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 anger
틱낫한 지음 | 명진출판
화 anger
틱낫한 지음
명진출판 / 2002년 4월 / 230쪽 / 8,900원
PART 1 화 좀 안내고 살 수 없을까
당신은 화가 날 때 어떻게 행동하나? 상대에게 심한 말을 내뱉는 편인가? 폭식을 일삼거나 분풀이 대상을 찾진 않는가? "나 화 안 났어."라고 애써 태연한 척하진 않는가? 화를 내는 사람도 화풀이를 당하는 사람도 마음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다. 화가 날 때는 거울을 봐라. 성난 얼굴을 똑바로 응시하고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짚어 보라.
눈 돌리면 화나는 것 투성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화를 안고 살아간다. 화는 기쁨, 슬픔, 즐거움, 두려움 등과 같은 일상적인 감정들 중 현대인의 마음 속에 가장 많이 출몰한다. 그 원인에는 타인과의 부딪힘이나 욕구에 대한 불만족, 과다한 경쟁, 잦은 스트레스 등을 먼저 꼽을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 '먹는 것'에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면 우리의 몸과 마음은 별개가 아닌 하나라 했다. 우리가 화를 내거나 절망할 때, 혹은 폭력적인 성향으로 변할 때 우리의 몸은 먹는 음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분노와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먼저 식사와 소비의 전략을 세워야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식사는 문명의 한 단면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우리가 화를 일으키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음식에 화가 들어있는 경우가 있다. 광우병에 걸린 소의 고기나, 계란이나 닭고기에도 엄청난 양의 화가 들어있을 수 있다. 그럴 때 우리는 화를 먹는 셈이며, 따라서 그것을 먹고 난 다음에는 그 화를 표현하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 모든 음식을 잘 살펴서 먹어야 한다.
요즘에는 닭이 최신 시설을 갖춘 대규모 농장에서 사육된다. 닭이 걸을 수도 없고, 뛸 수도 없고, 흙 속에서 먹이를 찾아 먹지도 못하고 순전히 사람이 주는 모이만을 먹고 자란다. 걷거나 뛸 자유가 전혀 없는 상태를 상상해 보라. 밤낮 없이 한곳에서 꼼짝도 못하고 지내야 하는 상태를 상상해 보라. 틀림없이 미쳐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그렇게 사는 닭들도 당연히 미쳐버린다. 닭이 알을 더 많이 낳게 하기 위해서 농부는 인공적으로 밤과 낮을 만들어낸다. 조명등을 이용해서 낮과 밤의 길이를 조절하면 닭은 24시간이 지난 것으로 믿고 또다시 알을 낳는다. 그런 악순환을 반복하는 사이 닭은 엄청난 화와 좌절과 고통을 안게 된다. 그 같은 닭이 낳은 계란을 먹을 때 우리는 그 화와 좌절을 먹는 셈이 된다. 그 화를 먹으면 우리가 분노하게 되고 그 화를 표현하게 된다.
우리는 행복한 닭이 낳은 행복한 계란을 먹어야 한다. 우리는 화가 난 암소에게서 짠 우유를 마셔서는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농부들이 가축을 더 인간적인 방식으로 기르는 데 도움을 주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또 유기적으로 길러진 채소를 사 먹어야 한다. 값이 더 비싸지만, 적게 먹으면 된다. 우리는 적게 먹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는 음식을 통해서 화를 먹을 뿐 아니라 눈과 귀와 의식을 통해서도 화를 우리 몸에 받아들인다. 문화상품을 소비하는 행태도 화와 연관이 있다. 그러므로 화를 막기 위해서는 먼저 소비의 전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방송에서 뉴스를 들을 때, 신문기사를 읽을 때, 어떤 문제를 놓고 타인들과 대화를 할 때 우리는 마치 아무 생각도 없이 아무 음식이나 먹는 것처럼 행동하지는 않는지 늘 유의해야 한다.
