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지음 | 문학동네
흐르는 강물처럼
파울로 코엘료 지음
문학동네 / 2008년 10월 / 327쪽 / 12,000원
방앗간집에서의 하루요즘 내 삶은 서로 다른 세 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교향곡과 같다. 각 악장에 제목을 붙이자면 다음과 같다. <많은 사람들과>, <몇몇 사람과>, <아무도 없이>. 이 세 악장은 일 년 동안 각각 넉 달씩 연주된다. 가끔씩은 한 달 동안 세 악장이 번갈아 연주되는 경우도 있지만 중복되는 경우는 없다. <많은 사람들과>는 독자나 출판 관계자, 저널리스트들과 함께하는 시간이다. <몇몇 사람과>는 브라질에서 옛 친구들을 만나고, 코파카바나 해변을 거닐고, 드문드문 모임에 얼굴을 내미는 때다. 남는 시간은 대부분 집에서 보낸다. 오늘도 <아무도 없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곳 피레네 지역 마을에 사는 이백여 명의 주민들 머리 위로 어스름이 내리고 있다.
얼마 전 나는 이곳에서 방앗간을 개조한 집 한 채를 샀다. 매일 아침 닭 울음소리에 깨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소와 양 떼들을 지나 옥수수밭과 초원 사이를 거니는 것이 내 일과다(<많은 사람들과>와는 완전히 딴판인 생활이다). 이곳에서 나는 내가 누구인가를 잊는다. 질문도 답도 없이 온몸으로 순간을 살고, 일 년에 사계절이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확인하며(명백한 사실이지만, 가끔 우리는 그걸 잊을 때가 있다) 나를 둘러싼 자연과 하나가 되어간다. 이때의 나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여느 시골사람처럼 내게 가장 중요한 뉴스는 일기예보다. 시골사람이라면 누구나 비, 바람, 추위에 민감하게 마련이다. 그들의 삶과 일정, 수확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어 있는 것이니까. 산책길에 들판에서 일하는 농부와 마주치면 인사를 주고받고, 날씨에 대해 몇 마디 나눈 뒤, 각자 하던 일로 돌아간다. 농부는 밭을 갈고, 나는 산책을 하는 것이다.
점심때가 되어 가벼운 식사를 하고 나면 불현듯, 오래된 건물 안의 어느 방에 놓인 기이한 물건이 시야에 들어온다. 기적 중의 기적, 초고속 통신에 연결된 모니터와 자판이다. 나는 알고 있다. 전원을 켜는 순간, 또다른 세상이 내 앞에 나타나리라는 걸. 그것을 가까이하지 않으려고 가능한 한 버텨보지만, 어느새 내 손가락은 전원을 누르고, 나는 또다시 세상과 브라질 신문, 책, 인터뷰 일정,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뉴스, 청탁 건, 비행기 표가 내일 도착한다는 연락, 연기하거나 급히 처리해야 할 사안들에 접속한다. 나는 몇 시간 동안 부지런히 일한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고, 이를 통해 나 자신의 신화를 이루었고, 거기엔 책임과 의무가 다르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도 없이>가 연주되는 동안은 모니터 위의 모든 것이 아득히 멀어 보인다. <많은 사람들과>, 혹은 <몇몇 사람들과>가 흐르는 때, 방앗간집에서의 시간이 꿈결처럼 느껴지듯이.
해가 지고 전원을 끄면 어느덧 세상은 다시 풀 내음과 소 울음소리, 방앗간집 옆 우리로 양 떼를 모는 양치기의 소리만 메아리치는 시골마을이 된다. 나는 궁금해한다. 전혀 다른 두 개의 세상이 내 삶의 하루 동안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그것이 내게 크나큰 기쁨을 준다는 것, 이 글을 쓰는 동안 내가 아주 행복하다는 사실 외에는.
