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전
정후수 지음 | 어진소리
복숭아 나무 아래는 저절로 길이 열린다조상이 남겨준 것바둑 구경제5부 슬기로운 이는 순시에 이루고 어리석은 자는 역리에 패하나니…
앵혈(櫻血)명나라 때 홍자성이 쓴 『채근담』에 보면, 조상이 나에게 남겨준 것은 무엇이며 또 내가 후손에게 물려줄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서 적절하게 말하고 있다.
"조상의 덕을 묻는다면 내 몸이 누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니 마땅히 그 쌓기 어려움을 생각할 것이요, 자손의 복을 묻는다면 내 몸이 끼칠 것이 그것이니 그 기울어 엎어지기 쉬움을 생각할 것이다."
내가 지금 누리는 모든 것은 조상의 덕택이니 조상들의 노고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또 내가 지금 잘해야 자손이 복 있는 삶을 누릴 것이니 항상 겸허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옛말에도 자손에게 천금을 남기는 것보다 경서 한 권 남겨주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했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잘 되면 내 덕이요 못 되면 조상 탓으로 돌리기 마련인데, 그럼 마음 가짐으로는 결국 제 얼굴에 침 뱉는 꼴밖에 되지 않는 것이다.
'채근담'은 '사람은 항상 나물뿌리를 씹을 수 있으면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다'는 『소학』의 격언에서 따온 말이다. 풀뿌리를 씹는 청빈한 생활에 마음을 주고 외물에 동요하지 않는 삶을 산다면 바른 길로 갈 수 있다는 진리를 담고 있는 제목이기도 하다.오동나무 잎을 따서 동생에게 제후의 자리를 준다는 말로, 임금이 관직을 줄 때 성의 없이 장난으로 주는 것을 말한다.
상(商)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워 임금이 된 무왕은 임금이 된 지 2년 만에 죽고 말았다. 이때 나이 어린 태자가 왕위에 오르니 그가 곧 성왕(成王)이다. 나이 어린 임금을 대신해 무왕의 동생인 주공(周公) 단(旦)이 7년 동안 어린 조카를 보필했다.
어느날 어린 성왕이 동생인 당숙 우와 함께 놀고 있었다. 갑자기 성왕이 뜰에 있던 오동나무의 잎을 따서 동생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것은 왕인 내가 너에게 주는 징표이다. 너를 진후(晋侯)에 봉하노라." 엉터리 징표를 만들고 깔깔거리는 어린 성왕을 향해 주공이 엄하게 꾸짖었다. "신이 듣기를 임금은 희언(戱言)이 없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임금의 말은 곧 역사에 남고 후세 사람들이 임금의 말을 노래하고 칭송하기 때문입니다."
어린 조카를 잘 보필한 주공은 자신이 얼마든지 임금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었건만 조카가 장성하자 미련 없이 대권을 성왕에게 물려주었다.중국 초나라 왕이 신하를 보내서 어릉에 사는 자종(子終)이란 사람을 찾았다. 평소 자종의 인물 됨됨이를 알고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중용하려는 것이다. 자종이 아내에게 말했다. "임금께서 나를 국가 원로의 직에 앉히겠다는 분부가 계셨소. 그렇게 되면 당장에라도 사두마차를 타고 요란히 행차할 수 있고, 또 매일 진수성찬을 먹을 수 있을 게요."
그러나 아내의 생각은 달랐다. "당신은 비록 신을 삼으면서 생계를 이어갈망정 행복을 느끼고 있습니다. 집에 거문고가 없습니까, 책이 없습니까? 사두마차를 타고 맛있는 음식을 먹는다 하더라도 결국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분수가 지나쳐서 조금 더 호강을 하고 조금 더 많이 먹는 대가로 초나라 전체의 근심을 도맡으시렵니까? 쓸데없는 일입니다. 목숨을 짧게 하는 일에 지나지 않을까 합니다."
자중은 심부름 온 신하에게 정중히 거절하였다. 임금의 명을 거역한지라 그곳에 살 수가 없어서 그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 농사를 지으며 안락한 일생을 마쳤다.조선 영조 대왕이 사대부 집의 딸들을 궁중에 모여 앉혀 놓고 친히 간택을 하였다. "꽃 중에 가장 좋은 꽃이 무엇인가?" 그러자 내노라 하는 가문의 딸들은 제각기 자기가 좋아하는 꽃의 이름을 대기 시작했다. 어떤 여인은 '복숭아'라 하고 어떤 여인은 '모란'이라 하고, 또 어떤 여인은 '해당화'라고 하였다. 그런데 한 여인만이 묵묵히 있더니, "이 세상에 가장 좋은 꽃은 면화입니다."라고 하지 않는가. 세상에 면화처럼 보잘 것 없는 꽃도 드물 것이다. 그건 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허연 모습의 솜이다. 임금이 하도 이상해서 그 까닭을 물었다.
