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센트
다구치 란디 지음 | 한숲
"이것은 오빠가 내게 보내는 메시지인지도 몰라요. 오빠는 죽기 전에 내게 콘센트 이야기
를 해준 적이 있어요." 내 말을 들은 청년은 펜치로 콘센트 코드 끝을 잘라서 내게 주었 다. 자른 코드 부분에 가는 선이 드러나 있었다. 내 손안에 놓은 콘센트는 말라붙은 새의 다리 같았다.비디오 속의 소년은 마치 자신이 전기로 움직이는 기계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인 간이기를 거부하고 기계로서 사는 것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것은 왜일까. 아마도 기계인 쪽이 그에게는 살기 편했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왜일까. 어떤 원인의 결과일까... 그런 일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오빠 역시 스스로 콘센트를 뺀 것인지도 모른다.콘센트를 뺀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려 정신을 차렸다. 기무라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밝은 목소리로 내가 안고 있는 문제를 같이 풀어가자고 한다. 기무라에 의하면 우리가 처음 밤을 보낸 날 내가 천장 구석을 쳐다보며 오빠가 저기 있다고 중얼거렸다고 한다.
11. 또 꿈을 꿨다. 대학 시절로 돌아가 온천으로 심리학 합숙 세미나를 온 것 같다. 구니사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나를 애무하고 있다가 사람들이 들어오자 옷장 안으로 숨어버린다. 뭔가를 눈치챈 듯한 혼다 리츠코가 경멸하는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12. 구니사다에게 그와 섹스하는 꿈을 꿨다고 말해주었다. 그는 묵묵히 듣고 있다가 내가 자기를 아직 믿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나는 자기를 매정하게 차버린 나를 미워하지 않느냐고 오랫동안 참아 오던 질문을 던졌다. 구니사다는 많이 괴로웠지만 실연이라는 것은 자기 동일성의 위기라는 이론을 몸으로 깨달은 귀중한 체험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 나를 상담해 주는 것은 의사로서 당연한 것이라고 못박았다.
나는 분명 구니사다를 신뢰하지 않는다. 기무라와 자던 날과 고향의 건널목에서 오빠의 모습을 본 일은 말하지 않았다. 심리학적으로 냉정히 말하면 그것은 내가 만들어 낸 환영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
연구실에서 나와 멍청히 대학 캠퍼스를 걷고 있는데, 신기하게도 진짜 혼다 리츠코를 만났다. 점점 선명해지는 기억을 따라가다 보니 대학 시절 나는 여장부 스타일의 그녀에게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던 게 생각났다. 하지만 믿어지지 않게도 리츠코는 나를 질투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나는 그때 구니사다에게 빠져 같은 또래의 남자들에겐 관심이 없었지만, 그녀의 말에 의하면 모든 남학생들이 나와 사귀고 싶어했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나에게 뭔가 다른 특별한 것이 있는 것처럼 느꼈다며 관심을 가졌었다고 했다.
이성적인 면이 강했던 리츠코였지만 지금은 예상외로 샤머니즘을 테마로 연구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네오 샤머니즘 시대라고 할 정도로 샤먼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어쨌건 간에 나는 샤먼은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낼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리츠코의 일에 흥미가 갔다. 만약 그게 정말이라면 오빠의 영혼을 불러 왜 죽었는지 꼭 묻고 싶었다.13. 난 오빠의 죽음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리츠코의 말대로 샤먼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기무라에게 전화를 걸어 함께 가달라고 말했으나, 힘이 없는 그의 목소리로부터 뜻밖의 대답을 들어야 했다. 냄새가 난다는 내 말을 듣고 혹시나 싶어 병원에 가봤더니, 몸에 종양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으스스한 한기가 느껴졌다.
방바닥에 주저앉아 정말 내가 맡은 죽음의 냄새가 암세포의 냄새였을까. 내가 지금까지 믿고 살아 온 현실이 무너져 내리는 듯했다. 불쑥 오빠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빠의 자취가 느껴져 옆을 돌아보니 오빠가 있었다. 마치 현실처럼 슬퍼 보이는 그의 얼굴에서는 숨결이 느껴졌다. '이건 현실이 아냐. 환상이야.' 현관의 벨소리가 울리자, 꿈에서 깬 것처럼 오빠가 사라졌다. 꿈이 새고 있다.
