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영혼 -태평광기 제2편-
작자미상 지음 | -
사랑과 영혼
태평광기(太平廣氣) 제2편
▣ 어떤 귀신? 무슨 이야기?
‘귀신의 사랑’과 ‘환생의 조건’이라는 주제의 이야기이다. 특히 여기에 소개된 작품들은 천년 이상의 먼 옛날 이야기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흥미로운 주제와 잘 짜여진 줄거리가 전개된다.
최씨 집안의 딸: 이승에서 이종 사촌과 강제 결혼을 하고, 결국 죽은 후 귀신이 되어서야 자신이 진심으로 사랑하는 유선비를 찾아가서 부부가 된다. 한 여자를 사랑했던 두 남자는 이 일을 겪고 나서, 삶과 죽음, 그리고 진정한 사랑에 대해 깨닫게 되고…
두옥: 타향에서 여행을 하던 두옥은 도중에 잠시 밤을 지내려 찾아간 집에서 그동안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친척을 만난다. 그러나 제법 높은 벼슬살이를 했던 그 친척은 알고 보니 이미 죽어서 귀신이 되어 있었고, 그러면서도 자신이 딸처럼 소중히 여기던 하녀 하나를 두옥의 아내로 삼아준다. 이때부터 두옥은 귀신 아내와 함께 낮에는 헤어져 있고, 밤에는 서로 만나는 이상한 결혼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데…
이좌문: 어느 벼슬아치의 별장에 손님으로 머물던 이좌문은 어느날 밤길을 가다가 길을 잃고, 멀리 보이는 불빛을 따라 벌판 한가운데 서 있는 오두막을 찾아가 잠시 쉬어가게 해달라고 청한다. 슬피 우는 딸아이를 이상한 말로 달래는 늙은 농부가 사는 그 집에서 밤을 보내고, 이튿날 농부가 가르쳐준 길을 따라 별장으로 돌아가던 그는 술 한 병과 지전 한움큼을 쥐고 자신이 지나온 쪽을 향해 걸어오는 한 시골 아낙과 마주친다. 그러다가 그 아낙으로부터 자신이 만난 농부와 딸이 어쩌면 이미 죽은 아낙의 남편과 딸일는지도 모른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그녀와 함께 예의 그 오두막을 찾아가 진상을 확인하는데…
호복지: 그는 결혼 후 십 년 동안 아이가 없어 안타까워하던 차에, 갑자기 아내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나 그의 애절한 통곡과 하소연을 들은 아내의 영혼이 그를 위해 아들을 낳아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고 과연 열 달 후에 누워 있던 시체에서 아들이 태어나는데…
장홍양의 아내: 병으로 몇 달 동안 누워 있던 그녀의 몸이 어느날 반으로 쪼개지면서 한쪽이 사라져버려서 집안에 큰 소동이 일어난다. 그런데 애절히 통곡하는 남편의 귀에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장홍양은 즉시 아내의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제사를 올리고, 잃어버린 아내의 몸뚱이 반쪽을 되찾아 원래의 모습대로 붙여놓는데…
이중문의 딸: 타향에서 벼슬살이를 한 아버지를 따라갔던 그녀는 불행히도 병으로 요절하고 만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 후, 아버지의 후임으로 온 사람에게는 장성한 아들이 있었고, 마침내 그녀의 영혼은 그 청년과 사랑에 빠져들며 남몰래 환생을 꿈꾸지만…
담서생: 마흔이 되도록 아내를 얻지 못하고 있던 그는 어느날 자신을 찾아온 아름다운 여인과 부부가 된다. 다만 그녀는 삼 년이 될 때까지 자신의 얼굴에 등불을 비추지 말라고 부탁하지만, 결국 그는 마지막 일 년을 참지 못하고 약속을 어겨버린다. 이 때문에 환생을 이루지 못한 여인의 귀신은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두 살 된 아들의 양육을 걱정하며, 값비싼 옷을 한 벌 남겨주고 떠난다. 그러나 그가 옷을 시장에 내다 팔자, 그 옷을 산 사람은 담서생이 자기 딸의 무덤을 도굴했다고 여기고 잡아다가 고문을 하는데…
장과의 딸 타향에서 벼슬살이를 하던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꽃다운 나이에 요절한 그녀는 정원의 누각 아래 임시로 만든 무덤에 묻혀 이장을 기다린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긴 후, 아버지의 후임으로 온 사람의 장성한 아들과 그녀의 영혼은 극적인 사랑에 빠져든다. 특히 환생의 기연(奇緣)을 얻은 그녀는 청년의 극진한 보살핌 아래 인간으로 완전히 소생하게 되고…
첫째 이야기: 귀신의 사랑
죽어서 부부의 연을 이루다
화주 지방의 유참군(柳參軍)은 명문 집안의 아들로 욕심이 별로 없었고,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형제도 없었다. 그는 업무가 끝나면 장안에서 한가롭게 유람을 다녔다.
