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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레바퀴 아래서 2

헤르만 헤세 지음 | 고전문학


수레바퀴 아래서

헤르만 헤세 지음





제4장


신학교 4년의 과정 동안 몇몇 학생이 중도에 탈락하는 일은 흔했다. 개중에는 죽어서 나가거나 비행을 저질러 쫓겨나는 아이들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한스의 반, 그것도 ‘헬라스’ 방에서만 몇 명의 아이들이 사라질 운명이었다. 그 첫 번째는 힌딩거, 일명 ‘힌두’라 불리는 아이였다. 알고이 출신 가난한 재단사의 아들인 그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한 성격으로 헬라스 방의 평온한 안식처 같은 존재였다.

1월의 어느 날, 스케이트도 없는 그는 친구들을 구경하러 나갔다가 추위를 피해 걷던 중 길을 잃었다. 그는 살얼음이 언 낯선 연못 위를 걷다가 얼음이 깨지며 비명과 함께 차가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오후 수업 시간이 되어서야 그의 부재가 확인되었고, 교장 선생님은 침통한 표정으로 힌딩거가 익사한 것 같다며 학생들에게 수색을 지시했다. 해가 저물 무렵, 뻣뻣하게 굳은 작은 시신이 눈 덮인 갈대밭에서 발견되었다. 학생들은 겁에 질린 새 떼처럼 서서 죽음의 냄새를 맡았다.

그 비참하고 얼어붙을 듯한 행렬 속에서 한스 기벤라트는 옛 친구 하일너의 옆을 걷게 되었다. 죽음의 광경 앞에서 모든 이기심이 덧없게 느껴진 한스는 알 수 없는 통증을 느끼며 충동적으로 하일너의 손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하일너는 즉시 뒤로 물러나며 모욕감과 분노가 서린 눈빛을 보냈다. 한스는 비탄과 수치심에 몸을 떨며 얼어붙은 뺨 위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용서나 후회로는 씻을 수 없는 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들것에 실려 가는 것은 재단사의 아들 힌두가 아니라, 한스의 배신으로 인한 고통과 분노를 안고 저세상으로 떠나는 하일너인 것만 같았다.

학교로 돌아온 교사들은 죽은 학생에게 살아있을 때는 보여주지 않았던 깊은 경의를 표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평소 아이들에게 무심하게 상처를 준 것을 반성했고, 삶과 청춘이 되돌릴 수 없는 유일한 것임을 잠시나마 깨닫는 듯했다. ‘힌두’라는 별명 대신 그의 본명이 엄숙하게 거론되었고, 죽음은 잠시나마 학교의 소란과 다툼을 잠재웠다.

이틀 뒤 힌딩거의 아버지가 도착했다. 그는 낡은 검은 정장에 초라한 바지를 입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형적인 재단사의 모습이었다. 장례식 날, 그는 관이 나가기 직전 떨리는 손길로 관 뚜껑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삼켰다. 겨울바람 속에 선 마른 나무처럼 위태롭고 가련해 보였다. 학생들은 무덤가에서 찬송가를 부르면서도 지휘하는 음악 선생님 대신, 눈 속에 홀로 서서 고개를 숙인 채 얼어붙은 손으로 주머니 속의 손수건을 찾으려 애쓰는, 그러나 끝내 꺼내지 못하는 그 외로운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오토 하르트너와 학생들은 힌딩거의 아버지를 보며 저마다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교장 선생님의 안내로 기숙사 ‘헬라스’ 방을 찾은 힌딩거의 아버지는 비참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보았고, 루치우스가 나서서 그의 손을 잡았다. 아버지가 떠나자 죽음이 수도원에 드리웠던 마법은 금세 깨졌다. 교사들은 다시 호통을 쳤고, 힌두는 서서히 잊혀 갔다.

한스 기벤라트는 장례식의 시련을 육체적으로는 건강하게 견뎌냈지만, 내면은 불안하게 요동쳤다. 그것은 친구 하일너를 배신했다는 자각 때문이었다. 한편, 양호실에 격리된 하일너는 고독 속에서 학교와 교사들을 저주하는 시를 쓰며 자신만의 순교자적 고통을 음미하고 있었다. 장례식 8일 후, 한스는 양호실을 찾아가 하일너의 손을 잡았다. 하일너는 벽을 향해 돌아누운 채 냉소적으로 대꾸했다. “대체 뭘 바라는 거야?”

