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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빛 만고에 빛나다-선가귀감

휴정 지음 | -
선가귀감(禪家龜鑑)

서산대사 지음




▣ 『선가귀감』 읽기

『선가귀감』은 서산대사가 50여 권의 불경과 조사의 어록에서 중요한 글귀들을 발췌하고, 거기에 스님 자신의 주해(註解)와 송(頌), 그리고 평석(評釋)을 덧붙인 형식으로 돼 있다. ‘본문’으로 되어 있는 부분은 발췌된 글귀고, ‘주해’ 부분은 서산대사의 주해와 평석을 간략하게 소개한 것이다. 본래 『선가귀감』에는 세부적 목차가 없으니 아래의 목차는 내용에 따라 임의로 구분한 것이다.



나의 불성(佛性)은 우주의 본체(一物)

1. 한 물건(一物)

[본문] 여기 한 물건이 있으니, 본래부터 밝고 신령해 일찍이 나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는다. 이름할 수 없고 모양지을 수 없다. [주해] 마음과 생명의 근원은 생각으로 이해될 수 없고 말로 표현될 수도 없기 때문에 불필요한 연상작용을 막기 위해 억지로 한 물건이라고 표현하지만, 이 한 물건은 나는 것도 죽는 것도 아니며 이름붙일 수도 없고 모양을 그릴 수도 없다. 석가모니도 언어로 이 한 물건을 설명할 수는 없다. 그래서 육조스님이 회양선사에게 “무슨 물건이 이렇게 왔는고?”라고 물었을 때, 회양선사가 팔 년만에 깨치고 나서 “설사 한 물건이라 해도 맞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해 육조의 적자(嫡子)가 됐다.

2. 부처와 조사의 출세(出世)

[본문] 부처님과 조사가 세상에 나오심이, 바람이 없는데 물결을 일으킨 것이다.

[주해] 석가모니와 가섭존자가 세상에 나오신 것은 대자대비를 바탕으로 중생을 건지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물건’으로 본다면 사람마다 본래 면목이 저절로 원만히 이뤄졌기에 다른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하는 것은 도리어 평지풍파를 일으킬 우려가 있다. 본분(本分)을 바로 들어 보일 때에는 부처님과 조사도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3. 진리의 체득

[본문] 그러나 법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고 사람들은 기질과 수준 차이가 다양하니 여러가지 방편을 벌리지 않을 수 없다. [주해] 법(法,dharma)이란 변하지 않는 원리의 면과 인연을 따르는 이치의 면이 있고 사람은 단번에 깨닫는 근기와 점차 차례로 이해하는 근기가 있으니, 문자와 말로 가르치는 방편이 없을 수 없다.

4. 억지로 지은 이름

[본문] 억지로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다, 부처다, 중생이다 했으나 이름에 얽매여 분별을 내서는 안된다. 다 그래도 옳은 것이다. 그러나 한 생각이라도 일으키게 되면 곧 어그러진다. [주해] 한 물건에 세가지 이름을 붙인 것은 부처님 말씀의 부득이함이요, 이름을 따라 분별을 내지 말라는 것은 선법(禪法)의 부득이한 일이다. 부처님과 조사의 방편은 각기 다르다.



선(禪)과 교(敎)는 일원(一元)이다

1. 세 곳에서 전함

[본문] 세존께서 세 곳에서 마음을 전하신 것은 선지(禪旨)요,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교문(敎門)이니라. 그러므로 선(禪)은 부처님의 마음이요, 교(敎)는 부처님의 말씀이다. [주해] 세 곳이란 부처님이 가섭존자에게 설법 이외의 방법으로 뜻을 전한 장소이며, 부처님이 한 평생 말씀하신 것은 아난존자에 의해 기록이 남게 되었다. 그러므로 선과 교의 근원은 부처님이고 선과 교의 갈래는 가섭존자와 아난존자이다.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은 선이고, 말로써 말 없는 데에 이르는 것은 교이다. 또한 마음은 선법(禪法)이고 말은 교법(敎法)이다.

2. 마음을 얻으면 교(敎)와 선(禪)은 하나

[본문]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에서 잃어버리면 꽃을 드신 것이나 방긋 웃는 것이 모두 교의 자취만 될 것이요, 마음에서 얻으면 세상의 온갖 잡담이라도 모두 교밖에 따로 전한 선지가 될 것이다. [주해] 법은 이름이 없는 것이므로 말로써 미치지 못하고 법은 모양이 없는 것이므로 마음으로 헤아릴 수 없다. 본바탕 마음을 잃게 되면 부처님이 꽃을 들고 가섭이 웃었던 일도 부질없는 글귀에 지나지 않게 될 것이며, 마음에서 얻으면 장사꾼들의 잡담도 다 훌륭한 설법이 될 것이다. 이것은 선과 교의 깊고 옅음을 밝힌 것이다.

