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목록
재생목록이 비어 있습니다.
-
-
0:00 0:00
화면 너비 (여백)
좁게
보통
넓게
최대
배경 테마
글꼴
바탕/명조
돋움/고딕
글자 크기
작게
100%
크게
줄 간격
좁게
보통
넓게

틱낫한 지음 | 명진출판


틱낫한 지음

명진출판 / 2003년 3월 / 256쪽 / 8,900원



PART 1 삶을 바꿀 수 있는 힘, 내 안에 있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싶다면 지금 이 순간 깨어있어라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이 중요하니 늘 마음을 현재에 두는 수행을 해야 한다고 말할 때마다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현재의 순간에만 집중하면 미래를 생각하지 말라는 말입니까? 사람이라면 미래에 대한 계획을 세워야 하지 않을까요?” 마음을 현재에 두라는 말은 과거를 성찰하고 미래를 계획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다만 과거나 미래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말라는 뜻이다. 당신이 의지를 가지고 지금 이 순간에 서 있을 때 당신은 과거를 의문과 집중의 대상으로 삼아 깊은 통찰을 얻을 수도, 더욱 굳건히 현재의 순간에 머물 수도 있다. 미래도 마찬가지다. 현재에 100% 온전히 머무르면 힘과 지혜는 샘물처럼 자연스럽게 솟아오른다.

나는 많은 글을 쓰는 작가이다. 하지만 내 생활을 보면 늘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특히 채소밭 가꾸기를 좋아하는데 다만 채소에 물을 줄 때는 물 주기만을 즐긴다. 시나 에세이에 대한 것은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글쓰기가 내 안에서 멈추는 것은 아니다. 채소에 물을 주는 동안 내 안에서는 이미 에세이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여기에서 이 일을 잘 해낸다면 미래에 다른 일 역시 동일한 집중과 통찰력으로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이란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나를 100% 함께 할 수 있게 해주는 힘으로 나를 매순간 온전히 살아있게 해주는 기적이다. 또한 나 자신을 변화시켜 나와 가족, 동료, 기업, 사회를 치유하고 조화롭게 하는 원동력이다. 그리고 깨어있는 마음은 당신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 자신의 현재 상황을 깊이 들여다보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깨어있는 마음은 당신의 가족을 깊이 볼 수 있게 해준다. 또한 깨어있는 마음은 당신에게 주변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통찰력을 부여한다. 깨어있는 마음을 통해 깊이 보면 회사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고통을 이해할 수도 있다.

깨어있는 마음이란 자신의 100%를 다해 현재에 머무는 능력이다. 깨어있는 마음의 힘은 지금 여기 있는 것들을 인식하게 해주는 힘이다. 지금 여기 있는 것은 바로 당신 자신이며,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당신이 지금 이 순간 이곳에 머물 수 없다면 당신은 자기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고통마저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할 수도 남을 사랑할 수도 없다. 결국 그들은 고통의 나락에 빠지는 것이다. 깨어있는 마음이 마음을 위한 건강식품이다.

나는 플럼빌리지의 수행자들과 차를 즐겨 마신다. 우리는 그것을 또 하나의 명상이라고 부른다. 마음을 현재에 두고 차를 따르기 때문이다. 내일 해야 할 일도 생각하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오직 차를 따르는 일에 몰입할 뿐이다. 깨어있는 마음(mindfulness)으로. 누구나 차를 따르는 법과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알고 있지만 온 마음을 다해 차를 따르거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우리에게는 현재로부터 달아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습관의 힘이다. 습관의 힘은 매우 강해서 그 힘을 거스르거나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수행이 필요하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삶의 매순간을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다.

