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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엔 시골생활

바바 미오리 지음 | 끌레마



주말엔 시골생활

바바 미오리 지음

끌레마 / 2015년 4월 / 264쪽 / 15,000원





시골에 집을 갖는다는 현실



첫째 아들 나이니 밑으로 큰딸 포친이 태어난 무렵부터 ‘도쿄에서만 살아도 될까’, ‘시골집이 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의문과 바람은 우리 부부의 저녁 반주의 주요 안주거리가 되면서 점점 더 커졌다. 우리 부부는 양가 부모님이 모두 도쿄에 살고 있어서 여름방학에 찾을 시골이 없다. 그러다 보니 주말마다 아이들이 놀 만한 자연을 찾아 머리를 쥐어짜면서 외출해야 했다. 하지만 시골집이 있었으면 좋겠다느니 자연 속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는 말은 많이 하면서도 당장 생활방식은 바꿀 수 있을 만큼 발놀림이 가볍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그럴 만한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

남편은 격무에 시달리는 보통의 직장인이고 나는 잡지 기고가이다. 또 당시 시댁에서 시어머니, 시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어서 도쿄를 떠나는 것은 불가능한 형편이었다. 아직도 어린 두 아이(지금은 세 명)를 키워야 하는데 대학 졸업까지 드는 평균 비용이 자녀 한 명당 3억 원이라는, 냉엄한 현실도 가로놓여 있었다. 이렇게 도무지 무너뜨릴 수 없을 것 같은 드높은 ‘장벽’을 나무망치로 탕탕 두드리기 시작한 것은 남편이었다.

“당신은 약간 비정상일 정도로 동물을 좋아하잖아? 달팽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기어가게 한다거나 부엉이를 기르고 싶어 하고, 전에는 공원에 있던 큰 개구리를 예쁘다고 품에 안기도 했잖아?” 남편은 이런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부터 꺼냈다. “요즘 집집마다 관엽 식물을 키우지만 왠지 갑갑하잖아. 집 안에서 줄멍줄멍 키우는 게. 도쿄 생활이라는 게 딱 그거야. 『초원의 집』이란 책이 있지? 그런 생활 어때? 분명 아이들을 키우는 데만 좋은 게 아니고 우리도 즐거울 거야. 집은 허름하고 작아도 주변에 자연이 확 트여 있어서 이리 가면 안 돼, 저리 가면 안 돼 잔소리하지 않아도 되고 맘껏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곳, 그런 집 없을까?”

이사하기 어렵다는 사정은 남편도 훤히 알고 있을 터였다. “주말 주택이라고 불러야 하나? 주말에 자동차로 다닐 만한 거리에 있는 또 하나의 집, 그런 게 좋아. 사치를 부리자는 이야기가 아니야. 가루이자와에 호화로운 별장을 짓겠다는 게 아니고, 허름한 집이 딸려 있는 값싼 땅이면 충분해. 아니면 넓은 땅에 아담한 오두막집을 짓는 건 어떨까?”

‘또 하나의 집.’ 하마터면 살짝 낚일 뻔했지만 나는 금세 고개를 가로저었다. 남편은 나의 냉담한 반응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은 듯, 계속해서 지론을 펼쳐나갔다. “가급적 외딴 곳이어야 해. 도쿄에는 드넓은 대지가 없어. 500평 정도면 어때? 아이들이 자유롭게 밖에서 뛰놀고, 곤충이랑 물고기도 잡고, 화초나 채소 같은 것도 충분히 키울 수 있을 거야. 인생, 한 번뿐이잖아? 아이들 키우기가 한참 멀어 보여도 순식간이야. 아이들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환경에서 생활하는 것을 우리 인생의 사치로 삼아도 좋지 않아? 돈으로는 변변한 재산을 남겨주지 못해도 ‘시골’이라는 재산은 남겨줄 수 있을지도 몰라. 자금 마련? 그건 말이야, 어떻게든 돼. 어떻게든 되는 범위에서 찾는 거야. 그리고 당신은 어젠가는 부자가 될 거야. 그러니 괜찮아.”

이야기의 뒷부분은 얼토당토않지만, 아이들에게 시골이라는 재산을 남겨준다는 것은 지당한 이야기였다. 메구로 거리를 운전하다 보면 대부분 수천만 엔씩 하는 최고급 외제차들이 즐비하게 달린다. 그런 차들은 최고급 주택뿐 아니라 중산층 주택이나 아파트 주차장에서도 흔히 눈에 뛴다. 한정된 재원 아래서 용납할 수 있는 사치의 형태는 저마다의 가치기준에 따라 다르게 마련이다. 나는 페라리를 살 마음도 살 능력도 없지만 갖고 싶은 것이 ‘시골 땅’이라면 어떻게든 노력해서 손에 넣으려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다면.

