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셋, 묵자를 만나다
친위 지음 | 예문
마흔셋, 묵자를 만나다
친위 지음
예문 / 2012년 10월 / 303쪽 / 14,500원
1장 실천의 기술
실천으로 보여주어야 진정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과 의를 실행할 때 말로만 하지 말고 실천에 옮겨야 하며, 이것이 기본적인 품성이자 인격이라고 묵자는 말했다.
초나라 왕이 공수반(公輸班)에게 구름사다리(雲梯)라는 공격용 무기를 만들게 해 송나라를 칠 준비를 한다는 말을 들은 묵자는 제나라를 떠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걸어 초나라 수도에 도착했다. 그는 초왕과 공수반을 설득하여 송나라를 치는 것을 제지했고, 초나라 왕은 묵자를 설득하지 못하자 억지를 썼다. “당신은 이치를 잘 따지는 것 같은데, 공수반이 이미 구름사다리를 만들어 전쟁준비를 끝냈으니 아마도 송나라를 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소.” 묵자는 초나라 왕에게 본때를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공수반과 초나라 왕의 면전에서 가상전투를 벌일 것을 청했다.
묵자는 허리띠를 풀어 성벽으로 삼고 나뭇가지를 무기로 삼았다. 공수반이 성을 공략하는 무기 아홉 가지를 설계하여 대항했지만 번번이 묵자에게 지고 말았다. 공수반은 내기에서 지자 “나는 당신을 어떻게 정복해야 하는지를 알고 있소. 하지만 나는 말하지 않을 것이오.”라고 말했다. 묵자가 말했다. “나는 당신이 나를 어떻게 정복하려고 하는지를 알고 있소. 하지만 나도 말하지 않을 것이오.” 초나라 왕이 물었다. “그게 무엇이오?”
묵자는 큰 소리로 말했다. “공수반의 의도는 나를 죽이는 것입니다. 나를 죽이면 송나라의 성을 지켜줄 사람이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이미 300명의 군사를 집결시켰소. 내 제자인 금골희가 그들을 이끌고 내가 제조한 무기를 지니고 송나라 성을 지킬 것이며, 진공하는 초나라 군대에게 타격을 가할 것이오. 설사 나를 죽인다 하더라도 성은 공략해내지 못할 것이오.” 초나라 왕은 송나라에 대한 진공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초나라 왕은 송나라를 치려는 생각을 버렸고, 묵자의 품성과 재능에 탄복하고 말았다.
말은 신중하게! 행동은 민첩하고 지혜롭게!
묵자는 호언장담하면서 행동이 느리다면 말주변이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이 들으려 하지 않으며, 많은 수고를 하였으나 자신의 공로를 지나치게 칭찬하면,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고 했다. 영리한 사람들은 마음속으로 분명히 알고 있으나 큰소리치지 않으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도 자기 스스로 공로를 칭찬하지 않는다. 이야기를 할 때는 말을 줄이고 요점만 말하며, 화려함을 추구하지 말고 명철함을 추구해야 한다.
유수(劉秀)는 한조 종실의 후예였다. 비록 조상이 남양(南陽)의 호족이었다지만 그의 대에 이르러서는 가문이 이미 몰락한 상태였다. 왕망(王莽)이 황제가 되었을 때 유수는 소년이었다. 왕망이 스무 살 되던 해 유수는 태학에서 공부하였다. 그러나 여비가 떨어져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유수는 큰형 유빈(劉繽)의 아랫사람들의 노략질에 억울하게 연루돼 감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유수는 출옥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형 유적(劉績)의 지지를 받아 사람들을 모아 군사를 일으켰다. 그런 다음 그들은 주변 지역을 기반으로 하여 일어난 장수 왕봉(王鳳)과 진목(陳牧) 등을 찾아 두 세력 간의 연합을 이루었다. 이어서 유수는 곤양(昆陽)대전을 지휘하여 적은 병력으로 다수의 왕망 군대를 격파하였다. 이치대로라면 곤양대전을 승리로 이끌어 왕망의 주력군을 섬멸해 전투의 양상을 유리하게 바꾼 유수 형제가 마땅히 중용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유현(劉玄)과 몇몇 농민 지도자는 유수의 형 유적을 살해하였다.
