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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

홍자성 지음 | 홍익출판사
채근담

홍자성 지음

홍익출판사 / 2008년 5월 / 192쪽 / 6,000원


도덕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은 한때 쓸쓸하고 외로우나, 권세에 빌붙어 아부하는 사람은 영원히 불쌍하고 처량하다. 사물의 이치에 통달한 사람은 세속을 초월한 진리를 살피고 죽은 후 자신의 평판을 생각하니, 차라리 한때 쓸쓸하고 외로울지언정 영원히 불쌍하고 처량하게 될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귀에 거슬리는 충고더라도 항상 들을 줄 알고,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이더라도 항상 간직한다면, 이것으로 덕을 증진시키고 행동을 닦는 숫돌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들리는 말마다 귀를 즐겁게 하고 하는 일마다 자신의 마음에만 맞게 잘 된다면, 이것은 자신의 일생을 짐새의 독 속에 파묻는 것이다.

밤 깊어 인적이 고요한 때 홀로 앉아 자신의 마음을 관찰해 보면, 비로소 망령된 생각이 모두 사라지고 인간의 깨끗한 본성이 드러남을 깨닫게 되니, 항상 이 속에서 자유로운 마음의 움직임을 얻게 된다. 이미 본성이 드러났는데도 망령된 생각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움을 깨닫는다면 또한 이 가운데에서 깊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할 때는 지나치게 엄격하게 하지 말고, 그가 그 책망을 감수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가르칠 때는 너무 어려운 것을 기대하지 말고 그가 따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낮은 곳에 거처한 뒤에야 높은 곳에 오르는 것의 위태로움을 알 것이요, 어두운 곳에 있은 뒤에야 밝은 곳을 향함이 지나치게 드러난다는 것을 알 것이다. 평온함을 간직한 뒤에야 활동하기 좋아하는 것이 지나치게 고됨을 알 것이요, 침묵을 수양한 뒤에야 말 많은 것이 소란스럽다는 것을 알 것이다.

진정한 청렴함은 청렴하다는 이름조차 없으니, 청렴함을 내세우는 사람은 탐욕스럽기 때문이다. 가장 뛰어난 재주는 특별한 기교가 없으니, 기교를 부리는 사람은 졸렬하기 때문이다.



고요할 때 생각이 맑고 깨끗하면 마음의 참모습을 보게 되고, 한가로울 때 기상이 차분하면 마음의 현묘한 이치를 알게 되며, 담담할 때 정취가 담박하고 평온하면 마음의 참 맛을 얻게 된다. 마음을 살피고 도를 깨닫는 데 있어 이 세 가지보다 나은 것은 없다.



작은 일도 소홀히 하지 않고, 남들이 모른다고 해서 속이거나 숨기지 않으며, 실의에 빠져서도 낙담하지 않아야 진정한 영웅이다.



내 몸은 하나의 작은 우주이니, 기뻐하는 감정과 성내는 감정이 서로 어긋남이 없도록 하고 좋아함과 싫어함을 법도 있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자신의 몸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공부이다. 천지는 하나의 큰 부모이니, 백성에게 원망이 없도록 하고 만물에 재앙이 없도록 한다면 이 또한 천지만물이 화합을 이루는 기상이다.



과실에 대한 책임은 다른 사람과 같이 할지언정 공적은 같이 하지 말지니 공적을 같이하면 서로 시기하게 되리라. 어려움은 다른 사람과 같이 할지언정 안락은 공유하지 말지니 안락을 같이 하면 서로 원수가 되리라.



수면은 물결이 일지 않으면 저절로 평온하고 거울은 먼지가 끼지 않으면 자연히 밝다. 그러므로 마음도 굳이 맑게 할 필요가 없으니 마음속의 번뇌를 없애면 본래의 맑음이 절로 드러나며, 즐거움도 굳이 찾을 필요가 없으니 괴로움을 없애면 즐거움이 절로 깃들인다.



한 순간의 자비로운 마음이 천지간의 온화한 기운을 빚어낼 수 있고, 가슴속 한 치의 청렴결백한 마음이 고결한 덕행을 영원히 남길 수 있다.



모든 일이 만족할 만한 상태에 있는 사람은 물이 넘칠 듯 말 듯 하는 것과 같으니, 한 방울이라도 더하는 것을 깊이 삼가야 한다. 위험하고 절박한 상황에 있는 사람은 나무가 꺾일 듯 말 듯 하는 것과 같으니, 조금이라도 건드리는 것을 깊이 경계해야 한다.



