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의 노래-바가바드 기타
작자미상 지음 | -
바가바드 기타(Bhagavad Gita)
▣ 『바가바드 기타』 읽기
『바가바드 기타』는 왕위계승전쟁에 임하는 아르쥬나라는 무사와 그의 전차장이자 비쉬누신의 화신인 크리슈나가 전쟁터에서 나눈 대화의 형식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크리슈나의 일방적인 설교라 해도 무방하다. 크리슈나는 아르쥬나는 처음에 함께 싸우는 동료지만, 곧 우주의 위대한 창조신 비쉬누 자체로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우주의 주재자로서, 혹은 지극히 존엄한 자로서 아르쥬나에게 가르침을 베푼다.
『바가바드 기타』의 첫 장면은, 한 종족의 왕권계승의 문제를 둘러싸고 그 왕가의 친족들이 둘로 나뉘고 전인도의 왕들도 이쪽이나 저쪽편을 들어 두 개의 거대한 군대가 평원에 집결해 대치한 가운데, 양쪽 군대 사이에서 아르쥬나가 적진을 살펴보고 적편에 있는 친족들, 친구들, 옛 스승들의 모습 때문에 크게 낙담하는 상황으로 시작한다.
제1장
아르쥬나가 말했다:크리슈나여, 싸우길 원해 내 자신의 친족들이 이렇게 정렬해 있는 것을 보니 나의 사지는 저절로 주저앉고 입은 바싹 타며 전율이 내 몸을 휩싸고 온 몸의 털이 곤두섭니다. 스승들, 조부들, 삼촌들, 처남들, 그리고 여러 친척들이 생명과 재산을 내동댕이치고 이 전쟁터에 정렬해 있습니다. 오 크리슈나여, 저들이 나를 죽인다 할지라도 나는 저들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삼계(三界)의 통치권을 위해서도 아닐텐데 하물며 이 땅의 지배를 위해서야! 자신의 친족들을 죽이고서, 오 크리슈나여, 우리가 어찌 행복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저들의 마음이 탐욕에 사로잡혀 가족을 파괴하는 죄악과 친구를 배반하는 악을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가족을 파괴하는 것이 죄악이라는 것을 명백히 알고 있는 우리가 어찌 이 악을 피하지 않겠습니까?
가족의 법도를 파괴한 사람들은 반드시 지옥에 머물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크리슈나여! 아아! 우리가 왕권의 쾌락을 탐해 친족을 죽이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를 결심을 했습니다. 만약 무기를 손에 든 드르타라슈트라의 아들들이 무장도 하지 않은 채 저항도 하지 않는 나를 죽인다면 그것이 제게 더 편할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 비애감으로 마음이 동요된 아르쥬나는 전쟁터임에도 불구하고 화살과 활을 던져 버리고 전차석에 주저 앉았다.
제2장
거룩하신 주(主)께서 말씀하셨다:이 위급한 때, 어디서 그대에게 이런 나약함이 생겨났소? 이런 나약함은 수치만을 가져올 뿐이오. 비겁하게 굴지 마시오. 아르쥬나여!아르쥬나가 말했다:내가 어떻게 존경받아 마땅하신 비쉬마와 드로나를 적으로 전투에서 화살로 싸우겠습니까? 고귀하신 스승들을 죽이느니 차라리 이 세상에서 걸식을 하는 편이 낫습니다. 저들을 죽이고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 마음이 혼미해 당신께 묻나니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분명히 답해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제자입니다. 도움을 구하오니 당신께서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지혜로운 사람은 죽은 자를 위해서도 살아있는 자를 위해서도 슬퍼하지 않는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적은 결코 없었으며, 그대와 저 왕들이 (존재하지 않았던 적도 결코 없다). 우리 모두는 이후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육체의 주인은 (죽은 후에) 또 다른 육체를 얻을 것인 즉 현명한 자는 여기에 미혹함이 없다.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부터 존재가 생겨날 수 없고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비존재가 생겨날 수 없나니 진리를 보는 자들은 이 양자의 차이를 본다. 그(육체의 주인, 자아)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으며 생겨난 적도 없고 앞으로 생기는 일도 없으며 육체가 살해돼도 죽지 않는다. 그는 확고하고 부동이며 영원하다. 누구의 육체에서도, 육체의 주인은 영원히 살해될 수 없으니 그대는 어떤 존재를 위해서도 슬퍼할 필요가 없다.
