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태양 -삼국지연의 제2편-
나관중 지음 | -
떠오르는 태양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제2편
나관중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유비: 자는 현덕. 관우, 장비와 도원에서 형제의 의를 맺고 평생을 같이 하기로 맹세한다. 서주자사 도겸의 유언으로 서주성을 물려받으나 여포에게 빼앗기고, 원술과 여포로부터 공격을 받자 허창의 조조 밑으로 들어간다. 헌제를 알현하는 중에 아저씨뻘 되는 것이 밝혀져 ‘유황숙’이라 불리게 된다.
관우: 자는 운장. 별칭 미염공, 관공. 의기의 화신으로 삼국지 최고의 명장. 여포의 용장 장료에게 충의의 뜻이 있음을 간파하고, 조조가 장료를 죽이려 할 때 간청하여 목숨을 살려준다.
장비: 자는 익덕. 관우와 함께 유비를 도와 촉한 성립에 크게 기여한 맹장. 평소 성격이 불 같은데다, 술이 과해지면 사나워지는 것이 흠으로, 유비가 원술을 치러나간 사이 혼자 서주성을 지키다가 술이 화근이 되어 여포에게 성을 빼앗긴다.
조조: 자는 맹덕. 본래는 하후씨.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에 능한 난세의 간웅. 산동을 중심으로 기틀을 다진 후, 허창 천도를 성사시켜 조정의 권력을 손에 넣는다. 그후 원술과 여포를 차례로 쳐 하남 일대를 완전히 장악한다.
여포: 자는 봉선. 힘이 장사로 대적할 이가 없다. 동탁을 죽이고 진류태수 장막에게 가 의지하던 중, 모사 진궁의 도움으로 복양에서 조조와 싸워 크게 이기기도 했으나, 결국 그에게 잡혀 죽음을 당한다.
원술: 자는 공로. 원소와는 종형제간이다. 남양태수로 회남일대까지 영토를 넓혀 큰 세력을 이루었으나, 천자가 될 것을 꿈꾸다가 결국 조조 연합군에게 패해 도망친다.
손책: 자는 백부. 손견의 큰아들. 손견이 죽은 후 원술의 부장으로 있었으나, 아버지가 남긴 옥새를 저당잡히고 원술에게 군사를 빌어 강동으로 건너가 그 일대를 모두 장악한다.
전위: 조조의 부하 장수. 조조가 산동에서 널리 인재를 모을 때 하후돈이 천거했다. 여러 번 조조를 죽을 고비에서 구해주고, 마지막 순간에도 장수의 숙모와 놀아나던 조조를 호위하다 야습을 당해 죽는다.
진궁: 자는 공대. 일찍이 중모현의 현령으로 있을 때 동탁에게 쫓기던 조조를 보내주고 같이 도망쳤으나, 조조가 여백사를 죽이는 것을 보고 정이 떨어져 그의 곁을 떠났다. 이후 장막에게 갔다가 여포의 모사가 되어 복양 싸움에서 조조를 크게 물리친다. 나중에 여포가 패하자 같이 잡혀서 죽음을 당한다.
가후: 자는 문화. 원래 동탁 밑의 모사로 동탁이 죽자 이각, 곽사를 도와 장안을 탈환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화목치 못하고 자신의 건의를 듣지 않자, 장제의 조카 장수에게로 가 남양 싸움에서 조조를 크게 물리친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
왕윤을 죽인 이각과 곽사 무리는 내친 김에 헌제마저 시해하려 했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여 계속 한나라 황실을 받들면서 제후들의 동정을 살피기로 했다.
그러자 17로의 하나였던 서량태수 마등이 병주자사 한수와 함께 군대를 이끌고 역적을 치러 장안으로 쳐들어왔다. 이때 마등의 아들 마초는 17살이었는데 영특하고 용맹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앞장서서 적의 장수들을 죽이니 이각 등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러나 모사 가후의 꾀로 성문을 굳게 닫아걸고 싸우러 나가질 않으니, 서량군은 군량(군대의 양식)과 마초(말의 꼴)가 떨어져 두 달 만에 회군하고 말았다. 그러자 다른 제후들도 더 이상 이들을 치러오지는 못했다.
그런데 이때 산동 지역에서는 다시 황건적이 일어나 양민들을 수없이 겁탈하고 있었다. 이각과 곽사는 당시 동군(연주) 태수로 있던 조조에게 황제의 조서를 보내 이들을 소탕하도록 명했다. 조조는 군사를 일으켜 도적들을 치니 이르는 곳마다 항복하는 자들이 줄을 이었다. 이로부터 조조의 위세는 날로 높아지고, 조정에서는 그를 진동장군에 봉했다.
