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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나쓰메 소세키 지음 | -

▣ 독서 나침반Ⅰ - 개관


『마음(心)』은 일본의 국민작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 1867~1916)가 쓴 일본 근대문학의 최대 정전(正典)이다. 소세키는 도쿄제국(東京帝國)대를 졸업하고, 국비 유학생으로 2년간 영국 유학을 떠난다. 유럽권의 선진문명은 후진국 청년인 그에게 열등감과 고독감을 가져다 주었고 이러한 고뇌가 '자기 본위'라는 문학사상을 형성하는 토대를 이룬다. 도쿄데이코쿠대 교수직을 버리고 전문 작가가 된 것이나, 일본정부가 주는 박사학위를 거부했다는 '나쓰메 신화'는 그의 약력을 말할 때마다 따라다닌다. 게다가 그는 1970년대까지 맥을 이은 다이쇼 교양주의라는 지식인 문화의 산파역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외국 독자인 우리는 왜 그가 일본의 국민작가가 되었고 어떻게 이 작품이 그들의 정전이 되었는가 하는 점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즉, 소세키의 신화화와 『마음』의 정전화가 일본의 근대화와 어떤 상관관계를 맺고 있으며 그 현재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이 소설은 메이지 시대 말인 1910년대를 배경으로 하여, 도쿄제국대 학생인 '내'가 서술하는 '선생님과 나', '양친과 나', 그리고 '나'에게 보내는 '선생님'의 서간체 서술인 '선생님과 유서'의 상중하로 구성된다. 재산가의 외아들로 태어난 '선생님'은 청년기에 부모를 잃고 숙부에게 유산마저 사기당하면서 인간에 대한 불신감을 지니게 된다. 자신은 그런 무리와 다르다고 생각하던 '선생님'은 그러나 뜻밖에도 자신 속에 내재된 추악한 이기심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하숙집 아가씨에 대한 사랑 때문에 친구 K와 경쟁한 끝에 결국 K를 자살로 내몰고 만 것이다. 그러한 '선생님'의 그늘을 접하면서 한편으로는 그의 사상에 감화된 '나'는 '선생님'의 내면세계를 더 알고 싶어 하지만 '선생님'의 수수께끼와 같은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고백의 모티브로 이루어진 '선생님과 유서'에서 그 전모가 드러나는 서술 장치가 이 소설을 읽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데, 금전관계에 얽힌 인간 불신이 봉건적 가부장제를 해체하고 어떤 사유 체계를 부여하는가, 질투와 이기심으로 점철된 연애가 초래한 죄의식이 과연 근대적 주체의 성립을 보증하는가 하는 점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또한 '천황제' 국가의 이데올로기 장치가 여성을 남성에게 종속된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처럼 작가가 '사모님'에게 내면세계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음』의 정전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발표 후 90여 년이 지나도록 일본 독자와 더불어 작가 평론가 연구자에게 지지를 받았기 때문인데, 이는 이 작품이 근대소설의 '규범'이 될 만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의 갈등구조를 표출하는 장치로서 삼각관계의 연애에 담긴 남성중심주의적 근대, 당시 지식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도쿄제국대 출신끼리의 지적인 교류, 거기에 개입되는 인간에 대한 불신과 회복의 이야기가 일본의 근대상을 읽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으로 만들어 준 것이다. 한편 '메이지 정신을 위해 순사(殉死)'한다는 '선생님'의 유서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작품은 메이지 일왕의 죽음과 그에 따른 노기 대장이라는 군인의 순사를 기리고 있다. 이런 점에서는 메이지 시대의 윤리와 가치로 근대 일본을 규정하였다는 비판을 피해 가기 어렵다. (글쓴이 - 신인섭 건국대 일어교육과 교수)




