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야의 이리 1
헤르만 헤세 지음 | 고전문학
황야의 이리
헤르만 헤세 지음
편집자 서문이 책은 우리가 흔히 ‘황야의 이리’라고 불렀던 한 남자가 남긴 기록을 담고 있다. 이 수기에 서문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있겠으나, 나는 그에 대한 나의 회상을 몇 페이지 덧붙이고자 한다. 내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그리 많지 않으며 그의 과거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인격이 남긴 인상은 매우 깊고 공감적이었다.
몇 년 전, 당시 쉰 살에 가까웠던 ‘황야의 이리’가 방을 구하기 위해 아주머니를 찾아왔다. 그는 맨 위층의 다락방과 그 옆방을 빌렸고, 며칠 뒤 두 개의 트렁크와 커다란 책 상자를 가지고 돌아와 9개월에서 10개월 정도 머물렀다. 그는 매우 조용히 혼자 지냈다. 방들이 이웃해 있어 복도나 계단에서 우연히 마주치지 않았다면 우리는 서로 알지 못하고 지냈을 것이다. 그는 사교적인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스스로를 일컬었듯 참으로 ‘황야의 이리’였으며, 내가 사는 세상과는 다른 곳에서 온 낯설고 야생적이며 매우 수줍음이 많은 존재였다.
그가 처음 우리 집에 들어왔을 때 나는 우연히 그 자리에 있었다. 정오였고 나는 사무실로 돌아가기 전이었다. 그는 벨을 누르고 어두운 현관으로 들어오더니, 대답을 하거나 이름을 밝히기도 전에 머리를 치켜들고 예민하게 주위의 냄새를 맡았다. “아, 여기 좋은 냄새가 나는군.” 그는 미소를 지었고 아주머니도 따라 웃었다. 나는 그의 그런 인사 방식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고 좋은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방을 빌리러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그와 함께 위층으로 올라가며 그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당당한 풍채를 지녔고, 세련되면서도 편안한 겨울 코트를 입고 있었다. 면도는 깨끗이 되어 있었으나 짧게 깎은 머리 곳곳에는 흰머리가 섞여 있었다. 그의 걸음걸이에는 어딘가 지치고 망설이는 듯한 구석이 있었는데, 이는 그의 날카로운 옆모습이나 목소리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의 건강은 좋지 않았다. 그는 계단과 벽, 가구들을 묘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마치 다른 대륙에서 온 사람처럼 모든 것을 매력적이면서도 약간은 이상하게 여기는 것 같은 인상이었다. 그는 예의 바르고 친절했다. 숙박료와 조건에 즉각 동의하면서도, 이 모든 일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우스꽝스러운 경험으로 여기는 듯한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그의 얼굴은 처음부터 내 마음에 들었다. 이질적이면서도 독창적이고, 슬픔이 서려있는 듯했지만 지적이고 사려 깊은 얼굴이었다. 그는 애써 예의 바르게 행동하려 했는데, 거기에는 거의 감동적이기까지 한 간절함이 있었다. 그는 한 가지 요청을 했다. 자신의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관공서에서 기다리는 일을 견디기 힘드니, 경찰에 거주 신고를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아주머니에게 이 낯선 사람의 수상한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아주머니는 이미 이 기묘한 신사에게 완전히 마음을 사로잡힌 상태였다. 아주머니는 하숙인들과 인간적이고 어머니 같은 관계를 맺는 분이었고, 하리 할러는 이미 아주머니의 마음을 얻었다.
“도대체 왜 여기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한 걸까요?” 내 질문에 아주머니는 대답했다. “나는 잘 안단다. 여기에는 청결함과 질서, 안락함과 품위 있는 냄새가 나거든. 그는 최근에 그런 것들을 누리지 못했고, 그것을 그리워했던 게 분명해.” “하지만 이런 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쩌죠? 만약 그가 지저분하게 생활하거나 밤늦게 술에 취해 들어오면 어떡하실 건가요?” “두고 보면 알겠지.” 아주머니는 웃으며 넘겼고 나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내 걱정은 근거 없는 것이었다. 그는 결코 우리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아주머니는 그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나는 지금도 종종 그의 꿈을 꾼다. 그를 좋아하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남자의 존재 자체가 나에게는 매우 불안하고 동요되는 일이었다. 이틀 뒤 하리 할러라는 이름이 적힌 그의 짐이 도착했다. 훌륭한 가죽 트렁크와 여러 나라의 호텔 스티커가 붙은 커다란 가방들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이 기묘한 사내와 서서히 안면을 트게 되었다. 처음 몇 주 동안은 그와 대화하려고 애쓰지 않았지만, 그를 주의 깊게 관찰했다. 때로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가 외출했을 때 그의 방에 몰래 들어가 보기도 했다.