이에 조조는 연주 일대에서 널리 인재들을 구하여 수하에 문관과 무관으로 삼았다. 이렇게 제후로서의 기틀을 잡게 된 조조는 난을 피해 낭야로 가 있던 아버지 조숭을 연주로 불러들인다.
한편 조숭 일행은 연주로 오는 길에 서주 땅을 지나게 되었다. 당시 서주태수인 도겸은 본래 성격이 온후하고 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평소 조조와 손을 잡고 싶었지만 그럴 만한 연고가 없었던 터에, 마침 그의 부친이 이곳을 지난다고 하자 성밖까지 마중을 나가 그를 극진히 대접했다.
그리고 부하 장수인 장개를 시켜 그들을 호위하도록 했다. 그러나 장개는 본시 황건적의 무리로서 마지못해 도겸에게 귀순해 있었는데, 조숭의 재물이 많은 것을 보고 순간 탐욕이 생겨 그 일가를 모조리 죽여버렸다.
이 소식을 들은 조조는 기가 막혀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그는 이를 부드득 갈며 부친의 원수를 갚고자 서주를 공격했다. 성이 난 조조의 군대는 이르는 곳마다 백성들을 모두 죽이고 무덤을 파헤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도겸은 조조의 살기등등한 기세를 보고 어쩔 줄을 몰랐다. 백성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기가 직접 조조에게 나아가 목숨을 내놓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별가종사로 있던 미축이 나서서 북해태수 공융에게 구원병을 청하자고 하니, 도겸이 그를 파견했다.
북해의 공융은 자가 문거로서, 공자의 20대손이다. 그는 유달리 손님을 좋아하여 이렇게 말하곤 했다. “늘 자리에 손님들이 가득 차고 독 안에 술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내 소원이오.”
이날도 손님들과 함께 앉아 있는데, 서주에서 미축이 왔다고 아뢴다. 미축이 들어와 서주의 상황을 설명하고 구원병을 요청하자 그는 곧 군사를 점검하게 하는 한편 조조에게 화의를 청하는 서신을 띄우게 했다.
그런데 이때 황건적장이 도당 수만 명을 거느리고 북해를 침범하니, 공융은 곧 그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그때 어디선가 한 장수가 종횡무진 적의 포위를 뚫고 성안으로 들어오니, 그는 성이 태사요, 이름이 자라는 장수였다. 일찍이 공융은 그가 영웅임을 알고, 멀리 타지로 나가있는 동안 홀로 사는 그의 노모를 위해 양식이며 옷감 등을 보내주곤 했었다. 그러자 태사자의 모친이 공융의 은덕을 갚기 위해 일부러 아들을 보내 그를 돕도록 한 것이었다.
이에 공융은 태사자로 하여금 평원현의 유비에게 달려가 구원병을 청하도록 했다. 유비는 관우, 장비를 데리고 태사자와 함께 북해로 달려와 황건도당들을 격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서주가 위태롭다는 소식을 듣고, 공융을 먼저 서주로 가게 한 후, 자신은 다시 공손찬에게 가 조운과 군사 2천을 빌어 서주로 달려갔다. 한편 태사자는 양주자사 유요의 부름을 받고 다시 그곳을 떠난다.
조조와 여포의 싸움
그럴 즈음 조조는 여포가 연주를 엄습하고 복양을 점거했다는 소식에 깜짝 놀라 회군을 결심한다. 이리하여 서주는 일단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게 되었는데, 그렇다면 지난날 이각과 곽사의 무리에게 쫓겨 원술에게 도망갔던 여포가 어떻게 조조의 연주를 공격하게 되었는가?
당시 여포는 원술을 찾아갔으나, 워낙 신의가 없고 주인을 잘 배신하는 인물인지라 원술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원소에게 갔으나 원소 또한 그를 달갑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포는 마지막으로 진류태수 장막을 찾아갔는데, 그의 모사인 진궁이 ‘여포를 취해 조조를 공격하라’고 하자, 장막이 그를 받아들였다. 진궁은 누구인가? 그렇다, 그는 옛날 조조의 곁을 말없이 떠났던 바로 그 중모현의 현령이다.
한편 큰 화를 면하게 된 서주자사 도겸은 유비를 보고, 이미 자신은 나이도 늙었고 아들 또한 그릇이 못되니 이참에 서주를 맡아달라고 부탁한다. 유비는 거듭 사양했으나 주위의 여러 사람이 권하고 도겸 또한 재차 간곡하게 청을 하므로, 일단 서주 근처의 작은 성인 소패성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조운과는 다시 아쉬운 작별을 한다.
