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을 맞잡으면 따스하다
야마모토 카츠코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손을 맞잡으면 따스하다
야마모토 카츠코 지음
매일경제신문사 / 2013년 1월 / 208쪽 / 12,000원
제1장 당신이 아프면 나도 아프다
코끼리 똥과 설계도
아프리카에 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본 코끼리는 아주 크고 다정한 눈을 갖고 있었다. 여행 일정에는 걸어서 숲을 보는 투어가 있어서, 숲 속 코끼리의 식사장소에 갈 수 있었다. 코끼리의 식사장소는 지면은 질척질척한 늪처럼 되어 있고 큰 나무는 껍질이 벗겨지거나 쓰러져 있어 심각한 상황처럼 보였다. 내가 보기에 그 모습은 숲을 망가뜨리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다정한 코끼리가 사실은 숲을 파괴해버리는 존재가 아닌가 하고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운전사 큐리 씨에게 “코끼리는 숲을 파괴하나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큐리 씨는 “노-”라고 하더니 “코끼리는 숲을 만들어요”라고 대답했다.
코끼리는 음식을 섭취하자마자 바로 소화가 안 된 상태의 똥을 싼다고 한다. 때문에 코끼리가 먹은 단단한 열매의 씨는 소화되지 않고 남아, 똥을 영양분으로 해서 계속 커가는 것이다. 실제로 투어하면서 똥에서 싹이 나는 장면을 많이 봤다. 그리고 코끼리의 똥이 똥의 형태 그대로 반쯤 흙이 된 것도 봤다. 또한, 코끼리의 똥은 흰개미의 개미 무덤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산양이나 가젤, 누(아프리카산 솟과에 속하는 대형 영양), 얼룩말 등의 초식동물은 코끼리의 똥에서 피어난 작은 풀을 먹고 있었다.
개미 무덤의 개미를 먹는 작은 육식동물도 있었다. 책에 따르면 초원의 풀조차 넓은 이파리 부분, 줄기 부분, 뿌리 부분으로 먹는 부분이 모두 구분되어 있다고 한다. 모든 동물들이 정말 쇠사슬처럼 서로 이어져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근원이 되는 것이 코끼리의 똥이었다.
코끼리의 똥만이 아니다. 떨어진 풀잎 등도 흙이 된다. 동물의 시체도 하이에나가 먹고 난 후 분해되어 흙이 된다. 죽은 동물도 모두 흙으로 변한다. 그리고 또다시 풀이 나고 생명의 근원이 된다. 숲의 잎사귀도 가을이 오면 낙엽이 되고 그것이 썩어 흙이 된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곤충, 식물 등 만약 생명이라는 것에 끝이 없다면 이 지구는 동물과 식물로 가득 찰 것이다. 똥도 나무도 그리고 동물도 모두 생명의 근원인 흙으로 변한다는 것은 이 얼마나 신비로운 일인가.
제2장 마음에 눈을 맞추고, 마음에 귀를 기울여라
유전자에는 사랑이 들어 있다
어느 날의 일이다. 첫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나처럼 벌레나 식물을 아주 좋아하는 사토미가 “갓코 선생님, 잠깐 이리 와보세요”라며 온실로 불렀다. 온실의 야자나무에는 벌이 벌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무서우니까 없애고 싶지만, 관찰하고 싶어요”라고 사토미가 말했다. 보통은 학교에서 벌집을 발견하면 위험하기 때문에 없애겠지만, 관찰하고 싶다니…. 나는 이 일의 결정을 나중으로 미뤘다.
첫 수업이 끝난 후, 온실로 간 나는 깜짝 놀랐다. 멋진 호리병 모양의 벌집이 만들어져 있었다. 단 45분의 수업시간 사이에, 마치 녹로를 사용해 만든 것 같은 아주 훌륭한 호리병 모양의 벌집이었다. “대단한 장인이에요. 순식간에 만들어버렸어요”라고 사토미가 알려주었다. 두 번째 수업시간인 과학 수업 때 인터넷에서 호리병벌에 대해 알아봤다. 그러다가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호리병벌은 자신이 살기 위해서가 아닌 아기 벌들을 위해 집을 짓는다는 내용이었다.
