이어 공자의 제자가 되었고, 공자의 학통을 계승한 사람이기 때문에 비교적 공자의 뜻을 잘 아는 위치에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증자가 곧 공자 자신은 아닌 만큼 공자의 생각과 반드시 같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더 큰 문제는 공자는 분명 하나의 도를 말했는데 증자는 충과 서, 둘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해석을 하는 사람이 나타납니다. ‘공자님도 하나를 말했고, 증자도 하나를 말했다. 공자의 도는 서 하나이고, 충은 서를 수식하는 말이다. 서에 충실하다는 뜻이다.’ 아마도 그는 <위영공 편>의 다음과 같은 문답을 염두에 두었을지도 모릅니다.

자공이 물었다. “한마디로 평생토록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씀하였다. “그것은 서일 것이다. 자기가 바라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하지 말라.”



자, 공자의 도는 하나일까요. 두 개일까요? 또 그 도는 무엇일까요?





말, 열려 있는 텍스트가 되다



일이관지(一以貫之)



《논어》에는 군자, 인, 덕, 학, 도, 의와 같은 중요한 말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런 말 중에서 《논어》전체를 관통할 수 있는 단어를 택해 그 뜻을 깊이 연구해보는 것도 《논어》를 이해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공자가 말한 ‘일이관지’의 방식입니다. 그런 핵심어 중 하나가 ‘수기안인(修己安人)’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공자 스스로 자신의 사명으로 삼았을 뿐 아니라, 이후 모든 유가의 필수 덕목이 되었고, 《논어》를 한마디로 말하면 ‘수기 안인에 관한 책’이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이 등장하는 장면은 이렇습니다. 자로가 군자에 대해서 묻자 공자가 말씀하였다.

“경건한 자세로 자신을 닦아야 한다. 修己以敬(수기이경)”

“그렇게 하면 됩니까?”

“자신을 닦아 남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 修己以安人(수기이안인)”

“그렇게 하면 됩니까?”

“자기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해야 한다. 修己以安百姓(수기이안백성)

자기를 닦아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일은 요ㆍ순 임금도 어려워했던 일이다.” <헌문 편>



공자는 이상적인 인간 즉 군자가 되기 위한 요건으로 수기와 안인, 두 가지를 말합니다. 자기를 닦아 사람을 편안케 하는 것이 군자라는 말입니다. 치인(治人)이 아니라 안인이라고 말한 것은 인을 ‘다스림의 대상’이 아니라 ‘봉사의 대상’이나 ‘편안케 해야 할 존재’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또한 수기와 안인의 관계도 분명히 제시되고 있습니다. 수기는 안인의 시작이고, 안인은 수기의 완성입니다. 수기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안인, 안백성 하는 데 의미가 있고, 안인, 안백성은 수기를 마친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 것입니다. 요즘말로 하면 어질고 유능한 사람에 의해 정치가 이루어져야 하고, 정부의 목적, 존재 이유는 국민의 행복에 있다고 선언한 것입니다.

나아가 수기와 안인에 완성이 있을 수 없으므로 끊임없이 수기하고 끊임없이 안인해야 하며, 또 수기하면서 안인하고, 안인하면서 수기해야 합니다. 공자와 유가들이 쉼 없이 자기를 닦는 한편으로 정치진출에 그토록 목말라 하고 관직진출을 당연시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천 사람의 마음속 천 명의 공자



효에 대하여



어쩌면 유가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가 바로 효(孝)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가가 효를 이처럼 중시한 것은 그것이 인륜에 부합하기도 하지만 가장 가까이서 실천할 수 있는 인(仁), 인의 첫걸음이라는 데 이유가 있습니다. 인은 바로 유가의 시조인 공자 사상의 핵심입니다. <위정> 편에 다음과 같은 문답이 있습니다.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그 질병을 걱정할 뿐이다.