한편 연주로 돌아온 조조는 복양성에서 여포와 한바탕 대전을 치르게 되었다. 두 군대가 대치중인 상황에서 먼저 조조가 악진과 하후돈을 내보내자 여포는 장패와 장료를 내보내 대적하게 했다. 금방 승패가 나지 않자 몸이 달아 여포는 직접 가세하니 악진과 하후돈은 그 기세에 눌려 달아나고 말았다. 그날 저녁 조조는 여포의 영채를 급습했으나 방비를 하고 있던 여포군에게 밀려 진퇴양난에 빠지고 말았다. 그때 조조의 용장 전위가 쌍철극을 휘두르며 조조를 구해냈다.
당시 여포의 참모는 바로 진궁이었는데, 그가 한 가지 꾀를 생각해냈다. “이곳 복양성 안에는 전씨라는 큰 부호가 있습니다. 그로 하여금 조조에게 거짓 편지를 쓰게 하십시오. 내용인즉, ‘여포가 잔악무도해 백성들이 크게 원망하고 있습니다. 그가 이번에 고순만을 성에 남겨두고 군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 하니, 밤을 타서 쳐들어오시면 제가 내응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이지요. 그래서 조조가 오거든 그를 성안으로 꾀어 들어오게 해놓고 4대문에 불을 지르십시오. 그리고 밖에 군사들을 매복시켜 두면 조조가 제아무리 경천위지(經天緯地, 천지를 옷감 짜듯 마음대로 한다는 뜻)하는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빠져나갈 수 없을 겁니다.”
여포가 그의 말대로 하니, 조조는 마침내 계략에 빠져 죽을 고비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도 전위가 불길 속을 뚫고 들어와 그를 구해냈다.
그런데 이 해에는 메뚜기떼의 피해로 흉년이 드는 바람에, 조조군과 여포군은 모두 군량이 떨어져 군사를 거둘 수밖에 없었다.
한편 서주의 도겸은 갑자기 병이 들어 날로 병세가 위중해졌다. 그는 유비에게 서주성을 맡아줄 것을 유언하고 마침내 숨을 거두었다. 성안의 백성들도 달려와 성을 맡아줄 것을 울며 간청하자, 유비는 더 이상 사양하지 못하고 잠시 서주성을 맡아 다스리기로 한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손건, 미축, 진등 등을 자신의 막료로 삼았다.
한편 여포와의 싸움에서 흉년으로 군사를 물린 조조는 자기 영내에서 황건적의 잔당들이 양민들을 약탈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소탕하러 나갔다. 조조의 장수들이 쉽게 그들을 물리치며 전진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그들의 앞을 막아선다. 용장 전위가 물었다. “너도 황건적이냐?”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황건적 수백 명을 내가 모조리 잡아다 성채 안에 가두어놓았다.” “그런데 어째서 우리한테 바치지 않느냐?” “네가 만일 나를 이긴다면 곧 내주마!”
성이 난 전위가 쌍철극을 빼들고 덤벼들었다. 두 사람은 서로 어우러져 서너 시간을 싸웠으나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 이에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싸우는데, 해질녘이 되어서도 승부가 나지 않는다.
이를 본 조조가 그 장수의 늠름함이 탐이 나, 몰래 함정을 파놓았다가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초군 사람으로 성은 허씨요, 이름은 저라고 했다. 조조가 항복을 권하자 그는 종족 수백 명을 거느리고 투항했다.
이리하여 황건적을 소탕하고 허저까지 얻게 된 조조는 그 기세를 몰아 다시 복양으로 쳐들어갔다. 이때 여포는 수하의 고순, 장료, 장패 등이 군량을 마련하느라 연해 지방으로 나갔다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었는데, 조조군이 쳐들어오자 홀로 방천화극을 비껴들고 싸우러 나갔다.
조조는 먼저 허저와 전위를 내보낸 후, 다시 왼편으로 하후돈과 하후연, 오른편으로 이전과 악진을 내보냈다. 이들이 일제히 뛰쳐나가 공격하니, 여포는 마침내 그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런데 이번에는 성안의 전씨가 여포가 불리한 것을 보고 조조편이 되어, 도망쳐오는 여포에게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여포는 그만 오도가도 못하게 되어 정도성으로 도망쳤다. 조조는 계속 그 뒤를 쫓아갔다. 마침내 정도성에서 조조의 꾀에 넘어간 여포는 군사의 태반을 잃고, 그곳마저 버리고 도망쳤다. 진궁과 고순 등도 그를 따라 도망치고, 태수인 장막은 원술에게 망명했다.
황제 쟁탈전
오갈 데 없어진 여포는 진궁의 권고로 막 서주를 맡은 유비에게 몸을 의지하러 갔다. 유비는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여포를 받아들이며 말했다. “전에 여포가 연주를 엄습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 서주 땅의 환난을 풀 수 있었겠소?”
