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천년의 인간력
모리야 히로시 지음 | 청년정신
한비자 韓非子 - 인간불신의 관점에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열심히 일하여 출세 길에 오르고 마침내 지도자가 되었지만 스스로 무덤을 파서 자멸하는 사람이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한비자』에서는 여러 각도에서 그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넘어지기 전에 지팡이를 짚어라.'는 속담도 있듯이 미리 대비하면 실패를 줄일 수 있다.
『한비자』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이익을 좇아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이익'이라고는 해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한평생 같이 사는 부부라도 남편의 이익과 아내의 이익은 엄연히 다르다. 또 같은 조직이라도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이익은 분명히 다르다. 하물며 군주와 신하, 부리는 사람과 부림을 당하는 사람의 이해관계는 어떠하겠는가. 그런데 세상에는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안이한 생각으로 다른 이에게 권한을 넘기는 지도자가 있다. 『한비자』에서는 자신의 권한을 다른 이에게 넘기면 곧바로 실권이 떨어져 영향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군주의 권한을 신하에게 맡기면 신하의 세력은 점점 커진다. 그러면 백성들은 신하를 위해 일하고 군주는 외면한다."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권력을 틀어잡고 절대 다른 이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자멸하는 둘째 원인은 사사로운 일에 집착해서다. 『한비자』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
옛날, 진(晋)이라는 큰 나라가 '괵'이라는 작은 나라를 공격하려던 때의 일이다. 괵나라 를 치려면 인접해 있는 우나라를 지나가야했다. 그래서 진나라는 우나라 왕에게 보석과 준마를 선물하고 지나갈 수 있도록 요청했다. 우나라에 중신 한 명은 괵나라가 멸망하는 날, 우나라도 멸망할 것을 경고하며 이를 반대했으나 보석과 준마에 눈이 먼 우나라 왕은 반대를 무릅쓰고 길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자 중신이 우려한 대로 진나라 군대는 괵나라 를 쓰러뜨린 뒤 바로 우나라를 공격하여 보석과 준마를 빼앗았다.
누가 우나라 왕을 어리석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한두 번쯤은 이런 실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라면 막중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지도자의 그릇된 판단은 자신뿐만 아니라 조직의 위험까지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비자』에서는 "욕심에 눈이 멀어 이익만을 좇으면 자신은 물론, 나라까지 위태롭다."라고 경고한다.
지도자가 자멸하는 셋째 이유는 쾌락에 빠지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지도자들이 음악과 가무의 쾌락에 쉽게 빠진다고 경고했는데, 이는 '여색에 빠진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놀이 문화가 생긴 오늘날은 여기 저기 유혹의 손길이 더 많다. 그러므로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좀더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것은 놀이를 즐기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일을 중시하고 적당히 놀이를 즐겨야지 놀이에 빠져 일을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자멸하는 넷째 원인은 '본거지를 비워두는 것'이다. 본거지란 군주에게는 나라, 경영자에게는 기업을 의미한다. 지도자가 오랫동안 본거지를 비우면 지배력을 상실하게 된다. 군주가 나라를 비운 사이에 반란이 일어나 밀려난 지배자, 또는 직무를 게을리 하여 다음 선거에서 낙선하는 거물급 의원 등의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본거지를 비워서 자멸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회사에 있으면 사내에는 일종의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나 상사가 자주 자리를 비우면 긴장감이 결여되고 그 결과, 실적부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직원을 너무 감시해도 안 좋지만, 너무 풀어놓아도 좋지 않다. 『한비자』에 나오는 '본거지'라는 말은 다른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여러 가지 사업을 병행하는 경우에 본업, 즉 주가 되는 직업이나 사업으로 바꿔 이해하면 된다. 물론 생존을 위해 다각경영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부업은 어디까지나 부업이지, 본업을 뒷전으로 하고 부업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자멸하는 다섯째 원인으로 '충신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을 든다. 이는 독재자나 독단적인 경영자에게 보내는 경고다. 옛날부터 중국인은 지도자로서 큰 공적을 세우기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우수한 인재 확보와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기껏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고도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런 점에서 항우와 유방은 대조적이다. 항우는 많은 인재를 등용했으나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결국 자멸의 길을 걸었다. 반면 유방은 자기보다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천하를 얻었다.
