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큐정전
루쉰 지음 | -
아큐정전
루쉰 지음
제1장 서(序)
내가 아큐(阿Q)의 전기를 써야겠다고 작정한 것은 한두 해 전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줄곧 망설였던 것은, 나 자신이 후세에 길이 전해 줄 만한 글을 쓸 위인이 못 되는 까닭도 있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째가 문장의 제목이다. 내가 아큐 자신이 아니니 자전이랄 수도 없다. 또 내가 아큐하고 종씨인지 아닌지도 모를 뿐더러 그의 자손에게서 부탁받은 일도 없으니 가전도 아니었다. 결국 소설가들이 흔히 쓰는 ‘잡담’은 그만두고 정전(正傳) 두 자를 빌려다가 제목으로 삼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둘째는 전기를 쓰자면 대체로 첫머리에 "이름은 무엇이며 어느 지방 사람이다."라고 써야 하는데, 나는 아큐의 성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셋째로, 나는 아큐의 이름을 어떻게 써야 할지를 모른다. 그가 살아 있을 적에는 사람들이 그를 아큐라고 불렀지만, 죽은 다음에는 두 번 다시 입에 올리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아큐의 이름을 쓰기 위해 영국에서 유행하는 철자법을 따라 '아Q'로 하려는 것이다. 넷째로, 아큐의 본적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비록 웨이좡에서 오래 살았다고는 하지만, 이따금 다른 곳에서도 살았으니 반드시 웨이좡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다.
제2장 우승의 기록
아큐는 웨이좡에 오기 전까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마을 사람들은 일손이 필요할 때나 곯려 줄 때만 아큐를 생각할 뿐 다른 때는 아큐에게 관심도 없었다. 아큐는 집도 없이 마을에 있는 투구츠(土谷祠 : 지신과 곡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시골의 사당) 안에서 살았다. 게다가 고정된 일거리도 없이, 남의 집에서 품팔이를 하며 하루하루를 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쁠 때면 아큐를 생각하지만, 한가해지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하였다. 아큐 또한 자존심이 매우 강해서 웨이좡 사람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아큐의 말대로 하면, 옛날에 그는 ‘잘 살았고 학식도 높았으며 못 하는 게 없는’ 거의 완벽한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쨌든 지금 그에게는 체질상으로 약간의 흠이 있었다. 그의 머리 몇 군데가 부스럼 자국으로 꽤 크게 벗겨져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벗겨지다’라는 말을 몹시 싫어했다. 동네 건달들은 아큐를 볼 때마다 “야아, 반짝반짝해졌는 걸! 이제 보니 등잔이 여기 있었군.” 하고, 그의 머리를 쿵쿵 쥐어박곤 했다. 그들은 아큐가 단단히 혼쭐이 났으리라고 생각했지만, 아큐는 십 초도 안 되어 승리감으로 의기양양해졌다. 자신을 짐짓 벌레처럼 하찮은 존재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건달들은 결국 벌레를 곯려 준 꼴이 되는 것이니까. 이렇게 묘한 방법으로 승리를 하고 나면 아큐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제3장 속(續) 우승의 기록
어느 해 봄날, 아큐는 술에 취해 건들거리며 길을 가고 있었다. 이 때 담장 밑에서 왕털보가 벌거벗은 채 이를 잡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큐는 왕털보가 이 잡는 것을 보자, 갑자기 온 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았다. 아큐는 그 옆으로 가서 앉았다. 새로 빤 옷이라 그런지, 아니면 재주가 없어서 그런지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서너 마리 잡을 수 있었다. 아큐는 처음에는 실망했지만 나중에는 부아가 치밀었다. 자기가 깔보는 왕털보는 저렇게 많이 잡고 있는데 나는 이렇게 적게 잡다니, 이것은 얼마나 체통을 잃는 일인가. 아큐는 잡은 이를 입에 넣어 용을 쓰며 깨물었다. 그러자 픽 하고 소리가 났다. 깨무는 소리조차 왕털보 소리에 미치지 못하고 말았다. 그러자 아큐의 부스럼 자국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옷을 땅바닥에 냅다 팽개치면서 침을 바닥에다 탁 뱉었다. “이 털 버러지 같은 놈.”
