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경(智經)
풍몽룡 지음 | 청림출판
한나라 때 고준이 반란을 일으켰는데, 조정의 군대가 오래도록 공격했지만 격파하지 못했다. 광무제가 구순에게 천자의 칙서를 가지고 가서 고준을 항복시키라고 명했다. 구순이 고준의 성 앞에 이르자, 고준은 군사 황보문에게 구순을 맞으라고 시켰다. 그런데 황보문은 태도가 오만하고 불손했다. 구순은 화가 나서 즉각 칼을 뽑아 황보문의 목을 치려고 했다. 구순의 부하 장수들이 극구 말렸지만, 구순은 아랑곳하지 않고 칼을 휘둘렀다. 결국 황보문의 머리가 땅에 떨어졌다. 그러고 나서 황보문의 시종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군사 황보문이 무례하게 굴다가 참수되었다고 전해라! 항복하고 싶으면 항복하고 항복하기 싫으면 계속 성을 사수하라고 전해라!"
고준이 그 말을 듣고 몹시 두려워하다가 그날 즉시 성문을 열고 조정의 군대에 투항했다. 구순의 부하 장수들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어떻게 장군께서는 황보문을 죽이고 고준을 우리에게 투항하게 하신 겁니까? 그 묘책이 무엇입니까?"
"황보문은 고준의 심복이다. 고준의 모든 계략은 모두 황보문의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다. 황보문은 하는 말이 불손하고 투항할 생각도 전혀 없었다. 그의 목숨을 보전해 주면 그의 계략이 계속 실행될 것이다. 내가 황보문을 죽여버리자 고준은 용기를 잃었다. 그래서 즉각 투항하고 만 것이다."
당나라 희종이 촉 지방으로 피신했을 때 남만족 오랑캐들이 출로를 막고 포위할까 두려웠다. 그래서 희종은 남만의 왕에게 공주를 시집보내겠다고 약속하며 화의를 신청했다. 남만의 왕이 재상 조융미와 양기곤, 가의종에게 명하여 공주를 맞아 오라고 명했다. 그때 태위 고병이 회남에서 희종에게 상소를 올려 아뢰었다. "남만 왕의 심복은 그 세 사람입니다. 그들을 잠시 머물게 하시고는 독주를 먹여 죽이십시오."
희종이 그 말대로 했다. 그러자 남만의 왕이 크게 겁을 먹고 뒤로 물러났다. 희종은 촉 땅에서 수도로 돌아올 수 있었고, 그 뒤로도 남쪽에는 신경쓸 일이 생기지 않았다. 이것은 구순의 지혜와 비슷한 경우다.도안가가 조씨 집안을 묘당에서 공격하고 조삭, 조동, 조괄, 조영제 등 그 친족을 모두 몰살했다. 조삭의 아내는 진(晉)나라 성공의 동생인데, 그때 임신을 하고 있어서 성공의 궁궐로 피신했다. 조삭의 문객 공손저구가 조삭의 친구 정영에게 물었다.
"왜 조삭과 함께 죽지 않았습니까?" "지금 그의 아내가 임신했소이다. 다행히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내가 책임지고 길러주어야 하오. 계집아이가 태어나면 그때 죽어도 늦지 않소." 얼마 후 조삭의 아내가 사내아이를 낳았다. 도안가가 이 소식을 듣고 병사를 보내 궁 안을 샅샅이 수색하라고 했다. 병사들이 들이닥치자, 조삭의 아내가 다급하게 아기를 치마 속에 감추고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조씨 집안이 멸망해야 한다면 이 아기를 울리시고, 조씨 집안이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신다면 이 아기가 울지 않게 해 주소서."
아기는 울지 않았고 결국 병사들은 아기를 찾지 못한 채 빈손으로 돌아갔다. 이때 정영이 공손저구에게 물었다. "지금 저들이 다행히도 아기를 찾지 못했지만 곧 다시 수색할 텐데 어찌하면 좋겠소?" 이번에는 공손저구가 물었다. "그대는 아기를 키우는 것과 아기를 위해 죽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하시오?" "아기를 위해 죽는 것은 쉽지만, 키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지요."
그러자 공손저구가 비장한 어조로 말했다. "조씨의 선친께서는 당신에게 많은 은혜를 베푸셨소. 지금 당신이 어려운 일을 맡았으니, 내가 쉬운 일을 맡겠소이다." 공손저구는 남의 집 갓난 아기를 하나 구해, 포대기에 싸 업고 산 속으로 숨었다. 이후 정영이 도안가와 결탁한 장군들 앞에 나타나 말했다. "나는 능력이 없는 사람이어서 조씨 집안의 아기를 키울 수가 없소. 만일 나에게 천금을 준다면 그 아기가 있는 곳을 알려드리리다."