지도자가 자멸하는 여섯째 원인은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다. 『한비자』에서는 "자국의 힘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다른 나라의 힘에만 의존하면 멸망한다."라고 말한다. 이 문제는 작은 나라나 작은 기업일수록 심각하다. 생존을 위해 협력도 필요하지만, 외교에만 의지하면 멸시를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도자가 자멸하는 마지막 이유는 힘도 없으면서 예의조차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사람이 줄었지만 2세 경영자들 중에는 간혹 무능하면서 예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선천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이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틀에 박힌 생활환경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경영자가 이끄는 기업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
삼사충고 三事忠告 - 조직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마음가짐1269년 산동성 제남에서 태어난 장양호라는 사람이 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여 부모가 주의를 줘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타고난 학구파였으므로 꾸준히 학문에 정진했으면 과거에 급제하여 고급관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10살 때, 송 왕조가 이민족인 원에게 멸망당함으로써, 한족 사람들은 출세길이 막히고 몽골족의 지배를 받으며 굴욕적인 생활을 했다. 다행히 그는 학식과 인격, 재능을 몽골족 고관에게 인정받아 한족 출신자로서는 비교적 높은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상사인 몽골인에게 아부를 떨거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한족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절의를 지켰다. 그는 절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고, 이를 몸소 실행하며 살았다.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다하여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 가난하고 천하다 하여 위축되거나 비굴하게 굴면 안 되며 위협과 무력에도 굴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정도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 인간은 체구가 작고 수명도 짧다. 그러나 절의를 지키기 때문에 값진 인생을 살 수 있다."
장양호는 청렴결백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 재산을 털어 가난한 백성들을 돕고 범죄자를 바로 잡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데 힘썼다. 1329년 장양호는 60세의 나이로 부임지인 관중 지방에서 생을 마감했다. 심한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구조활동을 펼치다가 심신의 피로가 겹쳐 쓰러지고 말았다. 절의를 지키며 살아온 장양호다운 최후였다. 『삼사충고』는 장양호의 체험과 깊은 교양을 토대로 지도자의 마음가짐을 정리한 책이다.
장양호는 "자신에게 엄격하라."고 말했다. "항상 자기 수련에 힘쓰는 자는 명예를 얻을 것이고, 게을리 한 자는 치욕을 당할 것이다. 자기 수련에 힘쓰는 자는 항상 청렴한 태도를 유지하고 충성심이 강하고 정도에 맞게 일을 해결하며 겸손하고 조심스런 자세로 부하를 대하는 인물이다. 무릇 선비는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보통 선비보다 더 엄격하게 자신을 대해야 한다."
장양호는 지도자의 위기관리 능력 또한 강조했다. "보통 사람은 이미 일어난 일은 알 수 있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용의주도한 사람은 이미 일어난 일을 미루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한다. 명예를 누릴 때는 괜찮지만 일단 불명예스런 일에 휘말리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일이 순조로울 때는 웬만큼 잘 해나가다가 일단 난관에 부딪치면 쉽게 좌절하는 사람은 책임 있는 지위에 올라 업적을 세울 수 없다. 사람을 평가할 때는 이 점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조직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조직을 활성화하고 성장시키며 조직 내에서 인재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사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장양호는 인재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주변 사람들의 평판을 듣는다. 둘째, 행동을 살핀다. 셋째, 주변에 어떤 사람을 소개하는지 살핀다. 장양호는 인재 발굴뿐만 아니라 부하의 의욕을 이끌어내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의 재능을 시기하지 말고 항상 공평한 태도로 대하면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좋은 방책을 얻고 용기 있는 사람에게는 힘을 빌릴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재능과 말솜씨를 과시하면 비록 현명한 사람이 옆에 있어도 도움을 받기 어렵다."
