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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리처드 워터스톤 지음 | 창해
고대인도



기원전 2500년대 초기 인더스 강 유역은 토착문화가 상당히 세련되고 사회 정치적으로 전성기였으며, 많은 신들을 숭배하고 있었다. 봄베이(지금의 뭄바이)에서까지 이 문명의 유적이 발견되는데, 이 문명의 힘과 영향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유적지는 지금의 파키스탄 지역인 하라파와 모헨조다로이다. 1,000년 후 아리아인들이 인도대륙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이 문명은 쇠퇴하고 있었다. 아리아인들은 우월한 군사력으로, 그리고 본 고향이었던 중앙아시아로부터 들여 온 문화와 종교의 활력으로 인도 북부를 장악했다. 그들의 종교적 제의 가운데 가장 중요한 희생제는 그들이〈베다〉라고 부르는 일련의 경전에 근거한 것이다. 아리아인들의 주요한 신들 가운데 아그니는 제례의식의 불과 화로를 주재하는 신이다. 또 전쟁과 비의 신 인드라와 바루나는 아리아인들 이전에 존재했던, 악마의 영역을 덮고 있던 혼돈스러운 어둠을 베다의 정의와 진리로 빛나게 했다.



인더스 강 유역의 문화 : 기원전 3000년 중반 인도의 첫 문명은 하라파, 모헨조다로 등의 도시와 함께 출현했다. 이 두 유적지는 인더스 강을 끼고 서로 약 640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현재는 파키스탄의 건조한 평원이지만 당시에는 강이 흘러서 물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이 지역에 융성했던 도시문명을 '인더스 강 유역의 문화'라고 부른다. 이는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의 문명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존재했다고 보는데, 많은 고고학적 발굴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의 문명에 대한 기록은 발굴되지 않고 있다. 1950년대 초 이 유적을 발굴한 사람은 영국의 고고학자인 모티머 휠러 경이었는데, 그는 이 유적지가 로마 제국의 출현 이전에 만들어진 가장 대규모의 정치적 공동체의 흔적이며, 계층적인 정치와 사회의 체계를 갖춘 청동기시대 전성기의 도시문화였다고 믿었다. 인더스 강 유역의 문명이 어떻게 사라졌는가 하는 의문은 아직 베일에 싸여 있다. 기원전 1500년경 아리아인들이 북인도 지역으로 들어왔을 때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는 이미 버려지고 파괴된 상태였다.



아리아인 : 기원전 2000년대 중반 아리아 전사들이 인도대륙에 들어온 사건은 인도의 문화와 종교에 있어서 새로운 국면을 열었다. 그들의 전차는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사냥이나 농사에 종사하는 몇몇 집단을 만났을 뿐인데, 이미 인더스 강 유역의 문명이 파괴되어 버린 상태였기 때문이다.〈베다〉는 아리아인들의 우수성에 대해 1,000년 이상 불려진 찬가와 시를 모은 것인데, 이 경전을 기록한 언어는 인도유럽어족 가운데 가장 오래된 산스크리트이다. 아리아인들이 어디에서부터 어떤 경로를 거치며 이동해 왔는지도 불분명하다. 그리고 인도에서의 1,000여 년에 걸친 역사에 대해서도 아직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아리아인들이 인도대륙을 장악한 시대는〈베다〉가 만들어진 시대와 거의 일치하는데, 이 시기를 베다 시대라고 한다. 이 경전은 아리아인들의 공동체적 생활상에 대한 상세한 정보를 주지는 못하지만, 전차를 탄 신들에 대한 묘사와 그들이 어둠의 힘을 무찌를 때 등 뒤로 태양이 빛나고 있는 장면을 통해서 당시 아리아인들이 전쟁을 좋아하고 본래 유목문화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전쟁과 연관된 신들 : 인더스 강 유역으로 들어온 초기 아리아인들은 바루나라는 신을 숭배했다. 바루나라는 이름은 '덮다'라는 뜻의 산스크리트 브리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 신은 세상을 덮고 있는 자, 즉 가장 잘 알려진 우주의 지배자이다. 바루나는 또한 우주의 질서인 리타를 떠받치고 있는 자이다. 리타란 다른 종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우주적 질서라고 할 수 있는데, 수메르의 메me, 정의·진리·조화를 뜻하는 이집트의 마트maat와 유사하다.〈구약성서〉의 야훼나 수메르의 아누처럼 바루나는 무시무시한 분노의 신이지만,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도 한다. 바루나는 도덕을 다스리는 신으로, 초기 아리아 신들 가운데 가장 우월한 위치에 있었다.