"다른 꽃은 한때 좋아하는 정도로 그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면화는 옷이 되어 천하 사람들을 따뜻하게 하는 공로가 있습니다." 이 여인이 후비로 뽑혔음은 당연한 일이다.겸손은 동양의 미덕으로 통한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면 으레 한두번은 사양을 한 뒤에 받는다. 그것이 어른에 대한 아랫사람의 예절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옛날 중국의 어떤 장군은 싸움에 나갈 때는 제일 먼저 돌격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았고, 후퇴하는 데는 맨 뒤로 하여 다른 사람을 먼저 피하도록 하였다. 그러한 그를 사람들이 칭송하자 장군은 고개를 저었다. "말이 늦게 달려 맨 뒤에 왔을 뿐이다." 이처럼 겸손이란 자신의 공적도 내세우지 않는 것이다.
도리불언하자성혜(桃李不言下自成蹊)라는 말이 있다. 복숭아와 오얏나무는 맛이 있어서 그것을 먹으려고 오는 사람이 많다. 그런 까닭에 자연히 그쪽으로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즉 덕이 있는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몰려온다는 뜻이다. 그럴 듯하지 않은가.후한의 광무제가 끔찍이 아끼는 신하 중에 고집이 세기로 유명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낙양 태수 동선이라는 사람이다.
광무제의 누이 호양공주의 몸종이 살인을 하고 공주 집에 은신해 있었다. 포졸이 호양 공주 집에 이르러 범인의 인도를 요구하자 호양공주가 이를 거부하였다. 낙양 태수 동선은 공주가 외출하는 틈을 노리고 있다가 공주와 함께 수레를 타고 나오는 살인범 몸종을 발견하고, "이런 못된 놈이 있나? 당장 내려오지 못하겠느냐?" 꾸짖으며 수레에서 끌어내려 때려 죽여 버렸다.
공주가 이 사실을 광무제에게 호소하자 광무제는 크게 노하여 당장 동선을 벌러들여 장살(杖殺 : 매로 쳐서 죽임)하여 하였다.
"종이 살인을 했는데도 눈감아준다면 어떻게 천하를 다스를 수가 있겠습니까? 신은 폐하의 매를 기다리기 전에 먼저 죽을 것이오니 허락하여 주십시오!"
동선은 그렇게 말하고 기둥에 머리를 마구 찧었다. 광무제는 내시에게 명하여 피투성이가 된 동선의 몸뚱이를 억누르게 하고 머리를 조아려 공주에게 사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동선은 막무가내로 두 손을 땅바닥에 대고 버티면서 끝내 사죄하지 않았다. 광무제는 동선의 강직함에 놀라 새삼 놀라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집쟁이 동선아, 그만 물러가라!" 광무제는 30만 전의 상금을 내려 그의 강직함을 찬양했다.황희 정승에게 수신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수신은 공부에 게으르고 술을 즐겨 걸핏하면 마을 술집에서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 뿐만 아니라 심하게 취하여 아예 잠을 자고 오는 일도 있었다. 황 정승은 그런 아들에게 몸가짐을 바로잡고 행동거지를 조심하라고 일렀다. 그러나 부친의 훈계를 귓전으로 흘렸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듯하다가도 며칠 지나면 술집으로 달려가기가 일쑤였다.
"한번 더 체통을 저버리거나 술집에서 자고 오는 일이 있으면 아들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알겠느냐?" 황 정승의 호통에 수신은 굳게 맹세했다. 그러나 작심삼일. 모처럼 만난 친구들의 권유를 이기지 못하고 술집에서 밤을 지새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불안한 마음으로 술집 문을 나서는데 평복을 입은 채 기다리고 있던 황 정승이 엎드려 절을 올렸다. 수신이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며 일으켜 세웠지만 막무가내였다.
"도련님, 저도 도련님과 같은 자식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잃었습니다. 도련님을 보니 자식 생각이 나서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지금 나라에는 할 일이 많이 쌓여 있습니다. 그런데 영동(楹棟 : 가장 중요한 인물)과 같은 도령께서 술타령이나 하신다면 장차 이 나라가 어찌 되겠습니까?"
