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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사상의 뿌리를 찾아서

제갈태일 지음 | 더불어책
첫째 마당 : 마음의 고향



뿌리를 찾아서




어떤 민족이든 특유의 민족원형이 있다. 심리학자 칼 융은 이것은 '집단 무의식'이라 명명했다. 이러한 집단 무의식이 민족 간의 정신적인 울타리를 만들고 민족 고유문화를 창출하며 심리적 경계를 이룬다. 또한 민족원형은 일단 형성되면 민족의 주체가 이어지는 한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게 보면 민족은 개성을 지닌 큰 생명체라 할 수 있다. 그것이 곧 민족원형이다. 세계 역사 속에서 위대한 민족은 예외 없이 그들의 정체성(正體性)인 민족원형을 가진다. 영국의 신사도나 미국의 개척정신, 중국의 인(仁)이나 도(道)의 정신, 인도의 자비심이나 이스라엘의 시오니즘, 일본의 신도이즘(神道) 등이 바로 그런 것이다. 총체적 문화 표현이라 할 수 있는 민족원형은 수천 년을 이어온 그들의 조상들이 겪은 사회적·지리적·역사적 체험과 여러 가지 고초와 실패담에서 빚어낸 슬기로운 지혜로 볼 수 있다. 또한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각인된 그들 자신의 마음의 고향이다. 하늘과 땅도 우리 민족에겐 일체화의 대상이었다. 한민족의 마음의 고향인 단군 정신에서도 이러한 민족원형을 찾을 수 있다.

하늘을 대변하는 환웅은 천황의 지위를 내던진 후 사람이 되었고 땅을 상징하는 웅녀 역시 금수(禽獸)성을 극복하기 위해 굴 속에서 100일을 감내하며 비로소 사람이 되었다. 이와 같이 하늘과 땅보다 사람을 더욱 중시하는 인본주의적 보편사상이 우리 민족의 원형적인 인간관이었다. 이것은 유라시아 대륙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민족원형이다. 또한 이러한 민족원형은 동아시아 여러 민족 가운데서도 가장 유별난 한국적인 언어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언어는 고대사상의 화석'이란 점에서 민족원형을 추출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한국인은 거의 '나'라는 말 대신 '우리'라는 말을 쓴다. 나는 단수이고 우리는 복수이나 한국어에는 주격에 관한 한 단수와 복수의 구별조차 모호하다. 즉 나의 회사, 나의 나라란 말 대신 우리 회사, 우리나라라고 한다. 우리 아내라고 말할 때 외국인이 들으면 한 아내가 여러 남편을 거느리는 것으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한국인은 보통 웬만한 대상을 두고도 우리라는 말을 쓴다. 이처럼 한국인의 자타일여(自他一如) 의식은 뿌리깊은 역사와 함께 '우리'라는 말의 뜻 속에 함의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라는 말속에는 너와 나, 인간은 모두가 똑같이 귀하다는 '평등' 의식과 그런 의식에 의한 조직관이 깔려있다.

하나 되는 한사상 :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이 하나라는 사상은 우리 민족의 뿌리깊은 원형적 사고방식이었다. 하늘은 인간의 지성으로서 상호교감이 될 수 있는 대상이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친화력을 지닌 존재였다. 그러므로 가장 한국적인 보편사상인 '하늘이 곧 인간이요, 인간이 곧 하늘이다'라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을 낳았던 것이다. 이런 사상은 우리 민족 고유의 것이었다. 즉 한국인의 민족원형은 하늘과 땅과 사람이 이처럼 하나 되는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 사상을 근간으로 하여 나와 남의 구별이 없어지는 자타일여(自他一如) 사상과 조상과 후손도 결코 분리해서 생각하지 않는 생사일여(生死一如) 사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한민족의 고유사상으로서 한은 외래사상인 유(儒), 불(佛), 선(仙) 3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한민족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지배해 온 전통사상이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도 단군의 성을 한이라 했고 그 후예들을 한씨, 한왕으로 적고 있어 스스로 민족 전체를 표상하는 이름으로 한을 내세웠다. 다산 정약용의 저서 『아방강역고 我邦疆域考』에서도 옛날 대륙에서 남쪽으로 향해 온 한민족이 그들의 우두머리를 한이라고 불렀는데, 이런 통치형태에서 이 말이 생겨났다고 했다. 이와 같이 한은 외래사상에 오염되지 않은 한민족의 주체사상으로 고대 한인들의 정신생활을 지배해 왔으며 민족적 가치관으로 행동철학의 지표가 되었다.