연필 같은 사람할머니가 편지 쓰는 모습을 지켜보던 소년이 문득 물었다. "할머니, 우리 이야기를 쓰고 계신 거예요? 혹시 저에 관한 이야기인가요?" 할머니는 쓰던 손길을 멈추고 손자에게 대답했다. "그래, 너에 대한 이야기지. 하지만 무슨 이야기를 쓰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쓰고 있는 이 연필이란다. 이 할머니는 네가 커서 이 연필 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소년은 의아한 표정으로 연필을 주시했지만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은 없었다. "하지만 늘 보던 거랑 다를 게 하나도 없는데요!" "그건 어떻게 보느냐에 달린 문제란다. 연필에는 다섯 가지 특징이 있어. 그걸 네 것으로 할 수 있다면 조화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게야. 첫번째 특징은 말이다, 네가 장차 커서 큰일을 하게 될 수도 있겠지? 그때 연필을 이끄는 손과 같은 존재가 네게 있음을 알려주는 거란다. 명심하렴. 우리는 그 존재를 신이라고 부르지. 그 분은 언제나 너를 당신 뜻대로 인도하신단다.
두번째는 가끔은 쓰던 걸 멈추고 연필을 깎아야 할 때도 있다는 사실이야. 당장은 좀 아파도 심을 더 예리하게 쓸 수 있지. 너도 그렇게 고통과 슬픔을 견뎌내는 법을 배워야 해. 그래야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게야. 세번째는 실수를 지울 수 있도록 지우개가 달려 있다는 점이란다. 잘못된 걸 바로잡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오히려 우리가 옳은 길을 걷도록 이끌어주지. 네번째는 연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외피를 감싼 나무가 아니라 그 안에 든 심이라는 거야. 그러니 늘 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렴. 마지막 다섯번째는 연필이 항상 흔적을 남긴다는 사실이야. 마찬가지로 네가 살면서 행하는 모든 일 역시 흔적을 남긴다는 걸 명심하렴. 우리는 스스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늘 의식하면서 살아야 하는 거란다."
사랑, 그것이면 충분하다한 일본 기자가 질문했다.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입니까?" 늘 받던 질문이어서 나는 평소대로 대답했다. "조르지 아마두,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윌리엄 블레이크, 헨리 밀러입니다." 통역자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헨리 밀러요?" 그녀는 이내 질문을 던지는 건 자신의 본분이 아님을 깨닫고 통역을 계속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 나는 그녀에게 내 대답에 왜 그렇게 놀랐느냐고 물었다. 혹시 헨리 밀러가 '정치적으로 올바른' 작가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냐고. 어쨌든 그는 내게 거대한 세상을 열어준 사람이고, 그의 작품에는 현대 문학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에너지와 생명력이 담겨 있다. "헨리 밀러가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저도 무척 좋아하는 작가인걸요." 통역자가 대답했다. "그가 일본 여자와 결혼했던 건 아시나요?" 알다 뿐인가. 나는 팬으로서 한 작가와 그의 삶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싶어하는 게 결코 부끄러운 태도라고 생각지 않는다. 내 경우만 해도 그렇다. 나는 조르지 아마두를 만나겠다는 일념만으로 도서전에 간 적도 있고,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만나고자 마흔 여덟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간 적도 있다(그 만남이 제대로 성사되지 못한 건 순전히 내 탓이다. 막상 그를 만나자 얼어붙어서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했다). 심지어 헨리 밀러를 찾아 빅서에 갈 계획을 세우기도 했지만, 여행 경비를 다 모으기도 전에 밀러는 세상을 떠났다.
"그 일본 여자 이름은 호키지요." 내가 으스대며 말했다. "도쿄에 헨리 밀러 수채화 미술관이 있다는 것도 알아요." "오늘 저녁에 그분을 한번 만나보실래요?" 뭐라고! 내가 존경하는 사람과 한때 함께 살았던 사람을 만나고 싶냐고?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불현듯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올 테고, 인터뷰 요청도 무수히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십 년 동안 헨리 밀러와 함께 산 사람이 아닌가. 그런 이가 고작 한 사람의 팬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싶을까. 하지만 통역자가 된다고 했으니 믿어보자. 일본 사람들은 허튼소리는 잘 안 하니까.
