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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풀어쓴 채근담

홍자성 지음 | 북허브
시로 풀어쓴 채근담

홍자성 지음

북허브 / 2013년 12월 / 376쪽 / 14,000원





전집



07

살찐 고기 매운 것 단 것이 참맛 아니다

정말 맛있는 것은 담백한 것이다

신기하고 뛰어난 사람이 잘난 이가 아니다

정말 잘난 사람은 상식적인 보통 사람이다



아주 맛있는 것은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밥이나 물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공기다

사람은 그래서 아주 잘난 사람이 보통사람이다



잘났다는 사람, 빼어난 인물도

한 시대가 지나면 그늘에 묻힌다

가장 평범한 사람, 상식적인 인물은

물과 같고 공기와 같아서 언제나 변함없다



14

그리 대단한 일을 못한다 해도

이익에 눈 멀어 허둥대지만 않으면

꽤 괜찮은 사람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치사하게만 굴지 말고 살아라



학문을 닦아 위대한 공적은 못 남겨도

물욕을 마음에서 없애버리기만 한다면

성인의 경지에 들어가리라

세속에 시달리지 말고 살아라



보잘것없는 일에는 매달리지 말고

조금은 초연하게 살아라

명사나 성인이 되는 길이

까마득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22

쉬 움직이는 이는 구름 속 번개요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사람이다

고요를 즐기는 이는 식은 재요

바싹 마른 나무와 같은 사람이다



모름지기 멈춘 구름, 잔잔한 물 위에

날고 있는 소리개요 뛰는 물고기

그런 기상이 있어야

도를 터득한 이의 마음이라 하겠다



많이 활동하는 이는 안전성이 모자라고

게으르고 몸조심하는 이는 생기가 없다

솔개가 날 듯 물고기가 뛰듯 하나

조화를 이루는 삶은 도를 안다



45

사람은 저마다 큰 자비가 있다

유마 거사나 백정, 망나니 이들은

두 마음이 아니고, 곳곳에 참된 즐거움이 있다

사람은 그런대로 살맛이 나는 것이다



황금집이나 초가집이나 그 땅은

본래 같은 터전이다

다만 욕심이나 그 형편이 다르게

눈앞에 나타나 지척도 천지 같을 뿐이다



누구든지 태어난 그대로

사람은 저마다의 모습이 있고

뜻이 있어 살고 있다

법문을 세운 유마나 백정이 다르지 않다



55

사치하는 이는 아무리 부자라도

늘 모자랄 수밖에 없구나

검소한 이는 가난할지라도

늘 넉넉하여 여유가 있는 것이다



능력 있는 이는 일을 많이 하면서도

남에게 원망 들을 일도 생기니

좀 못난 사람은 편안하고도 본성을 지키고 있다



사치는 뱀 혓바닥인지라

어느 누구도 고이 견딜 수가 없다

유능한 이는 원망을 받기 쉬우니

어리석게 사는 사람이 더 편하다



73

사람 사는 이치에 맞게 살면

마음이 밝아지고 여유가 생긴다

하늘의 도리에 맞추어 살면

가슴이 활짝 펴지게 된다



그러나 욕심만 따르면

마음이 좁아져서 발 내딛는 곳마다

가시덤불이 있고

진흙탕만 만나게 된다



하늘이 가르치는 길로 가면

마음에 여유 있는 삶이 열리고

제 욕심대로만 가면

가시밭이요 진흙탕일 뿐이다



102

문장을 익히면 무슨 특별한 일이

생기지는 않더라도

그냥 알맞은 삶이 있을 뿐이다

그렇게 진리는 평범한 데 있다



인격을 갈고닦으면 특별한 일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본연 그대로일 뿐이다

진실은 늘 보통일로 오는 것이다



무슨 일을 하여 끝에 가면

가장 바람직한 것은

본래의 진심을 찾는 것이다

기적이 아니라 당연한 모습을 만난다



128

내 몸은 하나의 작은 우주

기쁨과 성냄으로 허물됨이 없어지고

좋아하고 미워함이 법도 있게 된다

이는 모두 자연의 이치에 순응함이다

천지 자연은 하나의 거룩한 어버이

백성들로 하여금 원망이 없게 하며

모든 사물에 근심 없도록 하면

정이 두터워 화목하게 한다

그것이 자연의 기상이다



천지 조화로 사람이 태어난다고

믿었던 옛날같이

자연을 두려워하고

어버이로 믿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



155

일자리를 물러나는 것은

전성기를 골라서 할 것이다

남들이 애석하게 여길 때

알맞은 때에 할 일이다



몸 둘 곳은 남들이 원치 않는

외롭고 낮은 자리가 좋다

거기는 미워하거나 다투는 이가 없기에

안전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일터를 떠날 때는 전성기가 좋고

실패나 쇠퇴기는 초라하고 부끄럽다

몸을 가눌 곳은 후미진 곳으로

남이 시기하지 않을 곳으로 하는 것이 좋다



195

타인 험담은 구름 조각이 해를 가림과 같음이요

아양 떨고 아첨하는 것은

문틈의 바람결 살결에 스며듦과 같음이라

그 해로움을 깨닫지 못한다



타인에게 나를 헐뜯는 무리는

그다지 경계할 것이 못 되지만

앞에 와서 알랑거리고 아첨하는 무리는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아첨은 몸도 집안도 망친다

