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 -
▣ 독서 나침반Ⅰ - 개관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는 전형적인 '일본 회귀'형 작가에 속한다. 일본 회귀란 처음에는 서양문학의 영향 아래 작품 활동을 하다가 나중에 일본 전통에 기초하는 작풍으로 전환하는 것을 말한다. '모더니즘 문학의 기수' 가와바타는『설국』을 계기로 전통 미학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다. 이 소설은 무려 13년간의 개고를 통해 완결판이 나왔다. 마치 분재를 다듬는 정성으로 조탁한 일본어 표현은 당대 최고의 예술적 성취라는 평가를 받았다. 물려받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여행지에서 매력적인 두 명의 여성과 조우하는 시마무라는 무릇 남성의 꿈과 환상을 대신 구현하는 존재다. 산행 길에 우연히 찾아든 온천 마을에서 게이샤(藝者) 고마코를 만난 시마무라는 그녀의 청결한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세 차례 방문하게 된다. 고마코도 시마무라에 대한 순수한 애정을 키워간다. 그러나 자신에 대한 고마코의 사랑이 현실적인 크기로 다가왔을 때 시마무라는 온천 마을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결국 시마무라가 추구한 것은 현실적인 사랑이 아닌 도회의 권태로운 일상을 벗어나게 해 주는 감미로운 환상이었다.
이 소설은 중편 이상의 분량을 지녔지만 이렇다 할 만한 줄거리도 없다. 주제는 모호하고 인물의 성격도 뚜렷하지 않다. 주고받는 예사로운 대화를 통해 등장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수묵화의 여백을 감상하는 것 이상의 내공을 요한다. 이 정도면 "몇 번을 읽어봐도 잘 모르겠다"는 '용감한' 고백이 일본인 독자 사이에서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름다운 일본의 나'라는 가와바타의 노벨 문학상 수상연설 제목을 비아냥거리듯, 26년 후 같은 자리에서 '모호한 일본의 나'라는 제목의 수상연설을 한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도 분명 그러한 독자 중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두 사람의 연설 제목에 나오는 '아름답다'와 '모호하다'는 두 개의 형용사야말로 이 소설의 특징을 적확하게 짚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결여된 점이 적지 않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오랫동안 읽히는 이유는 작가의 섬세한 미의식과 감각적인 문체 때문일 것이다. 전편에 걸쳐 펼쳐지는 자연의 정경 묘사는 거의 시의 영역에 다가가 있다. 소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밤하늘의 은하수에 대한 묘사는 그 정점을 보여준다. 등장인물 역시 자연의 한 부분이다. 작품 속에 그려지는 고마코와 요코는 자연과의 합일 속에서 신비로운 아름다움과 생명력을 부여받는다. 이 점에서 『설국』은 동양적 정신세계의 요체를 현대적으로 구현한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게이샤, 온천, 후지산 등의 대상은 한두 세기 전부터 서양에서 일본에 대한 환영(幻影)을 만들어 내는 데 쓰인 대표적인 재료이다. 설국이 눈으로 인해 외부로부터 고립된 세계라면, 소설 『설국』은 고유의 풍토와 전통 그리고 번역을 완강히 거부하는 일본어 문체로 세계문학으로부터 차단되어 있다.이 때문에 『설국』이 노벨 문학상을 받게 된 것은 비서구 세계를 '신비'의 영역에 가둬두고자 하는 오리엔탈리즘의 산물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결과적으로『설국』은 이른바 '일본적 미학'에 대한 신화를 추인(追認)하고, 나아가 그것을 범 세계적으로 증폭시키는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다. (글쓴이 - 윤상인 한양대 일본언어문화학부 교수)
▣ 독서나침반 Ⅱ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소설 못지않게 너무나 유명한 『설국』의 이 서두는 일본근대문학 전 작품을 통틀어 보기 드문 명문장으로 손꼽힌다. 일본어가 지닌 독특한 운율이 제대로 살아 있고, 독자로 하여금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과 더불어 어둑하고 긴 터널을 지나 막 눈부신 은세계로 나온 듯한 환한 기분을 맛보게 한다. 상상해 보라, 보이는 것이라곤 온통 눈뿐인 차갑게 가라앉은 적요한 마을을.
『설국』이 전개되는 구체적 무대는 니가타 현의 에치고 유자와 온천으로, 작가는 이곳에 직접 머물며 작품을 집필해 나갔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에게 여행은 매우 중요한 창작의 요소이다. "내 소설의 대부분은 여행지에서 씌어졌다. 풍경은 내게 창작을 위한 힌트를 줄 뿐 아니라, 통일된 기분을 선사해 준다. 여관방에 앉아 있으면 모든 걸 잊을 수 있어 공상에도 신선한 힘이 솟는다. 혼자만의 여행은 모든 점에서 내 창작의 집이다"라고 그는 쓴 바 있다.
