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불혹, 세상에 혹하지 아니하리라

신정근 지음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 300쪽 / 15,000원





1부 불혹, 혹하지 아니하리라



나이 듦 혹은, 늙어 감에 대하여

순응, 때를 편안히 하고 흐르는 물처럼 - 장자의 안시처순: 실력의 차이가 현저하게 나서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는 경우를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즐겨 비유한다. 강대국과 약소국의 전쟁, 1위 팀과 꼴찌 팀의 시합, 대기업과 소기업의 대결에서 뜻밖으로 약자가 강자를 이기는 경우가 간혹 있다. 하지만 보통 사람은 다윗과 달리 현격한 실력 차이 앞에 서면 두 손 두 발을 내려놓는다. 특히 노화처럼 가시적인 대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간과의 싸움이라면 사람이 덤벼서 어찌 해볼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그래서 자신에게 성큼 다가오는 노화에 순응(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고대인들은 자연현상의 합리적인 인과 관계를 풀지 못하였기에 초자연적인 존재를 끌어들여서 두려움을 줄이고자 했다. 동아시아 사회는 기능신, 자연신, 조상신 등 다양한 신을 모셨지만 우주를 창조하고 세계를 심판하며 인간의 운명을 뒤흔드는 절대신(유일신)을 숭배하지는 않았다.

제자백가 중에서 장자는 유일신을 전제하지 않고 절대자를 예찬하지도 않는다. 장자는 무엇에 의지해서 지금으로부터 2,500여 년 전에 늙어 감이 가져오는 허무와 공포를 이겨낼 수 있었을까? 그의 핵심은 순응이라고 할 수 있다. 장자는 노화에서 죽음에 이르는 과정에 순응하는 길을 다음 이야기를 통해 말한다.

『장자』 「지락」을 보면 장자의 아내가 죽자 친구 혜자가 장자에게 문상을 온 이야기가 나온다. 혜자가 문상을 하러 왔을 때 장자는 술동이를 북처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는 장자에게 "반평생을 함께한 아내가 떠났는데 노래를 부르다니 좀 심하지 않은가"라고 항의했다. 그러자 장자는 자신도 처음에는 슬펐지만 삶과 죽음의 유래를 따져보니 슬픔을 멈추게 되었다고 대답했다. "어슴푸레하고 흐릿한 속에 뒤섞여 있다가 한 차례 변하여 기가 생기고, 기가 다시 변해서 형체가 나타나고 형체가 다시 변해서 생명이 생겨났다가, 지금 또 변해서 죽은 것이다. 이는 마치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계절이 번갈아 운행하는 것과 같다."

태양과 지구의 위치에 따라 계절이 바뀌는 것처럼 생사도 기의 조건에 따라 바뀌는 양태의 차이이다. 죽음이란 것은 변화의 매듭이 아니라 한 고리일 뿐이다. 장자가 아내를 떠나보내고도 술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불렀다고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혜자가 판단하는 형식이다. 장자는 즐거워서 술 마시고 노래 부른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에 대해 기뻐할 것도 슬퍼할 것도 없는 상황에서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이렇듯 장자는 안시처순, 고분이가 이야기를 통해 노화를 삶과 죽음의 피할 수 없는 과정이니, 사람들로 하여금 그것에 대해 감상적 태도를 갖지 말라고 말한다.

사실 노화는 늦출 수는 있어도 피할 수는 없는 필연적인 현상이다. 시간이 자신의 몸에 들어서는 타이밍을 늦춘다고 해서 과연 얼마나 늦출 수 있을까? 이를 허영이라며 시간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라고 하지만 그 담담함 또한 허영이지 않은가? 죽음이 확정되기 전까지 과연 누가 죽음에 이르는 노화를 그저 흘러가는 물처럼 지나칠 수 있을까? 담담함이 유일한 답이라면 현재 생명학의 무수한 기도는 어리석은 짓이나 부질없는 욕망이 되리라.

탐욕, 결핍의 또 다른 이름

재물, 이것 좀 전부 치워 버려라! - 왕연의 아도물: 살림살이 형편에 따라 각자 처지가 다르겠지만 어디에서 발단이 되었든 요즘 우리는 돈에 덜 얽매이는 경제적 성공을 바란다. 우리 사회가 단군 이래 최고의 경제 발전을 이루었다고 하지만 요즘만큼 고용, 복지, 미래 등 삶의 전반이 불안한 적은 없었다. 이처럼 불안이 커지다 보니 개인이나 기업은 지금 가진 것만이 아니라 앞으로 가질 것에까지 탐욕의 눈길을 던진다.