▣ 독서 나침반 Ⅱ


나쓰메 소세키는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서, 현재 일본의 1000엔짜리 지폐를 장식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의 얼굴이다. 소세키는 생전에는 물론이고 작고한 이후에도 오래도록 일본인에게 사랑받아 왔는데, 근래인 2001년 조사에서도 그는 여전히 일본인이 '가장 좋아하는 작가'(〈아사히 신문〉설문조사)로 남아 있다. 이처럼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을 뿐 아니라 자신의 문학적 출발점이 나쓰메 소세키였음을 고백하는 평론가나 문학 연구자 또한 적지 않다는 사실은 일본인에게 소세키의 존재가 어떠한 크기인지를 충분히 말해 주는 사항들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에도 막부가 무너지고 왕정으로 바뀌어 메이지 시대로 접어들기 바로 전 해에 도쿄에서 태어났다. 작은 고을을 지배하는 영주의 가산 집안이라고 하는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셈이었지만, 소세키가 태어난 시기는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어쩔 수 없이 가운이 기울기 시작하던 때이기도 했다. 아이가 다섯이나 있는 상황에서 어머니 나이 마흔이 넘었을 때 태어난 그의 존재는 처음부터 '남부끄러운 아이'였고, '잉여적'인 존재였다. 소세키는 어머니의 젖이 부족했다는 이유로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남의 집에 맡겨져 키워지는데, 가난한 고물상이었던 그 집에서는 소세키를 작은 바구니에 넣어 가게 앞에 놓아두었고, 어느 날 밤에 우연히 그곳을 지나던 누나가 그 광경을 보고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해 집으로 데려오는 일도 있었다. 이러한 '잉여적' 존재라는 자기 인식과 차가운 밤거리에 뉘여져 있던 아이라는 막막한 생의 초반의 기억은, 이후 어두운 원초적 기억으로서 소세키의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된다.



소세키는 만 세 살이 되기 전에 또다시 다른 집에 양자로 보내지게 되었고, 양부모의 싸움 소리로 매일 밤 잠을 깨야 하는 환경에서 자라야 했으며, 그러한 어두운 환경에서 벗어나 다시 친부모에게로 돌아온 것은 아홉 살 때였다. 만년에 씌어진 자전적 소설 『한눈팔기』에는 "너는 어디에서 태어났지?", "네 진짜 부모는 누구지?" 하고 물으며 그들 자신을 손가락질해 보이기를 종용하는 양부모가 등장한다. 그러한 상황에서 소세키는 어릴 때부터 자신이 누구이며 어디에 속해 있는 존재인가 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자신을 향해 던지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경험은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라는 원초적 불안감으로 각인되었다. 말하자면 존재의 근원에서 유리된 감각이 생에 대한 소세키의 기본 인식이었던 셈이다.



소세키는 도쿄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후 1900년, 즉 20세기가 시작되던 해에 일본 문부성의 국비 유학생으로서 영국으로 건너가 2년 동안 머무르게 된다. 이 기간 동안 소세키는 '문학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을 발견해 낼 목적으로 피나는 노력을 했고, 그것은 자신의 젖줄인 한문학과 영문학의 차이를 발견해 내려는 작업이기도 했다. 동시에 선진국 영국에서 느껴야 했던 동양의 후진국 청년으로서의, 마치 '늑대 무리 속에 섞인 털북숭이 개'와도 같다고 하는 자기 인식에서 비롯된 열등감과 고독감, 그리고 고뇌 끝에 도달한 '자기 본위'의 사상은 이후 소세키의 작품과 저술의 기반을 이루게 된다.



귀국 후 소세키는 도쿄대학의 강단에 서면서 친구의 권유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처음 발표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뜻밖에 호평을 얻어 소설가로 첫걸음을 내딛게 된다. 그리고 강단에 선 지 4년, 나이 41세 때 소세키는 〈아사히 신문〉의 의뢰에 응해 당시로서는 최고의 엘리트로서 존경받을 수 있었던 도쿄대학 교수라는 안정된 신분을 박차고 전업 작가가 되는 길을 택한다. 이후 그는 인간의 불안, 공포, 허무감 등을 꿈의 형식에 의지해 그려낸 『꿈 열흘 밤』, 지방에서 도쿄로 올라온 대학생의 사랑과 실연을 그린 『산시로』, 과거에 사랑했던 여자를 되찾기 위해 가정과 사회의 배척을 각오하고 이른바 불륜을 선택하는 주인공을 등장시켜 인간을 억압하는 인위적인 '의식'(=제도)과 '자연'의 발로의 당위성을 묻는『그 후』, 친구를 배반하고 부부가 되었지만 사회에서 버림받은 채 쓸쓸히 살아가야 하는 남녀의 미묘한 정신적 고뇌를 그린『문』, 아내와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없음에 절망하여 동생으로 하여금 아내의 정절을 시험하게 하는 광기의 지식인을 등장시킨 『가는 자』 등을 발표하며 작가로서 확고한 지위를 굳히게 된다. 만년에는 부부라고 하는, 인간에게 근원적인 관계 형태의 구조를 집요하게 추구한 『한눈팔기』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 주었으나 마지막 작품 『명암』을 완성하지 못하고 50세를 일기로 소세키는 세상을 떠났다.



