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3천년의 인간력
모리야 히로시 지음 | 청년정신
일반적으로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 또는 『좌씨춘추』를 줄여 『좌전』이라고 한다. 이는 노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춘추』를 토대로 춘추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책이다. 춘추시대는 유구한 중국 역사 중에서도 보기 드문 동란의 시대였으며 수백 개의 나라가 흥망을 되풀이했다. 『좌전』은 그들이 구사한 정치, 외교, 전술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생생하게 담았다.서융의 패자, 진나라 목공진나라의 시황제는 BC 221년 중국을 통일하고 춘추전국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 진나라는 춘추시대 초기부터 존재했던 제법 오래된 나라로 시황제시대에 갑자기 강해진 것이 아니라 몇 백 년 동안 착실하게 국력을 쌓다가 시황제시대에 절정을 맞았다.
춘추시대에 진나라는 서쪽 후미진 곳에 있는 후진국에 불과했다. 그러나 목공(穆公)이 즉위하면서 전성기를 맞았다. 이때 진나라는 국력이 급속하게 증대되고 중앙 선진제국에게 '서융(西戎)의 패자'로 불리며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BC 7세기의 일로 시황제보다 4백 년쯤 전의 일이다.
과연 목공은 어떻게 후진국이었던 진나라를 발전시켰을까? 우선 인재를 확보하고 등용하려는 노력을 들 수 있다. 진나라는 이상하게도 목공 이후 시황제에 이르는 4백년 동안 국내에서는 눈에 띌만한 인재가 거의 배출되지 않았다. 부국강병에 공헌한 사람들은 모두 다른 나라에서 등용한 사람들로, 진나라는 다른 나라에서 인재를 불러들여 부국강병을 이뤘다. 즉 목공이 첫 테이프를 끊은 셈이다.
목공은 열심히 인재를 찾아 백리혜, 건숙, 유여와 같은 쟁쟁한 인재를 등용했다. 게다가 이들을 전폭적으로 신뢰하여 이들에게 나라의 대사를 맡겼다. 목공은 부하들의 의욕을 끌어내는 데 탁월한 도량과 감각을 발휘했는데 그의 성공 비결은 부하를 진심으로 신뢰했다는 데 있다. 진심으로 부하를 대하고 한 번 등용한 사람은 비록 실수를 하더라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어느날 목공은 맹명시(孟明視)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하고 진(晋)나라를 공격하라고 명령했다. 그런데 군대는 패배하고 맹명시도 적에게 잡혔다. 훗날 그가 풀려나자 목공은 상복을 입고 궁 밖으로 마중 나가 "용서하시오. 모두 짐의 불찰이오. 그대는 지금의 치욕을 가슴 깊이 새기고 앞으로 맡은 일에 전념해 주시오."라고 사과하며 포로로 잡힌 부하를 처벌하지 않고 더욱 귀 하게 대했다.
3년 후 목공은 맹명시에게 진나라를 공격하라고 다시 명령했다. 맹명시는 과거의 부끄러움을 잊고 명예를 되찾겠다는 의욕에 불타 죽음을 각오하고 황하를 건너 지난 패배의 설욕을 씻어 냈다. 목공은 직접 접전지였던 효로 나가 그곳에 방치된 장병들의 사체를 정중히 매장하고 병 사들에게 맹세했다. "하늘로 올라간 영령들에게 고하오. 그대들을 죽게 한 죄는 실로 무겁소. 나는 나의 과오를 깊이 뉘우치고 이를 자자손손에게 알려 다시는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도록 할 것을 맹세하오. 부디 편히 잠드시오." 목공은 부하에게 공적을 돌리고 자신이 모든 책임을 졌으며 믿음으로 부하를 대했다.
또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목공이 아끼던 준마가 달아났다. 놀란 관리인이 수소문하여 알아보니 목공의 준마는 기산으로 달아났다가 그곳 마을 사람에게 이미 잡혀 먹혔다. 그는 관계자 3백여 명을 잡아들 이고 서둘러 목공에게 보고했다. 그러자 목공은 "고작 말 한 마리로 처벌을 내릴 필요는 없 소. 듣자하니 말고기를 먹고 술을 마시지 않으면 병에 걸린다고 하니 그들에게 술을 주도록 하시오."라며 마을 사람들의 죄를 용서하고 술까지 하사했다.
