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죽음을 이야기하다
달라이 라마 지음 | 북로드
달라이 라마, 죽음을 이야기하다
달라이 라마 지음/제프리 홉킨스 편저자/이종복 옮김
북로드/2004년 5월/235쪽/10,000원
죽음에 대한 사색죽음에 대한 사색의 중요성 : 죽음에 대해서 사색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재의 삶을 영원히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만일 죽음을 인정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성취한 지금의 삶, 즉 소중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삶이 가진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죽음에 대한 사색이 의미 있는 것은 바로, 이것을 기초로 하여 중요한 결과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붓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인생의 절반은 잠이다. 10년은 어린 시절로 써버리고, 20년은 늙어서 잃어버린다. 남아 있는 20년마저도 울고, 불평하고, 아파하고, 화를 내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수백 가지의 병고로 더 많은 시간을 낭비한다." 지금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서는, 늙어가는 것과 죽음을 삶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에게만은 절대 죽음이 오지 않으리라고 믿는 것은 더 많은 탐욕과 더 많은 문젯거리만을 만들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불가능한 일에 대한 믿음은 다른 이들을 해치기까지 한다. 사람과 마음은 물론이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매순간 현상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죽음에 대한 사색은 보다 나은 발전을 위한 가능성을 열어준다.
만일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영원히 고통이라는 성질을 담고 있을 것이다. 모든 것이 항상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혹시 견디기 힘든 상황을 겪고 있다 하더라도 그 상황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스스로를 보다 편안하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절망할 필요가 없다. 설령 여러분이 내세를 믿는다 하더라도, 현세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미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태도는 당신이 현재의 삶에서 생산적인 수행을 할 수 있는 여유와 편의를 망쳐버린다. 이럴 경우에는 무상(無常)의 견해가 우리에게 도움이 된다. 무상을 깨닫기 위해서는 수련, 즉 마음 길들이기가 필요하다. 장기적인 이익과 순간의 이익 사이에 모순이 있을 때, 장기적인 이익을 위하여 순간의 이익을 희생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업의 원인과 결과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비롯되는 자기수련이다. 여러분은 태어남, 늙음, 병듦, 그리고 죽음이라는 고통스러운 과정에서 해방될 수 있다. 삶의 점진적인 향상으로부터 해방은 성취될 것이고, 이것을 근거로 불성을 성취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우리의 시야가 다음 생을 볼 수 있을 만큼 넓어질 것이다. 종국에는 모든 중생들이 고통과 고통의 원인으로부터 해방되길 바라는 자비로운 소망을 통해서 깨달음이 다른 이들에게까지 확장되어 갈 것이다. 여러분이 윤회와 고통의 완전한 자성을 파악하기 이전에 먼저 해야 할 것은 내생에 영향을 미치는 보다 깊은 삶의 측면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다. 고통에 대한 이해는 충만한 자비심의 개발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무상에 대한 사색이 주는 이익 : 무상에 대한 사색은 우리가 수행을 하도록 동기를 부여해줄 뿐 아니라, 수행이 지속되도록 해주는 연료와 같은 것이다. 영원할 것이라는 느낌, 우리가 지금 당장 죽는 것도 아니고 아직 살아 있다는 생각, 특별히 좋은 음식, 옷가지, 그리고 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들이 여러분들을 끊임없이 괴롭히고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현재의 결과에 대한 욕망 때문에 길게 내다보면 가치 없는 것들이라 할지라도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할 것이다. 이러한 갈망에 휘둘리는 한, 평온이란 있을 수 없다. 점점 더 자기중심적이 됨에 따라, 즉 '내 것', '내 몸', '내 재산' 등을 따지게 됨에 따라, 누구라도 그것에 침범하는 날에는 그 즉시 증오의 대상이 되어버리고 만다. 