3. 생각과 경계를 잊어야

[본문] 내가 한 마디 말을 할까 한다. 생각을 끊고 인연도 잊어 일없이 망연히 앉아 있으니, 봄이 오매 풀이 절로 푸르구나. [주해] 생각을 끊고 인연을 잊는다 함은 마음자리(心地)를 얻은 것을 가리키니, 배움을 끊어 망상을 없앨 것도 없고 참(眞)을 구하지도 않는 소위 ‘한가로운 도인(閑道人)’이다.

4. 교(敎)는 일심(一心), 선(禪)은 견성(見性)

[본문] 교문(敎門)은 오직 한마음 법(一心法)만을 전하고, 선문(禪門)은 오직 견성(見性)하는 법만을 전하했다. [주해] 마음은 거울의 바탕(鏡之體)와 같고 성품(性)은 거울의 빛과 같은 것이다. 성품은 스스로 청정한 것이므로 밝게 깨달을 때 본마음을 얻는다. 이것은 깨친 한 생각을 중요하게 여긴 것이다. 마음에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본래의 근본마음이요, 다른 하나는 무명(無明)의 형상만 취하려는 마음이다. 성품에도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근본진리(本法性)요, 다른 하나는 성품과 모양이 상대되는 성품(性相相對性)이다. 그러나 선을 닦는 이나 교를 배우는 이들이 다같이 어두워 이름에만 집착하고 관념적 이해만 해 얕은 것도 깊다 하고 혹은 깊은 것도 얕다 해 공부하는데 큰 병통이 되므로 여기서 가려 말한 것이다.

5. 선교(禪敎)의 다름

[본문] 그러나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은 먼저 모든 법을 가려 보이시고, 나중에 공(空)한 이치를 말씀하셨지만, 조사가 나타내는 구절은 자취가 생각에서 끊어지고 이치가 마음의 근원에서 드러났다. [주해] 부처님은 만대(萬代)의 스승이 되시므로 어디까지나 자세히 가르치셨고 조사들은 상대자가 그 자리에서 곧 해탈하게 하므로 뜻이 그윽하게 통하도록 한다.



6. 활등과 활줄의 차이

[본문] 부처님은 활같이 말씀하시고 조사들은 활줄같이 말씀하셨다. 부처께서 말씀하신 걸림 없는 법이란 한 맛(一味)에 돌아가는 것인데, 이 한 맛의 자취마저 떨어버려야 조사의 한 마음(一心)이 드러난다. [주해] 활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굽다는 뜻이요, 활줄같이 말씀하셨다는 것은 곧다는 뜻이다.

7. 먼저 참다운 가르침의 뜻부터

[본문] 그러므로 배우는 이는 먼저 부처님의 참다운 가르침으로써 ‘변하지 않는’ 그리고 ‘인연을 따르는’ 두 가지 뜻이 내 마음의 성품과 형상이며, 단박 깨치고 점차 닦는 두 가지 문은 공부의 시작과 끝임을 자세히 가려 알아야 한다. 그 뒤에, 교의 뜻을 놓아 버리고 오로지 그 마음이 뚜렷이 드러난 한 생각으로써 참선한다면 반드시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조사선(祖師禪)과 깨친 뒤의 보림(保任)수행

1. 활구(活句)1)를 참구(參究)하라

[본문] 배우는 이는 모름지기 활구를 참구할 것이요 사구(死句)를 참구하지 말라.

[주해] 활구에서 깨달으면 부처나 조사처럼 스승이 되고, 사구에서 깨달음은 자신도 구하지 못할 것이다.

2. 고양이가 쥐 잡을 때처럼

[본문] 무릇 참구하는 공안(公案)에 대해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를 지어가되 마치 닭이 알을 품듯 하고 고양이가 쥐를 잡을 때와 같이 하고, 배고픈 사람이 밥을 생각하듯 하면 반드시 꿰뚫을 때가 있으리라. [주해] 억지 노력으로는 즉,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간절함 없이 깨친다는 것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3. 참선의 세 가지 요건

[본문] 참선하는 데는 큰 신심(信心)과 큰 분발심과 큰 의심, 이 세 요건을 갖춰야 하며 그 중에서 하나라도 빠지면 다리가 부러진 솥처럼 소용없는 물건이 되고 만다. [주해] 부처님은 ‘성불하는 데에는 믿음이 근본이 된다’ 하셨고, 영가스님은 ‘도를 닦는 이는 먼저 뜻을 세워야 한다’ 하셨고, 몽산스님은 ‘참선하는 이가 화두를 의심하지 않는 것이 큰 병이다, 크게 의심하는 데서 크게 깨친다’고 말했다.