『세설신어』에 보면 왕연과 부인 곽 씨 사이에 재미있는 일화가 실려 있다.(「규잠」486-489쪽) 곽 씨는 성격이 괴팍하고 재물을 닥치는 대로 긁어모았다. 남편임에도 아내를 말릴 수 없었던 왕연은 당시 협사로 널리 알려진 이양의 이름을 팔아서 아내의 버릇을 고치고자 했다. 왕연뿐 아니라 이양 역시 곽 씨에게 문제가 있음을 말했다고 함으로써 아내의 버릇을 조금 누그러뜨리려고 했던 것이다.

남편에게 보기 좋게 당한 곽 씨는 왕연을 한 번 놀려 줄 궁리를 했다. 왕연은 고상하고 심원한 이야기를 좋아하고 세속적인 일에 관심이 없었다. 그랬기에 아내가 늘 탐욕스럽다고 불만이었는가 하면 입에는 '돈'이라는 말조차 담으려 하지 않았다. 곽 씨는 하녀를 시켜 왕연의 침상 주변에 돈을 빈틈없이 깔아 놓고 그가 '돈'을 말하지 않으면 걸음을 뗄 수 없게 했다. 왕연이 아침에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돈 때문에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에 그는 하녀를 불러서 다음처럼 말했다. "이것 좀 전부 들어서 치워라!" 아도물에서의 아는 발어사로 뜻이 없고 도는 이것, 저것을 의미한다. 즉, 왕연은 아내의 계략에 넘어가지 않고 '돈' 대신에 '이것'이란 말을 썼던 것이다.

왕연은 아도물 이야기를 통해서 재물에 관심이 없는 청렴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다른 이야기도 있다. 혹자는 "왕연은 부귀를 구해서 부귀를 얻었고 재물이 산더미처럼 쌓여서 아무리 써도 다 쓸 수 없었는데 무엇 때문에 돈 이야기를 끄집어내겠는가?"라고 말한다.) 왕연은 재물로부터 한 걸음 비켜나서 그것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세는 고려장군 최영이 가정교육에서 배운 견금여석, 즉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말과 맥락이 비슷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현실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견금여석이라 해서 최영이 황금을 돌처럼 여기고 내다버렸다는 뜻은 아니다. 이 말은 황금을 받아 일이 생길 경우 그것을 "아이쿠, 반갑다!"라며 덥석 받을 것이 아니라 받아도 되는지 따져보라는 의미다. 이때 황금을 돌처럼 간주할 줄 알아야 받을지 말지 정확히 판단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공자가 강조했던 '이익을 보면 도리(정의)를 따져 보라'는 의미의 견리사의와도 연결된다.

동중서는 공직자, 특히 군주라면 온종일 '이익'이라는 말을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하며, "사랑을 내세우는 사람은 도리를 바로잡지 이익을 꾀하지 않고, 이치를 닦지 공업을 서두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군주와 공직자들은 백성들의 생업에 관심을 두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이익을 두고 백성들과 경쟁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정보와 지식에서 우월한 입장에 있는 군주와 공직자가 경제 행위를 하여 일반 시민과 경쟁한다면 게임이 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왕연이나 공자나 동중서의 말은 사람들에게 '돈으로부터 한 발짝 비켜나서 탐욕을 부리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군주나 공직자가 황금을 돌이 아닌 황금으로 본다면 누구보다도 먼저 그것을 가지려고 기를 쓸 것이고, 이것이 곧 탐욕의 시작이다.

편견, 스스로 깊이 파내려가는 무덤

차별, 편들지 않고 기울어지지 않아야 그 도리가 가지런하고 고르다 - 영조와 정조의 탕탕평평: 1960년대에 80달러에 불과했던 1인당 국민소득은 2012년에 2만 달러에 이르렀다. 하지만 아무리 잘살게 되었다고 해도 모든 사람에게 부족한 게 없을 정도로 풍족한 것은 아니다. 원시 시대나 현대 사회나 사람은 모자란 상태에서 살아가고 있다. 전체적으로 부족한 상태에서 인간 개개인은 자신의 몫을 더 많이 그리고 안정적으로 가지려고 노력한다. 여기서 정의의 문제가 생겨난다. '내'가 가지고 못 가지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에 의해서 정당화될 수 있어야 하고, 또 '나'는 비록 지금은 가지지 못하더라도 나중에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얻고자 하기 때문이다.