아무리 '나의 친구들', '나의 친척들'을 구별한다 해도 그들은 우리가 태어날 때나 죽을 때 그 어떤 것도 도와줄 수 없다. 우리는 홀로 이 세상에 왔고, 홀로 이 세상을 떠나야만 한다. 우리가 지금의 삶이 얼마나 빨리 사라지고 있는지 명심하고 있다면, 또한 죽음의 절박함에 대하여 명심하고 있다면 수행의 필요성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살아 있는 존재는 행복을 원하지 고통을 원하지 않는다. 원하지 않는 피상적인 수위의 고통과 보다 깊은 수위의 고통을 제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들을 동원하지만, 보다 깊은 수위의 고통을 제거하는 데 있어서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즉, 자신과 심지어 모든 존재를 위해 온갖 종류의 고통을 없애고자 하는 불교의 영적인 수행은 기본적으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산스크리트어로 '다르마'라고 하며, '무엇을 억제하는 것'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바람직하지 못한 태도를 수정함으로써 일정 수위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고, 이를 통해 특정한 고통을 억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영적인 수행은 자신의 각성을 다른 존재에게까지 확장시키고, 나아가 자비심을 닦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곧, 다른 이들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헌신함을 뜻한다. 자비심은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주고, 내적인 힘을 증가시켜준다. 자비심은 당신의 사고방식을 강화시켜주고, 이를 통해 당신은 보다 편안해질 수 있다. 당신의 시각이 무한히 존재하는 생명의 고통까지도 볼 수 있다면, 당신 자신의 고통은 상대적으로 작게 느껴질 것이다.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 제1대 판첸 라마가 지은 17연의 시는 많은 티베트 사람들이 날마다 죽음에 대해 명상을 하며 사용하는 시다. 이 시는〈중음도의 위험한 곤경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기원문,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된 영웅〉이라는 긴 제목을 가지고 있다. 이 17연의 시는 어떠한 이라도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 마음이 선한 공덕을 짓는 쪽으로 나가는 데 도움을 주었으면 하는 소망을 담고 있다. 여전히 행복하고, 삶을 둘러싼 환경이 수행에 적합한 바로 지금이 수행하고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수행을 성취하려는 노력은 즐거움과 괴로움의 경험이 자신의 선업과 악업의 결과라는 것을 분명히 앎으로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부터 행위의 원인과 결과, 또는 업(카르마)에 대한 이해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선한 행위는 잘 길들여진 마음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래서 불교의 모든 수행은 마음을 바꾸는 것을 그 뿌리로 하고 있고, 가르침의 요체 또한 마음을 길들이는 데에 있다. 이것의 기초는 스스로가 즐거움과 고통의 창조자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붓다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직 당신만이 당신을 지킬 수 있다. 당신을 편하게 하는 것도, 불편하게 하는 것도 당신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다."
현대 판첸 라마 계보의 현황 : 제1대 판첸 라마 롭상 초끼 겔첸은 17세기 제5대 달라이 라마의 스승이었다. 그는 비록 평범한 스님이었지만, 그 지역 사람들은 그를 위대한 티베트 요가수행자 엔사바(겔룩파의 딴뜨라 수행자)의 환생이라고 믿었다. 그는 위대한 학자는 아닐지 몰라도, 매우 위대한 수행자임에는 틀림없었다. 그는 티베트불교의 각 종파 사이의 조화와 상호존중에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했다. 제10대 판첸 라마인 롭상 틴리 룬둡 초끼 겔첸은 1989년 열반에 들었다. 그를 선대 판첸 라마의 환생신으로 선택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논란이 있었다. 중국정부는 티베트와 맺었던 17개 조항을 들고 나와 자기들이 정한 소년을 제10대 판첸 라마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69년, 내가(달라이라마) 인도로 탈출할 때, 판첸 라마는 티베트 내의 지도자로서 제 자리를 지켰고, 그 후 몇 년 동안 매우 훌륭히 제 임무를 수행했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감금되었다. 