4. 개에게 불성(佛性)이 없다는 화두

[본문] 일상생활 속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도 오직 ‘어째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하는 화두를 항상 생각하고 생각해 이치의 길이 끊어지고 의미의 길이 끊어지고 재미도 없으므로 마음이 답답할 때가 온다. 바로 그때가 그 사람의 몸과 목숨을 내던질 곳이며, 또한 부처가 되고 조사가 되는 근본이다. [주해] 개에게 불성이 있는지 없는지 묻는 질문에, 조주스님이 ”없다“고 대답한 한 마디는 온갖 못된 관념적 이해를 꺾어버리는 연장이며, 부처님의 면목이며 조사들의 골수다. 이 관문을 뚫어야 부처나 조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5. 화두를 참구할 때의 병

[본문] 화두는 그 자리에서 알아맞히려 하지 말고, 생각으로 헤아리지도 말며, 또한 깨닫기를 기다리지도 말라. 더 생각할 수 없는 곳까지 나아가 생각하면 마음이 더 갈 곳이 없어 마치, 큰 쥐가 쇠뿔 속에 들어가다가 잡히듯 할 것이다. 또 평소 이런가 저런가 따지고 맞혀 보는 것이 식정(識情)이며 생사(生死)를 따라 옮겨 다니는 것이 식정이며, 무서워하고 방황하는 것이 또한 식정이다. 요즘 사람들은 이 병을 알지 못하고 다만 이 속에 빠졌다 솟았다 할 뿐이다. [주해] 분별로 헤아리거나 조급한 마음으로 억지로 답을 구하지 말고 정신을 차려 오직 간절한 마음으로 ‘무슨 뜻일까’하고 의심할 일이다.

6. 조사의 관문(祖師關)을 뚫으라

[본문] 이 일은 마치 모기가 무쇠로 된 소에게 덤벼드는 것과 같아서, 함부로 주둥이를 댈 수 없는 곳에 목숨을 버리고 한번 뚫으면 몸뚱이째 들어가리라. [주해] 위에 말한 뜻을 거듭 다져 활구를 참구하는 이로 하여금 뒷걸음쳐 물러나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다. 옛 어른이 이르기를 “참선은 모름지기 조사의 관문을 뚫는 것이고, 오묘한 깨달음은 생각의 길을 다 끊는 데 있다”고 했다.

7. 거문고 줄 고르듯 하라

[본문] 공부는 거문고 줄을 고르는 법과 같아서 팽팽하고 느슨한 정도가 알맞아야 한다. 너무 애쓰면 집착하기 쉽고, 잊어버리면 무명(無明)에 떨어지게 된다. 오직 또렷이 깨어 역력하고 은밀하게 끊임없이 해야 한다.

8. 도가 높아질수록 악마가 성행한다(道高魔盛)

[본문] 공부가 걸어가면서도 걷는 줄 모르고, 앉아도 앉는 줄 모르게 되면, 이때 팔만사천 마군(魔軍)의 무리가 여섯 감각기관 앞에 지키고 있다가 마음을 따라 온갖 생각이 들고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 무슨 상관이 있으랴. [주해] 팔만사천 마군이란 중생의 팔만사천 번뇌다. 중생은 그 환경에 순종하므로 탈이 없고, 도인은 그 환경에 역행하므로 악마가 대들게 된다. 그래서 ‘도가 높을수록 악마가 성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魔)의 일이란 망상 속의 일이다.

9. 온갖 생각을 한 덩어리 화두로

[본문] 공부가 만일 한 조각을 이룬다면 비록 이번 인생에서 깨치지 못하더라도 마지막 눈감을 적에 악업(惡業)에 끌리지는 않을 것이다. [주해] 업(業)은 무명(無明), 선은 지혜다.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이 서로 맞설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10. 참선하는 이들이 점검해야 할 도리