아리아인들은 우주의 질서가 하늘뿐 아니라 인간이 사는 땅과 지하세계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생각했다. 별들이 정해진 길을 따라 움직이는 것처럼 도덕적 행위에도 올바른 길이 있다고 믿었다. 바루나는 베다 신들의 우두머리인 인드라에게 그 자리를 내주게 되는데, 인드라는 지배자라기보다는 영웅적인 모습을 한 신이었다. 바루나는 변덕스럽고 복수심에 불타는 신이었지만, 인드라는 변함이 없고 강직한 신이었다. 인드라의 가장 대표적인 공적은 혼돈·무지·어둠을 상징하는 악마 브리트라를 무찌른 것이다. 인드라는 전사 아리아인의 전형이었는데, 이는 인더스 강 유역의 도시문명에서는 낯선 모습이었다.



베다 : 전쟁터에서 무적의 힘을 과시한 아리아인들이지만, 그들이 인도대륙으로 들어와 이루어낸 가장 커다란 업적은 〈베다〉(지혜의 책)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리아의 신들에게 희생제를 올릴 때 찬가를 부르고 제례용 주문인 만트라를 외웠다. 비록 후대의 교육에 가려지기는 했지만〈베다〉는 오늘날까지도 힌두인들 삶의 중심이 된다.



〈베다〉는 네 가지로 이루어졌다.〈리그베다〉는 기원전 1200년 이전에 지어졌으며, 다음으로〈사마베다〉와〈야주르베다〉, 그리고〈아타르바베다〉순으로 만들어졌다.〈아타르바베다〉는 다른〈베다〉

보다 상당히 후대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베다〉는 그 기원과 전승방식이 전적으로 암송에 의한 것이라는 사실이 특이하다. 힌두교도들은 그 내용을 믿을 뿐 아니라 그 내용을 암송하는 소리에도 신성함이 들어 있다고 믿는다. 힌두교도들은〈베다〉가 사람이 지은 것이 아니라 신의 계시를 기록한 것이며, 신들의 힘이 단어 하나하나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베다〉는 신과 인간이 태어난 성스러운 글자들을 가지고 있어서 우주보다 더 이전부터 존재했기 때문이다.〈베다〉자체는 성스러운 글자 '옴Om'에서 창조되었다고 한다.



우파니샤드 :〈우파니샤드〉는 기원전 7 ~ 5세기에 지은 문헌을 묶은 것이다. 이것은 아리아인들의 성스러운 경전인〈베다〉를 구성하는 마지막 부분으로 베단타(베다의 결론)라고 불린다. 하지만〈우파니샤드〉는 초기〈베다〉와는 그 내용과 어조가 다르다. 이 문헌들 안에는 철학적이고 신화적인 질문들이 초기〈베다〉의 관심사였던 희생제를 대신하고 있다. 108개의 문서들은 후기 힌두교의 핵심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 많은 주석들이 첨부되었다.〈우파니샤드〉는 외부에 있는 신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신을 찾고, 의례적인 희생제가 아니라 모든 것 안에 내재되어 있는 신성한 힘의 원천인 브라만을 찾으라고 가르친다. 아리안의 성자들이 제의가 신의 뜻을 구현하고 반영한다고 믿은 것처럼, 새롭게 출현한 철학은 아트만이라는 개체적 영혼 안에 브라만이 반영되어 있다고 보았다. 신과의 교감은 이제 의례적인 의식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적인 전환을 통해 가능한 것이 되었다.

: 카르마, 즉 업業의 법칙이란 모든 행위에 그 원인이 있는 것처럼 행위 하나하나에 피할 수 없는 반작용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업은 운명의 원인이며, 생각하고 행하는 대로 실현되는 자연의 법칙이다. 현재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행동의 결과를 겪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업의 법칙에 의하면 자살을 선택해 삶의 불행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업은 피하거나 떠넘길 수 없는 것이며, 그것을 피하려고 한다면 결과는 더욱 감당하기 어려운 업을 남길 뿐이기 때문이다. 현재 생을 살면서 하는 행위는 다음 생의 운명을 결정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의식은 보다 높은 차원의 의식인 초의식에 저장되었다가 아트만, 즉 영혼이 여러 환생을 거치는 동안 저장된 업으로 작용한다고 한다. 업의 원인이 되는 것은 욕망이다. 이 세상에서 평탄한 삶을 살고 싶은 욕망, 인위적인 행위를 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끝없는 환생, 즉 윤회의 굴레 속에서 태어나게 된다는 것이다.