비로소 아버지의 충정을 깨달은 수신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조선 선조 때의 일이다. 난리가 아니라는 소문이 뒤숭숭하던 차에 선조는 지인지감(知人之鑑)이 있는 어떤 명사에게 사람을 하나 천거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얼마 만에 들어와 이렇게 고하는 것이었다. "어명대로 하나 구하긴 했습니다만 워낙 쇠약해 있으니 삼(蔘) 서 근만 하사해 주시면 회복도 되려니와 특히 역량을 발휘하여 봉사할 것입니다."
어련하랴 싶어 삼을 보내주었는데 그 뒤 데리고 들어온 사람을 살펴보니 세 치 관복이 끌릴 정도로 작은 체구에 얼굴은 긴 것이 도무지 볼품이 없었다. 임금은 기대에 반도 차지 않아, "삼 서 근 버렸군!"하고 내뱉듯이 말했다. 바로 이 사람이 오리 이원익이다.
훗날 임진왜란을 당하여 선조가 피난길에 올랐을 때이다. 아무리 초조한 몽진길이라고는 하나 수라가 번번이 늦으니 시장해서 참을 수가 없어 담당자를 불러 나무랐다.
"다름이 아니라 이원익이 와서 먼저 한 가지씩 먹어보고 뙤약볕에 한참씩 드러누웠다가 아무 이상이 없으면 들여보내기 때문입니다."
그 말을 듣고 선조가 이원익을 불러 탄하자, "이 분란 중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누가 알겠습니까? 그래서 신이 먼저 한 가지씩 먹어본 것이고, 만약에 독이 들었더라도 양기(凉氣 : 서늘한 기운)에 있는 것보다 볕에 누워있으면 빨리 퍼질 것이라 여겨 신의 소신껏 하였습니다." 아뢰니 그제야 임금은 고개를 끄덕이며, "삼 서 근 찾았군!"하며 흡족해 했다.제2부 참다운 두려움을 모르는 자 두려움에 빠지리니…
허세 없애기아들의 혀를 찌른 사람경종은 사물을 보는 식견이 없는 황제였으나 시기심만은 강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찬 받기를 좋아하는 인물이었다. 어느 날 여러 명의 학사를 궁정에 초대하여 환담하였다. 화제는 전한 문제의 검약한 생활을 찬양하는 것이었다. 이 자리에서 경종은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의 소매를 가리키면서 자랑스러운 듯 말했다.
"짐은 옷을 세 번이나 세탁해서 입고 있노라." 자리를 함께 했던 학사들은 입을 모아 경종을 찬양하였으나 유공근만은 칭찬의 말을 하지 않았다. 의아스럽게 생각한 경종이 왜 잠자코 있느냐고 묻자 유공근이 한일자로 꼭 다물었던 입을 열면서 말하였다.
"모름지기 천하를 다스리는 자는 어진 사람을 받아들이고 불초한 인물은 물리쳐야 하옵니다. 칭찬할 일은 칭찬하고 벌할 일은 벌하여 여러 가지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데 힘쓰지 않으면 아니 되옵니다. 폐하께서 세 번 세탁한 옷을 입으셨다는 일은 국가를 다스리는 큰 일과 비교하면 전혀 이야깃거리도 안 되는 사소한 일인 줄로 아옵니다."
자리에 있던 학사들은 모두 경종이 노하여 유공근을 큰 죄로 다스리지 않을까 하여 식은땀을 흘렸으나 당사자인 유공근은 조금도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었다.
유공근은 글씨로 거액의 돈을 벌 수 있었으나 돈에는 무관심했다. 그러나 자신이 애용하는 붓, 먹, 벼루, 서적들에 대해서만은 대단히 엄격하여 어느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당나라 명황 때 왕적신이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둑을 잘 두어 천하에 자기를 따를 자가 없다고 늘 자부하였다. 그 왕적신이 황제가 서촉으로 피난을 갈 때 따라나섰다가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곳으로 들어갔다. 깊은 시골길을 따라가자니 시냇가 외딴 집이 있어 들어가 하룻밤 지내게 되었다. 그 집에는 남자란 없고 시어머니와 며느리 두 여자뿐이었다. 겨우 물 한 모금 얻어 마시고 잘 곳을 얻었다.
밤이 깊어지자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말했다. "오늘같이 좋은 밤 바둑이나 두자."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고부가 자는 방은 서로 떨어져 있었고 말로 바둑을 두는 것이었다. 얼마 후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말했다. "네가 졌다. 내가 아홉 점 이겼다."
