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장자에게 직접 배운다
콴지엔잉 지음 | 휴머니스트
등장인물소개노자 - 나는 공자, 묵자와 동시대에 살았던 성이 노(老)라는 초나라 상현 사람이다. 선진시대의 공자·묵자·장자·맹자처럼 사람들은 나의 성에 선생을 의미하는 자(子)를 붙여 노자라 불렀다. 나의 시대는 역사가들이 '고금일대변혁지회(古今一大變革之會)'라고 일컫는 것처럼 중국의 역사에서 정치·사회가 크게 변동하고 극심하게 혼란을 겪으면서도 문화적으로는 대융합을 모색하던 시대였다. 이처럼 문화적으로는 대융합을 모색하던 시대였지만, 한편으로는 거친 들판에서 피어난 '악의 꽃'처럼 저속한 탐욕, 난폭한 정욕, 비루한 물욕이 횡행하던 시대이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악'과 '고난' 속에서 문명의 폐단과 역사의 숙명을 파악하여 끝내는 자연의 존재로서 인간 개체, 생명, 자유를 가장 기본적인 가치관으로 삼았다. 나의 삶의 지혜는 내가 살던 당대의 문화를 한곳에 모아두었던 국립도서관의 관장이라는 직업적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에는 모든 문서를 정부가 관리하였기 때문에 나는 이곳을 지키는 수장 노릇을 하면서 수많은 역사적 사실을 반추하여 인간의 삶의 근거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세상에 남겨두고 떠난 책이 바로 「도덕경」(「노자」 또는 「노자도덕경」이라고도 함)이다. 5천여 글자에 담아놓은 삶의 지혜는 '무(無)'의 창조성처럼 끊임없는 해석의 변주와 변형을 거쳐 새로운 천상의 소리로 울려퍼질 것이다.
장자 - 나는 노자의 정신을 이어받은 그의 제자이다. 비록 몽(蒙)이라는 지방에서 산림을 관리하는 미관말직에 종사했지만, 나는 그곳에서 대자연의 생의(生意)를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삶의 지극한 즐거움으로 삼았다. 나는 양나라 혜왕이나 제나라 선왕과 같은 시대에 살았는데, 이 시대는 노자가 살던 시대보다 더 죽음의 영혼이 온 세상에 가득한 시대였다. 그야말로 '악의 꽃'이 온 천지에 가득 피었던 시대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나는 '도시의 은둔자'처럼 참 생명과 진정한 자유를 홀로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현실적 삶의 토대는 다를지언정 혜시와 같은 친구가 있어서 천지를 떠도는 나의 외로움은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인간 생명의 진실이 통하지 않는 사회에서 나는 사람이나 사물에 의탁하여 나의 주장을 펴거나, 때와 장소에 따라 이야기의 방식을 달리하는 태도로 노자의 지혜를 무예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하였다. 이것이 내가 이 세상에 남겨놓은 「장자」라는 책이다. 후대의 학자들에 의해서 내편·외편·잡편으로 분류되어 총 33편이 남아 있는 이 책은 나를 사숙(私淑)했던 제자들이 나의 내편과 함께 묶은 장자학파의 집단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몽접 - 내 이름은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어 온 장자의 호접몽(胡蝶夢)이라는 이야기에서 빌려온 것이다. 부모님께서 왜 이런 이름을 지어주셨는지 정확히는 몰라도 내가 살아갈 삶의 가치를 담아 지어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나는 성실히 공부하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꿈꾸는 여대생이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여 동서양의 고전을 나름대로 소화하면서 읽어보려 하지만, 특히 현실에서 벗어난 것처럼 느껴지는 노자와 장자의 책에서는 마치 이것이 선생님들의 진정한 뜻이라고 확신이 들다가도 늘 어딘지 모르는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마치 후다닥 있는 힘을 다해 날아올라 나뭇가지 위에 머무르되, 때로는 거기에도 이르지 못하고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작은 비둘기일 따름이라는 생각이 든다. 현실 속에서 욕망을 추구하는 나는 과연 작은 비둘기에 머물고 말 것인가?
1장. 노장(老莊), 삶과 사상을 말하다 - 靜
짙은 안개를 밀어 헤치며
몽접 : 역사책에 기록된 선생님의 생애와 사적은 결코 많지 않아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마천의 『사기』<노자·한비 열전>에 근거해서 말하고 있는데요, 그 기록이 지나치게 간단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도 선생님의 경력에 대해 이미 수많은 의문을 남겨놓았어요. 대체로 사마천 시대에는 명확하게 밝혀진 선생님의 경력이 거의 없었죠.