마음이 기우뚱 흔들렸다. ‘시골? 땅? 세컨드하우스? 사치야, 안 돼.’ 하며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딱 잘라 거절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대부분 갖고 싶어 하는 고급 외제차를 마음속에 그려보며 가격을 비교하니 오히려 ‘시골집을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 와 닿았다. 그러자 우리에게 어울리는 형태의 사치이고 풍요로운 삶과 결부되는 사치라면 투자할 만하지 않을까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결국 남편과의 대화로 갈팡질팡하던 내 마음이 방향을 정하고 말았다. ‘시골집’으로.



부동산 순례의 나날



이때부터 기나긴 여정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대체 얼마나 많은 물건을 보았던가. 주말마다 조금이라도 궁금한 물건은 모두 확인하러 다녔다. 수많은 부동산중개소를 만났다. 여름이 오더니 어느새 추워지고 다시 봄이 지나갔다. 이런 일에 시간을 들이지 말고 데꺽 정해버려야겠다며 슬슬 지겨워하다가도 땅을 둘러보면 볼수록,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교섭을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땅을 고르는 눈이 예민해져서 점점 타협하기가 힘들어졌다.

이를테면 맨 처음에 만난 땅은 보자마자 이걸로 정해버려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 물건이었다. 가나가와 현 시부사와라는 동네에 있는, 동향으로 긴 돈대의 평지가 313평에 900만 엔이었다. 전망이 좋고 볕도 잘 들었다. 작은 오두막을 지어도 앞마당이 넓게 빠지고 전원 풍경도 마음에 그리던 것과 가깝고 가격도 현실적이었다. 우리는 정말 이렇게 한가롭게 놀고 있는 좋은 땅이 있다는 사실에 단박에 기분이 환해졌다. 풀들이 봄볕에 닿아 반짝이고 가족끼리 등걸잠을 자는 상상에 흠뻑 취했다. 이런 걸 두고 인연이라고 하는구나 싶었다.

인터넷에서 물건을 찾느라 지칠 대로 지쳐 있었고 이 정도 물건이면 충분하다고 타협할 뻔했다. 하지만 땅을 둘러보며 부동산중개소 직원의 설명을 듣는 사이에 나는 차츰 이성을 되찾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 직원은 묘한 입버릇을 갖고 있었다. “빈말이 아니고요.” 그는 이 말을 대화 속에서 연발했다. “이 평수의 물건은 아시다시피 그렇게 자주 나오지 않습니다. 빈말이 아니고요. 이만한 넓이에 이 가격은 저도 여태껏 부동산 중개 일을 하면서 좀처럼 만난 적이 없습니다. 예, 빈말로 하는 말이 아니고요, 정말로.” 자꾸 듣다 보면 이 사람이 진짜 빈말을 하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는 참으로 안타까운 입버릇이었다. 진정성을 드러내고 싶다면 좀 더 좋은 표현이 있을 텐데 안타까웠다. 그래서 나는 겉보기에 그럴싸한 부분은 빼고 정말 문제가 없는 땅인지 차근차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여지없이 문제점이 이것저것 드러났다.

무엇보다 이 땅은 맹지(길이 연결되지 않은 땅)였다. 건축기준법상 폭 2미터 이상의 도로와 접해 있어야만 집을 지을 수 있다. 그러면 텐트에서 살란 말이냐 하고 되묻게 만드는 땅이었던 것이다. 이웃 땅 주인에게 자투리땅을 사서 길을 내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이 땅을 갖고 싶은지 자문하니 매력이 사그라졌다. 게다가 수도 시설이 들어와 있지 않아서 추가 설비비가 들어야 했고, 서쪽으로 산이 우뚝 솟아 있어 오후에는 금세 어두워질 것 같고……. 그 밖에도 문제점들이 하나둘 드러났다. 실상 그 직원은 빈말로 번지르르하게 말하고 있었던 거다. 지금 같았으면 눈길 한 번 주지 않았을 땅이었다.

또 하나,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물건은 매매계약이 이루어지기 직전 다른 사람한테 가로채인 땅이다. 그 땅도 가나가와 현 하다노라는 마을에 돈대 500평짜리 땅이었다. 발아래로 차밭이 펼쳐져 절경을 이루고 바로 뒤로는 단자와오야마국정공원(丹澤大山國定公園)을 등지고 있어 나무랄 데 없는 입지였다. 석축을 쌓아올린 방토는 땅 주인의 손길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운치 있었고 사뿐히 심긴 유자나무가 그 분위기를 더했다. 지금도 이따금 그 땅 참 좋았었지 하며 떠올린다.

