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뇌 속을 가다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 -
고뇌 속을 가다(Хождение по мукам)
알렉세이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 어떤 사람들? 무슨 이야기?
다샤: 19세의 아름답고 매력적인 법대생.
카챠: 다샤의 언니. 화려하지만 불행한 가정생활로 방황한다.
텔레긴: 공장의 기사. 다샤를 사랑하는 평범한 기사였지만 혁명가로 변모해간다.
니콜라이: 카챠의 남편. 속물적이고 타락한 상류사회의 변호사.
로쉰: 백군 장교 출신의 혁명가.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 사이의 역사적 충돌을 가장 드라마틱하고 진지하게 체험하며 가장 깊이 방황하는 인물.
베스소노프: 어두운 영감을 지닌 시인. 악마적 기질로 여성들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파멸해간다. 불라빈: 다샤와 카챠 자매의 아버지. 사마라현의 의사.
오, 러시아의 대지여!
보리수 우거진 으슥한 교외의 뒷골목에 살던 사람이 우연히 페테르부르그에 와서 주의 깊게 사방을 돌아본다면 그는 거기서 정신을 깨우쳐 주는 동시에 가슴을 짓누르는, 어떤 복잡한 감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인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베스소노프는 어느 날 밤 고급 마차를 타고 집에 가던 길에 아치형 다리를 건너다가 문득 드높은 하늘의 터진 구름장 사이로 드러난 별 하나를 발견했다. 눈물 어린 눈으로 그 별을 바라보던 끝에 그는 홀연 자기의 마차도, 줄지어 늘어선 가로등도, 등 뒤에 잠든 페테르부르그도 한낱 술과 사랑과 권태로 흐려진 환상과 잠꼬대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1914년의 페테르부르그는 이랬다. 그러나 그곳에는 또한 예언자들이 있어 새로운 것, 불가해한 것들이 온갖 틈새에서 머리를 들고 나왔다.
다샤-카챠 자매의 비극
다샤는 지난해 사마라를 떠나 페테르부르그에 와서 법학과에 입학한 후로 언니 에카테리나 드미트리예브나 스모코브니코바의 집에서 살고 있다. 다샤의 형부 니콜라이 스모코브니코프는 명성 높은 변호사였고, 그들 일가는 흥청거리며 호사스럽게 지냈다. 매주 화요일마다 그들 집에는 희희낙낙하며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찬을 나누려고 단풍나무 가구가 놓인 식당으로 모여들었다. 그들 중에는 변호사와 신문기자, 평론가, 시인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다샤에게 멸시의 대상이었고, 파티의 주인공은 언제나 언니 카챠였다. 다샤는 아름답고 선량하며 섬세한 언니 카챠를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가끔은 질투했다.
어느 화요일 저녁 만찬이 끝난 후 모두들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알렉세이 베스소노프가 응접실로 들어왔다. 문 어귀에 선 그를 보자 카챠는 얼굴이 빨개졌다. 일동이 하던 이야기가 뚝 끊어졌다. 베스소노프는 소파에 앉아 카챠가 주는 커피를 받아들었다. 이 날 이후 그는 카챠의 집에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샤는 베스소노프로 인해 ‘철학의 밤’ 강연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베스소노프는 언제나 느지막이 그 곳에 나타났고 말도 드물었지만, 다샤는 매번 흥분된 심정으로 집에 돌아왔다.
어느 날 아침 형부 니콜라이가 침울하고 부자연스런 음성으로 다샤에게 말했다. “간밤에 언니는 나를 배신했어.” 피를 나눈 언니가 뭔가 두렵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것이다. 다샤는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난 다 알아. 형부가 나한테 다 말했어.” “그래, 그 사람이 너에게 뭐 그리 놀라운 일을 말했단 말이니?” “그건 언니가 더 잘 알 거야.” “난 모르겠는 걸.”
그러나 카챠는 지난밤 알렉세이 베스소노프가 자신에게 저지른 일을 생각하곤 서럽게 울었다. 지난밤 그는 자신을 마차에 태워 교외의 호텔로 끌고 가서, 자신의 마음속에 들어 있는 친근하고 다정한 것을 전혀 이해하지도, 사랑하지도, 무엇 하나 느끼지도 않으면서 마치 인형 다루듯, 모르스카야 거리에 있는 파리풍의 듀클레 의상실에 진열된 마네킹에게 하듯 소름 끼치도록 유유히 자신을 점령해 버린 것이다.