포기의 문화



기원전 1000년대 중반까지 북인도에서는〈베다〉가 정한 제의를 수행하는 브라만 사제들이 공식적인 종교생활과 의식을 독점했다. 그러나 점차 일부 사제들과 다른 계급 사람들은 이제 희생제가 더 이상 종교적 욕구를 채워 주지 못한다고 느끼면서 포기와 자기부정의 수행방법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든 것을 포기하고 방랑의 길을 택한 수도승들의 수는 계속 증가했다. 이들은 희생제의 불인 아그니를 숭배하기보다 금식과 명상으로 내면의 불을 추구했다. 불교의 창시자인 부처와 자이나교의 창시자인 마하비라는 스스로 포기의 길을 택한 수도승이 되어 그러한 포기의 길을 택한 자들의 추종을 받았다. 수도승들의 목적은 물질적 세계로부터 그리고 생사의 끝없는 반복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은둔철학의 중심에는 윤회와 카르마라는 개념이 있다. 자이나교도들은 물질적인 세계의 구속으로부터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은 혹독한 자기절제와 비폭력 원칙을 지키는 것이라고 믿었다. 부처가 삶의 고통을 불식시키기 위해 택한 길은 극도의 고행과 물질주의 사이에 중도를 걷는 것이었다. 이것은 수도승뿐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따를 수 있는 가르침으로서 초기 불교의 바탕이 되었다.

숲속의 철학 : 기원전 8세기 이후부터는 속세를 떠난 수도승들이 무리를 지어 북인도의 숲을 떠돌아다녔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불교, 자이나교, 그리고 아지비카(邪命派)에 흡수되었다. 이 방랑승들은 동료와 가족과의 연대를 포함한 사회와의 모든 고리를 끊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음식을 구걸하거나 깊은 숲 속으로 들어가 과일과 채소로 연명했다. 그들의 목적은 오로지 물질적인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이었다. 그래서 일부는 지독한 고행을 하고 거의 죽음 직전에 이르도록 굶으며 육체를 정신적으로 통제하기 위해 극도의 추위와 더위를 겪는 수련을 기꺼이 해냈다. 이들이 택한 구도의 길은 물리적으로 너무나 험난하고 힘겨운 것이었기 때문에 슈라마나(노력하는 자들)라고도 알려지게 되었다.

업과 윤회라는〈우파니샤드〉의 중요한 두 이론은 기원전 6세기까지는 인간 존재에 대한 기본적인 상식으로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다. 윤회는 축적된 자신의 업으로 인해 초래되는 계속되는 환생의 반복이다. 환생은 해탈을 추구하는 구도자가 최종적 목표로 삼는 궁극적 진리인 평안의 세계와 반대되는 것이다. 윤회는 모든 것이 끊임없이 변하는 환영과 고통뿐인 속세에 또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자이나교와 아지비카, 불교의 공통점 중 하나는 이러한 윤회이론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모두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을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삼았다. 환생이 남에게 해를 주는 행위에서 야기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은둔자들은 때때로 다르마(정의)로 위장된 사회제도의 규범을 거부하고 바른 행위를 통해 해탈하고자 했다.



부처의 생애 : 부처(깨달은 자)는 기원전 563년경 싯다르타 고타마라는 이름을 가진 왕자로 태어났다. 그는 오늘날의 인도와 네팔 경계에 자리잡고 있던 샤키아족釋迦族의 왕자로, 실제 생존했던 역사적인 인물이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경제적으로 융성하고 사회적으로 변동이 많았으며, 북인도에서 그리스까지 길이 나 있어서 양쪽의 사상이 자유롭게 교환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부처는 피타고라스, 헤라클레이토스 등 그리스의 철학자와 자이나교의 마지막 티르탕카라(구원자)인 마하비라와 동시대 사람이었다. 29세 이전의 싯다르타의 생애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거의 신화적인 수준이다.