도안가가 군대를 파견해 정영을 따르게 했다. 정영이 공손저구가 있는 산 속으로 도안가의 군대를 데리고 가자, 공손저구가 거짓으로 욕설을 퍼부었다. "이 더러운 소인배 같으니! 조씨 사람들이 묘당에서 몰살당했을 때, 너는 나에게 죽지말고 같이 조씨 집안의 아기를 키우자고 다짐하지 않았더냐!" 병사들이 달려들어 공손저구와 아기를 난도질했다.
15년이 지난 뒤 진나라 경공이 병에 걸렸다. 점을 치게 했더니, '대업의 후사를 계승하지 못하면 흉하다.'는 점괘가 나왔다. 경공이 한궐에게 점괘의 뜻을 물었다. 한궐은 원래 조씨 집안의 아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경공에게 "이 점괘는 조씨 집안의 원한이 씻기지 않았고, 조씨 집안의 후손이 세워지지 않았다는 의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한궐은 모든 사실을 아뢰었고, 이내 대성한 아기를 궁궐로 불러들였다. 그 아기는 이미 15살이 되어 있었고 이름은 조무였다. 경공은 병문안 온 장군들에게 조씨 집안의 후손이 살아 있으니 만나보라고 했다. 장군들은 깜짝 놀라면서 두려워했고, 그 책임을 모두 도안가에게 떠넘겼다. 조무가 장군들을 만나 정중하게 절을 올리면서, 지난 일은 오해였을거라고 먼저 말했다. 그러고 나서 함께 도안가를 공격하자고 청원했다.
결국 조무는 장군들과 함께 도안가의 집을 공격하고 삼족을 멸했다. 경공은 원래 조씨 집안이 소유하고 있던 전답과 저택을 조무에게 내려주었다. 조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정영이 말했다. "네가 다 컸으니, 나는 이제 구천에 가서 공손저구에게 은혜를 갚아야 겠다." 그리고 나서 목을 매어 죽었다.
조씨 집안의 사람들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었다. 그래서 정영이나 공손저구처럼 은혜에 죽음으로 보답하는 대장부를 얻을 수 있었고, 그 덕분에 멸망할 뻔한 순간에도 다시 일어나 진나라의 대권을 장악할 수 있었다. 요즘 많은 선비들이 권세 있는 환관 집의 문턱을 쉴 새 없이 드나든다. 그러나 그 선비들의 마음은 오직 이득과 권력에 있을 뿐이다. 어느 날 아침에 조씨 집안 같은 불상사가 생겼을 때, 그들 가운데 몇 명이나 정영과 공손저구처럼 죽음으로 보답할까?노나라에 큰 사냥이 있었다. 사람들이 짐승을 몰기 위해 수초가 무성한 연못에 불을 질렀다. 그런데 갑자기 북풍이 불더니 불길이 남쪽으로 내려가 도성 안쪽으로 번졌다. 애공이 사람들을 인솔하여 불을 끄려고 했지만 주위에 아무도 없었다. 사람들은 모두 짐승 몰이를 하러 나갔기 때문에 불을 끌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애공이 황급히 공자를 불러 대책을 물었다. 공자가 대답했다. "짐승을 쫓는 것은 즐거운 일이면서 벌도 받지 않지만, 불을 끄는 일은 고생스러운데도 상이 없습니다. 이것이 불을 끄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그렇군요." 애공이 대답했다. 그러자 공자가 다시 말했다. "지금은 상황이 급박해서 상을 주는 것으로 불을 끄기에는 이미 늦었습니다. 게다가 불을 끈 사람에게 상을 준다면, 국고에 있는 재물로는 그 상을 다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불을 끄러 오지 않는 사람에게 벌을 주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애공이 공자의 말을 받아들여 즉시 명령을 내렸다. "불을 끄러 오지 않는 사람은 적군에게 항복한 죄와 동일하게 다룰 것이다. 짐승만 쫓고 있는 사람은 금지 구역에 잠입한 죄와 동일하게 처벌한 것이다." 이 명령이 도성에 다 퍼지기도 전에 불이 꺼졌다.
