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경전 - 위민지략
왕야오후이 지음 | 북로드
세상사에 밝은 지혜로운 자들은 공명(功名)과 이록(利祿)을 거절하지도 않지만, 결코 그것을 섬기지도 않는다. 그들은 행동과 쓸 것과 버릴 것에 있어서 사람을 근본으로 삼고, 일의 이치(理致)를 귀의처로 삼아, 사람에게 이로우면 행하고 사람에게 손해가 되면 행하지 않는다. 보잘 것 없는 사람들만이 권세와 이록을 섬겨서 종일 제 몸을 피로하게 할 뿐이다.
맹자는 말했다. "오로지 임금만을 섬기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임금을 섬기면서 임금의 환심만을 구하는 사람이다. 국가와 사직을 안정시키는 신하가 있으니, 그는 국가와 사직의 안정을 자신의 기쁨으로 삼는 사람이다. 천민(天民)이 있으니, 그는 도가 천하에 통할 수 있을 때 도를 힘써 실천하는 사람이다. 대인(大人)이 있으니, 그는 자신을 바르게 할 뿐이되 다른 사람도 그를 따라서 바로 되게 하는 사람이다."
나라를 위하고 백성을 위하는 것이 관리의 올바른 길이다. 군주를 섬기는 것만을 최우선으로 아는 사람은 좋은 관리가 될 수 없다. 안중에 군주만 있다면 심중에 백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은 이치로 심중에 군주만 있는 사람은 군주의 사리사욕을 채워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백성들에게는 해만 끼칠 뿐이다. 사실 이와 같은 사람은 군주를 위하여 벼슬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오직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벼슬하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군주의 입장에서 이런 사람을 관용으로 대한다면, 그만큼 해로운 신하도 없을 것이다.
신하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무엇 하나 이로울 것이 없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자신의 자리보전에만 있기 때문에, 그것을 위하여 항상 전전긍긍하면서 불안한 삶을 살아갈 것이다. 나날의 삶이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 것처럼 심기가 불편하고 일의 보람이나 의욕도 떨어져 결코 즐겁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이런 삶은 지혜로운 자에게 있어서는 절대 의미있는 삶이라 할 수 없다.
맹자가 제나라 임금과 대화를 나누었다. "당신의 신하 중에 처자를 친구에게 부탁하고 초나라로 간 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돌아와 보니 그의 처자는 얼마나 추위에 떨고, 굶주렸는지 몰골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이 그의 입장이라면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이 친구에 대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말할 것 없이 절교할 것입니다."
"당신 밑에서 형벌을 관장하고 있는 장관이 있습니다. 그가 하급관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해임시킬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 나라의 정치가 돌아가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제나라 임금은 고개를 떨구고 좌우를 둘러보면서 화제를 다른 곳으로 옮겼다.한번은 제자가 맹자에게 물었다. "왜 걸과 주는 자신의 나라를 잃었습니까?"
"그 까닭을 알고 싶으냐? 그들이 백성들의 지지를 잃었기 때문이다. 백성들이 어진 임금을 찾아가는 것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고, 짐승이 광야를 달리는 것과 같은 자연적인 이치다. 깊은 연못을 위해 고기들을 몰아주는 것은 수달이다. 숲을 위해 새들을 몰아주는 것은 매다. 상나라의 탕왕(湯王)과 주나라의 무왕(武王)을 위해 백성들을 몰아준 이는 하나라의 걸과 은나라의 주니라."
수달이 연못을 위해 고기들을 몰아주니, 연못은 저절로 고기를 얻지 않을 수 없다. 매가 숲을 위해 새들을 몰아주니, 숲은 저절로 새들을 얻지 않을 수 없다. 걸과 주는 제 스스로 잔악하고 포악하여 민심을 잃음으로써 저절로 백성들을 잃어버린 것이다. 나라를 얻으려면 반드시 민심을 얻어야 하고, 이는 수많은 치국 방책 중에서 가장 으뜸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민심을 얻을 수 있을까? 맹자는 말한다.