14. 구니사다에게 <세계 잔혹 이야기>에 나오는 소년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오빠의 죽음은 조금도 이상스러운 것이 아니며 내가 콘센트에 집착하는 것은 별다른 문제일 거라고 잘라 말했다. 돌아오는 길에 리츠코를 만났다. 내 상황에 대한 얘기를 들은 그녀는 내가 분명히 샤먼일 거라고 확신하듯 말했다.
리츠코를 따라 샤먼이 있는 카페에 가서 대마를 피웠다. 새벽녘이 다 되어 내가 정신을 차린 곳은 어느 공원의 공중 화장실이었다. 그 곳에서 중국인처럼 보이는 남자와 창녀처럼 섹스를 했다. 그는 옛날에 나 같은 여자가 상하이에 있었다며, 그 여자는 바로 세상 저편과 연결된 여자라고 했다. 섹스를 하면서도 이게 꿈일까, 현실일까... 줄곧 혼란스러웠다.
15. 구니사다에게 오빠의 환영을 본 얘기를 하고 말았다. 그는 내가 오빠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죄책감에 대해 말했다. 내가 오빠의 존재를 귀찮아하고 자기도 모르게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죽음을 냉정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불쾌하게 일어서는 나에게 그는 대학동창인 야마기시 군을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16. 혼다 리츠코를 만나 야마기시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다. 리츠코는 왠지 쌀쌀맞게 그를 안다고 대답하고서 지금은 의대에서 트랜스 퍼스널에 조예가 깊은 정신과 의사며, 대학 시절에 나의 팬이었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는 야마기시를 이지적이고 제어된 현대풍 샤먼으로 본다며 그런 면에서 나와 비슷한 것 같다고 했다.
야마기시는 나의 전화를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받으며 심야의 대학병원으로 약속을 정했다. 처음부터 구니사다의 얘기를 꺼내면서 기분 나쁘게 날 빈정댔다. 난 꾹 참고 콘센트에 대해 알고 싶다고 말했고 야마기시는 오빠의 쇠약사를 일종의 자발성 트랜스가 아닐까 하고 추측했다.
자발성 트랜스는 스스로 자신의 의식을 몸에서 빼거나 넣을 수 있는 경우이고, 주어진 재능과 수행을 통해 얻어지는 일종의 능력이라고 한다. 수행이라는 말에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오빠를 보고 있으면 어딘가 수행자 같다는 느낌이 들곤 했던 것이다. 자발성 트랜스가 가능한 사람들은 그런 트랜스 상태에 빠지는 것을 하나 같이 '콘센트를 뺀다'고 표현한다고 했다.
야마기시는 <세계 잔혹 이야기>의 콘센트 소년 얘기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오빠의 경우도 자신만이 아는 세계와 현실을 혼자 왔다갔다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니까 곧 콘센트를 완전히 빼낸 것이 죽음이 된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해석보다도 가슴에 와 닿는 것 같았다. 이 남자와 좀더 함께 있고 싶었다.
17. 야마기시는 먼저 호텔로 가자고 제안했던 것과는 달리 섹스에는 관심도 없었다는 듯 아주 평범하고 담백하게 끝냈다. 그리고 나에겐 내재된 힘이 있으니 더 이상 더러운 속물 구니사다와는 만날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지금 자신은 10년 전 자신의 미래라고 말했다. 내가 늙은 교수에게 빠져있을 때 자기는 나만 보고 있었다면서...
