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 라마, 삶을 이야기하다
달라이 라마 지음 | 북로드
티베트에서 불제자들은 스스로 깨달음을 얻기 위해 부처님의 경우를 본보기 삼아 수행법을 익히고 있다. 부처님의 일생을 통해 우리는 수행에 세 가지 단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도덕이 첫 번째고, 그 다음은 집중명상이고, 그 다음은 지혜다. 그리고 우리는 깨달음의 길에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연민의 자세를 기르고 지혜를 터득하는 것은 천천히 이루어지는 과정이다. 마음이 변하게 되면 주변 환경도 변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실천하는 관용과 사랑의 이점을 알게 된 사람들은 자신들 역시 그렇게 실천해보고자 노력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담겨 있는 경전들은 세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다.
① 도덕의 훈련
② 집중명상에 관한 말씀
③ 지혜의 훈련을 설명하는 일목요연한 지식
이러한 각각의 경전에서 주요한 수행은 '고요하게 머무르기(집중명상)'와 '특수한 통찰력(지혜)'의 결합에서 비롯되는 비범한 상태로 설명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결합을 일궈내려면 먼저 토대를 세우지 않으면 안 되는데, 그것이 바로 도덕이다.들어가면서
행복에 이르는 길행복을 얻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바깥에서 구하는 방법이다. 좀더 나은 집과 옷, 그리고 친구를 얻으면 어느 정도 행복함과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는 정신의 계발을 통해 내면의 평화를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법은 대등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평화로우면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행복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평화와 친절이 필요하다 : 우리는 모두 무력한 상태로 태어났다. 부모님이 우리를 친절하게 보살펴주지 않았다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의지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 늘 두려워하며 자라난 아이들은 평생 동안 고통을 겪게 된다. 어린이의 마음은 매우 예민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친절한 관심이 필요하다. 어른 역시 친절이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친절과 사랑, 즉 진정한 의미의 형제애와 자매애는 매우 소중한 것이다. 그것들이 있어야 함께 사는 것이 가능하므로 친절과 사랑은 우리 사회에 없어서는 안 된다.
연민의 마음을 기른다 : 우리 각자는 확실한 자아의식, 즉 '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또한 우리는 행복을 원할 뿐 고통을 원하지는 않는다는 기본적인 목적을 공유하고 있다. 좀더 깊은 차원의 행복을 얻는 법, 또는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을 생각해낼 수 있는 특별한 사고력을 갖춘 우리 인간만이 그 가능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것을 반드시 사용해야 한다. 개인, 가족, 지역 공동체, 국가 그리고 세계의 모든 차원에 걸쳐 우리가 맞닥뜨리게 되는 가장 해로운 말썽꾸러기가 바로 화와 이기주의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이기주의란 자아의식이 아니라 지나친 자기중심주의다. 평화와 평안 그리고 진정한 우정을 얻고자 한다면, 화를 최소화하고 친절과 따뜻한 마음을 길러야 한다.
서로의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 : 21세기의 세계경제는 수많은 나라들과 그 국민들을 서로 의존하도록 만들어버렸다. 따라서 나라들끼리 서로를 존중해주지 않는다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어버렸다. 빈국이건 부국이건 간에 한 나라 안에서는 빈민층과 부유층 간의 분쟁을 예고하는 심상치 않은 조짐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이러한 경제적 불화는 보다 강력한 전 지구적인 상호의존과 책임을 통해 치유될 수 있다. 하지만 위기 상황은 속출하고 있다. 전쟁 때문에 노인과 어린이들이 끊임없이 죽어가고, 무고한 사람들이 삶의 터전과 희망을 잃고 헤매고 있다. 군비경쟁을 통해 서로 우위를 차지하려고 하는 강대국들의 시도는 정말 비생산적인 것이다. 지금의 세계가 처한 절망적인 상황은 우리의 변화된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국가와 이념, 문화와 소수민족 그리고 경제 및 정치체제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다. 상호존중, 신뢰와 서로의 행복에 대한 관심은 지속적인 세계평화를 위한 최상의 희망 사항이다. 물론 국가 지도자들에게 이 문제에 대한 각별한 책임이 있기는 하지만, 모든 개인 역시 종교적 신념에 상관없이 주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다만 인간이라는 것, 그리고 행복을 얻고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 지구의 시민인 것이다. 좀더 나은 미래는 우리 모두의 손에 달려 있다.