갑자기 닥친 비보에도 유수는 냉정했다. 그는 당시 자신의 운명이 다른 사람의 손에 놓여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아직 복수할 시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유수는 완성(宛城)에 돌아온 후 유현 앞에서 자신이 형을 잘 권고하지 않은 탓에 형이 죽을죄를 짓게 했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신시와 평림의 장수들은 본래 유수가 복수하러 오면 기회를 엿보아 그를 죽이려 했으나 일이 이렇게 되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유수를 위로하러 왔을 때도 그는 자신에게 죄가 있다고 말하며 곤양대전에서 세운 공로는 입에 올리지도 않았다.
유수는 유적의 장례를 간소하게 치른 후 웃고 떠들며 평소와 다름없는 언행으로 일관하였다. 하지만 밤이 되면 남몰래 흐느껴 울며 눈물로 베개를 적셨다. 그의 수하인 풍이(馮異)는 이런 비밀을 알아내고 그에게 슬픔을 자제하라고 권고했으나 그는 ‘헛소리하지 마라!’라며 꾸짖었다. 하지만 풍이는 집요했다. 그는 일편단심으로 유수에게 충고하였다. 즉, 유현의 정권은 이미 인심을 잃었으니 만일 다른 세력을 키운다면 반드시 대업을 이룰 것이라고 안심시켰다.
마침내 기회가 왔다. 유현은 능력 있는 장군을 하북(河北)으로 보내 세력을 확장하려 했다. 종친인 유사(劉賜)는 유수를 보낼 것을 건의하였다. 유현은 유사의 설득으로 유수를 하북으로 보내는 데 동의하였다. 유수는 하북 일대에 이르러 물고기가 물을 만난 듯 가는 곳마다 한나라를 재건하는 자의 신분으로 사람들에게 인심을 사고 대소 관리들을 광범위하게 규합하였으며 죄수들을 석방하였다. 이때부터 유수는 한나라 왕실의 재건이라는 대업을 전개해나갔다. 그는 대부분의 정력을 군사력 보강에 집중하였고 적극적으로 행동하여 마침내 뜻을 이루었다. 이처럼 진정으로 영리한 사람은 큰소리를 치지 않으며 행동으로 보여준다. 행동만이 가치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2장 인간관계의 기술
자신을 버리고 겸허한 태도로 마음을 연다
묵자는 자만하지 말고 겸허하며 다른 사람의 비평을 받아들이고 자기 잘못을 시정해 다른 사람의 장점을 흡수해야만 각 방면의 재능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는 실천에 옮기기 어려운 덕목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자존심과 허영심이 있어 자기의 장점을 중히 여기며 약간의 성과를 거두면 흐뭇해하는 경향이 있다. 또 칭찬은 듣기 좋아하지만, 질책과 비평의 말을 들으면 이를 겸허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생과 인간관계에서 긴 안목을 갖고 뛰어난 재능을 가졌어도 어수룩하게 행동하는 것, 이것이 바로 고대 중국의 유가들이 추구했던 행동방향이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북군의 그랜트 장군은 남군의 리 장군과 맞붙어 전투를 치렀다. 치열한 접전 끝에 남군은 대패했고, 리 장군은 결국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그랜트 장군은 공을 세운 후 겸허하게 말했다. “리 장군은 우리가 존경할 만한 인물입니다. 그는 비록 패전하여 붙잡혔지만 그의 태도는 어느 때보다 침착하였습니다. 우리 같은 난장이는 키가 180cm나 되는 그와 비교할 때 너무나 부족해 보였습니다. 그는 여전히 깨끗하고 정결한 군복을 입고 허리에는 정부에서 상으로 준 귀한 보검을 차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일반 병사들이 입는 군복에 중장의 직함을 대표하는 줄무늬만 한 줄 더 붙이고 있었을 뿐입니다.”
겸손한 그의 말은 자화자찬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무언가 부족한 사람만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허풍을 떨어 자신의 부족함을 감추려 한다. 진정으로 지혜로운 자는 혼자서 허풍 떨고 뽐내지 않는다. 자신의 공적에 대해 다른 사람이 더 분명히 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랜트 장군의 겸손은 찬사를 보낼 만하다. 그런데 리 장군이 패배한 장군의 신분으로서 옷차림을 정결히 하고 당당한 모습을 보인 것은 스스로 자랑스러워서였을까? 물론 아니다. 리 장군은 비록 패배했지만 여전히 치욕을 태연히 참아낼 정도로 용감하였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실패를 치욕으로 삼지 않고 경험으로 삼아 기회가 다시 오면 분전하여 승리를 거두려 했던 것이다. 이러한 리 장군 역시 위대한 군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랜트 장군은 리 장군의 태도를 칭찬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전공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성공과 리 장군의 실패는 우연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번의 승부는 우연한 것이다. 당시 남군은 버지니아에 있었는데 거의 매일 흐리고 비가 와서 진흙탕에서 작전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우리 북군은 가는 곳마다 날씨가 좋아서 행군하기 편리했다. 그리고 수차례에 걸쳐 우리 군대가 지나간 이틀 뒤에 비가 내렸으니, 이게 행운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는 그가 자신을 정확히 알며 시종 명예와 이익에 눈이 멀어 이성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다른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싫어하는 사람일수록 성공이 하찮은 것임을 잘 아는 사람이다.
