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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보는 성인의 학문 - 성학십도

퇴계 이황 지음 | -
그림으로 보는 성인의 학문 - 성학십도 聖學十圖

퇴계 이황 지음



1. 태극도 - 태극은 세계와 만물의 근원적 원리

북송의 염계(廉溪) 주돈이(周敦頤)는 ‘태극도’라는 그림과 그것에 대한 해설인 「태극도설」을 지어 성리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는데, 주자는 태극을 리(理)로 보아 해설한 바 있다. 퇴계는 『성학십도』에서 주렴계의 태극도설 전문과 주자의 해설을 일부 발췌해 싣고, 자신의 보충해설을 덧붙였다.

태극도설

(태극은) 그 이상의 근본원리가 없다는 의미에서 무극(無極)이며, 그것이 바로 위대한 근본원리가 된다는 의미에서 태극(太極)이다.

이런 성질을 가진 태극이 운동과 정지를 되풀이해 음양이라는 두 기운이 생겨나고 하늘과 땅이라는 기본 공간이 성립하며, 금, 목, 수, 화, 토라는 사물을 구성하는 구체적인 질적 요소인 오행이 생긴다.

이 두 기운과 오행의 변화와 교체를 통해 만물이 생성되고 네 계절이 운행된다. 그런데 이 두 기운이나 오행이나 네 계절이나 만물은 결국 태극의 운동으로 생긴 것이므로, 개개 사물의 생성과 변화에는 태극이 내재해 있다.

그런데, 인간은 두 기운과 오행 가운데서 가장 우수한 것들을 받아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을 낳게 한 태극, 곧 근본원리가 가장 많이 갖춰져 있는데, 이것을 인간의 본성이라고 한다. 따라서 인간의 본성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고 기능하는 태극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근본원리가 주어지면 두 기운과 오행에 의해 (사람의) 몸이 생겨나는데, 그것이 뛰어나게 작용할 때 정신도 지력도 발휘되며, 또 갖가지 양식으로 감응하고 발동하여 선행과 악행 등 모든 것을 낳는다.

형기를 갖춘 구체적 사람은 각각 다양하게 개성적으로 변화하고 행동하므로, 성인은 세계와 존재의 근본원리인 태극, 곧 인간의 지극히 고요한[靜] 본성에 중심을 두어 인간이 지켜야 할 표준을 세웠다.

주자의 해석

위와 같은 내용의 태극도설을 주자(주희)는 이렇게 해석했다. 주자는 태극의 이치를 자각하고 체득하려면 마음이 경(敬)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런데 경은 인욕(人慾)을 적게 가져야 유지된다. 인욕이 적어져 마침내 욕심이 없는 상태가 본성을 자각할 수 있는 상태이고, 성인의 학문을 배우고, 실천하는 데 적합한 상태라고 한다. 이런 상태가 돼야 세계 안의 존재의 원리고, 인간이 본받아야 할 근본원리인 태극을 체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퇴계는 자신이 「태극도설」을 첫머리에 내세운 것은 성학의 근본이 「태극도설」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소학』과 『대학』 등 구체적 공부를 통해 효과를 얻었을 때도, 마찬가지로 다시 하나의 근원적 원리인 태극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치를 완전히 탐구해야 성품대로 살면서 천명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 서명도 - 우주 안의 모두가 한 가족

두번째 그림인 서명도의 근거가 된 「서명 西銘」은 북송의 신유학자인 횡거(橫渠) 장재(張載)의 유명한 『정몽 正蒙』,「건칭 乾稱」편의 한 대목인데 원래 이름은 정완(訂頑-완고한 사람을 바로잡아 준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정이(程頤)가 「서명」이라고 이름을 고친 것이다. 「서명」의 내용을 정임은(程林隱, 원대의 성리학자 이름은 復心)이라는 사람이 그림으로 만든 것이 서명도다. 「서명」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하늘은 아버지요 땅은 어머니다. 나라는 미미한 존재가 그 가운데 살고 있으니, 우주에 가득한 기가 내 몸을 이루고 우주의 주재가 나의 본성을 이룬다. 만민은 나의 동포요, 나의 동반자이니 임금은 내 부모의 큰 아들, 그 대신들은 큰아들의 가신들. 노인을 공경함은 내 집의 어른을 모시는 것이고, 고아와 아이를 보살핌은 내 아이를 사랑하는 일이다....노쇠하고 병든 사람, 고아와 자식 없는 노인, 홀아비와 과부들은 곤경에 빠져 의지할 데 없는 내 형제들이니 그들을 보호하고 기르는 것은 부모를 감싸는 아들의 보살핌과 같고 그들을 기꺼이 대하여 근심하지 않은 것이야말로 순수한 효다....