인간의 화합을 위해 노력한다 : 우리의 가족과 국가 그리고 세계가 필요로 하는 화합과 우정은 오직 연민의 마음과 친절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탈출구를 찾기 위한 새로운 실천을 훈련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상적으로 보일지라도 인간의 가치와 인간의 하나됨을 인정하는 연민의 마음말고는 다른 대안이 전혀 없다. 이것이 지속적인 행복을 얻는 유일한 길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비심(慈悲心)이다. 즉, 진정한 의미의 형제애와 자매애를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보편적 종교라고 믿고 있다. 자신이 불자냐 기독교인이냐, 이슬람교도냐 힌두교도냐, 아니면 무종교인이냐 하는 것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인류가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연민의 마음을 전 세계를 잇는 스테이플 핀(Staple pin)이라고 부른다. 정치인, 기술자, 과학자, 주부, 의사, 교사 그리고 변호사 등 어떤 일을 하고 있든 간에 모든 사람에게 건전하고도 연민의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자극은 정신적인 성장의 기초가 된다고 할 수 있으리라.제1부 수행의 기초
세 가지 수행법제2부 도덕의 수행
도덕의 종류불교 계율의 주요한 원리는 다른 사람들을 돕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최소한 해치지 않는 것이다. 남을 위한 배려에서 비롯된 비폭력을 근본으로 하는 서원은 불교에서 볼 수 있는 세 가지 종류의 계율에서 핵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① 개인적 해탈을 위한 계율의 골자는 남에게 해를 미칠 수 있는 신업(身業, 몸으로 짓는 일체의 죄업)과 구업(口業, 말을 잘못하여 짓는 업)을 삼가는 것이다.
② 소위 보살계(菩薩戒)라고 하는 남을 위한 배려의 계율은 이기심을 억제하는 것을 골자로 삼고 있다.
③ 딴뜨라(Tantra)의 계율은 다른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도울 수 있는 심신이 완전히 발전된 상태를 상상하는 특수한 기법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개인적 해탈의 계율 : 개인적 해탈의 계율을 수행하자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미치는 신업과 구업을 삼가려는 자각이 필요하다.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십악(十惡)을 버려야 한다는 뜻이다. 십악은 세 가지 범주로 이루어져 있다. 몸으로 짓는 악업은 살생(殺生), 투도(偸盜)와 사음(邪淫)이다. 입으로 짓는 악업은 망어(妄語), 양설(兩舌), 악구(惡口)와 기어(綺語)다. 마음으로 짓는 악업은 탐욕(貪慾), 진에(瞋 )와 사견(邪見)이다. 행동은 동기에서 비롯되는 것이므로, 충동적이고 지나친 신업과 구업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동기를 제어하는 것이다. 사소한 목적에서 비롯된 동기는 개인적 해탈의 계율을 수행하는 궁극적인 이유, 즉 윤회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리는 새로운 자세로 윤회를 넘어서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십악을 끊고 깨끗한 행동을 하겠다는 서원을 세우면서 계율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삼가야 한다불자들은 먼저 부처님(佛), 깨달음(法), 정신적 공동체(僧), 즉 삼보(三寶)에 귀의한다는 맥락에서 계율을 지키겠다는 서원을 한다. 부처님은 고통과 한계 상황에서 귀의처를 찾는 법을 가르쳐주셨는데, 주된 귀의처 혹은 근본적인 보호처는 계(戒), 정(定), 혜(慧)의 수행을 통해 이룬 깨달음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부처님은 실제적인 귀의처, 즉 교리를 실천에 옮기는 법을 가르쳐주시기는 하지만, 주된 책임은 우리 자신의 실천에 있다. 개인적 해탈의 계율을 수행하면 전념(專念)과 내관(內觀)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도 도움이 된다. 전념은 자신의 신업과 구업을 아주 세세히 알아차릴 때 비롯되는 것으로 꿈을 꾸는 동안에도 지속된다. 먹거나 오갈 때, 혹은 앉거나 서는 등의 행동을 할 때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면, 강력한 전념의 상태가 확립될 것이다. 개인적 해탈의 계율을 수행하면 관용과 인내심도 늘어난다. 부처님은 인내심은 가장 높은 형태의 자기 수양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는 열반에 이를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수행은 자신의 태도를 변화시킨다는 뜻이다. 지금으로서는 사회에 이바지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정직한 시민, 즉 인간 사회의 착한 성원이 되는 것이다. 심오한 사상을 알고 있는가 하는 여부와 관계없이 바로 지금 어디에 있든지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 남에게 해를 끼치는 일을 삼가는 것이 계율에 깃든 가르침을 되살리는 처음 단계의 핵심이다.
