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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자, 날자 한국인

이어령 지음 | 푸른숲
이어령 지음

푸른숲 / 2009년 1월 / 150쪽 / 9,500원

신화 속에 새겨진 우리 얼굴




단군 신화의 수수께끼

너는 한민족의 맨 처음 조상인 단군에 관한 신화를 들어 알고 있을 거야. 그런데 이 이야기 속에는 어떤 뜻이 숨어 있을까? 자, 이제 단군 신화를 찬찬히 들여다보면서 함께 생각해 보자. 사람이 되고 싶었던 곰과 호랑이가 하느님의 아들 환웅을 찾아가서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환웅은 캄캄한 굴속에서 마늘과 쑥만 먹으며 백 일 동안 참고 견디면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대. 곰과 호랑이는 환웅이 시킨 대로 하기 시작했는데, 호랑이 녀석은 참을성이 없어서 며칠 못 견디고 동굴 밖으로 뛰쳐나가 버렸지만, 곰은 백 일 동안 꼼짝도 하지 않고 마늘과 쑥만 먹으며 참고 견뎌 냈대. 드디어 사람이 된 웅녀는 자기를 사람으로 만들어 준 하느님의 아들 환웅과 결혼까지 했고, 그들의 아들이 바로 단군이라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오랜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왔단다. 이렇게 단군신화처럼 한 민족 사이에서 오랜 세월 동안 전해 내려온 신성한 이야기를 신화라고 해.



참고로 신화에는 상상으로 꾸며 낸 이야기들이 많지만 신화를 전부 가짜라고 말할 수는 없고, 신화에는 인간의 진실한 마음이 담겨 있어서 실제 일어난 이야기보다 더 우리들 가슴에 와 닿아. 참고 견뎌서 사람이 된 곰과 그렇지 못한 호랑이 이야기. 그건 바로 우리의 이야기야. 사실 너도 어렸을 때에는 짐승과 다를 게 없었어. 배가 고프면 울음을 터뜨리고, 하고 싶은 걸 못하게 하면 심술을 부리고, 아기였을 때는 짐승처럼 기어다니기까지 했잖아. 네가 그런 짐승과 같은 상태에서 지금처럼 사람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네 속에 사람이 되고자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었기 때문이야. 그럼 간절히 바라기만 하면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런 건 아니야. 견디기 힘든 상황 속에서도 웅녀처럼 자기 자신과 싸우면서 원하는 것을 끝까지 이루려고 하는 그 마음가짐이야말로 가치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인 거야.

하늘이 있고 땅이 있고 그 사이에 사람이 있어

너는 '단군 신화'에서 고조선이 인간의 힘으로만 만들어진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거야. 하느님의 아들과 땅의 곰이 결혼해서 낳은 아들이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만들었으니, 그것은 바로 이 세상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피를 나눈 형제처럼 서로 힘을 합쳐 살아갈 때에 비로소 행복하게 잘살 수 있다는 거야. 하늘은 아버지처럼 햇볕과 비를 내려 주고, 땅은 어머니처럼 하늘에서 내려 준 것들을 받아서 곡식을 만들지. 사람은 그 곡식을 먹고 살아가니까, 하늘이 우리 아버지이고 땅이 우리 어머니인 거야. 그래서 우리 조상들은, 이 세상에는 하늘과 땅이 있고 비로소 사람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지. 그것을 어려운 말로 '삼재(三才, 하늘과 땅과 사람을 이르는 말)사상'또는 '삼의'라고 해. 그런데 하늘, 땅, 사람이 모두 하나라는 생각이 단군 신화에만 나오는 것은 아니야. 농사를 짓는 사람들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농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하늘과 땅에 늘 감사를 드렸어. 이제 우리 조상들이 왜 농사를 세상의 근본이라고 생각하면서 몇 천 년을 살아왔는지 이해가 가지? 이렇듯 단군 이야기와 농사를 지으며 살아온 한국인의 마음은 따로 떼어 생각할 수가 없어.