정의의 실현을 의심하는 쪽에서는 늘 독점과 차별의 문제를 제기한다. 즉, 누군가 '내'가 가질 것을 혼자 독차지하고 있다거나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덜 받았다는 것이다. 계급 사회에서는 차별이 차별로 여겨지지 않는다. 따라서 차별이 있다고 하더라도 숙명으로 여기며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다. 계급이 없어진 뒤에도 여성, 아동, 소수자 등은 남성, 성인, 다수자에 비해 차별을 받아 왔다. 인간이 역사를 통해 적지 않게 바로잡아 왔음에도 차별은 아직까지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탕탕평평한 세상은 차별이 사라지는 이상사회를 가리킨다. 『서경』 「대우모」는 이와 관련된 인간의 심리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사람 개개인의 마음은 위태위태하고 도리를 지키려는 마음은 작고 희미하다. 오직 뒤섞이지 않고 오직 한 가지에 집중해서 진실하게 중심을 잡아야 한다. 근거 없는 말은 듣지 말고, 제대로 상의하지 않은 대책은 쓰지 않도록 하라."

사람의 마음은 이랬다저랬다 하기 쉽고 원칙을 지키려는 마음은 현실의 이해관계에 따라 바람 앞의 촛불마냥 마구 흔들린다. 이때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기준을 굳게 다잡지 않으면 스스로 뭘 해야 할지 결정할 수 없다. 따라서 기준 이외의 다른 것을 끌어들여 뒤섞지 않고 오로지 기준 하나에만 집중한다면 최선의 선택에 이를 수 있다. 설혹 결정이 내려진 뒤 사람들이 이해를 두고 왈가왈부한다 해도, 결정을 내린 마음은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는 공정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사기』 「평원군우경열전」에 보면 모수자천의 이야기가 나온다. 전국 시대에 진이 조를 침략했다. 조가 혼자 진을 막기 어려워지자 평원군이 초로 가서 구원병을 요청하게 되었다. 이때 평원군은 자신이 거느린 식객 중에서 스무 명을 뽑아 협상단을 꾸리려고 했는데, 열아홉 명은 채웠지만 마지막 한 명을 찾지 못했다. 이때 모수는 협상단의 일원으로 자신을 추천했다. 그러나 평원군은 모수가 3년간 자신의 문하에 머물면서 두각을 나타낸 적이 없었다는 이유로 그의 제안을 거절했고, 이에 대해 모수는 자신에게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에 평원군은 주위 사람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모수를 협상단에 포함시켰고, 초에 간 협상단 중 열아홉 명은 실패했지만 모수의 노력으로 그는 조와 초의 동맹을 성사시킬 수 있었다.

평원군은 상황에 쫓기면서도 모수의 말을 듣고 그것에 일리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이것도 『서경』에서 말하는, 치우치고 기울어지지 않는 탕탕평평의 실례이고 이것저것 다른 편견에 신경 쓰지 않는 유정유일의 사례라고 하겠다. 정조도 규장각에 검서관의 자리를 마련해서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 서얼 출신의 인재들이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게 했다.

지금은 21세기이다. 사람은 획일적인 기준이 아니라 다양한 개성으로 공정하게 평가 받으며 각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자아를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재까지도 곳곳에 학력, 남녀, 지역 등에 따른 차별이 많이 남아 있다. 편견 없는 세상은 아직도 실현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편견에 기대어 그 안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연대하도록 노력해야겠다.

권위는 포장의 도구가 아니다

불통, 내가 백성들의 입과 귀를 틀어막으리라 - 주나라 려왕의 오능미방: 공자는 『논어』에서 60세를 이순이라 일컬으며, 사람이 나이가 들면 자신의 생각과 다른 말에도 부드러워진다고 말했다. 하지만 책과 달리 현실에서는 나이가 들면서 부드러워지는 사람도 있는 반면 고집이 더 세지는 사람도 많은 듯하다. 우리의 가정, 학교, 사회는 수평적 대화, 격의 없는 대화에 아직 그리 익숙하지 않다.

