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8야드 파4 제2타
무라카미 류 지음 | 큰나무
368야드 파4 제2타
무라카미 류 지음
큰나무 / 2001년 7월 / 314쪽 / 7,500원
1. 리우데자네이루 사창가의 퍼팅 그린
나는 올해 말에 마흔 살이 되는 독립 이벤트사의 이벤트 프로듀서다. 말하자면 내 직업은 돈과 가치를 연결해주는 촉매 같은 역할을 하는 일이다. 규슈의 기지촌에서 영화관 주인의 외아들로 태어나, 일년 내내 영화를 보며 자랐다. 기지촌에선 욕망이 모든 것이며 파시즘도 민주주의도 없다. 욕망만이 현실이란 걸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문화에서 자란 덕택에 나는 대학 시절 이벤트 동아리에 들어가 학교 축제 초청 강연회 개최나 콘서트 계약 등에 두드러진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돈도 모으고 노하우가 생긴 후부터는 위험부담이 적은 스포츠 이벤트에 집중하여 10년 전부터 테니스 후원사 계약 조정에 몰두하여 일본 거품 경제의 눈먼돈을 긁어모았다.
하지만 3년 전쯤 - 리우의 사창가에서 바보 같은 놀음을 하다 골프를 익힌 그 즈음부터라고 생각하는데 - 순조로운 성공 가운데서도 뭔가가 내 안에 눌러 붙어 있단 느낌이 들었다. 그건 쉽게 말하자면 콤플렉스다. 내가 초조해 하는 것을 보고, 클래식 음악을 전공한 머리 좋은 마누라는 피곤해서 그런 것뿐이라고 격려했다.
2년 전부터 ‘요시다 겐타로’로부터 편지가 왔다. 첫 번째 편지는 바르셀로나로부터 온 것이었는데, 편지에서 그는 내가 대학시절 하숙하고 있던 아파트 동네에서 함께 축구하곤 했던 꼬마였다고 자신을 설명했다. 그 이후로도 축구를 계속하여 지금은 프로 선수가 되고 싶어서 스페인으로 갔다고 했다. 그로부터 1년 뒤 두 번째 편지가 왔을 때에야 비로소 동봉된 사진을 보고 그가 누구였는지 기억이 났다. 겐타로는 항상 어딘지 모를 먼 곳을 보는 듯한 눈이 인상적인 꼬마로 자기가 살고 있는 이 곳이 시시하다고 말했었다. 나는 그가 보낸 사진을 서랍에 넣어두고 기운이 나지 않을 때 다시 꺼내 보았다. 그는 축구를 그만 두고 프로 골퍼가 되었다고, 캘리포니아에서 세 번째 편지를 보내왔다.
먼 곳을 바라보는 눈은 광채를 내고, 혼혈아들과 어깨동무를 한 겐타로는 거품 경제의 흥청망청함과는 아무 관계없이 세계와 어울리고 있었다. 돈은 없을지 몰라도 나 같은 건 죽었다 깨어나도 얻을 수 없는 걸 이 녀석은 갖고 있는 거다, 하고 생각했다.
2. 서인도 제도, 바베이도스, 샌디 레인 골프 클럽
서른 한 살인 미스 사쿠란보는 7년 전 테니스를 치다 우연히 만나 나와 애인이 된 사이다. 꽤 오래 사귀었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 여전히 긴장이 된다. 전미 대학풋볼협회와 일본의 모 제약회사간 타이틀대회 계약 건을 맡아 그녀와 함께 뉴욕에 왔다. 일은 한 시간 만에 끝났고 남은 시간을 그녀와 함께 뮤지컬, 재즈 공연 등을 보며 보냈다.
