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시
살만 루시디 지음 | 문학세계사
악마의 시 (상⋅하)
살만 루시디 지음
문학세계사 / 2001년 / 429쪽⋅382쪽 / 각권 8,800원
이렇게 유랑하고 배회하며 떠돌아야 하는 처지이기에 사탄에게는 일정한 거처가 없다. 비록 천사의 본성을 지녀 황량한 물 속이나 대기 중에 자신의 왕국을 세웠으되, 어떤 장소나 공간을 정해놓고 지친 발을 쉬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에게 주어진 형벌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대니얼 디포, <악마의 역사>
1. 천사 지브릴
인도의 전설적인 영화 배우 지브릴 파리슈타와 인도인 영국 성우 살라딘 참차가 공중에서 영국 해협을 향해 떨어지고 있다. 비행기가 폭파됐고, 그들은 유일한 생존자였다. 낙하하면서 지브릴과 살라딘은 서로 대화를 나누고 노래도 부른다.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며 변해가는 구름을 보며 무의식 상태로 빠져들려는 찰라,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에서 융단을 탄 레카 메르찬트의 모습이 나타났다. 지브릴은 그녀에게 인사를 하지만, 살라딘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살아남은 것을 순전히 우연으로 믿게 될 터이지만, 살라딘 참차에게는 지금 이 순간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밖에 없다. 그 의지는 급기야 몸밖으로 빠져 나와 지브릴에게 “날아. 노래해”하고 명령한다. 지브릴은 이 기적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명령대로 노래하며 양손을 날개처럼 퍼덕인 덕분에 종잇장처럼 해협 위로 사뿐히 내려앉게 된 것이다.
이 일은 참차가 의지력으로 원했고 그 의지에 따라 파리슈타가 이루어냈다. 그렇다면 기적을 일으킨 사람은 어느 쪽일까? 파리슈타의 노래는 천사의 노래인가? 악마의 노래인가? 눈 덮인 영국 해변에서 그들은 실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지브릴은 원래 이즈마일 나즈무딘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지브릴 파리슈타란 가명은 일찍 죽은 어머니를 기리기 위한 그의 선택이었다. 파리슈타는 그의 어머니가 항상 그를 ‘천사(파리슈타)’라고 부른 데서 따온 것이다. 아버지는 봄베이의 발빠른 도시락 배달원(다바왈라)였고, 그도 열세 살 때부터 그 일을 함께 했었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죽은 부인이 아들에게만 쏟던 사랑에 대한 질투로 그녀가 죽은 후, 아들과 경쟁하듯 지나치게 열심히 도시락 배달 일을 하다가 그만 과로로 죽고 말았다. 고아가 된 지브릴을 자식이 없는 그 도시의 막강한 부호가 집으로 불려들여 일을 시키며 거뒀으나, 보통 인물이 아닌 지브릴을 알아보고 은막의 스타가 될 수 있게 다 자란 그를 내보냈다.
그 후 15년간 지브릴은 수많은 신화영화에서 종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신을 연기해내 인도 최고의 스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사라져버려 수많은 추종자들과 언론에게 걱정과 궁금증을 안겨 준다. 그 갑작스런 사라짐이 있기 전 그는 현대 의학으로는 알 수 없는 온몸의 혈관이 터지는 희귀한 병에 걸렸다가 갑자기 신비롭고도 신속하게 나은 적이 있었다. 그가 병상에서 몸을 일으키자마자 찾아간 곳이 금지된 음식들로 가득 찬 테이블이 있는 대식당이었다.
“알라시여, 그곳에 계시옵소서, 빌어먹을, 제발 있으시란 말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이제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어도 상관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이 변신의 날부터 병세가 변화를 보였고 회복이 시작되었다.
병을 앓는 동안에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신에게 간절히 애원했으나, 회복하면서부터 마치 자신에게 신의 부재를 증명이라도 하듯 지브릴은 그 곳에서 허겁지겁 죽은 돼지들을 입안으로 쑤셔 넣었다. 문득 접시에서 고개를 들자, 백발 같은 연한 금발과 산정의 얼음처럼 맑고 투명한 피부를 가진 레카 메르찬트가 그 곳에 서 있었다. 그녀는 지브릴이 부정하게도 금지된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도 살아 있다는 것과 생명을 되찾은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브릴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고, 3일간의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왜 떠났느냐고? 그녀 때문에, 그녀의 도발적인 발언, 그 새로움 때문에. 또는 어쩌면 돼지를 먹은 후로 시작된 응징, 밤의 응징, 즉 꿈이라는 형벌 때문에.
