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과 세계 1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지음 | 고전문학
가정과 세계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지음
제1장
비말라의 이야기‘어머니, 오늘 문득 당신의 가르마에 선명하게 찍혀 있던 붉은 점과, 깊고 평화로움이 가득했던 그 눈동자가 떠올랐습니다. 내 인생 여정이 시작되던 날, 당신의 눈빛은 첫 새벽의 여명처럼 내게 다가와 금빛 양식이 되어 주었습니다. 빛을 주는 하늘은 푸르지만 내 어머니의 얼굴은 어두운 빛깔이었습니다. 그러나 성스러운 광채가 서려 있어, 세상의 모든 화려한 아름다움을 부끄럽게 만들곤 했습니다.’
사람들은 내가 어머니를 닮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거울을 볼 때마다 신이 내게 불공평한 짐을 지웠다며 화를 내곤 했다. 내 검은 피부가 신의 착오로 인한 것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담이 오갈 때 점성가는 내 손금을 보며 현모양처가 될 상이라 했고, 여인들은 그것이 내가 어머니를 닮았기 때문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유서 깊은 왕가로 시집을 갔다. 어린 시절 동화 속에서 읽던 왕자님의 모습은 내 상상 속에 선명했지만, 남편의 얼굴은 그 환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 역시 나처럼 피부가 검었다. 그 사실에 나는 나의 외모에 대한 위축감이 조금 덜어지는 묘한 안도감을 느끼면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일말의 아쉬움이 남았다. 그러나 외모가 감각의 검문을 피해 마음의 성소로 들어오면, 헌신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 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어머니가 아버지를 위해 과일을 깎고 부채질을 할 때 보여주었던 그 순수한 음악 같은 헌신, 나도 그 힘을 온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결혼 후 나는 이른 새벽마다 조심스럽게 일어나 잠든 남편의 발에 묻은 먼지를 손으로 취하곤 했다. 그 순간 내 이마의 붉은 점은 샛별처럼 빛나는 듯했다. 어느 날, 잠에서 깬 남편이 미소를 지으며 내게 물었다. “비말라,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요?” 나는 그에게 들킨 것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그가 혹여 내가 남몰래 공덕이라도 쌓으려 한다고 오해할까 두려웠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것은 공덕과는 무관했다. 사랑하기 위해 숭배해야만 하는 여인의 절박한 마음, 그것뿐이었다.
시댁은 무굴과 파탄의 옛 관습이 남아 있는 엄격한 곳이었지만, 남편은 완전히 현대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술과 방탕함을 멀리했고 집안 최초로 석사 학위까지 받았다. 그는 할머니의 사랑을 독차지했기에, 집안의 반대와 수군거림에도 불구하고 나를 교육시키기 위해 가정교사 길비 양을 데려오는 파격을 감행했다. 그는 나를 자신의 여왕으로 대우하며 나를 늘 옆에 앉혔지만, 나의 진정한 기쁨은 그의 발치에 머무는 데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무조건적인 헌신을 요구하는 것을 겁쟁이들의 짓이라 여기며 내 숭배를 받을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것이 그의 위대함이었으나, 내 사랑은 숭배를 통해 완성되고 싶어 했다. 사랑이란 응접실의 크리스털 꽃병보다는 길가의 먼지 속에서 꽃을 피우는 방랑자와 같은 것이니까.
집안의 엄격한 전통 때문에 우리는 아무 때나 만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우리의 만남은 시의 운율처럼 정해진 길을 따라야 했다. 나는 매일 오후 목욕을 하고 머리를 빗어 올린 뒤, 정성스레 주름 잡힌 사리를 입고 붉은 점을 다시 찍었다. 집안일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오직 한 사람만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는 그 시간.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짧았지만, 내게는 무한한 영원과도 같았다.
남편은 종종 부부가 사랑 안에서 평등하며 서로에게 동등한 권리가 있다고 말하곤 했다. 나는 그 말에 굳이 반박하지 않았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진정한 헌신이란 평등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만나는 지평을 더 높은 곳으로 끌어올려 주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내게 숭배를 바라지 않았지만, 만약 그가 그것을 원했다면 오히려 내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나를 치장하고 교육하며, 내가 청한 것은 물론 청하지 않은 것까지 모두 안겨주었다. 그는 마치 내 몸이 낙원의 꽃이라도 되는 양, 내 존재 자체가 신의 섭리인 양 나를 아끼고 사랑했다.