“언니, 난 지금 이 상태로는 아무에게도 쓸모없는 인간이야. 제일 안타까운 건 나 자신에게조차 쓸모없는 그런 인간이란 거야.” “난 모르겠다, 무슨 소린지.” “한 마디로 말해서,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단 한 사람 뿐이야.” “마음에 든다면 사랑하면 되겠지. 다샤, 그 사람 이름이 뭐니, 응?”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베스소노프.”
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카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다샤는 언니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그러나 다샤는 자기의 말이 그녀에게 얼마나 충격적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언니의 얼굴이 온통 어둠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언니, 난 이미 그의 그물에 걸려들었어.” “도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니? ... 우린 둘 다 미쳤어. 용서해 다오, 나를 용서해 다오... 다샤, 나를 용서해 다오.” 다샤는 언니의 고통을 이해하면서도 자기 내부에서 소리치는 ‘또 다른 인간’의 요구를 물리칠 힘이 없어 베스소노프를 찾아갔다. “당신은 일종의 질병처럼 제 가슴 속에 스며들었습니다. 저는 끊임없이 당신을 생각하고 있는 제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것은 정말이지 저로서는 견딜 수 없는 일이예요. 그래서 오늘 결심을 했어요. 자, 보세요. 저는 당신 앞에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다랴 드미트리예브나, 당신에게 한 마디 솔직히 이야기하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어쩌면 당신은 그리도 언니와 같은지요. 첫 순간에 그렇게... 아아, 이것은 정욕의 광란입니다... 하지만 나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들은 다샤는 그의 손을 뿌리치고 뛰쳐나왔다. 베스소노프는 자신이 저지른 일로 이미 빠져 나올 수 없는 암흑의 신의 손아귀에 갇혀 버렸다. 이제 그에게 구원의 길은 없었다.
한편 집에 돌아온 다샤는 언니에게 형부에게 사실을 털어놓으라고 말하고, 카챠는 니콜라이와 긴 대화 끝에 프랑스 남부 지방으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집안의 불행은 이렇게 갑자기 일어났고, 또 평화는 이렇게 쉽게 깨졌다. 니콜라이마저 크림 지방으로 떠나고 이제 집에는 다샤 혼자 남게 됐다. 커다란 방들은 쓸쓸해 보였고 그 안의 화려한 물건들도 모두 쓸데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새로 시작된 다샤의 사랑
이반 일리치 첼레긴은 자신의 방에 ‘생활과의 투쟁센터’라는 간판을 걸고 미래주의자들과 지내고 있었다. 어느날 첼레긴은 연회에서 다샤를 만나 단둘이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갖게 됐다. “이반 일리치, 제가 보기에 당신은 좋은 분이에요. 당신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분이죠. 그래요, 이건 정말 진심이랍니다.” 다샤에게 이 만남은 수많은 만남 중의 하나일 뿐이었다. 베스소노프에 대한 분별 없는 열정에 사로잡혀 있는 다샤에게 첼레긴은 ‘선량하고 사람 좋은 이반 일리치’ 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나 첼레긴은 그렇지 않았다. 만 스물 아홉 살이 된 지금까지 이미 여섯 번이나 사랑에 빠졌지만 다샤에 대한 감정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독특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도 오래지 않아 서른 살이 된다. 그러나 오늘까지 초목이 자라듯 살아왔어. 얼마나 무서운 공허인가!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기주의와 무관심으로 일관해 왔지. 이제 더 늦기 전에 정신을 차려야 할 텐데...’
언니가 프랑스로 떠나고, 여름방학을 맞은 다샤는 사마라에 계신 아버지를 찾아갔다. 아름다운 볼가강을 따라가는 여객선 위에서 자신을 독립적인 존재로 느끼며 조그만 행복감에 젖어 있었다. 반짝이는 강물의 출렁임, 구름과 자작나무 우거진 산등성이와 초원, 습지의 풀과 새로 갈아엎은 대지의 흙냄새를 맡으며 고요한 기쁨을 느끼고 있을 때, 누군가 다샤 곁에 다가왔다. 첼레긴이었다. “당신이 배 타는 것을 봤지요. 사실 페테르부르그부터 같이 온 셈이죠. 혹 내가 방해가 되지 않나요?” “아버님을 뵈러 가는 길이예요. 어디 가시는 길인가요?” “사실 목적지를 정하지 못했소. 공장에서 쫓겨난 신세라오. 노동자들의 파업에 동조했다는 것 때문에...” “제가 느끼기엔, 이반 일리치, 당신이 누군가를 사랑하면 용감하고 자신감 넘치게 하실 것 같아요. 또 무엇을 하려고 마음 먹으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으실 것 같구요.”
