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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다자이 오사무 지음 | 센텐스(SENTENCE)


다자이 오사무, 문장의 기억

다자이 오사무 지음

센텐스(SENTENCE) / 2026년 1월 / 232쪽 / 19,400원





Part. 1 부서진 마음의 언어들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 _ 사양


이야기는 주인공 가즈코의 시점에서 진행됩니다. 가즈코는 귀족의 장녀로 태어나 고귀한 삶을 누려왔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일본이 패전하면서 궁핍해집니다. 한편, 남동생 나오지는 전쟁에 참전했다가 실종되며 가족의 슬픔을 심화시킵니다. 도쿄에서의 생활을 이어갈 수 없게 된 가즈코와 어머니는 결국 시골 이즈로 이사합니다. 이사는 몰락한 현실을 받아들이는 전환점이 되지요. 어머니는 가난한 삶에 적응하지 못해 쇠약해지고, 가즈코는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안타까워합니다. 건강이 나빠지는 어머니를 도우면서 그녀는 그들과 같은 처지의 몰락한 귀족들의 이야기를 읽고 자기 삶을 성찰하기도 하죠.

‘잘난 척한다는 건, 품위 있는 것과는 전혀 상관없는, 한심하고 비열한 허세일 뿐이야. ‘고등 하숙(高等御下宿)’이라고 쓰인 간판이 혼고 근처에 자주 붙어 있곤 했는데, 사실 귀족이라는 것들 대부분은 말이지, ‘고등 거지(高等御乞食)’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야.’

가즈코는 한때 결혼을 통해 인생의 행복한 2막을 꿈꿨지만, 남편의 마약 중독으로 가정은 파탄에 이릅니다. 이혼 진행 중 임신을 알았지만, 아이는 사산된 채로 태어나고 말았죠. 이 일은 그녀에게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한편 실종되었던 나오지는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지만, 전쟁 후유증과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머니의 병세는 더 나빠졌고, 결국 세상을 떠납니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삶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 나오지는 극단적 선택을 하고, 이러한 나오지의 자살은 가즈코에게 또 한 번 커다란 상실감을 남겼습니다.

‘도저히, 더는, 정말로 살아 있을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불안감. 이것이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불안’이라는 감정일까. 가슴속으로 고통스러운 파도가 밀려왔다가 또 밀려가고, 그것은 마치 소나기가 그친 뒤의 하늘을 흰 구름이 쉴 새 없이 몰려다니며 스쳐 지나가는 모습처럼, 내 심장을 죄었다 풀었다 하며 옥죄는 것이었다.’

어머니와 동생이 세상을 떠난 후, 가즈코는 슬픔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낍니다. 그들이 남긴 아픈 기억은 그녀에게 상처로 남아 있었지만, 그것에만 몰두해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즈코는 과거에만 머물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자신이 살아 있는 이유를 찾고, 삶을 재구성할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속 변화를 통해 그녀는 앞으로 나아갈 동력을 찾고, 한 단계 더 성장합니다.

이후 가즈코는 나오지가 생전에 존경했던 예술가 우에하라와의 만남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합니다. 나오지는 우에하라를 예술적 이상을 구현하는 인물로 여겼으며, 그의 자유로운 정신과 창의적인 삶을 동경했습니다. 가즈코는 우에하라를 만나면서 나오지가 느꼈던 감정을 이해하고, 자신의 삶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그의 삶과 예술은 가즈코가 얽매였던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줍니다. 그러던 중 가즈코는 우에하라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고, 아이는 그녀에게 과거의 슬픔을 극복할 용기와 새로운 삶의 목표를 세우게 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나는 좀 더 일찍 죽었어야 했다. 하지만 단 하나, 엄마의 사랑. 그걸 생각하면 죽을 수 없었다. 인간은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를 가지고 있는 동시에, 언제든 스스로 죽을 권리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어머니’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 죽을 권리는 보류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곧, 어머니까지 함께 죽이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낡은 도덕과 끝끝내 맞서며, 태양처럼 살아갈 생각이다. 부디 당신도 당신의 싸움을 계속해 주기를 바란다. 혁명은 아직, 조금도, 무엇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가즈코는 아이를 통해 가족의 비극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려 합니다. 과거를 인정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결심을 굳힌 것이죠. 가즈코는 마침내 어머니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아이와 함께할 미래를 구상하며, 우에하라와 현재를 살아가는 데 집중하기로 다짐합니다.