삼 월 상사일(上巳日, 음력 3월의 첫번째 사일巳日로, 이 날은 계제사禊祭祀를 지내 상서롭지 못한 기운을 없애는 풍습이 있다. 후세에는 삼 월 삼 일 즉, ‘삼짓날’로 정해진다)에 그는 곡강(曲江)에서 아름답게 장식한 마차 한 대를 보았다. 그 마차는 몸체가 절반쯤 물에 잠겨 있었는데, 마침 그때 마차 뒤쪽의 주렴이 열리면서 옥처럼 곱고 가녀린 손가락을 지닌 손이 하나 나와 주위의 하녀에게 연꽃을 꺾어오라고 시키는 것이었다. 그 손의 주인공은 얼굴 역시도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아름다웠는데, 그녀는 한참 동안 곁눈질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마차가 돌아가자 뒤를 쫓아가서 그녀의 집과 성이 최씨라는 것, 그리고 가족 관계에 대해 간단한 정보를 얻어냈다. 그리고 그 여자의 하녀인 경홍(輕紅)에게 갖은 방법으로 뇌물을 쓰며 다리를 놓아달라고 했지만, 경홍은 끝내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날, 최씨 집안의 딸이 병이 들었다. 그녀의 삼촌은 성이 왕씨이고, 관청의 작은 벼슬아치였는데, 누이의 안부를 물으러 찾아간 김에 겸사겸사 자기 아들과 이 집안 딸을 결혼시키자고 청했다. 그녀의 어머니로서는 오빠의 말을 거역하기 곤란했지만, 딸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저는 며칠 전에 보았던 선비 같은 사람과 결혼하고 싶어요. 저를 억지로 이종 오빠에게 시집보낸다면, 아마 제 명대로 살지 못할 거예요.”
어머니는 딸의 마음을 이해하고 경홍을 시켜 유선비에게 가서 딸의 뜻을 전하게 했다. “선비님을 향한 저희 아가씨의 마음이 너무 절실해서, 마님께서는 몰래 두 분을 혼인시키려고 하십니다. 이삼 일 안으로 혼사 준비를 마칠 수 있는지요?”
유선비는 매우 기쁜 마음으로 성대한 혼례 예물을 준비했고, 얼마 후 둘의 결혼이 성사되었다. 유선비와 최씨 집안의 딸은 장안의 한 지역에 집을 마련해서 행복한 신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열 달 후 왕씨가 최씨 집안의 마님을 찾아왔다. 그녀는 궁여지책으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둘러댔다. “제가 남편을 잃고 딸애 하나만을 외롭게 길러왔는데, 조카란 녀석이 혼인식도 치르지 않고 강제로 딸애를 데려가버렸어요. 오라버니는 대체 아들을 어떻게 기르신 건가요?”왕씨는 크게 화를 내며 집으로 돌아와 아들에게 매질을 했다. 그리고 비밀리에 사람을 시켜 최씨 딸의 행방을 수소문했지만, 일 년이 지나도록 감감 무소식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 최씨 마님이 죽자, 유선비는 아내를 데리고 처가에 가서 장례에 참석했다. 그때 왕씨의 아들이 그들을 보고, 아버지에게 알려 두 사람을 잡아들였다.
유선비는 왕씨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저는 정식으로 혼인을 청하여 아내를 맞아들인 것이지, 예법을 어기고 몰래 훔쳐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왕씨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것을 증명할 도리가 없었다. 마침내 이 문제로 관청에서 소송이 벌어졌는데, 현령은 왕씨가 먼저 청혼했기 때문에 최씨의 딸은 왕씨 집안으로 가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왕씨의 아들은 전부터 사촌누이를 사모해온 터라, 그녀의 과거를 탓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최씨 딸은 이종 오빠를 남편으로 섬기게 되자 영 마음이 편하지 않아서, 경홍을 시켜 유선비가 사는 곳을 수소문하게 했다. 유선비는 여전히 예전에 둘이 살림을 하던 곳에 살고 있었다. 이에 최씨의 딸은 경홍을 시켜 유선비와 만날 날짜를 약속하게 하고, 그날이 되자 경홍과 함께 몰래 저택의 담장을 넘어 유선비에게로 갔다. 그들은 다시 장안에 집을 얻어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왕씨의 아들은 끈질기게 그들의 행방을 수소문해 마침내 둘이 살고 있는 곳을 발견하고, 관가에 고발했다. 다시 소송이 일어났고, 결국 왕씨의 아들은 아내를 되찾아갔다. 그는 아내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에, 심지어 그녀가 유선비의 아이를 가졌다고 핑계를 대며 거부해도 그녀를 책망하지 않고 데려갔다. 그 사건은 유선비가 멀리 강릉(江陵) 땅으로 유배를 가는 것으로 결말이 지어졌다.그로부터 이 년이 지난 뒤, 최씨의 딸과 경홍이 연달아 죽었다. 왕씨 아들은 둘의 장례를 더할 나위 없이 극진하게 치러주어서, 둘의 무덤을 나란히 만들어주었다.
