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서 배우는 마음 경영
홍상훈 지음 | 새빛에듀넷
한시에서 배우는 마음 경영
홍상훈 지음
새빛에듀넷 / 2010년 10월 / 226쪽 / 13,000원
제1장 어렵구나, 인생길 - 현실을 수용하는 방법 장진주(將進酒)
君不見黃河之水天上來 그대 보이는가.
군불견황하지수천상래 황하의 물이 하늘에서 내려와
奔流到海不復回 바다로 치달려 다시 돌아오지 못함을?
분류도해불부회
君不見高當明鏡悲白髮 그대 보이는가.
군불견고당명경비백발 화려한 집 거울에 비친 슬픈 백발을?
朝如靑絲暮成雪 아침엔 푸르고 싱싱하더니
조여청사모성실 저녁엔 눈처럼 변했구나.
人生得意須盡歡 사람이 태어나 뜻을 얻으면
인생득의수진환 즐거움을 다 누려야 하나니
莫使金樽空對月 금 술잔으로 하여금
막사금준공대월 덧없이 달만 쳐다보게 하지 말지라.
天生我材必有用 하늘이 내 재능을 낳은 건
천생아재필유용 분명 쓸모가 있기 때문이고
天金散盡還復來 많은 재물은 다 써버려도
천금산진환복래 다시 돌아오기 마련이니
烹羊宰牛且爲樂 양 삶고 소 잡아 즐거움을 누려보세.
팽양재우차위락
會須一飮三百杯 한 번 마시면 모름지기 삼백 잔은 마셔야지.
회수일음삼백배
夫子 잠훈( 勛)선생
잠부자
丹丘生 내 벗 원단구(元丹丘)여
단구생
將進酒 술 마시세.
장진주
杯莫停 잔을 멈추지 말고!
배막정
與君歌一曲 그대들에게 노래 한 곡 들려줄 테니
여군가일곡
請君爲我側耳聽 귀 기울여 들어주시게.
청군위아측이청
鍾鼓饌玉不足貴 화려한 악기 훌륭한 음식도 귀하다고 할 수 없고
종고찬옥부족귀
但願長醉不願醒 그저 바라기는 오래도록 취해
단원장취불원성 깨어나지 않았으면!
古來聖賢皆寂寞 예로부터 성현들은 모두 적막해졌지만
고래성현개적막
惟有飮者留其名 오직 술 마신 사람만이 그 이름 남겼다네.
유유음자류기명
陳王昔時宴平樂 진왕이 옛날 평락궁에서 잔치 열 때는
진왕석시연평락
斗酒十千恣歡謔 한 말에 만 냥이나 되는 술 마음껏 마셨다네.
두주십천자환학
主人何爲言少錢 주인은 어이해 돈이 적다 말하는가?
주인하위언소전
徑須沽取對君酌 어서 술 사와서 마주 앉아 마셔보세.
경수고취대군작
五花馬 천하의 명마(名馬)도
오화마
千金 최고급 여우털 옷도
천금구
呼兒將出換美酒 하인더러 갖고 나가 좋은 술로 바꿔오라 하시게.
호아장출환미주
與爾同銷萬古愁 그대와 더불어 만고의 시름을 녹여버리겠네.
여이동소만고수
술로 슬픔을 건너는 날도 있다네
술로 시름을 씻는다는 것은 술꾼들의 빤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술 자체는 아니더라도 술자리가 시름과 피로를 씻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시는 이백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장진주(將進酒)」다. 원래 이 제목은 옛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군대가 제단(祭壇) 앞에서 술을 올리며 불렀던 노래라고 하는데, 훗날 한나라의 민요인 '악부(樂府)'의 가락 하나가 되었다. 제목의 글자 가운데 '장(將)'은 뜻이 없는 발어사(發語詞)이므로, 제목은 '술은 바친다' 또는 '술을 마시자'라는 뜻이다. 이처럼 옛 '악부'의 제목과 가락에 맞춰 후세에 지은 시를 '악부고시(樂府古詩)'라고 한다.