세상 풍파가 걷혀 바람 잔잔하고 물결 고요한 가운데 인생의 참된 경지를 볼 수 있고, 인간의 욕망을 떨쳐 맛이 담박하고 소리 드문 곳에서 마음의 본래 모습을 알 수 있다.



정취를 느끼기 위해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니, 작은 연못이나 조그마한 돌에도 안개와 노을이 깃든다. 경치를 즐기기 위해 먼 데까지 갈 필요는 없으니, 쑥으로 얽은 창과 대나무로 이은 집에도 바람과 달빛이 넉넉하다.



사람들은 글자로 된 책은 읽을 줄 알지만 글자 없는 책은 읽을 줄 모르며, 현 있는 거문고는 탈 줄 알지만 현 없는 거문고는 탈 줄 모른다. 형체를 통해서만 즐길 줄 알고 정신을 통해서는 그 정취를 깨닫지 못하니, 어떻게 거문고와 책에 담긴 참 정취를 느낄 수 있겠는가?



유장한 정취는 맛좋은 음식을 먹는 부귀한 생활에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콩죽을 먹고 물을 마시는 소박한 생활에서 얻어진다. 쓸쓸한 감회는 고요하고 적막한 생활 속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음악을 연주하는 데서 생겨난다. 그러므로 농후한 맛은 항상 짧고 담박한 맛 가운데 참됨이 있음을 알라.

정신없이 바쁘더라도 냉철한 안목을 가진다면 많은 고민거리를 줄일 수 있고 어려운 상황에 있을 때에도 열정을 지닌다면 많은 참 멋을 얻으리라.



마음에 번뇌라는 풍파가 없으면, 발길 가는 곳마다 모두 푸른 산 푸른 나무와 같이 속세에 물들지 않은 청정한 경지일 것이요, 타고난 본성 가운데 만물을 기르는 기운이 있으면, 눈길 닿는 곳마다 물고기가 연못에서 뛰어오르고 솔개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과 같은 생기 넘치는 자유로움을 보리라.

나무는 가을에 낙엽 지고 뿌리만 남은 뒤에야, 꽃의 화려함과 잎가지의 무성함이 한낱 헛된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고, 사람은 죽어서 관 뚜껑을 덮은 뒤에야 자식과 재물이 아무 소용없음을 알게 된다.

모든 소리가 고요해진 가운데 문득 새 한 마리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면 온갖 그윽한 흥취가 일어나며, 모든 초목이 시들어 버린 뒤에 어디선가 나뭇가지 하나 빼꼼이 솟아남을 보면 곧 무한한 생기가 촉발되어 움직인다. 여기에서 만물의 본성이 항상 메마른 적 없고 기미의 현묘함이 일어남을 알리라.

병든 뒤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알고, 어지러운 세상에 처한 뒤에야 평화로운 세상의 행복함을 아는 것은 선견지명이 아니다. 요행으로 복을 얻기를 바라는 것이 재앙의 근본임을 미리 알고, 불로장생을 희구하는 것이 죽음의 원인임을 앞서 아는 것이야말로 탁월한 식견이다.



꽃은 반쯤 피었을 때가 가장 아름답고, 술에는 은근히 취했을 때가 가장 기분 좋다. 만약 꽃이 다 피어 버리고 술에 곤드레만드레 취한다면, 이는 이미 보기 흉한 지경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일이 더없이 잘 될 때 마땅히 이 점을 염두해야 한다.



꽃과 대나무를 심어 가꾸고, 학과 물고기를 완상할 때에도 또한 스스로 터득함이 있어야 한다. 만일 한갓 눈앞의 풍경에만 빠져 아름다운 사물만을 보고 즐긴다면, 이는 유가에서 말하는 '그저 귀로 듣고 입으로 내뱉는 학문'일 뿐이요, 불가에서 말하는 '공에만 집착하는 선'일 뿐이니, 무슨 좋은 정취가 있겠는가?



인생이란 덜어 버린 만큼 초탈할 수 있으니, 불필요한 관계를 줄이면 번거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고, 불필요한 말을 줄이면 과실이 적어지며, 불필요한 생각을 줄이면 정신력이 소모되지 않고, 총명함을 내세우지 않으면 타고난 본성을 온전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덜어 버릴 줄 모르고 오히려 날마다 더하는 데 힘쓰는 자는 참으로 자신의 인생을 속박하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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