장양호는 평생 이익보다 정의를 중시하며 살았다. 그의 이러한 인생관은 대인관계에서도 나타난다. "다른 사람에게 배신 당해도 남을 배신하지 않으면 자신을 살릴 수 있고 선생을 독점하지 않고 남에게 나누어주면 남을 살릴 수 있다. 그렇게 하면 도리에 맞는 삶을 살 수 있다." 장양호는 인간관계를 맺을 때 자기를 희생하고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하라고 권했다. 그것이야말로 자기를 살리고 남을 살리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상사와 동료, 혹은 부하에게 이같이 대하면 수월하게 협력을 요구할 수 있고 더더욱 돈독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그는 "겸허한 사람일수록 의지가 강하고 큰일을 이룰 수 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무리 눈부신 업적을 올려도 물러날 때를 놓쳐 힘들게 쌓은 명성을 더럽힌 사례를 동서고금 어디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장양호는 "관직이 높아질수록 책임이 무거워지고 책임이 무거워질수록 마음을 써야 할 일이 많아진다."라고 말했다. 또한 지위를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거나 권력의 자리에 있는 것을 좋아하여 제때에 물러나지 않는 사람을 경멸했다. 자기가 그 자리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되거나 조직이 나가려는 방향과 자신의 생각이 맞지 않고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과감히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안씨가훈 顔氏家訓 - 시대를 초월하여 어느 시대에나 걸맞는 중국의 가훈을 담은 책『안씨가훈』은 지금으로부터 1,400년쯤, 안지추(顔之推, 531∼602년)가 후손을 위해 남긴 교훈서다. 중국의 대표적인 가훈을 모아 놓은 것으로 평소 마음가짐에서 문학론, 종교론에 이르는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안지추가 살았던 당시, 중국은 남과 북으로 이분화 되어 대립하던 남북조시대였다. 그래서 그는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타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그는 전통문화를 중시하는 건전한 지식인이었으며 매우 신중하고 보수적이며 성실했다.
『안씨가훈』에서 가장 중요한 사항으로 말하는 것 중 하나는 자식의 가정교육이다. 안지추는 어린 시절 부모와 두 형 아래서 인사 예절에서 사소한 행동거지까지 균형 잡힌 예절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러나 아홉 살 때 아버지를 잃은 후로 처지가 바뀌어 형들 손에 맡겨졌지만 그들은 생활에 쫓겨 어린 동생의 가정교육까지 신경쓰지 못했다. 그래서 안지추는 체면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소년기를 보내고 제멋대로 행동하고 경박하게 말했으며 옷매무새도 단정치 않았다고 스스로를 회상한다. 안지추는 어린 시절에 몸에 밴 이러한 나쁜 습관을 어렵게 극복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어린 시절에 배우는 가정교육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조기에 가정교육을 시작하라고 조언한다.
"적어도 세, 네 살이 되면 어른의 표정이나 감정을 알아볼 수 있다. 그때 가정교육을 시작하 여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르친다. 다섯 살이나 여섯 살이 되면 체벌해도 된다. 부모가 위엄이 있고 자애로우면 자식에게 무시당하지 않고 존경과 사랑을 받는다. 그러나 가 정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고 아이의 응석을 모두 받아주는 부모가 많다. 그런 부모는 음식을 만드는 법이나 평소의 행동거지 등 가정교육을 게을리하여 해서는 안 될 일을 반대로 부추기 고 꾸짖어야할 일도 웃어넘긴다.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는 사회에 나와서도 제멋 대로 행동하고 꾸짖거나 조언을 해도 듣지 않는다. 화를 내며 호되게 혼을 내도 말을 듣기는 커녕 도리어 원한을 품는다. 그러므로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은 사회에 전혀 도움 이 되지 않는다."