또한 자신의 의무를 생각한다면 동요할 필요가 없다. 크샤트리야(무사계급)에게는 의무에 따른 싸움 외에 다른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대가 만약 의무적인 싸움을 수행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의무와 명예를 버리게 되므로 죄를 초래할 것이다.
정신과 물질이 전혀 다른 존재의 범주라는 이론을 그대에게 말했고, 이제 이러한 지혜에 근거한 실천을 말해 주리니 이론적인 지혜와 실천이 결부된다면 그대는 업(業)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이다. 이 법(法)이 조금이라도 큰 위험으로부터 그대를 구해줄 것이다.
그대가 할 일은 오직 행위 자체일 뿐 결코 그 결과를 생각하지 말라. 행위의 결과를 (행위의) 동기로 삼지 말며 행위하지 않음에도 집착하지 말라. 지혜로 다스려진 자는 이 세상에서 선행과 악행 양쪽 다 버리며 성공과 실패를 평등히 여긴다. 그러므로 요가를 수련하라. 요가는 행위의 기술이다. 지혜로 제어된 현명한 사람들은 행위가 낳는 결과를 포기하고 환생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돼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운 경지에 이른다.
제3장
아르쥬나가 말했다:행위보다 지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왜 제게 이런 끔찍한 행위를 명하십니까?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예부터 나는 이론적인 사람에게는 지(知)의 요가를, 실천적인 사람에게는 행위의 요가를 말했다. 행위를 하지 않음으로써 무위(無爲:무위는 무행위(無行爲)가 아니라 행위로부터 자유로운 상태)를 얻는 것이 아니며, (행위의) 포기로써만 완성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모든 것은 본성적으로 타고난 요소에 의해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행위 하도록 돼있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부여된 행위를 행하라. 행위는 무행위보다 낫기 때문이다. 세계의 이익를 고려해서라도 마땅히 그대는 행위를 해야만 한다. 이 삼계(三界)에서 내가 행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얻어야 하나 얻지 못한 것도 없지만 여전히 나는 행위에 종사한다. 만약 내가 행위를 하지 않는다면 이 세계는 파멸될 것이다. 행위는 전적으로 물질의 요소에 의해 행해진다. (그러나) 아만(我慢)에 의해 미혹된 자아는 자기가 행위자라고 생각한다. 진실을 아는 자는 ‘요소들이 요소들에 작용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행위에) 집착하지 않는다. 내게 모든 행위를 맡기고서 바람도 없이, 내것이라는 생각도 없이 열정을 버리고 싸우라.
아르쥬나가 말했다:그러면 무엇에 몰려 사람은 원치 않을지라도 악을 행하게 됩니까?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욕망이 그것이며, 분노가 그것이다. 격정의 요소로부터 생겨난 것인데 모든 것을 삼키는 대단히 악한 것이니, 그것이 이 세상에서 적이라는 것을 알라. 감각기관들과 마음과 지성은 그것의 주거지이며 이들을 통해 (욕망)은 지혜를 덮으면서 육체의 소유주를 미혹시킨다. 감각기관보다 마음이 더 높고 마음보다는 지성이 더 높은데 지성보다 더 높이 그(정신 혹은 자아(아트만))가 있으니 지성보다 더 높은 것을 깨닫고 욕망이라는 모습을 지닌 적을 쳐부수라.
제4장
나는 이 불멸의 요가를 태고적에 가르쳤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이 요가는 세상에서 잊혀졌다. 내가 오늘 바로 그 태고의 요가는 그대에게 말해 줬노라.
아르쥬나가 말했다:당신의 출생은 최근인데, 당신이 태초에 그것을 말해줬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나는 수많은 생을 거쳐왔고 그대 또한 그러하다. 나는 그 모든 생들을 알지만 그대는 알지 못한다. 나는 불생불멸하는 자아이며 모든 존재의 주(主)이지만 내 자신의 창조력에 의해 내 자신의 물질을 사용해 존재한다. 의가 쇠퇴하고 불의가 흥할 때마다 나는 내 자신을 (세상에) 내보낸다. 행위는 나를 더럽힐 수 없고 나는 행위의 결과에 아무런 갈망이 없나니 이렇게 나를 인식하는 자는 행위에 의해 속박되지 않는다.
행위의 결과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고 항상 만족해, 아무 것에도 의존하지 않는 사람은 행위에 관여한다 해도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 자다. 지혜를 알면 그대는 (모든) 존재들을 남김없이 (그대의) 자아 안에서, 그리고 내 안에서 볼 것이다. 무지로부터 생겨난 이 의심을 지혜의 검으로 베어 버리고 (행위의) 요가에 전념해 일어서라.
