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 -
6호실
안톤 파블로비치 체호프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라긴 안드레이 에피므이치: 자선 병원 원장. 독서광에 철학적이지만 세상에 무관심하다.
그로모프 이반 드미트리치: 귀족 출신의 피해 망상증 환자
미하일 아베랴느이치: 라긴의 친구로 우체국장
니키타: 6호실의 문지기. 전제적이며 구타로 환자들을 관리한다.
호보토프: 라긴의 보좌의로 나중에 라긴을 감금한다.
정신병동 6호실의 다섯 사람
음침하고 기분 나쁜 외관의 건물과 주변에 산더미처럼 쌓인 병원 쓰레기들이 숨막힐 듯한 악취를 풍기고 있다. 그리고 그 건물 안에 벽은 푸르죽죽한 페인트로 칠해져 있고, 천장은 굴뚝 없는 시골 농가처럼 그을려 있고, 창문에는 쇠창살이 끼워져 있고, 잿빛 마루가 울퉁불퉁한 크고 널찍한 방이 있다. 방안에서는 절인 양배추 냄새, 등불 심지 타는 냄새, 그리고 빈대와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러 마치 짐승의 우리 속에라도 들어온 느낌을 준다.
이 병실의 관리는 니키타라는 퇴역 노병사가 맡고 있었는데, 그는 무엇보다 질서를 사랑해서 모든 것을 주먹으로 정리하는 사람이다. 방안에는 나사못으로 마루에 고착시킨 몇 개의 침대가 있고 그 위엔 푸른 환자복을 입고 있는 5명의 환자들이 있다.
첫 번째 환자는 침대에 앉은 채 한 손으로 머리를 괴고는 물끄러미 한 곳을 바라봤다. 그는 밤낮 머리를 흔들거나 한숨을 짓거나 쓴웃음을 지으며 슬픔에 잠겨 있다. 그 옆에는 몸집이 작고 동작이 빠르고 쾌활해 보이는 모이세이카라는 유태인 노인으로 약 20년 전 자신이 운영하던 모자 공장이 모두 불에 타자 정신이상이 된 사람이다. 그는 쉴새없이 휘파람을 부는가 하면 나직이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혼자 키득키득 웃기도 한다. 그리고 표정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흐리멍텅한 얼굴의 뚱보 농군이 있었는데, 그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색과 감각을 잊어버린 채 게으르고 처먹을 줄만 아는 불결한 동물이었다. 또 다른 환자는 한때 우체국 분류계에서 일했던 사람으로 능청스럽고 교활해 보이는 금발의 사내다. 마지막으로 그로모프는 서른 셋 가량의 귀족 출신으로 한때 집달리와 현청의 서기로 근무했던 사람이다. 그의 병명은 피해망상증이다. 그는 언제나 흥분과 걷잡을 수 없는 막연한 기대에 들떠 있었다. 누군가 나타나기만 해도 그의 얼굴은 극도의 불안과 혐오감으로 가득 찼다. 그는 자주 열띤 연설을 했는데, 인간의 비굴에 대해, 진리를 유린하는 폭력에 대해, 지상에 도래할 미래의 아름다운 생활에 대해, 그리고 압제자의 우둔함과 잔혹성을 연상시키는 쇠창살에 대해 지껄였다. 그럴 때 그의 모습에선 광인과 인간의 이중적 모습이 드러난다.
그로모프가 병원에 오게 된 사연
이반 그로모프는 유복한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약 15년 전이었던 대학시절 형의 죽음과 연이은 아버지의 불행 후 가세가 쪼들리게 된다. 그는 대학시절부터 발작하기 쉬운 성격과 협심증 때문에 친구라곤 하나도 없었다. 도시의 무지몽매하고 동물적인 삶을 비난하면서 그로모프는 병적으로 엄청난 독서를 통해 많은 지식을 섭취했다. 그러던 어느 가을날, 그는 호송돼가는 죄수를 보고 자신도 체포돼 족쇄를 차고 감옥에 보내질지 모른다는 공상에 사로잡혔다.
그때부터 그로모프의 고통스런 삶이 시작됐다. 그는 외부와의 모든 접촉을 끊고 사람들을 피하기 시작했다. 직장도 그만두고 그는 절망과 공포 속에 온몸을 내맡겼다. 봄이 와서 눈이 녹기 시작했을 때, 묘지 근처에서 반쯤 부패된 두 사람의 시체가 발견됐다. 이 살인사건에 대한 소문이 퍼지게 되자 그로모프는 자신이 죽이지 않았음을 과시하듯 일부러 미소를 지으며 다녔다. 그러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얼굴이 빨개졌다 파래졌다 하며 자제력을 상실한 나약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집에 찾아온 난로 수선공을 경찰로 착각한 그로모프는 공포에 질려 도망쳤다가 동네 사람들에 의해 이 병원에 오게 됐다.
