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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오바디스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지음 | -
쿠오바디스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지음



아름다운 인질

파르티아 원정군으로 전쟁을 끝내고 돌아온 비니키우스가 외삼촌인 페트로니우스를 찾아왔다. 비니키우스는 남자다운 용모와 패기가 넘치고 분수를 지킬 줄 아는 청년이었다. 비니키우스가 손목 부상 때문에 아울루스 플라우티우스의 집에서 보름 동안 요양하는 동안 인질로 잡혀온 리기아 족 족장의 딸 리기아라는 아름다운 여자를 만났다. 그는 곧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다. 리기아는 어머니와 함께 인질로 로마에 잡혀왔다가 어머니는 죽고 그녀 혼자 플라우티우스 댁에 맡겨져 자라고 있던 처지였다. 비니키우스는 권세가 있는 외삼촌 페트로니우스를 움직여 그녀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고 싶었다.

그날 오후, 페트로니우스와 비니키우스가 플라우티우스 저택을 찾았다. 그들은 여느 집과는 달리 문지기가 쇠사슬에 묶여 있지 않은 것을 보고, 플라우티우스의 아내 폼포니아 그래키나가 그리스도를 숭배하는 동방의 미신에 빠져 있다는 말이 사실임을 알게 되었다. 플라우티우스는 방문객이 네로 황제의 친구이자 측근임을 알고 놀라며 불안해했다. 페트로니우스는 폼포니아 그래키나의 기품 있는 자세에 감탄하며 조카를 간호해준 것에 대하여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그때 정원에서 플라우티우스의 아들 아울루스와 공놀이를 하고 있던 검은 머리의 리기아를 발견했다. 그녀는 너무 아름다워 요정처럼 보였다. 페트로니우스가 인사 대신 오디세우스가 그 아내 나우시카를 맞을 때 한 말을 인용했더니 리기아가 놀랍게도 나우시카의 말을 인용하여 응수하는 것이 아닌가. 그는 야만족 출신의 처녀 입에서 호메로스의 시구를 듣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페트로니우스는 집 안을 흐르는 고요함이 이상했다. 또한 폼포니아와 플라우티우스, 그리고 그들의 어린 아들과 리기아의 얼굴에는 밤낮으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보지 못한 그 무엇인가가 있었다. “당신이 살고 계시는 세계는 우리의 황제 네로가 지배하는 세계와는 아주 딴판입니다.” 페트로니우스가 말하자 그녀는 섬세한 얼굴로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쳐다보며 말했다. “세상을 지배하는 분은 네로가 아닙니다. 그건 하나님입니다. 저는 로마의 신을 믿지 않으며 유일하시며 정의로우시며 전능하신 신을 믿고 있습니다.”



황제의 뜻

사흘 후, 황제의 근위대가 플라우티우스의 집에 들이닥쳤다. 그들은 리기아를 데리고 오라는 황제의 어명을 전했다. 플라티우스는 울고 있는 리기아에게 인질의 주인은 황제임을 설득하며 근위대에 인계했다. 리기아의 눈물을 보며 플라우티우스는 분노로 떨었다. 무슨 음모가 있음이 분명했다. 그는 즉시 비니키우스에게 달려갔다. 상황을 전해들은 비니키우스는 외삼촌이 리기아를 미끼로 네로 황제의 환심을 사려고 하거나 외삼촌이 차지하려는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자 비니키우스는 지체 없이 페트로니우스에게로 달려갔다. 그때까지 비니키우스를 의심했던 플라우티우스는 안심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외삼촌! 리기아를 도대체 어떻게 하신 거지요?” “너의 옷소매에 단도가 숨겨져 있구나. 그것으로 나를 찌를 셈이냐? 나는 네게 칭찬 받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제는 체면상 며칠 동안 리기아를 궁전에 두었다가 곧 네 집으로 보내 줄 것을 약속했다. 내일 황제가 베풀 향연에 리기아의 옆에 네 자리를 마련했단다. 어서 플라우티우스에게 편지를 띄워 초대해라. 리기아의 옆에 나란히 앉은 네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



