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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치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
백치(Идиот)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므이쉬킨: 간질병을 앓고있는 26세의 공작.‘백치’라 불리는 순진무구한 영혼의 소유자로 나스타샤와 아글라야 사이에서 방황한다.

나스타샤: 불행한 과거를 가진 토츠키의 정부. 므이쉬킨과 로고진 사이에서 갈등한다.



로고진: 막대한 유산을 상속받은 27세의 청년. 나스타샤를 지독히 사랑한다.



예판친: 50세 가량의 퇴역 장군. 아글라야의 아버지.



아글라야: 예판친 장군의 셋째 딸. 므이쉬킨을 사이에 두고 나스타샤와 연적관계에 놓인다.



토츠키: 나스타샤의 보호자이자 그녀의 정부.



가냐: 예판친 장군의 비서. 속물이며 야심가인 그는 돈 때문에 나스타샤와 결혼할 계획을 세운다.

레베제프: 가난한 허풍쟁이 관리. 속물적 광대인 그는 사람들 앞에서 종종 「묵시록」을 해석한다.

이폴리트: 17세 가량의 젊은 청년. 무신론과 진보사상의 추종자.



콜랴: 가냐의 남동생. 형과는 달리 성실하고 선량한 마음의 소유자로 므이쉬킨을 잘 따른다.





운명적 만남

11월의 끝 무렵, 유난히 포근한 어느날 아침 9시 경, 바르샤바를 출발한 페테르부르그 행 열차가 전속력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 열차의 3등 객실 창문가에는 두 승객이 날이 밝을 무렵부터 일어나 마주앉아 있었다. 한 사람은 26세 가량의 공작 므이쉬킨으로, 움푹 들어간 볼에 하얀색 짧은 턱수염을 한 상당히 인상적인 외모를 하고 있었다. 그는 간질병과 정신 질환의 치료를 위해 오랫동안 스위스에 머물다 러시아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오랜 병으로 인해 백짓장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며, 외국에서의 고독한 생활 탓에 사람들과의 자연스러운 교제라든가, 분주한 도시 생활의 흔적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는 유독 ‘한 곳을 집중하는, 생각에 잠긴 눈’을 갖고 있었다.

그와 마주앉은 다른 한사람 역시 27세의 건장한 청년으로, 그는 한달 전 엄청난 유산을 남기고 사망한 상인 세묜 로고진의 장남이었다. 무분별하고 정열적인 성격의 그는 어느 날 나타난 나스타샤 필립포브나에게 매료돼 아버지의 지불 대금을 털어 그녀를 위한 선물을 샀다. 그후 집을 뛰쳐나와 숙모의 집에 머물렀는데, 갑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막대한 유산의 상속인이 되어 페테르부르그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우연히 마주친 두 사람은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서로에게 호감을 갖고, 로고진은 공작에게 페테르부르그에 도착하면 함께 나스타샤를 찾아가자는 말을 남긴 채 떠났다.

페테르부르그에 도착한 므이쉬킨은 우선 예판친 장군 집으로 향했다. 장군 부인의 먼 친척인 그는 뛰어난 글씨체로 예판친의 비서가 됐는데, 우연히 그곳에서 장군과 그의 비서인 가냐가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가냐가 나스타샤와 결혼을 계획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나스타샤는 뛰어난 미색에 오만하고 강한 자존심의 소유자다. 귀족 신분이었으나 일찍 양친을 여읜 그녀는 이웃의 돈 많은 지주인 토츠키에게 농락 당한 뒤 9년 동안 그의 정부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토츠키는 벼락부자가 된 예판친 장군의 장녀 알렉산드라와 결혼하기 위해 나스타샤를 가냐와 결혼시키려 한다. 이런 생각에는 자신의 여자였던 그녀를 계속해서 자신의 곁에 두려는 호색가다운 면모가 드러나 있으며, 나이 든 예판친 장군조차도 그녀를 탐내고 있다.

예판친 장군의 가족들과 인사를 나눈 므이쉬킨은 장군 부인을 비롯한 세 딸들에게 ‘스위스’와 ‘사형’ 그리고 ‘시골 처녀’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들의 호감을 사게 됐다. 한편 장군의 셋째 딸 아글라야를 사랑하면서도 토츠키로부터 나스타샤와의 결혼 조건으로 7만 5천 루블을 받기로 돼 있는 가냐는 공작을 통해 아글라야에게 구원을 청하는 편지를 전달하는데, 가냐의 헛된 욕망을 됨됨이를 잘 아는 그녀는 아무런 회답을 주지 않았다.



정말 이런 자와 결혼할 작정이오?