주자의 해석

그러나 주자는 [이것이 무차별적 사랑을 주장하는 묵자의 겸애설과 혼동되지 않도록] ‘이치는 원래 하나지만 분수가 다르다’는 이일분수(理一分殊) 개념으로 해석했다. 모든 사물이 다 천지를 부모로 가지므로 이치는 하나(理一)라는 말이 성립되지만, 사람이든 생물이든 혈기가 있는 것들은 자기 부모, 자기 자식을 사랑하므로 각자의 분수가 다르다고 말한다. 주자는 「서명」의 대의가 이런 이일분수에 있다고 보고, 자기 부모를 사랑하는 정성을 미뤄 무아의 공명정대함을 확대하고 부모를 섬기는 성심을 바탕으로 하늘을 섬기는 도를 밝힌다면, 어느 경우든 분수는 다르지만 이치는 하나라고 해석한 것이다.

퇴계는 여기에다 성인의 학문에서 추구하는 것이 인(仁)이고, 인의 내용은 천지만물과 일체가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3. 소학도 - 청소하고 응대하는 공부

세 번째 그림인 소학도는 퇴계 자신이 그림 그림인데, 주자가 쓴 소학제사(小學題辭)라는 서문이 실려 있고, 『대학혹문 大學或問』이라는 주자의 책에서 인용한 글이 붙어 있으며, 퇴계의 부차적인 해설도 곁들여 있다. 주자는 소학제사에서, 인간의 성품이 애초에 착하며, 그런 성품의 근원인 ‘인의예지’가 대상에 대한 감정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래서 어버이에게는 사랑으로, 형제에게는 존경으로, 국가에는 책임과 의무로, 연장자에게는 공손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감정의 근원이 인간이 지닌 보편적인 성품인데, 성인은 성품을 따르는 자이므로 힘들이지 않고서도 모든 선을 갖추지만, 일반인은 어리석어서 물욕에 파묻혀 본래의 규범을 위반하고 자포자기에 빠진다는 것이다. 이런 어리석음을 안타깝게 여겨 성인들이 학교를 세우고 스승을 둬 인간의 성품을 잘 기르고 일생 생활에서 펼쳐가게 했다고 하면서, 소학이 지향하는 바가 일상의 행동양식이나 기예를 익히고 심신을 닦는 데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리고 『대학혹문』의 내용이 인용돼 있다. 『대학혹문』에 따르면, 배우는 데는 『대학』과 『소학』의 차이가 있지만 진리로 향하는 길은 하나 뿐이다. 어려서 『소학』을 익히지 않으면 방심하기 때문에 덕성을 길러 『대학』의 기본을 삼을 수 없으므로 『소학』의 주요 문제를 먼저 배운 다음에 『대학』으로 가는 것이 순서고, 『대학』이든 『소학』이든 경(敬)을 중심으로 삼아야 한다.

퇴계는 『소학』과 『대학』이 서로 의존관계에 있어서 하나면서 둘이고 둘이면서 하나임을 강조했다.



4. 대학도 - 수기치인의 공부

네 번째 그림인 대학도는 『대학』의 경문(經文)을 조선 초 권근(權近)이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그림해설로는 『대학혹문』에서 인용한 글과 퇴계의 보충 설명이 있다.

주자의 말

『대학』 경문이란 『주자장구 朱子章句』 제1장에 해당하는 것이다. 경문에서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들고, 자기 마음 안에 갖추어진 선한 성품을 밝히고[明明德] 백성을 새롭게 하며[新民] 최고선에 도달하여 머무름[止於至善]을 최종목표로 설정한 것이다. 이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자기 마음을 바르게 하고[正心], 뜻을 정성되게 하며[誠意], 사물에 대한 지적 탐구[格物致知]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다음으로, 『대학혹문』에서 주자는 마음에 경(敬)을 확립하는 것이 『소학』과 『대학』에 모두 요청되며, 경이 성학의 시종을 일관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퇴계의 보충설명

퇴계는 보충 설명을 통해서, 앞서 나온 태극도와 서명도는 근원을 탐구하는 것이고, 『소학』과 『대학』은 구체적인 실천학문이며, 이후 나올 여섯 개의 그림은 수양에 관한 것인데, 역시 『소학』과 『대학』을 바탕으로 삼는다고 보았다. 그리고 나서, 『성학십도』의 열 개의 그림이 모두 경의 의미를 주요 내용으로 삼는다고 설명하고, 특히 「태극도설」에서는 마음이 고요한(靜)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것만 말하고 경을 말하지 않았지만, 주자가 해설에서 경을 보완했으므로 「태극도설」도 경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5. 백록동규도 - 학문의 목적은 의리의 자각과 자기 수양

다섯 번째 그림인 백록동규도에는 주자가 쓴 동규후서(洞規後敍)와 퇴계의 설명이 붙어 있다.