주나라 려왕은 다른 사람의 이견이나 자신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에 경기를 일으킨 인물로 유명하다. 『국어』 「주어」 상을 보면 주나라 려왕의 일화가 잘 나타나 있다. 려왕이 폭정을 계속하자 국인들의 반발과 불만이 쌓여 갔다. 소목공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려왕에게 폭정을 그만둘 것을 간언했지만 그는 오히려 위나라 출신의 신무를 고용해서 자신을 비방하는 사람을 색출하여 보고하게 했다. 보고가 들어오면 려왕은 당사자를 가차 없이 죽여 버렸다. 백성들은 더 이상 국정에 대해 왈가왈부하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도 말 대신 눈짓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그제야 려왕은 만족했다. "내가 이렇게 비판을 완전하게 막을 수 있으니, 그들이 입을 함부로 놀리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소백공은 그냥 물러날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려왕의 대책과 결과가 바람직하지 않다며 다시 간언을 했다. "신무의 활용과 비판자의 처형은 백성들의 입을 틀어막는 것입니다. 백성들의 입을 막으면 강을 막는 것보다 더 큰 재앙이 생깁니다. 이는 막았던 강물이 터지면 많은 사람들이 다치는 것과 같습니다. 물을 다스리는 이는 물길을 터서 흘러가게 하고 사람을 다스리는 이는 사람이 속을 터놓고 말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마음으로 생각하면 입으로 드러나서 여론을 형성하고 그것이 퍼지게 마련인데 어찌 막을 수 있겠습니까? 설령 입을 막는다고 하더라도 어찌 오래갈 수 있겠습니까?" 려왕은 끝내 소목공의 충고를 듣지 않았다. 불통의 고집을 부린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미방 대책을 실시한 지 3년 만에 백성들의 저항으로 왕좌에서 물러나 먼 곳으로 추방되었다. 이 사건은 중국 고대 최초로 성공한 혁명 또는 시민 불복종의 사례에 해당된다.

사람들은 사고방식과 일 처리에 있어 자신만의 폐쇄회로를 하나씩 가지고 있다. 특히 대통령, 자수성가한 CEO 등은 최고의사결정권자로서 누리는 막대한 권리와 혜택만큼이나 엄청난 부담과 책임을 지고 있다. 나름대로 성공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들은 세상과 사회 그리고 업계를 자기 식대로 이끌어 가겠다고 생각한다. 이런 생각이 강하면 강한 사람일수록 주위 사람들의 이견에 불편해한다. "내 식대로 하면 다 잘되게 되어 있는데 다들 왜 내 발목을 잡을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의 판단에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 성공은 분명 그들의 폐쇄회로가 타당했기 때문에 거둔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성공이 앞으로의 성공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견은 나를 귀찮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지도 듣지도 생각하지도 못하는 것을 일깨우는 것이다.



2부 유혹, 혹해도 좋지 아니한가



초발심, 마흔에 가져야 할 첫 번째 마음

의지, 뜻은 진실하게 마음은 바르게 - 『대학』의 성의정심: 사람은 끊임없이 무엇을 하고 싶은 욕망을 드러내고 그 욕망을 위해 결심을 한다. 무협지 속의 복수는 그 인물로 하여금 그것만을 위해 평생을 살게 하는 강렬하고 지속적인 욕망이다. 금연과 다이어트는 건강을 위해서 누구나 한 번씩 갖는 욕망이지만 그 유혹에 넘어가고픈 욕망도 너무 강하다. 친구를 따라서 하게 되는 취미는 바로 시작하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지만,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차갑게 식어 버리기도 하는 욕망이다. 이처럼 욕망한다고 해서 모두 충족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처음 먹은 마음이 아무리 중요하고 강하다 해도 환경과 다른 욕망이 생겨나면 주저앉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때 욕망이 식지 않고 지속되려면 새로운 응원군이 필요하다. 이는 욕망에 대해 점점 약해지는 의지력을 줄어들지 않게 할 수 있다. 자동차를 계속 굴러가게 하려면 휘발유가 떨어지기 전에 다시 주유를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보면 최초의 결심(욕망, 바람 등)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도중에 꺼지지 않도록 계속 불을 지피려는 의지도 중요하다. 욕망과 의지가 결합되어야만 처음의 결심이 마침내 빛을 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대학』과 이이의 『성학집요』를 들여다볼 만하다. 『대학』의 앞부분에는 의지와 관련해서 성의정심이 나온다. "옛날에 밝음의 덕으로 온 세상을 밝히려면 먼저 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 제 나라를 다스리려면 먼저 제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 한다. 제 집안을 가지런히 하려면 먼저 제 몸을 닦아야 한다. 제 몸을 닦으려면 먼저 제 마음을 올바르게 해야 한다. 제 마음을 올바르게 하려면 먼저 제 뜻을 진실하게 해야 한다. 제 뜻을 진실하게 하려면 먼저 제 앎을 온전하게 해야 한다. 제 앎을 온전하게 하려면 사태(사물)를 틀(전통)로 바라보는 데 달려 있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