둘째 마당 : 한의 뿌리



한의 생성




원래 한이란 알타이어이다. 몽고족과 동이족이 사용한 언어이며 동이족은 고조선을 세운 한민족의 시조이다. 따라서 한은 우리의 순수한 고유어이다. 한민족이라는 이름부터 한이라는 말을 사용한 것을 보면 우리에게 한은 가장 뿌리 깊은 어원이요, 생물학적 본능에서 저절로 우러나오는 말이다. 따라서 한은 우리 민족 정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으며 삶의 현장에서도 일상용어로 널리 용해되어 있다. 예를 들면 한국, 한겨레, 한글, 한얼, 한식, 한복, 한옥 등으로 민족 특유의 언어적 감각과 표현양식을 통해 민족의 문화적 동질성을 유지해 왔다. 그러므로 한은 다양하고 복잡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한은 시간, 공간, 질량의 개념을 두루 가진다. 시간적 의미의 한은 시간 전체를 뜻할 때와 시간의 중심점을 말하는 두 의미를 함께 지닌다. 공간적 개념에서 한은 넓다는 뜻과 가운데란 뜻을 동시에 가진다. 질량적 개념에도 상반되는 두 의미를 표현한다. 예를 들면 하나(一)를 의미하면서 동시에 많음(多)을 뜻한다. '한갓'은 최소한의 개념이지만 '한껏'은 최대한의 개념이다. 따라서 한사상은 우리 민족의 정신 뿌리로서, 표현의 차이는 있어도 근본적으로 같은 의미를 지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 왔다. 단군의 건국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재세이화(在世理化)와 고구려의 이도여치(以道與治), 신라의 광명이세(光明理世), 고려의 금탑(金塔), 조선의 금척(金尺) 등 건국이념들은 모두 한의 다른 표현이다. 여기서 표현된 이(理), 도(道), 광명(光名), 금(金) 등은 전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밝은 진리와 빛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한은 한민족의 정신생활을 지배해 왔다고 본다. 수천 년 동안 면면히 이어온 한민족의 주체사상인 한은 일시적인 환란과 비극의 역사 속에서도 그 맥이 끊어지지 않고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

유불선과 한



한과 유학과의 만남 : 삼국시대에 중국의 유학이 전래되었다 한다. 그러나 하늘을 공경하고 부모에 효도하며 사람을 사랑하는 사상은 이미 한철학에 내재해 있던 사상이었다. 특히 중국 문화권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제천의식은 하늘을 공경하는 구체적인 실천방법으로 한국인들의 고유한 연중행사였다. 또한 조상숭배 사상 역시 한민족의 중요한 뿌리사상이었다. 다만 중국의 효사상과 다른 점은 한철학에서 효행은 생사일여(生死一如)관에 근거를 두고 사후의 효행이나 생전의 효도에 경중을 두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기』를 보면 공자가 고대 한국 민족이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 거상을 착실히 하는 것을 보고 감탄한 기록이 있다. "소연, 대연으로 부모의 상(喪)을 잘 치러 3일간 게으르지 않고, 석 달 동안 상복을 벗지 않고, 초하루 보름이 되면 슬퍼하면서 3년 동안 사후의 부모생활을 근심하니 과연 동방예의지국이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유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유서 깊은 조상숭배 사상이 있었고, 부모의 생사와 관계없는 양면일체의 변함없는 효도를 윤리의 최고 기준으로 둔 것이 한철학이며, 공자가 이를 감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단군정신에 나타난 군신관계의 윤리도 중국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즉 군왕은 군림자가 아니라 통솔자이며, 인민의 곡·명·병·형·선악 등 360여 사를 주관하는 봉사자이다. 민본주의의 제창자인 맹자까지도 중국의 군신관계가 철저한 주종관계임을 주장한 것과는 현격히 다르다. 단군은 신하에게 충절을 요구하지도 않았고, 인민들에게 하향적인 지배권을 허용하지도 않았다. 오직 이치에 따라 다스리는 '이화(理化)'의 기능만 부여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한철학은 유교철학을 만났을 때 부분적인 대립개념은 있지만 사상적 바탕에는 융합하기 어려운 것이 없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한과 불교의 만남 : 한철학과 불교의 만남에서도 한은 주체적인 모습을 결코 잃지 않았다. 불교가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이 서기 372년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중국 전진의 왕인 부견이 파견한 순도가 불상과 불경을 가지고 고구려에 와서 불교를 폈다. 그러나 한민족이 받아들인 불교는 대승불교 정신이었다. 조그마한 개체를 버리고 커다란 전체에 살려고 한 불교의 대승정신과 한철학의 대아정신과는 사상적 공통인자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한철학의 통합이론으로 대승불교를 집대성한 대표적인 고승이 원효이다. 원효의 수많은 저서를 보면 어느 쪽이나 모든 부분을 통합하여 통일적인 불교를 세우려고 하는 것이 특색이다. 책 이름을 '종요', '요기', '강요' 등으로 한 것도 통화귀일의 결론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원효의 불교철학의 정신적인 바탕은 한철학이었다. 특히 원효는 외래사상에 흔들렸던 사람이 아니다. 가장 한적인 사상과 고유한 감각으로 독자적인 한국불교를 세웠던 것이다. 결국 한철학은 자기의 주체사상으로 외래불교를 품안에 넣어 동화시켰던 것이다. 이는 타국에서 볼 수 없는 우리나라 사찰의 구조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 절의 제일 중앙 최고전당을 '대웅전'이라고 한다든가, '칠성각', '산신각'을 별채로 모시고 있는 것도 한철학에 근거를 둔 것이며, 한이 불교를 만났을 때 주체적인 입장에서 포용했던 흔적들이다.