다샤가 찾은 아버지의 집은 적막한 시골, 다샤는 그곳에서 무덤 속같이 쓸쓸하고 평온한 정적을 느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기약 없이 헤어진 첼레긴 때문인 것 같아 원망스러워졌다. 한편 파리에 도착한 카챠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 자신의 지난날을 후회하고 러시아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알린다. 아버지 불라빈은 카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다샤를 크림 지방에 머물고 있는 형부 니콜라이에게 보낸다. 그리로 가는 길에 다샤는 푸른 물결과 작열하는 백사장 위, 모든 것이 쉽게 파괴될 것처럼 보이는 휴양지 예브파토리야에서 베스소노프를 다시 만난다. 처녀의 상상력을 자극하던 음울한 시인이 실은 자신의 육체만을 원한다는 것을 깨달은 다샤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마침내 알게 된다.
그리고 또 한 번 운명처럼 첼레긴을 만난다. 볕에 그을린 얼굴, 선량해 보이는 푸른 눈의 첼레긴이 다샤 앞에 나타나자 다샤는 충동적으로 그의 가슴에 손을 얹고 어린애처럼 소리내 울기 시작했다. “다랴 드미트리예브나, 작별 인사를 하러 왔습니다... 당신이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작별 인사라도 하고 싶어서...” “작별이라뇨?...” “입대통지서를 받았으니 어쩔 수 있나요.” “입대라뇨?” “전쟁이랍니다. 바로 그 때문이지요.”
구름 위에서 진흙탕으로
다샤는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이제 막 사랑에 눈을 떴을 뿐, 세상의 혼란에는 무심하고 무지했던 열 아홉 살의 처녀에게 전쟁은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낯선 것이었다. 차르 정권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진행되던 즈음에 1차 세계대전을 맞이한 러시아의 민중들은 의혹과 불안에 사로잡혔다. 견고해 보였던 유럽의 평화는 하루아침에 공중으로 날아가 버렸다. 낡은 생활은 끝나고, 커다란 주걱으로 휘저어진 듯한 러시아는 혼란 그 자체였다. 모든 것은 충동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전쟁이라는 술에 취해 버렸다.
첼레긴은 더러움과 습기 속에서 옷도 신발도 벗지 못한 채 몇 주일을 보내고 있었다. 포병대의 기수(旗手)로 배속돼 러시아의 들판과 숲과 진흙탕을 누볐다. 조국을 지키는 과업 앞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남편과 애인, 형제와 아들 모두가 번호로 불리는, 무력한 티끌이자 추상적인 단위 이상의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전장에서의 고요 속에서 첼레긴은 이 환상의 나라에 있는 것은 단지 나무들의 요정과, 사랑에 고민하는 생동하는 마음과, 눈에 보이지 않는 다샤의 아름다움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다샤는 형법을 공부하면서 날마다 첼레긴에게 편지를 썼다. 그러던 어느 날 행방불명자의 명단에서 첼레긴의 이름을 발견했다. 다샤의 자기도취에 빠진 오만한 생활은 하루아침에 피 속으로 떨어졌다. 구름 위에서 진흙탕으로 내려온 것이다. ‘우아한 것, 아름다운 것만을 사랑하려 했었지. 사랑스럽지 않은 것까지도 사랑하며 가엾게 여길 줄을 몰랐던 거야.’ 첼레긴을 향한 절망적 그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시작했다. 그녀는 간호사 단기 과정을 거쳐 병원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한편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카챠는 파리에서 유행의 화려함과 탱고의 구슬프고 애달프면서 감미로운 선율에 묻혀 우울하게 지내면서 다샤에게 편지를 썼다. ‘사랑하는 다샤, 너와 그립고 친근한 사람들과 러시아가 그리워 견디기 힘들구나. 니콜라이와의 파탄 역시 모든 게 내 잘못이었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더 절실하게 느낀다... 내 가슴 속 심장은 이미 말라 버리고 시들어버렸다. 다샤, 우리가 또 커다란 시련에 봉착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우리가 좋지 않은 생활을 해온 징벌일 것이다...’