· 일상 수행을 위한 요약
① 의식주에 집착하고 있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절에서 하는 만족의 수행을 재가신자(가정을 가지고 세속생활을 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사람들)의 삶 속에 접목시켜야 하며, 또한 적당한 의식주에 만족하는 법을 배운다.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남는 시간이 있으면 명상을 한다. 그러면 더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② 자신이 난처한 상황에 빠져 있거나, 모욕을 당하거나, 욕을 먹거나, 떠밀리거나, 두들겨 맞는 것을 떠나 남에게 몸으로나 입으로 해를 끼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강한 바람을 가져야 한다.널리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을 기본으로 삼는 수행을 했다면, 이제는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먼저 개인적 해탈의 계율을 통해 화와 같은 것들을 제어하는 법을 배우게 되면, 비로소 남을 편안하게 해주고 위해주는 방법을 배울 수 있게 된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은 수동적인 수행인 반면, 남을 돕고자 하는 것은 적극적인 수행이다. 부처님은 세 단계의 계율을 가르치셨는데, 그것은 개인적 해탈의 계율, 남을 배려하는 계율 그리고 딴뜨라의 계율이다. 남을 돕는 일은 대승의 가르침, 즉 두 번째 단계의 핵심이자, 소위 말하는 보살계라고 할 수 있다. 진정한 자비심은 단지 친구나 가족 혹은 끔찍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중생들에게 확장되는 것이어야 한다. 자비심을 최대로 발휘하려면 인내심을 닦지 않으면 안 된다. 진정한 자비심은 이성에 근거한다. 통상적인 자비심이나 사랑은 욕망, 혹은 집착의 제한을 받기 마련이다. 우리는 어려운 시절을 통해 정신적인 힘을 얻게 된다. 또한 그러한 시절을 통해 화가 정말로 쓸모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화를 내는 대신 말썽을 일으킨 사람을 깊이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 까닭은 그들이 화나는 상황을 야기함으로써, 우리에게 관용과 인내심을 닦을 수 있는 아주 소중한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 삶은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중국 공산주의 침략자들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이웃 나라로 쫓겨와 우리의 문화를 재건설해야 하는 어려운 경험을 겪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어려웠던 시절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했던 시절로 여기고 있다. 그 시절을 통해 나는 새로운 경험을 많이 했고 새로운 사상을 많이 배웠다. 그 덕분에 나는 좀더 현실적인 사람이 되었다.
