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1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고전문학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표도로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제1부 어느 가문의 역사
1.우리 고장에서 지주로 알려졌으나 실상 자신의 영지에서 하루도 보내지 않았던 표도르 파블로비치 카라마조프. 그는 비열하고 방탕하며 분별없었지만, 세속적인 이익을 챙기는 데에는 기이할 정도로 능숙했다. 무일푼으로 시작해 죽을 때에는 십만 루블의 현금을 손에 쥐었으니, 사람들은 그를 어리석다 하면서도 그의 재산 앞에서는 말을 아꼈다. 그의 삶은 온통 이해할 수 없는 광대극과도 같았다.
그에게는 두 번의 결혼과 세 아들이 있었다. 첫 번째 아내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는 우리 고장의 부유하고 저명한 미우소프 가문 출신이었다. 아름답고 총명하며 활기 넘치던 그녀가 어째서 표도르 같은 보잘것없는 난봉꾼과 결혼했는지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했다. 아마도 그것은 ‘낭만주의’ 시대의 젊은 숙녀가 겪는 일시적인 감정의 유희였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여성으로서의 독립을 과시하고, 가문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었을 것이다. 기생충 같은 삶을 살던 표도르가 진보적인 시대의 대담하고 아이러니한 정신을 가진 인물로 잠시나마 비쳤을 뿐, 그는 그저 악의에 찬 익살꾼에 불과했다.
결혼의 낭만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는 남편에 대한 경멸 외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음을 깨달았다. 표도르는 아내의 돈을 모두 가로챘고, 두 사람 사이에는 끝없는 불화와 무질서한 삶만이 남았다. 성미 급하고 대담했던 아내는 표도르에게 구타당하는 대신 오히려 그를 때렸다는 소문이 돌았다. 결국 그녀는 세 살배기 아들 미티야를 남겨둔 채, 한 빈털터리 신학생과 함께 도망쳤다.
표도르는 아내가 떠나자마자 집안을 하렘으로 만들고, 술과 방탕에 빠져들었다. 그러면서도 온 지방을 돌아다니며 아내에게 버림받은 남편의 비극을 눈물로 호소하는 연극을 멈추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의 슬픔에 찬 얼굴 뒤에서 기쁨을 읽어내며 조롱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 슬픔에도 불구하고 꽤나 기뻐 보이시는군요.”
어느 날, 페테르부르크에서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이 전해졌다. 다락방에서 티푸스로, 혹은 굶주림으로 죽었다는 이야기였다. 술에 취해 있던 표도르는 거리로 뛰쳐나가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들고 환희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고도 하고, 어린아이처럼 통곡했다고도 한다. 아마 두 가지 모두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해방을 기뻐하는 동시에, 그를 해방시켜 준 여인을 위해 눈물을 흘렸다. 대체로 인간이란, 악인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순진하고 단순한 법이다. 우리 자신 또한 그렇지 않은가.
2.그런 인간이 어떤 아버지가 될지는 능히 짐작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아델라이다 이바노브나가 낳은 아이를 완전히 내팽개쳤다. 악의나 결혼 생활의 원한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그저 아이의 존재를 잊어버렸다. 표도르가 눈물과 하소연으로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고, 집안을 음탕한 소굴로 만드는 동안, 세 살배기 미티야는 충직한 하인 그리고리에게 맡겨졌다. 그리고리가 아니었다면, 아이의 작은 셔츠를 갈아입혀 줄 사람조차 없었을 것이다.
아이의 외가 친척들마저 처음에는 그를 잊었다. 외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외할머니는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겨 병상에 누워 있었으며, 이모들은 모두 결혼해 제 살기 바빴다. 꼬박 일 년 가까이, 미티야는 늙은 하인 그리고리의 오두막에서 자라났다. 만약 표도르가 아들의 존재를 기억해냈더라도, 자신의 방탕한 생활에 방해가 될 뿐인 아이를 다시 오두막으로 쫓아냈을 것이다.
그때 파리에서 돌아온 미티야의 외사촌, 표트르 알렉산드로비치 미우소프가 아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계몽사상과 유럽 문화에 심취한 젊은 지식인이었던 그는, 표도르에 대한 경멸감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교육을 책임지겠다고 나섰다. 훗날 그는 즐겨 회상했다. 미티야에 관해 처음 이야기했을 때, 표도르는 마치 처음 듣는 이야기인 양, 자기 집에 어린 아들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놀라는 눈치였다고. 과장된 이야기일지 모르나, 진실에 가까운 풍경이었으리라.
미우소프는 미티야의 후견인이 되었지만, 그 역시 파리로 돌아가자 곧 아이를 잊어버렸다. 미티야는 모스크바의 한 친척 집에 맡겨졌다가, 그 집 부인이 죽자 또 다른 딸의 집으로 보내지는 등, 여러 집을 전전하며 자라났다.