많이 먹어도 화는 풀리지 않는다
슬픔과 절망을 잊으려고 먹는 것을 도피처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과식은 소화계통에 장애를 일으킬 수 있고, 그리하여 화를 일으킬 수 있다. 과식을 하면 에너지가 너무 많이 생산된다. 이 과도한 에너지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분노의 에너지, 폭력의 에너지로 변할 수 있다. 적게 먹을 때 우리는 제대로 먹을 수 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양의 절반만으로도 충분하다. 먹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깊은 수련이다. 그 음식을 자각하고, 내가 지금 음식을 먹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는데 우리는 이런 행동을 수련을 통해서 익힐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음식을 즐기면서 아주 신중하게 씹어서 먹어야 한다. 자각적으로 음식을 먹을 때 우리는 화와 불안을 섭취하지 않게 된다. 손수 음식을 차려 먹을 때는 눈을 조심해야 한다. 절대로 눈을 믿어서는 안 된다. 과식을 하게 만드는 주범이 바로 눈이다. 우리는 눈이 원하는 만큼 먹을 필요가 없다. 음식을 의식적으로 먹는 것을 익히면 눈이 원하는 만큼의 절반만을 먹고도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우리의 눈은 위보다 더 크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식의 에너지로 눈을 길들여서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만큼의 음식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아야 한다. 중국에서는 수도승들이 사용하는 밥그릇을 바리때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적당한 양을 재는 그릇'이라는 뜻이다. 우리도 그러한 밥그릇을 사용하면 눈에게 기만당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그릇을 채우는 만큼이면 누구에게나 충분한 양이 된다. 그와 같은 방식으로 음식을 먹으면 음식을 사는 데 비용을 적게 쓰게 된다. 비용이 적게 들면 조금 값이 비싸더라도 유기농으로 재배된 음식을 살 여유가 생기고, 그것은 유기농 재배로 생계를 꾸리고자 하는 농부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게 된다.
화는 보살핌을 간절히 바라는 아기다
화를 감싸안기 위해서 우리는 아기의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어머니가 나타났다는 사실은 아기에게는 햇빛을 만난 것과 다름없다. 어머니의 마음에는 온정과 관심과 자애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먼저 아기를 들어올려서 품에 안는다. 그리고 아기를 품에 안은 어머니의 에너지가 아기의 몸 속으로 들어가서 아기를 달랜다. 이것이 바로 마음속에서 화가 차오를 때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이다. 수련자로서 우리도 아기의 어머니처럼 화에 관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화의 칭얼거림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화의 뿌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충분히 알 때까지 수련을 해야 한다. 의식적인 호흡과 보행은 화를 잠재우는 자장가다. 어머니의 사랑의 에너지가 아기의 아픔의 에너지를 삭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자각의 에너지가 화의 에너지를 삭이게 된다. 호흡과 미소와 보행 명상을 의식적으로 실천하는 것을 몸에 익히면 5분이나 10분이나 15분 안에 마음이 평온해질 수 있다.
화내는 것도 습관이다. 그 연결고리를 끊어라
여름철마다 플럼빌리지에 와서 다른 청소년들과 함께 수련을 하는 열두 살짜리 소년이 있었다.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작은 실수에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를 자애롭고 훌륭한 아버지로 볼 수가 없었다. 그는 이 다음에 커서 결혼을 하고 자식들을 갖게 되면 자신은 절대로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플럼빌리지에 두 번째로 왔을 때 그는 여동생을 데리고 왔다. 그러나 여동생이 실수를 하자 그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했던 말을 여동생에게 할 뻔했다. 그러나 그는 플럼빌리지에서 두 번이나 수련을 한 덕분에, 그 순간에 스스로 억제할 수 있었다. 소리를 지르는 대신에 그는 얼른 그 자리에서 벗어나 의식적인 호흡과 보행을 실천했다. 불과 5분 만에 그는 어떤 깨달음의 순간을 경험했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습관적 에너지가 너무 강해서 그도 거의 아버지와 똑같이 될 뻔했던 것이다. 열두 살짜리 소년에게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또 어느 순간에 갑자기 그 습관적 에너지를 처리하기 위한 수련을 해야겠다는 열망이 차올랐다. 그러면서 소년은 그의 아버지도 화에 전염된 희생자라는 것을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그러자 아버지에 대한 그 동안의 화가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는 아버지와 함께 수련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이해할 때 우리는 그를 응징하려는 생각을 버리고 오히려 돕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 그 순간에 우리는 자신의 수련이 성공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화를 참으면 병이 된다. 애써 태연한 척 하지 마라
나를 화나게 한 사람에게 맞대응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화를 감추거나 피해서는 안 된다. 내가 지금 화가 나서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타인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이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몹시 화가 났을 때는 화가 나지 않은 척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내가 화가 났으며 고통스럽다는 사실을 그에게 고백해야 한다. 그러나 말을 아주 차분하고 침착하게 해야 한다. 참사랑에 자존심은 없다. 누구나 "난 혼자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어!"라고 말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은 모든 것을 함께 하겠다고 했던 처음의 언약을 배신하는 것이다. 어떠한 관계이건 관계 속에서 어느 하나가 행복하지 못하면 다른 쪽도 행복해질 수가 없다.
