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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원영 스님 지음 | 불광출판사


부처님과 제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원영 스님 지음

불광출판사 / 2011년 3월 / 255쪽 / 12,800원



출가



출가, 새로운 길


역경을 극복하기보다 순경을 벗어버리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은 출가 수행자라면 누구나 절실히 느끼는 바이다. 부처님께서도 그러셨다. 29세가 될 때까지 부왕이 지어 준 멋진 궁전에서 안락한 생활을 했다. 물론 태어나자마자 7일 만에 어머니를 잃은 탓인지, 성격상 감수성이 예민하고, 평소 고요히 사색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로웠던 생활도, 비범한 재능을 발휘한 학문이나 무예도, 언제까지나 태자를 만족시키지는 못했다. 부족함 없는 왕궁 생활에 마음을 빼앗기기보다는 인간이나 세상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태자는 더 깊은 사색에 잠기곤 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늙고 병들어 죽는 인간들의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게 된다.

결국, 그러한 생로병사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인간의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찾는 새로운 길이 있음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사랑하는 아내가 아기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한때 괴로워도 했지만, 사랑하는 이들이 잠시 장애는 되었을지 몰라도 출가를 방해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되지 못했던 것이다. 풍요로움과 사랑하는 이들이라고 하는 순경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면, 태자의 출가는 결코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순경을 벗어던진 그의 출가를 일러 우리는 '위대한 포기'라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위대한 포기가 어디 부처님 한 사람의 출가뿐이겠는가. 2,600년이라고 하는 세월의 벽을 허물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국 불교의 출가 수행자들도 집을 나서며 머리를 깎고 출가의 길로 들어설 때는 누구라도 이를 악물고 저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삶의 든든한 울타리인 부모형제가 있었을 것이고, 사랑하는 이가 있었을 것이고, 부와 명예가 있었을 것이다. 아무도 가진 것이 없는 이라 할지라도, 가슴 한구석 바윗돌처럼 묵직하게 걸려서 쉬이 넘기지 못하는 그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어떤 형태, 그 무엇이 되었던지 간에 말이다. 이렇듯 이 시대의 출가 수행자도 부처님 당시와 전혀 다름없는 심적 고통을 자신의 몫으로 받아들이며, 눈을 높이 들어 자신을 찾아 떠나는 것이다.

수계, 부처님 법대로 살기

세상에는 윤리적 측면을 보다 귀중한 삶의 가치로 여겨, 이타적 삶을 잘사는 삶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이들이 종교인들이다. 종교인들은 종교의 가르침에 감화를 받아 대의를 위해 소아를 버리고, 희생과 고난의 길을 마다치 않는다. 그들은 잘사는 삶에 대한 보편적인 관념을 송두리째 벗어던지고 '출가'라고 하는 새로운 삶의 형태를 택하여 묵묵히 걸어간다. 얻으면서도 잃는 사람이 있다면, 종교인들은 희생을 통해 많은 것을 잃으면서도 얻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불교의 출가 수행자들은 안락한 삶을 버리고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찾아 떠난다고 하는, '출가'라고 하는 행위를 통해 자유로운 삶을 얻게 된다.

출가한 스님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불제자로 살겠다는 서약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는 '수계'라고 한다. 어린 나이에 일찍 승가에 들어왔을 경우에는, 일단 사미계를 수지했다가 만 20세가 되었을 때 구족계를 받고 정식 비구가 된다. 사미의 원어는 사마네라samanera, 사미니는 사마네리samaneri라고 한다. 이 말은 사문samana과 같이 '일하다, 노력하다'라는 의미에서 생긴 단어로 중국에 와서 근책勤策, 식자息慈, 근식勤息이라고 번역되었다.

일반적으로 출가를 목적으로 승가에 들어가게 되면, 제일 먼저 은사 스님인 화상을 정하고 수계를 받아야 한다. 그 첫 단계가 위에서 말한 사미계이다. 물론 20세가 넘어서 출가하게 되면 사미계와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한 자리에서 받게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사미계를 받고 20세가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구족계를 받아야 한다. 한편, 여성의 경우에는 사미니계를 받고도 구족계를 받기 전에 '식차마나니式叉摩羅尼'라고 하는 중간 수계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식차마나니계는 수계자의 임신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제정된 것이라고 한다.