남송 때 가사도가 재상으로 있던 시기에 수도 임안에 큰 화재가 발생했다. 마침 가사도는 수도와 20리 떨어진 갈령에 있었다. 상황을 보고하는 파발마가 연이어 도착했다. 그러나 가사도는 돌아보지도 않은 채 심하게 말을 던졌다. "불길이 태묘에 이르거든 보고하라." 잠시후, 불이 태묘까지 임박했다는 파발이 도착했다. 그러자 가사도는 가마를 준비시키고 네 명의 무사에게 칼을 들고 호위하게 하면서 임안으로 출발했다. 1리를 갈 때마다 가마꾼을 바꾸면서 빠르게 임안으로 들어갔다. 임안에 이르자마자 가사도는 조용히 한 마디만 했다.
"만일 태묘가 불타게 되면, 수도 호위군 사령관을 참수할 것이다."
사령관은 그 명을 듣고 서둘러 용사들을 인솔해 진화 작업에 나섰다. 그리고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불이 완전히 꺼졌다.초나라 무왕이 수나라를 공격했는데 전투가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그래서 수나라에 사신을 보내 휴전을 청하고 하 지방에 군대를 주둔시킨 뒤 응답을 기다렸다. 수나라 왕은 소사를 보내 교섭에 응하도록 하고 불리한 협상은 하지 말라고 일렀다.
한편 초나라에서는 협상 전에 대부 투백비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초나라가 한수(漢水) 동쪽의 제후국들에게서 위세를 떨치지 못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실책입니다. 초나라에서 삼군을 이끌고 나가 무력으로 그들을 대했기 때문에 그 제후국들은 두려운 나머지 함께 협력하여 초나라에 대항했습니다. 그래서 초나라가 한수 동쪽의 제후국을 정벌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수나라는 한수 동쪽의 제후국 중에서 가장 큰 나라입니다. 만일 수나라를 강하게 키워주면 수나라는 자만하여 작은 제후국들을 무시할 것입니다. 작은 제후국들이 수나라에서 멀어지는 것은 초나라에 큰 이득이 됩니다. 지금 수나라의 소사는 수나라 왕에게 매우 총애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보는 앞에서 초나라 군대의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소사는 오만한 마음으로 돌아갈 것이고 수나라 왕도 따라서 오만해질 것입니다. 그뒤에 공격하면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소사는 귀국하여 자기가 본 그대로 아뢰면서 투백비의 의도대로 초나라를 추격하자고 제안했다. 이때 수나라 대부 계량이 의심하며 말했다. "초나라가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분명 우리를 유인하려는 계책입니다. 추격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수나라 왕이 계량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그때 계량이 아니었더라면 수나라는 분명 초나라의 계략에 빠졌을 것이다. 초나라 왕도 일찍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포위 공격을 하는 나라는 교섭하러 온 적국 사신에게 항상 살찌고 건장한 말을 타게 하며 강건한 무사들을 보여준다. 겁을 먹게 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병역한 말과 늙은 병사를 보여준다면, 이것은 모두 유인책이다."
한나라 군대가 승세를 타고 흉노족을 추적할 때 유방은 흉노의 족장 모돈이 계곡에 주둔했다는 정보를 듣고 사신을 보내 정탐하게 했다. 모돈은 일부러 건장한 무사와 군마는 숨겨놓은 채 늙고 병든 병사와 군마를 내보냈다. 돌아온 사신들은 모두 흉노족을 공격하자고 제안했다. 유방은 다시 유경을 보내 살펴보고 오게 했다. 유경이 살펴보고 돌아와 유방에게 아뢰었다.
"두 나라가 전쟁을 벌이면, 응당 자기 나라 군대의 강한 부분을 내보여서 상대국을 겁주는 법입니다. 그런데 지금 신이 가 보니 수척한 병사와 늙고 약한 군마가 즐비했습니다. 이것을 일부러 자기의 약점을 내보이고 강한 복병을 배치해두었다는 것입니다. 절대 흉노를 공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유방은 유경의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유방은 백등 지방에서 흉노에게 포위되고 말았다.제나라의 어떤 사람이 제나라 경공에게 죄를 짓자, 경공이 크게 노하여 그 사람을 체포해 끌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나서 마당에서 사지를 찢어 죽이라고 명하고, 누구든 간언하는 자가 있으면 무조건 목을 베겠다고 소리쳤다. 이때 안영이 왼손으로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칼을 갈다가 경공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옛날의 영명한 성왕(聖王)들도 사람의 사지를 찢어 죽였습니까? 그게 어디서 시작된 것입니까?" 경공이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풀어 주어라. 과인에게 죄가 있다."