3일 뒤 우리는 또 다른 계약 업무를 위해 서인도 제도의 바베이도스로 향했다. 그 곳의 일도 쉽게 끝나 그녀와 골프를 치러 나갔다. 그녀는 골프를 시작한 지 일년 정도 됐지만, 아직까지 100을 깨지 못하는 나한테 배우고 있기 때문에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다. 겐타로가 편지에서 260야드를 날린다고 썼던 그의 2번 아이언 풀 샷을 보고 싶단 생각이 가끔 든다. 그가 골프를 하면서 느끼는 거리감, 맞다, 그는 그 거리감을 쫓아 축구 선수가 되었고, 또 프로 골퍼가 된 것이다. 겐타로는 편지에 로스엔젤레스에 간다고 썼다.
3. 미국, 애리조나, 스콧데일, 맥커믹 랜치 골프
바베이도스는 영국령이었다. 세계 곳곳의 휴양지를 샅샅이 돌아다닌 건 아니지만, 프랑스가 기획하고 영국인이 즐기는 게 가장 정통이란 느낌이 든다. 실력이 향상되지 않아 짜증을 내며 골프를 치는 미스 사쿠란보 옆에서 나는 그런 생각에 빠져들었다.
최근엔 기준이 좀 바뀐 듯도 하지만 리딩 호텔에서도 기본적인 조건은 화려함이 아닌 격식이다. 애매모호한 건 질색인 나로서는 내가 어떤 인간인지 확실하게 드러낼 수 없는 장소는 싫다. 격식이 있는 호텔에 묵으면 그게 뚜렷하게 드러난다. 내가 그런 장소엔 어울리지 않는 극동의 부자란 사실 말이다. 내 돈이 곧 내 명예가 되는 건 아니다.
겐타로는 어떨까? 프로로 데뷔해서 유명해지면, 돈과 명예를 한 손에 거머쥐는 걸까? 그는 어떻게 미국 투어 테스트를 치르려는 걸까? 이렇게 겐타로에게 생각이 옮겨가고 있을 때, 미스 사쿠란보가 “내일 또 골프 할 거지?” 하고 묻는다. 그래, 하고 대답했다. “애리조나에서 골프 치는 게 내 꿈이었으니까.” 그건 정말 꿈이었다.
4. 포르투갈, 에스투릴, 팔라시오 호텔 골프 코스
그 옛날 전쟁에서 무지막지하게 때려부순 나라의, 20대로밖에 보이지 않는 젊은 놈이, 여자를 꿰차고 골프를 치러 왔다. 게다가 레스토랑에서 돔페리뇽 78년을 마시고 있다. 또한 녀석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미 해병대 일행 대환영’이라는 기치를 내걸고, 한국에서 싸우던 그들의 달러를 갈취한 기지촌에서 자랐다.
나는 3년 전 리우에서 골프를 시작했지만 그로부터 거의 1년 동안 실력이 조금도 늘지 않았었다. 그러다 2년 전쯤 포르투갈의 에스투릴 골프장에서 비가 오는 가운데 혼자 골프를 치게 된 일이 있었다. 잔디는 물을 먹어서 엉망인데다 손잡이는 자꾸 미끄러져 애를 먹고 있는데, 옆에 있던 웬 강아지가 티에 공을 올려놓으면 냉큼 물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강아지를 품에 안고 착하다, 착하다, 해줬더니 그 말을 알아들었다는 듯 점잖게 앉아 있어 주었다.
그러고 나서 바로 나는 내 생에 가장 환상적인 임팩트로 완벽한 샷을 쳤었다. 그리고 몇 년 후, TV에서 애리조나에서 열린 골프 대회를 보고 그린이 너무 환상적으로 보여서 문득 결심하게 되었다. 애리조나에 가서 포르투갈 강아지가 선사해 준 샷을 쳐보고 말겠다고... 이렇게 해서 애리조나가 내 꿈이 된 것이라고 나는 미스 사쿠란보에게 말해 주었다.5. 미국, 워싱턴, 브레턴우즈 골프 코스
미스 사쿠란보는 이틀 먼저 일본으로 돌아가고, 여행에서 혼자 남은 나는 지독한 외로움과 싸우다 문득 겐타로를 생각했다. 겐타로의 친구한테 전화를 해서 응답기에 열심히 하라고 전해 달라는 한 마디만 남기고, 친구를 만나러 갔다. 그 친구는 특수 소재 스포츠 양말 제조업체의 에이전트로 일하면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덕에 말리부 해안가에 개인용 해변이 딸린 집을 갖고 있다.