호리병벌의 유충은 태어나기 전에 이미 어미 벌에 의해 벌집에 넣어진 나방의 유충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따로 엄마 벌과 만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렇게 멋지고 훌륭한 호리병 모양의 벌집을 만드는 방법은 누구에게서도 배우지 못한다. 배우지 않아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다. 꼼꼼하게 벌집을 만들어서 태어나게 될 아이의 먹이로써 나방의 유충을 많이 가져와 벌집 속에 넣고 거기에 뚜껑을 덮는다. 아마도 개미 같은 외부의 적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최초의 호리병벌 유전자 속에 입력되어 있는 것 같다.
호리병벌은 해야 할 일과 그 방법을 누군가에게서 배우지 않아도 태어났을 때부터 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인간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유전자에 담겨진 사랑을 알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이 원시뇌를 활발히 만들어 하느님과 이어지게 하는 것 같다. 학교의 호리병벌도 벌집을 만든 후, 부지런히 나비나 나방의 유충을 그 안에 옮기기 시작했다. 벌집 안을 들여다보니, 큰 녹색 애벌레가 들어있었다. 그 애벌레도 살기 위해 필사적인 것 같았다. 도망치려 했는지 벌집에서 몸이 반쯤 나와 있었다. 사토미는 그것을 보고 그 애벌레를 살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갓코 선생님, 이거 살려줘도 돼요?” 사토미가 이렇게 물은 이유는 나도 사토미와 같은 생각을 한 것을 알아서였지 않았을까? 가능한 자연의 일에 사람의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 모습 그대로가 가장 좋은 방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 나는 잡힌 애벌레는 불쌍할지 모르지만, 엄마 벌의 세포 속 유전자에서 끓어오르는 아이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곤충이나 동물은 아마도 우리들보다 큰 힘을 가져 우주와 이어지는 것을 아주 잘하는 것 같다. 어느 TV에서 보름달이 뜨는 날 복어와 게가 일제히 산란하는 모습이 방영되고 있었다. 복어는 보름달이 뜨면 수면이 까맣게 될 만큼 파도가 치는 곳에 다 모여들어 한꺼번에 산란을 시작한다고 한다. 왜 보름달이 뜨는 밤 한꺼번에 산란을 하는 것일까?
복어도 게도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그 순간 알을 낳게 되는 것이겠지만, 그것이 자신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커다란 마음에 안기듯 산란을 시작하는 것, 이것도 아주 신기한 일이다. 많은 알이 한꺼번에 태어남으로써 그 알을 노리고 있는 새나 다른 물고기가 아무리 많은 알을 먹더라도 다음 세대로 자손을 충분히 남길 수 있을 만큼의 알이 남는다. 우연이라고 생각하기에는 어려울 것 같다.
학교 과학 수업에서도 이 이야기를 한다. 교실에 명란 삶은 것을 가져갔다. 다루기 쉽고 나중에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도대체, 명란은 알이 몇 개나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세보면 알아요”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그중 “엄청나게 많은 숫자가 될 테니까 전부 세는 것은 힘들어요”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때, 타카시가 “10g만 재서 그 안에 몇 개 있는지 세보면 전체의 무게를 쟀을 때 전체의 수를 대략 알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실제로 세보니 엄청난 수의 알이 산란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와. 이렇게 많이 태어나서 크는 건가?”라고 묻자, 아이들은 “그렇게 되면 바다 속이 대구 천지가 돼서 다른 물고기들이 곤란해져요. 아마도 어른 대구가 되는 건 좀 더 적을 거예요”라고 알려줬다. “도대체 몇 마리가 남으면, 전체적으로 대구의 수가 늘거나 줄지 않을까?” 아이들은 그건 어른 대구의 숫자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남은 알은 다른 생명체가 살기 위해 아주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먹힐 것을 전제로 해서 많은 수의 알이 나오기 때문에 모두가 먹히는 일이 없도록 되어 있다.
보름달이 뜬 날에 복어가 알을 낳으려는 것과 호리병벌이 호리병 모양의 벌집을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은 그 종이나 그 개체가 잘 돌아가기만을 위한 게 아니라 우주 전체가 가장 좋은 상태가 되기 위한 것이 틀림없다. 배추흰나비는 양배추나 유채꽃에 알을 낳고, 호랑나비는 귤이나 산초나무에 알을 낳는다. 나비나 나방 모두가 같은 양배추에만 알을 낳지 않고, 낳는 곳이나 먹는 부분을 서로 구분한다. 그래서 나비와 나방 모두가 함께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것도 아마 커다란 힘, 우주의 사랑일까? 우리들의 유전자 속에도 하느님이나 우주와 이어지는 힘을 갖고 있어서 그 큰 사랑에 항상 감싸여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되자 나는 너무 행복해진다.