그러나 그 무렵 우리는 겉으로는 좋아 보여도 막상 문제가 있는 땅이라는 것을 알고서 포기하는 일을 여러 차례 겪은 터라 경계심이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였다. 사실 이 땅도 문제점이 많았다. 물이 나올지 안 나올지 모르는 우물이 있었으나 수도는 없었다. 조정구역이었기 때문에 대지 내 ‘기존택지’ 부분에만 건축물을 세울 수 있는데 크고 다부진 차고 하나가 떡하니 세워져 있었다. 맹지인 데다 토지가 둘로 나뉘어 각각 소유주가 달랐고, 무엇보다 땅값이 3,000만 엔이나 하는 비싼 물건이었다.

주머니 사정이 변변치 못한 우리에게 3,000만 엔은 기절초풍할 가격이었다. 부동산 중개를 하는 친구에게 객관적인 관점에서 적정한 가격인지 물어보았다. ‘조정구역인데 3,000만 엔은 너무 비싸고, 자산 가치가 전혀 없기 때문에 나라면 반값 이하라도 사지 않는다’고 딱 잘라 대답했다. 이렇게 멋진 땅인데 자산 가치가 없다니, 어쩐지 가혹한 말로 들렸다. 돈으로 얻을 수 없는 가치도 있는 법인데 어찌됐든 사면 손해라고 하니 고민이었다.

우리는 형편에 맞지 않는 이 땅의 매력에서 한동안 벗어나지 못했다. 그만두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 할수록 짙푸른 차밭과 단자와(丹澤)의 풍경이 떠올랐다. 그래서 우물에서 지하수를 개발하려면 얼마가 드는지, 단단한 차고를 허무는 데는 얼마가 드는지 계산하면서 부동산중개인과 가격협상을 시작했다. “오늘도 그 땅을 보러 오신 분이 있었어요. 그 밖에도 매수 의사를 밝히신 분이 두 분 정도 더 있어요.” 중개인은 우리와 가격 교섭을 진행하는 동안에도 자꾸 압박을 가했다. 빨리 결정하지 않으면 가로채인다고! 하지만 속아서 사게 되면 어떡하지 하는 진위를 알 수 없는 불안에 사로잡혀, 우리는 협상을 질질 끌면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너무나도 순진하다고 반쯤 성을 내면서 부동산중개인 친구가 알려준 노하우는 다음과 같다.

ㆍ 집착하지 마라. 집착한다는 것을 상대가 알아채면 약점을 잡혀서 바가지를 쓰게 된다.

ㆍ 가격 협상을 할 때는 ‘절충이 안 되면 안 산다’고 느낄 정도로 세게 압박하라.

ㆍ 한계치일 거라고 생각한 가격에서 한발 더(!) 나가라. 상대방이 최저 가격을 제안해 올 때까지.ㆍ 100만 엔을 버느라 들인 수고를 생각한다면 100만 엔을 깎는 노력을 아끼지 마라.



가격을 깎는 협상은 늘 내 몫이었다. 참으로 괴로운 일이었다. “남편은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이 땅을 사기가 어려워요. 아, 예산에서 이렇게 초과해버리면……” 하며 부동산중개인에게 앓는 소리를 하기도 했다. 딱히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어서 말을 하다 보면 때때로 이렇게 상대를 거세게 밀어붙이기도 한다. “이렇게 조건이 나쁜데 이 가격은 너무 높잖아요? 땅을 산 다음에 이것저것 정비하는 데 이렇게 돈이 많이 드니 말이에요. 그걸 포함하면 모두 얼마지요? 그것까지 부담해야 한다면 아무도 이 땅을 사려고 안 할걸요.” 여자가 이런 말을 하면 신경질적으로 들릴 테니, 사실 나도 이렇게까지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화로 부동산중개인과 이런 대화를 나눈 다음 몰려왔던 피로와 씁쓸함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나는 이런 교섭을 즐긴다고 할 만한 담력은 갖고 있지 않았다. 말이 지나쳐서 좋은 땅을 못 사게 되는 것은 아닐까. 얼토당토않은 구두쇠로 보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오히려 속이 까맣게 타들어가곤 했다. 상대가 제시하는 가격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사실과 부동산중개인과는 인간적인 교제가 불가능한 것이 괴로웠다. 그러나 물건에 따라서는 때때로 큰 폭으로 가격을 깎을 수 있다는 것을 나중에 배우고 나서 뻔뻔함이 늘었다. 어쨌든 힘든 가격 협상을 계속한 보람이 있어 땅값을 3분의 2 수준까지 깎았다.