다자이 오사무의 소설 『사양』은 몰락한 귀족 가문의 삶을 통해 전후 일본 사회의 변화와 상실, 그리고 극복 의지를 담고 있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주인공 가즈코의 1인칭 시점으로, 그녀의 내면과 독백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시대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어머니와 전쟁 후유증으로 방황하는 동생 사이에서 그녀는 스스로의 존재와 삶의 의미를 고민하는데, 이러한 그녀의 고뇌와 당시의 시대상이 주인공의 시점을 통해 우리에게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사양』은 발표 당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출간 이후 “사양족(斜陽族)”, “사양산업(斜陽産業)”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시대의 감정과 사회적 현실을 정확히 포착한 작품으로 평가됩니다. 가즈코가 겪는 가족과의 갈등, 내면적 고뇌, 그리고 새 생명을 통해 미래를 꿈꾸는 과정은 우리에게도 깊은 공감을 줍니다.

우리는 몰락과 상실의 순간에서 자신을 잃고, 삶의 방향을 잃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고통과 상실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더 강해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 가즈코는 가족의 죽음과 몰락한 가문의 상황에서도 삶을 지속하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으며, 과거의 흔적 위에 새로운 삶을 세우려 하였죠. 이는 우리가 겪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의 삶을 재구성할 가능성을 탐구하도록 영감을 줍니다. 결국 사회적 기대나 외부의 조건에 얽매이기보다 자기 내면을 깊이 성찰함으로써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성공과 실패라는 이분법에서 자신을 평가하며, 외부의 인정에 지나치게 의존합니다. 그러나 상실과 몰락이 반드시 종말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고,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가즈코가 그랬던 것처럼 영감을 통해 자기 삶의 진정한 방향을 찾고, 고통을 성장의 발판으로 삼으면 어떨까요. 중요한 것은 절대 꺾이지 않는 마음이니까요.



Part. 2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깨지기 쉽다



뒤틀린 사랑이 향하는 곳 _ 직소


유다는 참을 만큼 참았다며 울분을 토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을 생각하면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누를 수 없다고 합니다. 예수는 유다와 동갑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유다의 위에 군림했고, 모든 주목을 받았습니다. 유다가 빵을 구해 오고, 숙소를 마련하고, 사람들과 흥정해도 예수는 스스로 기적을 베푼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유다는 그런 예수를 위해 모든 수고를 감내해 왔었죠. 그러나 이제는 말하고 싶다고 합니다. ‘예수는 거짓된 자이며, 저를 모욕한 자입니다. 살려두어서는 안 될 자입니다.’

하지만 유다는 예수를 누구보다 사랑해왔습니다. 다른 제자들과 달리 유다는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았습니다. 단지 예수와 조용한 시골에서, 어머니와 셋이서 살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상상을 했었죠. 유다는 예수를 모시며 평온한 삶을 살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예수는 유다에게 무심하게 굴었습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녀가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붓고, 그의 발을 닦던 날, 유다는 질투와 모욕감에 휩싸였습니다.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로마의 은화.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이었다.)이나 되는 것이었습니다. 팔아서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러나 예수는 마리아가 자신의 장례를 준비해준 것이라 감쌌습니다. 그 순간, 유다는 깨달았습니다. 그의 목소리, 눈빛, 붉어진 얼굴에 담긴 감정이 단순한 연민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돌이켜보면, 그 사람과 그렇게 조용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건 그때 단 한 번뿐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저에게 마음을 열어주신 적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그 사람이 죽는다면, 저도 함께 죽을 것입니다.’