통찰력과 자비심은 상대를 끌어안는 힘이다

미국 산타나 고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이 총을 난사해 15명이 다치고 죽는 사건이 발생했다. 크게 놀란 사람들은 총기 소유를 금지해야 한다거나 청소년 범죄의 심각성에 대해 진지한 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러나 진심으로 소년의 처지를 걱정하고 이해하려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그 학생의 부모는 오래 전에 이혼했다고 한다. 이혼한 부모들이 대개 그러하듯 그들의 부모는 자기 고통을 달래는 일에 바빠 아이의 상실감을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게다가 그는 아버지를 따라 낯선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고, 낯선 학교에서 아이들의 놀림을 받게 되었다. 어찌할 바를 모르던 소년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그가 알고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지도 모를 총을 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 소년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무조건적인 처벌은 그를 변화시킬 수 없다. 자비심 없이 가해지는 처벌은 폭력을 없애기 위해 행사하는 또 다른 폭력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누구도 함부로 벌해서는 안 된다. 단순한 처벌은 상태를 더욱 나빠지게 할 뿐이다. 폭력을 표방하는 단체나 국가도 마찬가지다. 테러 같은 커다란 폭력 행위는 사실 절망의 외침이다. 그들은 폭력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들의 말을 들어줄 것을, 또는 자신의 처지를 봐줄 것을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도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들에게 폭력이나 테러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안해야 한다.

모든 폭력은 정의롭지 못하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의 테러가 염려된다고 해서 미리 군사적 행동을 취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가?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진정 자국민을 지키고 싶다면 그는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을 잘 보살펴줘야 한다. 만약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다면 이라크는 당하고만 있겠는가? 안전이란 결코 혼자서 지킬 수 있는 게 아니다. 모든 국가는 서로 연결되어 존재하는 것이기에 이렇게 더불어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깊이 들여다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적이 없다. 그는 모든 존재의 장단점이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자비심이 필요하다. 동시에 비폭력적인 대화와 교류는 매우 중요하다. 사람 사이의 애정 어린 말과 경청하는 자세는 자비심과 통찰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상대방은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깊이 느낄 수 있다. 자비심은 이해로 이루어져 있다. 상대방을 비난하려면 대화의 통로가 열려 있어야 한다.

당신이 삶과 세상을 좀더 뜻깊은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하루하루 매 순간 깊이 살아가는 수행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면 자신과 세상의 평화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 저절로 알게 된다. 누군가를 미워하기 전에 먼저 듣고 받아들여야 함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지구의 일부다. 한 몸을 이루는 세포처럼 우리 모두는 연결된 존재다. 서로를 끌어안아라. 이것이 폭력으로부터 나와 세상을 보호하고 평화를 구하는 일이다.

돈에 투자하는가? 행복해지고 싶다면 당신 삶에 투자하라

‘빨리 빨리’를 외치는 성급함은 사실 핵무기만큼의 파괴력과 모르핀만큼의 중독성을 지니고 있다. 분주함은 삶에서 본질적인 것을 빼앗아간다. 만에 하나 당신이 자신과 가족에게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도 미루고 있다면 그것은 당신이 힘을 잃었다는 증거다. 당신 자신이 매우 약해졌기 때문에 그런 통찰력이 제구실을 못하는 것이다. 강해지기 위해서, 그리고 통찰로 얻은 지혜를 실천하기 위해서 당신은 자신에게 투자해야 한다.

회사가 성장하려면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해야 하는 것처럼 우리도 “어떻게 하면 늘 깨어있는 마음으로 머물 것인가?”라는 화두에 투자해야 한다.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당신 곁에서 힘을 보태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친구나 스승, 공동체 등이 있으면 당신은 쉽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깨어있는 마음을 수행하기 위해 수련회에 간다면 그것은 자신에 대한 현명한 투자다.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수련회 참석은 자신뿐 아니라 가족에 대한 연구개발의 시간이기도 하다. 자신 안에 잠들어있는 힘과 안정, 그리고 행복을 개발하기 위해서 그리고 동시에 가족의 힘과 안정, 행복을 연구하기 위해서 우리는 출구를 찾아야 한다. 이렇게 자신과 가족을 돌보는 수행은 훗날 나의 안정과 행복을 위한 훌륭한 토대가 될 것이다. 이렇게 얻은 통찰력은 우리를 보호해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한다. 이것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투자다.

이 세상 모든 것은 다른 모든 것과 이어져 있다. 당신이 행복해야 가족도 행복하고 일도 잘 된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주변 상황과 더불어 몸과 마음의 상태를 깊이 통찰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당신이 해야 할 그 다음 투자는 가족의 고통을 없애고 행복을 실현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선 당신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만약 당신이 일이나 생각의 노예라면 당신의 노력은 물거품이 될 것이다.

