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조설근, 고악 지음 | 고전문학
홍루몽
조설근, 고악 지음
제1장소주(쑤저우)의 번화한 창문 땅, 그곳에는 속세의 붉은 먼지를 등진 채 살아가는 진사은이라는 고고한 선비가 있었다. 낡았지만 정갈한 호리병 사원 곁에 자리한 그의 집은, 부귀영화를 좇지 않는 그의 성품을 닮아 소박했다. 그는 정원을 가꾸고 달빛 아래 벗과 술잔을 기울이는 풍류를 즐겼으나, 그의 마음 한편에는 늘 작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어느덧 쉰을 넘긴 나이에도 아들이 없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세 살배기 어린 딸 영련만이 그의 유일한 혈육이었기 때문이다.
푹푹 찌는 어느 여름날 오후, 서재의 나른한 공기 속에서 깜빡 잠이 들었던 그는 신비로운 꿈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곳에서 그는 기이한 행색의 승려와 도사를 마주쳤다. 그들은 인간 세상에서 곧 펼쳐질 거대한 사랑의 연극에, 영혼을 지닌 조약돌 하나를 끼워 넣으려 한다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본래 여신에게 선택받지 못했으나, 오랜 세월 끝에 스스로 영기를 얻게 된 그 돌. 그 돌이 감미로운 이슬로 정성껏 보살핀 강주초라는 영롱한 풀이 있었는데,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한평생 흘릴 눈물을 안고 한 소녀로 태어날 운명이라는 것이었다. 두 신선은 바로 그 운명의 연극에 돌을 참여시키기 위해 태허환경의 경환선고를 찾아가던 길이었다.
호기심이 동한 진사은이 다가가 가르침을 청했지만, 그들은 “천기는 누설할 수 없는 법”이라며 수수께끼 같은 답을 남길 뿐이었다. 다만 ‘통령보옥’이라 새겨진 아름다운 옥돌을 잠시 보여줄 뿐이었다. 그가 옥에 새겨진 글자를 자세히 살펴보려던 찰나, 어디선가 요란한 천둥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 꿈에서 깨어났다.
꿈의 여운이 채 가시지 않은 채, 그는 사랑스러운 딸 영련을 품에 안고 문가에 서서 거리를 내다보았다. 바로 그때, 그의 시선 끝에 꿈속에서 보았던 바로 그 승려와 도사가 걸어오고 있었다. 승려는 아이를 보자마자 대뜸 소리쳤다. “나리! 품에 안고 있는 그것은 어떤 재앙의 물건이기에, 부모에게 슬픔만 안겨주려 하는가! 어서 이리 주시게!”
진사은은 질겁하여 딸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그가 황급히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려 하자, 승려는 등 뒤로 날카롭게 웃으며 섬뜩한 노랫가락을 던졌다. “어리석은 자식 사랑, 연약한 꽃은 서리를 이기지 못하리. 새해 명절을 조심하게, 덧없는 불과 화염을.” 그 말을 남기고 두 사람은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다.
그 기묘하고도 불길한 예언을 곱씹으며 불안에 떨던 진사은은, 이웃 사원에 기거하는 가난하지만 비범한 젊은 선비, 가우촌의 재능을 눈여겨보고 그를 가까이 두었다. 추석날 밤, 자신의 원대한 포부를 세상이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며, 수도로 갈 여비가 없어 기회를 놓칠까 시름하는 그를 보며, 진사은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은 50냥과 두툼한 겨울 외투 두 벌을 내어주었다. 가우촌은 거듭 감사를 표하고, 다음 날 새벽 말없이 길을 떠났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 예언은 잔인한 현실이 되어 그의 삶을 덮쳤다. 원소절 등불 구경을 나갔던 딸 영련이, 축제의 인파 속에서 하인의 부주의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부부가 애끓는 심정으로 딸을 찾아 헤맸으나 허사였다. 비극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호리병 사원에서 시작된 불이 걷잡을 수 없이 번져, 진사은의 집까지 남김없이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다.
모든 것을 잃은 진사은은 아내와 함께 장인의 집에 의탁했다. 하지만 몰락한 사위를 향한 장인의 구박은 날마다 심해졌고, 농사일에 서툰 그는 절망 속에서 하루하루 늙고 병들어갔다. 실의에 빠진 어느 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한 채 거리를 헤매던 그의 귓가에, 남루한 차림의 절름발이 도사가 부르는 뜬구름 같은 부귀공명을 노래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노랫소리에 깊은 깨달음을 얻은 진사은은 “저도 함께 가고 싶습니다.”라며 도사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는, 한 줌 미련도 없이 속세를 등지고 그의 뒤를 따라 홀연히 사라져 버렸다.