이 시는 이백이 장안에서 쫓겨난 지 7년째 되던 해인 752년에 지은 것이다. 안녹산(安祿山)의 반란을 3년 앞둔 어수선한 상황에서 그는 조정에서 뜻을 펼칠 기회를 잃고 실의하여, 세상을 떠돌며 도사들과 어울려 술로 시름을 달랬다. 그나마 그의 시적 재능을 알아주는 이들의 도움으로 하루하루 숙식을 해결할 순 있었지만, 삶에 대한 회의는 나날이 심장을 갉아먹었을 것이다. 그런 절망의 상황에서 그는 술을 통해 잠시나마 인생을 초탈하는 여유를 갖게 된다. 부귀공명이란 덧없는 것이지만 하늘이 나를 낳았으니 어딘가 쓸모가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느긋하게 다시 때를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인생사 새옹지마이니 덧없는 재물에 연연하지 말고 이 순간의 술자리에 온 힘을 다하자는 그의 자포자기적인 부추김은, 반어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천재적인 재능을 타고났지만 형 조비(曹丕)의 억압에 목숨을 위협받아 술과 노래로 음울한 나날을 보내야 했던 조식(曺植)을 거론한 것은 결국 자신을 빗댄 셈이다. 그래서 그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정치의 잘잘못과 같은 위험한 주제로 화를 자초하기보다, 아주 오랜 옛날부터 인간이 갖고 있던 시름(萬古愁) 즉, 이별이나 죽음 같은 숙명적인 불행에 대한 시름을 술로 씻자고 권유했던 것이다.
슬픔은 주위를 돌아보게 한다. 나를 슬프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해결책을 찾으려 하는 것은 일종의 본능이기 때문이다. 슬픔에 침잠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일종의 감정을 정화하는 행위이고 자신을 추스르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것은 술이나 외부의 다른 어떤 것이 아니라 슬픔으로만 씻을 수 있다. 다만 지나친 슬픔은 육신을 시들게 하기 때문에 잠시나마 휴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술은 슬픔의 휴식을 위한 하나의 방법에 불과하다. 결국, 술잔 앞에서 내가 추구하는 것은 인위적인 망각이 아니라 슬픈 나를 돌아보고 더욱 사랑하게 되어 '현재'의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술이란 강을 건너기 위해 잠시 이용하는 뗏목이다. 당연히 강을 건너고 나면 그 뗏목을 버려야 한다.
행로난(行路難)
金樽淸酒斗十千 금 술잔의 맑은 술은 한 말에 만 냥이고
금준청주두십천
玉盤珍羞直萬錢 옥쟁반의 진수성찬은 하나에 만 전이나 되지만
옥반진수치만전
停杯投 不能食 술잔 내려놓고 젓가락 던진 채 먹을 수 없어
정배투저불능식
拔劍四顧心茫然 칼 뽑아들고 사방 둘러보니 마음이 아득하구나.
발검사고심망언
欲渡黃河 塞川 황하를 건너려 해도 얼음이 개울을 막았고
용도황하빙색천
將登太行雪滿山 태행산에 오르자니 온 산에 눈이 가득하네.
장등태행설만산
閑來垂釣碧溪上 하릴없이 푸른 계곡에서 낚싯대 드리우고 있다가
한래수조벽계상
忽復乘舟夢日邊 문득 다시 배에 올라 해 옆에 노니는 꿈을 꾸노라.홀부승주몽일변
行路難, 行路難 길 가기 힘들구나, 너무 힘들어!
행로난, 행로난
多 路, 今安在 갈림길 너무 많으니 지금은 어디쯤인가?
다기로, 금안재
長風破浪會有時 언젠가는 유장한 바람에 물결 가를 날 있을 테니
장풍파랑회유시
直 雲帆濟滄海 높다란 돛 곧추세우고 드넓은 바다를 건너리라!
직괘운범제창해
어렵구나, 인생길!