그와 점심을 먹으면서 겐타로 얘기를 꺼내며 미국 프로 골프계에 대한 정보를 들었다. 일본 프로 출신도 아니고, 스폰서도 없는 겐타로가 그나마 쉽게 진출할 수 있는 방법은 플로리다에서 열리는 벤 호건 투어라고 한다. 그의 행보는 알지 못했지만 나는 플로리다로 가기로 결심했다.
6. 싱가포르, 싱가포르 아이슬란드 골프 코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하니 조스 미즈키가 마중을 나와 있었다. 옛날에 가지고 있던 사무실과 사원을 다 정리하고 혼자 일해왔지만, 시골 고등학교 출신의 평범한 그가 내게 찾아왔을 때 에로비디오 쪽에 연줄이 닿는다는 자기 소개가 마음에 들어 그를 고용하기로 했었다. 사원이라고는 해도, 미즈키는 비디오 판매회사나 위성방송 전문방송국, 정보 임대업 같은 회사에도 몇 군데 몸을 담고 있고 사무실도 없으므로 일주일에 한두 번 호텔 방에서 만나 잡담을 하거나 술을 마시러 갈 때 데리고 가는 정도다. 하지만 영어도 하고 기획력도 있는데다 가끔씩 놀라울 정도로 일처리를 해내곤 하는 실력 있는 녀석임에는 분명하다.
집에 도착해서 그 동안 온 팩스와 자동응답기에 녹음된 내용을 정리하다 겐타로의 편지를 찾아 봤지만 오지 않았다. 여태까지 오던 간격으로 봐서 다음 편지는 육 개월 정도 뒤에나 올 것 같다.
겐타로, 또 그 녀석을 생각하고 말았다. 아무래도 나는 그 녀석에게 지나친 기대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허나 겐타로는 이해하기 쉽다. 원칙이나 결승점은 이해하기 어려워서는 안 된다. 우리와 겐타로는 무엇이 다른 걸까? 말리부에 대저택을 갖고 있는 친구는 겐타로를 부러워하는 나를 이해했다. 겐타로는 처음부터 세계에 스며들었다. 바야흐로 녀석은 일본의 외환 보유고와는 무관한, 세계라는 놀이터 속에서 결승점을 두려 하고 있다.
7. 미국, 마이애미, 도럴 골프 코스
업무를 위해 자주 이용하는 호텔방에 미즈키가 찾아와,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걸었다. 지루한 서류에 묻혀 있던 나는 그가 흥분했을 때만 짓는 얼굴에 관심을 보이며 그를 주시했다. 그는 뉴욕에 있는 그의 친구가 헨리 루코너라는 유명한 뮤지컬 연출가의 차기작 프로듀스를 의뢰 받았다는 사실을 얘기했다. 엄청난 자본이 드는 큰 기획이라 그 친구가 그런 인물이었나 놀라워하고 있는데, 미즈키는 우리가 해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나의 의중을 묻는다.
8. 미국, 조지아,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 코스
헨리 루코너라... 나는 그 이름을 입에 담은 즉시 내 안에서 거품방울이 생기는 걸 알 수 있었다.거품방울은 내 안에서 점점 커져갔다. 끓어 넘치기 직전의 냄비 속과 같았다. 그 느낌을 오랫동안 잊고 살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를테면 골프만이 삶의 보람인 인간이 라운드하기 전, 온몸으로 느끼는 것, 그것과는 다르다. ... 아니, 골프로만 한정해서 말하자면 일반 플레이어와 거품방울은 인연이 없을 것이다. 선택된 아주 극소수의 프로가 메이저 토너먼트에서나 몇 번 느낄 수 있는 ‘내겐 신이 함께 한다.’ 하는 생각에 가까울지 모른다.
