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쉰 소설 전집
루쉰 지음 | -
▣ 독서 나침반Ⅰ - 개관 고전과 만나는 계기는 다양하다. 우연하게 눈에 띄었는데 알지 못할 힘에 끌리기도 하고, 대학입시를 준비하다 만나기도 한다. 글자로만 만나는 것도 아니다. 만화로도 만나고 영화로도 만나며, 요즈음은 컴퓨터 게임을 통해서도 만난다. 고전과 독자의 관계도 일방통행만은 아니다. 첨단의 멀티미디어 환경과 초국적 자본주의 체계는 고전을 더 이상 '순수의 영역'에 가둬 두지 않는다. 읽고 마음에 담고 실천하는 방식에서, 인터넷 게시판 소설이나 온라인 게임에서와 같이 읽고 다시 쓰고 변형하는 방식으로 고전이 소비된다. 고전이 안 읽힌다고 하지만 역설적으로 고전의 두루누리(유비쿼터스 : 어디서나 존재함)화가 진척되는 시대가 되고 있다.
고전과 만나는 계기와 방식이 다변화된 시대에, 전통적인 방식으로 고전을 대할 것을 주장하는 일은 고전을 죽이는 행위와 진배없게 된다. 실제로 많은 고전이 그렇게 죽어갔다. 고전의 장점은 그 자체에 시대와 지역을 초월한 절대적인 진리를 내장하고 있음에 있지 않다. 고전은 '카오스'일 따름이다. 모든 가능성이 발현되지 않은 상태로 담겨 있다. 독자는 저마다의 관심사와 필요를 갖고 고전에 들어가, 각자의 필요대로 답을 얻고 길을 찾는다. 고전이 안겨주는 삶과 사회, 인간에 대한 본원적인 통찰과 해석은 이렇듯 고전 바깥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고전은 일종의 미디어(매체)다. 혼자 있어도 빛을 발하고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존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와의 만남 속에서 그 가치가 확인되고 그 쓸모가 확산되는 존재이다.
루쉰(魯迅, 1881~1936)은 이런 면에서 꼭 짚고 넘어갈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중국현대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던 그는 중국에서뿐 아니라 중국 바깥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현대 중국 작가이다. 이는 그의 소설이 지닌 미디어로서의 뛰어난 성능 때문이었다. 실제로 중국인은 그를 통해 자신의 전통과 근대를 성찰했고, 일본인은 그를 통해 자신의 근대와 근대 너머를 사유했다. 저마다 자신의 문제를 갖고 들어와 그의 소설에 비추어보고 뭔가 답을 얻어갔다. '지금-여기'의 고민을 비쳐볼 수 있는 거울, 루쉰의 소설은 그래서 고전이 될 수 있었다.
『루쉰소설전집』에는 그가 평생 출간한 3권의 소설집이 모두 담겨 있다. 첫 번째 소설집은 『함성(訥喊)』이다. 여기에는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인 「광인일기」와 중국인의 본성을 날카롭게 해부한 「아Q정전」등 15편의 중단편소설이 실려 있다. 두 번째 소설집은 『방황』으로 여기에는 「축복」등 11편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세 번째 소설집은 『고사신편』이다. '옛 이야기를 다시 쓴다'는 제목의 이 소설집은 일반 민중에게도 친숙한 신화나 전설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 일색이다. 이 방식은 루쉰이 '고대와 현대에서 제재를 취하여 그들을 함께 얘기하는 방식'이라고 밝혔듯이 오늘날 우리가 고전을 대하는 태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고전은 늘 새롭게 쓰이고 만들어진다. 그건 콘크리트가 아니라 찰흙이다. 따라서 빚는 자의 의도에 따라 다양한 형상으로 빚어진다. 찰흙으로 작품을 빚어내는 마음. 고전은 마음에 있는 것이다. (김월회 서울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독서나침반 Ⅱ 루쉰은 1918년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인 「광인일기」를 필두로, 1935년까지 모두 33편의 단편소설을 창작하여 3권의 소설집으로 엮어 출간했다. 제1 소설집 『납함』은 1918년부터 1922년까지의 사이에 쓴 단편소설 15편(그 중에서「아큐정전」만이 유일한 중편이다)을 모아 1923년 8월 베이징의 신조사 출판사에서 출판하였다. 1926년에는 개판하여 북신서국에서 『오합총서』의 첫 책으로 출판하였다. 1930년 1월에 제13판을 낼 때에는 15편 중에서 「부주산」 1편을 빼내어 14편으로 하였고, 이 「부주산」은 후에 「하늘을 보수한 이야기」라고 제목을 바꾸어 제3 소설집인 『고사신편』에 수록했다. 제2소설집 『방황』은 1924년부터 1925년까지의 사이에 창작한 단편소설 11편을 모아 1926년 8월에 베이징의 북신서국에서 역시 『오합총서』의 하나로 출판하였다. 제3 소설집 『고사신편』은 1922년~1935년 사이에 창작한 단편소설 8편을 모아 1936년 1월에 상하이의 문화생활출판사에서 빠진이 주편하던 『문학총간』의 하나로 출판하였다. 루쉰의 작품으로는 소설 외에도 시, 산문, 수필, 평론 등이 있다. 1938년 최초로 『루쉰전집』 10권이 루쉰전집출판사에서 출판되었고, 그 후 여러 출판사에서 그의 전집이 출판되었다.