그 일이 있고 몇 년 후, 목공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전쟁터에 나갔다. 그러나 병력이 밀려 고 전을 면치 못했고 결국 목공은 적의 포위를 받아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는데, 그때 한 무리의 병사들이 쏜살같이 적의 포위망을 뚫고 들어와 목숨을 구출했다. 목공을 구출한 병 사들은 바로 예전에 준마를 잡아먹었던 기산의 마을 사람들이었다.제 무덤을 판 '송양지인'지나치게 온정에 치우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일에는 정도가 있으며 균형을 잡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여기저기 신경이 쓰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사람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는 결단력 있게 행동해야 하므로 이는 오히려 장애가 되기도 한다.
송나라의 양공(襄公)이 정(鄭)나라를 공격했다. 정나라도 그다지 큰 나라가 아니어서 강대국 인 초나라에게 도움을 청했다. 초나라는 즉시 대군을 동원하여 정나라 공격으로 텅텅 비어 있 는 송나라의 도읍을 공격할 준비를 했다. 이 소식을 들은 양공은 서둘러 돌아와 홍수(泓水)강 부근에서 초나라의 군사와 맞붙게 되었다.
양공이 이끄는 송나라 군대는 전형을 정비하고 초나라 군대가 쳐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런 데 초나라 군대는 아직 강을 건너지도 못한 상태였다. 이를 본 송나라 사령관 목이(目夷)가 양공에게 말했다. "초나라는 우리보다 병력이 강하므로 정면 승부로는 승산이 없습니다. 적이 강을 다 건너기 전에 공격해야 합니다." 하지만 양공은 비겁한 짓이라며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사이 초나라 군대가 강을 건너 진형을 정비하려고 했다. 목이는 다시 지금이야 말 로 공격해야 할 마지막 기회라고 고했다. 그러나 양공은 상대가 진형을 정비한 후에 공격해야 한다고 말하며 이번에도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양공의 군대는 무참히 짓밟히고 호위대는 모조리 전사했다. 그리고 양공은 허벅지에 부상을 입고 도망쳐야 했다.
먹고 먹히는 살벌한 전쟁터에서 적을 동정하면 이길 수 없다. 공연히 어진 척하다 싸움에서 패한 양공의 일에서 '송양지인(宋襄之人), 쓸데없는 아량을 베풂)이라는 말이 유래되었다. 상대가 아군이든 부하든 지나치게 아량을 베풀면 지도자로서 판단력이 떨어진다. 아량이나 이해심은 인간이 갖춰야 할 미덕이지만 지나치면 양공처럼 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을 이끄는 지도자는 이를 명심하고 항상 주의해야 한다.한비자 韓非子 - 인간불신의 관점에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자세열심히 일하여 출세 길에 오르고 마침내 지도자가 되었지만 스스로 무덤을 파서 자멸하는 사람이 있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한비자』에서는 여러 각도에서 그 이유를 분석하고 있다. '넘어지기 전에 지팡이를 짚어라.'는 속담도 있듯이 미리 대비하면 실패를 줄일 수 있다.
『한비자』에서는 인간은 누구나 이익을 좇아 움직인다고 주장한다. '이익'이라고는 해도 각자의 처지에 따라 의미가 다르다. 한평생 같이 사는 부부라도 남편의 이익과 아내의 이익은 엄연히 다르다. 또 같은 조직이라도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이익은 분명히 다르다. 하물며 군주와 신하, 부리는 사람과 부림을 당하는 사람의 이해관계는 어떠하겠는가. 그런데 세상에는 사리를 분별하지 못하고 안이한 생각으로 다른 이에게 권한을 넘기는 지도자가 있다. 『한비자』에서는 자신의 권한을 다른 이에게 넘기면 곧바로 실권이 떨어져 영향력을 상실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군주의 권한을 신하에게 맡기면 신하의 세력은 점점 커진다. 그러면 백성들은 신하를 위해 일하고 군주는 외면한다."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려면 권력을 틀어잡고 절대 다른 이에게 넘겨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자멸하는 둘째 원인은 사사로운 일에 집착해서다. 『한비자』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사례를 든다.