게다가 외진 한촌에 불과한 유자와 온천으로 가와바타가 발길을 옮긴 것은, 자연 풍경 묘사에 대한 작가로서의 관심 때문이다. 그는 에치고 유자와 온천에 한 달 정도 체재하는 동안, 계절의 변화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당시의 문학, 특히 소설이 자연에서 멀어지고 이를 소흘히 한 결과로, 자연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데 낡고 구태의연한 단어들만 떠올리게 되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었다. 기차가 다니지 못할 정도의 큰 눈이 내리고, 눈에 갇힌 채 긴 겨울을 보내야 하는 이곳 사람들은 눈바지 차림으로 다닌다. 아이들은 얼음을 깨며 논다. 『설국』은 눈에 파묻힌 산골의 자연 풍경 그리고 눈 지방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독특한 서정과 분위기가 한데 어우러진 배경 속에서 그 아련한 매력을 발산하는 소설이다.
『설국』은 처음부터 하나의 완결된 작품으로 구상된 것이 아니다. 가와바타가 36세 때 쓴 단편 「저녁 풍경의 거울」(『문예춘추』 1935. 1.) 이후, 이 작품의 소재를 살려 단속적으로 발표한 단편들이 모여 연작 형태인 중편 『설국』이 완성되었다. 1948년, 완결판 『설국』을 출간하기까지는 13년의 시간이 흘렀다. 『설국』외에 명작으로 꼽히는 『천우학』『산소리』 등도 이런 방법으로 소설이 완성되었다. 따라서 작가가 <단숨에 써내려 간 것이 아니라 생각날때마다 이어 쓴 것을 드문드문 잡지에 발표한> 작품인 만큼, 『설국』은 기승전결이 분명한 스토리보다는 등장인물의 심리 변화와 주변의 자연 묘사에 상당 부분 치중하고 있다. 등장인물의 사소한 표정의 변화와 말투, 몸동작에서 감정의 흐름을 읽어내고, 주변의 사물과 자연이 드러내는 계절의 추이를 섬세하게 묘사해 내는 가와바타 특유의 감각적 표현과 문체의 결을 음미하는 것은 『설국』을 읽는 가장 큰 즐거움이 아닐는지.
『설국』은 <가와바타 문학이 정점에 도달한 근대 일본 서정소설의 고전>이다. 이 소설의 핵심은 순간순간 덧없이 타오르는 여자의 아름다운 정열에 있다. 개통한 지 얼마 안 된 기다란 시미즈 터널 밖으로 나오면 눈의 고장, 설국이 있다. 그 한적한 곳의 온천장에서 게이샤로 살아가는 고마코. 그녀에게서 발산되는 야성적 정열과는 대조적으로 순진무구한 청순미로 시마무라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요코. 이 두 여자를, 도쿄에서 온 무위도식하는 여행자에 불과한 시마무라는 허무의 눈으로 지켜본다.
[고마코가 아들의 약혼녀, 요코가 아들의 새 애인, 그러나 아들이 얼마 못 가 죽는다면, 시마무라의 머리에는 또 다시 헛수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고마코가 약혼녀로서의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도, 몸을 팔아서까지 요양시킨 것도 모두 헛수고가 아니고 무엇이랴. 고마코를 만나면 댓바람에 헛수고라고 한방 먹일 생각을 하니, 새삼 시마무라에게는 어쩐지 그녀의 존재가 오히려 순수하게 느껴졌다.]
<모든 게 헛수고>라고 여기는 시마무라이지만 <헛수고일수록 오히려 순수하게> 비치는 고마코와 요코에게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다. 그리고 고마코와 요코의 존재는 <아름답고 예민한 것의 감각적인 저울>인 시마무라-혹은 작가 자신-의 냉정하고 예리한 시선에 의해 낱낱이 포착되어, 형태를 갖추고 생기를 띤다. 시마무라는 도회지 출신으로 일정한 직업도 없이 서양무용에 대해 글 쓰는 일이 전부인 한가한 여행자로 설정되어 있다. 여행자는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아니 바로 그런 이유로 시마무라를 향한 고마코의 열정은 한층 애절하고 아름다운 것이 아닌지.