▶ 제1 소설집 『납함』
「자서」이 서문은 1922년 12월 3일에 소설집을 펴내기 위하여 쓴 것으로 자서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유년 시절부터 일본 유학, 그리고 소설을 쓰게 된 동기 등이 비교적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주인공에게 소설을 쓰게 한 사람인 진신이는 바로 그의 일본유학 시절부터의 친구인 첸센퉁으로, 그는《신청년》 잡지에 일찍부터 관계하였으며 문학 혁명의 기수로 활약하던 인물이다. 이 서문에서 5.4 운동 시기를 전후하여 그의 사상적 배경이 명확히 드러나 있다.
「광인일기」1918년 5월호인《신청년》제4권 5호에 발표되었다. 중국 최초의 현대소설이라는 점에서 중국현대문학사에서 획기적인 작품으로 간주된다. 또《신청년》으로서는 중국창작소설을 최초로 게재하였다는 것으로도 의의가 크다. 그때까지 중국소설은 문언체의 문인소설과 백화체의 장회소설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문인소설은 주로 단편으로 된 문언소설이고, 장회소설은 백화(白話: 중국에서의 구어체)로 된 장편소설이다. 장회소설이 비록 백화소설이라고는 하나 그 형식이 표제부터 고정화 되어 있어 천편일률이었다. 루쉰은 이러한 소설형식의 고정개념을 타파하고 새롭고 대담한 형식을 취했다. 또 형식면에서뿐만 아니라 내용면에서도 여태까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예교의 타파'를 주장하는 주제로 봉건 사회의 기본사상을 근본부터 흔들어 놓았다. 그는 한 광인의 입을 빌려 '예교'는 사람을 잡아먹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 소설은 수천 년 동안 봉건사회에서 '예교'라는 사상에 속박되어 있던 중국국민들의 기본사상을 뒤흔들어 놓아 독자들로 하여금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하였다. 그의 소설은 형식의 개혁뿐만이 아니라 내용에서도 대개혁을 일으켰다고 하겠다.
루쉰은 후에 「광인일기」를 쓰게 된 근거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아마도 의지가 되었던 것은 모두가 지난날에 보았던 100여 편의 외국작품과 의학상의 조그마한 지식이 있었고, 이 밖에는 준비가 전혀 없었다." 이 글로 보아「광인일기」는 서양소설에서 영향 받은 바 크다는 것을 알 수 있고, 특히 그가 일본유학 시절 심취했던 동구의 소설이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여겨진다. 루쉰은 이 한 편의 소설로 당시 문학혁명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신청년》그룹에 참가하게 되었고, 문학혁명운동의 대열에 나서게 되었으며,「광인일기」는 반봉건 사상의 대표적 작품으로 유명해졌다.
「작은 사건」1919년 12월 1일 베이징의 《신보》부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루쉰의 다른 어떤 작품보다도 밝은 작품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한 인력거꾼의 착한 마음을 묘사한 수필 같은 작품으로서 지극히 간단한 것이다. 루쉰의 작품은 거의 전부가 그렇다고 해도 될 만큼 사회의 어두운 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1928년 혁명문학파와의 논쟁에서 혁명문학파가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중국의 암흑만을 묘사하였을 뿐 광명의 희망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만큼 루쉰의 작품은 사회의 어두운 면이 강조되어 있다. 그런데 유독 이 작품만은 중국인의 밝은 면을 제시했다는 것으로 그의 작품 중 독특한 것으로 꼽히고 있다.
