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앙을 부르는 매미의 울음 -태평광기 제1편-
작자미상 지음 | -
재앙을 부르는 매미의 울음 태평광기 (太平廣氣) 제1편
작자 미상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귀신 역시 살아있는 인간처럼 오욕칠정(五慾七情)을 느끼고 신의와 절개를 중시한다. 하지만 먹고, 입고, 생활하는 방식은 살아 있는 인간과는 달라서, 귀신은 살아 있는 인간이 제사 때 올리는 음식을 먹고, 무덤의 부장품을 입고 장식하며, 무덤 속에서 생활하며 지낸다(이따금 거처를 잃고 떠도는 신세가 된 '귀신'도 있다). 그러다 귀신은 여러가지 이유로 이승에 나타나 살아 있는 인간과 관계를 맺기 시작하는데, 거기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그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귀신의 대표적 유형은 다음과 같다.
저승사자: 저승에서 미리 정해놓은 인간의 수명과 화와 복에 대한 법칙을 인간세상에 실행하 기 위해 공식적으로 이승에 파견한 귀신. 저승사자는 이승에서 사는 인간의 운명을 저승에서 어떻게 결정하는지, 또 어떻게 그 정해진 운명의 법칙을 실행하는지 보여준다. 저승사자들은 저승 역시 인간세계처럼 다양한 비리와 모순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재미있게 보여주기도 하는데, 귀신의 존재를 의심하거나 부정하는 이들에게 귀신의 존재를 알려주는 귀신도 넓은 의미에서 이 '저승사자'에 속한다.
개별적 목적을 가진 귀신: 대개 죽기 전에 못다 이룬 소망을 성취하기 위해, 또는 저승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인간세계에 도움을 구한다. 첫 번째 경우는 대개 자신의 장례를 챙기기 위해, 이루지 못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 혹은 이 세상에 남겨진 가족을 염려해 나타나는 귀신들이다. 두 번째 경우에는 묘지 훼손이나 자손이 끊겨서 나타나는 귀신이 대표적이다.
저승세계에 적응하지 못하는 귀신: 인간으로 '환생'하는 변칙적 방법을 쓰는 귀신. 저승에서 벗어나는 길을 모색하기 위해서, 아니면 무작정 분풀이를 위해 인간 세계에 나타나 재앙을 내리거나 행패를 부리기도 한다.
첫째 이야기: 네가 귀신을 믿지 않느냐?
내 가르침을 잊지 말아라
부량현(浮梁縣)의 현령을 지낸 장 아무개는 양자강과 회수 사이에서 가업이 번창해 쌓아놓은 황금과 곡식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어느날 그는 임기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가게 됐는데, 가는 도중에 항상 한 걸음 앞서 하인들을 먼저 보내 숙소를 마련하고 산해진미를 모두 갖춰놓게 했다.
하루는 하인들이 그보다 먼저 화음현(華陰縣)에 도착해 장막을 쳐서 술자리를 마련하고, 요리사들이 양을 구워 막 익으려 할 때였다. 어디선가 노란 옷을 입은 사람 하나가 나타나더니, 음식을 차린 쟁반을 차지하고 앉는 것이었다.
마침 장현령이 도착하자 하인은 그 일을 자세히 보고했다. 장현령은 그를 꾸짖지 말라고 이르고는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을 불러 물었다. “너는 어디에서 오는 길이냐?”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은 그저 공손한 태도만 취할 뿐, 다른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러자 장현령은 얼른 술을 데워오라고 시켰다. 술이 도착하자 그는 큰 금잔에 술을 따라 권하고 양고기를 베어 권하고 궤짝에서 14, 5개의 고기 전병을 꺼내 먹였다. 술을 두 말이나 마셨다. 그리고 술기운이 얼큰해지자, “사십 년 전 동쪽 주막에서 한번 취하게 마시고 배불리 먹고는 이렇게 실컷 먹은 건 오늘이 처음입니다.”
장현령은 이상하다 싶어, 곧 정중하고 간곡하게 그의 성명을 물었다. “저는 사람이 아니라, 이 지역에서 죽을 사람의 명부를 운반하는 저승의 관리입니다. 태산에서 사람의 혼백을 부르면 장차 죽을 그 사람들의 명부를 서악(西嶽)인 화산으로 보내게 되는데, 제가 속한 부서에서 운반을 담당합니다.” “한번 볼 수 있겠습니까?” “슬쩍 보기만 하는 거야 별 탈이 없겠지요.”
그러면서 그 관리는 가죽 꾸러미를 풀어 두루마리 하나를 꺼냈다. 그 첫머리에는 ‘태산의 신이 화산의 금천부(金天府)로 보내는 문서’라고 적혀 있었고, 둘째 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들어 있었다.