구니사다와의 섹스를 기억해 보았다. 그는 점점 직접 삽입하지 않고 아이가 엄마 젖을 빨 듯 내 유두만 빨아댔었다. 그리고 어느 날 러브호텔에서 나오는 길에 어떤 장소에 어떤 여자와 자기의 과거가 묻혀있다며 연극 대사처럼 읊조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난 전이에서 벗어났다. 정말이지 어이없게 두 사람의 관계는 끝났다.나는 남자의 페니스를 입에 넣고 혀로 부드럽게 자극했다. 입 속에서 그것이 조금씩 커지 면서 떨었다. 그래 좀더. 자신의 진동을 느껴봐. 그것이 당신이 살아가는 힘을 줄 테니 까. 당신의 생명의 진동을 떠올리는 거야. 이 남자는 내 속에서 어떤 관능을 떠올리게 될 까. 난 생각만 해도 젖는 것 같다. 이제 콘센트를 꽂을 시간이다.2. 밤 8시쯤 고후 분지 근처의 역에 도착해 예전과 달리 깨끗이 포장된 논길을 따라 집을 향해 걸었다. 오빠도 자주 이 길로 학교에 다녔다. 내가 어렸을 때 오빠는 나를 무척 괴롭혔다. 처음엔 장난으로 하다가 어느 순간 몰입하기 시작하면, 눈에 초점을 잃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에 휩싸인 채 나를 계속 때렸다. 그런 때는 이 사람에게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가로등 불이 미치지 않는 논둑 길의 어둠 속에 하얀 그림자가 움직였다. 시로였다. 시로는 어릴 적 오빠가 아끼던 하얀 개인데, 어느 날 만취한 아버지가 오빠가 보는 앞에서 시로를 때려 죽였다. '지금 이 개가 시로일 리가 없어.' 그것은 이미 20년이나 지난 옛날 일이었다. 나는 개의 뒤를 쫓아 걸었다.
시로는 건널목 앞에서 나를 한 번 돌아보고 짖더니 건너편으로 달려갔다. 사고가 많아서 '사람잡는 건널목'이라 불리는 곳이다. 건널목 저편의 어둠 속에서 시로와 나란히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그 사람은 내 쪽을 돌아보지 않았지만, 등이 굽고 여윈 뒷모습은 틀림없이 오빠였다. "오빠!" 하고 몇 번 부르자 그 사람은 돌아보려 했지만, 그 순간 굉음을 울리며 나타난 전철이 갑자기 시야를 가로막았다. 전철이 지나간 후에는 시로도 오빠의 모습도 찾아 볼 수 없었다.
건널목에서 오빠를 봤다는 내 말에 아버지는 술 냄새를 풍기면서 나의 멱살을 잡더니 오빠는 죽어서 끔찍한 모습으로 이미 썩고 있었다고 말했다. 사인을 물었지만, 엄마마저도 침묵할 뿐이다. '맞아, 이 사람들은 언제나 중요한 것은 무엇 하나 말해주지 않았어.'
3. 오빠의 시체는 부동산 여직원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오빠는 두 달 전 아파트를 계약하고 2개월 분의 방세를 미리 지불했다고 한다. 선불한 두 달이 지났지만 방세가 들어오지 않자 부동산에서 여직원을 오빠의 아파트로 보냈던 것이다. 여직원은 아파트에 들어서기도 전에 생선이 썩는 듯한 이상한 냄새를 맡았다고 했다.
다음날 나는 술에 취한 아버지와 함께 아파트를 찾았다. 심한 냄새에 이웃 주민들은 손수건으로 입을 막고 우리를 훔쳐보고 있었다. 사체가 있던 부엌의 타일바닥에는 엄청난 양의 검붉은 피가 젤리처럼 응고되어 있었고 그 속에서 구더기가 꾸물대고 있었다. 나는 생전에 오빠가 좋아하던 콜라를 굳어가는 피 앞에 따놓았다.
죽은 그의 방에서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청소기였다. 마치 청소를 시작하려고 막 콘센트에 꽂아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오빠는 왜 청소를 그만 둔 것일까.' 오빠가 죽은 지금 그 이유는 알 도리가 없다. 어쨌든 오빠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며칠을 누운 상태로 지낸 것처럼 방에는 아무런 생활의 흔적을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고향집에 돌아오자 장의사에서 한 남자가 와 있었다. 남겨진 가족에게 끔찍하고도 현실적인 결단을 요구하는 그의 표정 없는 얼굴을 대하고 있자니, 어떤 의미에서는 그가 고맙게 느껴졌다. 그와 협의하며 밤샘과 장례식을 치르는 이틀 동안 나는 장의사에게 기묘한 동료의식 같은 것을 느꼈다. 그에게 오빠의 부고를 듣고 오는 길에 건널목에서 오빠의 모습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리고 자기 경험상 장례식이 지역적으로 몰리는 현상을 매번 겪는다며 죽은 자는 서로 부르는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4. 현기증이 날 정도로 무더운 날씨에 나는 오빠의 아파트에서 소독회사의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말쑥한 얼굴을 한 소독회사의 주임인 젊은 청년은 장의사 남자처럼 이런 일에 있어서 프로인 것 같았다. 나는 그에게 사람이 죽은 장소를 보면 뭔가 죽은 사람이 남기는 메시지가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그런 경험이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오빠 방은 아무리 둘러봐도 청소기의 콘센트 외엔 특별히 눈에 띄는 게 없었다.5. 기무라는 내 소파에 앉아 그 날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나는 술에 취한 채로 무작정 러브호텔로 가자고 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척하고 있었다. 기무라는 약간 실망한 듯 했지만, 내가 다시 그를 불러 줘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고 기무라는 자신의 입술을 내 입술에 포갰다. 그 순간 역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했다. 오빠의 방에서 맡았던 죽음의 냄새가 그에게서 났던 것이다.