화상, 나를 일깨운 은사 스님

갓 출가한 수행자에게는 자신을 돌봐주고 지도해 줄 스승이 필요하다. 출가자를 받아들여 책임지는 이가 바로 은사 스님, 곧 화상이다. 부처님 상황을 얘기하자면, 출가를 희망하는 자는 출가 의식을 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지도해 줄 화상을 정해 두지 않으면 안 된다. 물론 지금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그렇게 은사 스님이 정해지면 그 앞에서 삭발하고, 삼의일발을 든 채 삼귀의를 송한다. 그러면 화상은 출가자를 제자로 받아들일 것을 승인하게 된다. 여기까지가 본래 행해지던 사미 출가의식의 절차다. 이로써 은사 스님과 제자 사이에는 특별한 사제 관계가 성립되는 것이다.

구족계를 받아 비구가 된 뒤에도 출가자는 최하 5년 동안은 은사 스님 밑에서 지도를 받아야만 한다. 그것을 '의지생활'이라고 하는데, 5년간의 의지생활 중에도 사제관계는 사미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구가 되었어도 제자는 은사 스님의 시봉을 해야 하며, 은사 스님은 제자에게 불교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더 폭넓게 가르칠 의무가 있다. 그러나 제자라고 해서 반드시 스승의 명령에 복종만 하는 것은 아니다. 화상이 잘못하면 그것을 바로잡아 줘야 한다. 은사 스님이 율에 어긋난 행동을 했는데, 자기 은사라고 해서 그것을 은폐하면 안 된다. 은사 스님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승가, 좋은 벗들의 모임

우리나라 스님들은 어디를 가든 본사와 문중, 은사 스님을 포함하여 자기소개를 하고 예를 갖추는 전통이 있다. "저의 본사는 해인사이고, 거주사찰은 사이며, 은사 스님은 스님이십니다." 이렇게 자기소개를 하고 나면, 다들 믿음직스러우신가 보다. 여기에 더해 승가대학은 어디 출신인지, 선원은 어디를 다녔고, 공부는 어디서 했는지까지 말하면 기본적인 대화는 그걸로 충실하다고 할 수 있다. 신분증명이 명확하게 끝난 셈이니까. 이것은 물론 스님들끼리 만났을 때의 인사법에 해당된다. 말하자면 일반인들이 국적이나 고향, 부모님에 대해 밝히는 바와 같은 이치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불교에는 이것 말고도 아주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추가된다. '대한불교조계종'이라고 하는 종단 개념이 그것이다. 그 옛날, 중국 불교에서는 특정 분야를 연구하고 발전시킨 종파 불교가 형성되었다. 한국 불교는 그러한 중국 불교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지만, 지금 현재의 한국 불교, 특히 조계종의 경우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통불교적 성격을 띠어 왔다. 교학, 율학, 염불, 참선 할 것 없이 모든 수행법이 조계종이라고 하는 종단 안에서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승가 개념은 종단이라고 하는 또 하나의 승가 개념을 정립시켜 승가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수행



탁발, 따뜻한 만남


부처님의 하루는 어떠했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시자인 아난이 부처님을 찾아와 아침문안을 드리는 것으로부터 일과가 시작되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중아함경』 제48권의 기록에 의하면, 초기승가의 비구들은 걸식에 의존하여 생활하였다. 그러므로 부처님과 제자들은 동이 터오면 옷을 입고 발우를 가지고 마을에 들어가 걸식을 한다. 그리고 걸식할 때에는 몸을 잘 수호하고 모든 감각기관을 잘 제어해야 하며, 걸식을 마친 후에는 옷과 발우를 거두어 들고 손과 발을 씻고 좌구(坐具, 방석)를 가지고 한적한 곳으로 향했다고 한다. 이렇듯 부처님과 제자들은 매일 아침 탁발을 도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하였다.

탁발托鉢은 발우를 들고 걸식乞食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것은 불교 이전부터 인도사회에서 행해오던 출가사문의 생활수단이었다. 율 규칙에 의하면, 불교의 출가자는 다른 사람이 발우 속에 넣어주는 것만을 먹도록 되어 있다. 자기 마음대로 입에 넣을 수 있게 허락된 것은 양치할 때 사용되는 물과 칫솔뿐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출가자들은 일반인들이 발우 속에 넣어 주는 음식물에만 전적으로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절대규칙이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수행자에게 탁발을 생활수단으로 삼을 것을 규정한 것은 수행자들이 상업 활동은 물론이요, 그 어떤 생산 활동에도 종사할 수 없기 때문에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생긴 규정이다.