옛날, 진(晋)이라는 큰 나라가 '괵'이라는 작은 나라를 공격하려던 때의 일이다. 괵나라 를 치려면 인접해 있는 우나라를 지나가야했다. 그래서 진나라는 우나라 왕에게 보석과 준마를 선물하고 지나갈 수 있도록 요청했다. 우나라에 중신 한 명은 괵나라가 멸망하는 날, 우나라도 멸망할 것을 경고하며 이를 반대했으나 보석과 준마에 눈이 먼 우나라 왕은 반대를 무릅쓰고 길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자 중신이 우려한 대로 진나라 군대는 괵나라 를 쓰러뜨린 뒤 바로 우나라를 공격하여 보석과 준마를 빼앗았다.
누가 우나라 왕을 어리석다고 비난할 수 있겠는가. 누구나 한두 번쯤은 이런 실수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직을 이끄는 지도자라면 막중한 책임을 느껴야 한다. 지도자의 그릇된 판단은 자신뿐만 아니라 조직의 위험까지 초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비자』에서는 "욕심에 눈이 멀어 이익만을 좇으면 자신은 물론, 나라까지 위태롭다."라고 경고한다.
지도자가 자멸하는 셋째 이유는 쾌락에 빠지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지도자들이 음악과 가무의 쾌락에 쉽게 빠진다고 경고했는데, 이는 '여색에 빠진다'고 바꿔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다양한 놀이 문화가 생긴 오늘날은 여기 저기 유혹의 손길이 더 많다. 그러므로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좀더 주의를 기울어야 한다. 유혹에 빠지지 말라는 것은 놀이를 즐기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라, 일을 중시하고 적당히 놀이를 즐겨야지 놀이에 빠져 일을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것이다.
지도자가 자멸하는 넷째 원인은 '본거지를 비워두는 것'이다. 본거지란 군주에게는 나라, 경영자에게는 기업을 의미한다. 지도자가 오랫동안 본거지를 비우면 지배력을 상실하게 된다. 군주가 나라를 비운 사이에 반란이 일어나 밀려난 지배자, 또는 직무를 게을리 하여 다음 선거에서 낙선하는 거물급 의원 등의 사례를 종종 볼 수 있다. 이는 본거지를 비워서 자멸한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상사가 회사에 있으면 사내에는 일종의 긴장감이 감돈다. 그러나 상사가 자주 자리를 비우면 긴장감이 결여되고 그 결과, 실적부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직원을 너무 감시해도 안 좋지만, 너무 풀어놓아도 좋지 않다. 『한비자』에 나오는 '본거지'라는 말은 다른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데, 여러 가지 사업을 병행하는 경우에 본업, 즉 주가 되는 직업이나 사업으로 바꿔 이해하면 된다. 물론 생존을 위해 다각경영이 필요할 때도 있다. 그러나 부업은 어디까지나 부업이지, 본업을 뒷전으로 하고 부업에 매달려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자멸하는 다섯째 원인으로 '충신의 의견을 듣지 않는 것'을 든다. 이는 독재자나 독단적인 경영자에게 보내는 경고다. 옛날부터 중국인은 지도자로서 큰 공적을 세우기 위해서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한다고 했다. 우수한 인재 확보와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기껏 우수한 인재를 등용하고도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이런 점에서 항우와 유방은 대조적이다. 항우는 많은 인재를 등용했으나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아 결국 자멸의 길을 걸었다. 반면 유방은 자기보다 뛰어난 인재를 등용하고 그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천하를 얻었다.