장차 부처가 될 이 왕자는 먼저 학문의 중심지가 있는 중부 지방으로 깨달음을 찾아 떠났다. 그 지역에서 가장 뛰어난 구루(정신적 스승)들로부터 전통적인 철학을 배우고 난 후 그는 숲속의 한 암자에 도착했다. 발가벗고 극도의 고행을 통해 수도를 하고 있던 수도승들은 고통과 자기부정이야말로 자유로워지는 길이라고 가르쳤다. 싯다르타는 이를 부정하면서 몸은 마음을 통해 움직이므로 완전한 통제를 해야 할 대상은 육신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논쟁을 벌였다. 그는 고행의 길을 거부하고 계속해서 깨달음을 위한 길을 찾아 나섰다. 싯다르타는 35세에 부다가야에 도착해서 후에 생명의 나무라고 불리는 보리수 아래에 앉았다. 그는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절대로 일어서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49일간 고독하게 명상한 끝에 그는 열반, 즉 덧없이 변하는 삶 속에서 영원히 변하지 않는 영속성을 얻었다. 그는 이렇게 해서 부처, 즉 완전히 깨달은 자가 되었다.



35세의 나이에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이후 45년 동안 북인도를 돌아다니면서 점차 늘어나는 추종자들에게 중도의 길을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가르침이 유일한 진리임을 강조하기는 했지만, 추종자들에게 자신을 절대 신격화하지는 말라고 했다. 그는 깨달음의 필요성, 고통과 무지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설법하면서 해결방법은 하나뿐이라고 역설했다. 부처의 첫 번째 설법은 '법륜의 첫 바퀴'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부처가 바라나시 가까이 있는 사르나트의 사슴공원에서 깨달음을 얻기 전 부처에게 단식을 권했던 다섯 명의 고행승을 대상으로 한 설법이다. 사르나트의 설법은 다음의 네 가지 진리(사성제四聖諦)에 근거하고 있다.



「삶의 뿌리는 고통이다(苦). 고통은 권력, 즐거움, 장수에 대한 갈망에서 연유한다(執). 그러므로 이러한 갈망을 제거함으로써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으며 그렇게 해서 열반에 도달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滅). 갈망과 그로 인한 고통을 불식시키는 길은 팔정도를 따르는 것이다(道).」

두카dukkha라는 말은 보통 '고통'으로 번역이 되는데, '덧없음', '불완전함'이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젊은 시절의 부처가 맞닥뜨렸던 그 세 가지 덧없음의 상징(늙음·질병·죽음)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삶은 고통이다. 우리는 현생과 다음 생에서 영원하기를 갈망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부처는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쳤다. 삶은 슬픔으로 가득 찬 것은 아니지만 덧없기 때문에 삶이 불완전하고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끼는 것이다. 갈망의 뿌리는 아비디야, 즉 실체의 속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다. 부처는 무아론無我論을 주창함으로써 영원한 영혼이나 자아의 존재를 부인했다. 그는 자아의 정체성에 대한 집착이 수많은 고통의 원인이 된다고 생각했다. 그는 추종자들에게 자아가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착각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한 방법으로 명상수행을 하라고 가르쳤다.



자이나교 : 자이나Jain라는 단어는 '정복자'를 의미하는 산스크리트 지나jina에서 유래되었다. 지나는 영원한 윤회의 반복으로부터 해방을 얻기 위해 금욕적인 검소함을 통해 자신들의 마음과 욕망, 그리고 육신을 정복한 24명의 '여울을 건넌 자', 즉 구원자에게 주어진 별칭이다. 자이나교는 인도의 모든 종교를 통틀어 가장 금욕주의적인 삶을 요구하는 종교이다. 이 종교의 목적은 절대신의 영광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세계를 점진적으로 포기함으로써 자기완성을 달성하는 데 있다. 그래서 그 중심에는 극단적인 비폭력에 대한 믿음이 있다. 자이나교는 어떠한 생명체도 다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모든 살아 있는 생물체는 서로를 도와야 한다고 가르친다. 자이나교도들은 24명의 티르탕카라(여울을 건넌자)를 역사적 스승으로 받아들인다. 이 인물들은 물질세계와 모든 관계를 끊음으로써 완벽한 지혜를 획득했다고 한다.



티르탕카라들은 왕과 전사 계급인 크샤트리아(부처 역시 이 계급 출신임)에 속한다. 23번째와 24번째 티르탕카라인 파르슈바와 마하비라를 제외하고 나머지 티르탕카라는 몇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 '세상의 시기'에 살고 있는 전설적인 인물들이다. 마지막 티르탕카라인 마하비라는 현재 자이나교의 창시자이다. 그는 부처와 동시대에 살았으며 부처의 라이벌이었다. 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공통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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