50미터마다 자동판매기가 있는 상황에서 자란 미즈키와는 세대 차이를 느낀다. 돌려 말하는 법이 없고, 하고 싶다, 아니다, 싸다, 비싸다, 가격, 필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만 말한다. 그도 헨리 루코너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걸 알지만, 그 프로듀스를 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자부심도 겁도 없다. 자신이 과연 그 일을 할 만한 사람인가, 하는 망설임도 없다.
브로드웨이 뮤지컬은 어린 시절을 기지촌에서 보낸 나에겐 평생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꿈이었다. 아무튼 미즈키는 이런 나를 이해하는지 못하는지 관심이 있다고 판단되자 기뻐하며, 모험이긴 하지만 대행사 없이 일을 추진해보자고 방안을 제시했다.
9. 미국, 로스앤젤레스, 랜초 파크 골프 코스
겐타로에게서 네 번째 편지가 도착했다. 엽서라 짧은 내용이었고 디즈니랜드의 미키마우스가 그려져 있어, ‘카기야 씨, 절 기억하고 계십니까?’로 시작되는, 브라질에서 질 낮은 공책을 뜯어 빽빽이 적어 보낸 편지와 대조적이었다. 그는 미국은 정이 가지 않는 곳이라는 말과 함께 플로리다에 간다고 했다.
미즈키의 보고에 의하면 루코너는 아무런 간섭 없이 자기 뜻대로 연출을 해보고 싶어서 수익에 익숙한 미국 자본이 아닌 새로운 프로듀서를 찾는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더더욱 그의 이름만으로 돈을 빌릴 수가 없다. 나는 집을 담보로 우선 그가 필요로 하는 50만 달러를 빌려 계약을 따보기로 했다. 그렇게 획기적인 프로듀스가 시작된 날 밤, 나는 겐타로의 편지와 엽서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그리고 ‘겐타로, 나도 시작했다구.’ 하고 편지에 대고 중얼거렸다.
10. 미국, 마우이, 카팔루아 골프 코스
50만 달러를 송금한 뒤, 임시 계약서와 기획서가 도착했다. 그 서류들을 빠르게 번역해 온 미즈키에게는 몇 명의 부하들이 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돈이나 연줄도 없고, 시스템이나 자기 위치가 정해지는 직장도 싫어하는 놈들이라고 한다. 그 이상야릇한 젊은이들을 보고 있으면 변화의 조짐이 느껴지곤 한다. 요즘엔 대기업이나 공무원을 지향하는 놈들은, 규모가 큰 하드웨어 상품 개발을 하고 싶은 놈이거나 아이디어와 의지가 없는 놈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스패니시. 삼바 & 브라질리안. 플라멩코>라는 제목을 단 뮤지컬의 기획서는 일본에선 볼 수 없을 정도로 정교했지만 헨리 루코너의 명성만을 토대로 했다는 약점이 있었다. 우리는 일단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권리를 확인한 뒤 헨리 루코너의 초대로 그의 별장이 있는 하와이로 향했다.
11. 모로코, 탕헤르, 탕헤르 골프 코스
루코너가 초대하긴 했지만, 비행기 표도 마중 나와 있는 사람도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호놀루루 공항에 도착했을 때, 미즈키가 청소부 아주머니와 부딪혀 주소가 적혀 있던 유일한 종이가 날아가버리는 사고가 일어났다. 미즈키가 여기저기 알아보려 시도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예전부터 많은 일본인이 꿈꾸었고, 요즘도 연예인이나 지방 사람들이 더욱 동경해 마지않는다는 하와이 제도의 반짝거리는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며, 천만 달러 가까이 되는 기획을 추진하는 마흔 살 남자와 그의 조수인 20대 후반의 남자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그들은 그 기획의 중심이 되는 인물을 만나러 왔으면서도 어디로 가야 할 지를 모른다.
