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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
죄와 벌(Преступление и Наказание)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라스콜리니코프: 주인공. 기생충 같은 전당포 노파를 살해한 가난한 지식인 청년

소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창녀가 된 희생적 여인. 라스콜리니코프의 고백을 듣고 자수를 권한다.

두냐: 라스콜리니코프의 누이동생, 오빠의 학비를 위해 루진과 결혼하려다 그의 실체를 파악하고 결국 라주미힌과 결혼한다.

포르피리: 예심판사. 라스콜리니코프에게서 노파살해사건의 혐의를 발견한다.

라주미힌: 라스콜리니코프의 친구. 건전한 청년인 그는 두냐 모녀를 보살피며, 그녀와 결혼한다.

루진: 두냐의 약혼자. 비열한 속물적 인간인 그는 실체가 드러나면서 두냐로부터 버림받는다.





노파의 살해

7월 초순,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그의 무더운 저녁 무렵,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하숙집을 나와 뭔가를 망설이듯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무모한 공상으로 채워진 머리 속을 정리하면서 그는 이미 실행하기로 마음먹은 공상 하나를 떠올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하숙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악덕 고리대금업자인 전당포 노파의 아파트로 갔다. 노파의 집에 들어선 그는 애써 당황하는 표정을 감추며 노파에게 아버지의 유품인 낡은 은시계를 저당물로 내놓았다. 지나치게 싸게 물건값을 매기는 노파에게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은 채 그는 며칠 내로 은으로 된 담배케이스를 하나 더 가져오겠다고 운을 띄운 채 노파의 아파트를 나섰다.

가난한 지식인 청년인 라스콜리니코프에게는 관리였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시골에서 연금과 가정교사 일거리로 생활하는 어머니, 여동생 두냐가 있었다. 그들이 어렵게 마련한 돈으로 수도에서 대학을 다니다 중퇴한 그는 설사 대학을 졸업한다고 해도 기껏해야 값싼 월급쟁이나 가정교사가 고작인 현실을 저주하며, 살아있다는 사실조차 견디기 힘들어 했다. 그가 거주하는 음침한 다락방 역시 숨막힐 듯 좁고 답답해 그의 정신세계를 더욱 부정적으로 몰아갔다.

노파의 집을 나선 그는 목이 타는 듯한 갈증을 느껴 어느 선술집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 우연히 알게 된 하급공무원 마르멜라도프는 술에 취하자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자신의 가난과 그로 인해 고통받는 가족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히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사창가에서 몸을 팔고 있는 딸 소냐와 그녀의 고통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를 바래다주기 위해 그의 집에 들렀다. 그야말로 비참한 삶을 살아가는 가족들을 보고 그는 자신도 모르게 1루블을 창틀에 올려놓고 복잡한 상념에 사로잡힌 채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그는 밀린 하숙비를 재촉하는 주인의 말을 전하는 하녀 나스타샤로부터 어머니의 편지를 전해 받았다. 편지에는 자신의 여동생 두냐가 가족들, 특히 오빠의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부유한 7등 문관인 루진과 결혼하기로 했다는 사실과 조만간 가족들 전부가 페테르부르그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는 소식이 적혀 있었다. 편지를 읽는 내내 그의 얼굴은 눈물에 젖어 있었고, 다 읽고 난 뒤 몹시도 비통하고 쓸쓸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어머니의 편지는 그를 더욱 더 고통스럽게 만들었다. 소냐의 희생과 두냐의 결혼을 생각하면서 그는 자신의 계획을 다시금 떠올렸다. 이미 그것은 ‘이제 변경할 수 없을 정도로 그의 마음 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결심을 굳힌 라스콜리니코프는 치밀한 사전준비를 마친 뒤 훔친 도끼를 옷자락에 숨기고 노파의 아파트로 향했다. 초인종 소리가 여러 번 들리고 잠시 후 빗장 벗기는 소리가 들렸다. 노파의 방에 들어선 라스콜리니코프는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는 그녀를 향해 지난번에 말한 물건을 가져왔다고 말하며 은제 담배 케이스를 내밀었다. 포장을 풀기 위해 창 쪽으로 돌아선 노파의 등 뒤에 서 있던 그는 도끼를 빼들며 두 팔을 치켜들었다. 그리고는 힘도 주지 않고 기계적으로 그녀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노파는 가냘픈 외마디 신음 소리만을 낸 채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그 순간 그의 몸 속에서 갑자기 힘이 솟구쳤고, 그는 다시 한번 같은 곳을 힘껏 내리쳤다. 마치 컵을 엎지르기라도 한 듯 피가 철철 쏟아졌다. 노파는 이미 죽어 있었다. 당황한 그가 열쇠를 움켜쥐고 여기저기 뒤적거리는 동안 노파의 동생인 리자베타가 나타나 피로 범벅이 된 언니의 시체를 넋을 잃은 채 보고 있었다. 겁에 질린 그녀를 향해 다가선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도 모르는 새 도끼를 치켜들어 그녀의 두개골을 향해 내리쳤다. 그녀는 단번에 퍽 하고 쓰러졌다. 예기치 않은 리자베타의 죽음에 당황한 그는 공포에 사로잡힌 채 간신히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번민의 나날들