나는 그날 남은 시간 동안 대답을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택시에 오른 다음부터는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우리는 철로가 머리 바로 위로 가로지르는, 햇볕 들 일이 없을 듯한 어느 골목에 내렸다. 통역자는 낡은 건물 이층의 허름한 바를 가리켰다. 계단을 올라가니 바는 텅 비어 있었다. 그리고 거기 호키 밀러가 있었다. 나는 흥분을 감추기 위해 그녀의 옛 남편에 대한 찬사를 호들갑스레 늘어놓았다. 호키는 작은 박물관으로 꾸며놓은 뒷방으로 나를 안내했다. 방 안에 있는 것은 몇 장의 사진과 서명을 한 수채화 세 점, 헌사가 씌어진 책 한 권이 전부였다.
그녀가 헨리 밀러를 만난 건 로스앤젤레스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던 때였다. 당시 호키는 레스토랑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일본어로 번안된 프랑스 샹송을 불렀고, 그곳에서 저녁을 먹던 밀러가 그녀의 샹송을 마음에 들어했다(그는 파리에서 오랜 기간을 살았다). 두 사람의 외출이 몇 차례 이어진 어느 날, 밀러는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그녀가 그를 처음 만났던 그날처럼, 우리가 앉아 있는 바에도 피아노가 있었다. 호키는 밀러와의 결혼생활 중에 있었던 멋진 일화들을 들려주었다. 나치아로 인한 불화(밀러는 당시 쉰 살이 넘었고, 호키는 스무 살도 채 안 된 나이였다)와 함께한 시간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저작권을 포함한 전 재산은 밀러와 그의 전처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상속받았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그런 것은 그녀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와 함께한 세월은 값으로 따질 수 없는 것이니까.
나는 오래전 밀러와 처음 만난 그날, 그녀가 부른 샹송을 불러달라고 청했다. 그녀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엽>을 불렀다. 통역자와 나 역시 감동했다. 바와 피아노와 노래, 빈 공간에 울리는 일본 여인의 목소리. 호키는 대문호의 미망인이라면 으레 누리려 할 법한 것들에 초연했고, 밀러의 책이 벌어들이는 돈이나 국제적 명성을 이용하려 하지도 않았다. "유산을 두고 싸우는 건 의미가 없었어요. 사랑으로 충분하니까요." 헤어지면서, 우리의 속마음을 읽은 듯 그녀가 말했다. 나는 그녀를 믿는다. 그녀에게서는 어떤 비통함도 분노도 보이지 않았으므로. 그랬다, 사랑이면 충분했다.
마누엘은 없어서는 안 될 인물마누엘은 바빠야 하는 사람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는 불안하다. 삶의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시간을 낭비하는 것 같고, 사회가 그를 필요로 하는 것 같지 않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쓸모없는 존재가 된 기분이다. 그래서 그는 눈뜨자마자 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우선 TV 뉴스를 봐야 하고(어젯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신문도 읽어야 하며(어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이들이 학교에 지각하지 않도록 아내에게 주의를 준 다음, 자동차나 택시 혹은 버스나 전철을 탄다. 눈은 허공을 응시하고, 머릿속은 시종일관 바삐 돌아가고, 시계를 보거나 가능하면 휴대전화로 몇 통화를 하면서 자신이 얼마나 중요하고 쓸모 있는 인물인가를 만인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회사에 도착하기 무섭게 마누엘은 그를 기다리는 서류 더미에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든다. 그가 직원이라면 그는 사장에게 제시간에 도착했음을 확인시키고자 안간힘을 쓸 테고, 사장이라면 직원들이 즉시 업무에 착수할 수 있도록 재촉할 것이다. 중요 업무가 없으면 마누엘은 새로운 일거리를 고안하고, 창조하고, 기획안을 제안하고, 행동지침을 만든다. 시간이 되어 마누엘은 점심을 먹으러 간다. 그러나 그는 절대 혼자 식사하지 않는다. 사장인 마누엘은 친구들과 어울려 새로운 전략을 토론한다. 경쟁자를 헐뜯고, 비책을 감추고, 과다한 업무로 인한 부담을 약간은 우쭐거리면서 토로하기도 한다. 직원인 마누엘은 동료들과 둘러앉아 상사가 시키는 과중한 업무에 대한 불만을 나누고, 자기가 없으면 회사가 안 돌아간다는 점을 역시나 약간은 우쭐거리면서 역설한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마누엘은 오후를 꼬박 업무에 바친다(고용인이건 피고용이건 이 시간에 하는 일은 똑같다). 때때로 시계를 보기도 한다. 곧 퇴근할 시간이지만, 해결하지 못한 업무와 결재서류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는 정직한 사람이기에 월급값하기를 원하고, 다른 사람들의 기대, 특히 그를 키우느라 애쓴 부모의 꿈을 저버리고 싶지 않다.