안지추는 아낌없이 사랑을 베푸는 것은 좋지만 꾸짖을 때는 꾸짖고 주의가 필요할 때는 주의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체벌이라고 해서 몸에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이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아이는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또한 편애를 해서는 안 되며,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먼저 태어난 사람이 나중에 태어난 사람에게 덕을 베풀어야 함을 강조했다.
안지추는 또한 긴 지면을 할애해 많이 배울 것을 권유했다. "'천만 재산이 서투른 기술보다 못하다.'는 속담이 있다. 기술 중에서도 배우기 쉽고 유익한 것이 독서다. 사람들은 훌륭한 인물이나 사건에 대해 조금이라도 많이 알고 싶어 하지만 책을 읽어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이는 마치 배가 고파도 음식을 만들지 않는 일과 같다." 혼란한 시대를 살아남으려면 개인도 무장을 해야 한다. 안지추는 학문과 교양을 제대로 갖춘 명문 귀족 출신으로 살아남기 위해 학문에 전념했다. 안지추에게 학문과 교양은 일과 생활에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른바 살아 있는 학문, 살기 위한 학문이었으며 일종의 기술이었다. 그래서 그는 항상 배움을 게을리 하지 말라고 강조했다.『안씨가훈』의 특징은 절묘한 균형 감각에 있다. 안지추는 매사에 도를 넘지 말고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안씨가훈』 전반에 짙게 깔려 있다. 안지추는 분수에 맞지 않는 사치와 살림 확장을 경계하고 벼슬을 할 때도 마찬가지로 정도를 넘지 말라고 조언했다. 소극적인 생활방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불안정하고 가혹했던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고 도를 넘지 않도록 균형감각을 익히는 일은 매우 적극적인 생활방식이다.
안지추는 높은 지위를 얻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사람을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바람직할까? 첫째로 자신의 부가가치를 높이며 적절한 때를 기다린다. "군자는 항상 옳은 길을 가며 덕을 쌓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며 때를 기다려야 한다." 둘째, 각자 자기 위치에서 주어진 일을 책임감 있게 수행해야 한다. 셋째, 좋은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 "사람은 훌륭한 사람과 사귀면 마치 향기 좋은 꽃이 가득한 방에 있는 것과 같아서 좋은 향기가 저절로 난다." 넷째, 남의 공을 훔치지 말라. "아무리 사소한 의견이라도 다른 사람에게 빌렸으면 그 취지를 분명하게 밝혀야 하며 남의 공을 훔쳐 자기 것인 척 해서는 안 된다. 비록 상대가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가 세운 공이면 인정해 줘야 한다."
"나는 혼란한 시대에 태어나 전쟁을 겪으며 성장했고 여러 나라를 떠돌아 다녔다." 안지추는 격동의 시대에서 수많은 난관에 부딪치며 힘들게 살았지만 역경을 극복하고 결국 통일왕조인 수왕조의 관리가 되어 평온하게 살다가 생애를 마쳤다.
오자 吳子 - 싸움의 전략전술과 위정자가 갖춰야 할 실전적인 가르침용병가인 동시에 정치가로서 활약한 오기의 생애를 그대로 반영한 『오자』는 싸움의 전략전술은 물론이고 정치에서 위정자가 갖춰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깊이 다루고 있다.
오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2400년 전인 전국시대 초기에 병법가로 활약한 인물이다. 당시 중국은 여러 나라로 분열되어 있었고 서로 살아남기 위해 격렬한 싸움을 벌여야 했다. 오기는 격동의 시대에 병법가로 재능을 인정받아 노나라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총사령관으로 발탁된 오기는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 온 이웃나라의 공격을 훌륭하게 격파하여 일약 병법가로 명성을 떨쳤다. 그러나 이를 시기한 중신들의 모략으로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물러나야 했다. 새로운 벼슬길을 찾아 나선 오기는 위나라로 건너가 문후황을 모시게 되었다. 당시 위나라는 열의로 가득 찬 새롭게 부상하는 신흥국가였다. 오기는 문후왕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76번의 싸움에서 64번의 승리를 거둔 오기의 눈부신 활약으로 위나라는 영토를 넓힐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