제2장진사은의 도움으로 과거에 급제한 가우촌은 신임 현감이 되어 옛 은인이 살던 동네로 부임했다. 그는 가장 먼저 진사은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돌아온 것은 은인이 속세를 등지고 홀연히 사라졌으며 그의 어린 딸 영련마저 실종되었다는 비극적인 소식뿐이었다. 가우촌은 깊은 탄식에 잠겼고, 은혜를 갚는다는 마음으로 그의 남은 가족에게 후한 선물을 보냈다. 그리고 과거 꽃밭에서 단 한 번 마주쳤던, 눈길로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진사은의 하녀 행아를 첩으로 맞아들였다.
그러나 권력의 맛을 본 그의 자만심은 하늘을 찔렀다. 자신의 재능을 과신하여 동료와 백성을 업신여겼고, 결국 탐관오리라는 오명을 뒤집어쓴 채 2년 만에 파직당하고 말았다. 모든 것을 잃고 세상을 떠돌던 그는, 양주 순염어사 임여해의 집에 가정교사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임여해의 병약하지만 총명하기 그지없는 외동딸, 임대옥을 가르치며 2년간 평온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임대옥의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나고 임대옥마저 슬픔에 겨워 몸져눕자 수업은 중단되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가우촌은 주막에서 우연히 옛 친구인 골동품상 냉자흥을 만났다. 두 사람은 반갑게 술잔을 기울였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수도에서 가장 번성한 가문인 영국부와 녕국부의 흥미로운 이야기로 흘러갔다. 냉자흥은 특히 영국부의 기이한 손자, 가보옥에 대한 이야기를 신이 나서 풀어놓았다.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입에 오색찬란한 옥을 물고 나왔다지. 그래서 이름을 보옥(寶玉), ‘귀한 옥’이라 지었다네. 허나 돌잡이 때 계집아이들이나 쓰는 분과 장신구를 집어 아비인 가정의 속을 뒤집어 놓았지. 그때부터 ‘여자는 물로, 남자는 진흙으로 만들어졌다’는 해괴한 소리나 하며 할머니의 치마폭 뒤에 숨어 지내는, 집안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가 되었다네.”
이야기를 듣던 가우촌은 자신의 제자인 임대옥의 죽은 어머니가 바로 그 가씨 집안의 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놀라워했다. 화제가 무르익을 무렵, 멀리서 한 사람이 달려와 가우촌의 복직을 알리는 급보를 전했다. 때마침 외조모인 가모가 몸이 아픈 외손녀 임대옥을 수도의 집으로 데려오고 싶어 하던 참이었다. 임여해는 가우촌에게 흔쾌히 추천서를 써주며, 마침 잘되었으니 딸의 길에 동행하여 자신의 처남이자 영국부의 실세인 가정에게 직접 전해달라 부탁했다. 마침내 가우촌과 임대옥, 두 사람의 운명은 거대한 가씨 가문을 향해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3장가우촌의 추천서를 받아 든 가정은 그의 훌륭한 풍채와 언변에 흡족해하며 그의 복직을 도왔고, 덕분에 가우촌은 두 달 만에 수도 근처의 지부로 임명되었다. 한편, 머나먼 길을 달려온 임대옥은 외조모인 가모가 보낸 가마를 타고 마침내 영국부에 당도했다. 눈앞에 펼쳐진 거대하고 화려한 저택의 웅장함과, 끝도 없이 늘어선 하인들의 위세에 어린 소녀는 숨이 멎는 듯했다. 행여나 촌스럽다는 놀림이라도 받을까, 그녀는 앞으로 매사에 말을 아끼고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마침내 외조모의 거처에 당도하자, 백발이 성성한 가모는 버선발로 달려 나와 피붙이 손녀를 끌어안고 “내 심장, 내 간이여! 내 자식의 피와 살이로다!”라며 목놓아 울었다. 할머니의 서러운 울음에 주위의 부인들과 하녀들까지 덩달아 눈물을 훔쳤고, 그동안 꿋꿋하게 버텨왔던 임대옥 역시 참았던 설움이 북받쳐 할머니의 품에 안겨 한참을 소리 내어 울었다. 방 안은 순식간에 눈물바다가 되었다.
한참의 소동이 끝나고서야 임대옥은 집안의 어른들, 즉 큰외숙모 형 부인, 작은외숙모 왕 부인, 그리고 요절한 사촌 오빠 가주의 미망인인 이환과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곧이어 가모의 부름에 사촌 자매들인 가영춘, 가탐춘, 가석춘이 모습을 드러냈고, 임대옥은 자신과 마찬가지로 각기 다른 사연과 분위기를 지닌 소녀들과 조심스럽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 밖에서부터 요란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제가 귀한 손님을 맞이하는데 너무 늦었네요!” 낭랑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등장하기도 전에, 그 존재감만으로도 좌중의 분위기를 압도하며 나타난 이는 바로 왕희봉이었다. 가모는 그녀를 “우리 집의 온갖 즐거움을 책임지는 아이지. 봉황이라고 부르렴.” 하고 소개했다. 왕희봉은 싹싹하게 임대옥의 손을 잡고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그녀의 가녀린 몸매와 처지를 안타까워하는 듯 눈물을 훔치다가도, 이내 쾌활하게 돌변하여 집안의 대소사를 처리하는 위풍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임대옥은 단번에 그녀가 이 집안의 실질적인 권력자임을 알아차렸다.