"민심을 얻는 일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백성을 위해 어진 정치를 행하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성들이 바라는 것에 귀 기울여 주고, 그들의 안위를 끊임없이 살펴야 한다. 또한 백성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 그들에게 이로운 정책을 마련하고, 백성들이 싫어하는 것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으면 된다. 이와 같이 하면 민심을 얻을 수 있다."
민심을 얻음은 백성들을 편안하게 하는 데 있다. 백성들을 편안하게 함은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는 데에 있다. 즉 백성들을 부유하게 하여 나라를 강성하게 하는 것이 민심을 얻는 길이다. 나라의 근본은 백성이니, 나라의 부유함은 백성들의 부유함에 있다. 국력의 강성함이 전적으로 백성들의 부유함에 달려 있는 것은, 작은 하천에 물이 있어야 큰 강이 가득 찰 수 있는 것과 같다. 작은 하천의 물줄기가 끊기면 큰 강도 마를 수밖에 없다. 이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간단한 도리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법칙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후에게는 세 가지 보배가 있으니 인민, 토지, 정사가 그것이다. 백성이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며, 임금은 경미하다."
맹자는 그에게 치국의 방도를 묻는 제후들에게 늘 말했다. "백성들을 부리되, 그들을 편안하게 해주기 위해 부려라."저울질해본 뒤에야 경중(輕重)을 알 수 있고, 자로 재어본 뒤에야 장단(長短)을 알 수 있다. 저울질하고 자로 잰다는 것은 비교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교를 하더라도 어떻게 해야 제대로 하는지 그것을 알아야 한다.
어떤 사람이 맹자의 제자 옥려자(屋廬子)에게 물었다. "예와 먹을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물론 예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혼인과 예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예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재차 물었다. "예가 더 중요한 것은 충분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혹여 예를 따르면 굶어죽고, 따르지 않으면 사는 경우에는 제가 어찌 해야 합니까? 예를 따르면 아내를 얻을 수 없고, 따르지 않으면 얻을 수 있는 경우에는 제가 어찌 해야 합니까?"
옥려자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이튿날 맹자에게 가서 물었다. 그랬더니 맹자는 다음과 같이 알려주었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질문이었더냐. 밑은 살피지 않고 꼭대기만 쳐다보고 비교하자면, 높은 곳에 있는 나무가 높은 누각의 꼭대기보다 높을 수 있다. 쇠가 깃털보다 무겁다고 말하지만, 아주 작은 쇳덩이가 큰 수레에 가득 담긴 깃털보다 무겁다고 말할 수는 없다. 먹는 것의 중요한 부분과 예의 말단적인 부분을 가지고 비교한다면, 어찌 먹는 것이 더 중요해 보이지 않겠는가. 혼인의 중요한 부분과 예의 말단적인 부분을 가지고 비교한다면, 어찌 혼인이 더 중요해 보이지 않겠는가."
"과연 그렇습니다."
"그대는 어서 그 사람에게 돌아가서 다음과 같이 말해봐라. 지금 당장 형의 팔을 비틀어 형이 가지고 있던 것을 빼앗아야 굶주림을 면할 수 있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굶어야 할 경우 어떻게 하겠는가. 이웃집 담장을 넘어가서 이웃집 여자를 보쌈해야 아내를 얻을 수 있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혼인할 수 없는 경우 어떻게 하겠느냐고 말이다."