가냐와의 불편한 관계에도 불구하고 그의 집에서 묵기로 한 므이쉬킨은 가냐의 아버지 퇴역장군 이볼긴이 자신의 아버지와 친구였다는 사실을 알았다. 예판친 장군의 가정과 마찬가지로 그 가족들 내에서도 나스타샤에 대한 문제로 언쟁이 오갔다. 그런 말이 오가고 있는 자리에 갑자기 나스타샤가 나타나자 가냐의 가족들은 모두 당황한다. 사진으로 이미 그녀를 본 공작은 그 자리에서 그녀를 알아보고, 자리를 얼버무리려는 허풍쟁이 이볼긴 장군은 신문에서 읽은 ‘발바리 사건’을 마치 자신이 실제 경험한 것인 양 떠벌인다.

바로 그때 요란스러운 인기척을 내며 로고진이 그의 시종인 레베제프와 행색이 추한 여러 사람을 대동하고 들어왔다. 로고진 일동의 무례한 출현에 가냐를 비롯한 그의 가족은 몹시 흥분했고, 나스타샤는 불안한 호기심으로 로고진을 바라본다. 석 달 전 카드놀이에게 가냐의 속임수로 수중의 돈을 몽땅 잃어버린 적이 있는 로고진은 가냐에게 ‘돈에 환장한 인간’이라는 비난을 퍼부으며, 나스타샤를 향해 소리질렀다. “그래, 당신은 정말 이런 자와 결혼할 작정이오?” 거만한 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나스타샤는 여태까지의 태도를 바꾸고는 이렇게 말했다. “그럴 생각은 조금도 없어요. 그런데 왜 그러세요? 왜 그런 걸 나한테 물을 생각을 하셨죠?”

가냐와 결혼할 생각이 없다는 나스타샤의 대답에 로고진은 가냐와의 관계를 청산하는 조건으로 10만 루블을 제안하고, 실내는 온통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 상황을 가만히 지켜보던 므이쉬킨은 그녀를 향해 나무라는 투로 소리쳤다. “그래, 당신은 조금도 부끄럽지 않습니까? 당신은 원래 그런 사람인가요? 절대로 그럴 리가 없습니다.” 갑작스런 공작의 반문에 약간 당황한 빛을 보이던 나스타샤는 쓴웃음을 지어 보이고는 그 자리를 떠났다.

그날 저녁 공작은 알 수 없는 이끌림으로 파티가 열리는 나스타샤의 집을 찾았다. 초대받지 않은 손님의 출현에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반가워했고, 나스타샤는 처음에는 놀라는 듯 하더니 이내 만족스런 얼굴로 그를 대했다.

그 자리에는 가냐를 비롯해 토츠키와 예판친 장군, 레베제프, 장안의 백작부인과 영애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었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프티죠 놀이’가 시작됐고, 예판친과 토츠키 이야기로 한창 파티 분위기가 무르익은 가운데 나스타샤는 ‘가냐와 결혼하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므이쉬킨이 머뭇거리며 이를 말리자 그녀는 곧 결정을 바꿔 그와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파티장은 다시 술렁거렸다. 사방에서 그녀를 부르며 뜻밖의 결정에 의아해하는 말들이 오갈 때 갑자기 로고진이 등장했다.



로고진의 청혼과 가냐의 상처

로고진은 낮에 가냐의 집에서 나스타샤에게 약속한 대로 10만 루블을 들고 나타났던 것이다. 그녀는 호기심에 가득찬 눈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마침내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 광경을 보며 어쩔 줄 몰라하던 므이쉬킨이 나서서 그녀에게 청혼을 하며, 자신이 막대한 유산을 상속하게 됐다는 편지를 보여줬다. 그러나 공작이 진정 자신을 이해하고 염려하고 있다는 것을 안 나스타샤는 그의 순수한 마음을 접은 채 로고진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한편 나스타샤는 로고진이 건넨 10만 루블을 불 속에 던져 가냐가 그것을 끄집어 낼 경우 그 돈 모두를 그에게 주겠다고 한다. 사람들은 술렁거리고 나스타샤는 유유히 돈을 불 속에 던졌다. 이런 상황을 지켜본 가냐는 모욕감과 당황함으로 그 자리에서 기절하고 만다. 나스타샤는 그런 가냐의 모습을 안타까워 하며, 타다 남은 돈을 꺼내 가냐의 몫으로 남겼다. 마침내 그녀는 로고진의 트로이카를 타고 예카체린고르로 향했고, 반쯤 넋을 잃은 므이쉬킨은 허겁지겁 달려나와 그들의 마차를 뒤쫓아갔다.