그는 아버지가 남긴 재산이 있으며, 성인이 되면 독립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 속에서 성장한 아들이었다. 불규칙한 소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그는 김나지움을 마치지 못하고 사관학교에 들어갔다. 코카서스로 파견되어 결투를 벌인 끝에 계급이 강등되기도 했고, 다시 승진하여 방탕한 생활을 즐기며 많은 돈을 썼다. 성인이 되어서야 처음으로 아버지 표도르를 만난 그는, 재산 문제로 담판을 지으려 했으나, 제대로 된 명세서 하나 받지 못한 채 약간의 돈과 앞으로의 수입에 대한 구두 약속만을 받고 서둘러 그를 떠났다.
표도르는 바로 그때, 아들이 자신의 재산에 대해 막연하고 과장된 생각을 품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는 아들이 경박하고 난폭하며, 돈만 손에 쥐여주면 잠잠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간파하고 이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따금씩 적은 돈을 보내주며 아들을 달래던 그는, 4년 후 미티야가 인내심을 잃고 다시 찾아왔을 때, 아들에게 남은 재산은 없으며 오히려 빚을 졌을지도 모른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통보했다. 청년은 기만과 사기를 의심하며 거의 이성을 잃었다. 그리고 이 사건이 바로, 내 이야기의 서막을 여는 비극의 시작이었다.
3. 네 살배기 미티야를 귀찮게 여겨 치워버린 직후, 표도르 파블로비치는 두 번째 아내를 맞았다. 8년간 이어진 이 결혼 생활의 희생자는 소피야 이바노브나라는 어린 소녀였다. 이름 없는 부제의 딸로 태어나 일찍이 고아가 된 그녀는, 한 부유한 장군 미망인의 집에서 자라났다. 그 노부인은 자선가인 동시에 그녀를 괴롭히는 폭군이었다. 온순하고 유순했던 소녀는 노부인의 끊임없는 변덕과 잔소리에 시달린 나머지, 다락방에서 목을 매달았다가 발견되기도 했다.
표도르는 사업차 들른 다른 지방에서 그녀를 만났고, 청혼했다가 거절당하자 첫 결혼 때처럼 또다시 야반도주를 제안했다. 강바닥에 몸을 던지는 편이 낫다고 여겼을 열여섯 소녀는, 그렇게 한 폭군에게서 벗어나 다른 폭군의 손아귀로 들어갔다. 지참금 한 푼 없이, 올가미에서 막 끌어내린 듯한 아내를 얻은 표도르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그는 아내의 경이로운 온순함과 순종을 발판 삼아 결혼의 최소한의 품위마저 짓밟았다. 집에 난잡한 여자들을 끌어들여 아내가 보는 앞에서 음탕한 향연을 벌였다. 보다 못한 하인 그리고리가 마침내 그 난장판을 부수고 여자들을 쫓아낼 정도였다.
불행한 젊은 아내는 결국 신경쇠약에 걸려, 농가의 여인들이 ‘악령 들렸다’고 말하는 상태에 빠졌다. 끔찍한 히스테리 발작 끝에 이성을 잃기도 했던 그녀는, 그럼에도 표도르의 두 아들, 이반과 알렉세이를 낳았다. 그녀가 죽었을 때 알렉세이는 네 살이었고, 꿈결처럼 어렴풋이 평생 어머니를 기억했다. 어머니의 죽음과 함께 두 어린 아들은 형 미티야와 똑같은 운명을 맞았다. 아버지에게 완전히 잊혀지고 버려진 것이다.
아이들은 다시 그리고리의 오두막에서 자라났다. 그러던 어느 날, 소피야를 키웠던 바로 그 폭군 노부인이 불쑥 나타났다. 8년 만에 마주한 술에 취한 표도르의 뺨을 후려치고 머리채를 잡아 흔든 그녀는, 곧장 오두막으로 가 더러운 옷을 입고 있던 두 아이를 담요에 싸서 마차에 태워 떠나버렸다. 표도르는 이 모든 것을 좋은 일이라 여기며, 뺨 맞은 이야기까지 온 동네에 떠벌리고 다녔다.
노부인은 곧 세상을 떠났지만, 유언으로 두 아이에게 각 천 루블씩 남겼다. 아이들의 양육은 성품이 곧고 인정 많은 귀족 예핌 페트로비치 폴레노프가 맡았다. 그는 유언의 돈을 건드리지 않고 오히려 이자를 불려, 두 아이를 자식처럼 길렀다. 특히 막내 알렉세이를 깊이 아꼈다.