백록동규(白鹿洞規)는 주자가 만든 백록동 서원의 학칙이다. 이 학칙은, 오륜이 유학의 근본목적임을 확인하고, 배우는 순서로 박학(博學)․심문(審問)․신사(愼思)․명변(明辨)․독행(篤行) 등 다섯 항목을 들고 있다. 앞의 넷은 이치를 탐구하는 것이고, 독행은 몸을 닦는 일부터 사물에 접하는 것까지 모든 실천을 포괄한다. 주자는 위와 같은 내용의 백록동규를 만들고 후기(後記)에 해당하는 동규후서라는 글을 지어, 학문의 목적은 의리를 밝게 자각하여 몸을 닦아 남에게 베푸는 데 있다고 선언했다.

퇴계는, 이 백록동규가 학생들에게 제시된 것이지만, 제왕의 학문도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도리에 근거해야 하는 것이므로 이 그림을 잠언으로 삼으라고 (선조에게) 권하는 보충해설을 실었다.



6. 심통성정도 - 마음을 경으로 지켜라

여섯 번째인 심통성정도는 글자 그대로 ‘마음이 성품과 감정을 통괄한다’는 내용을 그림으로 그린 것인데, 특이하게도 그림이 셋이다. 맨 위에 있는 그림은 정임은이 그린 것이고, 가운데 그림과 아래 그림은 퇴계 자신이 그린 것이다. 여기에 정임은과 장재의 심통성정도설을 덧붙이고, 퇴계 자신의 상당히 긴 해설을 추가했다.

정임은의 주장

우선 정임은의 주장을 보면, 사람은 음양 두 기와 오행의 뛰어난 작용을 받아 태어나서, 성품과 감정이 생기는데, 성품과 감정을 통합하는 것이 마음이므로, 마음이 고요해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성품이고 마음의 본체이며, 마음이 외물에 대해 느껴져 움직이는 것이 감정이고 마음의 작용이라고 설명했다. 또, 장재는, 마음이 성품과 감정을 통괄하므로 마음을 바르게 하여 성품을 기르고, 감정을 단속해 나가는 것이 학문의 길이라고 여겼다.

퇴계의 설명

퇴계는 이어 자신이 그린 가운데 그림과 아래 그림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가운데 그림에서는,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그 생성 변화의 원리(無極而太極)를 갖추고 있다고 전제하고, 인간도 그 원리를 내재적으로 갖추고 있는데, 그것이 성품이고, 순수하고 지극히 선한 것이며, 따라서 성품이 그대로 발동하면 감정이 되더라도 선하므로 그것을 사단(四端)의 성품이라고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아래 그림에서는, 리와 기를 포함한 기질의 성품에 대해 말하는데, 사람은 존재원리로서의 理와 심신의 구성요소로서의 氣로 구성되므로, 리기를 합한 현실적이고 구체적 차원에서의 성품을 보면, 이기를 포함한 기질의 성품이 발동해 감정이 되면 리와 기가 서로 따르는 경우와 해치는 경우가 생긴다. 이른바 사단의 감정은 리가 발동해 기가 따르므로 순수하게 선하고 악이 없다. 그러나 리가 아직 충분히 발동하지 못했을 때 기가 덮어버리면 이 감정은 선하지 않게 된다. 칠정도 기가 발동해 리가 이에 타면 선하다. 만일 기가 발동해 감정대로 흐르고 리를 없애버리는 일이 생기면 그 감정은 악이 된다.



이렇게 퇴계는 성품과 감정을 이원적으로 설명하면서, 결국 성품과 감정을 통합해 몸을 주재하는 마음을 경으로 키우고 지켜 본연의 성품이 발로되기를 기대해야 한다고 논했다. 그런데 이런 설명은 사단칠정 논쟁에서 가졌던 ‘이기호발설’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어 주목된다.