외숙부들에게 인사를 올리는 길, 작은외숙모인 왕 부인은 임대옥에게 자신의 골칫덩어리 아들, 가보옥에 대해 단단히 경고했다. “내게 못된 아들놈이 하나 있는데, 그 녀석은 계집아이들 없이는 하루도 못 사는 놈이니, 부디 그의 달콤한 말에도, 어리석은 분노에도 휘둘리지 말거라.” 저녁 식사 후, 드디어 임대옥은 말로만 듣던 별난 사촌 오빠 가보옥과 마주하게 되었다. 눈부신 보석으로 치장한 그의 화려한 모습과 빛나는 용모는 그녀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고, 이상하게도 어디선가 본 듯 낯이 익다는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보옥은 임대옥을 보자마자 “전에 만난 적이 있는 것 같아요.” 하고 중얼거리더니, 다짜고짜 그녀에게 옥이 있는지를 물었다. 임대옥이 없다고 답하자, 그는 돌연 분노를 터뜨리며 자신의 목에 걸려 있던 통령보옥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고약한 물건! 하늘에서 내려온 것 같은 이 누님도 없는데, 나만 이걸 갖고 있단 말이야! 난 이거 싫어요!” 집안이 발칵 뒤집혔고, 가모가 간신히 그를 달래 소동은 일단락되었다. 그날 밤,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서러움에 잠 못 들고 눈물짓는 임대옥에게, 보옥의 시녀인 습인은 앞으로 더한 기행을 보게 될 것이니 너무 마음 쓰지 말라며 그녀를 위로했다.
제4장가문의 후광을 업고 응천부의 지부로 부임한 가우촌은 자신의 앞에 놓인 첫 사건 서류를 읽고 의분을 참지 못했다. 노비 소녀 하나를 두고 벌어진 다툼 끝에 한쪽이 맞아 죽은 흉악한 살인 사건이었다. 먼저 소녀를 사서 대금을 치렀으나 인신매매범이 ‘미친 강도’라 불리는 설반에게 소녀를 이중으로 팔았고, 설반의 하인들이 주인을 때려죽이고 소녀를 데리고 사라졌으나 그의 전임자는 가해자의 권세를 두려워해 사건을 묻어버렸다는 것이었다.
“뭣들 하는 게냐! 당장 살인자를 잡아들이고, 실토하지 않으면 엄히 고문하여라!” 정의감에 불타는 그의 호령이 채 끝나기도 전에, 곁에 있던 아전 하나가 조용히 눈짓을 보냈다. 가우촌은 직감적으로 무언가 다른 속사정이 있음을 깨닫고 그를 내실로 불렀다. 간사한 미소를 띤 아전은, 자신이 과거 가우촌이 머물던 호리병 사원의 어린 사미승이었음을 밝히며 ‘호관부(護官符)’라 불리는 낡은 종이를 건넸다. 그곳에는 이 지역의 관리들이 절대로 건드려서는 안 될 가(賈), 사(史), 왕(王), 설(薛) 네 가문의 이름과 그들의 관계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 설반이라는 자는 바로 그 설씨 가문의 사람으로, 네 가문 모두와 인척 관계에 있습니다. 그를 건드리는 것은 곧 네 가문 모두를 적으로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아전은 한술 더 떠, 사건의 전말을 털어놓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불쌍한 노비 소녀가 바로 가우촌의 옛 은인, 진사은의 잃어버린 딸 영련이라는 사실이었다. “눈썹 사이에 쌀알만 한 점이 있는 것까지 똑같습니다. 제가 몰래 물어보니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 하더이다. 하지만 ‘이제야 전생의 빚을 갚으려는 구나’ 하고 한숨 쉬는 것을 똑똑히 들었습니다.”
가우촌은 깊은 시름에 잠겼다. 은인의 딸을 구하고 정의를 실현할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출세를 위해 권력에 굴복할 것인가. 그의 마음속에서 갈등이 휘몰아쳤으나, 아전의 교활한 속삭임은 결국 그의 양심을 무너뜨렸다. 그는 아전이 제안한 계략을 받아들여 설반이 병사한 것처럼 사건을 꾸며 종결시키고, 유족에게는 두둑한 보상금을 쥐여주어 입을 막아버렸다. 이 모든 비밀을 아는 옛 사미승이 껄끄러워진 그는, 그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멀리 변방으로 보내는 치밀함까지 보였다.