제5장
아르쥬나가 말했다:행위의 포기를, 그리고는 당신은 또 (행위의) 요가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어느 것이 더 좋은지 확실히 말씀해 주십시오.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두 요가가 모두 지고의 행복에 이르게 하지만 행위의 포기보다 행위의 요가가 더 우월하다. 대립을 벗어난 자는 구속으로부터 쉽게 해방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이기고 감각기관이 정복돼 그의 자아가 모든 존재의 자아가 된 자, 그는 행위를 해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진리를 아는 제어된 자는 보고 듣고 이야기하는 등의 모든 행동 중에 ‘감각기관들이 대상들에 관계할 뿐’이라고 생각하면서 ‘나는 아무것도 행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집착을 포기하고 브라흐만에 행위를 바치면서 행위하는 사람은 악에 더럽혀지지 않는다.
제6장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행위의 결과에 관심없이 해야될 행위를 하는 사람, 그는 포기자며 요가행자다. 목적의식을 포기하지 않고는 아무도 요가행자가 될 수 없다. 요가에 의해 자신을 제어한 자는 자아(아트만)가 모든 존재에 있음을 보며 자아 안에서 모든 존재를 본다. 그는 어디서나 평등히 보는 것이다. 어디서나 나를 보며 내게서 모든 것을 보는 사람은 나도 그를 잃지 않고, 그도 나를 잃지 않는다. 일원성에 전념해 모든 존재에 있는 나를 신애(信愛)하는 요가행자는 어떤 형편에 처해도 내 안에 있다.
아르쥬나가 말했다:당신에 의해 평등하다고 선포된 이 요가의 확고한 경지를, 저는 불안정으로 인해 볼 수 없습니다. 마음이 불안정하고 난폭하며 길들여지지 않았고 완고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을 제어하기가 무척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마음은 제어하기 힘들고 불안정하다. 그러나 훈련과 욕심에서 벗어나려는 의지에 따라 마음은 붙잡을 수 있다. 노력하는 사람은 (바른) 방법을 통해 할 수 있다.
아르쥬나가 말했다:믿음은 갖췄으나 요가의 완성을 이루지 못한 실패한 수행자는 어떤 길을 가게 됩니까? 그는 브라흐만의 길을 잃고 멸망하지 않습니까?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완성에 실패한 수행자는 공덕을 행한 자들의 세계에서 오랜 기간을 거주한 뒤, 고결한 집안에 태어나거나 현명한 요가행자의 가계에 태어난다. 거기서 전생에 닦은 지성과 결합해 그 지점에서부터 더욱더 완성을 향해 노력한다. 전생에 수련했던 바로 그것에 의해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이끌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요가행자는 많은 출생을 통해 완성돼 지고의 목표에 이른다.
제7장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전념하는 마음으로 요가를 수련하면서 내 모든 것을 의심없이 바르게 알 수 있도록 그대에게 지혜와 통찰을 남김없이 말해주겠노라. 지(地), 수(水), 화(火), 풍(風), 공(空), 마음(意根), 지성, 아만(我慢), 이렇게 내 본성은 여덟 가지로 나눠져 있다. 이것은 낮은 본성이다. 그러나 이것과 다른 더 높은 본성을 알라. 그것에 의해 이 세계가 유지되는 본성을. 나는 온 세계의 생성의 원인이고 소멸의 원인이며 모든 것은 내 안에 있다. 나는 해와 달의 빛이며 남성의 남성됨이며 모든 존재들의 생명이며, 지혜로운 자들의 지혜이며 찬란한 자들의 찬란함이며, 모든 존재들에 있어서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 욕망이다. 물질계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나로부터 나오지만 나는 그것들 안에 있지 않으며 그것들은 내 안에 있다. 나는 내 자신의 창조력(물질계)에 가려져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나있지 않지만, 내게 귀의하는 자는 이 창조력을 넘어선다. 그래서 물질계를 초월하는 불변의 나를 인식한다.