아크테의 충고

궁전에 들어간 리기아는 해방 노예로서 한때 네로의 총애를 받았던 아크테에게 맡겨졌다. 아크테는 리기아가 플라우티우스에게 되돌아가도록 돕고 싶었다. 따라서 리기아가 잘 알고 있는 비니키우스에게 간청하도록 충고했다. 아크테와 함께 연회장으로 가는 도중 만난 비니키우스는 리기아의 볼을 붉게 할 정도로 늠름하고 씩씩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리기아는 그가 혹시 자신을 구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반갑게 다가갔다. 그러나 아크테의 충고도, 리기아의 간절한 기대도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리기아, 황제께서 당신을 내게 주기 위해서 데리고 온 것이오. 내일 해가 진 뒤 사람을 보내겠소. 황제께서 당신을 내게 주신다고 약속했으니 말이오.” 그러면서 리기아를 껴안았다. 술 냄새를 풍기며 그의 얼굴이 다가왔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친절한 비니키우스가 아니었다. 그때 무시무시한 힘이 비니키우스의 품으로부터 리기아를 떼어 냈다. 리기아와 함께 궁전으로 온 리기아 족의 거인 우르수스였다. 그는 자기 주인을 안고 조용하게 대식당을 빠져나갔다. 아크테가 그 뒤를 따랐다. 비니키우스는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사라진 리기아

아크테는 리기아를 정원으로 데리고 갔다. 낙담한 그녀에게 신선한 바람이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궁전도 비니키우스의 집보다 안전하지는 않았다. 리기아는 우르수스에게 도시 밖으로 데려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 때, 황후 포피아가 황녀와 함께 노예를 거느리고 나타났다. 황후는 지나치려다가 리기아의 미색을 발견하고 누구냐고 물었다. 아크테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황후는 리기아가 황제의 연회에도 참석했는가 물었다. 혹시 리기아가 그녀의 유력한 경쟁자가 되어 자기를 파멸시키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눈치였다. “그러니까 페트로니우스가 너를 플라우티우스에게서 빼앗아다가 비니키우스에게 주도록 폐하께 부탁드렸단 말이지? 정말 폼포니아에게 돌아가고 싶단 말인가?” 포피아는 정답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제발 저를 가엾게 여겨 주십시오.” “그렇다면 내가 약속하지. 너는 오늘부터 비니키우스의 노예가 되는 거야.” 황후는 그렇게 말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얼마 후, 비니키우스의 노예가 리기아를 데리러 왔다. 리기아는 얼굴이 하얗게 질리며 아크테의 목을 껴안은 후 억지로 가마에 올랐다. 골목길을 지나고 있는데 한 무리의 건장한 사나이들이 가마를 습격했다. 몇몇의 노예가 죽었고 가마는 산산조각이 났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소식을 전해들은 비니키우스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황제가 가까운 신하에게 곧잘 여자를 납치하여 선물하곤 한다는 것을 비니키우스는 기억하고 있었다. 그는 궁전으로 향했다. 그러나 황제는 황녀가 아프기 때문에 만날 수가 없었고 그 대신 아크테를 만났다.

“리기아는 바라던 대로 된 거예요. 그녀가 당신의 첩이 되고 싶어하지 않았어요.” “아크테, 리기아는 폐하의 명을 어겼다. 군대를 동원하여 리기아를 찾고 말 것이다.” 비니키우스는 화가 치밀어 기어이 찾아내어 마음껏 괴롭혀 주고 싶었다. “리기아를 찾아내면 영원히 당신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리기아는 정원에서 포피아와 황녀를 안고 있던 릴리트를 만났어요. 릴리트는 리기아가 마법을 걸었기 때문에 황녀가 아픈 것이라고 뒤집어씌우고 있어요. 아마 리기아는 발견된다면 곧 처형될 거예요. 그러니 황녀가 완치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일입니다.”



물고기 그림

페트로니우스가 금발의 미인인 그리스 노예 에우니케를 불렀다. 그녀는 리기아의 행방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아뢰었다. 의사이며 철학자이고 사람의 운명을 판단하여 예언해 주는 점술가인 킬로가 비니키우스에게 물었다. “리기아는 폼포니아와 같은 신을 받들고 있지요. 혹시 그 댁에 머물 때 폼포니아나 리기아가 그들끼리 통용되는 기호 같은 것을 쓰는 걸 본 적은 없습니까?” 비니키우스는 그들이 모래 위에다 물고기를 그리는 것을 본 기억이 떠올랐다. 킬로는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그 이후 며칠 동안 킬로는 어디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한편, 황녀가 죽자 네로는 화가 나서 페트로니우스에게 호통을 쳤다. 그 요망한 리기아 때문에 딸을 잃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 순간, 페트로니우스는 리기아가 염려되어 기지를 발휘했다. “폐하! 안티움으로 행차하십시오. 그곳은 황녀가 태어나 기쁨을 안겨 드린 곳이므로, 평안 또한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궁전을 나온 페트로니우스는 비니키우스의 집으로 향했다. “비니키우스, 이제 위험은 사라졌다. 나는 황제를 따라 안티움으로 가야 한다.” 그때 킬로가 나타났다. “리기아를 찾을 확증을 찾았습니다. 리기아는 그리스도 교도이고, 납치해 간 자들은 그리스도 교도들입니다. 그 물고기 그림은 그리스도 교도들의 암호입니다.” 그러자 페트로니우스가 놀라 말했다. “그러면 폼포니아와 리기아는 우물에 독을 타거나 거리에서 어린이를 죽이는 사람이란 말인가? 말도 안 돼. 그건 모략이야. 만일 그 여자들이 그리스도 교도라면, 그리스도 교도는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해 왔던 그런 사람들이 아닌 게 분명해!”