한편, 살인자 설반은 안하무인에 돈 쓰기를 물 쓰듯 하는 난봉꾼이었다. 그에게는 설보채라는 현숙하고 아름다운 누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최근 황제의 후궁이나 공주들의 시녀를 뽑는 간택에 이름이 올라 오라비와 함께 수도로 향하던 길이었다. 설반은 살인 사건 따위는 돈으로 해결될 사소한 문제로 여기고, 새로 얻은 노비 영련에게 향련이라는 새 이름을 지어준 뒤 아무렇지 않게 이모인 왕 부인이 있는 영국부로 향했다. 그곳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만족한 그는 그대로 눌러앉아, 가씨 집안의 방탕한 자제들과 어울려 주색잡기에 빠져들었다.
제5장영국부에 온 설보채는 단정하고 부드러운 용모와 누구에게나 상냥한 처세술로 금세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녀의 존재는 까다롭고 도도한 임대옥의 자리를 위협했고, 임대옥은 자신보다 보채에게 쏠리는 사람들의 관심, 특히 보옥마저 그녀의 매력에 빠져드는 듯한 모습에 남몰래 속을 태웠다. 아직 어렸던 보옥의 짓궂은 장난과 다정한 말을 구분하지 못하고 토라져 눈물짓는 날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머리를 조아리며 용서를 비는 그의 모습에 이내 마음이 풀리곤 했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어느 날, 녕국부의 잔치에 참석한 보옥은 밀려드는 졸음에 쉴 곳을 찾았다. 녕국부의 젊은 안주인인 진가경은 그를 자신의 침소로 안내했다. 방 안은 온갖 진귀하고 화려한 물건들로 가득했고, 그윽한 향기가 그의 뼛속까지 녹이는 듯했다. “신선이라도 이 방에선 흡족할걸.” 가경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보옥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꿈속에서 그는 가경을 따라 신비로운 ‘태허환경’이라는 궁전에 다다랐다. 그곳에서 자신을 인간 세상의 정욕과 애정의 빚을 관장하는 선녀라 소개하는 ‘경환선고’를 만났다. 그녀는 속세의 쾌락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 깨닫게 하여, 보옥이 앞으로 닥쳐올 위험에서 스스로를 지킬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이곳으로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경환선고는 보옥에게 ‘일구천홍(一口千紅)’이라는 기묘한 차와 ‘만배일장(萬杯一漿)’이라는 신비로운 술을 대접하고, ‘홍루몽’ 12곡이라는 슬픈 노래를 들려주었다. 그 노래집에는 금릉십이차라 불리는 대관원 열두 소녀의 비극적인 운명이 담긴 노래들이 들어있었다. 어렴풋이 임대옥과 설보채의 미래를 암시하는 듯한 구절이 있었고, 특히 임대옥·가보옥의 엇갈린 운명을 상징적으로 암시하는 7언 장편 시도 있었다.
<왕응미(枉凝眉) 부질없이 눈썹을 찌푸린다>
一個是?苑仙?,
한 사람은 낙원의 신선 같은 꽃,
一個是美玉無瑕。
다른 한 사람은 티 없는 옥이었다.
若說沒奇緣,今生偏又遇著他;
인연이 없다 하면, 어찌 이 생에서 굳이 만나게 되었을까?
若說有奇緣,如何心事終虛化?
인연이 있다 하면, 어째서 그 마음이 끝내 허무로 돌아가야 하는가?
一個枉自嘆風流,
한 사람은 부질없이 풍류를 탄식하고,
一個空勞掛念他。
한 사람은 헛되이 그리움에 매달렸다.
好知姻緣無常,
알겠도다, 인연은 무상하여,
輾轉反側空驚?。
뒤척이며 근심만 늘어날 뿐이라.
…
滿紙荒唐言,
종이 가득 황당한 말,
一把辛酸淚。
단지 한 줌의 쓰라린 눈물일 뿐.
都云作者痴,
다들 말하길 작자가 미쳤다 하지만,
誰解其中味?
그 속맛을 아는 이는 누구이랴?
어리석은 보옥은 그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했다. 음악이 끝나자, 경환선고는 보옥을 비밀의 방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그의 운명의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설보채의 건강한 아름다움을 닮았고, 임대옥의 우아한 자태를 지니고 있었다. 선녀는 그녀의 이름이 겸미(兼美)이며, 자는 가경이라고 일러주었다. 그날 밤, 보옥은 꿈속에서 비로소 남녀의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황홀한 순간도 잠시, 늑대와 호랑이가 가득한 위험한 곳에 빠져 허우적대던 그는 “살려주세요!”라고 외치며 잠에서 깨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