한스는 잡은 손을 놓지 않고 말했다. “내 말을 들어줘. 그때 난 비겁했고 널 저버렸어. 하지만 넌 내 성격을 알잖아. 난 그저 반에서 1등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그게 내 유일한 이상이었으니까. 난 그게 최선인 줄만 알았어.” 하일너가 눈을 감자 한스는 더 나직이 속삭였다. “정말 미안해. 네가 다시 친구가 되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날 용서해 줘야 해.” 하일너는 침묵을 지켰다. 한스가 다시 간절히 호소했다. “제발 부탁이야, 하일너! 이대로 지내느니 차라리 꼴찌가 되는 게 나아. 네가 원한다면 우리 다시 친구가 되어 다른 녀석들 따위는 필요 없다는 걸 보여 주자.”

그제야 하일너는 잡힌 손에 힘을 주며 눈을 떴다. 두 소년의 재결합은 신학교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고통스러운 이별을 겪은 후의 우정은 더욱 깊고 애틋해져, 마치 첫사랑의 비밀을 공유하는 듯했다. 한스는 학업보다 친구와의 행복에 깊이 빠져들었고, 그동안 목숨처럼 여겼던 리비우스(라틴어 교재)와 호메로스(그리스어 교재)는 매력을 잃었다.

교사들은 모범생 한스가 문제아 하일너에게 물들어가는 것을 보며 공포를 느꼈다. 교사들은 조숙한 소년들에게서 나타나는 천재성을 혐오한다. 그들에게 천재란 얌전하지 못하고, 반항하며, 금지된 책을 읽고 엉뚱한 짓을 하는 불량한 존재일 뿐이다. 교사의 임무는 비범한 지성이 아니라 성실한 라틴어 학자를 길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학교는 규칙과 정신의 투쟁 장소가 되고, 당국은 가치 있는 지성을 싹부터 잘라내려 애쓴다. 쫓겨난 이들이 훗날 사회의 보물이 되기도 하지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조용히 망가져 가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학교의 낡은 관습에 따라 요주의 인물로 찍힌 한스와 하일너에게 가혹한 감시의 눈길이 쏟아졌다. 오직 교장 선생님만이 자신이 가장 아끼는 히브리어 수재인 한스를 구제하려 시도했다. 그는 허영심이 강해 자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참지 못하는 인물이었으나, 한스를 자신의 서재로 불렀을 때는 인자한 아버지 같은 연기를 능숙하게 펼쳤다. “앉게, 기벤라트.” 교장 선생님이 호탕하게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자네와 할 얘기가 있어서 불렀네. 한스라고 불러도 되겠지?” “네.” “최근 몇 주 동안 자네 성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스스로도 느꼈을 거야. 특히 히브리어가 말이야. 갑자기 이렇게 해이해진 이유가 뭔가? 혹시 아픈가?” “아뇨.” “아니면 두통이 있나? 안색이 예전만 못하군.” “네, 가끔 머리가 아픕니다.”

교장 선생님은 한스에게 따로 독서를 많이 하는지 캐물으며 원인을 찾으려 했지만, 한스는 아니라고 답했다. 교장 선생님은 인자하면서도 엄숙한 표정으로 한스의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군. 분명 어디선가 어긋나고 있는 게야. 이제부터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해줄 수 있겠나?” 한스는 교장 선생님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 “그래, 그래야지. 아무쪼록 지치지 않게 조심하게. 그렇지 않으면 수레바퀴 아래 깔리게 될 테니까.” 안도하며 나가려는 한스를 교장 선생님이 다시 불러 세웠다.

“한 가지 더, 기벤라트. 자네 하일너와 꽤 자주 어울리는 것 같던데, 내 말이 맞나?” “네, 그렇습니다. 제 친구니까요.” “나는 자네 친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그는 불안정하고 불만투성이야. 자네에게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해. 앞으로 그 아이와 거리를 둔다면 참 좋겠는데.” “그건 안 됩니다, 교장 선생님.” “안 된다니? 어째서인가?” “그 애는 제 친구입니다. 그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 “흠. 하지만 자네는 하일너의 나쁜 영향에 휩쓸리고 있어. 자네가 왜 그렇게 그 아이에게 끌리는지 모르겠군.” “저도 잘 모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아끼고 있습니다. 그를 떠나는 건 비겁한 짓입니다.” 교장 선생님의 목소리에서 온화함이 사라졌다. “알겠네. 강요하진 않겠어. 하지만 자네가 서서히 그에게서 벗어나길 바라네. 아주 간절히 말이야.”