킬로의 음모

어느 날, 킬로가 나타났는데 몹시 어두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비니키우스는 실망을 금치 못했다. 킬로는 리기아가 그리스도 교도들 사이에 있는 것을 보았지만, 글라우쿠스 때문에 실패했다고 말했다. 킬로에게는 글라우쿠스의 재산을 강탈하고 그를 벌판에 버리고 온 과거가 있었으므로 비니키우스의 힘을 빌려 그를 영원히 제거하고 싶은 속셈으로 거짓말을 했다. “글라우쿠스는 그의 아내와 자식, 그리고 재산을 강탈당하여 죽어가고 있을 때 내가 구해주었답니다. 그러나 그는 노망이 들어서 그리스도 교도들 모임에서 나를 원수라고 떠벌리고 다닌답니다. 그를 제거해야 리기아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비니키우스는 속히 그를 제거하라고 다그치며 킬로가 필요하다는 돈을 주었다.

킬로는 곧 그리스도 교인인 에우리키우스를 찾았다. 킬로는 그리스도 교도들의 정보를 캐기 위해서 일전에 비니키우스가 준 돈으로 에우리키우스를 노예에서 해방시켜 주었다. 킬로는 그리스도 교도에게 닥칠 위험을 막기 위하여 힘센 사람 두세 명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에우리키우스는 킬로를 그리스도 교도로 알고 은인처럼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곧 행동에 옮겼다. 에우리키우스의 도움으로 우르수스를 만난 킬로는 그리스도의 어린 양을 늑대에게 팔아넘기려는 자들의 음모를 막아야한다고 설득했다. 우직한 우르수스는 글라우쿠스를 죽이겠다고 약속했다. 킬로는 동전 위에 칼끝으로 십자를 그려 우르수스에게 주었다. “개인적인 감정에 의한 살인이 아니라는 표시로 주는 걸세. 그럼 성공을 비네. 그대에게 평화가 있기를!”



거인 우르수스

“오늘 밤 오스트리아눔으로 가시면 리기아 아가씨를 만나실 수 있습니다. 혹시 못 찾는다고 해도, 우르수스는 글라우쿠스를 죽이기 위해 꼭 나올 것입니다. 우르수스가 글라우쿠스를 죽인 다음, 그를 살인범으로 붙잡아 리기아 아가씨의 거처를 알아내면 됩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킬로의 제안대로, 비니키우스는 킬로와 새로 고용한 격투사 크로톤과 함께 오스트리아눔에 다다랐다. 군데군데 서 있는 비석 사이로 지하 묘지의 입구가 보였다. 수많은 군중들이 불을 끈 채 머리에 후드를 쓰고 공지에 모여 있었다. 얼마 후 묘지 앞의 횃불이 켜지고 한 노인이 돌 위에 올라섰다. 그리스도의 수제자인 베드로였다. 군중들은 베드로의 설교에 경건하게 귀 기울였다.

“나리, 저기 우르수스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 아가씨가 서 있습니다!” 킬로가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비니키우스는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 베드로의 설교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지자 비니키우스와 킬로, 크로톤은 우르수스의 뒤를 밟았다. 우르수스가 리기아와 함께 집 안에 들어가자, 크로톤이 사자처럼 우르수스에게 달려들었다. 그 틈에 비니키우스는 리기아의 허리를 껴안고 문께로 나왔다. 뜰에서는 우르수스가 여름철의 엿가락처럼 늘어진 클로톤을 두 팔로 들고 있었다. 우르수스는 피 흘리는 클로톤을 내팽개치고 비니키우스에게 달려들었다. “안돼! 우르수스, 그분은 해치면 안 돼.” 리기아가 소리치며 만류했다. 비니키우스는 리기아가 소리치는 것을 어렴풋이 들으며 정신을 잃었다.