그는 꽤 오랫동안 누워 있었다. 혼몽한 상태에 빠져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거리에서 들려오는 무섭고 날카로운 절망적 외침이 그의 귓전에 울렸다. 그는 벌떡 일어나 앉았다. 그러자 별안간 모든 게 생각났다. 처음 순간 그는 미칠 것만 같았다. 이가 덜덜거리며, 온몸이 얼어 붙는 듯한 오한을 느끼면서 그는 주위를 살폈다. 입고 있던 옷가지 등을 철저히 살핀 다음 노파의 트렁크에서 꺼낸 물건과 지갑을 챙겨 구석진 곳의 찢어진 벽지 속에 감췄다. 그리고는 엄습해오는 오한에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시 망각상태로 빠져들었다.

세차게 문 두드리는 소리에 라스콜리니코프는 잠이 깼다. “문 열어요, 당신 살았어요, 죽었어요? 밤낮 잠만 자고 있으니!” 나스타샤의 외침에 일어나 앉았다. 그녀가 건네준 경찰 출두서를 받아 쥐고서 두려운 마음으로 경찰서를 찾는데, 그 호출은 밀린 방세로 인한 채무 독촉 고소장 때문이었다. 경찰서에서 심한 모욕을 받은 그는 가난한 자를 대하는 경관의 불성실하고 비굴한 태도에 굴욕감을 느꼈다. 한편 그곳에서 전당포 노파의 살인에 대한 경찰관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순간 온몸을 뒤덮는 듯한 공포에 휩싸인 그는 자신의 다락방으로 달려와 숨겨두었던 물건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밖으로 나와 헤매다 어느 광장의 4층 건물 담벼락 아래 돌구덩이 속에 집어넣었다. 그는 괴로움과 성난 눈초리로 주위를 둘러보면서 정신없이 걸어갔다. 자신의 행위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번민 속에서 그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 “에라, 될 대로 되라지.”

간신히 집으로 돌아온 그는 며칠동안 혼수상태에 빠져 깨어날 수가 없었다. 나흘이 지나서야 라스콜리니코프는 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를 찾아온 친구 라주미힌과 의사 조시모프와의 대화에서 노파의 살인 이야기를 접한 그는 다시금 흥분상태에 빠지고, 때마침 등장한 여동생 두냐의 약혼자 루진을 무례하고 냉소적인 태도로 대했다. 라스콜리니코프와 불행한 모녀를 구해줬다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루진은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개인적 이익에 기초하고 있다’는 ‘합리적 이기주의’를 주장하며, 사람들 앞에서 사회진보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다 라주미힌의 반격을 받는다. 그러나, 혼란스런 대화 가운데 라스콜리니코프의 관심은 살인사건의 뒷이야기로 쏠리고, 모두가 떠난 뒤 자신도 모르게 아픈 몸을 이끌고 사건현장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당한 그는 비몽사몽간에 다툼을 벌이고 만사를 끝장내려는 기세로 사람들에게 달려들었다.

그 순간 그는 누군가가 마차에 치여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광경을 목격하고 다가갔는데, 그 사람은 다름 아닌 마르멜라도프였다. 그는 술에 취한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었다. 놀란 라스콜리니코프는 얼른 그를 집으로 옮기고 의사를 부르러 보냈으나 결국 숨을 거뒀다. 마르멜라도프가 죽기 직전에야 나타난 딸 소냐는 아버지의 죽음을 애통해 하며, 자신의 가족을 도와 준 라스콜리니코프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그는 사형선고를 받은 자가 갑자기 예기치 않은 특사를 받은 듯한 묘한 기분과 알 수 없는 기운이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이제 그만!”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망상을 버리자, 쓸데없는 공포도 쫓아 버리자.... 아직 생명은 있다. 내 생명은 노파와 더불어 죽은 것이 결코 아니지 않는가? 노파에겐 천국의 명복이나 빌면 그것으로 족하지.... 지금은 이성과 광명의 왕국인 것이다! 그리고....의지와 힘의... 자, 이제부터 힘을 겨뤄 볼까!”