경공이 제정한 법률은 너무도 복잡하고 가혹했다. 경공은 죄수의 발꿈치를 자르는 월형을 많이 집행했고, 그래서 시장에는 의족을 파는 장사꾼이 많아졌다. 하루는 경공이 안영에게 물었다. "그대의 집이 저잣거리와 가깝다던데, 요즘은 무엇이 비싸고 무엇이 쌉니까?" "의족 값이 제일 비싸고 신발 값이 가장 쌉니다." 경공이 이 말의 의미를 깨닫고 형벌을 줄였다.
안영의 간언은 풍자가 많고 직언은 적었다. 아마 안영이 골계문학의 원조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그가 형나라와 초나라, 오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는 농담과 우스갯소리로 상대를 제압하여, 말하는 사람을 곤경에 빠뜨리기도 했다.
안영이 형나라에 갔을 때 형나라 왕과 좌우의 신하들이 그에게 모욕을 주려고 계획했다. 안영과 형나라 왕이 대화를 하고 있을 때 포박된 죄수 하나를 지나가게 했다. 형나라 왕이 모르는 척하며 물었다. "어디서 온 사람인가?" 신하들이 일제히 대답했다. "제나라에서 온 사람입니다." "무슨 죄를 지었기에 체포했는가?" "도둑질을 했습니다." 형나라 왕이 거만한 미소를 지으며 안영에게 물었다. "제나라 사람들은 도둑질을 합니까?"
그러자 안영은 다음과 같이 답했다. "양자강 남쪽 지방에는 귤이라는 과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북쪽 지방에 심으면 탱자가 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기후와 풍토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나라 사람들은 제나라에서 도둑질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형나라에 와서 도둑이 된 것입니다. 형나라는 정말 이런 곳입니까?"
안영이 초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의 일이다. 초나라 사람들은 안영의 키가 작은 것을 놀리기 위해 대문 옆에 있는 작은 문만 열고 안영을 맞이했다. 안영이 들어가지 않고 서서 말했다. "개 나라에 사신으로 왔으면 개구멍으로 들어가야겠소만, 신은 초나라에 사신으로 온 것이니 이 작은 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소이다." 영접하는 신하가 허겁지겁 큰 문을 열고 안영을 안으로 들였다.
초나라 왕이 안영이 키기 작은 것을 염두에 두고 물었다. "제나라에는 사람이 없소?" 안영이 대답했다. "제나라의 수도 임치에는 300개가 넘는 도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소매를 흔들면 장막이 되어 하늘을 가리고, 사람들이 땀을 훔치면 비가 되어 땅으로 내립니다. 그렇게 사람이 많은 데 왜 사람이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그런데 어떻게 그대가 사신이 되었소?" 이때 안영은 또 이렇게 대답했다. "제나라에서는 사신들에게 각기 다른 임무를 부여합니다. 어진 사람에게는 어진 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하고 못난 사람에게는 못난 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합니다. 신이 가장 못난 사람이기 때문에 초나라에 사신으로 온 것입니다."제9부 규지부(閨智部)
유아(劉娥) - 왕의 총애를 거부하여 충신을 구해내다태공망이 제나라의 왕이 되었을 때 그 나라에 아주 유명한 선비가 있었다. 그 선비는 스스로 말하기를, 자기는 천자의 신하가 되지도 않을 것이고 제후들과 교유하지도 않겠다고 했다. 그래서 제나라 사람들은 그 선비를 특이한 현자라고 칭송했다. 태공은 세 차례나 사람을 보내 그 선비를 불렀으나 그는 부름을 거절하고 가지 않았다. 그러자 태공은 그 선비를 처형하라고 명했다. 이 일을 지켜본 주공단이 태공에게 물었다. "그 사람은 제나라의 이름 높은 선비인데, 어째서 사형에 처하셨습니까?" 그러자 태공은 이렇게 대답했다.
"그 사람은 천자의 신하가 되지도 않을 것이고 제후들과 교유하지도 않겠다고 하니, 내가 어떻게 그를 신하로 삼을 수 있겠습니까? 왕인 내가 그를 신하로 삼을 수 없다면, 그는 이 나라에 살 자격이 없습니다. 게다가 내가 세 번이나 불렀는데도 오지 않았으니, 그 사람은 왕을 반역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모범으로 표창하여 온 백성이 본받게 한다면, 앞으로 내가 누구 앞에서 왕 노릇을 할 수 있겠습니까?"
제나라에 시종 나태한 백성도 없고 나라가 약소해지지도 않은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소정묘는 공자와 같은 시대 사람이었는데, 그가 사람들에게 이상한 학문을 가르쳤기에 공자의 제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