불과 10년이라는 짧은 세월 동안 발표한 작품으로 소세키는 불후의 이름을 남기게 된 셈이었는데, 그가 주로 추구한 주제는 인간의 에고이즘, 사랑과 고독을 둘러싼 '관계'의 문제, 욕구인 자연과 그 자연을 제어하는 규율의 문제 등이었다. 그리고 소세키가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그의 문제의식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도 여전히 중요한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도 『마음』은 소세키가 작가로서 그의 위치를 굳건하게 만드는 데 다른 어느 작품보다도 공헌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은 소세키의 전 작품 중에서는 물론이고 일본 근대 문학의 수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많이 연구되고 일반인에게도 가장 많이 읽힌 것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20세기의 일본을 이해하는 데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랜 기간 동안 『마음』이 평가되어 온 것은 친구가 사랑하는 여자를 가로채도록 만든 인간의 '에고이즘' 문제를 파헤쳤다는 이유에서였다. 그와 함께 죄책감을 안고 살아가던 '선생님'이 메이지 천황이 사망했을 때 천황을 따라 할복자살한 노기 장군에게서 자극을 받고 그러한 '메이지 정신'에 순사하겠다는 유서와 함께 자살했다는 사실도 많은 독자에게 충격을 안겨 주었다.



자신의 에고이즘-비윤리적인 행동을 '메이지 정신'에 반하는 것으로 여기고 뒤늦게나마 죽음을 선택하는 주인공의 행동은 '윤리'를 지향한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윤리'를 추구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한다는 점에서 분명 하나의 아름다운 모습일 수 있었다. 그러나 '선생님'이 추구한 '윤리'의 실체는 과연 아름답기만 한 것이었을까.



'선생님'의 말 가운데 인구에 회자되는 말로서 "나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기보다 외로운 현재의 나를 견뎌내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로 가득한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모두 그 대가로서 이 고독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라는 말이 있다. 이 구절은 오랫동안 『마음』을 논하는 이들이 '메이지 정신'을 거론할 때 가장 많이 인용해 온 부분이기도 한데, 이 구절에 따르면 '선생님'은 '현재'의 '고독'은 자유와 자립과 '나'로 넘치는 현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선생님'은 '나'를 추구하는 경향, 즉 에고의 주장을 '현대'의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셈인데, 이러한 '현대'관이야말로 '선생님'으로 하여금 동시대-메이지 시대의 마지막 시기를 비판하고 자신이 살아온 메이지 시대야말로 '윤리'라는 '가치'를 구현한 위대한 시대였음을 말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즉, 동시대에 대한 비판이 그렇지 않은 -'나'로 넘치지 않는- '메이지 시대'를 특별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고, '선생님'은 바로 그 점을 온몸으로 말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메이지 정신'은 이후 근대 일본을 지탱하는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선생님'의 친구 K는 정신적 '정진'을 지향하면서 연애 감정을 '약한' 남성의 것으로 생각하는데, 불행히도 그러한 사고는 두 사람의 청년으로 하여금 자신의 '정신'이 아닌 (연애) '감정'에 관해 대화하는 일을 주저하도록 만들었다. 말하자면 K에게 '고백'하지 못한 것이 사건의 발단이었다고 한다면, 문제의 원인은 여성에 대한 담론을 '정신'의 추구에 반하는 것으로 생각한 메이지 시대 '남성 공동체'의, 여성을 배제한 '정신' 중심사고에 있었던 셈이다.