이반은 조용하고 냉철한 소년으로 자랐다. 열 살 무렵, 그는 이미 자신들이 남의 집에 얹혀살고 있고, 아버지는 부끄러운 존재임을 깨달았다. 머리가 비상했던 그는 일찍부터 글을 쓰고 생각하는 데 익숙했다. 열세 살 무렵 모스크바 김나지움으로 옮겨 학업에 몰두했고, 푼돈을 받고 과외를 하거나, ‘목격자’라는 필명으로 신문에 거리의 사건들에 대한 짧은 글을 기고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아버지에게는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다. 마침내 대학 졸업 무렵, 그는 한 중요한 잡지에 발표한 기묘한 글로 문단과 대중의 주목을 동시에 받게 되었다. 그는 교회 재판 제도를 다룬 논문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고, 그 논문은 우연히도 그들의 고향 수도원까지 전해졌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우리 고장에, 경멸하던 아버지의 집에 나타났다. 돈 때문도, 방탕한 생활을 위해서도 아니었다. 사람들은 모두 의아해했다. 학식 있고 자존심 강한 청년이었는데, 평생 자신을 외면했던 아버지를 찾아와 두 달 동안 함께 지냈다. 놀랍게도 부자는 의외로 사이가 좋았다. 아버지는 아들의 영향 아래 마치 조금은 인간적인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다. 훗날 밝혀진 바로는, 그가 우리 고장에 온 이유 중 하나는 형 드미트리의 중대한 문제 때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품고 있던 진짜 속내는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이 방문은 카라마조프 집안의 비극적인 재회를 이끌었다.
4. 세 형제가 모두 한곳에 모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들 중 막내 알료샤는 이미 1년 전부터 고향 수도원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세속의 욕망을 버리고 신의 길을 따르려 했다. 그래서 우리가 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이미 수도복을 입은 수련승이었다. 알료샤는 스무 살에 불과했고, 이반은 스물네 살, 맏형 드미트리는 스물일곱이었다. 먼저 밝혀두자면, 이 젊은 알료샤는 광신자도, 기이한 신비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다만 일찍부터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수도원의 길을 택한 것은, 세속의 어둠과 사악함에서 벗어나 사랑의 빛으로 나아가고자 몸부림치던 그의 영혼에게 그 길이 잠시 숨을 고를 수 있는 이상적 피난처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조시마 장로가 있었다. 그는 우리 고장에서 이름 높은 장로였다. 알료샤는 그에게 첫사랑의 온기를 바치듯 순명했고, 그 따뜻함이 그의 길을 비춰 주었다.
그는 요람 때부터 남달랐다. 네 살에 어머니를 잃었지만, 평생토록 그 얼굴과 손길을 기억했다. 한여름 저녁 햇살, 창문으로 스며드는 황금빛 석양, 모퉁이의 성화와 그 앞에서 흐느끼는 어머니, 아이를 번쩍 안아 성모의 품에 맡기듯 들어 보이던 양팔, 그리고 경악한 유모가 달려와 아이를 낚아채던 순간. 거대한 그림에서 한 귀퉁이만 남아 빛나는 파편처럼, 그 장면만은 세월을 뚫고 살아남아 있었다.
아이였던 알료샤는 말수가 적었다. 그러나 그것은 새된 침묵이나 냉담함이 아니라, 자신 안의 한 가지 중요한 일, 남과는 무관한 어떤 내적 사무(私務)에 늘 마음이 붙들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사람을 사랑했고, 사람을 믿었다. 그는 그 무엇도 단정하지 않았다. 남을 심판하지 않으려 했고, 비난하는 법이 없었다. 스무 살에 부친의 난잡한 집에 들어와서도,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때면 소리 없이 물러날 뿐, 혐오와 경멸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의심 많은 부친은 처음엔 그를 경계했으나, 보름도 채 못 되어 술 냄새와 눈물, 저속한 감상과 함께 아들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 늙은 방탕아의 가슴 어딘가에, 그가 누구에게도 느껴본 적 없는 진짜 애정이 살아났다는 사실만은 부인할 수 없었다.
알료샤는 어디서나 사랑받는 아이였다. 후견인 예핌 페트로비치의 집에 처음 들어갔을 때도, 그는 마치 그 집에서 태어난 자식처럼 곧장 식구가 되었다. 교묘한 재롱이나 영리한 아첨과는 무관한, 애초부터 타고난 사랑스러움이었다. 학교에서도 그는 꿈결 같은 소년이었고, 구석에 틀어박혀 책 읽기를 좋아했다. 장난기 많지도, 들뜬 법도 드물었지만, 그것은 우울이 아니라 맑은 성정의 반짝임 때문이었다. 모욕을 받아도 곧잘 잊어버렸다. 혹은 애초에 모욕이라 여기지 않았다. 아이들이 그를 놀리려 달려들 때면, 그는 귀를 막고 바닥으로 미끄러지며 몸을 숨겼다. 끝내 아이들은 그를 “여자애 같다”고 조롱하는 일을 그만두었고, 오히려 그 연약함을 연민으로 감싸 주었다.