아큐는 상대가 항상 얻어맞는 건달패들이라면 겁을 집어먹었겠지만, 왕털보쯤이야 못 당할까 싶어 용감하게 덤벼들었다.
왕털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아큐는 그가 꽁무니를 빼려는 줄 알고 잽싸게 달려들어 한 대 치려 했다. 그런데 아큐의 주먹이 미처 왕털보에게 닿기도 전에 그에게 잡혀 버리고 말았다. 아큐는 곧 왕털보에게 담장 앞으로 끌려가 머리를 처박히고 말았다. 아큐의 기억으론 아마도 이것이 평생에 있어 가장 큰 굴욕 같았다. 왕털보는 털북숭이라 자신이 늘 비웃어 주었는데, 도리어 그에게 손찌검을 당했으니 말이다. 아큐는 어찌할 바를 몰라 우두커니 서 있었다.
그 때 멀리서 아큐가 제일 미워하는 첸 영감의 큰아들이 걸어왔다. 그는 도시에 있는 서양 학교에 들어갔다가 반 년 뒤에 돌아왔는데, 어찌 된 일인지 걸음걸이도 변하고 변발도 없어져 버렸다. 그를 볼 때마다 변발이 없으니 사람 노릇할 자격이 없다고 아큐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중대가리, 나귀….' 아큐는 그 동안 속으로만 이렇게 욕을 했지 입 밖으로 내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화가 끓어 누구라도 붙들고 앙갚음을 해야 하던 참이라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지껄이고 말았다. 그러자 이 중대가리가 노랗게 칠한 지팡이를 손에 쥔 채 아큐에게로 성큼성큼 걸어왔다. 그리고 잠시 후에 아큐는 딱 하는 소리가 자기 머리에서 나는 것을 들었다. “나는 저 애한테 말했는데!”
아큐는 곁에 있던 한 아이를 가리키며 변명했다. 아큐의 생애에 있어 두 번째로 큰 굴욕이었다.
아큐는 천천히 걸었다. 선술집 문턱에 당도하니 망각이라는 보물이 효력을 발휘하여 제법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앞쪽에서 정수암에 있는 젊은 여승이 걸어왔다. 평소에도 아큐는 여승을 보면 욕을 해댔는데, 하물며 굴욕을 당한 지금이야! 아큐는 앞으로 나서며 큰 소리가 나게 침을 뱉었다. 젊은 여승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인 채 걷기만 했다. 아큐는 여승 옆으로 다가가서 새로 깎은 여승의 머리를 손으로 더듬으며 헤벌쭉 웃었다. 여승은 얼굴이 새빨개져서 종종걸음을 쳤다. 선술집 안에서 사람들이 와 하고 웃어댔다. 아큐는 더욱더 신이 났다. 그래서 그 구경꾼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이번에는 힘을 주어 꼬집어 버렸다. 이 한 판의 승리로 아큐는 왕털보 일도, 가짜 양놈 일도 깨끗이 잊어버렸다. 오늘 생겼던 재수 없는 일이 모두 앙갚음된 것 같았다. “이 씨도 못 받을 아큐 놈아!”
멀리서 젊은 여승이 울먹이며 욕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4장 연애의 비극
아큐는 하늘이라도 날 것 같은 기분으로 하루 종일 돌아다니다가 투구츠로 돌아왔다. 그런데 이 날 밤, 밤새도록 눈도 붙이지 못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씨도 못 받을 아큐 놈!”하던 젊은 여승의 목소리가 아큐의 귓속에서 다시 울렸다. ‘그래, 여자가 있어야 한다. 자식이 없으면 밥 한 그릇도 공양 받지 못할 테니까. 이것은 사람으로 태어난 자의 가장 큰 비애다. 여자, 여자, 여자!’