위대한 존재라고 믿었던 예수는, 무지한 시골 여자에게 특별한 감정을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가 그렇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유다는 수치심과 분노를 느끼죠. 그날 이후 유다는 예수를 더 이상 같은 눈으로 바라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가 실상은 누구보다 욕망에 충실한 사람이었다고 유다는 확신했습니다. 그런 사람을 위해 인생을 바쳐왔다는 사실이 견딜 수 없이 아프게 느껴졌습니다. 예루살렘 입성은 유다의 마지막 환상마저 깨뜨리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날, 예수는 늙은 나귀를 타고 성으로 들어갔고, 군중은 환호했습니다. 제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죠. 그러나 유다의 눈에 비친 예수는 무기력하고 초라한 남자에 불과했습니다.

‘아아, 질투란 얼마나 견딜 수 없는 비열한 감정인가요. 제가 이렇게까지, 목숨을 내놓을 만큼의 마음으로 그 사람을 사모하며 오늘까지 곁을 따라왔건만, 그분은 제게 단 한마디 따뜻한 말도 건네주시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저런 천한 시골 여자 하나를 위해 볼까지 붉히며 감싸주시다니요. 아아, 역시 그 사람은 흐트러진 분입니다.’

유월절, 그토록 열망하던 입성이 이토록 볼품없는 모습일 줄은 몰랐습니다. 유다는 그때 ‘이 사람은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전에서 예수는 마지막 자존심까지 내려놓았습니다. 예수는 채찍을 휘두르며 상인들을 쫓아내고, 성전의 질서를 어지럽혔습니다. “이 성전을 헐어라. 내가 사흘 만에 세우리라.” 분노하는 예수의 모습에 제자들은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죠. 유다는 예수가 이제 돌아올 수 없는 선을 넘었음을 확신했습니다. 예언과 이상이 무너진 자리에 남은 것은, 오직 광기와 허세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향해 독사의 자식이라 외치며 저주를 퍼부으며 지옥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예수는 열변을 토했고, 유다는 예수가 곧 죽게 될 것임을 직감하며 생각하죠.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니, 제 손으로 생애를 끝내야겠다고. 그것이야말로 진짜 애정의 방식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유다는 예수를 팔기로 결심했습니다. 유다는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를 어떻게 죽일 것인가를 의논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가 제자들과만 있을 때 붙잡혀야 하며, 밀고한 자에게는 은 삼십을 준다는 것도 알게 되었죠. 유다는 그 순간, 예수는 어차피 죽을 것이니, 다른 이의 손에 넘어가기 전에 자신이 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그날 밤, 유월절을 맞아 예수와 제자들은 동산 위의 허름한 방에 모여 식사를 했습니다.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았을 때, 예수는 겉옷을 벗고 물동이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받아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었죠. 유다는 당혹스러웠고, 동시에 마음 깊은 곳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곧 견딜 수 없는 감정이 치밀었습니다. 유다는 예수에게 당신은 아무 잘못도 없다고, 언제나 가난한 자의 편이었고, 아름다웠으며, 옳았다고 말해주고 싶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이제 도망칩시다. 함께 살아갑시다. 당신을 지키고 싶습니다.’ 그 모든 말들이 유다의 가슴 안에서 요동쳤죠. 그때 유다는 정말 회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끝내 유다를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긴 뒤, 자리에 앉아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 중 하나가 나를 팔 것이다.”

‘그래요. 저는 상인입니다. 그 사람은 언제나, 내가 돈을 좇는다는 이유로 나를 은근히 깔보아 왔었습니다. 받아들이겠어요. 결국 나는 그런 인간이니까 말입니다. 그가 경멸해 마지않던 돈으로, 이제 그 사람에게 복수하려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내게 가장 어울리는 복수 방식일지도요. 참 고소합니다! 은 삼십에, 그 사람이 팔려나가게 된다니.’