옥려자가 돌아가서 맹자의 말을 그 사람에게 해주었는지에 대한 확인은 『맹자』에 더 이상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맹자의 생각을 분명히 알고 넘어가야 한다. 그것은 바로 사물의 말단에 미혹되어서는 안 되며, 사물의 현상이 사물의 본질을 가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정확히 저울질하고 척량하여 사물의 본말과 경중을 분명히 안 뒤에야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확한 선택의 관건은 우리들이 본말과 경중, 대체(大體)를 얼마만큼 잘 아는가에 달려 있다. 본말을 알고 대체를 알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으며, 경중을 알면 구체적 정황에 따라서 그것에 맞게 대처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근본인가? 도가 근본이고, 의가 근본이고, 지조가 근본이고, 참된 사람으로서의 존재가 근본이다. 무엇이 말절인가? 구체적인 행동이 말절이며, 구체적 행위의 사소한 것들이 말절이다. 말절은 근본에서 생기므로 스스로 근본을 보호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므로 어떤 선택이든 뿌리인 근본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무엇이 하찮은 것인가. 한때의 득실과 승부에 마음이 쏠려 전념하는 것이 하찮은 것이다. 무엇이 소중한 것인가? 사람으로서의 도의를 견지하고 지키는 것이 소중한 것이다. 물론 득실과 승부를 등한시해서도 안 되겠지만, 그것으로 인하여 자신의 소중한 것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 대체를 안다는 것은 무엇인가? 본말을 알고 경중을 아는 것이 바로 대체를 아는 것이다. 경중을 분별치 못하고 근본을 버리고 말절을 추구하며, 사사로운 이해를 좇아서 도의를 잊어버린 채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대체를 잃은 것이며, 대체를 잊어버린 것이다. 본말을 알고 경중을 알고, 대체를 알아야 정확한 선택을 할 수 있다.벼의 자람은 전적으로 우로(雨露)의 양육 덕분이다. 강과 바다가 마르지 않는 것은 전적으로 시냇물이 보태어지는 덕분이다. 사람이 제 본성을 간직하는 것도 전적으로 자신을 보전하려는 노력 덕분이다. 맹자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어 말했다.
"제나라 도성 남쪽 교외에 있는 우산(牛山)은 본래는 수목이 무성하였다. 그러나 도성에 가까이 있기에 사람들이 땔감을 위하여 늘 나무를 베었고 소와 양들을 방목하였다. 그러니 어찌 우산이 수목의 무성함을 유지할 수 있었겠는가. 우산의 나무도 낮에는 햇볕을 받고 밤에는 우로(雨露)에 함초롬히 젖어서 끊임없이 어린 싹과 새 가지를 내면서 자랐지만, 사람들의 도끼와 소와 양들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그 결과 지금은 민둥산이 되어버렸다. 사람들은 저 민둥민둥한 우산을 보고서 저 산에는 일찍이 나무가 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것이 어찌 우산의 본모습이리오."
사람이 가진 인의(仁義)의 선량한 심성도 흡사 우산의 나무와 다를 것이 없다. 맹자는 말하기를, "인의의 선량한 심성을 사람들마다 모두 가지고 있지만,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선량한 심성을 잃어버리는 것은 사람들이 도끼로 우산의 나무들을 베어버리듯이, 그들 스스로 물욕(物慾)이라는 도끼로 그들의 선량한 심성을 베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들이라고 해서 선량한 심성의 싹이 매일 싹트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또한 매일 베어버리기에 마침내 그들의 심중에는 선량함이 전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고 하였다. 맹자는 이런 사람들을 금수와 전혀 다를 것이 없다고 질책했다.
더 낭패인 것은 사람들이 선량한 심성을 상실한 이들을 보면서 이들에게는 본래부터 선량한 심성이 없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람의 심성을 본래부터 선과 악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으로 인식함으로써 본래의 심성을 잃어버리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어떤 것이든 적절한 양육을 받으면 자라고, 적절한 양육을 받지 못하면 처음에는 무성했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사라져 없어지고 만다. 벼가 자라는 것은 전적으로 우로 덕분이며, 강과 바다가 마르지 않는 것은 비록 보잘 것 없는 물이라 할지라도 끊임없이 보태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선한 본래의 심성을 간직하는 것도 오로지 자신을 보전하려는 끊임없는 노력 덕분이다.
맹자는 말하기를, "선량하고 정상적인 마음을 기르려면 자신의 욕심을 줄이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되도록 외물에 미혹되지 않고 물욕을 줄여야 자신의 심성을 잘 보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쉽사리 외물의 유혹을 받아서 미혹된다. 사람이 외물의 유혹을 받으면 욕망이 팽창하게 된다. 자신의 팽창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끌리게 되면 결국에는 자신의 심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리고 인생에 있어서 참으로 고귀하고도 중요한 것을 잃고 만다. 정상적인 마음을 잃음으로써 정상적인 삶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맹자는 이름이 가(軻)이며, 전국시대 추나라(鄒, 지금의 산둥성 추현) 사람이다. 맹자의 생존 연대에 대해서는 현재 확증할 수 있는 정확한 자료가 없으며, 여러 추론이 있을 뿐이다. 다만 맹자가 80여 세의 고령의 나이에 죽었다는 것만은 대체로 일치되고 있는 듯하다.