제3장 모두 행복하다
‘좋다’는 것은 기쁘다는 것이다
여름방학 동안 흥미로운 실험을 한 학생이 있었다. 작은 용기에 밥을 담아 한쪽에는 ‘고마워’ 또는 ‘정말 좋아’라는 말을 쓰고, 다른 한쪽에는 ‘너무 싫어’ 또는 ‘죽어’라는 말을 쓴다. 그리고 각각 용기에 같은 말을 반복했을 때 밥의 부패 상태에 관해 조사한 실험이었다. 준비한 용기에 세균이라도 들어가면 실험에 차질이 생기기 때문에 용기를 세 개씩 준비해 관찰한다. 나는 속으로 ‘와아, 이거 어엿한 연구원인걸, 굉장하네’라고 생각했다. 실험결과 ‘고마워’나 ‘정말 좋아’라고 쓴 용기는 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지만, ‘죽어’나 ‘너무 싫어’라고 쓴 용기는 어느 것이나 새까맣게 되어 심한 악취가 났다고 했다. 사진을 보니 그 차이는 명확했다. 이 실험결과를 과학적으로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밥알 한 톨 한 톨도 진심으로 ‘좋아해’라는 말을 들으면 기뻐하고, ‘싫어해’라는 말을 들으면 사라져버리고 싶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밥의 부패 실험결과를 보고, 카오리라는 여자아이가 생각났다. 우리가 만난 것은 카오리가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카오리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서 말을 할 수 없는 아이로, 웃거나 우는 일도 거의 없었고, 남들과 좀처럼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혼자 교실에 오도카니 서 있는 아이였다. 나는 카오리와 만나기 전에도 여러 장애아동과 지낸 경험이 있었다. 입이 마비되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좀처럼 쉽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입에 물고 있는 젓가락 끝으로 두 시간 가까이 타자기를 치며, ‘커피를 마시고 싶어’, ‘저 가게에서 이런 물건을 사고 싶어’ 하며 열심히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것을 봐왔다. 그런 경험이 있었기에 구강 기능에 문제가 없는 카오리가 말을 하지 않는 게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어, 카오리에게 “‘아’라고 해볼래? ‘이’ 하고 말해볼래?”라며 어떻게든 입을 열게 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정말로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다. 카오리는 ‘그런 건 지금껏 천 번도 더 했어’라는 태도로 “후우” 하고 한숨을 쉬고, 입모양을 ‘아’라든가 ‘이’라는 형태로 만들었다. 그러나 입에서는 숨이 새어나올 뿐 소리가 나는 일은 없었다. 카오리 어머니는 부모님과 주고받는 연락장에 이렇게 쓰셨다.
“이 아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저는 ‘한 번이라도 좋으니 오로지 나를 ‘엄마’ 하고 불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책을 읽어도 초등학생 때 입 밖으로 말이 안 나오면, 그 이후에 말을 하는 경우는 없다고 합니다. 카오리는 벌써 중학교 2학년입니다. 이제 말을 하게 되는 일은 없겠죠. 하루는 번화가에서 길을 잃은 카오리가, 누군가 도와줄 사람을 찾으려고도 하지 않고, 대각선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오도카니 서 있는 모습을 봤을 때, 저는 이제 카오리가 엄마라고 불러주는 날은 없을 거라고 확실히 깨달았어요. 저는 이제 카오리가 말을 해주길 바라지 않습니다. 말하는 연습은 카오리에게 상처를 주고 선생님을 실망시킬 뿐이니 이제 절대로 하지 말아주세요.”
