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 은행나무
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은행나무 / 2008년 6월 / 251쪽 / 12,000원
네 개의 알파벳DNA는 긴 끈 모양의 물질이다. 그 끈을 자세히 살펴보면 진주를 꿰어놓은 목걸이 모양의 구조를 하고 있다. DNA 안에 생명의 설계도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면 각각의 진주알은 알파벳, 끈은 문자열에 해당한다. 과학자들은 DNA의 문법을 풀고자 우선 이 알파벳의 실체에 대해 연구했다. DNA를 강한 산(酸)에 넣고 열을 가하면 목걸이의 연결 고리가 끊어지면서 진주가 뿔뿔이 흩어진다. 그 상태에서 진주의 종류를 조사해 보았다. 그러자 놀랍게도 진주의 종류는 겨우 네 가지였다. A와 C와 G와 T라는 네 알파벳. 이것만 가지고는 this is a pen조차 쓸 수 없다. 아무리 DNA가 거대한 끈이고 거기에 수만 개의 A와 C와 G와 T가 들어있다 하더라도 그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이며, 정교한 정보를 담고 있으리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당시 과학자들은 어차피 DNA는 세포 내의 구조를 지지하는 밧줄 정도의 역할밖에 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에이버리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폐렴쌍구균의 한 종류인 S형 균(병원형)에서 DNA를 추출하고 그것을 R형 균(비병원형)과 함께 섞는다. DNA 중 극히 일부가 R형 균의 균체 내부로 혼입된다. 그러자 R형 균이 S형 균으로 변화하더니 폐렴을 유발하였다. 즉 DNA라는 물질은 분명 생명의 형질을 전환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 에이버리는 이 실험을 신중하게 반복하고 많은 연구를 거듭하면서 더욱 정밀화해 나갔다.
결국 에이버리가 옳았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논문을 남기며 1948년 록펠러의학연구소를 정년퇴직했다. 록펠러대학 사람들에게 에이버리에 대해 물어보면 묘한 열기가 느껴진다. 모두들 그에게 노벨상이 주어지지 않은 것은 과학 역사상 가장 부당한 사건이라고 입을 모으면서 왓슨과 크릭은 에이버리의 무등을 탄 버릇없는 손자에 불과하다며 언짢아한다. 모두가 에이버리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면서 자기네만의 영웅으로 삼으려 하는 이유는 이 외에도 또 있는 것 같다. 조숙한 천재를 칭송하고 한때의 젊은 시절만이 연구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떠들어대는 과학계에서 때늦은 꽃을 피운 에이버리는 일종의 위안을 주는 '이름 없는 영웅'인 것이다.
DNA가 운반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정보이며, 실제로 작용을 일으키는 것은 단백질이다. 항생물질을 분해하는 것은 효소라 불리는 단백질이며, 병원성을 유발하는 독소나 감염에 필요한 분자도 모두 단백질이다. 내성균에서 비내성균으로 혹은 S형 균에서 R형 균으로 전해진 DNA에는 분해효소나 독소 단백질을 만들어내기 위한 설계도가 새겨져 있다. 에이버리가 죽은 후, 과학자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정보의 벽이었다. 고작 네 개의 문자밖에 없는 DNA가 어떻게 10여 종이나 되는 문자로 이루어진 단백질의 설계도를 책임질 수 있는가? 사실 이것은 알고 보면 굉장히 쉬운 수수께끼다. 네 종류의 DNA 문자를 각각 한 개씩 단백질 문자에 대응시키려 하니 어려웠던 것이다. 세 개의 DNA 문자가 한 개의 단백질 문자에 대응하도록 한다면? 예를 들어 this is a pen이라는 단백질 문자, 즉 아미노산 배열에 대응하는 DNA 문자는 다음과 같이 만들어지면 되는 것이다. t에는 ACA, h에는 CAC, I에는 ATA, s에는 AGC와 같이 세 개의 뉴클레오티드를 대응시키면, 아무 의미 없는 신음소리 같은 소리에 this is a pen이라는 암호를 새겨 넣을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하여 단순하고 무의미한 고분자로만 보였던 DNA는 단백질의 배열 정보를 책임지고, 보존하며, 다른 물질로 옮겨서는 복제까지 할 수 있는 정보 고분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겨우 네 종류밖에 안 되는 DNA 문자가, 바로 그렇게 단순하다는 이유로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까지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간과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가령 pen의 e코드에 해당하는 GAG라는 세 개의 DNA 문자가 사사로운 이유로(그것은 담배 연기일 수도 있고 자외선일 수도 있다) GCG로 바뀌었다면? 문자열의 의미는 this is a pan으로 바뀐다. 혹은 e가 i로 바뀌었다면? 서재에 있던 펜이 한순간에 요리 도구(pan)로도 또는 가시(pin)로도 변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자연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돌연변이, 나아가서는 진화 그 자체도 DNA의 문자 상에서 일어난 극히 작은 변화가 단백질의 문자를 바꾸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것이 단백질의 작용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한 것이다.