어려서부터 부모, 누나, 조부모의 죽음을 차례로 겪으며 혼자 남은 쓸쓸함과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가와바타는 중학 시절, 화가가 되려던 꿈을 작가로 바꾸었다. 도쿄 제국 대학 재학 중에 『신사조』 발간, 『문예춘추』 동인 참가,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전위문학의 영향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새로운 감각의 문학을 지향했던 『문예시대』창간, 아쿠타가와 상 심사위원, 해군 보도반원, 일본 팬클럽 회장, 노벨 문학상 수상 등의 경력은 늘 일본 문단의 중심지에서 활약해 온 가와바타의 대외적인 일면을 전달하기에 충분하다. 1924년, 『문예시대』를 창간하면서 가와바타가 요코미쓰 리이치와 함께 전개한 <신감각파 운동>은, 소박한 현실 묘사와 재현에만 머물러 있는 종래의 문학을 벗어나, 현실을 주관적으로 파악하여 지적으로 구성된 새로운 현실을 풍부한 감각의 세계로 창조하려는 시도였다.
임종이 가까운 조부의 침상을 홀로 지키며 기록한 『16세의 일기』에서부터 『이즈의 무희』『서정가』『금수』『명인』『천우학』『산소리』『잠자는 미녀』 등에 이르는 일련의 작품은, 문단의 일시적 유행해 휩쓰릴는 법 없이 간결한 문체와 빈틈없는 관찰력으로 인간의 고독한 내면을 깊숙이 파고드는 가와바타만의 문학적 특징을 보여준다. 빛과 색채 도는 소리에 기이할 정도로 예민한 그의 감각은 때로 현실을 몽환적인 순간으로 바꿔놓기도 한다. 이를테면 『설국』에서의 다음과 같은 묘사는 매우 인상적이다.
[눈 내리는 계절을 재촉하는 화로에 기대어 있자니, 시마무라는 이번에 돌아가면 이제 결코 이 온천에 다시 올 수 없으리라는 느낌이 들었다. 여관 주인이 특별히 꺼내준 교토 산 옛 쇠주전자에서 부드러운 솔바람 소리가 났다. 꽃이며 새가 은으로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솔바람 소리는 두 가지가 겹쳐, 가깝고도 먼 것을 구별해 낼 수 있었다. 또한 멀리서 들리는 솔바람 소리 저편에서는 작은 방울 소리가 아련히 울려 퍼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시마무라는 쇠주전자에 귀를 가까이 대고 방울 소리를 들었다. 방울이 울려대는 언저리 저 멀리, 방울 소리만큼 종종걸음치며 다가오는 고마코의 자그마한 발을 시마무라는 언뜻 보았다. 시마무라는 깜짝 놀라, 마침내 이곳을 떠나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마음 먹었다.] (글쓴이 - 유숙자 고려대학교 강사)
『설국』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건너편 자리에서 처녀가 다가와 시마무라 앞의 유리창을 열어젖혔다. 차가운 눈 기운이 흘러 들어왔다. 처녀는 창문 가득 몸을 내밀어 멀리 외치듯, "역장님, 역장님-" 등을 들고 천천히 눈을 밟으며 온 남자는, 목도리로 콧등까지 감싸고 귀는 모자에 달린 털가죽을 내려 덮고 있었다. 벌써 저렇게 추워졌나 하고 시마무라가 밖을 내다보니, 철도의 관사인 듯한 가건물이 산기슭에 을씨년스럽게 흩어져 있을 뿐, 하얀 눈빛은 거기까지 채 닿기도 전에 어둠에 삼켜지고 있었다.
"역장님, 저예요, 안녕하셨어요?"
"오, 요코 양 아닌가. 이제 돌아오는 게로군. 다시 쌀쌀해졌는걸."
"제 동생이 이번에 여기서 일하게 되었다죠? 폐를 끼치겠네요."
"이런 곳은 얼마 안 가 적적해서 못 견딜 거야. 젊은 사람이 안됐어."
"아직 어린애니까 역장님께서 잘 이끌어 주세요. 정말 부탁드려요."
"염려 말아. 열심히 일하고 있는걸. 앞으로 바빠질 거야. 작년엔 눈이 많이 왔어. 눈사태가 자주 나는 바람에, 기차가 오도 가도 못해서, 마을 사람들도 승객들을 대접하느라 엄청 바빴었지."
"역장님께선 굉장히 두껍게 껴입으셨네요. 동생 편지엔 아직 조끼도 입지 않았다고 씌어 있던데요.""난 옷을 네 벌이나 껴 입었다네. 젊은이들은 추우면 술만 마셔 댄다니까. 그러고는 저기서 나뒹굴고 있다고, 감기에 걸려서 말야."