우리는 깨어있는 삶의 기술을 모르는 탓에 삶을 제대로 살지 못한다. 우리 아이들 또한 깨어있는 삶이나 깨어있는 소비의 기술을 모르는 탓에 점점 삶을 망가뜨리고 있다. 이제 출구를 찾기 위해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현실을 직시하자.

바쁘게 일만 하는 사람은 제동장치 없이 달리는 위험한 기차와도 같다. 일은 당신을 무작정 질주하게 한다. 깨닫지 못하는 한 당신은 절대 멈출 수 없다. 돌이킬 수 없는 대형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당신은 그 질주를 멈춰야 한다. 매순간 깨어있는 마음을 수행하라. 당신이 진정 일에 주도권을 잡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시간은 귀중하다. 심지어 시간을 돈에 비유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시간은 돈이 아니며, 돈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시간은 바로 삶이고 생명이다.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면 당신 앞에는 돈을 벌어야 하는 24시간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야 할 24시간이 펼쳐져 있다. 이것이 바로 당신이 지금 이 순간에서 달아나고 싶은 유혹에 지지 말고 버텨야 하는 이유이며, 지금 이 순간을 생생히 살아야 하는 까닭이다. 당신이 투자해야 할 것은 돈이 아니라 바로 당신의 삶 그 자체다.

PART 2 세상살이에 힘을 갖고 싶다면 발밑에 떨어진 행복부터 주워담아라

소망은 나아갈 힘을 주지만 욕망은 삶을 지치게 한다

소망과 욕망을 구분하는 것은 중요하다. 가끔 우리는 욕망을 숭고한 소망이나 이상으로 착각하곤 한다. 어떤 사람은 좀더 평화로워지기 위해서 종종 욕망을 소망으로 둔갑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 두 가지는 분명 다르다. 자비심과 사랑에 근원을 둔 소망은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주지만, 욕망은 결국 삶을 지치게 한다.

흔히 우리는 일을 돈벌기 위한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행복해지려면 많은 돈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는 유일한 요소인가? 그것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진실을 알고 싶다면 내면 깊숙이 자리한 욕망을 찬찬히 들여다보라. 만약 당신 자신이 고통받고 있고 사랑하는 이들에게도 고통을 주고 있다면 당신의 욕망은 어떤 것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많은 기업가들은 흔히 자신의 사업이 잘 되면 많은 사람들이 일터를 갖게 될 것이고, 환경도 보호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신을 속여서는 안 된다. 자신의 태도와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근거를 찾아서도 안 된다. 결국 욕망의 1차 피해자는 자신이기 때문이다. 일상적인 행동에 동기를 부여하는 근원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는 깊이 들여다보는 수행을 해야 한다.

그 동기가 어떤 것이냐에 따라 우리는 고통에 이르기도 하고 행복에 이르기도 한다. 긍정적인 동기는 당신을 건강과 행복으로 인도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준다. 하지만 부정적인 동기는 그렇지 않다. 욕망이 지나치면 탐욕이 되며, 이 때문에 사실 더 고통스러워지는 경우가 많다.

붓다는 이를 ‘뼈다귀 쫓는 개’에 비유했다. 개는 뼈다귀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하지만 여전히 뼈다귀에 매달린 채 절대 놓지 않는다. 욕망에 대한 우리의 태도도 이와 비슷하다. 욕망은 절대로 만족을 주지 않지만 우리는 언제나 욕망을 좇는다. 붓다는 또 횃불을 들고 바람 부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횃불에 손가락을 델 것이라는 이야기도 했다. 감각적인 욕망이 이와 같다. 감각적인 욕망은 행복을 가져오기는커녕 당신을 태워 파괴할 것이다.

감각적인 욕망이나 쾌락을 통해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지만 욕망의 저변에 무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무엇이 위험한지 어떤 고통을 가져올지 정확하게 안다면 이런 욕망은 금세 사라질 것이다. 이해는 바른 행동의 근간이며, 무지는 그릇된 행동의 주범이다.