이틀 뒤 므이쉬킨은 유산 상속 문제로 급히 모스크바로 떠났다. 그가 약 6개월 가량 페테르부르그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괴이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나스타샤와 로고진이 모스크바에 있다는 것이 그 소문이었다. 나스타샤가 로고진과의 결혼을 목전에 두고 번번이 사라졌는데, 모스크바에서 로고진에게 붙잡힌 그녀는 다시 결혼을 약속한 뒤 얼마전 세 번째로 행방을 감췄다는 것이었다. 이 소문을 전해들은 예판친 장군 가족들은 기분이 나빠지고, 토츠키와 큰 딸 알렉산드라와의 결혼 계획은 깨지고 말았다.

사실 로고진에게 청혼을 받은 나스타샤를 따라간 므이쉬킨은 다음 날 새벽 5시경에 집으로 돌아왔었다. 모욕감으로 기절했던 가냐는 그를 기다려 나스타샤가 남긴 돈 뭉치를 그녀에게 돌려주라고 부탁했다. 그 뒤 가냐는 아버지 문제로 시달리며 동생 콜랴와 가까워지면서 조금씩 변해갔다. 한편 콜랴는 므이쉬킨 공작이 남긴 편지를 장군의 셋째 딸 아글라야에게 전하는데, 거기엔 그녀에 대한 공작의 마음이 담겨있었다.

결혼식장에서 세 번 도망치다

6월 초 페테르부르그로 돌아온 므이쉬킨은 레베제프의 집으로 향했다. 모스크바에서 공작은 그로부터 로고진과 나스타샤에 대한 사정을 적은 편지를 받았던 것이다. 레베제프는 나스타샤가 로고진과의 결혼식 전날 도망치길 벌써 세 번째인데, 레베제프에게 도움을 요청해 자신의 처제 집에 그녀를 숨겨줬다는 것이다.이런 소식을 전해들은 므이쉬킨은 레베제프의 별장이 있는 파블로프스크에서 묵기로 했다. 레베제프의 집을 나온 공작은 어디로 갈지 망설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로고진의 집에 도착했다. 로고진은 그가 올 것을 알고서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친한 친구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로고진은 얼빠진 사람 마냥 나스타샤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셰익스피어의 주인공 오델로처럼 거칠고 난폭하고 이기적인 성격의 로고진은 나스타샤에 대해서만은 한결같은 애정을 보였다. 하지만 므이쉬킨은 그와의 대화에서 나스타샤에 대한 사랑이 단순한 애정의 수준을 넘어 일종의 광적인 숭배 같은 것이며, 마치 열등아가 예쁜 인형을 수중에 넣듯이(혹은 사냥꾼이 목표물을 추적하듯이) 그렇게 무조건적인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그런데 나스타샤는 로고진과의 결혼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로고진은 막을 수 없는 나스타샤의 변덕스러움이 그녀가 므이쉬킨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로고진의 지적에 흥분한 공작은 탁자 위에 놓여있던 원예용 칼을 집어든다. 로고진은 얼른 그 칼을 뺏으며 종이 칼이라 둘러댔다. 므이쉬킨을 배웅하며 문득 ‘신을 믿느냐’는 질문을 던진 로고진은 십자가를 교환하고 의형제 맺으며, 나스타샤를 양보할 의사가 있다고 말한다.

로고진의 집을 나온 므이쉬킨은 거리를 배회하며 알 수 없는 불안감과 상념에 사로잡혔다. 그의 머릿속에서는 줄곧 '돌발적인 행동'이 맴돌았다. 그는 파블로프스크행 기차에 올랐다가 다시 내려와 충동적으로 나스타샤가 묵고 있는 집으로 향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파블로프스크로 떠나고 없었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페테르부르그에 도착해서부터 줄곧 그의 뒤를 쫓고 있는 누군가의 '눈길'을 느꼈다. 로고진의 눈이 불현듯 떠올랐는데, 그 눈길은 이미 호텔까지 따라와 그를 감시하고 있었다.

그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나선 므이쉬킨 앞에 로고진이 나타났다. 그것은 냉소로 일그러진 번들거리는 눈이었다. 그의 손에는 번쩍이는 칼날 같은 것이 들려져 있었다. 그가 손을 드는 순간 공작은 의식을 잃고 말았다. 그동안 계속 조짐을 보이던 간질병 발작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는 뒤로 넘어지며 머리를 계단에 부딪치고는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놀란 로고진은 허둥지둥 그 자리를 달아났고, 마침 호텔 식당에서 공작을 기다리던 콜랴가 나타나 그를 방으로 옮겼다.