그리고 신화가 인간의 문화를 이루는 바탕이 된다는 의미에서 우리가 보는 공상 만화는 오늘날의 신화라고도 할 수 있어. 사람들이 우주를 개척하는 만화 속 이야기들에는 지구를 벗어나 더 먼 우주로 나아가고 싶은 인간의 꿈이 담겨 있어. 그리고 아마 언젠가는 실제로 그런 일들이 가능하게 될 거야. 이렇게 과거에 있었던 이야기,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들이 바로 역사를 만들고 이끌어 나가는 거란다. 이제 알겠지? 우리 민족의 신화는 우리 역사를 만드는 원동력이 되어 왔다는 걸.



오래 묵을수록 깊어지는 한국의 맛



우리의 맛과 향, 간장

사람들은 대부분 세 가지 방법으로 요리를 해. 날것을 그대로 먹는 방법, 불에 익혀 먹는 방법, 그리고 삭혀 먹는 방법이 있어. 그 중에 삭혀 먹는 것, 즉 음식이 삭는다는 것은 미생물이 생겨나 음식물이 변하는 것인데, 나쁜 변화가 아니라 좋은 변화지. 특히 우리나라에는 간장, 된장, 김치, 젓갈처럼 삭혀서 먹는 발효 음식이 많아. 그에 비해 서양은 고기 종류를 주로 먹으니까 익혀 먹는 요리법이 많아. 한편 옛날에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하는 냉장고가 없었기 때문에, 때로는 약간 상해서 냄새나는 고기를 먹어야 할 때도 있었어. 그래서 매운 맛도 있고 독특한 향내도 나는 후춧가루를 상한 고기에 뿌려 냄새를 없앴던 거지. 그런데 후춧가루는 원래 동양의 인도나 스리랑카 같은 곳에서 나기 때문에 유럽 사람들은 비싼 값에 사다 먹을 수밖에 없었어. 그래서 유럽 사람들은 후추가 나는 곳을 찾아서 동양으로 가려 했고, 콜럼버스도 인도로 가는 새로운 뱃길을 찾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거야. 이렇게 후추는 서양 문명 전체와 깊은 관련이 있단다.



그럼 서양의 후춧가루에 맞먹는 우리의 간장은 어떨까? 후추처럼 간장도 우리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단다. 간장은 우리 땅에서 나는 콩으로 메주를 쑤고 그것을 띄워서, 즉 발효시켜서 만들었지. 간장을 담그려면 우선 가을에 콩을 수확해서 메주를 쑤어 겨우내 방 안에다 주렁주렁 매달아 두어야 해. 그러면 메주에 푸릇푸릇 곰팡이가 슬기 시작하는데, 이 곰팡이들이 콩을 발효시키는 거야. 이렇게 잘 발효된 메주를 가지고 봄에 비로소 장을 담그는데, 이 방법은 자연을 이용해서 그대로 익히는 거야. 있는 그대로 먹는 것을 자연, 불에 익혀서 먹는 것을 문화라고 한다면, 그 사이에 있는 것이 이 발효 문화야. 그러니까 우리 음식은 자연이나 문화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지. 유교에서 말하는 중용의 문화가 음식에도 나타나 있는 거야. 자연이 스스로 변해 처음과는 다른 맛을 내는 것, 이게 바로 우리의 장맛이야.



시간과 더불어 익어 가는 맛, 맛과 더불어 익어 가는 마음

간장, 된장, 고추장은 메주 띄울 때 한 번, 장을 담가 또 한 번 발효시켜야 제 맛이 우러나. 그리고 담근 해에 다 먹는 것이 아니라 한 해, 두 해, 세 해 묵혀 가며 맛을 냈어. 그렇게 오랜 세월을 두어도 맛이 변하지 않고 오히려 좋아지는 것은 발효 식품밖에 없을 거야. 그리고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발효 식품을 만든 민족인데, 대표적인 게 바로 김치야. 김치는 아주 독특한 맛을 가졌어. 불로 익힌 맛도 아니고, 날것의 맛도 아닌 발효된 맛 말이야. 이렇게 오래 묵을수록 맛이 들고, 인간과 자연 어느 하나의 힘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귀중한 발효의 문화, 발효의 사고가 바로 한국인의 문화야.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에도 불로 금방 부글부글 끓이는, 아니면 날것으로 허겁지겁 먹는 그런 맛과는 다른 삶의 맛이 있단다. 김치가 익고 밥이 뜸 들고 새우젓이 삭는 것을 기다리는 마음, 그런 한국인의 마음을 잊지 말고, 우리의 생각과 행동도 세월과 더불어 익어 가야 하는 거란다.