한편, 유선비는 강릉에서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해 봄날, 뜰에 꽃들이 지천으로 피어나자 그는 왕씨 집안의 억지 며느리가 된 최씨 여인을 떠올리며 슬픔에 잠겼다. 그때까지도 그는 그녀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임을 모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대문을 다급하게 두드려서 열어보니, 경홍이 화장품 상자를 품에 안고 들어오며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곧 아가씨가 오실 거예요.”
뒤이어 말과 마차 소리가 웅성웅성 들리더니, 최씨 여인이 대문을 들어섰다. 그러나 같이 온 일행이나 마차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유선비는 그녀를 다시 만난 기쁨에 사로잡혀, 전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지 못했다.
두 사람은 웃고 울며, 오랫동안 헤어져 지낸 회포를 나누었다. 그러다가 유선비가 그녀에게 찾아온 사연을 묻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벌써 이종 오빠와 결별했어요. 이제부터 우리는 오랜 소원대로 부부가 되어 함께 살 수 있게 되었어요. 소망이 지극하면 결국 이뤄지게 마련이지요.”
이렇게 해서 둘은 다시 행복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특히 최씨 여인은 공후(箜篌)를 타는 솜씨가 절묘해서, 문제의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이 년 동안, 유선비는 그야말로 꿈 같은 나날을 보냈다.
그 사건은 정말 우연하게 시작되었다. 왕씨 집안의 하인 하나가 강릉으로 심부름을 왔다가 저잣거리에서 경홍을 발견했다. 처음에 그는 깜짝 놀랐으나, 이내 서로 닮은 다른 사람이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지나가는 말로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녀가 이곳으로 유배되어 온 유선비의 집에서 일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그 하인은 유선비의 집을 찾아가 몰래 집안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경홍에게서 말을 전해들은 유선비가 두 여자를 숨겨버렸기 때문에, 그 하인은 그들이 함께 있는 현장을 목격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하인은 곧 장안으로 돌아가 왕씨 아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왕씨 아들은 바로 마차를 준비시킨 후, 천리 길을 달려 강릉으로 갔다. 그는 유선비의 집안을 문틈으로 몰래 엿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집안에서는 유선비가 창가에 놓인 침상에 누워 있었고, 그 옆에서 최씨의 딸은 경홍에게 거울을 받쳐들게 한 채 화장을 고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흥분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지르며 집안으로 달려들어갔다. 그 순간 경홍이 들고 있던 거울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챙그랑 소리가 들리더니, 두 여인의 종적이 사라져버렸다.
유선비는 갑자기 찾아온 왕씨의 아들을 보고 놀랐지만, 이미 둘 사이에는 아무런 원한도 없었기 때문에 정중하게 그를 맞이했다. 이윽고 왕씨의 아들은 자신이 찾아오게 된 경위를 설명했고, 둘은 서로 마주보며 영문을 몰라 했다.
결국 두 사람은 장안으로 함께 돌아가 최씨 여인의 무덤을 조사해보기로 했다. 놀랍게도 최씨 여인의 시체는 전혀 부패되지 않은 상태였고, 입고 있는 옷과 그 옆에 놓인 화장품 상자도 모두 새것이었다. 옆 무덤에 묻힌 경홍 역시 마찬가지였다.
유선비와 왕씨의 아들은 다시 두 여인을 묻어준 뒤, 함께 산으로 들어가 도를 닦기로 했다. 이 뒤로 두 사람은 다시는 속세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건손자(乾月巽子)》에서
두옥의 귀신 아내
당나라 원화 연간(元和: 806~820)에 왕승(王勝)과 개이(蓋夷)라는 두 진사가 같은 지역에서 벼슬자리를 구하고 있었다. 당시에는 여관이 만원이어서, 그들은 그 지역에서 작은 벼슬아치로 있는 사람의 집을 빌어 살면서 시험 날짜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집은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다른 방에는 손님이 가득 차 있는데, 유독 안채에는 새끼줄로 문이 묶인 채 조용했다. 두 사람이 창문으로 몰래 안을 훔쳐보니, 방안에는 침대만 하나 달랑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칡넝쿨로 엮은 이불이 덮여 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부서진 대바구니 하나가 놓여 있는 것을 제외하면, 방안에는 다른 가구며 살림살이가 전혀 없었다. 이웃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곳은 두옥(竇玉)이라는 처사(處士)가 거처한다고 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묵고 있는 방이 너무 좁다고 여기던 차라, 그 처사와 같은 방을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마침 그 처사에게 첩이나 다른 하녀도 없어서 더욱 잘됐다고 생각했다.