살라딘 참차는 봄베이의 스캔들 곶에서 대단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를 항상 감시하고 자유를 빼앗는 아버지의 나라 인도를 떠나 영국인이 되기를 꿈꾼다. 그리고 정말, 성년이 되던 해 영국으로 유학을 가서 영국인이 되기 위한 피나는 노력 끝에, 성우로 대성공을 거두고 흠모하던 파멜라 러블레이스, 진짜 영국 여자와 결혼도 한다.
그런데 공연을 위해 15년만에 처음으로 고향 땅을 방문하는 비행기 안에서, 참차는 공들여 만든 목소리와 말투가 원래의 사투리로 변하는 기이한 경험을 한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는 사투리를 자포자기하듯 받아들였다. 그러나 고향 사람들은 영국인을 흉내내는 그를 경멸했다. 특히 아버지는 놀랍게도 하인에게 어머니의 옷을 입혀놓는 등 집을 그대로 보존시키기 위해 애쓰는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를 보고 변태 같다며 탓하는, 이미 변해버린 아들을 받아주지 않는다. 아버지를 거부하는 것은 참차도 마찬가지다.
살라딘은 그 길로 인도를 떠나 영국행 비행기-보스턴호-를 타는데, 옆자리에 지브릴 파리슈타가 앉게 된다. 잠이 두려워 뜬눈으로 보내는 지브릴은 살라딘에게 자신의 연속적이고도 신비한 꿈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런데 보스턴호는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점령된 것이었고, 당국과의 협상이 순조로워지지 않자 테러리스트는 폭탄 동반 자살을 한다. 그로 인한 비행기 폭파가 유일한 두 생존자 살라딘과 지브릴의 운명을 바꿔놓는다.
2. 마훈드
지브릴은 꿈속에서 자할리아(메카를 가리킴)의 마훈드가 된다. 자할리아는 사막에 세워진 기적 같은 도시이다. 장사꾼 마훈드는 이 곳에서는 예언자 마훈드이다. 자할리아의 대공은 카림 아부 심벨로, 도시의 우두머리이자 갑부, 최고의 미녀인 아름답고 사나운 힌드의 남편이다. 콘 산을 넘어 오는 마훈드의 등장은 그런 그의 위기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마훈드의 시대에는 수세기 동안 순례자들의 어루만짐을 받아 검게 변한 신이 내려주신 돌 이외에 자그마치 삼백 육십 개의 석상이 있었다. 대공 아부 심벨과 아내 힌드, 그의 가족은 가장 높으신 여신, 모신인 라트 신전을 관리한다. 아부 심벨의 건의에 따라 이 번성한 도시 자할리아의 지배자들은 종교 의식에 곁들일 매혹적인 세속적 요소들을 곁들였다. 그리하여 이 도시는 방탕한 곳으로도 명성을 얻고 있었다. 아내 힌드는 여러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 했는데, 시인 바알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대공은 마훈드에게 그의 집에 있는 삼백 육십 개의 우상 중 세 여신에 대해서만은 예배를 드리게 해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마훈드는 신께서 말씀하신 ‘양보’의 미덕으로 허락하려 하나, 그의 제자 넷은 ‘신 이외의 신은 없다!’고 소리치며 반대한다. 하지만 마훈드는 하나의 신만을 고집하고 집착하는 그들을 조롱하는 사방의 목소리를 빌어 반대하는 이들을 비웃는다.
지브릴, 꿈꾸는 자. 그의 시선은 카메라의 시선처럼 움직이기도 하고, 구경꾼의 시선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느닷없이 마훈드의 질문이 지브릴에게 향한다. 그는 어느새 마훈드에게 예언을 하고 그의 몸 속을 드나드는 ‘대천사 지브릴’로서 주인공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끊임없이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인가’
마훈드는 시의 천막에 들어서서 위대하신 분의 시를 읊는다. ‘자비롭고 너그러우신 알라의 이름으로!’로 시작된 이 시는 결국 이 도시의 세 여신을 인정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자신들의 신을 인정해 준 위대한 예언자를 향해 사람들은 무릎을 꿇지만, 마훈드의 제자들은 이 악마의 시를 듣고 눈물을 흘린다.
그러나 대천사 지브릴이 언덕에 나타나 그를 때려눕힌 후, 마훈드는 깨닫는다. 지난번의 예언은 악마가 들려 준 것이며, 이번 예언이 진짜라고. 급히 도시로 돌아가 악마의 시를 부인하고 소요가 일기 전에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온다. 새 종교의 이름은 ‘순종’(이슬람이란 말의 본뜻)이었고, 대공은 이에 대한 박해 정책을 실시하였고, 힌드의 분노에 찬 복수가 예상되었다. 따라서 ‘순종교도’ 중에서 자힐리아를 떠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북쪽의 또 다른 오아시스 마을인 야트리브가 받아주겠다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콘 산의 봉우리에서 지브릴은 자힐리아의 순종교자들과 마훈드가 탈출하는 것을 본다. 오늘날 ‘순종’이란 대체 무엇이더냐? 겁 많은 것. 남몰래 도망치는 것.