한과 노자의 만남 : 천지만물의 근본적 실재로서의 도와 한은 존재론에서부터 동질적이다. 인간과 자연을 구분하지 않고, 일원론적 존재로 보며 인간의 문제를 인간 자체 내에서 해결하려 하지 않고 대자연에서 해답을 구하려는 것이 한철학이다. 노자 『도덕경』 제39장에서 보인 '도는 만물의 근본이다'는 사상은 말이 다를 뿐 근본적인 내용은 같은 의미이다. 한과 도가 이처럼 동질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러한 요인을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로, 중국의 『사기 史記』와 『포박자 包朴子』 내편에는 옛적에 황제(黃帝)가 있었는데 동으로 청구에 이르러 풍산을 지나다가 자부선생을 뵈옵고 삼황내문을 받아 만신(萬神)을 해소한다는 기록이 있다. 동시에 우리 고대 사서인 『태백일사』에는 자부선생이 '발귀리'의 후손으로 신시대의 신인(神人)임을 기록하고 있다. 즉 자부선생은 동방 청구국 대풍산의 양지에 있는 삼청궁에 계셨다고 하며 중국의 시조 황제(黃帝)는 자부선생의 거처에 와서 수학을 했다는 기록들이 위의 사례처럼 중국과 우리나라 고대 사서에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기록들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도교의 발상지는 한국이며, 노장사상은 한철학의 중국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민족의 원형질과 한



『천부경』과 한 : 오랜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3대 경전은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이다. 그 중 『천부경』은 81자로 쓰여 있으며 환인 천제시대, 환국의 말로 전하던 경전이라 하며 묘향산 석벽본과 최치원의 문집 사적편에 기록되어 있다. 바로 이 『천부경』이 오랜 옛날 환인의 신시 개천시대부터 가르침을 기술한 경전이고 보면 무려 만여 년 전의 것으로 세계 최고(最古)의 경전이 된다. 『천부경』은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로 시작하여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로 끝나는데 81자 가운데 11자가 한 일(一) 자로 되어 있다. 한마디로 『천부경』은 한민족의 원형질에 해당하는 한, 즉 하나를 설명해 놓은 경전이라 할 수 있다. 『천부경』의 일관된 사상은 '하나'에 모든 진리가 응결된다는 것이다. 하나는 우주만물의 근원이요, 생명의 본체이고 처음과 끝이다. 이 하나의 정체를 아는 일을 큰 깨달음으로 생각한다. 하나를 깨달은 사람은 하나가 곧 자신이고 우주만물이기 때문에 시공을 초월할 수 있고 현상계의 오욕칠정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생사를 초월할 수 있다고 본다. 이 하나가 진리일 수도, 하느님일 수도, 도일 수도 있을 것이다. 결국 하나의 의미를 확연히 깨치는 일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천부경』은 지식을 초월해 있는 것이다. 『천부경』이 말하는 하나되는 삶을 살아야 도(道)의 경지에 이르게 될 것이다.