6호실에서 새로운 얼굴을 만나긴 어렵다. 그런데 최근 이상한 소식이 돌기 시작했다. 그것은 의사가 6호실을 방문하게 될 것 같다는 소문이었다. 이 병원의 의사 안드레이 예피모비치 라긴이 이 병원에 왔을 때 이곳의 질서는 엉망이었고 예산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는 병원을 살펴보고 가장 현명한 방법은 환자를 해방시키고 병원을 폐쇄시키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한 후에 그는 그것이 자기 혼자 힘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과 그렇게 한다고 한들 이 불결한 곳은 다른 곳으로 이전해갈 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는 지성과 성실을 무척 사랑했지만 자기 주위를 성실하고 지적 분위기로 만들기엔 신념과 박력이 부족했다. 명령, 금지, 주장하는 것 등은 그와 거리가 멀었다. 그는 날이 감에 따라 점점 단조롭고 무익한 일에 권태를 느꼈다. 그는 죽음이란 피할 수 없는 합법적 최후며, 고통 또한 인간을 완성하는 길이라고 여겼기 때문에 매일 병원에 나가지도 않았고 환자 돌보는 일에도 관심이 없었다. 환자 보는 일은 원장보다 자신의 의술이 더 훌륭하다고 자부하는 그의 조수가 맡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후 보좌 의사로 호보토프라는 젊은 의사를 초빙했는데, 그는 교활하고 원장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다.
원장 라긴은 보기 드문 독서가로 특히 역사와 철학에 탐닉했다. 그에겐 미하일 아베랴느이치라는 우체국장이 유일한 친구다. 그들은 인생이란 저주받을 함정에 불과하다는 것, 그리고 믿을 만한 근거가 없으므로 영혼의 불멸을 믿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와 헤어지면 라긴은 “나는 해로운 직무에 종사하면서 내가 속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봉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라긴과 그로모프의 만남
그러던 3월의 어느 봄날 라긴은 6호실의 그로모프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대체 왜 날 이런 데 가둬두는 겁니까?” “당신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오.” “그래, 난 병자요. 그렇지만 수백, 수천 명의 미친놈들이 세상에서 자유로이 산책을 하고 있지 않느냔 말이오? 대체 무엇 때문에 나와 여기 있는 불행한 사람들만 모든 사람을 대신해 마치 속죄양처럼 처박혀 있어야 하느냔 말이오? 당신이나 조수나 이 병원에 있는 악당들이 도덕적인 면에서 우리보다 낮은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만 여기 갇혀 있고 당신들은 자유로우냔 말이오? 그런 논리가 어디 있소?” “도덕이나, 논리 같은 건 여기에 아무 상관이 없소. 모든 것은 우연의 문제올시다. 내가 의사고 당신이 정신병자라는 것은 도덕도 논리도 아니고 그저 무의미한 우연이란 말이오.“그로모프는 다시 라긴에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죠?” “당신 입장에서 가장 좋은 방법은 도망치는 겁니다. 그러나 그 또한 무익한 일일 거요. 또 다시 붙잡혀 오게 될 테니까…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그 안에서 안정을 찾는 일이오.” “그런 건 아무에게도 소용없어요.” “감옥이나 정신병원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누군가 그 속에 들어 있게 마련입니다. 당신 아니면 내가, 그도 아니면 제삼자가 말입니다. 하지만 기다리시오. 먼 훗날에 감옥이나 정신병원이 없어질 때가 오면… 물론 그런 시대는 조만간 오고 말 거요.“
그로모프는 발작적으로 “이 철창 속으로부터 너희들을 축복한다. 진리만세! 오, 기쁨이여!”라고 외쳤다. 의사 라긴과 그로모프의 첫 만남은 두 사람의 관심사를 묶어줬다. 즉, 신의 문제, 불멸의 문제, 그리고 행복과 인생 등…. 그리고 라긴은 자기의 집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한다. “내가 여기 살기 시작한 이래 말 상대가 될 수 있었던 사람은 저 청년이 처음이군!” 그는 계속해서 그로모프의 일만을 생각하고 자신이 현명하고 재미있는 사람을 만났다는 사실에 고무돼 그를 다시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환자와 의사의 대화를 엿듣는 사람들