[본문] 대저 참선하는 이는 네 가지 은혜2)가 깊고 두터운 것을 알고 있는가? 자기 육체가 순간순간 죽어가는 것을 알고 있는가? 일찍이 부처나 조사와 같은 이를 만나고도 그대로 지나쳐버리지 않았는가? 쓸데없는 잡담이나 시비를 하는 경우가 있지는 않은가? 화두가 하루 온종일 똑똑히 들리고 있는가? 이 육신으로 윤회를 벗어날 수 있는가? 앉고 눕고 편한 때에 지옥의 고통을 생각하는가? 이런 것들이 참선하는 이가 일상생활 속에서 때때로 점검해야 할 도리다. 옛 어른이 말씀하시기를 ‘이 몸 이때 못 건지면 다시 어느 세상에서 건질 것인가!’ 하셨다. [주해]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기란 마치 바다에 떨어진 바늘을 찾기보다도 어렵기에 불쌍히 여겨 일깨운 것이다. 위의 법문은 총명이 업의 힘을 막을 수 없고 마른 지혜(乾慧)3)가 윤회를 면할 수 없음을 가리키니 각자 살피고 생각해 스스로 속지 않도록 하라. 말로만 배우는 사람들은 말할 때에는 깨친 듯 하다가도 현실문제와 업력(業力)에 대해 무력하니 이것이 스스로 속는 것이다.

11. 어두운 칠통4)을 깨뜨려야 한다

[본문] 만약 생사(生死)를 막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한 생각을 탁 깨뜨려야만 비로소 ‘생사(生死)’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5). [주해] 탁 깨뜨리는 것은 새까만 칠통을 깨뜨리는 소리다. 칠통을 깨야 생사가 아주 끊어지리라.

12. 깨친 뒤에 잘못하면 독약이 된다

[본문] 그러나 한 생각을 깨친 후에 반드시 밝은 스승을 찾아가서 눈이 바른가를 점검해야 한다. [주해] 도(道)는 큰 바다와 같아서 들어갈수록 더 깊어지니 작은 것을 얻어 가지고 만족하지 말라. 밝은 스승을 만나지 못해서 작은 것으로 만족하면 좋은 맛이 도리어 독약이 될 것이다.

13. 먼저 깨닫고 수행해야

[본문] 옛 어른이 말씀하기를 “다만 자네의 눈 바른 것만 귀하게 여길 따름이지 자네의 행실을 보려고 하지 않네.”라고 하셨다. [주해] 참된 수행을 하려면 먼저 대번에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14. 굽히지도 높이지도 말라

[본문] 공부하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을 깊이 믿어 스스로 굽히지도 말고 높이지도 말아야 한다. [주해] 이 마음이 평등해 본래 성인과 보통 사람이 따로 없다. 이치는 그렇지만 사람에게는 어두운 이와 깨친 이가 있고 성인과 보통 사람이 있다.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문득 참 내가 부처와 조금도 다름없음을 깨치는 것이 이른바 ‘단박 깨침’이다. 그래서 스스로 굽히지 말라 한 것이다. 깨친 뒤에 습기를 끊음으로써 보통 사람이 성인이 되는 것은 ‘점점 닦아가는’ 것이니, 그래서 스스로 높이지도 말라는 것이다.

15. 미혹한 마음으로는 참된 수행이 어렵다

[본문] 미혹한 마음으로 도를 닦는다는 것은 오직 무명(無明)만을 도와줄 뿐이다.

[주해] 깨친 것과 닦는 것은 마치 기름과 불이 서로 따르고, 눈과 발이 서로 돕는 것과 같다.

16. 번뇌가 없어지면 곧 성인

[본문] 수행의 알맹이는 인간적인 정(凡情)을 없애는 것일뿐 따로 성인의 이해(聖解)가 있을 수 없다. [주해] 병이 없어져 약을 쓰지 않는다면 바로 건강한 본래의 몸이니라.



17. 구하는 마음을 두지 말라

[본문] 중생의 마음을 버릴 것 없이 다만 자성(自性)을 더럽히지 말라. 바른 법을 찾는 것이 곧 바르지 못한 일이다. [주해] 버리는 것과 구하는 것이 다 더럽히는 것이다.



18. 번뇌가 생기지 않아야 열반

[본문] 번뇌를 끊는 것은 이승(二乘)6)이고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큰 열반이다.

[주해] 번뇌를 끊는 것은 ‘하는 주체(能)’와 ‘되는 바(所)’가 벌어지는데, 번뇌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그 구분이 없다.

18. 성품을 떠난 연기(緣起)는 없다

[본문] 모름지기 마음을 비우고 스스로 비춰봐 한 생각이 인연따라 일어나지만 생겨나지 않는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 [주해] 이것은 단지 성품(性)이 일어나는 것을 밝힌 것이다.7)



19. 본체(性)와 현상(相)은 둘이 아니다

[본문] 죽이고 도둑질하고 음행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다 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임을 자세히 살펴보라. 그 일어나는 곳이 비어 고요한데 무엇을 다시 끊을 것인가. [주해] 여기에서는 성품과 형상을 함께 밝힌 것이다. 경전에 이르길 ‘무명(無明)을 아주 끊는다는 것은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라 했고 ‘생각이 일어나면 곧 깨달으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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