넉넉한 게 좋아



옷고름, 더러는 조이고 더러는 풀어요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유명한 인물들도 많지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천재들도 많아.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단춧구멍을 만든 사람이야. 단추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지만 이 단추가 실용품이 된 것은 단춧구멍이 발명된 13세기경부터야. 그전에 단추는 멋을 내는 데 쓰는 장식품에 불과했거든. 그렇다면 서양의 단추에 비교할 만한 우리의 물건은 무엇일까? 그래, 옷고름이야. 그런데 왜 우리만 단추가 아니라 옷고름을 썼을까? 바로 여기에 우리 문화의 비밀이 숨어 있단다.



단추는 제 구멍에다 끼워야 하니까 단추를 달 때에도 한 치의 오차 없이 구멍에 맞추어서 달아야 해. 그리고 단추 하나를 다는 데도 정확히 계산해야 했기 때문에, 서양 사람들은 합리적이야. 이 합리적인 정신이 오늘날 근대 문화를 만들었지. 그런데 한국 사람은 이치만을 따지는 합리성보다 그때그때 형편을 헤아리는 융통성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 한복 저고리를 보렴. 길게 늘어진 옷고름이 양쪽에 다 달려 있으니 저고리가 좀 큰 듯하면 옷고름을 바짝 조여 매고, 작다 싶으면 조금 느슨하게 매면 됐어. 사람이 무언지, 살아 있는 생명이 무언지 알고 있었던 우리 옛 조상들은, 세상이 단춧구멍에 단추가 들어맞듯 매번 들어맞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어. 즉 서양 사람들에게 지식이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슬기가 있었던 거야. 물론 옷고름은 단추보다 실용적이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단추 대신 옷고름을 쓴, 우리 조상들의 마음만은 잊지 말아야 해. 특히 요즘처럼 모든 걸 재고 따지는 산업 사회에서는 옷고름처럼 더러는 조일 수도, 더러는 풀 수도 있는 융통성이 참으로 중요하거든.



조화로움이 깃든 집, 한옥



여름엔 시원한 마루에서, 겨울엔 따뜻한 온돌방에서

사람이 사는 집은 기후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 집의 생김새만 보고도 더운 남쪽 지역 집인지 추운 북쪽 지역 집인지 금방 알 수 있어. 그런데 우리나라 집은 남쪽 지역 건물인지 북쪽 지역 건물인지 얼른 알기가 힘들어. 남쪽과 북쪽 문화가 함께 깃들어 있기 때문이지.



우리나라 전통 집을 보면, 남쪽 지역 건물에 있는 툇마루나 대청마루가 있어. 북쪽 지역 건물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지. 겨울에는 추워서 대청마루를 쓸 수가 없잖아. 여름에 문을 다 열어 놓고 대청마루에 누워 있으면 서늘한 바람이 불어서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어. 마루는 방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아주 기막힌 틈새 공간이었어. 여름 공간인 마루하고는 정반대로 방 안에 들어가면 겨울을 위한 온돌이라는 게 있어. 온돌은 우리나라가 북쪽 문화를 받아들였다는 것을 뜻해. 서양식 난방이 방 안 전체를 따뜻하게 하는 입체 난방이라면, 우리나라 온돌은 바닥만 따뜻하게 하는 평면 난방이야. 온돌방 아랫목에는 피부에 포근하게 스며드는 따뜻함이 있어. 겨울에 집에 손님이 왔을 때는 아랫목을 내주는 것이 최고의 대접이었지. 이렇게 온돌의 따스함은 가족이나 이웃과 함께 정을 나누는 우리네 마음을 꼭 닮았단다.



남방과 북방 문화가 절묘하게 어울린 우리 전통 집들을 봐. 마루와 온돌이라는 서로 다른 두 문화를 슬기롭게 잘 조화시킨 옛 사람들의 지혜가 느껴지지 않니? 여름에는 차갑고 시원한 느낌을 주고, 겨울에는 따스한 온기를 전해 주는 그 조화로움이 우리 문화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거야. 앞으로는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종합적으로 모든 것을 통합할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해. 흔히들 요즘은 멀티미디어 시대라고 하지. 보고, 듣고, 쓰는 모든 것이 하나로 합쳐진 것을 멀티미디어라고 하잖아. 그러니까 우리나라 전통 집은 '멀티 하우스'라고 할 수 있어.