묵자는 ‘양자강과 황하의 물은 한두 개의 냇물이 모인 것이 아니며, 가죽외투는 여우 한 마리의 털로 된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이처럼 묵자는 양자강과 황하, 그리고 가죽외투를 통해 사람은 겸손해야 함을 설명했다. 오만해서는 안 된다. 겸손이야말로 가장 성실한 태도다. 세상은 크고 넓어 온갖 기이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그 속에서 개인은 아무리 힘이 세다 해도 우주 속의 먼지일 뿐이다.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이 있다고,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은 언제나 존재한다. 주희는 아들에게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일에 겸손해야 하고 기세등등해서는 안 되며 치욕을 자처하지 말라.’ 이는 겸손하면 복을 부르고 오만하면 화를 부른다는 것이다.
소인에게 맞서는 기술과 피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사람은 크게 군자와 소인,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군자는 공명정대하지만 소인은 항상 다른 사람을 놓고 계산만 한다. 소인은 항상 주변의 크고 작은 이익을 살펴 수시로 공짜를 얻으려고 하며 심지어 막무가내로 다른 사람을 음해하는데 도무지 막을 수가 없다.
당나라 때 이림보(李林甫)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당 현종의 간신으로, 속이 좁아 다른 사람이 현종의 총애를 받는 모습을 참지 못했다. 어느 날 현종이 이림보의 수행을 받아 화원을 거닐다가 멀리서 잘생기고 체격이 우람진 무장이 걸어가는 것을 보고 감탄하였다. “저 장수는 정말 잘생겼는데!” 그러면서 이림보에게 그 장수의 이름을 물었다. 이림보는 얼버무리며 모른다고 하였다. 이때 그는 속으로 현종이 그 장수를 총애하게 될까 봐 걱정에 사로잡혔다. 후에 이림보는 사람을 보내 현종의 칭찬을 받은 장수를 먼 곳으로 보내 현종을 만날 기회를 아예 차단했다. 그 장수는 승진할 기회도 놓쳤다.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소인의 행위는 영문을 알 수 없을 정도며, 마음이 좁아 작은 영예와 욕망을 위해 모든 것을 걸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때문에 소인을 대하는 기술을 반드시 익혀야 하며, 설사 그들과 함께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화를 면하려면 그들을 대처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군자의 미움을 살지언정 소인의 미움은 사지 말라고 했다. 군자는 소인과 친구는 되지 않더라도 소인을 대처하고 피할 줄 알아야 한다.
3장 공부의 기술
배움과 생각은 평생 이어지며 발전해야 한다
여러 제후들이 전쟁을 벌이다 보니 춘추전국시대는 ‘예의는 무너지고 음악은 부패해져 천하에 법도가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노장학파는 ‘배움은 무익하다’는 관점을 제기하여 ‘배움을 포기하면 근심이 사라진다. 무지와 무욕만이 사회를 안정화시키고 생명을 부지하는 좋은 방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묵자는 ‘배움은 무익한 것’이라는 사상에 강하게 반대하며 교육과 학습의 작용을 중시하였다. 그는 배움을 비방하는 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배움의 무익함을 알리는 것 자체가 바로 타인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배움은 사람들에게 큰 것(大)과 의로움(義), 그리고 이익(利)을 알려준다고 했다.
묵자 본인도 배움을 중시하여 외교사절로 각 나라를 방문할 때마다 항상 많은 책을 가져가 배움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묵자는 또 타인을 일깨워주는 것을 즐겼다. 그래서 공부를 싫어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적극적으로 인도하여 학습의 중요성을 깨우쳐주었다. 동시에 묵자는 학습의 방법도 매우 중시하였다. 사제지간에는 서로 호흡을 맞추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효과를 거둘 수 없다고 하였다.