1. "나 화났어. 마음이 몹시 아파."
가령 부부가 서로 "여보, 사랑해요."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좋은 일이고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기쁨과 좋은 감정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찬가지로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도 그 사실을 알려주어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 그럴 권리가 있고, 그것이 참사랑이다. "당신 때문에 화가 났어. 고통스러워."라고 최선을 다해서 차분하게 말해야 한다. 24시간이 시한이다. 마음이 진전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화가 극심하기 때문에 당장은 말을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당장 의식적인 호흡과 보행을 실천하라. 그래도 마음이 가라앉질 않았다면 글로 쓰면 된다. 24시간이 지나기 전에 그 편지를 전해야 한다.
2.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어."
내가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말할 때,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은 내가 화를 담은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스로 화를 자각하여 끌어안기 위해서 호흡과 보행을 의식적으로 하겠다는 의미다. 화는 아기와도 같다. 그러므로 화는 보살핌을 필요로 한다. 화를 끌어안고 있을 때는 그 화의 실체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그리고 판단을 잘못했기 때문에 화가 난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을 오해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흔히 화는 그 같은 무지와 그릇된 판단 때문에 빚어진다.
3. "제발 날 도와줘."
세 번째 문장은 앞의 두 문장에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제발 날 도와줘. 난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 이것이 참사랑의 말이다. 우리는 이미 서로가 서로를 잘 보살펴주기로 언약을 했다. 그러므로 상대방 때문에 내가 고통을 받을 때에는, 비록 스스로가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 제발 날 도와줘."라고 말을 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올바른 행동이다. 이 같은 말을 상대방에게 차분하게 하면 그 사람이 이내 마음을 누그러뜨리고 위안을 받을 것이다. 내가 화를 다스리는 방식이 상대방으로 하여금 나를 신뢰하고 존중할 수 있게 해준다. 그 사람도 그저 짜증이 나서 무심결에, 혹은 그릇된 판단 때문에 나를 화나게 하는 말이나 행동을 했었다는 것을 깨달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후회를 하고, 그 후회하는 심정을 나에게 알려주려 할 것이다. 그가 내게 진심으로 사과하면 나는 고통을 씻고 진정으로 그를 존중하는 마음이 생길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며 그들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내 판단이 옳다고 100% 장담하지 마라
내가 당한 고통의 주된 원인은 내 안에 있는 화의 씨앗이며, 타인은 부차적인 원인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먼저 깨닫자. 자신의 책임을 깨닫기 시작하면 이내 마음이 훨씬 편안해진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아직도 지옥에 빠져있을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내가 돕지 않으면 누가 도울 것인가? 그에게로 가서 그를 돕겠다는 동기가 유발되는 순간에 내 안의 모든 화가 연민의 에너지로 바뀌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대개의 경우 화는 그릇된 판단에서 비롯된다. 고통의 원인을 캐어보고 그것이 그릇된 판단에서 빚어졌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즉시 상대방에게 말을 해야 한다. 그는 나에게 고통을 주거나 파괴하길 바라지 않았는데, 단지 내가 그렇게 믿었을 뿐이다. 그릇된 판단 때문에 자신에게 고통을 안겨주는 사람은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엄청난 고통을 안기기 마련이다. 화가 나서 마음이 아플 때는 자신에게로 돌아가서 자신이 판단한 내용과 그 실체를 깊이 재고해 봐야 한다.