그사이에 줄곧 그 땅만 생각했더니 애착도 점점 더 강해져서 이 정도면 결정해도 되겠다 싶었다. 단자와의 산에서 아이들과 들놀이하는 몽상에 젖고 가까운 숭어 낚시센터에 질리도록 가게 되리라는 이야기를 나눈 끝에, 우리가 이 땅과 인연이라고 여기고 계약하기로 드디어 결론을 내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 부동산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죄송합니다. 그 땅의 오른쪽이 조금 전에 팔리고 말았어요.” 나는 무슨 말을 들은 건지 어리둥절했다. “땅 주인이 손님과의 협상을 기다리다 지쳐서 직접 손님을 모시고 왔습니다. 그 자리에서 현금을 지불하고 계약했다고 하네요. 죄송합니다. 또 좋은 땅이 나오면 소개하겠습니다.”

‘지금 땅이 팔렸다고 말한 거야? 방금 우리가 이 땅을 사기로 마음먹었는데…….’ 확신이 들 때까지 검토에 검토를 거듭하고, 돌다리를 두드리고 또 두드리다가 결국 깨버린 순간이었다. 며칠 뒤, 충격에서 헤어날 수 없었던 우리는 미련을 못 버리고 그 땅을 찾아갔지만 그곳은 이미 가능성으로 가득 찬 공터가 아니었다. 고철이 된 폐차가 한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우리였다면 위쪽으로 뻗은 단자와의 산과 발아래 차밭을 조화롭게 살려 생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어물어물하는 사이에 그만 폐차 집적소가 되고 말았다. 지금도 그 안타까운 풍경을 잊을 수 없다.



운명의 땅



시행착오를 거듭한 가운데 배운 점 하나는, 모르는 것은 부동산중개소에 직접 물어보라는 것이다. 나는 곧바로 미나미보소의 물건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두 가지를 적어 메일을 보냈다. “평지는 얼마나 되나요? 농지 매매가 가능한가요?” 그러자 곧 이런 답장이 왔다. “평지는 2,500평 이상입니다. 농지는 집에 거주하기만 하면 취득할 수 있습니다.” 이를 본 남편은 평소에도 크고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면서 소리쳤다. “오오, 넓은데! 그러고도 포르쉐 가격이야? 현실적이잖아. 일단 보러 갈 만한 가치는 있군!”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면서도 나는 왠지 주춤했다. ‘정말 그 집에 살기만 하면 농지를 취득할 수 있나? 미나미보소 시는 보소반도의 남쪽 끝인데. 너무 멀지 않나? 그리고 너무 넓지 않을까? 가격이 너무 싼 것도 이상하잖아?’

물건을 찾는 동안 또 하나 배운 것은, 답변은 사태의 심각성이나 중요성이 반감되어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었다. “일단 구경이라도 하자고, 어쨌든 8,700평이잖아! 인프라도 완비된 상태이고!” 당시 ‘사용 여부를 알 수 없는 우물 있음. 상수 없음’ 혹은 ‘폐가 있음. 현 상태 인도’ 등의 물건을 계속 보아온 탓인지 남편은 넓은 데다 인프라까지 갖춰져 있다는 설명에 눈이 휘둥그레져서 말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긴 하다. 우리는 곧바로 부동산중개소와 약속을 잡고 이틀 뒤 이른 아침에 현지로 향했다.

물건 매도인이 한 달에 몇 차례씩 와서 농지와 집을 관리하고 있는데 부동산중개인이 열쇠를 보관하고 있어서 집 안에도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정말로 즉시 입주가 가능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농가가 아닌데 정말로 농지를 살 수 있는지, 가장 궁금해하던 것을 직접 확인했다. 택지처럼 바로 등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절차를 밟아서 진행하면 된다는 시원시원한 답변이 돌아왔다.

답변이 명쾌하다고 해서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은 아니다. 도대체 그 ‘절차’란 무엇인지 궁금했지만 자세한 내용은 땅을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며 너글너글 웃는 중개인의 빨간 차를 일단 따라갔다. 길가에 상점이 사라지고 차츰 전원 풍경으로 바뀌어가는 모습에 우리는 마음을 빼앗겼다. 마치 지브리 만화영화의 한 장면 같은 풍경에 차츰 기분이 고조되었다. 여태껏 보아온 물건은 대개 외진 곳에 있는 잡종지였기 때문에 이곳에서 농지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고 있는 땅을 보니까 어쩐지 늠름해 보였다.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지키고 있는 땅. 동경인 듯 경외인 듯한 마음을 끌어안고 나는 차창을 계속 내다봤다. 두 대의 자동차는 헤구리가와라는 가느다란 하천을 따라서 난 현도(縣道)를 달리다가 이윽고 그 강을 훌쩍 건너서 조그마한 산골짜기(정말 조그마한 산이다)의 아담한 마을로 들어섰다. 파릇파릇 반짝이는 밭 사이를 누비며 달리다가 오른쪽으로 돌아 더 이상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 방향을 전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곳까지 이어지는 농로를 올라가자 막다른 곳에 덧문이 잠겨 있는 인가가 한 채 서 있었다. 중개인의 빨간 차가 그 집 앞에 조용히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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