그에게 냄새가 난다는 사실을 말했더니 그는 친절하게도 모두 이해한다면서 내 손을 잡아주었다. 내 코는 오빠의 죽음에 대한 쇼크로 인해 과민해진 것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이 냄새는 환상일까. 일시적인 것일까. 아니면 계속될까. 문득 고향집으로 가던 건널목에서 본 사람의 모습이 분명 오빠라는 확신이 들었다. 기무라의 말대로 나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오빠의 죽음에 대해 쇼크를 받았는지도 모른다.
6. 졸업 후 처음으로 대학을 찾았다. 이 곳으로 오는 길에도 내내 시체가 썩어가던 냄새 입자를 맡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그 냄새를 맡으면 아련한 그리움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래. 오빠의 시체가 썩어 가던 냄새야...'
오래된 대학 건물의 복도를 지나 '심리학 연구실'이라 쓰여진 낡은 간판 앞에 멈춰 섰다. 나는 아직 구니사다 아츠오를 만나는 것을 주저하고 있었다. 나는 대학 시절 그 교수의 연구실에서 심리학을 배웠다. 심리분석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카운셀러에게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되는 일이 흔히 있는데 이를 '전이'라 한다. 그와 나도 '전이'와 '역전이'로 인해 열애에 빠져버린 사제지간이었다.
그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는 심정을 이성적으로는 전이라고 인정하고 싶었지만 그에 대한 감정과 욕망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냉정하던 그도 1년이 지나자 나를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우리는 만날 때마다 거의 매번 섹스를 했다. 하지만 그는 점점 더 변태적인 것을 나에게 요구했고, 전이가 사라져버린 어느 날 나는 그를 깨끗이 차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그가 나의 부탁을 들어줄까 걱정하는 마음으로 그를 마주했다. 구니사다는 냉소적이면서도 사무적인 태도로 나의 방문과 오빠의 죽음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나는 그에게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오빠가 '경계성 인격장애' 진단을 받았던 사실과 그의 죽음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그에게 상담 받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오빠는 졸업식날 친구들에게서 따돌림을 받은 이후 다른 곳으로 직장을 잡아 고향을 떠났다. 그 뒤로도 수없이 직장을 옮겨다니면서 끝내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마지막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집으로 돌아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아버지는 그런 그를 참아내지 못했다. 서로 폭력을 휘둘렀고 가족간에 살인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나는 그를 나의 자취방으로 데려왔다. 가족간의 카운셀링은 99% 실패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오빠는 내 말은 잘 듣는 편이었고 나를 도와주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런 어설픈 모습이 나를 우울하게 만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오히려 내가 그를 견딜 수 없어 그때부터 나는 남자친구 집에서 지내는 날이 많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오빠가 없어져버렸다. 아버지에게서 부모 자식간의 연을 끊는 위자료 조로 100만 엔을 받아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리고 두 달 후 그는 썩은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다.나는 이런 결과를 예감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왜 그런 결과를 예감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알고 있을지 모르는 그 무언가를 숨기고 있었고 지금 그 숨겨진 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구니사다는 이런 내 두려움과 예민해진 내 후각에 대한 얘기를 다 듣고 나서 나에게 분명한 환자로서 카운셀링을 받을 것을 제안했다. 다음 약속을 정한 후 그는 끝까지 나를 사무적인 태도로 대했고, 나는 그런 그의 모습에 상처를 받았다. 내가 상처를 받다니... 이미 구니사다에게 의존하게 된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