법문, 마음을 적시는 감로수

부처님은 출가제자들을 전도하러 떠나보냄으로서 자신이 밝힌 진리를 세상에 널리 알리고자 했다. 경전들을 살펴보면, 부처님은 출가제자들로 이루어진 승가공동체를 구성하고, 그들로 하여금 불교의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게 하기 위해 설법하는 태도까지도 신경 써서 가르치셨는데, 특히 중생의 성품에 맞는 설법이 이루어지도록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탐욕이 많은 이에게는 베풀기를 권하고, 생활에 절제가 없어 흐트러져 있는 이에게는 계율을 잘 지키도록 권한다. 화를 잘 내는 이에게는 인욕을, 게으른 이에게는 정진을, 마음이 흐트러지기 쉬운 이에게는 선정을, 어리석은 이에게는 지혜를 권하며, 남을 해치는 이에게는 연민의 마음을, 마음에 근심이 있는 이에게는 기쁨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애증의 갈등이 있는 이에게는 버리기를 권했다.

법문의 힘은 위대하다. 열심히 달리다 보면 갈증이 나는 법. 이때 물을 마시지 않으면 자칫 탈수현상 때문에 위험해질 수 있다. 수행도 그와 같다. 열심히 정진하다 보면 슬럼프에 빠지기도 하고, 혼란스러워지기도 한다. 그럴 때 듣는 감로수와 같은 법문이야말로 바로 생각의 흐름을 바꾸어 주는 좋은 처방이 되는 것이다.

수행, 일상의 마음집중

부처님 생존 당시 인도 사회에서는 인생을 네 가지 시기로 분류했다. 첫째는 학생기學生期이다. 학생기는 어린 시절에 스승을 찾아가 바라문교의 성전인 『베다』를 배우는 시기를 말한다. 이 기간에는 순결하게 수행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겨, 성적 순결을 지킴과 동시에 살생이나 음주 등이 금지되어 있다. 둘째는 가주기家住期이다. 이때는 학생기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 머물며 결혼을 한다. 즉 가정을 꾸려 평범하게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시기를 말한다. 셋째는 임주기林住期이다. 이때는 집에 머물며 생활하던 가주기에 아이가 태어나 어른으로 성장하게 되면, 가산을 물려주고 숲으로 들어가 종교생활을 하게 되는 시기를 말한다. 넷째는 유행기遊行期이다. 이때는 모든 집착을 떨쳐버리고 집도 없고, 자신의 소유물이라고 할 만한 것 없이 홀가분하게 사는 시기를 말한다. 숲으로 들어갈 때에는 머리와 수염을 단정히 깎고, 발우와 지팡이를 들고 걸식하며 철저히 무소유의 삶으로 생을 마감한다.

부처님 생존 당시의 수행이 마음집중을 수행의 주된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다 해도, 지금 우리의 환경이나 현실과는 매우 다르다. 마음집중의 수행 방법만으로는 이 시대가 요구하는 수행자, 종교인의 역할을 담아낼 수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수행자라면 이 시대, 이 사회를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시대와 사회를 벗어나서 이루어지는 나 혼자만의 수행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으므로,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수행이라면 곧 다른 이의 삶도 변화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생활



가사, 스님의 상징


본래 스님들은 원칙적으로 삼의일발三衣一鉢을 지니도록 되어있다. 즉, 세 종류의 옷과 발우, 이것만이 소유물이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스님의 생활도 시대의 흐름과 맞물려 변하고 또 변한다. 그 변화가 너무도 선명하여 일일이 드러내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만큼 심한 것이 사실이다. 인도 스님들이 입었던 가사는 떨어진 천을 주워와 손수 기워 만든 옷이다. 처음에는 시체를 싸던 옷을 주워서 옷을 만들어 입었다. 또는 버려진 옷을 주워서 손질하여 괴색으로 물들어 입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즉 세속적인 욕심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소재로 옷을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스님들이 입던 옷을 가리켜 '분소의糞掃衣'라고 하는 것이다.