시는 당나라때 이백(李白)이 쓴 「행로난(行路難)」으로써 전체 3수의 연작시 가운데 첫 번째 작품이다. 「행로난」이라는 제목은 원래 한나라 때 악부(樂府)에서 수집한 민간 가요 가운데 하나인데, 대개 나그네의 여행길에서 겪는 고난과 관련된 내용을 노래한 것이 많다. 이백의 이 시는 744년에 그가 참소를 당해 장안을 떠나야 했을 때에 쓴 것으로 알려졌다.
지인들이 베풀어준 전별연(餞別宴)의 금 술잔에 담긴 고급술도, 옥쟁반에 담긴 진수성찬도 참소를 당해 떠나야 하는 이백의 입맛을 당기지 못한다. 울분에 차 칼을 뽑아들고 사방을 돌아봐도 마음은 망연자실하고, 무슨 일을 하려 해도 온통 장애물 때문에 뜻대로 되지 않는다. 하릴없이 낚싯대 드리우고 해 옆을 노니는 꿈을 꾸는 것은 후에 나올 맹호연의 시와 비슷한 의미다. 중국 시에서 해나 달은 종종 군주를 암시하는 경우가 많다. 이것은 아주 옛날 하(夏)나라 말엽의 이지[伊摯, 흔히 이윤(伊尹)이라고 함]가 은(殷)나라 탕(湯)임금의 재상이 되기 전에 배를 타고 하늘에 올라 해와 달 주위를 노니는 꿈을 꾸었다고 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니 인생살이 정말 어렵다는 탄식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다. 원치 않는 갈림길로 들어서 떠돌아야 하는 일 없이 반듯한 큰길로만 수레 타고 지나는 삶은 왕후장상(王侯將相)의 후손이라 할지라도 누리기 어려운 행운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고난의 출발점에 이은 이백은 언젠가 찾아올 순조로운 삶, 자신의 기개를 마음껏 떨치는 삶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삶에 속아 매 순간이 힘겹고 슬플 때는 차라리 눈물의 맛을 음미하며 세계와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눈물이 마를 때쯤 이성복(李晟馥)시인의 「상류를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 떼처럼」을 떠올려보자.
슬픔이 끝나지 않고 슬픔이라면
그는 또 물속의 풀잎처럼 살 것이다.
오후의 햇빛은 흐르는 물을 푸른 풀밭으로 바꾸고
흐름이 끝나는 데서 물은 머무는 그림자를 버린다.
상류로 거슬러 오르는 물고기 떼처럼
그는 그의 몸짓이 슬픔을 넘어서려는 것을 안다.
모든 몸부림이 빛나는 靜止(정지)를 이루기 위한 것임을.
흐름을 거슬러 오르기 위해서는 흐름을 이해하고 결을 찾아 낼 줄 알아야 한다. 그 결을 고상한 용어로 말하자면 '도리(道理)' 또는 '이치(理致)'다. 여기에 들어 있는 '理'라는 글자는 원래 옥돌의 결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옥을 다듬기 위해서는 돌의 결은 찾아 거기에 맞춰 정을 대고 때려서 깎아내야지, 결을 거스르면 원석 자체가 깨져버린다. 세상은 평온하게 잘 돌아가는데 나만 혼자 흐름을 타지 못한다고 느낄 때는, 흐름의 결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대해서도 한 번쯤 반성해볼 필요가 있다.
제2장 들끓는 감정을 녹이는 법 - 자기 성찰에 답이 있다.
늙은 어부(漁翁)
漁翁夜傍西岩宿 늙은 어부 밤이 되자 서산 벼랑가에서 자고
어옹야방서암숙
曉汲淸湘燃楚竹 새벽엔 맑은 상수(湘水) 물 길어
효급청상연초죽 초나라 대나무를 때서 밥을 짓는다.
烟銷日出不見人 안개 사라지고 해가 떴는데 사람은 보이지 않고
연소일출불견인
乃一聲山水錄 어기여차 노 젓는 소리 속에
애내일성산수록 산과 강물은 푸르기만 하다.