그러나 그 넘치는 사랑은 나를 오만하게 만들었다. 남편을 내게로 이끈 그 모든 자산이 온전히 나의 것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하지만 여자가 여왕의 자리에 앉아 숭배를 요구할 때, 그 욕망은 끝없이 커지기만 할 뿐 결코 채워지지 않는 법이다. 남자를 지배한다는 느낌만으로 여자가 진정 행복해질 수 있을까? 자존심을 버리고 헌신하는 것만이 여자의 유일한 구원임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우리 부부의 행복한 시절, 주위에서는 질투의 불길이 타올랐다. 시할머니와 시어머니, 그리고 과부가 된 손윗동서는 빼어난 미인이었지만, 나는 그저 복된 관상을 타고난 덕에 이 화려한 가문에 들어올 수 있었다. 집안의 다른 남자들이 술과 여색에 빠져 가산을 탕진할 때, 내 남편만은 달랐다. 그것은 내 매력 덕분이 아니라 오직 천운이었다. 하지만 불행한 운명을 맞은 형님에게 나의 행운은 눈엣가시였다. 형님의 축제는 초저녁에 끝나버렸고, 그 아름다움은 빈방에서 홀로 타오르는 촛불처럼 처량하게 빛날 뿐이었다.
형님은 남편의 근대적인 사고방식을 경멸하며, 유서 깊은 가문의 배가 어린 아내의 치마폭에 휩쓸려 간다며 비웃었다. 나는 종종 형님의 날 선 독설을 견뎌야 했다. “남편의 사랑을 훔친 도둑년!” 남편이 내게 입혀준 화려한 신식 옷들은 형님의 질투심에 불을 지폈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보지? 그따위 외모로 자신을 진열장에 내놓다니!”
남편은 이 모든 것을 알면서도 한없이 부드러웠다. 그는 내게 형님을 용서해달라고 간청하곤 했다. 언젠가 내가 참다못해 그에게 말했다. “여자들의 마음은 참으로 옹졸하고 비뚤어졌어요!” 그러자 남편은 이렇게 대답했다. “전족을 한 중국 여인들의 발과 같지. 사회의 억압이 그들을 옹졸하고 비뚤어지게 만든 거야. 그들이 무슨 죄가 있겠어? 그저 운명의 장난감일 뿐인데.”
형님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남편에게서 얻어냈다. 남편은 그 요구가 합당한지 따지지도 않고 들어주었다. 하지만 나를 가장 화나게 만든 건 형님의 뻔뻔함이 아니라, 그에 대한 고마움을 모르는 것이었다. 나는 남편에게 말대꾸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속으로는 분노가 들끓었다. 선함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며, 그 선을 넘으면 남자는 비겁해 보일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남편이 지나치게 선하기보다는 차라리 조금 덜 착하더라도 사내다움을 보여주기를 바랐다.
남편은 나를 규방의 장막 밖으로 데리고 나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어느 날, 나는 그 집요한 권유에 짐짓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바깥세상이 저 없이도 여태껏 잘 돌아갔는데, 굳이 제가 나갈 이유가 있나요? 세상이 저를 원해서 상사병이라도 났답니까?” 그러나 나의 빈정거림에도 남편은 그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미소의 의미를 알기에 서둘러 말을 막으려 했지만, 그는 차분하고도 진지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내가 원하는 건, 우리가 바깥세상에서 서로를 더 온전히 갖는 것이오. 집 안에서 당신은 내게 꽁꽁 싸여 있어. 우리는 서로가 무엇을 가졌는지, 진정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소. 그건 우리가 아직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뜻이오.”
그는 내가 집안의 관습과 가사 노동이라는 좁은 울타리에 갇혀 평생을 보내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나는 당신이 바깥세상의 한복판으로 나와 진정한 현실과 마주하기를 바라오. 우리가 그 현실 세계에서 만나 서로를 알아볼 때, 비로소 우리의 사랑은 진실해질 것이오.” 남편의 사랑은 소유가 아닌 존재 그 자체를 향해 있었다. 그는 종종 낚은 물고기를 요리해 먹는 탐욕과, 물속에서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를 지켜보는 사랑을 비교하곤 했다.