여러 자료로 보건대, 맹자는 어렸을 때 학업을 무척 게을리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맹모삼천(孟母三遷)과 맹모단직교자(孟母斷織敎子)의 고사도 없었을 것이다. 형편도 가난했던 모양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의 어머니가 베틀에 앉아서 베를 짜는 일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성년이 된 이후로 맹자의 집안 형편은 많이 달라졌다. 『맹자』를 보면, 맹자는 일찍이 제나라의 경상(卿相)이 되었다. 그가 여러 나라를 왕래할 때는 뒤따르는 수레가 수십 대였고, 시종이 수백 명에 달했다. 그리고 이르는 국가마다 적지 않은 돈을 받았다. 심지어는 그의 제자들마저 맹자가 너무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냐고 할 정도였다.
우리들은 현재 맹자를 공자와 아울러서 공맹으로 병칭하고 있다. 그러나 맹자는 공자에게서 직접 학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가 아니다. 시간상으로 보면 맹자가 출생한 연도는 이미 공자가 서거한 지 백 년이 되는 해다. 다만 맹자 스스로 "나는 공자에게서 직접 배우지는 못하였지만, 어떤 사람을 통해서 공자를 사숙하였다."고 하였다.
맹자는 공자 학설의 계승자와 수호자로서 자처하였다. 그는 개인의 도덕수양에 치중된 공자의 인(仁)을 '인정(仁政)'으로 발전시켰으며, 성선론(性善論)으로부터 출발하여 백성은 귀한 존재며 왕의 존재는 대단하지 않다고 하는 '민귀군경(民貴君輕)'의 사상을 제기하였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세상에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맹자는 자신의 사상을 세상에 펼쳐보이기 위해 여러 나라를 돌아다녔고, 제나라 선왕은 그를 경상의 자리에 올렸으나, 정무 처리에 있어서는 맹자의 권고를 전혀 듣지 않았다. 이는 대단히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이에 맹자는 "하늘이 아직은 천하를 평안하게 하려 하지 않는 모양이다."고 탄식하며 제나라를 떠났다. 이후로 맹자는 다시는 세상에 나아가지 않고, 다만 공손추, 만장 등의 제자들과 함께 저술에 종사하면서 일생을 마쳤다.
맹자는 인정(仁政)과 왕도(王道)로 천하를 구하는 데에 집착하였다. 어쩌면 이런 집착이 그를 현실에서 벗어나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처세에 있어서 맹자는 결코 원만함을 잃지 않았다. 이를테면 제나라 사람 순우곤이 맹자에게 "예(禮)에 의하면 남녀 간에는 손수 물건을 주고받아서도 안 된다 하였습니다. 만약에 형수가 물에 빠졌다면 어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다. 맹자가 대답하기를,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도 손으로 건져내지 않는다면 이는 시랑(豺狼)에 불과한 사람이다. 남녀 간에 직접 물건을 주고받지 않는 것이 예긴 하지만, 예도 실제 정황을 따라서 변통할 수 있어야 한다. 형수가 물에 빠졌을 때 반드시 구조해야 하는 것은 일종의 변통이다."고 하였다.
원만한 처세는 일반적으로 행동과 취사선택에 있어서 법도를 알되 법도에 얽매이지 않으며, 사리에 밝되 집착하지 않고, 진퇴를 알아서 원만하게 잘 변통하는 것이다. 그래서 맹자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는 양자(楊子)에 반대할 뿐만 아니라, 천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고통도 감수하겠다는 묵자(墨子)에 대해서도 반대한다.
이러한 맹자의 원만한 처세는 험난한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소중한 것이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이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세상일은 복잡다단하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인 잣대만을 들이대서도 안 된다. 적극적으로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한다면 마땅히 그 목표를 향해 힘써 나아가야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행동 방향에 있어서는 한쪽으로 치우쳐서는 안 된다. 복잡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