행복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라
결혼 전 남편에게서 받은 옛 연애편지를 고이 간직해온 프랑스 여자가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옷장을 정리하다가 그녀는 옛 연애편지들을 넣어두었던 상자를 우연히 발견했다. 그녀는 오랫동안 그걸 잊고 지내왔다. 젊은 시절에 그들은 서로를 지극히 사랑했고, 서로가 없이는 살 수가 없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에 남편도 아내도 많은 고통을 당해왔다. 그들은 더 이상 기쁜 마음으로 서로를 대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그 편지들을 하나씩 읽기 시작했다. 예전 그 행복의 씨앗들이 아직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켜켜이 쌓인 고통 속에 묻혀버렸지만, 그 씨앗들은 죽지 않고 아직도 살아 있었다. 옛 연애편지를 읽던 한 시간 반 동안에 그녀는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있던 행복의 씨앗에 물을 뿌려준 것이다. 그녀는 남편도 자기도 서로에게 미숙했던 탓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갑자기 남편에게 편지가 쓰고 싶어졌다. 그녀는 그 행복했던 시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썼다. 그리고 이제 그녀는 '사랑하는 당신에게'라는 말을 진심으로 솔직하게 남편에게 할 수 있었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어떤 깨달음을 얻었다. 두 사람 모두가 그 동안 미숙했었다는 것을, 미숙했기 때문에 마땅히 누려야 할 행복을 보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가슴 깊이 깨달았다. 그런 사실을 이해하자 그녀는 이제부터라도 둘이서 노력을 하면 다시 행복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녀는 이제 지난 여러 해 동안처럼 더 이상 고통스럽지가 않았다. 집에 돌아온 남편이 책상 위에 놓인 편지를 읽었다. 그는 오랫동안 책상에 앉아서 깊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아내에게서 일어났던 그 깨달음에 도달했다. 그 일을 계기로 그들 부부의 관계는 개선되었고, 행복을 되찾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마음의 문을 다시 여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 대화를 하기 어려우면 하루나 이틀 동안 의식적인 호흡과 보행을 실천하자. 그런 다음에 차분하게 앉아서 사랑의 편지를 쓰자. 사랑의 말이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 연민의 정으로 귀를 기울이는 것이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기적이다. 우리에겐 그럴 능력이 충분히 있다.
PART 2 화가 풀리면 인생도 풀린다
인생에서 우리의 '관계'보다 소중한 건 없다. 우린 왜 그 동안 서로에게 상처를 입혔을까? 맞잡은 손이 이토록 따뜻하다는 걸 모른 채 왜 아픔을 주고받길 반복했을까? 이젠 서로를 멀리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화가 풀릴 때마다 우리는 더 행복해진다.
화를 선물로 돌려줘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중 몇몇 사람은 혼란과 화와 의심의 강변에 서 있을 것이다. 거기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된다. 빨리 강을 건너야 한다. 보행과 호흡을 자각하고, 자신을 깊이 들여다보고, 마음의 경전을 외우면 이내 강을 건널 수 있다. 불과 몇 분 만에도 건널 수 있다. 우리에게는 행복을 누릴 권리가 있다. 깨달음의 씨앗이 우리 안에 있으며, 그 씨앗을 지금 당장 꽃으로 피어나게 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몹시 화가 나서 그 감정을 처리하려고 온갖 애를 써봐도 소용없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그 사람에게 선물을 주라고 부처가 권했다.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는 그에게 상처를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도리어 그에게 선물을 주면 그에 대한 미움이 가라앉고 화가 풀리며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오히려 그가 행복해지길 바라게 되는 것이다. 화가 났을 때 선물을 사러 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고 감사함을 느낄 때 그에게 줄 선물을 사두자. 선물을 여러 개 준비해 두었다가, 그 사람 때문에 화가 났을 때 하나씩 보내는 것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훨씬 효과적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