그러자 장비가 한마디 했다. “형님은 인심도 좋소. 그러나 경계는 하셔야 하오.” 유비는 여포를 정중히 맞이한 후 아예 서주 땅을 양도하겠다고 말했다. 여포는 신이 나서 얼른 받으려는데, 언뜻 보니 유비 뒤에 관우와 장비가 그를 노려보며 서 있다. 그러자 진궁이 나서며 말했다. “‘강한 손님은 주인을 억누르지 않는다(强賓不壓主)’는 말이 있으니 유사군께서는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제야 유비는 더 이상 권하지 않고, 주연을 베풀어 여포를 대접했다. 술이 어지간히 돌자 여포는 유비를 아우라 부르며 친한 듯이 굴었다. 이를 본 장비가 펄펄 뛰며 싸우자고 덤벼들자, 유비는 급히 관우를 시켜 그를 제지하게 했다. 그러자 다음날 여포가 찾아와 하직을 고했다. "사군께서는 저를 버리려하지 않으시나, 동생분들이 용납해주지 않으니 다른 곳으로 가보려 합니다." 유비는 그를 붙들며 지난날 자신이 머물렀던 소패성에 잠시 머무르도록 했다.
한편 황건잔당과 여포를 물리치고 산동 일대를 손아귀에 넣은 조조는 조정에 표문을 올리니, 조정에서는 그를 건덕장군 비정후에 봉했다. 이때 조정에서는 이각과 곽사의 횡포가 날로 심해졌다. 이 꼴을 보다못한 태위 양표가 몰래 헌제에게 아뢰었다.
“지금 조조에게는 군사가 20여 만이나 있고 모사와 맹장이 수십 명에 달합니다. 그의 힘을 빌어 사직을 붙들고 간악한 무리들을 없애십시오.”
그리고 우선은 반간계(허위사실을 유포하여 이간시키는 계략)를 써 두 도적놈을 갈라놓기로 했다. 먼저 양표는 자기 부인에게 곽사의 부인을 찾아가, 곽사가 이각의 부인과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말을 슬쩍 흘리게 했다. 투기가 심한 곽사의 부인은 이 말을 듣고 남편과 이각의 사이를 이간질시키니, 마침내 양측의 군사들은 도성 안에서 난전을 벌이게 되었다.
싸움이 벌어지자 이각은 먼저 천자와 황후를 협박해 자신의 영채로 끌고 가버렸다. 이에 곽사 또한 남아있는 비빈과 궁녀들을 끌고 가며 궁궐에 불을 질렀다. 두 사람은 황제는 안중에도 없이 그를 인질로 삼아 서로 물고 뜯고 싸우니, 황실의 권위는 땅에 떨어지고 임금의 안위는 풍전등화와도 같았다.
이때, 옛날 같은 동탁의 수하였던 장제가 군사를 이끌고 와, 두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고 천자를 낙양으로 옮겨가도록 했다. 헌제 역시 낙양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던지라, 그 말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이리하여 어가는 낙양으로 향하게 되었는데, 그 사이 마음이 바뀐 곽사가 다시 군사를 보내 어가를 기습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때, 본래는 이각의 수하였으나 그를 치려다 실패하고 종남산으로 도망쳤던 양봉이 나타나 이들을 물리쳤다. 그리고 황제의 인척인 동승이 군사를 이끌고 오니, 어가는 양봉과 동승의 호위를 받게 됐다.
어가가 순조롭게 낙양을 향해가자 으르렁거리던 이각과 곽사는 다시 의기투합해 이들을 뒤쫓기 시작했다. 양봉과 동승의 군대는 이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궁여지책으로 산적의 괴수였던 한섬 등을 귀화시켜 이들을 막아냈다. 이리하여 천신만고 끝에 낙양에 도착했으나 그곳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옛 궁중에 남아 있는 것은 허물어진 담벽 뿐, 우선 작은 궁전 하나를 짓게 했으나, 백관이 황제를 알현할 때도 모두 가시덤불 속에 서 있어야 했다. 게다가 흉년이 들어 이곳저곳에서 굶어죽는 이가 부지기수였다.
태위 양표는 다시 산동의 조조를 불러들이기로 하고, 황제의 밀조를 그에게 보냈다. 이를 받아본 조조는 흔쾌히 군대를 이끌고 낙양으로 향했다. 그러지 않아도 황제가 낙양으로 왔다는 소식에 이미 그 문제를 모사들과 의논하던 참이었다.
이때 이각과 곽사가 또 공격을 해오자 조조는 이들을 크게 무찔렀다. 그리고 이틈을 타 헌제에게 자신의 근거지에 가까운 허창으로 천도할 것을 주청했다. 헌제는 감히 조조의 주청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어가는 다시 낙양을 떠나 허창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