그러나 석방된 뒤로는 그가 가지고 있는 기회를 매우 현명하게 이용했다. 그는 티베트의 불교와 문화를 진작시키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았다. 이러한 행동들을 통해 그는 그 자신이 제9대 판첸 라마의 환생신임을 스스로 증명했다. 내가 티베트 밖에서 티베트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고 있는 동안에, 그는 티베트 안에서 티베트인을 위해 자기 목소리를 냈던 단 한 명의 티베트 지도자였다. 그가 열반에 들자마자, 나는 중국정부에 메시지를 보내 판첸 라마의 사원이 따쉬룬뽀 사원에 공양을 올릴 대표단을 파견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명백한 점은 판첸 라마의 환생신은 반드시 진정한 제9대 판첸 라마의 환생신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일 그의 환생신이 티베트 안에 있다면, 그의 거취에 대하여 중국정부와 상의해야만 한다는 점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환생신의 탐색을 위한 대표단을 파견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러한 요청은 거부되었지만, 비공식적이고 개인적인 통로를 통해 나는 한 라마와 연락을 할 수 있었다. 나에게 몇 장의 사진과 함께 스물다섯 명 이상의 후보자 명단을 보내왔다. 나는 게뒨 초끼 니마의 사진을 보자마자 친숙함을 느낄 수 있었다. 티베트의 전통적인 과정을 통해 나는 그가 제10대 판첸 라마의 진정한 환생신임을 결정했다. 내가 제10대 판첸 라마를 발표한 바로 그 다음날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중국정부로부터 신랄한 비난을 받았다. 그렇지만 정말 나를 무섭게 만들었던 것은 며칠 안에 그 어린 환생신이 그의 부모들과 함께 그의 출생지에서 라싸로 압송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중국으로 끌려갔고, 그 뒤의 소식은 알 길이 없다. 중국정부의 관점에서 볼 때 불법적인 나의 행동이 그 소년을 몹시 괴롭힌 결과가 되고 말았다.
중국정부는 최종 결정권이 자기들에게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환생신 후보자들의 차이가 거의 없어서 티베트 내부의 집단 간에 이 문제에 대한 논쟁이 있었을 때, 중국 황제는 황금단지 안에 후보자들의 이름을 써넣은 막대기를 집어넣고 제비뽑기를 하여 최종 결정을 내렸다. 나의 선임자인 제13대 달라이 라마는 외부에 상의를 하지 않고 비밀리에 티베트정부에 의하여 전통적인 과정을 거쳐 만장일치로 선택되었다. 제13대 달라이 라마는 후보자들 가운데 제9대 판첸 라마를 선별해 냈지만, 그때 선대 달라이 라마는 너무 어려서 그의 권위가 완벽하지 않았다. 현재의 중국정부의 최우선 목표는 지배이기 때문에, 현대 판첸 라마와 관련하여 그들의 어용 판첸 라마를 뽑기 위하여 황금그릇 제비뽑기를 행했지만, 그것은 미리 결정되어 있던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중국정부는 티베트불교의 지도자이며, 황금그릇 안에서 막대기를 골랐던 그 승려(중국의 공식 판첸 라마 겔첸 노르부)를 가택연금 시켰다.
죽음의 준비제1연 - 이번 삶과 중음도와 다음 삶의 공포로부터 보호받기를 기원함
"과거, 현재, 미래의 붓다의 법, 그리고 승가 모두에 /
나를 비롯해 허공에 걸쳐 있는 중생 모두 남김없이 /
최고의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귀의합니다 /
현재의 삶과 중음도, 내생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불교도들은 스스로 깨달음을 성취하겠다는 자각의 마음가짐으로 삼보(三寶), 즉 붓다, 붓다의 가르침, 그리고 승가를 궁극적인 귀의처로 생각하는 것이다. 삼보에 귀의하겠다는 마음가짐은 반드시 모든 중생들을 위한 것이어야 하고, 그들이 고통으로부터 자유롭고 불성을 성취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제1대 판첸 라마는 이 시를 통해 다른 중생들을 위하여 최상의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도록 붓다와 그의 가르침을 주는 동시에 승가에 귀의할 것을 조언한다. 이것이 바로 '원인적 귀의' 라고 불리는 것이다. 즉 우리 스스로가 붓다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공포로부터 벗어나고, 일체지를 성취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므로 다른 이들의 성향을 알고 어떠한 방법으로 그들을 도와야 하는지도 이해하고 있다. 이러한 '결과적 귀의'를 위하여, 제1연은 자비심을 불러일으킬 귀의의 원인적 바탕을 청원하고 있는 것이다. 붓다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자유로의 길을 가르친다. 그러나 자유 그 자체는 너희들에게 달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붓다는 단지 그 길을 가르치는 스승일 뿐이다. 그는 선물을 주듯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지는 않는다. 그것은 스스로 계율과 선정, 그리고 지혜를 닦았을 때 가능한 것이다.