어떤 일에 종사할 때 필요한 것은 패기 외에 재충전과 학습에 대한 사고이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망연하게 되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해이해진다.’ 책의 지식은 기초일 뿐이며, 이해력으로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야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재충전하지 않으면 금세 자신의 밑바닥이 드러나고 만다. 성공하려면 많은 책을 읽어라! 현재 진행하는 일이 순조롭다고 하여 방심하고 매일 허송세월한다면 지금의 편안함을 오래 지속하지 못할 것이다. 반면 지금 하는 일을 평생직업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고, 끊임없이 재충전하며 새것을 창조한다면 진보는 끝이 없을 것이다.
생각하는 힘에 따라 행동도 달라진다
묵자는 성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할 세 가지 수양법을 언급했는데 첫째는 사고할 수 있어야 하고, 둘째는 말을 하면 사람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하며, 셋째는 행동을 하면 의리에 부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중에서 묵자는 ‘사고’를 제일 처음으로 꼽았다. ‘행동은 사고에 의해 이루어지고 맹종에 의해 훼손된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인간의 행동이 모두 사유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말해 준다. 사유는 비록 무형, 무미, 무색으로 존재하지만 인간을 위험과 재난에서 구해낼 수 있다.
문제해결 방법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은 결단을 내리지 못해 많은 문제에 봉착한다. 반면 정확한 사고가 거대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구상과 계획은 모두 사고에서 온다. 사고의 과정이 고통스러울수록 얻는 이득은 더욱 크다.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부지런히 사고하는 습관을 키웠고, 문제점을 쉽게 파악하고 해결하여 그것이 인생의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했다.
다음의 두 가지 예를 살펴보자.
한 젊은이가 산에서 독사에게 발을 물렸다. 그러나 병원까지 가려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이었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칼로 상처 입은 발가락을 자른 후 아픔을 참고 간신히 병원을 찾아갔다. 비록 발가락 하나를 잃었지만, 그는 일시적인 고통을 참은 덕분에 자신의 생명을 구했다.
한 친구가 식당에서 임시직원 모집에 응하였다. 주인은 사람이 가득 찬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다가 손으로 받쳐 든 쟁반이 흔들려 곧 떨어질 것 같으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었다. 많은 응모자들이 질문과 상관없는 대답을 하였으나 이 친구는 주위에 손님들이 앉아 있다면 전력을 다해 쟁반을 자신 쪽으로 떨어지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결과 이 친구는 직원으로 채용되었다.
이 두 가지 예는 생각의 힘을 말해주고 있다. 젊은이는 고통을 참고 결단성 있게 발가락 하나를 버림으로써 귀중한 생명을 구하였고, 종업원은 쟁반을 자기 쪽으로 쓰러지게 함으로써 고객을 보호하겠다고 답했다. 그들은 문제가 생겼을 때 모두 신속히 사고하며 사고를 통해 사물의 경중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정확한 행동을 취했다. 정확한 사고는 흔히 취사선택에 달려 있다. 이렇게 할 수도 있고 저렇게 할 수도 있는 일은 당사자의 사고력에 의해 결정된다. 모든 계획과 목표, 성과는 모두 사고의 산물이다. 정확한 사고 없이는 낡은 습관을 극복할 수 없고, 정확한 사고방법을 배우지 않으면 좌절을 막을 수 없다. 정확하게 사고하는 자의 머릿속에는 언제나 물음표가 있다. 모든 사안에 의문을 달고, 타인의 우세를 파악하는 동시에 자신의 열세를 보완하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열세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확히 사고하는 자는 자기 정서의 주도자가 되지 노예가 되지 않는다.
4장 삶의 기술 - 겸애
겸애는 세 가지 모습으로 표현된다
겸애는 타인에 대한 평등한 사랑이며, 혈연과 계급을 떠난 평등한 박애사상으로서 누구에게나 똑같다. 때문에 겸애는 층차의 구별이 없다. 여기서 말하는 층차는 사랑의 범위로만 구별할 수 있기에 더욱 심층적이고 심각한 의미에서의 ‘겸애’를 만들어낸다.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고 자신의 생활환경을 조화롭고 따뜻하게 하는 것이 겸애의 첫 번째 층차다. 당신과 관계가 없는 일과 사람들에 대해 관심을 돌려보자.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꺼이 도움을 주자. 이것이 겸애의 두 번째 층차다.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들은 자기가 속한 민족과 국가뿐만 아니라, 같은 지구에 살고 있는 여러 종족과 각 나라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은 국내외에서 발생한 사건들에 대해 바로 이웃에서 생긴 일처럼 깊은 관심을 보인다. 이것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세 번째 층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