삶의 절정을 허무하게 보낸 카챠는 유럽을 뒤흔든 전쟁의 소식을 듣고 조국으로 돌아왔다. 남편과는 암묵적으로 화해하고, 과거에 자신의 삶을 채워줬던 극장과 전람회 등을 다녀보기도 했다. 그러나 카챠는 자신이 모든 사람들이 이미 오래 전에 내버린 생활을 뒤따라 돌아다니는 유령처럼 느껴졌다. 이제 더 이상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다샤, 우리들은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우리는 으레 남과는 다른 특별한 생활을 해야 한다고 말이야. 실제로 우리에게 필요한 건 좀더 단순한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마침내 그녀는 뭔가 전쟁에 도움이 될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다샤가 근무하는 병원에서 함께 일하기 시작했다. 니콜라이 역시 “러시아를 지켜내기 위해 자기 생활의 한 부분을 희생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고 제법 큰 소리를 치며 시 연합회에서 자신의 일을 찾았다.
니콜라이가 전선으로 떠난 뒤 자매의 집에는 친절한 백군 대위 한 사람이 자주 들렀다. 검고 우울한 눈빛의 바짐 페트로비치 로쉰이 나타나면 카챠는 잠시 주춤했다가 곧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바라봤다. 카챠와 로쉰은 그렇게 조심스럽게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시인 베스소노프는 자루처럼 축 늘어진 군복 저고리에 적십자 휘장이 붙은 모자를 쓰고 거리를 배회하다가 다샤 자매와 마주쳤다. “난 전쟁에 나갑니다. 보세요, 나 같은 사람까지 뽑아 가는군요.” “적십자 휘장을 달았는데 무슨 전쟁에 나간다고 그러세요?” “물론 위험이 비교적 적기는 하겠지요. 하지만 죽거나 안 죽거나 정말 나는 조금도 개의치 않습니다... 그저 쓸쓸하기만 할 뿐입니다, 다랴 드미트리예브나. 너무도 적막합니다. 그저 죽음, 죽음뿐이니...” “알렉세이 알렉세예비치, 만일 원하신다면 저에게 날마다 편지를 써 보내주세요, 저도 답장을 드릴 테니까요.” “참 고맙습니다. 하지만 이제 난 종이와 잉크에 그만 넌더리가 났습니다. 당신은... 내게는 눈을 뻔히 뜨고 받아야 하는 지옥의 고통과 같은 존재요. 아시겠소?”
고통과 희망, 몰락과 환희의 길 너머
어느 겨울밤, 위생병 부대에 속해 이동하던 베스소노프는 달빛 안개 속에서 포탄에 쫓기게 됐다. 부상을 당한 채 일행과 떨어져 밤길을 도망치는 베스소노프 뒤로 피 냄새를 맡은 개들이 쫓아왔다. 그리고 저 앞에서는 병사 하나가 죽음 같은 잿빛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병사는 부대로 안내해달라는 베스소노프의 요구를 거부했다. 그는 탈주병이었다.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병사는 베스소노프의 목을 움켜쥐었다. 정신을 잃고 뻣뻣해진 베스소노프. 페테르부르그의 등불도, 휘감겨 올라가는 극장 커튼의 매력도, 눈 오는 겨울밤과 베개 위에 뻗쳐 있던 여인의 팔도, 희열에 휩싸여 두근거리던 심장과 시를 쓸 때의 환희도... 이제 그에게 이 모든 것은 꿈으로만 남았다.
1917년의 러시아,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으나 러시아 민중은 제국주의 전쟁을 거부하고 혁명을 일으켰다. 공장의 노동자들은 빵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고, 연대의 병사들은 사격을 거부했다. 그리고 마침내 차르를 암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러시아혁명의 시작이었다. 혁명은 이제 인간의 운명을 휘젓고 다녔다. 임시정부로부터 서부전선 민스크의 정치위원으로 임명된 니콜라이는 병사들에게 전쟁에 참여할 것을 선동하는 일을 맡았다. 독일군 진지가 보이는 들판에서 병사들에게 연설을 하던 어느날 니콜라이는 흥분한 병사가 휘두른 철모에 맞고 쓰러졌다. 니콜라이가 비참하게 죽자 카챠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로쉰은 묵묵히 참으며 카챠를 기다렸다. 시간이 지나고 카챠는 마침내 로쉰에게 자신이 필요하고 귀중한 존재라는 것을, 그리고 그가 자신의 영혼을 받아들여 주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첼레긴은 포로수용소에서 탈출을 시도하다 붙잡혀 독방에 감금됐다가 총살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극적으로 탈출해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다샤와 꿈같은 재회를 하고 두 사람은 마침내 부부가 됐다. 발틱 공장에 다시 배치된 첼레긴은 이제 과거의 평범한 기사가 아니었다. 온갖 쓰디쓴 경험을 통해 러시아와 러시아 민중을 진정으로 이해하게 된 이반 첼레긴은 침착하고 강인하게 새로운 역사 속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