12. 영국, 런던, 웬트워스 골프 코스
다행히 헨리 루코너가 마중을 나왔다. 루코너는 모든 게 영국풍인 사람이었다. 그의 별장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나는 마치 동경하는 연예인을 만난 고등학생처럼 긴장하고 있었지만 미즈키는 도가 지나칠 정도로 신이 나 했다. 그의 콘도미니엄은 그의 지위와 명성에 비해 검소하단 느낌이 들었다.
나와 미즈키 그리고 루코너는 근처 골프 클럽에 가서 골프를 쳤다. 운동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종목으로는 골프가 최적인 것 같다. 너무 긴장한 탓에 나는 계속 실수타를 연발했고, 미즈키는 워낙 실력이 없었다. 루코너 역시 잘 치는 플레이어는 아닌 것 같지만, 일본에서 프로듀서를 하겠다고 날아온 사람들이 우습게 보이지 않을까 생각하니 더욱 긴장되었다.
13. 일본, 이토, 가와나 호텔, 오시마 코스
절망하자, 하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공 말고 다른 생각은 모두 머리 속에서 지워 버렸다. 미즈키의 실실 웃는 얼굴과, 헨리 루코나란 존재, 여기가 마우이라는 의식, 미스 사쿠란보의 황금빛 엉덩이, 모두 간신히 떨쳐버렸다. 미리 지불한 50만 달러란 금액만이 한쪽 구석에 남아 헛헛한 마음이 커져만 갔고, 그것은 다시 절망감에 보탬이 됐다.
이렇게 마음을 비우고 치자, 내 실력을 회복했고 그러면서 점점 그와의 대화에도 익숙해져 갔다.
14. 미국, 플로리다, 올랜도, 레이크노나 골프 코스
헨리는 내 상상 속에나 존재하던 미국인 특유의 호탕한 웃음을 터뜨리며 내 말을 받아쳐 준다. 내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긴장하지 않던 미즈키는 초보자인 제 실력대로 계속해서 실수를 연발하며 우리들의 놀림을 받았다. 이렇게 헨리의 만남은 시작되었다.
15. 독일, 프랑크푸르트, 크론부르크 호텔 골프 코스
콘도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같이 만들어 먹고, 한숨 돌릴 때쯤 되자 헨리가 - 우리가 밖으로 나가기를 꺼려한다는 '일본인'임에도 불구하고 - 왜 자기의 뮤지컬을 후원할 생각을 했는지 물어왔다. 나는 어린 시절 기지촌에서 미국을 세계 자체로 여기며,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좋아해 왔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낭만적인 꿈을 꾸는 건 아니라고 분명히 밝혔다. 나에게는 사업가로서 그에 대한 확신이 있었던 것이다.
16.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 와일드 듄 골프 코스
나와 미즈키는 헨리 루코너의 빌라에서 나흘 동안 묵었다. 모든 게 우호적으로, 평화적으로 지나갔다. 사흘째 되는 날 헨리의 에이전트가 계약서를 들고 와, 정식 계약에 사인을 하고 자금 마련에 대한 중압감과 함께 일본행 하와이안 에어에 올랐다. 오랜만에 겐타로에게서 편지가 왔다.
겐타로는 편지에 나라를 버렸다고 썼다. 나는 해외를 나다니며 대도시의 별 다섯 개 짜리 호텔이나 개인용 수영장이 달린 리조트 빌라에 머물면서 여러 회의에 참가했다. 단지 그것만으로도, 어쩐지 일본과는 관계없이 살며 내키는 대로 즐기고 있다는 착각에 빠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