DNA가 바로 유전자의 본체임을 명확히 제시한 에이버리의 업적이야말로 생명과학의 세기이기도 한 20세기의 최대의 발견이며 분자생물학의 막을 올린 발견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DNA의 구조 규명, 그리고 DNA 암호 해독 등 DNA 연구가 빠르게 시작된 것은 에이버리가 연구 현장에서 물러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다.
샤가프의 퍼즐에이버리 이후 과학자들은 일제히 DNA를 분석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자신이 코드(암호)를 풀고야 말겠다고 남몰래 다짐하곤 했다. 샤가프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당시 그는 자신이 힘들게 찾은 장소에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해독할 수 있었다. "동물, 식물, 미생물, 어떤 기원의 DNA라 하더라도 혹은 어떤 DNA의 일부라 하더라도 그 구성을 분석해 보면 네 개의 문자 가운데 A와 T, C와 G의 함유량은 같다." 이 기묘한 데이터는 도대체 무엇을 암시하는 것일까? 앞서 말했듯이 this is a pen이라는 아미노산 배열(열 개의 문자) 정보를 담당하는 DNA는 서른 개의 문자다. 강한 산(酸)을 첨가하여 DNA를 가열하면 문자와 문자를 잇는 결합이 끊어지면서 DNA는 낱개의 문자가 된다. 그 다음은 A, T, C, G를 모아 수를 세어보자. 'A가 열둘, T가 둘, C가 아홉, G가 일곱.' A와 T의 개수는 크게 다르고, C와 G의 개수도 다르다. 샤가프의 분석 결과와는 조금도 일치하지 않는다. 물론 이는 샤가프가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우리의 사고적 실험이 잘못된 것이다. 이 퍼즐을 최초로 푼 사람이 바로 왓슨과 크릭이다. 퍼즐의 정답은 "DNA는 단순한 문자열이 아니라 반드시 대칭 구조로 존재한다"이다. 그리고 이 대칭 구조는 A와 T, C와 G라는 대응 규칙을 따른다. 즉 서른 개의 문자 DNA는 단순한 한 가닥의 사슬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이 상보적 사슬과 세트로 존재하는 것이다.
DNA 사슬은 항상 이렇게 두 가닥의 사슬이 쌍을 이루는 구조를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샤가프의 법칙이 성립되는 것이다. 이 대칭 구조를 문자 단위로 분해하면 위쪽 사슬은 앞서 제시한 것처럼 A가 열둘, T가 둘, C가 아홉, G가 일곱이고 아래쪽 사슬은 A가 둘, T가 열둘, C가 일곱, G가 아홉이다. 분석 결과는 이를 합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A가 열넷, T가 열넷, 그리고 C가 열여섯, G가 열여섯, 정말 A=T, C=G이다. 이로써 샤가프의 법칙은 멋지게 성립되는 것이다.