'선생님'이 왜 그토록 사랑했던 아내가 아니라 젊은 '나'에게 자신의 '죄'를 고백해야만 했는지도 여기서 의문이 풀릴 것이다. 말하자면 '선생님'에게는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은 '정신'을 이해할 수 있는 '남성'이어야 했고 동시에 자신의 죽음을 구현하는 '메이지 정신'을 가슴속 깊이 내면화해줄 '차세대'여야 했던 것이다. 젊은 학생인 '나'는 어떤 '정신'을 갈망하고 있었고, '선생님'에게 다가간 것도 그 '정신'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친아버지가 위독한 상황에서 그는 아버지보다 '선생님'을 택하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는 부모(개인 또는 그에 따르는 신체적/혈연적 관계성)보다 이념(천황을 정신적 아버지로 생각하는 관념적 관계성)을 우선하는 일본적 '근대'의 시작을 볼 수 있다.



'선생님'은 자신의 죽음을 계기로 '당신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싹틀 수만 있다면 만족'한다고 말한다. 말하자면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란 다른 한 생명의 소멸-죽음의 조건이기도 했는데, '나'는 새로운 생명의 조건이 '죽음'에 있다고 하는 모순을 모순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채로 깊숙이 내면화하게 된다. 메이지 정신이란 그런 의미에서 이념-국가(천황)에 자신의 생명을 바칠 수 있는 정신이었다. 그것은 또한 '나'-'개인'의 실존적 신체성보다도 '공'(공공성)이라는 관념을 우선하는 것이기도 했다.

문제는 『마음』에서 보여준 그러한 추구가 '공'의 정신으로 찬양되면서 오늘날 예컨대 '새로운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논리마저 뒷받침하는 것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국민의 도덕』을 쓴 니시베 스스무는 '나'의 (사적/개인적) '이기심'을 버리고 자신들의 '규율'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고, 만화가 고바야시는 『전쟁론』에서 '현대'를 '나'로 넘치는 시대라고 규정하면서 역시 '공'의 정신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논리가 결국은, 민족주의가 희박해져 전쟁이 나더라도 도망가겠다는 젊은이가 많은 현대 일본의 현실을 개탄하며 국가를 위해 죽을 수 있는 젊은이들을 만드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는 것을 직시한다면 이러한 논리의 위험성은 분명히 드러난다. 그들은 '나'의 신체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이기주의'라 말하며 그러한 사고를 질타하기 위해 그것을 '서양문명'의 개인주의의 소산이며 '현대'의 나쁜 경향이라고 강조한다. 말하자면 복고적 국가/국수주의가 그러한 논리의 내부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타자의 죽음에 대한 자기 동일화 -천황에 대한 노기 장군의 죽음- 은 '현대' 일본에서는 불가능해진 '나'를 버릴 만큼의 '신뢰'가 거기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보여 주었지만 그것을 '메이지 정신'이라고 이름붙이는 일로써 『마음』은 '메이지 정신'을 가치화했다. '선생님'이 아내를 혼자 놔두고 죽은 것은 '순사'라는 '정신'이 '남성'에게만 허용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런 의미에서 『마음』은 남성의, 남성에 의한, 남성을 위한 소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가치를 부정하기에는 『마음』은 아직 많은 것을 말하고 있다. 비록 여성이 배제된 것이었지만 거기에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에 대한 뜨거운 갈망이 있고 '관계'에 대한 믿음이 있다. 그리고 비록 그 내용은 국가(천황)을 위한 죽음을 정당화하는 것이기는 했지만 한 시대의 '정신'에 대한 절실한 추구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도 이 작품은 한 시대의 '정신'을 추구할 만한 상황을 박탈당한 채 불행한 근대를 살아왔고 아직껏 그 여유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마음』의 지향점을 당시의 일본상으로 속단하는 것도 옳지만은 않다. 예컨대 노기 장군이 자살했을 때 당시의 신문은 '국민적'으로 '애도'할 것을 부추겼다. 그것을 하지 않으면 '비국민'인 것처럼 지목받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애도하러 모였지만, 다른 한편에는 그의 죽음과 그 죽음의 애도를 향한 비판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문제는 『마음』과 같은 소설이 노기 장군의 죽음을 애도하지 않는 동 시대를 비난/비판하기 위해 씌어진 소설일 수 있는데도 결과적으로 순사에 대한 긍정적 사고가 중심적이었던 것처럼 당시를 '규정'하는 '의미화' 작용을 하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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