제3연 - 윤회에 대한 집착의 극복을 기원함
"죽음은 반드시 오지만 죽음의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
모인 것은 흩어지기 마련이고 모아둔 것은 남김없이 소모되며 /
일어난 것이 가라앉으리니, 태어남의 마지막은 죽음이 되리라 /
우리가 낭비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죽음은 언제 어느 때라도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 즉 무상(無常)에 대하여 명상하는 것이 중요하다. 영원함이라는 환상에 사로잡혀 삶을 그저 눈앞에 보이는 것만을 추구하는 데 허비해 버린다면, 계속해서 큰 손실을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이 제3연에서 판첸 라마가 우리로 하여금 삶의 매 순간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하는 이유이다. 나는 지금 예순일곱 살이고, 내 앞에 있었던 열세 명의 달라이 라마들 가운데 제1대 달라이 라마를 빼고는 가장 장수하고 있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죽으리라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다. 삶의 영속성에 대한 믿음과 이기심을 마치 삶의 핵심인 양 담고 있는 마음가짐이 우리의 삶을 망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인 명상은 무상, 자성의 공함, 그리고 자비에 대한 명상이다. 붓다께서 깨달음을 향해 날아가는 새의 두 날개라고 강조하신 자비와 반야지(般若智)야 말로 줄곧 우리의 행복을 갉아먹고 있는 이기심과 영속에 대한 믿음을 치료할 수 있다. 윤회하고 있는 존재의 본성은 결국, 모인 것은 반드시 흩어진다는 것에 있다. 우리의 모든 친구들과 헤어지게 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 아무리 값진 보배를 얻고, 부를 쌓았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쓸모 없게 된다. 한번 윤회의 굴레 안에 들어서면, 죽음이라는 본성을 떠나 살수는 없다. 일찌감치 제행무상(諸行無常)에 대해서 생각하는 수행자는 죽음의 순간에 훨씬 더 용감하고 행복할 수 있다. 죽음이 언제든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염두에 두는 것은 평화롭고, 잘 다듬어진 마음을 갖게 한다.
죽음의 장애물을 극복함제5연 - 죽음의 순간에 잘못된 현상들이 가라앉기를 기원함
"애지중지하는 이 몸으로부터 배신당할 때 /
무서운 적, 죽음의 신이 나타날 때 /
탐욕, 증오, 어리석음, 이 삼독이란 무기로 내 목숨을 스스로 끊을 때 /
우리가 덕스럽지 못한 것의 잘못된 외양에서 벗어나기를."
죽음의 시간은 매우 중요하다. 죽음의 시간은 한 생의 종지부인 동시에 다른 삶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죽음의 과정이 현실로 드러날 때,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재산, 친척, 친구 그리고 자신의 몸뚱이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이러한 삼독(三毒), 즉 탐욕, 증오, 무지는 덕스러운 수행에 있어 가장 강력한 내부의 장애물이다. 보다 깊은 의미에서 보면 이것들은 죽음의 순간에 우리 자신을 죽이는 무기가 된다. 죽음의 순간에 이러한 해로운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강한 탐욕과 증오가 일어나서는 안 되며, 잘못된 모습들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소원을 마음속에 새겨놓아야 한다.
이상적인 죽음의 과정에 적합한 조건의 성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