알 수 없는 사랑의 실체

이틀 후 회복된 므이쉬킨은 레베제프의 가족과 함께 파블로프스크로 향했다. 공작이 파블로프스크의 별장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았다. 레베제프와 가냐의 식구들, 예판친 장군의 가족들 등 공작을 알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였다. 그런데 새로 도착한 진보적 성향의 4명의 젊은이, 즉 레베제프의 조카인 독토렌코와 그의 친구들, 이폴리트, 켈케르, 부르도프스키가 등장하면서 파티의 분위기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므이쉬킨의 유산 상속에 관한 비방조의 기사를 신문에 올린 장본인들이었다. 이들은 부르도프스키가 므이쉬킨에게 유산을 남겨준 파블리쉬체프의 사생아란 점을 들어 그에게 마땅히 돈을 나눠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부르도프스키는 지적 오만을 내세우며 공작의 돈을 거부하는데, 그 때문에 한바탕의 실랑이가 벌어졌고, 심한 말기 결핵증세를 보이던 이폴리트가 힘들게 숨을 몰아쉬며 자신의 연설을 늘어놓자 파티는 완전히 어수선한 분위기가 돼 끝나고 말았다.



그날 저녁 므이쉬킨은 그를 찾아온 예판친 장군부인에게서 아글라야와 가냐의 관계가 발전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부인은 그와 나스타샤와의 관계를 추궁하는데, 므이쉬킨은 그녀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하고, 아글라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여동생에 대한 오빠의 애정 이상이 아니란 사실을 털어놓았다. 그러나 이미 아글라야가 므이쉬킨에게 보낸 편지를 본 부인은 딸의 솔직한 마음이 공작에게 있음을 눈치채고서 흥분해 그의 손을 이끌고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재촉했다.

므이쉬킨이 건네준 편지를 통해 아글라야가 나스타샤와 연락을 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장군 부인은 몹시 불쾌했다. 그녀는 이제 어엿한 숙녀로 성장한 아글라야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과 기대를 갖고 있었는데,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두고 있는 남자에게 그 딸이 애태우고 있는 것이다. 이런 딸의 내심을 눈치챈 부인은 더 이상 딸의 상황을 방관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예판친 장군의 집에는 첫째, 둘째 딸과 그녀의 약혼자, 그리고 그의 친척이자 나스타샤로부터 모욕을 당한 예브게니 파블로비치가 모여 환담을 나누고 있었다. 공작이 나타나자 그들은 반가워하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러시아의 자유주의자들과 보수주의자들, 문학과 대중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던 중 공작은 이폴리트가 그의 별장으로 옮겨왔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을 무렵 아글라야가 나타났다.

장군 집안의 귀염둥이인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에 오만한 콧대, 일종의 허영심과 이상을 지닌 인물로 유복한 환경 속에서 그동안 아무런 좌절을 경험하지 않은 채 살아왔다. 그런데 그런 그녀에게 어린 아이와도 같은 순수한 영혼과 지적 고상함을 간직한 므이쉬킨이 어느날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공작이 사람들 앞에서 바보 취급당하는 것에 실망과 분노를 느낀 그녀는 애증과 자존심이 교차하는 가운데 사람들 앞에서 공작과 절대로 결혼하지 않겠다고 소리질렀다. 그때 므이쉬킨 역시 무의식 중에 이렇게 소리지르고 말았다. “나는 당신에게 청혼한 일이 없습니다. 아글라야 이바노브나!”

그 순간 장내는 웃음바다가 됐다. 떨리는 음성으로 더듬거리며 말을 늘어놓는 므이쉬킨의 모습에 모두들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아글라야 역시 일종의 발작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사람들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말했다. 그런데 공원을 나와 거리를 산책하던 중 ‘놀라운 사건’이 발생했다. 공작 일행 앞을 지나던 한 패의 군중들 속에 나스타샤가 끼여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예브게니 파블로비치에게로 다가와 그에게 모욕적인 발언을 건네고 그 자리를 떠났다. 아글라야는 흥분해서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봤다.



이폴리트의 자살 미수 사건

거리에서의 놀라운 사건은 장군 부인과 딸들을 경악시켰고, 므이쉬킨은 2층에 혼자 멍한 상태로 앉아 있었다. 슬그머니 다가온 아글라야는 그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쪽지를 건넸다. 잠시 후 장군과 함께 그곳을 나서면서 공작은 예브게니 파블로비치가 얼마 전 아글라야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한 사실과 그녀와 나스타샤와 서로 연락을 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들었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나스타샤가 아글라야와 므이쉬킨을 맺어주기 위해 일부러 예브게니를 중상하는 소문을 퍼뜨렸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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