날이 저물자, 두처사가 술에 취한 채 당나귀를 타고 돌아왔다. 그 옆에는 하인 하나가 당나귀의 고삐를 잡고 있었다. 두 사람은 두처사를 찾아가 인사를 하면서, 방을 같이 쓸 수 없겠느냐고 부탁했다. 그러나 두옥이 너무 단호하게 거절하는지라, 두 사람은 씁쓸한 마음으로 원래의 처소로 돌아갔다.
그날 밤이 깊어서 사람들이 다들 잠자리에 들 무렵, 두 사람은 어디선가 기이한 향기가 풍겨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이 향기의 근원을 찾아 밖으로 나가보니, 안채에서 시끌벅적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안채로 불쑥 들어가보았다. 그러나 방문을 여는 순간 그들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낮에 보았을 때는 분명히 텅 빈 상태였던 방안에 지금은 네 벽에 온통 아름다운 주렴이 드리워져 있었고, 기이한 향기가 가득 찬 방 가운데는 화려한 쟁반에 훌륭한 안주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당시 두옥은 열여덟 살쯤 되어보이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한 여자와 마주앉아 음식을 먹고 있었고, 그 주위에는 열 명 남짓의 곱상한 얼굴에 옷차림이 단정한 하녀들이 시중을 들고 있었다. 방안 한 구석에서는 은으로 만든 향로에서 막 차가 끓고 있던 참이었다.
두 사람이 불쑥 들어서자, 자리에 앉아 있던 여자는 일어서서 침상의 휘장 속으로 들어갔고, 하녀들도 투덜거리며 그녀를 뒤따랐다. “무슨 선비라는 양반들이 남의 집을 이렇게 불쑥 들어오고 그러는 거야?” 두옥은 안색이 흙빛이 된 채, 꼿꼿이 앉은 채 한마디 말도 없었다. 왕승 일행은 분위기를 망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으로 머쓱해져서, 그저 차만 마시고 밖으로 나왔다.
이튿날 날이 밝자 두 사람은 다시 두옥의 방을 훔쳐보았다. 그런데 방안은 어제 낮과 같은 상태였고, 두옥은 홀로 칡넝쿨 이불 속에 누워 있다가 막 눈을 비비며 일어나려던 참이었다. 두 사람이 간밤의 일에 대해 캐물었지만, 두옥은 대답을 회피했다. “당신은 낮에는 평민이었다가 밤이 되면 귀족으로 변하니, 혹시 요괴가 아니오? 그 미인을 불러들인 일에 대해 사실대로 말하지 않으면, 관청에 고발해버리겠어!”
그들이 계속 닦달하자 두옥은 할 수 없이 그 여인과 자신의 사연을 털어놓았다. 예전에 그는 태원(太原) 땅을 여행하다가, 날이 저물어서 길을 잃고 어느 별장에 투숙한 적이 있었다. 그 집의 주인은 분주(汾州) 땅에서 사마(司馬) 벼슬을 지낸 사람으로, 성이 최씨였다. 그런데 막상 주인과 인사를 하고 보니, 그 최사마는 두옥과 가까운 친척이었다. 우연한 인연 덕분에 그는 주인 내외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최사마는 두옥이 떠돌이 신세가 된 사연을 묻더니, 그를 위로해줄 겸 자신이 데리고 있던 하녀 하나를 그에게 아내로 주겠다고 했다. 결국 그날 밤으로 두옥은 최사마가 정해준 여인과 결혼식을 올렸다. 그런데 첫날밤에 신부가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사실 여기는 인간 세상이 아니고 귀신 세상이랍니다. 분주라는 것도 저승의 분주를 가리키는 말이지요. 아까 혼례를 주관했던 사람들도 모두 저승의 벼슬아치들이랍니다. 저와 당신은 오랜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부부로 만나게 된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과 귀신의 길이 다르니, 당신은 어서 떠나셔야 해요.” “사람과 귀신의 길이 다르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부부가 될 수 있었겠소? 설마 겨우 하룻밤을 보내고 헤어져야 한단 말이오?” “제가 당신을 섬기는 것은 본래 거리의 멀고 가까움이 상관없어요. 다만 당신은 살아 있는 사람이니까 여기에 오래 머물러 계셔서는 안된다는 뜻이지요. 제가 당신의 상자 속에 항상 비단 백 필을 채워둘 테니, 길을 가기다가 혼자 조용한 방을 구해놓고 기다리세요. 그리고 잠시 제 생각을 하면 제가 바로 나타날 거예요. 앞으로 십 년 동안은 계속 이렇게 낮에만 헤어졌다가 밤에 다시 만나는 관계로 지내야 한답니다. 물론 그동안 상자가 비면 제가 다시 비단을 채워드리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