예핌 페트로비치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는 다른 친척 집으로 옮겨갔고, 누구의 돈으로 사는가는 따지지 않았다. 돈의 가치를 모르는 무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큰돈을 가지고 있다면 누군가에게 가볍게 내어줄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는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어느 날 문득 “아버지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했다. 차비를 넉넉히 쥐여 주자, 그는 절반을 돌려주며 3등 칸을 타겠다고 했다. 고향에 와서는 먼저 어머니의 무덤을 찾았다. 부친은 그녀가 묻힌 곳조차 잊고 있었다. 결국 그리고리가 그를 묘지 구석의 싸구려 주철 비석으로 이끌었다. 알료샤는 오래 울지도, 말을 늘어놓지도 않았다. 고개를 숙여 듣고, 조용히 돌아섰다.
어머니의 무덤을 찾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수도원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다. 부친은 술에 취해 히죽거리면서도, 아들의 결심에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네가 거기 있겠다니, 내 예감이 맞았군. 네가 거기 있는 것이 나 같은 늙은 주정뱅이와 어울리는 것보다야 낫겠지…. 조시마 장로는 정직한 사람이야. 네 몫 이천 루블도 있지. 내가 도울게. 다만 그들이 달라 하지 않으면 굳이 줄 필요는 없지, 그렇지?” 그리고는 한참을 잠꼬대 같은 농담으로 지옥과 갈고리의 존재를 떠들어댔다. 지옥에 천장이 없다면 갈고리는 어디에 걸 것인가, 악마가 나를 끌어내릴 갈고리는 대관절 어디서 단조하나, 프랑스 시인이 말했듯 그림자의 마부가 그림자의 솔로 그림자의 마차를 문지르듯, 아마 갈고리도 그림자일 터. 알료샤가 “갈고리는 없어요”라고 부드럽게 말하자, 그는 “그래, 그림자뿐이지” 하며 머쓱하게 웃었다.
그러나 그 어수선한 넋두리의 끝에서, 그는 문득 진심을 드러냈다. “나는 네가 아깝다, 알료샤. 그래도 보내겠다. 너는 우리 죄인들을 위해 기도해다오. 세상에 누가 나를 위해 기도하겠느냐. 난 늘 그게 궁금했다. 악마들이 갈고리로 나를 끌어내리지 않으면 이 세상에 무슨 정의가 있겠니? 그런데 말이야, 너만은 나를 정죄하지 않았어. 그걸 느낀다. 어쩔 수 없이 느껴져.” 그리고 그는 아이처럼 훌쩍였다. 그는 악했고, 동시에 감상적이었다.
그즈음 표도르는 남방과 오데사를 전전하다 돌아와, 돈 냄새에 민감한 수완으로 선술집을 넷이나 열고 있었다. 그 얼굴엔 타락의 표지가 빽빽했다. 탐욕스레 벌어진 입술, 검게 썩은 이, 매끈한 매부리코를 자랑하면서 “퇴폐한 로마 귀족의 상”이라 스스로를 희롱하는 입담. 술은 더 잦아졌고, 말은 흐트러졌다. 다만 알료샤가 돌아온 뒤로, 마치 죽은 무언가가 잠깐 깨어난 듯, 그의 마음속 도덕의 잔불이 희미하게 빛났다.
5.혹자는 알료샤를 병약하고 창백한 몽상가로 상상할지 모르나, 그는 오히려 붉은 뺨에 맑은 눈을 가진, 건강미 넘치는 열아홉 청년이면서 늘 고요하고 사려 깊었다. 누군가는 붉은 뺨과 신앙이 양립하냐고 고개를 갸웃할지 모르나, 알료샤는 오히려 누구보다 현실적이었다. 수도원에서 기적을 믿었으되, 그의 믿음은 기적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믿음이 먼저였고, 그 믿음이 기적을 불러왔다. 진짜 현실주의자란, 믿지 않기로 한 순간에는 감각마저 의심하며 기적을 거절할 힘을 갖는다. 그러나 일단 믿기로 결단하면, 자신의 현실감각에 따라 기적 또한 인정한다. 만약 그가 신과 불멸이 없다고 단언했더라면, 그는 즉시 무신론자요 사회주의자가 되었을 것이다. 하느님 없이 땅 위에 하늘을 세우려는, 오늘의 무신론이 취한 형식 말이다. 그러나 그는 속히 확신했고, 곧장 속으로 선언했다. “나는 불멸을 위해 살겠다. 타협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