손에 손 잡고 벽을 넘어서



피부 색깔이 그리 중요해?

이 지구에는 대략 60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단다. 그렇지만 피부 색깔로 보면 하얀 얼굴을 한 백인종과 까만 얼굴의 흑인종, 그리고 황색 얼굴을 한 황인종으로 나눌 수 있어. 이 가운데 우리는 황색 인종이지. 그런데 백인종, 흑인종, 황인종은 모두 자기들이 최고라고 생각해. 자기들이 다른 인종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니까 인종 차별 같은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거야. 예를 들면, 유럽 사람들은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하지만, 따지고 보면 아메리카는 신대륙이 아니잖아. 원래부터 그곳에 살던 인디언들 입장에서는 자기들 땅에 유럽 사람들이 침입해 들어온 것뿐이야. 그런데 남의 땅에 온 백인들이 오히려 인디언들 땅을 차지하고 목숨까지 빼앗았어. 흑인들은 말할 것도 없어. 유럽 사람들이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잡아다 노예 시장에 내다 팔고 마치 짐승 다루듯 했잖아. 어떤 이유에서도 인간이 인간을 차별할 권리는 없어. 중요한 건 피부색이 어떻든 각자 자존심과 긍지를 가지면서 다른 인종도 존중하는 태도를 가지는 거야.



아시아 사람으로 우뚝 서라

우리보다 문명이 발달한 서구 선진국 국민들이 대부분 백인이라서, 너는 어쩌면 스스로를 낮추어 '황인종은 별수 없어.'라고 생각할지 몰라. 또 우리 또한 흑인들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해. 그리고 우리는 미국처럼 여러 인종이 모여서 사는 게 아니라 오랫동안 단일 민족으로 살았어. 그러다 보니 다른 민족을 차별하기도 했어. 그런데 인류학자들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은 흑인종이었대. 아프리카가 인류 최초의 고향이라는 거야.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사람들 가운데 나무 열매도 많고 동식물도 풍성한 곳에 터전을 잡고 살아온 사람들이 오늘날 흑인종들이야. 한편 그곳에 만족하지 않거나 약해서 밀려난 사람들이 자꾸 북쪽으로 나가서 지금의 코카서스 산맥, 즉 유럽까지 간 거야. 그들이 코카서스 인종이라고 하는 백인종들이야.



그런데 또 거기에서 다시 북쪽으로 넘어간 사람들이 있어. 새로운 땅을 찾아 용감하게 나아간 사람들 말이야. 추위를 견디며 북위 40도를 넘어서 더 북쪽으로 이동해 간 사람들이 바로 황인종, 즉 몽골로이드인데, 이들이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중앙아시아로, 시베리아로, 또 중국으로 퍼졌지. 그들 가운데 또 한 부류는 알류샨 열도를 지나서 지금의 미국 쪽으로, 거기서 더 남쪽으로 내려가서 남아메리카 끝까지 갔단다. 그렇게 코카서스 산맥을 넘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눈보라 몰아치는 시베리아 벌판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면서 한반도에 온 사람들, 말을 타고 온 기마족이 바로 우리 조상이야.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알겠니? 우리가 백인종이나 흑인종보다 낫다고 생각하는 인종 우월론자가 되라는 것이 아니라, 백인종에 대한 괜한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야. 황인종은 얼마든지 백인종을 앞서갈 수 있어. 아시아 사람들은 '인간이 너무 물질이나 기계 문명에 빠져 자연을 황폐하게 만들면 오히려 자신들이 해를 입는다'는 철학 때문에 근대화를 서두르지 않은 것뿐이야. 이제는 남아메리카의 끝에서 거꾸로 돌아, 다시 유럽에서 아프리카까지 가는 마음의 대행진, 생각의 대행진을 하자꾸나. 그래서 미래에는 아시아 사람으로서 너희들이 세계 문명의 지도자가 되는 거야. 그때는 흑인종이 낫다, 백인종이 낫다 하고 인종 차별을 할 게 아니라, 이 지구의 크고 넓은 들을 여행하는 여행자답게 모든 것을 끌어안고 함께 아름다운 지구를 가꾸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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