「고향」1921년 5월, 《신청년》제9권 1호에 발표되었다. 루신은 1919년 말에 고향에 돌아가서 시골집을 정리하고 전 가족이 북경으로 이사한 사실이 있는데, 당시 고향에 돌아갔을 때의 사실을 작품화한 것으로 여겨진다. 루쉰의 작품 중에서 그 구성이나 묘사법이 뛰어난 걸작 중의 한 편으로 꼽힌다. 이 작품에는 고향의 현재와 과거, 주인공 나와 어렸을 때의 친구 룬투와의 현재와 과거, 우리들 현시대의 좌절과 희망, 우리의 다음 세대인 조카와 룬투의 아들에게 거는 미래의 희망 등이 아름다운 수처럼 곱게 무늬진 작품이라고 하겠다. 지금은 좌절의 시대에 살고 있으나 미래에 대하여 어렴풋이나마 희망을 거는 내용으로 루쉰의 작품 중에서는 드문 묘사라고 하겠다.
「아큐정전」1921년 12월 4일부터 1922년 2월 12일까지《신보》부간에 주 1회 또는 격주로 연재 발표되었다. 루쉰의 소설 중에서 유일한 중편소설이며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전편이 9장으로 되어 있다. 중국의 농촌에서도 가장 하층의 인물에 속하는 날품팔이꾼 '아큐'라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신해혁명이라는 거대한 사회의 변혁기를 거쳐가는 우매한 중국인의 실상을 폭로하고 있다. 마을에서 가장 무력하고 비겁하면서도 남에게 모욕을 당하면 자기보다 못한 약한 자를 찾아 정신승리법이라는 자기도취에 빠지는 주인공 '아큐'는 바로 중국인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하겠다. 작품「아큐정전」에 대한 비평은 시대에 따라 변하고 있다. 1928년에 혁명문학파의 한 사람인 첸싱춘은 <아큐의 시대는 죽어버렸다>(1928년)는 논문을 써서 루쉰의「아큐정전」은 시대착오적인 작품이라고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혹자는 이 작품이 신해혁명기의 농촌의 실상을 정확하게 묘사한 걸작이라고 찬사를 보내는가 하면, 시대착오적인 작품이라고 비난하기도 하고 있다. 어떻든 당시의 문제작으로 크게 세상사람들의 주목을 끌었던 작품이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현대문학 연구가들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 제2 소설집 『방황』이 소설집은 1926년 8월에 출간되었는데 서문이 없고 다만 전국시대 초나라의 취위엔이 지었다는『초사』중 <이소> 편의 두 구절이 서문 대신에 실려 있을 뿐이다.『방황』이라는 제목에 대하여는 1932년 12월 14일에 쓴 <자선집자서>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비교적 정제된 재료를 얻게 되면 역시 단편소설을 썼다. 다만 유격병이 되어 포진을 이루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술은 비록 전보다 조금 좋아졌고, 생각도 비교적 구속됨이 없는 것 같았 으나 전투의 의기는 오히려 적지 않게 냉각되었다. 새로운 전우는 어디 있는가? 나는 이것은 매우 좋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리하여 이 시기의 작품 11편을 모아 인쇄하여 『방 황』이라 하고 이후부터 다시는 이렇지 않기를 바랐다. '길은 아득하여 그것은 멀고도 멀도 다. 나는 장차 오르고 내리며 찾아 구하고자 하노라.' 뜻하지 않게 이런 큰소리는 결국 그림 자도 없고 자취도 없게 되었다.]
위의 글로 보아 이 책의 제목은, '진리'를 찾으려고 '지적 방황'을 하던 시기여서 그 당시에 씌었던 작품을 이렇게 명명하였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 제2 소설집은 제1 소설집 『납함』과 비교하여 내용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할 수는 없겠으나 그 자신이 말한 것과 같이 창작의 기술상 매우 원숙하여졌음을 알 수 있고, 또 『납함』 시기의 충동적인 묘사보다는 매우 침착하고 내면의 세계를 표현하는 원숙함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 곳에서는 지식인을 주인공으로 다룬 작품이 전보다 많은 것이 눈에 띈다.