『삼일신고』와 한 :『천부경』이 철학이라면 『삼일신고』는 신학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참전계경』은 윤리학이다. 『삼일신고』는 366자로 되어 있고, 천훈, 신훈, 천궁훈, 세계훈, 진리훈 등의 내용을 포괄하고 있다. 제5편 진리훈(眞理訓)에는 "사람과 만물이 다같이 세 가지 참됨을 받나니 말하자면 성품과 목숨과 기운이니라. 사람은 저마다 이 세 가지가 완전하지만 사람 이외의 만물은 이 세 가지 중 어느 것을 갖추지 못한 것이니라." 인간은 생명의 본질인 성(性), 명(命), 정(精)을 삼진(三眞)으로 타고나지만 다른 한편 누구나 좋지 않는 삼망(三妄)인 기운(心, 氣, 身)도 함께 타고난다. 그러므로 사람은 항상 마음을 다스리는 지감(止感)과 호흡을 통해 기를 조절하는 조식(調息), 몸가짐을 단정히 하는 금촉(禁觸)을 잘 운용해야 장수하고 행복한 인생을 산다고 하였다. 특히 우리 민족 고유의 전통 장수법인 지감, 조식, 금촉법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도 단학(丹學)이나 기체조 등을 통해 많은 관심과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전승들이 『삼일신고』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이다.

『참전계경』과 한 :『참전계경』은 고구려 9대 고국천왕시대의 명재상인 을파소가 백운산(현 천마산)에 들어가 하늘에 기도하여 얻은 천서(天書)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참전계경』은 이미 환국시대부터 존재하였으며 세상을 다스리는 치세의 기본이념들을 기록한 경전이었다. 특히 을파소는 이 경전에 따라 치세하여 고구려에서도 가장 명망 높은 재상으로 알려졌다. 후일 그는 이 경전을 "만세에 변함이 없을 정치이념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라고 극찬한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그는 이세(理世)원리에 의해 366사를 적절히 처결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366사라 함은 대연수(大衍數)로 천체의 순환도수를 의미한다. 대자연의 이치로 만사만물이 여기에 따라 구현된다고 보았다. 서전(書傳)의 기록에 의하면 단군 조에서는 1년은 366일로 시행된 것으로 되어 있다. 이런 점을 참고하면 366사는 한 해 동안 임금과 백성들이 지켜야할 율법을 구체화한 것으로 짐작된다. 북부여를 건국한 해모수가 새로운 대궐을 지으면서 그 칸수를 366칸으로 신축했다고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우리나라 신시시대 환웅 천황은 해마다 참전계의 의식으로 국중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대중이 전국 사방에서 모여들어 어아가(於阿歌)를 부르며 하늘의 은혜에 감사하는 정성스런 잔치를 벌였다 한다. 또한 국중대회의 가장 큰 행사가 '참전계 의식'으로, 하느님과 인간의 벽을 트고 신인일체(神人一體)의 무아경에 심취했다고 전한다. 오늘날에도 전국체전의 성화 채화를 마니산에서 하고 있는 것은 옛날 국중대회의 전승으로 알려지고 있다.

셋째 마당 : 한의 보편성



한의 철학성




한의 존재론 : 어떤 사상이 철학으로 정립되려면 세 가지 근원적인 질문에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즉 '존재론'과 '인식론', '가치론'이 그것이다. 철학의 골격을 이루는 이 세 가지 요소 중 존재론은 오랜 옛날부터 있었고 인식론은 근대에, 가치론은 현대에 이르러 활발해졌다. 한사상 역시 철학으로 정립되려면 위의 세 가지 명제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먼저 한사상의 존재론에 대한 학자들의 논증들을 정리해본다. 그들은 한을 우주만상의 근본적인 실체로 본다. 한없이 크고 깊고 넓기 때문에 사람을 비롯한 그 밖의 모든 만물을 포괄하며,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도 한에 관계되지 않는 것이 없다. 또한 한은 처음도 끝도 없는 존재이고 인간의 오관으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형이상학적·신비적 존재이다. 하늘도 땅도 형성되기 이전에 그 모양을 알 수 없는 근원이 있는데 그것이 하늘과 땅보다 먼저 생긴 한이다. 따라서 모든 만물의 원천이요, 근본이다. 한의 존재론은 양적 의미로 일원론이다. 우주의 근본적인 실재는 오직 하나인 한에 있다. 바다에서 생기는 파도는 여러 가지 모양이지만 그 근본은 물인 것과 같다. 모든 개체는 한의 여러 가지 다른 양상이다. 한의 존재론은 질적 의미에서도 큰 하나로 본다. 서양철학의 존재론인 유물론과 유신론을 모두 포괄한다. 서양철학이 정신과 물질을 두 개의 실체로 생각한다면 이 이원론의 밑바닥에 궁극적 실체로서의 한이 있다는 것이다. 즉 대립적 관계가 아니라 정신과 물질을 하나로 포괄하는 진정한 실체가 한이라는 설명이다. 이 심오한 한이 둘로 나뉘어져 물질과 정신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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