“노파는 사회의 암적 존재일 뿐야“

집으로 오는 길에 라주미힌을 만난 라스콜리니코프는 그와 함께 자신의 다락방을 돌아왔다. 방에는 어머니와 동생 두냐가 한 시간 반 동안이나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의 수척해진 얼굴을 본 어머니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지우지 못하고, 오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두냐는 루진과의 결혼 의사를 밝혔다. 한편 라주미힌은 그들 모녀를 극진히 보살피며 두냐에 대한 호감이 점점 커져갔다. 그들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누군가 조용히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왔다. 그것은 어제 마차에 치여 죽은 마르멜라도프의 딸 소냐였다. 그녀의 갑작스런 등장에 모두들 당황해하는데, 소냐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아버지의 장례식에 참석해 달라는 얘기를 전했다. 그는 그녀에게 참석을 약속하며 조만간 그녀의 집에 들르겠다고 말했다.

소냐가 떠난 뒤 라스콜리니코프는 라주미힌의 먼 친척이자 노파 살인 사건의 예심판사인 포르피리 페트로비치를 만나러 경찰서에 갔다. 저당 잡힌 물건 때문에 그가 찾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포르피리의 말에 라스콜리니코프는 애써 태연함을 보이지만, 점점 초조해하며 불안함에 빠져들었다. 포르피리는 언젠가 신문에서 읽었다며 ‘사회범죄에 대하여’라는 라스콜리니코프의 논문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자신의 논문을 흥미롭게 읽었다는 포르피리의 말에 다소 의아해하면서 그는 범죄와 인간 사회, 인간 존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라스콜리니코프에 따르면, 세상 사람들은 비범인과 범인으로 나뉜다. ‘비범인’은 역사상 위대한 공적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로 개인을 넘어선 세계사적인 과업을 이룩하기 위해 무수한 인명을 희생시킬 특권을 지닌 자들인데, 나폴레옹, 무하마드, 리쿠르고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인류의 진보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한 사회의 통념적인 도덕적 기준을 과감하게 파괴하고, 나아가 폭력과 살인마저도 단행할 수 있는, 소위 ‘범죄를 행할 권리’를 지닌 자들이다. 이에 반해 ‘범인’은 현존하는 상식과 질서에 순종하는 대다수의 사람들로서 그들은 어떠한 경우에도 기존의 도덕률을 초월할 능력이 없으며, 단지 세계를 보존하고 종족을 번식시키는 일에만 몰두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라스콜리니코프는 소수의 비범인이 세계를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일이든지 감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으며, 그들에게는 ‘모든 것이 허용돼 있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라스콜리니코프의 이론을 포르피리가 반박하고, 두 사람의 팽팽한 논의는 점점 열기를 띠었다. 이야기를 나누며 포르피리는 점차 라스콜리니코프에게 혐의를 굳혔다. 경찰서를 나선 뒤 그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면서 정신착란 증세를 보이는데, 그러면서도 자신의 사상을 뇌까렸다. “아니, 인간들은 애당초부터 달리 만들어졌어...모든 게 허용되는 거야.” “노파는 단순한 사회 암적 존재에 불과한 것이지, 한시바삐 밟고 넘어가야 할 그런 것일 뿐이야....나는 인간을 죽인 게 아니라 주의를 죽인 것이지....”



살인의 고백과 ‘한 마리의 이’

악몽에서 깨어난 라스콜리니코프 앞에는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서 있었다. 50세 가량의 부유한 지주인 그는 방탕한 생활로 많은 추문을 뿌렸던 사람이다. 그는 두냐가 그 집의 가정교사로 일하고 있을 때, 그녀에게 치근거리는 바람에 아내의 오해를 사 두냐의 일자리를 잃게 했다. 이런 사정을 알고 냉담한 태도를 보이는 라스콜리니코프에게 그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두냐가 루진과 결혼한다면 결코 행복해질 수 없기에 그 결혼을 막아야 하며, 그로 인해 겪게 될 경제적 어려움을 위해 자신이 그녀에게 1만 루블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한편 루진과 만난 라스콜리니코프의 가족은 그의 실체를 알게 되고 두냐는 분노에 떨며 그와의 관계를 끊기로 결심했다.