현명하게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 : 내가 아무리 중요한 존재라고 해도 나는 다만 한 사람에 불과하다. 나는 다른 모든 사람들처럼 행복을 누릴 똑같은 권리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하나고 남은 여럿이라는 데 차이점이 있다. 단 한 사람의 행복을 잃는 것도 간과할 수 없지만, 수많은 다른 존재들의 행복을 잃는 것만큼 중요하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다른 이들에 대한 자비심, 사랑 그리고 존중하는 마음을 길러야 한다. 종교, 이데올로기, 민족, 경제체제, 정치체제, 그리고 정부의 차이는 모두 부차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나는 만일 우리가 이기적인 사람이라면 현명하게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통상적인 이기주의는 일신의 요구만을 염두에 두지만, 현명하게 이기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 대하기를 자기와 가까운 사람들 대하는 것처럼 할 것이다. 결국 이런 방법을 취하게 되면 만족과 행복은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심지어 이기적인 관점에서 본다 해도 다른 사람들을 존중하고,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줄여야 더 나은 결과를 얻게 된다. 다른 이들을 배려할 줄 알면, 자신의 행복은 저절로 이루어진다. 남에 대한 배려가 소중하다고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유는, 그로 인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대국적 견지에서 볼 수 있게 된다는 점 때문이다. 시야가 좁으면 사소한 문제조차 견딜 수 없게 된다. 모든 중생을 염려하는 마음을 갖게 되면 시야가 넓어져서 더욱 현실적인 사람이 된다. 이와 같은 이타적인 자세는 자신의 고통을 당장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내가 사람들에게 간곡한 마음으로 바라는 것은 종교를 믿고 있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이 사랑과 친절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을 통해 우리는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된다.
우리의 책임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 세계사를 살펴보면, 가공할 인명 손실을 불러일으킨 커다란 비극들 모두가 인간 때문에 생긴 일임을 알 수 있다. 인간 때문에 골치 아픈 문제가 생긴다. 오늘도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인종, 민족 그리고 경제적 대립에서 빚어지는 끊임없는 갈등과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 자신의 마음과 세상을 괴롭히는 감정인 탐욕, 증오 그리고 무지의 쓰레기 더미 한가운데서도 자비로운 태도를 가질 수 있고, 그것을 보석처럼 소중히 여겨야만 한다. 이 소중한 발견을 통해 우리는 행복과 진정한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자기 자신보다 진정으로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잘 훈련된 태도는 자타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그것은 일시적으로나 장기적으로나 그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 자비심은 무가지보(無價之寶)라 할 수 있다. 언제든지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 한다. 남을 도와줄 수 없다면 최소한 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 이것이 바로 계율 수행, 즉 지계(持戒)에 담긴 근본적인 의미다.
· 일상 수행을 위한 요약
① 차분하고도 합리적인 마음가짐을 유지한다.
② 자신의 오른쪽 앞에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또 하나의 자기가 있다고 상상한다.
③ 자신의 왼쪽 앞에 자기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다시 말해 친구도 아니고 적도 아닌 고통받는 한 무리의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고 상상한다.
④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양쪽을 살펴본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해본다. "양쪽 다 행복을 원한다. 양쪽 다 고통을 떨쳐버리기를 바란다. 양쪽 다 이러한 목표를 이룰 권리를 가지고 있다."
⑤ 다음과 같은 점을 생각해본다. 우리가 흔히 좀더 장기적인 이익을 위해 일시적인 희생을 기꺼이 감수하는 것처럼, 자신의 왼쪽에 있는 고통받고 있는 더 많은 사람들의 이익이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이기적인 단 한 사람의 이익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우리의 마음이 자연스럽게 더 많은 사람들이 있는 쪽을 향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제5부 딴뜨라
천신(天神)요가불교에는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유형의 수행인 현교(顯敎)의 수행법과 밀교(密敎)의 수행법이 있다. 지금까지 논의해온 것은 현교의 수행법이었다. 밀교, 즉 딴뜨라의 특수한 목적은 자격을 갖춘 수행자가 하루 빨리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지름길을 제시하는 것이다. 딴뜨라에서는 수행을 할 때 천신요가라고 하는 상상력을 명상에 활용하고 있다. 독특한 이 딴뜨라 수행을 하자면, 자신이 부처님이 갖춘 몸, 행동, 방편 그리고 환경을 가지고 있다고 관상(觀想)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것을 일러 "정신적인 길로서 상상력을 택하기"라고 한다. 그러면 이 수행의 염려스러운 점에 대해서 한번 생각해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