그는 젊은 여승의 모습을 떠올리자 마음이 적잖이 달떴다. 누가 알았으랴! 바야흐로 이립(30세)의 나이에 젊은 여승 때문에 마음이 달떠 버릴 줄이야. 그는 ‘남자를 유혹하려는’ 여자, 즉 자신에게 말을 거는 여자는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여승은 자기를 보고 웃지도 않았고, 수상한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아큐는 여승에게 유혹당하고 말았다. 아, 이것은 여자가 나쁘다는 증거 중 하나가 분명했다.
다음날 아큐는 자오 영감 댁에서 하루 종일 방아를 찧었다. 설거지를 끝낸 자오 댁의 하녀 우씨 아줌마가 아큐에게 말을 걸었다. “마님이 이틀째 아무것도 드시지 않아. 영감님이 첩을 사 오신 뒤로….”
‘여자…, 우씨 아줌마…, 청상과부…, 여자….’ 아큐는 담뱃대를 팽개치고 벌떡 일어섰다. “나하고 자자! 나하고 자자!”하고 아큐는 별안간 우씨 아줌마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러자 우씨 아줌마는 ‘어머나!’하고 질겁하더니, 비명을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로 그 때, 딱 소리가 나더니 머리가 어찔해졌다. 뒤를 돌아보니, 수재가 굵은 대나무 막대기를 들고 서 있었다. 수재는 굵은 대막대기로 아큐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아큐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문 밖으로 달아났다.
아큐는 방앗간으로 들어갔다. 머리가 몹시 욱신거렸다. ‘염치없는 놈’이라고 하던 수재의 말이 귀에 쟁쟁했다. 그런데 밖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 왔다. 그 곳에는 자오 씨 댁 집안 식구들이 모여 있었는데, 이틀 동안 식사도 안 했다는 마님까지 끼어 있었다. 게다가 이웃의 쩌우치 댁과 자오바이옌, 자오쓰천도 있었다. 마침 작은 마님이 우씨 아줌마를 끌고 나오면서 말했다. “밖으로 나와. 네가 정숙하다는 걸 누가 몰라. 절대로 소견 좁은 짓을 하면 안 돼.”
우씨 아줌마는 손을 잡힌 채 끌려 나와서는 울기만 했다. 아큐는 그 쪽으로 다가갔다. 그러자 수재가 아까처럼 대막대기를 든 채 그에게로 달려왔다. 아무래도 자기와 관계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는 몸을 휙 돌려 재빨리 도망쳐 버렸다.
뒷문으로 빠져 나와 단숨에 투구츠로 돌아왔다. 잠시 앉아 있으려니 온 몸에 오싹오싹 한기가 들었다. 봄이라 해도 밤에는 아직 꽤 쌀쌀했다. 그제야 저고리를 자오 씨 댁에 두고 온 것이 생각났다. 그렇지만 가지러 가자니 수재의 대막대기가 너무 무서웠다.
“아큐, 개 같은 자식! 자오 씨 댁 하녀까지 희롱하다니! 나까지 잠도 못 자게 됐잖아.”하며, 그 때 자오 씨 댁 하인이 안으로 들어왔다. 하인은 한바탕 설교를 늘어놓았으나 아큐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결국은 밤에 폐를 끼쳤다는 이유로 하인에게 술값을 물어야 했다. 아큐에게는 현금이 없었으므로 털모자를 전당포에 잡혔다. 그러고도 다섯 가지 조항에 서약까지 했다.
1. 내일 붉은 초 한 쌍, 향 한 봉을 가지고 자오 씨 댁에 가서 사죄해야 한다.
2. 자오 씨 댁에서 무당을 불러, 목을 매어 죽게 하는 귀신을 쫓는 굿을 하는데 그 비용은 아큐가 전담한다. 3. 이후로 아큐는 자오 씨 댁 문턱도 밟을 수 없다.
4. 이후에 우씨 아줌마에게 다른 일이 생기면 책임을 아큐에게 묻는다.