하리 할러는 첫눈에도 비범하고 재능 있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그의 지적인 얼굴과 섬세한 표정 변화는 매우 감성적이고 예민한 영혼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관습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신만의 낯선 세계에서 나온 이야기를 할 때면, 나 같은 사람은 즉시 그의 매력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더 많이 사유했으며, 지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자신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 지식인 특유의 차분한 객관성과 확신을 갖추고 있었다.
그가 이곳을 떠나기 며칠 전의 일이 기억난다. 나는 내키지 않아 하던 할러를 설득해, 유럽 전역에 이름을 떨친 역사학자의 강당 강연에 함께 갔다. 강연자가 연단에 올라 청중에게 아첨 섞인 인사를 건네자, 할러는 나에게 잊을 수 없는 섬뜩한 시선을 던졌다. 그것은 강연자만을 비웃는 것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과잉된 활동과 허영심, 그리고 인간성 전체의 절망을 꿰뚫어 보는 시선이었다. 그 눈빛은 단 1초 만에 사색가의 절망을 웅변하며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우리가 얼마나 원숭이 같은 존재인지 보라! 이것이 인간이다!” 그 순간 정신의 모든 성취와 진보는 한낱 원숭이의 재주로 전락하고 말았다.
처음 아주머니 댁에 온 그를 보았을 때, 나는 본능적인 거부감을 느꼈다. 건강한 사람의 본능으로 그가 정신적으로 병들어 있다는 의심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거부감은 오랜 고통과 고독을 지켜본 이가 느끼는 연민과 공감으로 바뀌었다. 할러는 고통의 천재였다. 그는 니체의 가르침처럼 자신 안에 무한하고 공포스러운 고통의 능력을 만들어냈다. 그의 비관주의는 세상을 향한 경멸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경멸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할러는 엄격하고 경건한 교육자들 밑에서 자라며 의지를 꺾는 교육을 받았으나, 워낙 강인하고 자부심이 강했던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기 자신을 증오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고귀한 성품을 지녔음에도 평생 자신의 상상력과 사유를 자신을 공격하는 데 사용했다. 타인에게는 정의롭게 대하려 애쓰는 참된 그리스도교인이자 순교자와 같았으나, 자신에 대한 증오는 결국 그를 잔혹한 고립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할러의 생활 방식은 독특했다. 그는 직업 없이 온종일 책과 사색에 빠져 지냈으며, 대개 정오가 다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의 다락방은 시간이 갈수록 그림과 사진, 그리고 수많은 책으로 가득 찼다. 벽에는 남부의 풍경화와 괴테, 마하트마 간디의 초상이 걸려 있었고, 책상과 바닥에는 온갖 주석이 달린 책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소파 위에는 18세기 후반의 저작인 『메멜에서 작센까지의 소피아의 여행』 전권이 오랫동안 놓여 있었다. 도스토옙스키와 노발리스의 저작들은 손때가 묻어 있었고, 방 안에는 늘 시가 연기와 포도주병들이 뒹굴고 있었다. 규칙적이고 절제된 삶을 중시하며 술과 담배를 하지 않는 나에게, 그의 지적인 호기심과 결합한 무질서한 생활은 처음에는 혐오감과 불신을 불러일으켰다.
할러의 식사 시간은 수면이나 업무 시간만큼이나 불규칙하고 무책임했다. 어떤 날은 온종일 외출도 하지 않은 채 아침에 마신 커피 한 잔으로 버텼고, 아주머니가 그의 방에서 발견한 식사 흔적이라고는 바나나 껍질 하나뿐인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도 어떤 날은 최고급 식당이나 변두리의 작은 선술집에서 식사를 하곤 했다. 그의 건강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절뚝거리는 걸음걸이 때문에 계단을 오르는 것을 힘겨워했을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소화 불량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내게 털어놓기도 했다. 나는 그것이 결국 그의 음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와 동행하며 목격한 바로는, 기분이 내킬 때면 꽤 많은 술을 마셨지만 결코 취한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와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쳤던 날이 기억난다. 우리는 그저 옆방에 사는 하숙인 사이였을 뿐인데, 어느 날 퇴근길에 나는 1층과 2층 사이 계단참에 앉아 있는 할러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계단 맨 위 칸에 앉아 내가 지나갈 수 있게 옆으로 비켜주었다. 내가 괜찮으시냐고 물으며 위층까지 부축해드리겠다고 제안하자, 그는 깊은 명상에서 깨어난 듯 나를 바라보며 특유의 슬프고도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는 내게 곁에 앉으라고 권했지만, 나는 남의 집 문 앞 계단에 앉는 것은 내 습관이 아니라고 정중히 거절했다.