라스콜리니코프는 어머니와 두냐에 대한 걱정보다 살인에 대한 공포로 긴장을 늦추지 못했다. 염려하는 가족을 뒤로 한 채 거리를 배회하던 그는 자신도 모르게 소냐의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나님의 존재를 믿고, 가족을 위해 기도하는 그녀의 모습에 라스콜리니코프는 그녀의 가난은 환경 때문이라며 냉소적 반응을 보이고, 불공평한 세상을 만든 신을 원망했다. 그러나 그에게 신앙심이 없음을 느낀 소냐는 그와 함께 자신의 믿음을 나누기를 주저하지 않으며, 그를 도우려 했다.

그녀가 도끼에 맞아 죽은 리자베타의 장례식에 다녀왔다는 말을 들은 라스콜리니코프는 초조해하며 그녀에게 성서의 ‘나자로의 부활’ 대목을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베다니에 사는 나자로다....’ 이 구절은 리자베타가 좋아했던 부분으로 소냐에게 이 성서를 준 사람이 바로 리자베타였다. 소냐의 낭독은 계속됐다. 무표정한 상태로 꼼짝 않고 듣고 있던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할 말이 있어서 왔어.”

그리고는 그녀의 발에 키스한 뒤 내일 다시 와 누가 리자베타를 죽였는지 말해주겠다고 말하고는 방을 나섰다. 그런데 놀랍게도 빈방이라고 여겼던 소냐의 옆방에서 스비드리가일로프가 이 광경을 엿보고 있었던 것이다.

다음날 아침 라스콜리니코프는 포르피리가 근무하는 경찰서로 향했다. 노파에게 맡긴 저당물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대화는 살인사건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으로 발전하고, 포르피리는 범죄에 대한 심리 분석을 통해 라스콜리니코프의 정체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포르피리의 심리전에 말려든 그는 태연한 척 애를 썼으나 이미 내적으로 분열돼 일종의 광란 상태였다. 두 사람의 언쟁은 갑작스런 사건으로 중단됐다. 바로 페인트공 미콜라이가 스스로 살인자라고 자처하며 등장한 것이었다. 이로써 사건은 일단 해결되지만 포르피리의 의심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한바탕의 소동을 방불케 했던 마르멜라도프의 장례식이 끝난 뒤 라스콜리니코프는 다시 소냐를 찾아갔다. 장례식에서 루진이 고의로 소냐에게 돈을 훔쳤다고 누명을 씌웠을 때 자신을 변호해준 라스콜리니코프에게 소냐는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끼고 있었다. 소냐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는 입을 열었다. “모든 게 다 바보 같은 짓이야... 그런데 소냐...” 그는 갑자지 이상할 정도로 핼쑥한 얼굴을 하고는 한 2초 가량 웃어 보였다. “... 어제 내가 당신에게 무슨 말을 하겠다고 했는지 기억해?” 소냐는 불안한 얼굴로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당신에게 누가 리자베타를 죽였는지 알려주겠다고 했지.” 소냐는 온몸을 떨며 창백한 얼굴로 괴로운 듯 숨을 몰아쉬었다.

“어떻게 그걸 아세요?” 그녀는 가느다란 음성으로 되물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그는 소냐 쪽으로 몸을 돌려 맥없이 일그러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자는... 리자베타를 죽이려고 했던 것은 아냐....우연히 죽이게 된 것 뿐야. 그는 노파만을 죽이려 했었어... 그런 생각으로 갔던 거야... 그런데 그 순간 리자베타가 들어왔어... 그래서 그만 그녀까지 죽이고 말았어....” 라스콜리니코프는 소냐가 그 범인이 바로 자신임을 알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그는 차마 제 입으로 천사와 같은 소냐 앞에서 끔찍한 살인범을 지목할 수 없었다. “이젠 알았겠지?” 그는 절박한 표정으로 속삭였다.

“아아!” 그녀는 가슴에서 무서운 비명을 토하며 침대에 쓰러져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나 재빨리 일어나 그의 두 손을 잡고는 꼭 움켜쥐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고백을 들은 소냐는 그에게 경찰서로 가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네거리에 나가 대지에 입을 맞추고 사방에 절해 자신이 살인자임을 밝히라고 권했다. 그리고 속죄를 위해 마땅히 감당해야 할 고난을 받아들이라면서 그 고난의 여정에 자신도 함께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이 노파를 죽였다기보다 ‘한 마리의 이’를 죽였을 뿐이며, 그것은 자기가 아니라 악마가 한 짓이라고 변명했다. 소냐와의 대화에서 자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좀처럼 자수에 동의하지 못했다. 여전히 혼란스런 마음으로 자신이 구속되면 면회를 와주겠느냐고 거듭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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