당신이 큰절의 주지라면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당신이 서내 개의 학위를 가지고 있다면 역시 찾아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다 잠시다. 그것으로는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도 행복을 키워줄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당신이 수행을 통해 마음속에 깊은 이해와 자유와 사랑을 일궈놓았다면 사람들은 앞다퉈 당신을 찾을 것이다. 수행이 없다면 당신 안에 있는 보리심은 꽃피지 않는다. 당신 안에 보리심을 찾아라. 보리심은 당신의 삶이 욕망과 소망 중 어느 쪽에 가까운지 알려준다.

깨어있는 소비 4 - 의식. 의식은 참사랑으로 자유를 얻는다

의식은 자신과 가족, 사회의 과거 행동이 뿌린 씨앗으로 빚어진다. 주변 사람들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의식의 바다로 흘러들어 우리의 몸과 마음, 그리고 우주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의 의식은 낮이건 밤이건 끊임없이 쇠하고 있다. 이 소비는 곧바로 우리 삶의 실체가 된다. 때문에 우리가 어떠한 말과 행동을 선택할 것인지는 매우 중요한 일이다. 건강한 몸을 갖기 위해서 신선한 음식을 섭취해야 하듯 건강한 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참사랑 같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섭취해야 한다.

참사랑의 네 가지 특성은 사랑, 자비, 기쁨, 평등이다. 불가에서는 이를 네 가지 한없는 마음, 즉 사무량심(四無量心)이라고 부른다. 이런 참사랑을 지닌 사람은 누구라도 깨달은 자라 할 수 있다. 참사랑의 첫 번째 특성인 사랑은 자애와 같은 말이다. 기쁨과 행복을 주려는 마음과 실제로 베풀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그런 능력을 기르려면 깊이 보기와 깊이 듣기를 익혀야 한다.

참사랑의 두 번째 특성인 자비는 고통과 슬픔을 걷어내고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내면에 자비심을 기르기 위해서는 깨어있는 호흡, 깊이 듣기, 깊이 보기를 수행해야 한다.

여름철의 시원한 산들바람을 조그만 방에 넣으려 한다면 산들바람이 죽어버리는 것처럼 사랑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는 구름이고 바람이고 꽃이다. 그런데 당신이 그를 병에 가두려 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사랑을 좁은 틀 안에 가두려고 한다. 그의 자유를 뺏고 행복을 구속해 그가 더 이상 자신의 삶을 살 수 없도록 만든다. 이런 구속은 단지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일 뿐 사랑이 아니다.

참사랑의 세 번째 특성은 기쁨이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는가? 자신의 행복이나 다른 사람의 행복을 모두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 그것이 바로 참사랑에서 말하는 기쁨이다. 그리고 참사랑의 네 번째 특성은 평등한 마음이다. 진정한 평등은 냉정한 것도 무관심한 것도 아니다. 다만 모든 것을 동등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이다. 평등한 마음이 없다면 당신의 사랑은 소유욕과 집착에 머물고 만다.

당신이 건네는 사랑이 참사랑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 안에 사랑, 자비, 기쁨, 평등이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어쩌면 당신은 자신의 사랑에서 미움, 무지, 의심, 자만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은 모든 걸 부정적으로 본다. 그리고 그의 삶은 깨달음의 길과는 정반대로 치닫게 된다. 듣고, 보고, 먹고, 행동하고, 말하는 모든 소비에 주의를 기울여라. 늘 참사랑에 가까운 소비가 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깨어있는 소비며, 삶을 행복하게 하는 수행이다.

행복은 멀리 있지 않다. 다만 자신이 한계와 만족을 모를 뿐이다

당신은 혹시 행복에 ‘특별한’ 조건을 달아놓고 있지는 않은가? “이것만 있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혹은 “저것만 없다면 내 삶은 정말 완벽할 텐데….” 이런 생각은 매우 위험하다. 마치 다가오는 행복에게 빨간색 접근 근지 표지판을 들이대는 것과 같다.

전문 열람 제한

미가입 상태이므로 요약본의 일부만 제공됩니다.
더 깊이 있는 내일의 통찰력과 지식 에너지를
프리미엄 무제한 이용권으로 충전해 보세요!

멤버십 가입 / 결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