그런데 DNA가 이처럼 쌍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생물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답은 다름 아닌 "정보의 안정화를 담보한다"이다. DNA가 상보적으로 대칭 구조를 취하고 있으면, 한쪽 문자열이 정해지면서 다른 쪽도 의무적으로 정해지게 된다. 혹은 두 가닥의 DNA 사슬 가운데 어느 한쪽을 잃어버려도 다른 한쪽을 모체 삼아 쉽게 복구가 가능하다. ATAA라는 부분 배열이 없어졌다 해도 상보적인 다른 한쪽의 사슬에 TATT라는 구조가 보존되어 있다면 자동적으로 구멍을 메울 수 있다. 사실 DNA는 일상적으로 손상되고 있으며 일상적으로 복구되고 있다. 이렇게 정보를 보유하고 유지하기 위해 생명은 일부러 DNA를 쌍으로 갖고 있는 것이다. 이 상보성은 부분적인 복구뿐 아니라 DNA가 스스로 전체를 복제하는 역할도 한다. 이중나선이 풀리면 센스사슬과 안티센스사슬로 나뉘는데, 각각의 사슬을 거푸집(주형) 삼아 새로운 사슬을 합성하는 것이다. 즉 센스사슬은 자신을 모체 삼아 새로운 안티센스사슬을 만들고, 원래의 안티센스사슬이 새로운 센스사슬을 합성하면 이제 두 쌍의 DNA 이중나선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생명의 '자기 복제' 시스템이다. 그래서 "생명이란 자기를 복제하는 시스템이다"라고 정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히 DNA의 아름다운 이중나선 구조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DNA의 그늘로잘린드 프랭클린(Rosalind Franklin, 1920~1958)은 1920년에 영국의 부유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엄격한 부모님은 그녀를 아홉 살부터 기숙사가 있는 학교로 보냈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상의 교육을 받게 했다. 총명한 그녀는 일찌감치 이과, 수학 계통에 흥미를 느꼈고 케임브리지대학에 진학했다. 성적은 항상 상위권이었다. 그녀는 후에 대학원에 진학했고 물리화학으로 케임브리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유학 생활을 마친 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겨우 평정을 되찾은 런던의 킹스칼리지에서 새로운 연구를 시작했다. 킹스칼리지에서 그녀에게 주어진 연구 테마는 X선으로 DNA 결정을 해독하는 것이었다. 때는 마침 에이버리의 발견, 즉 DNA만이 유전형질이라는 사실이 널리 인정되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다음 타깃은 자연히 DNA 자체의 구조를 푸는 것이 된다. 모두가 이 성배를 찾기 위해 분주히 활동을 개시했다. 프랭클린은 자신의 일을 착실하게 진행했다. 일을 시작하고 1년 정도 사이에 DNA에는 수분 함량의 차이에 따라 'A형'과 'B형'의 두 종류의 형태가 존재한다는 것을 밝혀냈고, 그것을 구별하여 결정화하는 기법을 고안해 냈다. 또한 각각의 미묘한 DNA 결정에 정확히 X선을 조사하고 아름다운 산란 패턴을 촬영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녀는 그 사실을 미발표 데이터로서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고 혼자 힘으로 수학적 해석에 들어갔다. 프랭클린의 귀납법은 그녀 자신은 깨닫지 못했지만, 성배 바로 근처까지 접근해 있었다.
1968년, 제임스 왓슨이 출판한 『이중나선』은 과학 서적으로는 드물게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DNA 구조 규명 경쟁을 둘러싼 과학자들의 적나라한 실태, 불안과 초조함, 시기와 질투가 솔직한 필치로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중요한 문장이 기재되었다. 왓슨이 언젠가 킹스칼리지를 방문했을 때 로잘린드와 논쟁을 하게 되어 상당히 기분 나빴던 적이 있었고, 그게 계기가 되어 그녀의 상관 아닌 상관이었던 윌킨스와 '피해자 동맹'을 맺으며 속내를 털어놓는 사이가 되었다고. 그리고 윌킨슨는 어떤 비밀을 말해준다. 그가 프랭클린이 촬영한 DNA의 3차원 형태가 나타난 X선 사진의 결과를 몰래 복사해서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X선 사진 모양은 어땠냐고 묻자 모리스는 옆방에서 그들이 'B형' 구조라 부르는 새로운 형태를 찍은 사진의 프린트를 가지고 왔다. 그 사진을 본 순간 나는 너무 놀란 나머지 심장 이 마구 고동치기 시작했다. (중략) 사진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검은 십자 모양의 반사는 나선 구조가 아니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었다."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만 찾아온다DNA 결정을 촬영한 프랭클린의 X선 사진은 훗날 훌륭한 데이터라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크릭은 자신의 자서전에서는 자세히 언급하기를 회피했지만,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DNA에 관한 그녀의 데이터를 보고 있었다. 