지도자가 자멸하는 여섯째 원인은 '다른 사람의 힘에 의지하는 것'이다. 『한비자』에서는 "자국의 힘을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한 채 다른 나라의 힘에만 의존하면 멸망한다."라고 말한다. 이 문제는 작은 나라나 작은 기업일수록 심각하다. 생존을 위해 협력도 필요하지만, 외교에만 의지하면 멸시를 당하게 된다. 그러므로 다른 나라에 의존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지도자가 자멸하는 마지막 이유는 힘도 없으면서 예의조차 없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사람이 줄었지만 2세 경영자들 중에는 간혹 무능하면서 예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선천적인 원인도 있겠지만 이는 우물 안 개구리식의 틀에 박힌 생활환경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경영자가 이끄는 기업은 쇠퇴할 수밖에 없다.삼사충고 三事忠告 - 조직을 이끌어 가는 지도자의 마음가짐1269년 산동성 제남에서 태어난 장양호라는 사람이 있다. 어릴 때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여 부모가 주의를 줘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한다. 타고난 학구파였으므로 꾸준히 학문에 정진했으면 과거에 급제하여 고급관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10살 때, 송 왕조가 이민족인 원에게 멸망당함으로써, 한족 사람들은 출세길이 막히고 몽골족의 지배를 받으며 굴욕적인 생활을 했다. 다행히 그는 학식과 인격, 재능을 몽골족 고관에게 인정받아 한족 출신자로서는 비교적 높은 지위에 올랐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상사인 몽골인에게 아부를 떨거나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이익을 얻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한족의 자부심을 잃지 않고 끝까지 절의를 지켰다. 그는 절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고, 이를 몸소 실행하며 살았다.
"재산이 많고 지위가 높다하여 함부로 행동하면 안 된다. 가난하고 천하다 하여 위축되거나 비굴하게 굴면 안 되며 위협과 무력에도 굴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정도를 지키며 살아야 한다. 인간은 체구가 작고 수명도 짧다. 그러나 절의를 지키기 때문에 값진 인생을 살 수 있다."
장양호는 청렴결백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 재산을 털어 가난한 백성들을 돕고 범죄자를 바로 잡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데 힘썼다. 1329년 장양호는 60세의 나이로 부임지인 관중 지방에서 생을 마감했다. 심한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는 백성을 구제하기 위해 불철주야로 구조활동을 펼치다가 심신의 피로가 겹쳐 쓰러지고 말았다. 절의를 지키며 살아온 장양호다운 최후였다. 『삼사충고』는 장양호의 체험과 깊은 교양을 토대로 지도자의 마음가짐을 정리한 책이다.
장양호는 "자신에게 엄격하라."고 말했다. "항상 자기 수련에 힘쓰는 자는 명예를 얻을 것이고, 게을리 한 자는 치욕을 당할 것이다. 자기 수련에 힘쓰는 자는 항상 청렴한 태도를 유지하고 충성심이 강하고 정도에 맞게 일을 해결하며 겸손하고 조심스런 자세로 부하를 대하는 인물이다. 무릇 선비는 자신에게 엄격해야 한다.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할 위치에 있는 사람은 보통 선비보다 더 엄격하게 자신을 대해야 한다."
장양호는 지도자의 위기관리 능력 또한 강조했다. "보통 사람은 이미 일어난 일은 알 수 있지만 앞으로 일어날 일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용의주도한 사람은 이미 일어난 일을 미루어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한다. 명예를 누릴 때는 괜찮지만 일단 불명예스런 일에 휘말리면 다시 일어서기 어렵다. 일이 순조로울 때는 웬만큼 잘 해나가다가 일단 난관에 부딪치면 쉽게 좌절하는 사람은 책임 있는 지위에 올라 업적을 세울 수 없다. 사람을 평가할 때는 이 점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조직의 지도자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조직을 활성화하고 성장시키며 조직 내에서 인재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인사문제에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장양호는 인재를 판별하는 기준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첫째, 주변 사람들의 평판을 듣는다. 둘째, 행동을 살핀다. 셋째, 주변에 어떤 사람을 소개하는지 살핀다. 장양호는 인재 발굴뿐만 아니라 부하의 의욕을 이끌어내 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사람을 다루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남의 재능을 시기하지 말고 항상 공평한 태도로 대하면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좋은 방책을 얻고 용기 있는 사람에게는 힘을 빌릴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재능과 말솜씨를 과시하면 비록 현명한 사람이 옆에 있어도 도움을 받기 어렵다."
장양호는 평생 이익보다 정의를 중시하며 살았다. 그의 이러한 인생관은 대인관계에서도 나타난다. "다른 사람에게 배신 당해도 남을 배신하지 않으면 자신을 살릴 수 있고 선생을 독점하지 않고 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