여기서 ‘그 질병’이 ‘부모의 질병인가’, ‘자식의 질병인가’를 따지기에 앞서 당시에 질병이 도대체 어떤 의미였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의학이나 병리학이 발달하지 않은 당시로서는 ‘질병’이란 ‘인간의 의지와 능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적인 것, 뜻밖의 재난이나 사고’로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술이 편>에 ‘공자가 질병에 걸리자 자로가 기도드리기를 청했다 ’는 대목이 있는데, 이 또한 당시 질병이 불가항력적인 것, 하늘에 대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부모가 오로지 그 질병을 걱정한다’는 말은 ‘어쩔 수 없는 운명, 예기치 않은 불행이나 사고 외에는 달리 별 걱정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부모가 (자기 또는 자식의) 뜻밖의 질병 같은 것 외에는 다른 큰 걱정이 없이 편안한 상태’, ‘걱정 자체의 최소화’가 바로 ‘효’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노자안지(老者安之)’의 상태가 그것인데, 공자는 물질적 부양뿐 아니라 공경, 화목, 우애와 같은 정신적 요소가 아울러 충족되어야 그런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앞서 나왔던 ‘군군신신’에 대해서도 조금 더 생각해보겠습니다. 공자는 아래로부터의 혁명이 아니라 정치의 변화, 위로부터의 개혁을 통해 춘추 당시의 혼란과 고통을 종식하고자 하였습니다. 이를 위해 지배층을 교화ㆍ개선하고, 학식과 덕망을 갖춘 사민계층을 정치에 대거 진출시켜 ‘군자에 의한 정치’를 이루고자 하였습니다. 《논어》에 유독 지배층의 각성, 솔선수범을 강조하는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공자는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고 소인의 덕은 풀과 같아서 풀은 바람이 불면 반드시 눕는다. <안연 편>” 고 했습니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지배층이 모범을 보이면 피지배층은 자연히 따른다고 본 것입니다.

또한 자로가 정치를 묻자 ‘솔선수범하라’고 했고, 계강자가 정치에 대해서 묻자, “바르게 하는 것이다. 그대가 바르게 이끈다면 누가 감히 바르지 않겠는가. <안연 편>” 라고 했습니다. 나아가 “그 몸이 바르면 명령이 없어도 행해지나 그 몸이 바르지 않으면 비록 명령을 내려도 따르지 않는다. <자로 편>” 고 단언하였습니다.



대화의 상대방이 제나라의 군주 경공이라는 점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공은 발뒤꿈치를 베는 형벌인 월형을 남발하여 백성의 원성을 산 인물이고, 재상 안영은 그런 경공에게 ‘시중에 의족은 비싸고 일반 신발은 싸다’며 간언하고, 반대하였습니다. 따라서 군군신신은 ‘조건 명제’로 읽는 것이 적절합니다. 조건 명제를 통해 당위 명제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공자의 참뜻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관중은 ‘임금이 임금답지 못하면 신하 또한 신하답지 못하게 되고 아비가 아비답지 못하면 자식 또한 자식답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는데, 바로 그와 같은 뜻입니다. 결국 공자는 제 경공에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한다.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 선정을 베풀라’고 충고했던 것입니다.

증자가 말한 충과 서는 어떨까요? 충과 서 중에서 굳이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공자의 도는 서 하나’라고 하는 것이 맞을지 모릅니다. ‘평생토록 행할 만한 것’을 묻는 자공의 물음에 공자는 서라고 대답합니다. 서는 공자의 근본사상인 ‘인(仁)’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인이란 곧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거나 ‘자기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는 일’이라 할 것인데, 그와 같은 상태는 타자를 자기와 같은 존재로 생각 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타자를 자기와 같은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으며(기소불욕 물시어인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기가 서고 싶으면 남도 서게 해주고 자기가 통하고 싶으면 남도 두루 통하게 해주는 것(己欲立而立人 己欲達而達人)<옹야 편>입니다.

제자 중궁이 인에 대해서 묻자 공자는 <안연 편>에서 아예 서를 뜻하는 ‘기소불욕 물시어언’이라고 답하였고, 제자 맹자는 ‘힘껏 서를 실천하면 인을 추구함에 이보다 더 가까운 길은 없다’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충과 서가 전혀 별개일까요? 글자 그대로 보면 충은 집중된 마음이고, 서는 같은 마음입니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정성을 다하는 것이 충이고, 남을 내 몸같이 사랑하고 너그러이 대하는 것이 서입니다. ‘자기를 다하는 것’이 충이라면, ‘자기를 미루어 남을 헤아리는 것’이 서입니다. 따라서 충은 내적 윤리, 서는 외적 윤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물이 가득차서 넘치는 것처럼 내적 윤리와 외적 윤리는 서로 긴밀히 연관되어 있습니다. 수기와 안인이 결국 둘이 아닌 하나인 것과 같습니다. 매사에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남에게만 소홀할 수는 없습니다. 자신에게 성의를 다하는 것이 충이라면 남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서입니다. 충이 서이고, 서가 곧 충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굳이 충과 서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필요는 없고, 증자가 틀렸다고 단언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공자라는 크고 높은 언덕