재물을 탐하고 살생을 좋아하며, 이익에 눈이 멀어 의를 져버린 사람:전직 부량현의 현령 장 아무개이것은 바로 장현령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 이름을 보자 그 관리에게 애걸복걸했다. “사람의 수명은 길고 짧음이 정해져 있으니, 뉘라서 감히 죽는 것을 안타까워하겠습니까? 그렇지만 저는 나이 마흔 줄에 들어서야 겨우 벼슬길에 나선 참입니다. 또 제 가업이 번창해 재산이 많은데 아직 물려줄 사람도 정하지 못했으니, 수명을 연장할 방법이 없겠습니까? 제 짐꾸러미 안에 든 것을 모두 합치면 적어도 수만 냥 어치는 될 텐데, 이것을 나리께 전부 다 드릴 수도 있습니다.”
“한끼 식사의 은혜는 마땅히 보답을 해드려야지요. 지금 유강이라는 신선계의 관리가 연화봉(蓮花峰)에 귀양을 와 있습니다. 지금 당장 그곳에 가서, 그에게 상소를 올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십시오. 제가 어제 들으니, 금천왕(金天王)이 남악(南嶽)의 신과 바둑을 두다가 지는 바람에 2만냥을 잃어서 빚 독촉에 몹시 시달리는 모양입니다. 당신이 화산의 서악 사당에 가서 그에게 후한 돈을 바치시면, 그가 신선계의 관리에게 힘을 써줄 것입니다.”
이에 장현령은 제사에 쓸 짐승을 준비해서 급히 화산의 사당으로 달려가 백만 냥을 바친 다음, 곧장 연화봉으로 갔다. 귀신이 이른대로 오두막 안에는 도사 하나가 책상에 기대앉아 있었다. “정해진 시간은 다해가고 이슬 같은 제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데, 소문에 듣자하니 어르신께서는 썩은 해골에서 혼을 되살리고 새살을 돋게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아끼는 마음을 가진 분께서 어찌 저를 위해 천상에 상소할 힘을 아끼십니까?”
“내 일전에 수나라의 권세 있는 신하를 위해 한번 상소했다가 결국 이 봉우리로 쫓겨나게 됐다. 네가 도대체 내게 무슨 덕을 베푼 게 있다고 나를 영원히 이 황량한 산의 늙은이 신세로 만들려 하는 게냐?”
장현령은 더욱 더 간절하게 애원했지만 신선계 관리의 안색은 점점 노엽게 변해갔다. 그때 갑자기 어떤 사자(使者)가 편지 금천왕이 보낸 서찰을 들고 왔다. 신선계의 관리는 편지를 읽더니, “사정을 봐 달라니, 모른 척하기 어렵구나. 또 다시 상제께 징계를 받는 일은 없도록 조치하겠지?” 이어서 그는 편지 한 통을 써서 보냈다. 대략 밥 한 그릇 먹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하늘에서 문서가 내려왔는데, 그 위에는 “철회한다”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
“장 아무개는 조종을 배반하고, 부정하게 명예와 지위를 차지했으며, 예법을 따르지 않고, 구차한 수단으로 벼슬과 영예를 훔쳤다... 이제 구차한 방법으로 천 대의 수레를 가질 만한 부까지 얻었다. 장현령은 이미 죄상이 낱낱이 밝혀져 남은 목숨을 유지하는 혼령에 지나지 않거늘, 그대는 어찌 상소를 올려 그 목숨을 연장해달라고 청하는가? 다만 위험에 처한 자를 돕는 일은 대도(大道)에서 숭상하는 것이요, 형벌을 줄이고 용서하는 일은 현문(玄門)에서 으뜸으로 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관용을 베풀 것이니, 악행을 뉘우치고 스스로 새로워지기를 바라노라. 생명을 탐하는 그의 수명을 5년 동안 연장해줄 것이나, 상소를 올린 자는 그 죄를 묻지 않을 수 없노라.” 신선계의 관리는 그 서찰을 다 읽더니 장현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백살까지 이를 수 있지만, 희노애락으로 마음의 샘을 메워버리고 애오기욕(愛惡嗜欲)으로 생명의 뿌리를 잘라버린다. 또한 자신의 능력을 뽐내면서 다른 사람의 장점을 숨기고, 마음을 이랬다 저랬다 하면서 짧은 순간에 생각을 수없이 바꿔 정신이 피곤하고 나태해지니, 타고난 원기를 보전하기 어렵다. 그것은 마치 맑은 샘이 달고, 짜고, 시고, 쓰고, 매운 온갖 맛에 더럽혀지는 것과 같다. 그러면서도 오래 살고자 하니 가능하겠느냐? 이제 타고난 천성으로 돌아가는데 힘쓰며, 가르침을 잊지 말라.”
장현령이 작별인사를 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그 관리는 종적도 없이 사라져버린 후였다. 한참 걸어오자 노란 옷을 입은 관리가 그를 맞이하며 축하 인사를 했다. 장현령은 은혜를 갚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했다.