回看天際下中流 돌아보니 멀리 하늘 가장자리의 중류로 내려가 있고
회간천제하중류 내려가 있고
岩上無心雲相逐 벼랑 위엔 무심히 구름만 쫓아간다.
들끓는 감정을 녹이는 법
시름을 안고 여행길에 나서거나 기분전환을 위해 산책을 할 때면, 흐트러진 심사와는 달리 평화롭기 그지없는 주위 풍경에 심한 부조화를 느끼게 된다. 세상은 내 시름과 상관없이 제 나름의 법칙에 충실하게 흘러가고, 그걸 느낄수록 소외감은 더욱 커진다.
당나라 때의 유종원(柳宗元)이 쓴 「늙은 어부(漁翁)」는 그의 마음속 풍경을 모른다면 오해하기에 딱 좋은 시다. 강가 벼랑에 배를 대고 하룻밤을 묵어간 늙은 어부의 모습은 자연에 어울려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그리고 자신의 노동만큼 물고기를 잡아 흥겹게 살아가는 평화로운 삶을 부러우리만치 잘 보여준다. 그가 하룻밤을 묵어간 자취는 푸른 산과 강물 속에 잠시 흔적을 남겼다가 강물을 따라 떠나버린 어부 자신처럼 세월 속에서 사라져버릴 것이다. 그러나 인간 존재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성찰하는 시를 지어낸 유종의 속내에는 사실 어두운 번뇌가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시는 전체가 세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두 구절은 밤부터 새벽까지의 풍경이다. 밤에 벼랑가에 배를 댄 후 묵을 곳을 정하고, 새벽같이 일어나 물을 긷고 대나무를 때서 밥을 하는 어부의 바쁜 행동 속에 산골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림처럼 투영시키고 있다. 단 두 구절의 묘사 속에 시간과 공간이 맑고 생동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중간의 두 구절은 작품 전체의 정화가 담겨 있다. 날이 밝고, 어부의 모습을 감춘 채, 어기여차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 새 푸른 산수풍경이 눈에 들어오는 묘사가 대단히 속도감 있고 생생하다. 아울러 이 두 구절은 사물의 존재가 시공간의 완벽한 결합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함축해서 보여준다. 그래서 소식(蘇軾)은 이 시가 "일상적 관점을 뒤집어 도리와 융합시킴(反常合道)"으로써 특이한 맛(奇趣)을 이뤄냈다고 극찬했던 것이다.
사실 이 시가 단순한 풍경 묘사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면 마지막 두 구절은 일종의 사족(蛇足)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이 구절이야말로 이 시를 썼을 당시 유종원의 심경을 확실히 말해준다. 이 시를 지을 무렵 그는 자발적으로 산수 속에 은거한 것이 아니라 내쫓긴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마음속에는 슬픔과 분노, 좌절과 상실감이 어지럽게 뒤엉켜 있었다.
당나라 헌종(憲宗)이 황제 자리에 있던 806년, 유종원은 역사에서 '영정혁신(永貞革新)'이라고 부르는 정치 개혁에 참여했다가 실패한 후 영주(永州)땅의 말단 지방관으로 폄적(貶謫)되었다. 영주는 당시에도 수도 장안에서 한참 떨어진 외딴 시골이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다른 중국 도시들보다 뒤떨어진 곳이다. 당시 그는 타향의 아름다운 산수풍경에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실어, 유명한 『영주팔기(永州八記)』라는 산문과 더불어 많은 시를 지었는데, 이 작품 또한 그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담담함 풍경 묘사는 오히려 들끓는 그의 가슴속 풍경을 반어적으로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강 중류로 떠나 있는 늙은 어부는 다름 아니라 역사와 인생의 흐름 중간에 떠내려간 유종원 자신이며, 벼랑 위의 무심한 구름은 그런 자신을 냉정히 관조하는 대자연을 대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