학이시습지, 공자의 일생



잘 알다시피 《논어》는 공자의 제자들, 후학들이 주로 공자의 언행을 기록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공자가 쓴 책’이 아니라 ‘공자를 쓴 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논어》가 한 사람에 의해서 편찬된 것은 아니고 여러 사람이 수백 년의 기간을 두고 정리ㆍ수정ㆍ보완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제나라 판 《논어》와 노나라 판 《논어》, 공자의 옛집 벽 속에서 발견된 《논어》 등 각기 다른 판본이 있었다는 것도 이를 반증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논어》의 편찬자가 누구인가가 아닙니다. 그 주체가 누구이든 《논어》를 편찬하면서 제자들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했을까 하는 점입니다. 어쩌면 밤을 새워 치열한 토론이 벌어졌는지도 모릅니다. 공자의 그 많은 언행, 일화들 중에서 도대체 무엇으로 첫 편, 첫 장을 삼을 것인가? ‘스승님의 참 모습, 온 생애가 함축되어 있는 말씀을 첫 편, 첫 장으로 삼자! 결론은 아마 이렇게 모아졌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학이 편>이고, 그 첫 장이 우리에게도 익숙한 바로 이 말입니다.

“배우고 제 때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노여워하지 않는다면 또한 군자가 아닌가?”



위 구절에는 공자의 73년의 생애가 녹아있고, 인간 공자의 기쁨과 고뇌가 다 들어 있습니다. 이 말이 《논어》의 첫 장을 차지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춘추ㆍ전국시대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춘추ㆍ전국시대



공자는 잘 알다시피 중국 춘추시대 사람입니다. 천자의 나라인 주나라 왕실이 쇠락하고 제후국들이 다투어 서로 경쟁하고 전쟁을 벌이던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본래 봄과 가을을 뜻하는 ‘春秋’는 군웅할거나 전쟁과는 관련이 없는 말입니다. 사람의 나이를 뜻하기도 하고 대개는 세월, 역사를 가리키는 용어인데, 이 시기를 춘추시대라고 칭한 것은 공자가 당대에 편찬한 것으로 알려진 역사서의 이름이 《춘추》였기 때문입니다.

춘추시대는 주나라 왕실의 권위가 1차로 땅에 떨어진 기원전 770년경 시작합니다. 주나라 유왕이 서융의 침공으로 수도(호경) 부근에서 죽고 그 뒤를 이은 평왕이 동쪽 낙읍(낙양)으로 천도한 것입니다. 그 전을 서주시대, 이후를 동주시대라 부르는데 하여간 주왕실의 체면이 크게 손상되었습니다.

이렇게 시작한 춘추시대는 전국시대가 개막한 403년경 막을 내립니다. 이때 주나라 왕실은 또 한 번 치욕을 겪는데, 명목뿐인 주나라 천자가 진나라 3대부(한씨ㆍ위씨ㆍ조씨)의 하극상을 용인하여 이들을 제후로 승급하고 나라의 3분할을 공인한 것입니다. 이 사건은 주왕실의 권위뿐 아니라 봉건질서와 신분체계가 전면적으로 붕괴되기 시작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전국시대는 말 그대로 각 나라가 서로 왕을 칭하며 죽기 살기로 전쟁을 벌이던 시대였고, 기원전 403년에 시작되어 기원전 221년 진시황이 중국을 최초로 통일할 때까지 계속됩니다.

춘추시대와 전국시대는 모두 주나라 봉건질서가 붕괴하고 군웅이 할거하던 시대였습니다. 제후국들이 형식적이나마 주 왕실을 받들고 주나라의 질서를 지키는 시늉이라도 한 것이 춘추시대라면 전국시대에는 아예 서로 왕을 칭하며 노골적으로 천하의 패권을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전쟁의 양상도 춘추시대가 명분(존왕양이)을 위한 전쟁, 단기전이었다면 전국시대는 토지와 인민을 빼앗고 겸병하기 위한 살육전쟁, 장기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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