노자 : 확실히 훗날의 수많은 학자들이 내 경력을 고증하기 위해서 많은 글을 썼고 붓과 먹으로 수 없는 전쟁을 치렀네. 내 이름에 대한 고증만 해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었지. 어떤 사람은 내가 아주 나이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고, 어떤 사람은 내가 태어날 때 머리가 희었기 때문이라고 했네. 어떤 사람은 내가 오얏나무 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성이 '이(李)'라 했고, 또 어떤 사람은 내 귀가 크고 길기 때문에 이름은 '이(耳)'이고 자(字)는 '담(聃)'이라 했으며, 어떤 사람은 내게 '백양(佰陽)'이라는 또 하나의 자가 있다고 했네. 이처럼 다양한 주장이 있었지.
몽접 : 예, 이제 선생님의 책에 대해 이야기해도 괜찮을까요? 선생님께서 쓰신 「노자」가 후대에 남긴 수수께끼는 선생님의 경력에 관한 수수께끼와 비교해볼 때 결코 적지 않거든요. 예컨대 어떤 사람은 「노자」를 병서(兵書)라 하고, 어떤 사람은 철학에 관한 저작이라 하며, 또한 어떤 사람은 정치 서적이라 하고, 어떤 사람은 양생에 관한 책이라고 합니다. 예부터 지금까지 학자들마다 보는 시각이 달라 책 속에 담긴 선생님의 사상에 관해 더욱더 각자의 견해를 진술했죠.
노자 : 내 「도덕경」은 5천 글자(5천여 자로 구성된「노자」를 흔히 '오천자'라고 표현한다)에 지나지 않지만 그것을 연구하고 해석한 저작은 이미 1천 종이 넘었네. 이것은 내가 책을 저술할 당시에는 생각하지도 못한 것이었지. 내 책은 단지 사회·인생·자연에 대한 나의 인식과 감개를 토로한 것에 지나지 않네. 후대 사람들이 그 속에서 무엇을 읽었는지에 관해서는 내 생각을 말하거나 추측할 수 없네.
몽접 : 아마도 선생님께서는 세계적으로 산업화가 끊임없이 아주 빨리 진행됨에 따라 현대 문명의 결함 또한 끝없이 노출되면서 만연되고 있다는 것을 모르실 거예요. 현대화 과정 자체가 수많은 문제, 예컨대 산업화와 도시화로 생긴 환경오염, 환경파괴, 그리고 인간과 인간관계의 긴장과 소외를 드러냈어요. 이러한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현대화 과정에서의 부정적인 요소를 더욱더 살펴보게 만들었죠. 이런 배경 아래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전통문화에서 유익한 사상의 자원을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도가사상의 독특한 가치가 날로 사람들에게 인식되고 중시되었지요. 사람들은 선생님의 사상을 높이 평가했어요. 예컨대 하이데거는 이전의 유럽 철학을 규탄하면서 선생님의 사상을 발전의 동력과 원천으로 생각했어요. 미국의 어떤 학자는 「도덕경」이 "미래의 유토피아 세계에서 누구나 다 알고 있는 한 권의 책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죠. 선생님의 생태지혜(生態智慧)는 사람들의 보편적인 찬양을 받고 있고요. 다른 사람의 말에 따르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수많은 사람들이 선생님의 「도덕경」을 몸에 지니고 다닌다고 해요.
노자 : 내가 살았던 시대에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라네. 자네와 같은 현대인들은 '철학이 시대정신의 정화이다'라고 말하더군. 내가 살았던 춘추시대는 동주(東周) 왕조가 멸망하던 시대였네. 당시 사회적 모순은 끊임없이 격화되어 노예들은 도망가거나 반란을 일으켰지. 또한 왕조 내부에서는 서로 알력을 다투고 잔혹하게 살해했으며, 제후국 사이에서도 전쟁이 끊이지 않았네. 해마다 일어나는 전쟁으로 왕실은 전복되고 제후가 주제넘게도 (왕실의) 이름과 물건 등을 함부로 사용했으며, 민중의 삶은 가난으로 고통스러웠으니 위기가 곳곳에 도사리고 있었던 것이네. 세상일의 흥망성쇠는 구름이나 연기처럼 금방 사라져버리고 개인의 안위화복(安危禍福)은 내 마음에 얽매여 있었네. 나는 세상일과 인생에 대한 깨달음을 5천 글자의 「도덕경」으로 서술하고 마침내 서쪽으로 은둔했네. 하지만 후대 사람들에게 수많은 수수께끼와 무한한 사상적 공간, 더 나아가서 후대에 형성된 '노자학'을 남겨두려고 생각한 것은 아니라네. 이것은 정말로 무심하게 버드나무를 꽂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니, 인위적으로 하지 않아도 되지 않는 일이 없구나!