재회

글라우쿠스가 비니키우스를 치료하고 있는 옆에서 리기아가 걱정스런 모습으로 지켜보았다. 그때 비니키우스가 의식을 회복하며 희미한 리기아의 모습을 보았다. “오, 리기아!” 비니키우스의 정신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리기아는 비니키우스에게 약을 먹여주고 옆방으로 건너갔다. 크리스푸스와 글라우쿠스가 비니키우스에게 다가와 말했다. “당신 때문에 리기아는 보호자를 잃었습니다. 당신에게 악을 선으로 갚고 있는 우리를 계속 박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입니까? 잘 생각해보기 바랍니다.” 그들은 클로톤이 살해된 것을 추궁 당할까 염려되어 떠나려고 했다. 비니키우스는 자신이 해결할 테니 떠나지 말라고 붙잡았다. 비니키우스는 그들이 자신과 리기아를 떼어 놓으려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내가 여기 있고 싶은 이유는 딱 하나요. 바로 리기아 옆에 있고 싶어서요. 당신들도 그런 나의 마음을 알고 있을 것이오.” “그리스도가 이분의 상처를 낫게 해 주실 때까지 함께 있기로 해요.” 리기아가 크리스푸스에게 부탁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비니키우스의 눈이 기쁨으로 충만해졌다.

크리스푸스는 비니키우스의 부탁대로 킬로를 데리러 나갔다. 킬로가 그들과 함께 왔지만 누구도 킬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가 비니키우스와 이야기하는 동안 그의 머리에 쓴 후드가 벗겨져 그의 얼굴이 드러나고 말았다. 킬로를 알아 본 글라우쿠스가 킬로에게로 바싹 다가갔다. 소름이 오싹 끼쳤다. 킬로는 신음하듯 말했다. “부디 자비를 베푸십시오!” “나와 내 가족을 강도에게 팔아넘긴 자가 바로 이 늙은이오!” 클라우쿠스가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를 알아 본 우르수스도 거칠게 달려들어 킬로의 양 팔을 비틀었다. “나를 충동질해서 글라우쿠스를 살해하라고 꾄 자 역시 바로 이 자입니다!” 킬로는 비니키우스를 바라보며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글라우쿠스는 오랫동안 양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서 있다가, 드디어 손을 내리며 말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그대를 용서하나니, 하느님께서도 그대의 죄를 사해 주실 것이오.” 킬로는 비니키우스가 내민 편지를 받아들더니, 벽에 딱 붙어서 살금살금 걸어서 문 밖으로 나갔다.



순결한 사랑

킬로의 행동은 인간으로서 용서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킬로를 죽이지 않는 것인가? 비니키우스는 납득하지 못했다. 그 사실을 놓고 혼란에 빠진 비니키우스에게 리기아가 청량제를 마시게 해 주었다. “리기아, 당신도 나를 용서한 거요?” “우리는 그리스도 교도이므로, 가슴속에 노여움을 품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당신의 신이 누구든, 오직 당신의 신이기 때문에 나는 숭배하오.” 비니키우스가 아주 심한 열에 시달렸으므로 리기아는 밤새도록 비니키우스를 간호했다.

아침에 일어나 리기아가 떠 주는 죽을 먹으며 비니키우스가 말했다. “리기아, 당신은 이렇게 비좁은 방에서 여럿과 함께 살아도 행복해 보이는군요. 마음속에 그리스도에 대한 깊은 믿음을 지니고 있으니 말이오. 하지만 나에게는 오직 당신뿐이라오. 당신은 나에게 있어서 이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거룩하고 소중한 존재요.” 리기아는 비니키우스의 솔직한 말에 마음이 끌렸다. 그 후로 비니키우스로부터 멀어지려고 하면 할수록 연민의 정은 더욱 뜨겁게 타올랐다.

그날 밤, 리기아는 크리스푸스를 찾아가 떠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비니키우스의 사랑에 더 이상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크리스푸스는 신에 대한 사랑이 차지해야 할 자리에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가득한 리기아를 나무랐다. 그 때 베드로가 나타나 리기아의 머리에 손을 얹고 말했다. “크리스푸스, 누가 보든지 명백한 죄인인 막달라 마리아를 용서하신 주님께서, 들의 백합처럼 깨끗한 이 처녀를 외면하실 거라고 생각합니까? 리기아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리기아의 사랑에는 아무 죄도 없습니다. 그리고 리기아, 괴로워 마시오. 슬픔 뒤에는 반드시 기쁜 날이 찾아옵니다.”

집으로 돌아온 비니키우스는 모든 게 공허할 따름이었다. 그때 그를 찾아온 글라우쿠스로부터 베드로와 리기아 사이에 있었던 대화의 내용을 전해 듣고 베드로에게 달려가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그러나 글라우쿠스는 먼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혼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글라우쿠스의 방문이 뜸해지자 비니키우스는 리기아를 잊기 위하여 맹목적인 정력과 정열을 기울여, 자유롭고 편안한 생활의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지고자 했다. 그러나 그 후에 느낀 것은 양심의 가책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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