그냥 지나칠 왕적신이 아니었다. 이튿날 노파에게 바둑을 가르쳐달라고 졸랐다. 노파가 가만히 보더니 며느리에게 말했다. "얘야, 이 사람은 가르쳐 볼 만하니 상수를 가르쳐 주어라."
그렇게 해서 한 수 배우고 돌아온 왕진석은 천하무적이 되었다.조선조 임금 중에서 가장 지혜로운 왕은 누구일까? 바로 성종이라고 한다. 성종의 지혜는 가히 솔로몬의 지혜에 버금갈 만하다고 하겠는데 다음은 그의 쾌도난마적 일화이다.
한 벼슬아치가 상처를 한 후 후취를 얻었는데 곧 이혼하겠다고 왕께 아뢰었다. 성종이 까닭을 묻자 신방 첫날밤에 앵혈이 풀리지 않으니 순결한 처녀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종은 알 수 없었다. 후취로 들어간 여인의 집안은 서울에서도 엄격하기로 소문난 집이었으므로 딸이 시집을 가기도 전에 남자를 알게 내버려둘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혹시 야밤에 누군가 담을 넘어와 일을 저지르지는 않았는가 의심한 성종은 그림 그리는 내관을 불러 신부의 친정 집 구조를 상세히 그려 오라 일렀다. 내관이 그려온 그림에 의하면 담도 높고 사나운 개도 있어서 담을 넘을 수도 없었다. 그런데 신부가 거처한 방 옆에 있는 옥외 다락이 마침 눈에 띄었다. 해서 그 다락방의 용도를 물어보니 그 다락에서 내려다보는 바깥 경치가 기가 막혀서 신부가 자주 오르내렸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인 성종은 벼슬아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네가 걱정하는 것은 근거가 없으니 데리고 살아라. 신부가 초야에 앵혈을 흘리지 않았음은 남자를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높은 곳을 자주 오르내렸기 때문이니, 이는 밤송이가 절로 터짐과 같은 이치니라."
사람들이 모두 임금의 지혜로움에 감탄해 마지 않았다.차신차의(且信且疑)고집쟁이 동선삼 서 근 찾았군옛날에는 이웃에 있는 나라끼리 어려운 문제를 내어서 지혜를 겨루는 일이 있었다. 어느해 겨울 중국에서 참으로 엉뚱한 문제를 보내왔다. 그것은 돌로 배(船)를 만들어 보내라는 주문이었다. 이 문제를 받자 조정에서는 임금을 비롯한 신하들이 근심에 싸여 있었다. 이리하여 나라에서 각 지방 수령들에게 방을 붙이도록 했다. 방을 본 사람들은 중국을 욕했고, 조정의 사람들이 점점 초조해 갈 무렵 어느 시골 마을에 열 살쯤 된 소년 하나가 나서서 임금을 만나 뵙기를 청했다.
"모든 일에는 이치가 있으니 이를 알면 금방 풀 수가 있어요."
그 소년이 하도 당돌한 말을 하니 사람들은 한편으로 믿고 한편으론 의심(且信且疑)하면서 임금을 뵙게 해주었다.
"상감마마, 저는 돌배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돌배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돌배를 만들지 않아도 되는 방법? 그래 어서 말해 보아라!"
"예, 물에 뜨는 돌배를 만들라는 것은 이미 이치에 어긋나는 것입니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에는 이치에 맞지 않는 말로 대답하는 것 이상의 답이 없습니다. 그러니 곧 중국에다 회답을 쓰십시오. '우리나라에서는 큰돌로 배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이 배를 끌어갈 밧줄이 없다. 그러니 중국에서는 이 배를 끌어갈 모래 밧줄을 보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과연 놀라운 재치구나."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한 임금님은 어려운 고비를 무사히 넘기게 해 준 소년에게 큰상을 내렸다.수나라 명장 하약필(賀若弼)은 입이 무거운 장수로 유명했다. 그는 평생 허튼 소리 한 번 하는 일이 없었으며 쓸데없는 농담도 하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입이 무거운 장수가 된 데에는 그의 아버지와 관련된 까닭이 있었다. 하약필의 아버지 하돈(賀敦)은 수나라의 제법 높은 관리를 지낸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임금에게 한 말이 화근이 되어 갖은 고초를 겪다가 마침내는 사형을 당하게 되었다. 사형을 받게 된 하돈은 마지막으로 아들 약필을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