하지만 내가 규방을 떠나지 않은 건 남편의 그 난해한 철학이 싫어서만은 아니었다. 시할머니가 살아 계셨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남편이 집안을 서구식으로 뜯어고치고 내게 낯선 드레스를 입혀도 묵묵히 참아주셨다. 다른 남자들처럼 타락의 구렁텅이로 빠지지 않게 내가 남편을 붙잡아준 복덩이라 여기셨기에, 할머니는 나를 당신의 품 안에 감싸고 끔찍이 아끼셨다. 나는 그런 할머니께 굳이 며느리가 규방을 나서는 파격까지 더해 고통을 드리고 싶지 않았다. 책에서는 우리 같은 사람을 ‘새장에 갇힌 새’라고 불렀지만, 당시 나는 이 새장 안에 우주가 다 들어있다고 느꼈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편은 내게 캘커타로 가서 살자고 제안했다. “이참에 집안 살림은 형수님께 맡겨두고, 우리는 더 넓은 곳으로 나갑시다.”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온갖 시련 속에서도 할머니가 눈물로 지켜온 이 집을 버리고 떠난다면 저주를 받을 것만 같았다. 게다가 더 현실적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떠나면 사사건건 나를 괴롭히던 동서가 집안의 주도권을 쥐게 될 터였다. 남편은 나의 이런 속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깟 자리가 뭐 그리 중요하오? 인생에는 더 소중한 것들이 있소.”
남자들은 집안 살림이 갖는 권력의 의미를 모른다. 그들은 바깥세상에 둥지를 틀고 있기에 집안일이 지닌 무게를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나를 괴롭히던 적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고 떠나는 건 패배를 인정하는 꼴이었다. 나는 내 권리를 지켜야 했다. 남편은 나를 억지로 캘커타로 데려갈 수도 있었지만 끝내 강요하지 않았다. 그는 힘을 가지고 있었지만, 단지 힘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휘두르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낮과 밤의 간극을 조금씩 메워가려 한다면 영겁의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허나 해가 솟아오르면 어둠은 단 한 순간에 물러가는 법이다. 벵골에 도래한 스와데시(국산품 애용 운동)의 새 시대도 그러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완만한 경사로를 타고 온 것이 아니라, 둑을 무너뜨리고 우리의 신중함과 두려움을 일거에 휩쓸어 버리는 홍수처럼 닥쳐왔다. 내 시야와 마음, 희망과 욕망은 이 새로운 시대의 열정으로 붉게 물들었다. 집이라는 울타리는 여전히 건재했으나, 내 마음은 이미 저 먼 지평선 너머에서 들려오는 부름에 응답하고 있었다.
남편은 학창 시절부터 국산품 애용을 실천하며 우리 산업을 부흥시키려 애써왔다. 우리 지역에 흔한 대추야자 나무를 이용해 설탕과 당밀을 만드는 기계를 발명하려던 시도가 그 시작이었다. 듣자 하니 그 사업은 성공하지 못했고, 이후 그는 우리만의 은행이 없이는 산업 부흥도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은행을 설립했지만, 높은 이자를 좇아 몰려든 마을 사람들 때문에 결국 은행마저 파산하고 말았다. 시할머니는 그런 남편을 타박하는 나를 꾸짖으며, 남자는 본래 낭비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이니 그나마 자신을 망치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 하셨다.
남편은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새로운 방적기나 도정기를 발명하겠다는 사람들을 끝까지 도왔다. 하지만 나를 가장 화나게 한 것은 산딥 바부가 스와데시 운동을 핑계로 남편의 돈을 뜯어가는 방식이었다. 산딥은 신문을 창간한다거나 유세를 떠난다는 명목으로, 심지어 의사의 권유로 요양을 가야 한다며 손을 벌렸고, 남편은 두 사람의 의견이 사사건건 충돌함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돈을 내주었다.
스와데시의 폭풍이 내 혈관을 타고 흐르자,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남편에게 선언했다. “내 외국산 옷을 모두 불태워 버리겠어요.” “왜 태운단 말이오? 당신이 입고 싶지 않다면 안 입으면 그만 아니오. 왜 굳이 불장난을 하려는 거요?” “제 결심을 방해하실 셈인가요?” “내 말은, 무언가를 건설하려 노력해 보라는 거요. 파괴적인 흥분에 당신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우리가 건설할 힘을 얻는 건 바로 그런 흥분에서라고요.” “그 말은 곧, 집에 불을 지르지 않고서는 집을 밝힐 수 없다는 말과 같구려.”
갈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는 영국인 가정교사인 길비 양의 존재를 문제 삼으며 그녀를 내보내자고 남편을 다그쳤다. 전에는 그녀가 유럽인인지 인도인인지 신경조차 쓰지 않았으나, 이제는 그녀의 국적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남편은 그녀가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하며 보여준 사랑을 상기시키려 했지만, 내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리가 후원하던 청년 노렌이 교회로 가던 길비 양을 모욕하는 사건이 벌어졌고, 남편은 그 즉시 노렌을 집에서 내쫓았다. 그날, 나를 포함한 그 누구도 남편의 처사를 용서하지 않았다. 스와데시의 열정에 들떠 식사도 목욕도 잊을 만큼 헌신적인 그 청년을, 고작 영국 여자를 위해 내치다니! 결국 길비 양은 눈물을 흘리며 떠났고, 남편이 그녀를 역까지 배웅한 일은 신문에까지 오르내리며 조롱거리가 되었다.