세속에 구애됨 없이
몽접 : 선생님의 생애는 노자께서 남긴 것처럼 수수께끼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선생님의 인생 경력에 관해서 후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것은 주로 사마천의 『사기』<노자·한비 열전>에서 유래하죠. 그는 선생님께서 몽(蒙) 지방 사람으로 칠원(漆園)을 관리하는 작은 벼슬을 지냈다고 했어요. 선생님께서는 양나라 혜왕이나 제나라 선왕과 동시대 사람이지요. 선생님의 중요한 사상은 노자일파에 속하는 것으로 노자사상을 계승하고 발전시켰지요.
장자 : 나는 변화하고 발전하는 역사의 역정(歷程)과 극심한 세상의 변천에 대해서는 실제로 웃어넘길 수 있을 뿐이네. 이러한 문제는 어느 정도 애매해도 괜찮지 않은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물을 필요도 없고 어디로 갈 것인지 간섭할 필요도 없네. 우주가 내 고향이고 자연이 내 정원이라네.
몽접 : 그렇다면 선생님께서는 정말로 인생을 간파하셨나요? 저는 선생님의 일생에서 다음과 같은 점을 보았어요. 선생님께서는 인생에 무관심했으나 번거로운 세상을 간파한 듯이 무엇을 추구하지도 집착하지도 않으면서 소극적으로 세상에 숨으셨어요. 그러나 또한 우리는 선생님께서 참으로 완전하게 현실사회를 벗어나서 속세의 화식(火食)을 먹지 않는 생활을 하지 않으셨다는 것도 쉽게 발견할 수 있죠. 선생님께서는 사회생활에서의 암흑과 사악함에 대해 분노가 그치지 않으셨고, 나쁜 일이나 나쁜 사람을 원수처럼 증오하셨으며, 풍자와 욕설, 그리고 조롱의 뛰어난 능력을 최대한 사용하셨어요. 선생님의 언어는 각박했지만 차가운 눈빛에 마음은 뜨거우셨지요. 선생님께서는 눈에 들어온 인간세상의 슬픔과 기쁨, 이별과 만남, 세태의 열렬함과 냉담함, 인정의 차가움과 따스함, 진선미(眞善美)와 가악추(假惡丑)를 익살과 유머, 신랄한 풍자의 필체로 현실과 사회, 그리고 인간에 관심을 기울여 표현하셨지요. 선생님의 냉담하고 준엄한 표면 아래에는 사회생활에 관심을 기울이고 민중의 고통을 동정하는 몹시 뜨거운 마음이 있어요.
장자 : 무엇을 해도 좋고 무엇을 하지 않아도 좋은데, 개인의 경우를 우주의 위대한 도와 비교해 보면 무엇을 헤아릴 수 있겠는가.
몽접 : 선생님의 말씀이 매우 심오해 저는 천천히 깨달을까 해요. 다시 선생님의 책에 대해 이야기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책을 통해서 선생님께서 문학적 조예가 아주 높으심을 알 수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시적인 문장, 생동적인 형상의 언어, 사람들을 황홀한 경지로 이끄는 이야기, 신기하고 터무니없는 줄거리를 엮어 현실생활을 확대하고 표현해서 사람들에게 이로운 깨우침을 주셨어요. 현대인인 문일다(聞一多) 선생이 말한 것처럼, 선생님의 학문이 '언제나 진중하고, 준엄하고, 쌀쌀맞게 외곬으로 눈썹을 찌푸리고 머리를 짜는 것과 달리' 선생님의 사상 자체는 '한 수의 절묘한 시'예요. 선생님께서는 형상과 추상을 서로 결합시킨 시인형 학자로, 어쩌면 사변적인 성격의 선생님께서 노자보다 약간 겸손하지만 오히려 상상력은 그 어떤 사상가도 뛰어넘는다고 볼 수 있죠. 선진(先秦) 제자의 산문 가운데 가장 생동적이고 제일 아름다우며 매우 개성적인 선생님의 산문은 농후한 낭만주의의 색채를 띠고 있어요. 선생님의 아름다운 필치는 후대의 문학에 깊은 영향을 미쳤죠.
장자 : 자네가 말한 것이 후대 사람들에 의해서 「장자」라고 불려진 책이군!