드디어 마누엘은 퇴근을 한다. 몸을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가족들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숙제는 했는지, 아내에게 하루 종일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본다. 이따금 회사 이야기도 하지만, 본보기로 삼을 만한 일에 한해서다. 그는 회사일은 회사에서 끝내자는 원칙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훈계나 숙제에 시간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아이들은 식탁에서 물러나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달려간다. 마누엘도 어릴 적부터 보아온 텔레비전이라는 기계 앞에 앉아 뉴스를 본다(오늘 오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수도 있으니까). 잠자리에 들 때는 항상 침대 옆 탁자 위에 올려둔 기술 관련 서적을 읽는다. 사장이건 직원이건, 그는 격심한 경쟁사회에 살고 있음을, 긴장을 늦추는 순간 누구든 해고 위험에 빠지거나 '실업'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음을 결코 잊지 않는다. 잠자리에 들기 전 마누엘은 아내와 짧은 대화를 나눈다. 그는 가정을 돌보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는, 다감하고 건실하고 자상한 남자니까. 그는 금세 잠이 든다. 내일 역시 고된 하루가 기다리고 있으며, 재충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날 밤, 꿈속에서 천사가 그에게 묻는다. "자넨 무엇 때문에 그렇게 분주히 사는가?" 마누엘이 대답한다. "책임감 때문이지요." 천사가 다시 묻는다. "하루에 십오 분이라도 일을 멈추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세상과 자네 스스로를 돌아볼 수는 없나?" 마누엘은 그러고 싶어도 시간이 없다고 대답한다. "그럴 리가 있나." 천사가 응수한다. "누구에게든 시간은 있네. 용기가 없을 뿐이지. 노동은 축복이라네. 그것을 통해 우리의 행동을 돌아볼 수 있다면 말이야. 그러나 일에만 매달려 삶의 의미를 도외시한다면 그것은 저주야."
마누엘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난다. 아직 한밤중이다. 용기. 가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이 하루에 십오 분 멈출 용기가 왜 없는 것일까? 다시 잠이나 자야겠다. 꿈인데 뭐. 쓸데없는 질문이야. 내일 역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
우물 속의 여자모로코에서 온 사람들에게 들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사막에 사는 한 부족이 원죄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이야기다. 이브가 에덴동산을 거닐고 있는데 뱀이 다가와 말했다. "이 사과를 먹어봐." 신에게 가르침을 받은 대로 이브는 거절했다. 그러자 뱀이 우겼다. "먹어보라니까. 그래야 네 남자의 눈에 예뻐 보일 수 있어." 이브가 대답했다. "그럴 필요 없어. 그에겐 나 말고 다른 여자가 없으니까." 뱀이 비웃었다. "정말 그럴까?" 뱀이 믿으려 하지 않는 이브를 데리고 우물이 있는 언덕 꼭대기로 갔다. "이 우물 안에 그 여자가 있어. 아담이 여기 숨겨두었거든."
이브가 허리를 굽혀 우물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우물물에 비친 아리따운 여자를 보았다. 그녀는 즉시 뱀이 권한 사과를 먹었다. 부족 전설에 의하면, 우물에 비친 자신을 인식하고 더는 자기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다시 낙원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한다.
선방 고양이의 가르침광기에 관한 소설 『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를 쓸 때 나는 우리가 하는 일 중 정말로 필요한 일이 얼마나 될까,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했다. 이 세상엔 터무니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왜 우리는 넥타이를 매는가? 시곗바늘은 왜 오른쪽으로 돌아가는가? 십진법을 쓰는데, 왜 하루는 스물네 시간이고 한 시간은 육십 분인가? 실제로 우리가 따르는 규칙 중에는 오늘날에 와서는 별 의미 없는 것들이 많다. 그럼에도 좀 다르게 행동한다 싶으면 대번 '미쳤다'느니 '철이 덜 들었다'느니 하는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