“저는 성이 종씨며, 살아서 파발꾼 노릇을 하다 죽었습니다. 저승에서 문서를 배달하는 일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살아서처럼 고생이 무척 심합니다. 금천왕께 제사를 드리며 기원하실 때 저를 문지기로 써 달라고 부탁해주시면, 저는 배불리 먹으며 편히 지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늘의 문서를 배달하는 일이 반나절이나 늦어졌으니, 더 머물 수가 없군요.”
말을 마치자 그는 뽕나무 숲으로 홀연히 사라져버렸다. 그날밤 장현령은 화음현에서 마차를 세우고 동쪽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금천왕에게 소원을 빌기 위해 쓴 돈을 계산해보니 2천냥이 넘는 것이었다. 이에 그는 하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2천 냥이면 열흘 밤을 묵고도 남는 돈인데, 무슨 복을 받겠다고 흙인형에 불과한 금천왕 따위에게 빌겠느냐?”
다음날 아침, 그들 일행이 언사현(偃師縣)에 도착해 현의 역관에 묵고 있을 때, 그 노란 옷의 관리가 문을 밀치며 들어오더니, 큰 소리로 장현령을 꾸짖었다. “당신은 어찌 남을 속일 수가 있소? 그대가 금천왕에게 소원에 대한 보답을 제대로 하지 않는 바람에, 밥 한끼 은혜에 보답하려던 내 노력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됐소. 울적한 내 마음은 독벌레에게 쏘인 것처럼 아프오! 이제 당신에게 재앙이 미칠 것이오! ”말이 끝나자 그 관리는 종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 직후 장현령은 병에 걸려서 유서조차 다 쓰지 못한 채 곧 죽고 말았다. 『찬이기(纂異記)』에서
위징이 귀신을 믿게 된 사연
당나라 초기의 유명한 역사가이자, 나중에 정국공(鄭國公)에 봉해진 위징(魏徵)은 어려서 도학을 좋아하고 귀신을 믿지 않았다. 언젠가 그가 혼자서 항산으로 수학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 산 발치에 이르자 갑자기 큰 눈보라가 일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도사(道士) 하나가 나타났는데, 푸른 두건을 두른 채 한 손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에는 『황정경(黃庭經)』을 들고 있었다.
“어디로 가시는 길이오?”
“도를 구하러 왔다가 눈보라에 길이 막혀 꼼짝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리쯤 떨어진 곳에 내가 사는 집이 있으니, 하룻밤 묵으면서 이야기나 나눕시다.”
위징이 도사와 함께 찾아간 집은 겉모양은 무척 황량했으나 안은 치장이 훌륭했다. 도사는 그를 침실로 안내한 후, 화로를 피워놓고 마주앉았다. 둘은 좋은 술과 훌륭한 안주를 들면서 화목하게 도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날이 밝을 무렵, 도사가 귀신에 대해 언급하자, 위징은 단호하게 자신은 귀신을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자 도사가 이렇게 말했다. “그대가 신봉하는 것은 신선의 도인데 어째서 귀신을 전부 거짓이라고 생각합니까? 세상이 생긴 이래 줄곧 귀신이 있었소. 다만 도가 높은 사람에게는 귀신과 요괴가 굴복하지만, 도를 신봉하되 경지가 높지 않은 사람에겐 반대로 귀신과 요괴가 접근하는 법이오. 어째서 그것을 우습게 여깁니까?”
그러나 위징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도사가 다시 술을 권하며 위징을 전송했다. 그리고 편지 한 통을 맡기며 항산에 은거하고 있는 어떤 사람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위징이 산길을 더듬다 묵었던 곳을 돌아보니, 거기에는 큰 무덤 하나만이 있을 따름이었다. 그 편지에는 “항산의 신에게”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편지를 땅에 던졌더니 한 마리 쥐로 변해 도망가버렸다. 이때부터 위징은 귀신을 조금씩 믿기 시작했다. --『소상록(瀟湘錄)』에서
세 딸에게 재앙이 미치다
당나라 영태(永泰) 연간(서기 765년)에 우상(牛爽)은 여주의 별가(別駕)라는 관직을 제수(除授)받았다. 그가 부임지로 가려는데 유모가 노새를 타다가 등자에 허벅지를 찔렸다. 그런데 1년이 넘도록 상처가 낫지 않고 가려웠는데, 상처 안에서 무슨 벌레가 지나가는 듯했다. 그러더니 어느날 여러 마리의 매미가 상처를 뚫고 나와 정원의 나무에 모여 앉아 날이 저물도록 구슬프게 울어대는 것이었다.집안 사람들은 무당을 불러 점을 치게 하였다. 무당은 나무를 향해 꾸짖더니, 이렇게 말했다.“검은 의관을 차려입은 귀신 하나가 나뭇가지에 앉아, 매미들을 지휘하며 ‘동쪽 건물 아래에 내 거처가 있다네/내게 제사를 올리면 복을 받겠지만/나를 모욕하면 재앙이 세 딸에게 미칠 거라네’하고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검은 옷을 입은 자는 부엌귀신입니다.”