5. 아큐는 품삯과 저고리를 찾아갈 수 없다.
제5장 생계 문제
아큐는 사죄 절차를 끝낸 뒤, 예전처럼 거리를 쏘다녔다. 이 날부터 마을 여자들은 아큐를 보기만 하면 문 안으로 숨어 버렸다. 심지어는 열한 살밖에 안 된 계집애까지 불러들이는 게 아닌가. 아큐는 기이하게 생각되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선술집에서는 외상술을 주려 하지 않았다. 또 며칠 동안 품을 팔아 달라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외상술을 주지 않는 것은 참으면 그만이지만, 품을 팔아 달라는 사람이 없게 되면 아큐는 배를 곯아야 했다. 이것은 확실히 ‘개 같은 놈’의 일이었다.
자오 씨 댁에서는 샤오디를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있었다. 이 샤오디란 놈은 말라 빠져서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놈이 자기 밥줄을 끊으려 한다고 생각하니, 아큐는 분통이 터질 노릇이었다. 며칠 후, 아큐는 첸 영감 댁 담장 앞에서 우연히 샤오디를 만났다. 아큐는 다짜고짜 달려들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짐승 같은 놈!”
아큐는 눈을 부릅뜨고 으르렁거렸다. 입에서 침이 튀어나왔다.
“나는 버러지야. 이러면 됐지.”
샤오디가 말했다. 아큐는 샤오디의 이러한 겸손이 도리어 비위가 상했다. 당장에 덤벼들어 샤오디의 변발을 잡아채었다. 샤오디는 한 손으로는 자기 머리채 밑을 감아쥐고, 또 한 손으로는 아큐의 변발을 잡아채었다. 한 삼십 분쯤 흘렀을까. 그들의 머리에서 김이 올랐다. 아큐의 손이 늦추어지자 샤오디의 손도 늦추어졌다. “두고 보자, 개새끼….”
이 싸움은 이렇게 무승부로 끝났지만, 아큐에게는 여전히 삯일을 해 달라는 사람이 없었다.
꽤 따스해진 어느 날이었다. 그렇지만 아큐에게는 산들바람까지도 써늘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그나마 견딜 만했는데, 배가 고픈 것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아큐는 어쩔 도리가 없어 밖에 나가 먹을 것을 구해 보기로 했다. ‘먹을 것을 구하려고’ 무작정 걷다 보니, 어느덧 정수암까지 와 버렸다. 나지막한 담 안에 드넓은 무밭이 펼쳐져 있었다. 아큐는 담을 기어 올라갔다. 가까스로 뽕나무 가지를 붙잡고 뒤뜰 쪽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쪼그리고 앉아 무를 뽑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둥그런 머리가 고개를 내밀었다. 늙은 여승이었다. 아큐는 재빨리 무 네 뿌리를 뽑아 품속에 싸안고 도망을 치다가 뒤를 흘낏거리며 말했다. “이게 당신 거야? 그럼 무더러 당신 거라고 말을 시킬 수 있어, 있어?”
이렇게 말하면서 아큐는 곧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커다란 검정개 한 마리가 쫓아와 아큐의 다리를 물어뜯으려 하였다. 이 때 다행히 옷섶에서 무 하나가 떨어지는 바람에 그 검정개가 놀라 멈칫하였다. 그 틈에 아큐는 담장 위로 기어 올라가 밖으로 뛰어내렸다.
제6장 중흥에서 말로까지
그 후 한동안 보이지 않던 아큐가 웨이좡에 다시 나타난 것은 그 해 추석이 막 지난 무렵이었다.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아큐는 게슴츠레한 눈을 하고 주막에 나타났다. 계산대로 다가가더니 허리춤에서 은전과 동전을 한 움큼 꺼내어 계산대 위에 뿌렸다. “현금이다, 술 가져와!”