나는 남편이 스와데시의 열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겁하게 행동한다고 여겨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러웠다. 그 청년이 무슨 잘못을 했든, 지금 같은 시국에 그런 일로 심판을 내리다니. 나는 영국 여자에게 맞선 노렌의 기개를 꺾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남편이 스와데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는 ‘반데 마타람’(조국 만세)의 정신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내게 단호히 말했다. “나는 조국을 섬기겠소. 그러나 나의 숭배는 조국보다 훨씬 위대한 ‘진리’를 향한 것이오. 조국을 신으로 숭배하는 것은 조국에 저주를 불러오는 일이오.”
제2장
비말라의 이야기산딥 바부가 추종자들을 이끌고 스와데시를 설파하기 위해 우리 마을을 찾았던 바로 그 무렵이었다. 사원 누각에는 거대한 인파가 몰려들었고, 우리 여인들은 발 뒤편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반데 마타람의 함성이 하늘을 찢을 듯 가까워지자 내 온몸에도 전율이 흘렀다. 터번을 두르고 수행자의 황토색 옷을 입은 맨발의 젊은이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광경은, 마치 첫 장마가 터져 메마른 강바닥으로 붉은 흙탕물이 밀려드는 것만 같았다. 그 거대한 인파의 물결 위로 열두어 명의 청년들이 어깨에 멘 큰 의자에 앉은 산딥 바부가 왕처럼 등장했다.
사실 나는 이전에 그의 얼굴에서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을 발견했었다. 그가 잘생기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눈부시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 화려함 뒤에는 어쩐지 천박한 불순물이 너무 많이 섞여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의 눈빛은 진실하게 빛나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이 친구라는 이유만으로 그에게 맹목적으로 헌신하고 금전적 손해를 감수하는 것이 나는 늘 마땅찮았다. 그의 태도는 수행자도, 검소한 사람도 아닌 그저 멋 부리기 좋아하는 한량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날 오후, 군중의 마음을 뒤흔드는 그의 연설이 시작되자 나는 그가 완전히 다른 존재로 변모하는 것을 목격했다. 서서히 저무는 태양 빛이 누각 지붕 아래로 비스듬히 쏟아져 그의 얼굴을 비추었을 때, 그는 마치 신들이 인간에게 보낸 사자처럼 보였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폭풍우와 같았다. 나는 나도 모르게 가리고 있던 발을 밀어내고 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찰나의 순간, 오리온자리의 별처럼 빛나는 그의 눈길이 운명처럼 내 얼굴에 꽂혔다.
그 순간 나는 나 자신을 잊었다. 나는 더 이상 라자의 집안 여인이 아니라, 벵골의 여성성을 대표하는 유일한 존재가 된 듯했다. 하늘이 그에게 빛을 비추었듯, 그 또한 여인의 축복을 받아야 마땅했다. 그가 나를 발견한 후 그의 언어에 불길이 더욱 거세게 타오르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나는 나의 시선이 그의 언어에 불을 지폈다고 확신했다. 여인은 가정의 불씨를 지키는 신일뿐만 아니라, 영혼의 불꽃 그 자체이기도 하니까.
그날 저녁, 나는 새로운 자부심과 환희에 차서 집으로 돌아왔다. 내면의 폭풍이 나를 완전히 다른 중심으로 옮겨 놓은 듯했다. 고대 그리스의 처녀들처럼 내 긴 머리카락을 잘라 영웅의 활시위로 바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만약 내 몸의 장신구들이 내 내면의 감정과 연결되어 있었다면, 목걸이와 팔찌는 모두 끊어져 유성우처럼 그 집회장 위로 쏟아져 내렸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나의 기대와 달리 침묵을 지켰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나는 그 침묵이 고집스러운 냉소처럼 느껴져 화가 났다. 나는 짐짓 산딥이 언제 떠나는지 물었다. “내일 아침 일찍 랑푸르로 떠날 거야. 그곳에서 연설 약속이 있거든.”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분 하루만 더 머무를 수는 없을까요? 제가 직접 저녁 식사에 초대해서 시중을 들고 싶어요.” 남편은 놀란 눈치였다. 평소 그가 친구들을 초대할 때마다 자리에 참석해 달라고 사정해도 내가 거절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갑자기 부끄러움이 밀려와 나는 황급히 말을 주워 담으려 했다. “아니, 아니에요. 안 되겠어요!” “왜 안 된다는 거지? 내가 직접 부탁해 보리다. 가능하다면 분명 내일까지 머물러 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