할러는 내가 왜 여기 앉아 있는지 꼭 말해줘야겠다며 1층 과부의 집 현관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마호가니 찬장과 아라우카리아 화분이 놓여 있었는데, 늘 눈이 부실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되어 있었다. 그는 이 현관과 아라우카리아에서 나는 멋진 향기를 맡아보라고 했다. 그는 이곳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고 했다. 우리 아주머니 댁도 청결하지만, 이곳은 정말이지 티 하나 없이 닦이고 광이 나서 눈이 부실 지경이라며 바닥 광택제와 테레빈유, 그리고 식물 잎사귀의 향기를 맡아보라고 권했다. 그것은 최상의 소시민적 청결함과 의무의 완수, 그리고 사소한 일들에 대한 헌신의 향기였다. 저 유리문 뒤에는 분명 질서 정연한 생활과 사소한 습관들에 대한 애정 어린 헌신이 깃든 범속한 낙원이 있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그는 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말을 비꼬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그는 결코 소시민적 삶을 비웃지 않는다고 했다. 비록 자신은 다른 세계에 살고 있고, 아라우카리아가 있는 집에서는 단 하루도 견디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그는 초라한 늙은 황야의 이리일 뿐이지만, 소시민의 아내였던 어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어머니도 집안을 이처럼 깨끗하고 단정하게 가꾸셨다고 했다. 이 테레빈유 냄새가 그 기억을 불러일으켰고, 그래서 그는 이곳에 앉아 질서의 정원을 바라보며 이런 것들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었다.
그는 일어서는 것을 힘들어했고, 내가 부축하자 거절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계단을 올라갔고, 그는 내게 노발리스의 구절을 보여주겠다며 자신의 방으로 나를 초대했다. 담배 냄새가 자욱한 방에서 그는 책 한 권을 꺼내 읽어주었다. 인간은 고통을 자랑스럽게 여겨야 하며, 모든 고통은 우리의 높은 지위를 일깨워주는 것이라는 구절이었다. 그는 이것이 니체보다 80년이나 앞선 생각이라며 감탄했다. 하지만 그가 정말 말하려던 문장은 따로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헤엄칠 수 있게 되기 전에는 헤엄치려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당연히 그들은 헤엄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물이 아니라 견고한 땅 위에서 살도록 태어났기 때문이다.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생각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견고한 땅을 물과 맞바꾼 셈이고, 언젠가는 물에 빠져 죽게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자주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나의 규칙적인 생활과 성실함을 비웃지 않았고, 오히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평화로운 고향을 바라보듯 진심으로 존경했다. 그는 스스로를 황야의 이리라고 불렀다. 길을 잃고 무리 속으로 흘러 들어온 이방인, 그의 고독과 야생성, 그리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이보다 더 잘 표현할 단어는 없었다.
어느 날 교향악단 연주회에서 그를 보았다. 헨델의 음악이 흐를 때 그는 차갑고 슬픈 표정으로 공상에 잠겨 있었지만, 프리데만 바흐의 곡이 연주되자 행복한 꿈을 꾸는 듯 미소 지었다. 하지만 레거의 변주곡이 시작되자 그는 다시 짜증스럽고 노쇠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연주회가 끝난 후 그는 낡은 선술집으로 들어갔고, 나도 그를 따라갔다. 그는 포도주를 마시며 내게도 권했지만, 내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하자 다시금 그 무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당신 말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저 역시 수년 동안 절제를 실천하고 단식도 해보았지만, 이제는 다시 습하고 어두운 별자리인 물병자리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었군요.” 하리 할러는 다시금 지나치게 정중하고도 차가운 어조로 말했다. 점성술을 정말 믿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불행히도 그런 과학을 믿지 못한다고 덧붙였다. 그날 밤도 그는 늦게 귀가하여, 침대로 가는 대신 방 안을 짐승처럼 서성였다.