제8장
아르쥬나가 말했다: 브라흐만, 최고의 자아, 행위, 존재들의 본질, 신들의 본질, 제사의 본질에 대해 각각 말해 주십시오. 그리고 임종시에 어떻게 (당신을) 알 수 있습니까?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브라흐만은 지고의 불멸자이며 최고의 자아란 (자신의) 본성을 가리키는 것이고, 존재들의 상태를 일으켜 만들어내는 것이 행위다. 존재들의 본질은 변화하고 소멸하며 신들의 본질은 정신이다. 제사의 본질은 여기 몸 안에 있는 바로 나다. 임종시에 오로지 나를 생각하면서 육체를 떠난 후 내 존재에 이른다. 마지막에 어떤 존재를 생각하며 육체를 떠나든지 언제나 그런 존재가 되기 때문에 바로 그 존재로 간다. 그런즉 모든 때에 나를 기억하고 싸우라. 내게 와서 지고의 완성에 이른 위대한 영혼들은 고통의 근원이며 무상(無常)한 환생을 얻지 않는다. 오직 지고의 신적 정신에 도달해야만 되돌아오는 일이 없으며, 그 이하 모든 신들의 세계는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생멸을 거듭한다.
제9장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그대는 불신하지 않으니 가장 비밀스런 지혜를 말해주리라. 그것을 알고 나면 불행으로부터 벗어나리라. 모든 세계는 아직 나타나지 않은 모든 가능성의 형태로 내 속에 들어있다. 모든 존재들은 내 안에 속하고 나에 의해 유지되지만 나는 그들에 속해 있지 않다. 한 겁(劫)이 끝날 때 모든 존재들은 나의 물질적 본성으로 들어온다. 또 한 겁이 시작될 때 나는 다시 그들을 방출한다. 내 자신의 물질적 본성에 근거해 (나는) 이 모든 무력한 존재의 무리를 거듭거듭 방출한다. 감독자인 나에 의해 물질적 본성은 생물과 무생물을 산출하며 세계는 돌고 돈다.
어리석은 자들은 허망한 물질적 본성을 지향하지만 위대한 영혼들은 신적인 본성을 지향해 지극한 마음으로 나를 신애(信愛)한다. 모든 존재들의 시초인 불변의 나를 알고서.
나는 목표이며 유지자이며 주(主)이며 관조자이고, 피난처이며 친구다. 그대가 무엇을 하든 그것을 나를 위한 봉헌으로 하면 그대는 업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나를 신애하는 자는 멸망하지 않으며 나에게 귀의하면 천한 태생의 사람, 여자, 노예라 할지라도 지고의 목표로 간다. 무상하고 고통스러운 이 세상에 왔으니 나를 신애하라.
제10장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신들도 위대한 현자들도 내 기원을 모른다. 나는 신들과 위대한 현인들 모두의 시초기 때문이다. 나를 태어남도 없고 시작됨도 없는, 세계의 대주재자로 아는 자는 미혹됨 없이 모든 죄악으로부터 해방된다. 존재들의 다양한 상태는 바로 나로부터 나온다. 내가 모든 것의 기원이라고 생각하면서 현인들은 나를 신애한다.
아르쥬나가 말했다:당신은 지고의 브라흐만, 영원한 신적 정신이며 편재하는 원초적 신이라고 모든 현자들은 말합니다. 당신만이 스스로 자신을 아십니다. 항상 당신을 생각하고 있지만 제가 (당신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그리고 어떤 상태에서 제가 (당신을) 생각해야 합니까? 더 자세하게 당신의 요가와 위력에 대해 말해 주십시오.
거룩하신 주께서 말씀하셨다:좋다. 중요한 것부터 말해주겠다. 나는 모든 존재들의 중심에 자리잡은 자아이며 모든 존재들의 시초요 중간이요 또 종말이다. 나는 신들 가운데서 비쉬누이며 빛들 가운데서 태양이며 감각기관 가운데서 의미의 뿌리이며 존재들 가운데서는 사유다. 나는 인간 가운데서 제왕이며 짐승들 가운데서 사자며, 지식 가운데서 최고의 자아에 관한 지식이며 말하는 자들 가운데 말이다. 나는 용기있는 자들의 용기며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이며, 모든 존재의 씨앗이 바로 나다.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는 것이든 나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위력적이거나 빛나거나 활기찬 모든 존재는 바로 내 영광의 일부분으로부터 생겨난 것임을 그대는 이해해야 한다. 나는 이 모든 세상을 (내) 일부분으로 지탱하며 있도다.
제11장
아르쥬나가 말했다:‘자아’에 대한 당신의 말씀으로 제 미혹은 사라졌습니다. 지고의 주재자시여! 당신의 존엄하신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당신의 불멸의 자아를 보여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