7. 인설도 - 천지가 만물을 낳는 마음

주자의 인설(仁說)과 인설도에 퇴계의 설명이 붙어 있다.



주자의 인설은 천지의 마음(원리)과 사람의 마음의 상관관계를 말한 것인데, 궁극적으로는 마치 천지 자연에 모든 만물을 낳는 원리가 있듯이 그에 비견될 만한 인간의 원리는 인임을 강조하여 인에 도덕적 능동성을 부여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주자는 사람의 마음이 발동하기 전에는 인의예지의 네 덕이 본성적으로 구비되어 있다고 전제하고, 이 때 인이 네 덕을 통합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을 본체, 측은지심을 작용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여 예로 돌아가는 것이 인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공자의 말에서 보듯 인은 사사로운 마음을 제거하고 천리에 순응하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그럴 때 마음의 본체인 인이 실현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을 잘 체득해 보존하면 선의 근원이 그 속에 있고, 모든 행실의 근본이 거기 있게 된다. 유가에서는 배우는 사람들에게 인을 체득하도록 노력하라고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데, 인을 갖고 있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대인관계에서, 다른 사람들을 포근하게 사랑하는 마음, 남을 이롭게 하는 마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퇴계가 군주는 언제나 인의 상태에 있어야 한다는 보충설명을 덧붙인 것이다.





8. 심학도 - 마음은 몸의 주재자, 경은 마음의 주재자

정임은의 심학도와 심학을 논한 옛 성현의 여러 주장을 종합해 지은 심학도설이 딸려 있고, 역시 퇴계의 보충해설이 곁들여진다.

심학도설에서는 인심(人心)은 욕심에 민감한 것이고, 도심(道心)은 의리에 밝은 것인데, 도심과 인심의 두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인심이 성명에 기초해 작용할 때 도심이 된다고 본다. [그림에서] 인욕을 막고 천리를 보존하기 위한 공부로 마음을 집중하는 것[精一執中], 삼가해 신중하게 행동하는 것[愼獨]. 두려워하고 조심하는 것[戒懼] 등을 들고 인욕을 막고 도심에 이르는 노력이나 공부의 요건은 경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는 데 있다고 한다. 마음이 몸을 주재하고 경이 마음을 주재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해 다른 데로 가지 않게 할 것[主一無適], 언제나 마음이 정돈돼 단정하고 엄숙하게 할 것[整齋嚴肅], 마음을 거둬들여 언제나 각성상태에 있을 것 같은, 경에 대한 여러 주장을 깊이 헤아려 봐야 하는 것이다.

퇴계는 이런 성학의 다양한 심법이나 수양법은 선후의 순서가 있는 것이 아니므로 이런 모든 방법들을 한꺼번에 실천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 경재잠도 - 어떤 상황에서도 경을 유지하라

주자는 자신의 둘도 없는 친구 장경부(張敬夫, 이름은 張栻)가 지은 주일잠(主一箴을) 읽고 장경부가 빠뜨린 것을 보충하는 의미에서 경재잠(敬齋箴)이라는 잠언을 만들어 서재에 걸어 두고 자신을 경계하려 했다. 그 내용을 왕노재(王魯齋)라는 사람이 그림으로 그렸다. 경재잠을 그대로 옮겨 보겠다.

옷은 단정히 시선은 높이. 마음은 상제를 대하듯 조용히.

발은 무겁게 손은 공손히. 땅을 밟을 때는 조심스레 가볍게.

문을 나서서는 모든 사람을 손님처럼. 일할 때는 제사지내듯 소홀함 없이 조심하라.

입은 병처럼 다물고, 성을 지키듯 잡념을 막아 혹시라도 경솔하게 말라.

서쪽으로 간다 하고 동쪽으로 가지 말며, 북쪽으로 간다 하고 남쪽으로 가지 말라.

일할 때는 마음을 다른 데 두지 말고 그 일에만 두라.

마음을 한 일에 집중하여 다른 일과 섞지 말라.

마음을 하나로 하여 모든 변화를 살펴라. 이렇게 하는 것을 경을 갖는 것이라고 한다.

움직임에도 고요함에도 경을 유지해 마음의 안팎도 바르게 지켜라.

잠시라도 마음을 늦추면 틈이 생기고 온갖 사사로운 욕심이 생기느니.

불 없어도 뜨겁고, 얼음 없어도 추울 것이다.

조그마한 어긋남에도 하늘과 땅이 뒤집히고, 삼강이 문란해지고, 규범이 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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