나는 이 글을 읽으면서 어머니가 얼마나 고심하며 카오리를 키워왔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말하는 연습으로 인해 카오리와 나와의 사이가 혹시라도 나빠지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그 이후로는 카오리에게 말해보라고 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나는 카오리와 함께 지내며 이 애가 참을 수 없을 만큼 귀엽다고 느껴졌다. 카오리 역시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카오리는 늘 내 곁에 붙어 가만히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차츰 내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어느 날 교탁 위에 놓여 있던 두꺼운 책이 우연찮게 툭 하고 밑으로 떨어졌다. 카오리의 깜짝 놀란 얼굴을 보고 나는 “아아!” 하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물끄러미 내 얼굴을 보고 있는 카오리가 천천히 입을 열어 “아아” 하고 따라 한 것이다. 나는 기뻐서 “카오리가 말했어. 카오리가 말했어!” 하며 그 주위를 빙빙 뛰어 돌아다녔다. 욕심이 난 나는 다시 한 번 카오리에게 ‘이’라고 말해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카오리가 다시 내 얼굴을 가만히 보곤, ‘이’ 하고 말했다. 나는 “있잖아, 카오리. ‘엄마’라고 해봐. 엄-마” 그랬더니 카오리는 내 얼굴을 가만히 보며 천천히 “엄-마” 하고 말해주었다. 나는 ‘카오리 어머니에게 알려드려야 해. 전화나 연락장으로는 안 믿으실지도 모르니 직접 만나 알려드려야겠다’라는 생각에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일이 있는데 찾아 봬도 괜찮겠습니까?” 하고 전화를 드렸다.
그날 어머니는 저녁식사까지 준비하시고 나를 기다려주셨다. 즐거운 이야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나는 선뜻 카오리가 말을 했다는 사실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카오리의 어머니가 “그런데 오늘 카츠코 선생님은 무슨 일로 집까지 와주셨나요?” 하고 물으셨다. 그래서 결심하고 “어머님, 오늘 카오리가 말을 했어요”라고 알려드렸다. 그러나 그 말이 끝나자마자 어머니의 얼굴 표정이 확 일그러지며, “선생님에게 부탁드렸었죠. 전 카오리가 말하게 되길 조금도 바라고 있지 않다고요. 말하는 연습을 하는 건 카오리를 고통스럽게 할 뿐이에요. 절대로 더 이상은 하지 말아 주세요.”
놀란 나는 “기다려주세요. 정말입니다”라고 진심을 전하려고 했다. 카오리 어머니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카오리, 어머니를 불러볼래? ‘엄마’ 하고 불러봐.” 카오리는 천천히 어머니를 향해서는 가만히 어머니의 얼굴을 응시하다 응석부리듯이 불렀다. “엄-마.” 어머니의 눈에 순식간에 눈물이 맺히며 똑똑 떨어졌다. “카오리, 고마워. 카오리, 고마워” 하며 어머니는 오랫동안 카오리를 꽉 안았다. 그리고 내게 “선생님이 카오리를 귀엽게 생각해주시는 그 마음과, 카오리가 선생님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중학교 2학년이라는 지금 이때에 기적을 일으켰습니다” 하고 말하셨다. 나는 ‘기적’이라는 과찬에 무척 놀랐지만, 아아, 그랬었구나 하고 깨달았다. 맨 처음 카오리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아’ 하고 해볼래”, “‘이’ 하고 해볼래”라고 해도 카오리는 말하지 않았는데, 왜 지금은 가능한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사람이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한다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서로 좋아하게 되고, 상대가 내 생각을 듣고 싶게 되거나, 자신의 생각을 들어주길 바랄 때, 사람은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역시나 생각한 것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은 기뻐한다”라는 점이다. 쌀 한 톨조차도 “정말 좋아해”라고 들으면 기쁘다.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세포도 틀림없이 “정말 좋아해”라고 하면 기뻐할 것이다.
‘기쁨’이란 분명히 신에게 받은 선물로, 우리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지니고 있는 보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어릴 적 팔을 벌려 기다려주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계신 곳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 기어가고, 걸을 수 있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가 막 ‘기어가기’를 시작했을 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팔을 벌리고, “자아, 이리오렴” 하고 기다려주었기 때문에 아기는 기어가고 싶다고 생각했을 것이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아장아장 걸을 때 “와아, 걸었네. 걸었어” 하고 기뻐해주기 때문에 걸을 용기가 생긴 것이다. 물론 그것만으로 기거나 걷거나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우리에게 있어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은 기쁘다’라는 사실은 정말 보물처럼 소중한 것 같다.
제4장 당신이 있기에 행복하다
만나는 사람 모두가 소중하다
사람이 단단하게 서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일로 ‘만남’이라는 것이 있다. 나는 항상 누군가를 만나면 그건 오랜 시간의 흐름 속에서, 넓은 우주 안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하기 때문에 분명 신이 만나게 해주신 거라고 생각한다. 정말로 ‘왜 사람은 만나게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만남은 마치 마법 같다는 생각이 든다. 만남의 마법은, 일상생활 여기저기에 끼워 넣어져 있다. 예를 들면,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르는 슈퍼마켓이나 전철에도 그런 마법이 가득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