입고 있는 옷은 새로 맞춘 겹옷이었다. 보아하니, 허리춤에 큰 전대를 찼는데, 묵직하게 늘어져서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고 있었다. 그러자 심부름꾼, 주인, 술손님, 행인 할 것 없이 모두가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았다. “호, 아큐! 돌아왔군! 돈을 많이 벌었나 본데!” “응, 돌아왔어. 문 안에 들어갔다 왔지!”
아큐에 대한 소문은 당장 온 마을에 퍼졌다. 사람들은 새 옷을 입고 나타난 아큐가 어떻게 돈을 모았는지 알고 싶어했다. 어느 틈에 아큐는 그들에게 존경받는 인물이 되어 있었다. 아큐의 말로는 문 안 거인(擧人 : 과거에 급제한 선비) 영감 댁에서 일을 거들었다고 했다. 이 한 마디만으로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숙연해졌다. 거인은 사방 일백 리를 통틀어서 그 사람 하나뿐이었다. 그 댁에서 일을 거들었다는 것은 당연히 존경을 받아 마땅한 일이었다.
“자네들, 사람 목 자르는 본 적이 있나? 허, 볼만해. 혁명당을 죽이는데, 굉장했다고!” 아큐는 느닷없이 왕털보의 뒷덜미를 내려치며 “싹둑!”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왕털보는 깜짝 놀라 재빨리 목을 움츠렸다.
하여간 얼마 안 가서 아큐의 명성은 안방에 있는 여자들한테까지 좍 퍼졌다.
“쩌우치 댁은 아큐에게 남색 비단 치마를 샀대.”
여자들은 마주 앉아 이런 말을 주고받으며, 아큐가 나타나길 눈 빠지게 기다렸다. 자오 마님은 싸고 좋은 털배자를 사고 싶다며, 쩌우치 댁에게 즉시 아큐를 찾아 데려오라고 하였다. 자오 씨 댁 식구들은 초조하게 아큐를 기다렸다. 한참만에야 아큐가 쩌우치 댁을 따라 들어왔다. “아큐, 문 안에 가서 돈을 벌었다지? 다름이 아니라 내가 좀 필요한 것이 있어 그러는데….” “다 팔고 남은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아큐는 내키지 않다는 듯 대답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나갔다. 자오 영감과 수재는 아큐의 불손한 태도에 몹시 화가 났다. 그래서 이 염치없는 놈을 마을에서 아예 쫓아내 버릴까 하고 생각했지만, 그건 너무 심한 것 같아 그만두었다.
한편 건달패들은 아큐에게 돈을 벌게 된 내막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큐는 숨기려는 기색도 없이 오히려 우쭐거리며 자기 경험을 털어놓았다. 사실은 거인 영감 댁에서 일을 한 게 아니라 도둑질을 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큐가 직접 담을 넘은 것은 아니고, 자기는 단지 밖에서 물건만 받아 냈다고 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아큐가 좀도둑에 불과하다는 것을 곧 알게 되었다. 이로 해서 마을 사람들은 ‘역시 아큐는 두려워할 만한 존재’가 못 된다고 생각하였다.
제7장 혁명
아큐가 전대를 자오바이옌에게 팔아넘긴 그 날, 커다란 배 한 척이 자오 씨 댁 나루터에 닿았다. 그것은 바로 거인 영감의 배였다. 그 배는 웨이좡에 굉장한 불안을 실어다 주었다. 정오도 못 되어 온 마을이 술렁거렸다. 혁명당 때문에 거인 영감이 웨이좡으로 피난 왔다는 소문이 순식간에 퍼져 나갔기 때문이다. 아큐는 문 안에 갔을 때 혁명당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다. 또 자기 눈으로 혁명 당원이 참수(목을 벰)당하는 것을 실제로 보기도 했다. 그러나 어디선가 혁명당은 반역이며, 반역은 그에게 고난을 가져온다는 말을 주워들은 적이 있어서, 그들을 막연히 증오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들이 백 리 사방으로 이름을 떨치는 거인 영감까지 두렵게 하다니, 아큐로서는 신명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