나라와 사회를 무너뜨리고

그 무서운 혼란은 옛날에도

오늘날에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199

해가 이미 저물었어도

오히려 노을은 정말 아름답고,

하루가 저물어 가는데

등나무와 귤이 꽃 향기를 바람에 날린다



큰 인물은 그 말년에 들어

그 정신이 더욱 백 배나 빛나고

찬란한 인생을 마무리한다

살아온 역사가 모두 빛을 발한다



해는 져도 노을은 찬란하니

사람도 정신을 한층 가다듬어

인생의 말로를 보람 있게

장식해야 현명하다고 할 수 있다





후집



08

사람은 글자 있는 책만 읽고

글자 없는 책은 읽을 줄 모른다

거문고 줄 타며 노래는 해도

줄 없는 거문고는 탈 줄을 모른다



형식 있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진짜 정신을 활용하지 못한다

그러니 줄 없는 거문고와 책을

어찌 타며 참맛을 알겠는가!



사람은 형태를 갖춘 것만 본다

천하 모든 사물이 모두 책인데

하늘의 계시를 가지고 있는데

어리석은 이가 읽을 줄을 모른다



16

마음 가라앉히고 차분해졌을 때

열광하여 들뜨던 때를 살피면

정열에 끌려 날뛰던 일이

쓸데없는 짓이었음을 알게 된다

아주 한가한 다음에야

번거로운 때를 돌이켜보면

조용한 즐거움이 진짜였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흥분하여 날뛰던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모습이더냐

아주 정상적인 상태에서

누리는 즐거움이 진정 귀한 것이다



23

솔숲 시냇가에 지팡이 들고

혼자 걸어가면 가는 곳마다

구름이 내 해어진

옷깃을 어루만진다



대나무 창살가에 누워

책을 베개 삼아 편히 자다가

깨어보면 휘영청 달빛이

담요 위를 비춘다



솔바람 마시고 지팡이 벗 삼아 거닐면

구름이 날 따라와 속삭이고

책베개로 잠들다 깨면 달빛이 나를 비춘다

이는 곧 가난한 자의 행복이다



34

참 깊은 맛은 향기로운 술에 있지 않고

콩을 씹으며 물이나 마시는 데서 얻는다

그리워 회포 푸는 것은 적막한 고요 속이 아니라

퉁소 불고 거문고 타는 여유에서 생긴다



진실로 진한 맛은 언제나 짧고

담박한 가운데서 느끼는

취미가 홀로 참됨을 알게 된다

가난이나 음악이 사람을 진솔하게 한다



많이 가진 이는 늘 바쁘고 쫓긴다

가난한 삶이 단순하고 아름답다

피리 불고 거문고 타는 음악이

사람을 그윽하고 깊은 즐거움으로 이끈다



40

고관대작 행렬에

명아주 지팡이 짚은 깊은 산골 사람이 섞여 있으면

그 행렬이 얼마나 한층 고상하겠는가

서로 달라도 인정한다면 좋지 않으냐



낚싯대를 든 노인이나 지게를 진 초부가

지나가는 시골길에서

관복 차림의 높은 벼슬아치가 같이 간다면

속세의 기운을 보태어 얼마나 좋으랴!



높은 벼슬아치 관복이

산골 노인의 지팡이가 같은 길을 간다면

서로 다른 신분이 어울리는 아름다움 아니더냐



57

노년이 되었을 때의 심정으로

젊을 때를 본다면

바삐 돌아다니고 부귀공명을 추구하는

마음을 없앨 수 있고



시들고 쇠퇴했을 때의 모습으로

영광스러움을 보면

사치와 화려함을 추구하는

마음을 끊을 수 있을 것이다



뒤돌아보면 허무하다

내가 언제 저렇게 살았더냐!

감회 어린 뉘우침에 사로잡혀

겸허하게 자신을 만난다



63

옛 고승이 “대나무 그림자가 섬돌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달빛이 연못을

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다” 하는데

사람은 왜 그렇게 시끄러우냐



유교에서 “흐르는 물이 빨라도 주위는 고요하고

꽃이 피고 지는 일이 잦아도 뜻은 한가롭다“ 했는데

사람이 이런 뜻을 가지고 사물을 대하면

몸과 마음이 얼마나 자유로우냐

손톱만 한 일을 하면서

태산만 한 말로 인간은 떠들고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도

대단한 일인 양 나팔을 부느냐



80

세상 쓴맛 단맛 다 겪어 알고 나면

손바닥 뒤집어 구름 만든다는 두보의 시처럼

눈뜨고 보기도 귀찮아진다

변화무쌍한 세상을 체념하게 된다



세상 인심 다 알고 나면

누가 무슨 소리를 하든지

아랑곳하지 않고

마지못해 머리를 끄덕인다



두보의 시에 “손바닥 뒤집어 구름 만들고

손을 엎어 비를 만든다”라는 표현이 있다

변화가 죽 끓듯 하는 세상 물정을

알고 나면 얼마나 한심스럽겠느냐?



117

너무 한가해도 잡념이 생기고

너무 바빠도 본성을 잃는다

잡념이 마음을 해치고 본성을 잃으면

비인간적이 되기 쉽다



지도자는 몸과 마음의 걱정을 안고

잡념의 틈새를 주지 않으며

풍월을 즐겨 마음의 여유를 가진다

각박한 사람이 되지 않도록 한다



사람은 약하여 너무 한가해도

그리고 너무 바빠도 병나고

비정상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슬기롭게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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