어느 날 저녁, 한 젊고 아름다운 여성이 그를 찾아왔다. 할러의 방에 있던 사진 속 여인이었다. 두 사람은 즐겁게 웃으며 외출했지만,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아 그는 다시 혼자 돌아와 무거운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나중에 거리에서 그녀와 함께 있는 그를 다시 보았을 때, 그의 고뇌 어린 얼굴에는 아이 같은 천진함과 행복이 서려 있었다. 하지만 그날 저녁에도 그는 어김없이 포도주 한 병을 외투 속에 감추고 자신의 지옥으로 숨어들었다. 그가 떠나기 직전에는 그 젊은 여인과 온 집안이 떠나갈 듯 격렬한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얼마 후 할러는 모든 빚을 청산하고 아무런 작별 인사도 없이 도시를 떠났다. 그는 자신의 수기를 남기며 내 마음대로 처분해도 좋다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그가 자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어딘가에서 낯선 집의 계단을 오르내리며, 자신이 배제된 인간 세상의 웅성거림을 듣고 있을 것이다. 그는 이 끔찍한 고통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끝까지 마셔야만 한다는 희미한 믿음 때문에라도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남긴 기록은 한 개인의 병적인 망상이 아니라, 그가 속한 세대 전체의 신경증이자 시대의 병을 기록한 문서다. 그것은 어둠 속에 머무는 영혼들의 혼돈을 뚫고 지옥의 끝까지 가보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담긴 여정이다. 할러는 두 시대, 두 문화와 종교가 겹치는 지점에 끼어버린 사람 중 하나였다. 니체가 그랬던 것처럼, 그는 모든 안전함을 잃어버린 채 인간 운명의 수수께끼를 개인적인 고통으로 짊어지고 살아야 했던 것이다. 나는 이 기록이 지닌 의미를 믿기에 이를 출판하기로 했다.
하리 할러의 수기
미친 사람만을 위한그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였다. 나는 고립된 생활 방식에 따라 시간을 죽였다. 서너 시간 일을 하고 오래된 책들을 읽었다. 노인들이 흔히 겪는 통증이 찾아와 약을 먹었고, 통증이 사라지자 안도하며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갔다. 세 번이나 배달된 원치 않는 편지들(반갑지 않은 편지나 광고지)을 훑어보고 호흡 운동을 했다. 한 시간 정도 산책을 하며 구름의 아름다운 문양을 감상하기도 했다. 책을 읽고 목욕을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결코 황홀한 날은 아니었다. 그저 불만스러운 중년 남자의 일상처럼 적당히 쾌적하고 참을 만한, 미지근한 날이었다. 특별한 고통도, 절망도 없는 이런 날들은 스스로에게 조용히 질문을 던진다.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처럼 면도를 하다가 치명적인 사고를 당해야 할 때가 온 것은 아닌지 말이다.
통풍의 발작이나 안구를 파고드는 지독한 두통, 혹은 영혼을 파멸시키는 내면의 공허와 절망을 아는 사람이라면 오늘 같은 평범하고 미지근한 날에 감지덕지할지도 모른다. 그런 날에는 따뜻한 난로 옆에 앉아 신문을 읽으며 전쟁이 터지지 않았고 새로운 독재자가 등장하지 않았음에 안도하며, 권태로운 평온함이라는 신에게 찬양을 보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만족감을 도저히 견딜 수 없다. 그것은 곧 참을 수 없는 혐오와 구역질로 변한다. 나는 필사적으로 이 미지근한 공기에서 도망쳐 쾌락이나 고통의 길로 나를 내던져야만 한다. 내 안에서 차라리 악마가 타오르는 편이 이 따뜻하고 안락한 방의 온기보다 낫다. 나는 강렬한 감정과 자극을 갈망하며, 이 무미건조하고 평범하며 불임 같은 삶에 분노를 느낀다. 부르주아들의 그 잘 보존된 낙천주의와 비계 낀 평범함의 번식을 나는 무엇보다 증오하고 저주한다.
나는 이런 기분으로 숙소를 나섰다. 기이하게도 고독한 황야의 이리인 나는 늘 이토록 깨끗하고 지루한 중산층의 집을 숙소로 선택하곤 한다. 이것은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이자, 나의 고독하고 무질서한 삶과 이 정돈된 가정생활 사이의 대조를 즐기는 나의 오래된 약점이다. 나는 내 방의 무질서와 대조되는 계단의 깨끗한 냄새, 그 도덕적인 가풍의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1층 계단참에 놓인 아라우카리아 화분은 내게 질서의 신전과도 같다. 나는 아무도 없을 때 그 화분 앞에 앉아, 그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감동적인 고독을 응시하며 그 뒤편에 존재할 품위 있고 정돈된 삶을 상상하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