「복을 비는 제사」1924년 3월,《동방잡지》21권 6호에 발표되었다. 농촌의 가난하고 무지한 과부가 봉건사회의 윤리도덕의 희생물이 되어 결국은 죽음이라는 비극에 이르는 내용이다. 이 작품은 소설적인 기교가 매우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며 농촌을 소재로 한 루쉰의 작품 중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제1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들에 비하여 매우 냉정하고 침착하게 이야기를 전개시키고 있으며 과부의 처참한 생을 잔인할 만큼 냉철하게 추적하고 있다.「축복」이라는 제목은 소설의 내용에 나오다시피 우리가 보통 말하는 '축복'이 아니다. 중국 농촌, 특히 사오싱 지방에서 섣달 그믐에 부엌신을 하늘로 보내고, 새해에는 더 많은 복을 내려주십사 하고 비는 제례의 일종이다. 과거의 번역본에는 대부분이 원제목 그대로「축복」이라 했으나, 원 뜻을 살리기 위하여「복을 비는 제사」라고 번역했다.
「술집에서」1924년 5월, 《소설월보》 제15권 5호에 발표되었다. 루쉰의 소설 중 문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며, 1928년 혁명문학파와의 논쟁에서 상대방이 공격시에 가장 많이 거론했던 작품이다. 지식인인 주인공이 과거에 혁명운동에 가담하여 매우 열정적인 활동을 하였으나 지금은 세상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좌절과 실의 속에서 회의하는, 당시 지식인의 고뇌를 묘사한 작품이다. 화자인 내가 보는 주인공 뤼웨이푸는 루쉰과 친했던 친구인 판아이눙을 상징적으로 묘사한 것이며, 작가 자신이 그에게 가졌던 죄책감이 복합되어 이루어진 작품이라 하겠다. 1928년 창조사의 펑나이차오는 '예술과 사회생활'(1928)이라는 글에서 이 작품을 들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루쉰을 비난했다. "루쉰이라는 늙은 서생은 어두컴컴한 술집 다락에 앉아 술 취한 멍청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몰락한 봉건 정서나 추억하고 있는 혁명의 낙오자이다."
「비누」1924년 5월 27일, 28일 양 일간에 걸쳐 《신보》부간에 발표되었다. 이 작품은 풍자적 성격을 많이 띠고 있다. 자식에게는 새로운 시대의 학문을 익히게 하면서도, 또 새로운 문물의 혜택을 알면서도, 자기가 알고 자기에게 이해되는 시대의 산물에 연연하는 인간들을 풍자하고 있다. 루쉰 특유의 신랄한 풍자가 매우 짜임새있게 구성된 작품이다.
「고독한 사람」1925년 10월에 쓴 것으로 당시에 발표하지 않고 소설집으로 엮을 때 수록한 것 같다. 한 지식인이 격동기에 처하여 방황하다가 종당에는 자신의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죽는, 지식인의 고뇌를 묘사한 작품이다. 이 소설은「술집에서」와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주인공 '웨이리엔수'는「술집에서」의 '뤼웨이푸'와 동일형의 인물이다. 루쉰의 소설이 주로 체험적인 것으로 보아 모델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루쉰의 침울하고 무거운 분위기가 잘 묘사된 작품으로 수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죽음을 슬퍼하며」1925년 10월에 쓴 것으로, 발표되었던 것 같지는 않고 소설집으로 엮을 때 수록된 것 같다. 루쉰의 소설 중에서 구태여 '연애소설'을 고르라면 이 작품을 꼽을 수 있겠으나, 작품이 풍기는 분위기는 루쉰 특유의 무겁고 침울한 내용이다.「술집에서」나「고독한 사람」과 같은 유의 작품으로 지식인의 방황이 주제를 이루고 있다. 처가에서 반대하는 자유연애결혼, 실직, 아내의 가출, 죽음 등 좌절과 방황의 침울한 분위기가 예외 없이 묘사된 작품이다. 루쉰과 쉬꾸앙핑간의 동거생활의 면모가 다분히 보인다는 평도 있으나 그들의 동거는 1927년 10월부터이므로 시기적으로 보아 맞지 않는 설이다.
「이혼」1925년 11월에 썼으며, 같은 달에《어사》제 54기에 발표되었다. 봉건사회에서 농촌의 여인이 부당하게 이혼당한데 대하여 용감하게 반항하고 자기주장을 하나, 결국은 봉건사회의 권위구조에 의하여 굴복하고 만다는 내용이다. 봉건사회의 농촌 부녀자일지라도 남자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정정당당하게 항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작품이다. 소설작법상 매우 뛰어난 기량을 보인 작품으로 수작 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