"제 동생도 술을 마시나요?"
"아니."
일본 옷에 외투 차림인 역장은 추운 데서 나누는 대화를 어서 끝내고 싶은 듯, 곧 뒷모습을 보이며, "그럼, 조심해서 가요." "역장님, 동생을 잘 돌봐주세요. 부탁이에요."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높은 울림이 고스란히 밤의 눈을 통해 메아리쳐 오는 듯했다. 머잖아 눈에 파묻히게 될 철도 신호소에서 요코라는 처녀의 동생이 올 겨울부터 근무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시마무라는 한층 그녀에게 흥미를 돋우었다.
그러나 여기서 '처녀'라 함은 시마무라에게 그렇게 보였다는 것일 뿐, 동행한 남자가 그녀와 어떤 사이인지 시마무라로서는 알 리 없었다. 두 사람의 동작은 부부인 듯 보이긴 했지만, 남자는 틀림없는 환자였다. 환자를 상대하다보면 쉽게 남녀 사이의 거리감이 느슨해지고, 정성껏 보살피면 보살필수록 부부처럼 보이는 법이다. 실제로 자신보다 연상인 남자를 돌보는 여자의 앳된 모성애는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부부로도 여겨질 것이다.
시마무라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왼쪽 검지손가락을 이리저리 움직여 바라보며, 결국 이 손가락만이 지금 만나러 가는 여자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군, 좀더 선명하게 떠올리려고 조바심치면 칠수록 붙잡을 길 없이 희미해지는 불확실한 기억 속에서 이 손가락만은 여자의 감촉으로 여전히 젖은 채, 자신을 먼데 있는 여자에게로 끌어당기는 것 같군, 하고 신기하게 생각하면서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있다가, 문득 그 손가락으로 유리창에 선을 긋자, 거기에 여자의 한쪽 눈이 또렷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건너편 좌석의 여자가 비쳤던 것이다.
유리창이 거울이 된다. 기차 안의 스팀 온기에 유리가 완전히 수증기로 젖어 있어 손가락으로 닦을 때까지 그 거울은 없었다. 처녀의 한쪽 눈만은 참으로 기묘하게 아름다웠으나, 시마무라는 얼굴을 창에 갖다 대더니 마치 해질녘의 풍경을 내다보려는 여행자인 양 재빨리 표정을 바꾸어 손바닥으로 유리를 문질렀다.
처녀는 가슴을 약간 기울여 앞에 누워 있는 남자를 한결 같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것으로 봐서, 다소 매서워 보이는 눈조차 깜박이지 않을 정도로 진지한 자세임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창 쪽으로 머리를 두고 처녀 옆으로 다리를 구부려 올려놓고 있었다. 처녀는 시마무라와 마침 비스듬히 마주하고 있어서 직접 볼 수도 있었지만, 그들이 기차에 올라탔을 때 뭔가 서늘하게 찌르는 듯한 처녀의 아름다움에 놀라 눈을 내리깐 순간, 처녀의 손을 꼬옥 잡은 남자의 파리하고 누런 손이 보이는 바람에, 시마무라는 두 번 다시 그쪽으로 눈을 주어서는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거울 속 남자의 안색은 이제 그저 처녀의 가슴 언저리를 보고 있어 편안하다는 듯 차분했다. 허약한 체격이 허약하나마 부드러운 조화를 띠고 있었다. 목도리를 베개 삼아 깔고 그걸 코밑까지 끌어당겨 입을 꼭 덮고는 다시 위로 드러난 볼까지 감싸 일종의 볼싸개처럼 되었다. 그것이 더러 헐거워지거나 코를 덮어버리거나 하면, 남자가 눈을 채 깜박이기도 전에 처녀는 나긋한 손길로 고쳐주었다. 지켜보는 시마무라가 초조해질 만큼 몇 번이고 똑같은 동작을 두 사람은 무심히 반복하고 있었다. 모든 게 참 자연스러웠다. 이렇듯 거리감을 잊은 채 두 사람은 끝없이 먼 길을 가는 사람들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그 때문에 시마무라는 슬픔을 보고 있다는 괴로움은 없이, 꿈의 요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신기한 거울 속에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모습으로 자신이 보여지고 있다는 것을 요코는 전혀 알 리가 없었다. 그녀는 오로지 환자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었는데, 설령 시마무라 쪽을 돌아본다고 해도 유리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은 볼 수도 없고, 창밖을 내다보는 남자 따위에겐 눈길도 주지 않았으리라. 시마무라가 요코를 오래 훔쳐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