제자들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주여, 제가 그 사람입니까?” 그러자 예수는 빵 한 조각을 들어 유다의 입에 건넸습니다. 그 순간 유다는 모든 것을 이해했습니다. 예수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절망에 빠진 유다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어둠 속을 달렸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은 삼십을 받고 그의 위치를 말하려 합니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사랑이고, 마지막 복수입니다. 유다는 그 사람을 사랑했지만, 그는 끝까지 유다를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자신이 예수의 모든 것을 끝내고자 하고 있습니다.

『직소』는 신약성경 속 ‘가룟 유다’의 시선을 빌려, 애증이라는 감정을 응시하는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성경 속 인물을 다루고 있음에도 종교적 색채가 느껴지지 않습니다. 또한 소설 안에서 유다는 단지 배신자가 아닙니다. 누구보다 예수를 사랑했고,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절망과 분노 속에서 비틀리고, 끝내 파멸로 이끌렸죠. 다자이는 그 비뚤어진 감정이 인간적인 것임을 드러냅니다. 다자이가 거침없이 그려낸 유다의 진심은 순수했지만, 그 순수함은 외면당할 때 증오로 변합니다. 이 작품은 인간이 감정을 끝까지 감당하지 못할 때 어떤 파멸에 다다르는지 보여주는 문학적 고백이었던 것입니다.

유다의 감정은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유다는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회개하고, 다시 흔들리며, 끝내 배신을 실행하지만, 그 속에는 여전히 사랑이 남아 있죠. 그 사람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던 마음, 그가 마리아를 향해 웃었을 때 느꼈던 질투, 마지막 발을 씻는 장면에서 차오른 눈물까지. 다자이는 인간의 감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모순적인지, 그리고 얼마나 파괴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유다의 배신을 통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다자이 오사무는 유다라는 인물을 ‘배신자’라는 낙인 아래 두지 않고, 그가 예수를 누구보다 사랑했기에 누구보다 큰 실망과 고통을 겪었을지도 모른다는 시선을 가진 채 바라보았습니다. 다자이는 실제로 자신의 자전적 경험을 문학 속에 자주 반영했는데, 그가 이처럼 배신자인 ‘유다’의 입장에서 유다의 선택을 복합적으로 통찰한 것은, 다자이 스스로가 자신을 ‘배신자’, ‘도망자’라고 비난하며 살았던 자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때때로 기대가 되고, 기대는 쉽게 상처로 이어지며, 상처는 돌이킬 수 없는 행동으로 번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비극의 밑바닥에는 사랑이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누군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길 위에 한 발 더 다가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우리를 아프게 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독자가 이 이야기를 읽으며 ‘나 역시 그런 적이 있다’라고 느끼기 때문일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기대하다가, 실망하고는 비난으로 돌아섰던 경험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의 뿌리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 모든 실망과 분노조차 사랑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기대가 어긋났을 때 깊은 상처를 받죠. 그 상처가 비난이나 냉소로 변해버릴 때, 우리는 본래의 마음, 사랑하고자 했던 마음을 잃곤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음속 숨어 있는 유다의 그림자를 마주해야 합니다.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누군가를 가혹하게 몰아붙이거나, 이해받지 못한 감정을 증오로 바꾸려 했던 과거를 돌아보고 뉘우치려면 말이죠. 물론 자신의 잘못을 떠올린다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불편한 기억을 한 번쯤 짚고 넘어간다면, 우리 역시 작품 속 유다처럼 되돌릴 수 없는 파국으로 향하는 일을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Part. 3 나를 만든, 그러나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



당신의 연약함은 나의 죄 _ 앵두


무더운 여름 저녁, 좁은 방에 온 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고 있습니다. 세 아이는 떠들고 장난치며 소란스럽지만, 아버지는 땀으로 젖은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내며 불평합니다. “밥 먹으면서 땀 흘리는 게 얼마나 천박한 일인지 옛사람들도 비웃었다”라며 불평불만을 늘어놓던 그는 아이들의 끊임없는 소란에 체념한 듯 농담을 던지죠. 한편 어머니는 한 손으로 막내를 품에 안고 젖을 물리며, 다른 손으로 장녀와 장남의 음식을 챙기고, 흘린 음식을 닦아내는 등 정신없이 움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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