3. 엘오엔 디오엔
노파 로사 다이아몬드는 유령이란 ‘끝맺지 못한 일’이라고 중얼거리고 있다. 지브릴과 참차는 그녀가 말도 안되게도 소유욕을 지나치게 행사하던 흰 눈으로 덮인 해변에 도착했다. 지브릴은 벌떡 일어나 참차에게 생일을 축하한다고 말했고, 눈을 보고 기뻐 마지않는 그에게서 내내 풍기던 악취도 사라져있었다. 대신 살라딘 참차에게 지독한 악취가 생겼다. 뿐만 아니라 경찰이 그를 체포하러 왔을 땐 그의 하체는 염소처럼 변해 있었고 머리에는 뿔이 났다.
어린 시절부터 주문처럼 꿈의 도시를 뜻하는 ‘엘오엔 디오엔’ 런던하며 영국을 꿈꾸고, 피나는 노력 끝에 영국인이 된 그였다. 그런데, 지금은 영국인이라고 아무리 외쳐봤자 아무도 믿을 수 없는 모습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가 체포될 때,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브릴의 머리 뒤에는 후광이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지브릴은 체포되는 친구 참차를 그저 방관하고 있을 뿐이었다.
참차가 끌려간 후, 지브릴 파리슈타는 늙은 영국 여자의 눈동자에 사로 잡혀 친구의 불행을 방관했던 순간이 자주 생각났다. 그는 자신의 의지가 다른 사람의 욕구에 지배당하고 있다고 느꼈다. 로사는 그에게 자주 옛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그는 그녀의 이야기 마술에 푹 빠져 애인 알리에게 연락할 생각도 않고 되찾아야 할 자신의 인생도 잊고 있었다.
한편, 경찰에 끌려간 괴물 모습의 살라딘은 굴욕적인 대접을 받고, 구타로 기절하여 병원으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살라딘처럼 형상이 동물이나 식물로 변해 가는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어느 날 밤, 그들은 이대로 당하진 않겠다며 탈출을 감행한다.
파멜라 참차는 남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동창인 점피 조시를 정부로 맞아들인다. 탈출한 살라딘이 집으로 찾아왔을 때에도 그들은 함께 있었다. 파멜라와 점피는 괴물 같은 모습으로 살아 돌아온 살라딘을 보고 비명을 지른다.
지브릴 파리슈타는 런던행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곳에서 음반업자이자 핫 왁스 나이트클럽의 주인인 마슬라마를 만나고, 그는 이 은막의 스타를 알아본다. 범신론자 마슬라마는 지브릴 영화의 팬이었다고 고백하다가 지브릴의 머리 뒤에 나타나는 후광을 보고, 그를 부활한 신으로 착각한다. 지브릴은 이 미치광이를 위해 신인 척 연기를 하고, 마슬라마는 지브릴의 추종자가 된다.
런던에 도착한 지브릴은 또 다시 레카 메르찬트에게 쫓긴다. 그의 눈에만 보이는 그녀는 지브릴을 혼자 말하고 헛것을 보는 미치광이처럼 보이게 했다. 지브릴은 그날 내내 쓰러지기 직전까지 도망쳤다. 도망치다 다다른 공원에서, 원래 지브릴이 만나고자 했던 사람, 그의 애인 알리를 만난다. 그녀는 지브릴이 자기를 떠난 줄 알았다가 비행기 폭파 소식을 듣고서는 죽은 줄 알고 슬퍼했으나, 살아 돌아온 지브릴을 따뜻하게 맞는다. “생명을 되찾은 거죠. 그게 중요해요.”