프랭클린은 1952년, 자신의 연구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를 연차 보고서의 형태로 영국의학연구기관에 제출했다. 영국의학연구기관은 그녀에게 연구 자금을 제공하는 공적인 기관이었다. 연구원은 자금을 지원해 주는 곳에 대해 의무적으로 연구 성과를 보고해야 하며, 그 성과에 따라 자금을 계속 지원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결정되는 게 상례였다. 그러므로 프랭클린은 모든 성과를 다 기록한 상세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는 학술지 게재 논문들처럼 피어(peer) 리뷰어들에게 노출되어 있었다. 그 리뷰어 가운데 맥스 퍼디낸드 퍼루츠(Max Ferdonand Perutz, 1914~2002)라는 사람이 있었다. 프랭클린이 영국의학연구기관에 제출한 보고서 사본은 우선 퍼루츠에게 넘어갔고, 그에게서 다시 크릭에게 넘겨졌다. 크릭이 프랭클린의 데이터를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용히, 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고서 말이다. 그 보고서는 왓슨과 크릭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었다. 거기에는 실제 데이터뿐 아니라 프랭클린 자신이 직접 손으로 쓴 측정 수치와 해석도 곁들여있었다. 즉 그들은 교전국의 암호 해독표를 입수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보고서에는 DNA 결정의 단위에 대한 해석이 명기되어 있었다. 그것을 보면 DNA 나선의 지름이나 한 타래의 크기, 그리고 그 사이에 몇 개의 염기가 계단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는지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 보고서에는 가장 중요한 의미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DNA의 결정 구조는 C2 공간군이다." 이 한 문장은 크릭이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과 맞아떨어졌다. 마치 지그소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처럼. C2 공간군이란 두 개의 구성단위가 서로 반대 방향을 취하며 점대칭적으로 배치되었을 때 성립한다. 크릭의 마음에는 단백질 헤모글로빈의 결정 구조가 C2 공간군일 거라는 이론 부하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는 이 헤모글로빈 구조를 규명하는 데 질리고 지친 상태였던 것이다. Chance favors the prepared mind.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찾아온다. 파스퇴르가 했다는 이 말대로 정말 기회가 찾아왔다. 아마 왓슨과 크릭은 이 보고서를 보고 처음으로 자신들의 모델이 맞았음을 확신했을 것이다. 그들은 즉각 <네이처>지로 논문을 보냈다.
그러나 말이다, 피어 리뷰 중에 있는 미발표 내용을 포함한 보고서가 본인이 전혀 모르는 사이에 슬쩍 경쟁 연구원의 수중으로 넘어가고, 그것이 열쇠가 되어 세기의 대발견이 이루어졌다면 이는 단적으로 말해 중대한 연구상의 규칙 위반이 아닌가. DNA 나선 구조가 밝혀진 지 거의 10년이 지난 시점인 1962년 말,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노벨상 수상식 단상에는 그 세 명의 공로자가 광채를 발하며 서 있었다. 제임스 왓슨, 프랜시스 크릭, 그리고 모리스 윌킨스. 그들에게는 DNA 나선 구조 규명에 대한 공로로 노벨의학생리학상이 수여되었다. 게다가 같은 단상에 단백질 구조를 밝혔다는 공로를 인정받은 맥스 퍼루츠의 모습도 보였다. 그에게는 화학상이 수여되었다. 어떤 의미의 '공범자들'이 그 자리에 모두 모인 것이다. 가장 중요한 공헌을 해낸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녀는 그 세 명이 나란히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사실도 영영 모른 채 이미 4년 전인 1958년 4월, 암으로 서른일곱의 생을 마감했던 것이다.
동적 평형이란 무엇인가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에는 모두 질소가 함유되어 있다. 한번 먹어버리면 보통 그 아미노산은 체내의 아미노산과 헷갈려서 행방을 좇을 길이 없다. 그러나 중질소를 아미노산의 질소 원자로 삽입하면 그 아미노산은 식별할 수 있게 된다. 루돌프 쇤하이머는 이 중질소를 이용하여 획기적인 실험에 돌입했다. 그는 일반 사료를 먹여 키운 실험쥐에 아주 짧은 일정 기간 동안 중질소로 표시된 로이신이라는 아미노산을 함유한 사료를 먹였다. 그 다음, 쥐를 죽이고 모든 장기와 조직을 대상으로 중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