2장. 노자의 예지(叡智), 장자의 광언(狂言) - 道
노장과 '도'를 논하다
몽접 : 노자의 도와 장자의 도는 개념의 내포에서 아주 커다란 차이가 있어요. 개괄적으로 말해서 노자의 도는 존재론과 우주론의 의미가 비교적 농후하지만, 장자의 도는 인생 경지의 의미가 비교적 농후하죠. 오늘 두 선생님께서는 여기에 앉아서 저와 도를 논하는 것에 흥미가 있으신지 모르겠네요?
노자 : 도의 본래 의미는 길이네. 갑골문(甲骨文)에서 '도'자는 아직 나타나지 않지만 서주시대의 청동기 명문(銘文)과 「시경」·「주역」·「상서」등의 전적(典籍)에서는 항상 응용되었네.「설문해자」에서는 "도는 걸어 다니는 길이다. 수(首)와 착이 합쳐진 글자로 한 번에 도달하는 것을 일컬어 길(道)이라고 한다"라고 말했네. 그것의 최초의 의미는 사람이 걸어가는 길이었는데, 이때에는 이미 '반드시 따른다'는 의미가 있었고 이후에 도리·방법·원칙·규율로 의미가 파생되었네.
몽접 : 저는 「노자」 1장의 "말할 수 있는 길은 늘 그러한 길이 아니고, 이름지을 수 있는 이름은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라는 말을 기억하고 있어요. 선생님께서는 5천 자의 「노자」에서 도를 70여 번 언급하셨고 그것을 선생님 철학의 최고 범주로 삼으셨으니 선생님께서는 그것을 중시했다고 볼 수 있죠. 선생님의 철학에서는 도는 최고이면서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죠. 그것은 만물의 시작이자 뿌리로 우주와 자연, 그리고 인류사회의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어요.
노자 : 진정한 도는 말할 수 없는 것이네. 각자의 눈에 비친 세계의 모습은 다 다르지. 도는 추상적이고 지고하고 신성한 것으로 자네가 보려 해도 볼 수 없고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지만, 그것은 확실히 자네의 신변에, 자네의 삶 속에 있네. 우리는 삶 속에서 그것의 그림자를 찾을 수 있고 그것의 종적을 찾을 수 있으며, 그것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그것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네.
장자 : 내 눈에 도란 실제로 나타나는 작용이 있고 존재한다는 증거가 있으니 작용도 없고 형체도 없네. 전할 수는 있으나 주고받을 수는 없네. 터득할 수는 있으나 볼 수는 없네. 스스로 근본이 되고 천지가 생기기에 앞서 예부터 존재하며 귀신이나 하느님을 신령하게 하고 하늘과 땅을 낳았네. 가장 높은 곳보다 더 위에 있으면서 높은 척하지 않고, 가장 깊은 곳보다 밑에 있으면서 깊은 척하지 않네. 그것은 논리적인 선재성·무한성·초월성을 띠고 있네. 도의 이러한 형이상의 품격이 만물 속에 존재하므로 도가 바로 만물이네.
몽접 :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도에는 여전히 신기한 느낌이 있어요. 이런 점에서 선생님께서는 노자와 일치하고 있으므로 태사공이 선생님 학설의 요지가 '노자의 말로 돌아갔다', 즉 선생님의 학설이 모두 '도라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고 말한 것은 이상할 게 없어요. 선생님께서는 도는 최선(最先), 최고(最高)의 존재이고, 그것은 텅 비어 없는 것(虛無)으로 감각기관으로는 느낄 수 없지만, 그것은 실재하는 것이어서 도에서 천지만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그러나 도에 관한 선생님의 논의는 확실히 다르죠. 사람들은 언제나 노자와 장자를 잇대어 사상의 일치와 연속성에 주목하지만, 그 안에서의 차이는 뭐죠?
장자 : 도의 원칙에서 살펴보면 우리 생각에는 차이가 없지. 자네는 햇빛이 반사된 수면을 보았겠지! 다른 방향에서 보면 수면의 모습은 모두 다르지만 동일한 태양이 반사된 것이네. 나와 노자께서 말한 도의 차이는 단지 세계를 바라보는 각도의 차이에 지나지 않네. 개괄해서 말하면 노자께서 말한 도는 본체론의 의미이고, 내가 관심을 기울인 도는 경지론의 의미이네. 분명히 도는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이 인간의 영혼을 떠나면 어떤 의미가 있겠는가? 도는 결코 얼음처럼 차가운 인간 밖의 존재가 아니라 우리의 영혼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우리의 인생이 도달한 최고의 경지이네. 그것은 천지만물을 운행하는 총체적인 원리이며 우리 인생이 추구해야 할 목표이네. 무위자연하고 세상물욕 없이 텅 비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