그러나 우상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는 매미들을 죽여버리고, 무당을 쫓아버렸지만 1년이 넘도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한편 우상에게는 시집을 가지 않은 딸이 세 명 있었다. 어느 여름날 밤에 우상은 침실의 휘장을 걷다가 커다란 시체 하나가 이불을 덮어쓰고 뻣뻣하게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보검으로 시체를 내리쳤다. 그러자 안에서 비명 소리가 터졌다. 촛불을 밝혀서 살펴보니, 시체는 없고 대신 그의 큰 딸이 허리가 잘려진 채 죽어 있었다. 방바닥은 온통 피범벅이 되어 있었다. 그를 비롯해서 집안의 남녀노소가 정신없이 통곡했지만, 아무도 그런 일이 생긴 이유를 몰랐다.
그로부터 반년이 지난 어느 칠흑같이 어두운 밤, 우상은 아랫목에 등불을 밝혀놓고 막 잠자리에 들려다가 기분이 이상해서 벌떡 일어났다. 그랬더니 그 귀신이 또 침상에 있는 것이 아닌가! 그는 정신이 혼미해져서 순식간에 다시 검으로 그 귀신을 내리쳤다. 그때 규방에서 시끌벅적한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둘째 딸의 허리를 또 잘라버린 것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온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사람들은 우상의 거처를 옮기게 하고, 귀신에게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이해시키려 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마음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나 귀신은 이듬해에도 나타났고, 우상은 결국 자신의 세 딸을 모두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자신 또한 병이 나서 죽고 말았다. 결국 이 모든 일이 매미들의 노래처럼 되고 말았던 것이다.
한편 화악에 사는 도사 저승하(褚乘霞)는 귀신을 잘 물리치기로 유명했다. 그는 평소에 우상과 친한 사이였는지라, 그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마을에서는 이 집을 흉가라 해서 폐쇄해둔 상태였다. 저승하는 혼자 그 집에 들어가서 제단을 마련했다. 날이 저물자 그 집안에서 뭔가 잡으러 쫓아다니는 것처럼 우레 같은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날이 밝자, 집은 허물어지고 나무들은 뽑혀 있었다.
다음날, 사람들을 시켜서 삽으로 동쪽 건물 아래 땅을 한길 정도 파헤치자 ‘탁씨 집안 딸의 무덤’이라는 명문(銘文)과 함께 오래된 무덤이 하나 나타났다. “밤중에 무장을 한 귀신들이 나타나서 나와 싸웠는데, 귀신이 패해 도망쳤소. 잠시 후 스무 살쯤으로 보이는 여자 하나가 사죄하면서, 자신이 탁씨 집안의 딸이라고 합디다. 내가 꾸짖자 ‘이것은 제 잘못이 아닙니다. 우상과 그 딸들은 정해진 운명을 다했기에 죽은 것입니다. 또 우상은 덕을 닦지 않고 포악하게 행동하면서 밥먹듯이 남을 속였으니, 그들의 죽음은 스스로 초래한 결과일 따름입니다.’”
나중에 저승하는 그녀의 무덤을 다른 곳으로 이장했다. 그후로 그 집에서는 더 이상 흉한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통유록(通幽錄)』에서
둘째 이야기: 명령을 받고 모시러 왔소
삼 년 동안 문밖에 나오지 마시게
한나라 때 하비땅의 주식(周式)이 동해에 간 적이 있었다. 도중에 그는 책을 든 관리 한 사람을 만났는데 배에 태워달라고 부탁했다. 함께 10리 남짓 갔을 때, 관리가 말했다. “내 잠시 다녀올 곳이 있네. 내 책은 자네 배에 두고 갈 테니 절대 열어보지 마시게.”
그가 떠난 후 몰래 책을 펴 봤는데, 그것은 죽은 사람들 혹은 죽을 사람들의 명단이었다. 거기에는 주식의 이름도 있었다. 주식은 정신없이 책을 보느라 관리가 온 줄도 몰랐다. “분명히 다짐을 해두었는 데도, 어째서 그 책을 열어봤소?” 주식이 피가 나도록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자, 한참 후 관리가 말했다. “자네가 먼길을 태워준 것은 고맙지만, 책의 내용은 지울 수 없네. 오늘 이후로 집으로 돌아가 3년 동안 문밖에 나오지 마시게. 그러면 죽음을 면할 수 있을 걸세. 내 책을 보았다는 말도 절대 하지 마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