출가 당시 나는 '가사는 평생 빨지 않는 것'이라고 배웠다. 실제로 나는 가사를 한 번도 빤 적이 없으며, 가사를 빠는 스님을 별로 본 적도 없다. 은사 스님께 여쭈니 점안을 해서 그렇다고 한다. 불상도 개금불사를 하면 새로 점안하듯이, 가사를 빨면 점안을 다시 해야 한다는 말씀이시다. 하지만 부처님은 가사를 깨끗이 빨아 정갈하게 입으라고 했다. 그런데 왜 지금은 빨지 말라고 하는지, 나는 오히려 은사 스님의 말씀이 잘못된 정보에 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여쭈어 보고 말씀하시는 것을 잘 새겨들어 보니, 그만큼 가사를 귀히 여겨야 한다는 것으로 요점정리가 되었다. 부처님의 법을 상징하는 가사를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겨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 듯 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의四依, 수행자의 삶

인도 스님들의 기본적 생활방침은 '분소의, 걸식, 수하주, 진기약'의 네 가지이다. 이것을 사의四依라고 부른다. 분소의糞掃衣는 버려진 천을 모아 꿰매서 만든 옷을 말하는데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이 분소의를 입도록 지시했다. 단, 재가신도가 새 옷감을 보시했을 때에는 받아서 써도 된다. 걸식乞食은 탁발해서 얻은 음식만으로 생활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단, 공양을 청하는 이가 있을 경우에는 예외다. 사회로부터 제공하는 음식은 어떤 형태든 상관없다는 방침이다. 수하주樹下住는 나무 아래에서 생활한다는 원칙을 말한다. 또한 걸식에서처럼 신도로부터 건축물을 제공받았을 경우에는 건물 안에서 생활해도 된다. 진기약陳棄藥은 소의 배설물로 만든 출가자의 약을 말한다. 진기약이란 부패한 소의 소변을 끓인 것으로 맛은 매우 쓰지만 복통 등에 유용하게 쓰이는 약이라고 한다. 그러나 일반신도의 공양으로 건강을 회복할 수 있는 약을 받았다면 그것은 기꺼이 써도 된다.

불교의 수행은 욕망의 제어를 바탕으로 한다. 신체를 괴롭히는 고행도 잘못된 수행이요, 부의 축적으로 보일 만큼 지나친 풍족함도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와 같이 승가는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이 어디까지나 최소한의 생필품에 만족해했다. 그리고 지극히 간소한 생활을 원칙으로 하되, 스님들의 의식주와 관련해 보시 받은 것들을 유용하게 쓰는 것을 더 중시했다. 또한 승가는 기본적으로 단체생활을 하기 때문에 위생에도 세심하게 신경 써서 대중이 함께 이용하는 설비나 목욕시설 등을 잘 관리하도록 했다. 그러나 아무리 간소하게 산다고 해서 세월이 흐름에 따라 화폐 경제의 발달이 수반한 변화는 막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수행에 필요한 최저생활을 원칙으로 한다던 승가원칙은 이미 명분에 불과하여 본뜻이 퇴색되어버린 지 오래되었던 것이다.

도반道伴, 성스러운 이 길의 전부

인디언 말에 의하면, 이 '친구'라는 단어에는 '내 슬픔을 자기 등에 메고 가는 자'라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그만큼 나의 아픔과 고민을 함께 나누고, 어려울 때 서로 도와주는 것이 바로 친구요, 벗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친구가 없는 삶이란 생각조차 하기 싫을 만큼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그러다가 스님이 되고 나니 도반道伴이라고 하는 생소한 개념이 생겼다. 스님들은 모두 혈연관계를 벗어난 출가자들이다. 그래서 출생과 성장 과정도 모두 다르다. 그런 인간과 인간의 결합이 승가를 이루고 있는데, 도반이란 바로 이러한 승가 속으로 오직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한 길을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는 사람들을 말한다. 좋은 벗들의 모임을 일컫는 승가의 특성이 여실히 드러나는 것이다.

도반 없이 어떻게 한평생 홀로 가는 이 길을 걸어갈 수 있을까하고 생각할 때도 있다. 확실히 도반은 친구라는 개념보다 훨씬 깊고 넓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머리 깎은 이들만의 뚜렷한 동지애가 가슴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구도의 길 위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런 도반은 말 한 마디는 날카로운 칼이 되기도 하고, 솜처럼 부드럽고 따뜻하게 나를 감싸기도 한다. 도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나를 성숙시키고, 긍정의 씨앗을 뿌려 물을 주고 꽃을 피운다는 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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