다음날 라긴은 그로모프를 다시 찾았다. 그러나 그로모프는 그를 스파이로 생각해 무척 화가 나 있었다. “딴 데 가서 스파이질을 하거나 고문을 하거나 마음대로 하시오. 내겐 아무 소용이 없을 게요. 난 처음부터 당신이 왜 내게 접근했는지 알고 있었어요.” “기괴한 공상을 다하고 있군! 당신은 날 스파이로 생각한단 말이오?” “물론… 스파이거나 아니면 날 고문하러온 의사거나… 아무튼 어느 쪽이든 마찬가질 테니까….” “그래, 당신 말이 옳다고 가정합시다. 가령 내가 배신을 해서 당신을 경찰에 넘기려고 말꼬리를 잡았다고 합시다. 당신은 체포돼 재판을 받겠지요? 하지만 재판소건 감옥이건 이곳보다 더 나쁜 곳이 또 있겠소?…대체 당신은 뭘 겁내는 거죠?“
의사의 말에 그로모프는 누그러졌다. 그리고는, “난 너무 오랫동안 인간다운 생활을 해보지 못했어요. 여긴 정말 지독해요! 참을 수 없어요.” “따스하고 아늑한 서재와 이 병실 사이엔 아무 차이도 없습니다. 인간의 안정과 만족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 속에 있으니까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말했듯 ‘고통이란 것은 고통에 대한 산 관념이니 그 관념을 변화시키기 위해 의지의 힘을 기르고 그 관념을 버린 후 불평하지 않는다면 고통은 소멸하리라.’는 말은 옳습니다. 흔히 현인이나 사색자라는 사람은 고통을 경멸하는 자들입니다.” “외부니 내부니 하는 것은 난 모릅니다. 내가 아는 건 신께서 따스한 피와 신경으로 나를 창조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온갖 자극에 반응하도록 창조하셨다는 거죠. 고통에 대해서는 외침과 눈물로, 비열에 대해서는 분노로, 추악에 대해서는 혐오로 답하는 겁니다. 내 생각엔 이것이 참된 생활입니다.“
라긴과 그로모프의 대화는 한 시간 이상 계속됐다. 라긴은 그로모프와의 대화에 아주 만족했다. 그래서 그는 매일 이 병실을 드나들었다. 그는 아침마다 그리고 점심 후에도, 또 어떤 때는 어둠이 깃들 때까지 그로모프와 함께 있는 날도 있었다. 그로모프도 처음엔 그를 경원시하고 어떤 음모라도 있지 않나 의심했지만 나중엔 익숙해져서 날카로운 자신의 태도를 겸손하고 풍자적으로 바꿨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원에서는 의사 라긴이 6호실을 방문한다는 소문이 번지게 됐다.
그러던 어느 날, 보좌 의사 호보토프는 실내모자를 쓴 환자 그로모프와 의사 라긴이 나란히 침대에 앉아 이야기하는 모습을 봤다. 환자는 얼굴을 찌푸리고 부들부들 떨면서 경련을 일으키며 환자복을 여미고 있고, 의사는 고개를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아서 얼굴이 붉게 상기됐는데 그 얼굴이 실망에 찬 듯 우울해 보였다. 호보토프는 어깨를 흠칫하고 빙긋 미소를 짓더니 니키타와 의미 있는 눈짓을 주고받았다. 다음날 호보토프는 니키타와 함께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들었다. “영감이 완전히 돌아버렸군! “전 이미 오래 전부터 이렇게 되리라고 예측했습니다.“
이상한 변화
그 후 라긴은 자기 주위에서 이상한 분위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그를 보면 수군거리고 직원들도 의심스런 눈초리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친구인 우체국장도 그저 사념에 잠긴 듯 슬픈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8월에는 시장으로부터 중대한 용무로 만날 것을 바라는 편지를 받았다. 시장이 주재하는 자치회 위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의사 라긴은 오늘이 며칠인지, 무슨 요일인지, 1년이 며칠인지 그리고 6호실에 훌륭한 예언자가 있다는데 그게 사실인지 등의 질문을 받았다. 라긴은 그날 모임이 자신의 정신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소집된 모임이란 것을 알았다. 그리곤 생전 처음 모욕과 분노를 느꼈다.
그날 밤 우체국장이 찾아왔다. “친구로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용서해주게. 자넨 건강하지 않아. 건강을 위해 휴식과 여행이 필요하네. 나와 함께 여행이라도 떠나세.” “난 아주 건강하다고 느끼고 있는데….“
라긴은 20여 년 동안 길든 생활의 질서를 파괴한다는 것을 거부하지만 그러면서도 멍청한 녀석들이 자신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이곳에서 잠시 벗어나는 것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1주일 후 라긴은 휴양하라는, 다시 말해 사표를 쓰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그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또 1주일 후 그는 우체국장과 함께 모스크바와 페테르부르그, 그리고 바르샤바로 여행을 했다.