4. 아예사
지브릴의 꿈은 마흔 번째 생일날 아침, 미르자 사이드 악타르가 나비가 가득한 방안에서 잠든 아내를 바라보고 있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된다. 밤낮없이 날아다니는 이 신기한 나비떼는 내려앉는 곳에 따라 색깔이 변하였다. 이 마을의 이름의 이름이 ‘티를리푸르(나비 마을)’이 될 정도로 흔해 의식조차 하지 않게 되었지만, 미르자 사이드는 마흔 번째 생일날 아침 빛나는 나비떼를 보고 황홀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미르자 사이드의 아내 미샬은 은행장의 딸로서 쓰러져 가는 가문을 세우기 위해 선택한 중매 결혼이긴 했지만, 둘은 아이가 생기지 않아도 점점 더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아침, 미르자가 자신의 집 마당에서 나비로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 신비한 소녀, 아예사를 본 순간, 그 평온은 깨지고 만다. 간질을 앓는 그녀는 인형을 깎아 파는 고아 소녀이다. 마을 청년들은 아름다운 그녀를 호시탐탐 노렸지만, 그녀는 허공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상대방을 경멸하는 것으로 오해를 받음으로써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게다가 나비를 먹는다는 소문이 퍼지자 청년들도 더 이상 그녀를 추근대지 않았다. 오직 개종자 오스만만이 그녀에 대한 짝사랑을 버리지 않았다.
그녀가 열 아홉 살이 되었을 때, 마을의 거목 아래에서 잠을 자는 그녀의 옆에 대천사 지브릴이 누워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변하기 시작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그녀의 몸을 나비떼가 감쌌으며, 머리는 눈처럼 새하얀 백발로 변했다. 그런 모습을 하고 나타나 마을 사람들에게 지브릴의 예언이 있었으며 우리는 그 사명에 따라야 한다고 말한다. 꿈꾸는 자는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 수가 없어 황당해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생일 이후 미르자 사이드는 아내에게 뜨거운 욕망을 보여주고, 임신을 바라는 아내는 이것이 신의 계시가 아닐까 하여 남편의 말에 무조건 따른다. 사이드의 이런 욕망은 아예사로 향한 부끄러운 성욕을 감추기 위한 노력이었고, 그는 이 사실에 매우 괴로워한다. 하지만 아내 미샬은 이 나비 소녀 아예사와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며 그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했다. 마침내 아예사는 미샬이 자궁암에 걸렸다고 하면서, 지브릴의 예언에 따라 순례 길에 올라야만 치유될 수 있다고 말한다. 속임수처럼 들리는 이 말에 미르자 사이드는 길길이 날뛰지만, 아내와 딸의 위험한 병명을 듣고 이성을 잃은 은행가의 현대적 아내, 즉 그의 장모는 아예사의 말을 따르기로 한다.
아예사는 마을 사람들을 불러모아 천사께서 말씀하시기를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지금 당장 순례길에 나설 준비를 하여, 메카까지 걸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이 말에 열띤 논쟁을 벌이지만 아예사가, 곧 바다가 갈라질 것이고, 우린 그 속에서 메카까지 걸어 들어갈 것이라고 말하자 사람들은 더 이상의 의심도, 논쟁도 하지 않고 그녀를 따른다. 다음 날 아침, 온 마을 사람들의 순례 대열이 생긴다. 아픈 몸을 끌고 기어이 동참하려는 부인을 말리던 미르자 사이드도 그녀의 굳은 결심을 보기만 할 뿐, 할 수 없이 그녀를 지키기 위해, 이 미친 행렬을 중단시키기 위해 자신의 차를 타고 순례 행렬을 뒤따르기로 한다.
5. 보이지만 안 보이는 도시
참차는 염소처럼 변한 하체와 뿔이 자란 몸으로 점피의 안내에 따라 수피안의 집으로 들어선다. 카페의 주인이자 고지식한 교사이며 공산주의자인 수피안은 괴물 같은 모습의 참차를 보고 놀라기는 하나 곧 대수롭지 않은 듯 넘기며, 함께 염려해 준다. 그의 두 딸들은 발랄한 십대 후반답게 참차의 신기한 모습에 흥미를 갖고, 남성적인 매력을 느끼면서 그와 가까워지려 경쟁적으로 노력한다. 그러나 이와 상관없이 참차의 몸은 점점 더 악마처럼 변해가고 머물고 있는 런던 시 전체가 지옥으로 변해버린 것처럼 느껴졌다.
그는 생각했다. 나는 악의 화신이다.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든 간에 이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는 이제 내가 아니다, 혹은, 나만이 아니다. 나는 온갖 그릇된 것들과 ‘우리가 증오하는 모든 것’과 죄악이 유형화된 존재다. 그런데 왜? 왜 나야?
참차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벌을 받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누가 내리는 벌이지?” 나는 나름대로 선을 추구했고, 자신이 가장 선망하는 대상-영국인-이 되기 위해 매진하지 않았던가? 곧 그는 겉모습만 가지고 자신이 사악하다고 판단하지는 말자고 결론을 내린다. “악마, 염소, 샤이탄? 난 아냐. 난 아냐: 딴 놈이야. 그럼 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