라긴은 우체국장과의 여행에서 완전히 녹초가 돼버렸다. 노상 큰소리로 혼자서만 지껄이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우체국장을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 중 대체 누가 정신병자일까? 어떤 일에도 남을 방해하지 않으려 애쓰는 나일까? 아니면 자기보다 현명하고 재미있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며 아무에게도 안정을 주지 않는 저 에고이스트일까?”
결국 라긴은 함께 여행을 하되 병을 핑계로 혼자서 호텔방에 누워 쉬는 편을 택했다. 그리고는 자기 혼자뿐이라는 의식이 얼마나 유쾌한 것이며, 참된 행복은 고독 없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타락한 천사가 신을 배반한 것도 아마 그 동안 몰랐던 고독을 천사들이 알고 그것을 원했기 때문이었을 거라고 느꼈다. 그러면서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예전처럼 되겠지!”라고 기대했다.
보좌 의사 호보토프의 음모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원장의 자리는 의사 호보토프가 차지하고 있었다. 관사를 내주고 라긴은 다른 집에 세를 들었다. 그러나 예전처럼 8시에 일어나 차를 마신 다음 자리에 앉아 낡은 책과 잡지를 읽었다. 그런데 책이 낡아선지, 환경이 변해선지 독서도 이젠 예전처럼 그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다만 그를 지치게 할 뿐이었다. 그로모프와 만나 이야기할 요량으로 두 번 그를 찾아갔으나 그로모프가 몹시 흥분해서 화가 냈기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 그로모프는 자신을 내버려둘 것을 요구하고 쓸데없는 넋두리는 오래 전에 싫증났으니 차라리 이젠 독방에 감금해달라고 말했다.
어느 날 라긴이 점심을 먹고 소파에 누워있는데 우체국장과 호보토프가 약을 들고 찾아왔다. 두 사람은 라긴의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는 것과 다시 여행을 하는 것이 좋다는 것, 그리고 말년에 결혼이라도 해야 할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해 라긴의 기분을 상하게 했다. “날 내버려둬! 저리 꺼져! 두 사람 다 꺼져, 둘 다! 나쁜 놈들, 머저리 같은 놈들, 내겐 너희들의 우정이나 약 같은 건 필요없어. 속된 놈들, 더러운 놈들! 뒈져버려!” 두 사람이 나간 후에도 라긴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같은 말만을 반복했다. 그리고 마음이 가라앉자 그는 인생에서 한번도 없었던 그날 일을 생각하고 수치심과 울분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지력과 분별은 어디로 갔는가? 사물의 이해며 철학적인 무관심은 어디로 갔느냐?” 라고 회한을 내뱉었다.
다음날 라긴은 우체국장에게 사과를 하러 갔다. 우체국장은 진심으로 그를 위로해주려 했다. “병이란 건 어쩔 수 없는 걸세. 어제 발작은 정말 놀랐어. 충고를 받아들여 병원에 입원하게.” “아니, 그들의 말을 믿지 말게. 내 병이라는 건 단지 20년간 여기서 살면서 단 한사람의 현명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다는 것, 게다가 그 사람이 정신병자였다는 것일세. 난 아무렇지도 않아. 단지 빠져 나올래야 나올 수 없는 절망 상태에 빠져버렸다는 것 뿐야. 이젠 무슨 일이든 각오가 돼 있네.“
우체국장은 친구로서 그가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으면 반드시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날 밤 의사 호보토프가 예고도 없이 라긴을 방문했다. 그리고는, “저, 잠시 용무가 있어서 왔는데요. 저와 함께 입회 진찰을 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환자는 어디 있지?” “병원에 있습니다. 전부터 선생님께 보여주고 싶었는데요. 아주 재미있는 증상입니다.“ 두 사람은 병실로 들어갔다. “이곳에 어떤 환자가 폐에 발작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잠시 기다리세요. 청진기를 두고 와서요.” 그리고는 호보토프는 나가버렸다.
예기치 않은 감금
황혼이 깃들기 시작했다. 그로모프는 얼굴을 베개 속에 묻고 자기 침대 위에 누워 있었다. 중풍환자는 소리 죽여 울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고 있었다. 방안은 고요했다. 라긴은 그로모프의 침대 위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반시간이 지나서 호보토프 대신 니키타가 환자 옷과 내의와 슬리퍼를 한아름 안고 병실로 들어왔다. “옷을 갈아입으시오. 여기가 당신 침대… 이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