그날 이후 한스는 필사적으로 공부에 매달렸지만 예전처럼 빠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그는 우정을 학교에서 잃어버린 모든 것을 보상해 주는 보물로 여겼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한스는 친구와의 관계에 몰두했고, 지루한 학업은 억지로 감내해야 할 멍에가 되었다. 한스는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매일 아침 한 시간 일찍 일어나 히브리어 문법과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

유일하게 즐거움을 주는 것은 호메로스와 역사 수업뿐이었다. 역사 속의 영웅들은 더 이상 죽은 이름이 아니라 생기 있는 붉은 입술과 눈빛으로 다가왔다. 성경을 읽을 때도 예수가 제자들에게 다가오는 장면이 눈앞에 생생하게 펼쳐졌다. 한스는 이런 찰나의 환영들을 통해 기이한 감동을 느꼈지만, 이를 하일너에게조차 말하지 않고 비밀로 간직했다. 하일너가 냉소적인 지성으로 학교와 세상을 비판하며 고립되어 갈수록, 한스 역시 그와 함께 학생들에게서 멀어졌다. 자신이 가장 아끼던 제자가 뜻대로 움직이지 않자 교장 선생님은 한스를 차갑게 방치했고, 한스는 히브리어에 대한 열정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몇 달 사이 신입생들의 모습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앳된 티를 벗고 어른스러워졌지만, 한스는 학업에 대한 불만족과 하일너의 영향으로 동료들로부터 더욱 고립되었다. 그는 룸메이트인 오토 벵거가 자신을 조롱하자 참지 못하고 주먹을 휘둘렀으나, 도리어 흠씬 두들겨 맞고 코피를 쏟았다. 한스는 수치심과 분노로 밤을 지새웠지만 하일너에게는 이 사실을 비밀로 했고, 룸메이트들과는 철저히 담을 쌓았다.

봄이 오자 기숙사에는 연극이나 성경 공부 같은 활동이 유행했다. 특히 스파르타 방의 재치 있는 학생 둔스탄이 풍자 신문 《고슴도치》를 발행하여 큰 소동을 일으켰고, 하일너는 이에 열광적으로 참여하여 날카로운 비평을 쏟아냈다. 그러나 한스는 친구의 열정에 동참할 의욕도 재능도 없었다. 그는 무기력하게 배회하며 고통스럽게 하루하루를 보냈다.

리비우스 수업 시간, 한스에게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교수가 해석을 시켰지만 그는 자리에 앉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교수의 호통 소리는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했고, 한스는 깊은 우물 소리 같은 환청과 낯선 눈동자들의 환영에 사로잡혀 있었다. “기벤라트, 자고 있나?” 교수의 외침에 한스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일어설 수는 있겠나?” 교수의 비웃음에 한스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교수는 멍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한스를 의아하게 여겼다. “어디 아픈가, 기벤라트?” “아닙니다.” “앉게. 수업 끝나고 내 방으로 오도록.”

한스는 자리에 앉아 책을 보았지만, 내면의 눈은 여전히 멀어지는 환영들을 쫓고 있었다. 교실의 현실적인 소음들이 점차 가까워지자, 그는 방금 들은 명령을 떠올리며 소스라치게 놀랐다. 수업 후에 오라니, 맙소사,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가? 수업이 끝난 후 교수는 한스를 따로 불러내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학생들 사이를 지나 데리고 갔다. “말해 보게, 도대체 왜 그랬나? 자고 있었던 건 아니지?” “아닙니다, 교수님.” “그런데 왜 일어나라고 했을 때 일어나지 않았나?” 한스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설명할 수 없었다. “모르겠습니다. 일어서려고는 했습니다.” “아니면 내 말이 안 들렸나? 귀가 잘 안 들리나?” “아닙니다.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일어나지 않았단 말이지? 자네 눈빛이 아주 이상했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나?” “아무 생각도 안 했습니다. 일어나고 싶었습니다.”

저녁 식사 전, 한스는 다시 불려 나갔다. 기숙사 침실에는 교장 선생님과 지역 담당 의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한 번 진찰과 질문이 이어졌지만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의사는 사람 좋게 웃으며 별일 아니라는 듯 교장 선생님에게 말했다. “가벼운 신경 쇠약입니다, 선생님. 지나가는 현기증 같은 거죠. 이 젊은 친구가 매일 맑은 공기를 좀 쐬게 해 주십시오. 두통약은 조금 처방해 두겠습니다.”

그날부터 한스는 매일 저녁 식사 후 한 시간씩 야외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것은 나쁘지 않았으나, 가장 괴로운 점은 교장 선생님이 하일너의 동행을 엄격히 금지했다는 사실이었다. 하일너는 길길이 뛰며 욕을 해댔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결국 한스는 홀로 산책을 나섰고, 어느새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예전의 한스라면 생기와 호기심 어린 눈으로 철새의 귀환과 나무의 개화를 관찰하고 낚시를 떠올렸겠지만, 지금의 그는 그저 몽롱한 시선으로 색채의 향연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어린잎의 향기를 맡으며 경이로움 속에 들판을 걸었으나 쉽게 지쳤고, 자꾸만 눕고 싶어졌다. 현실의 풍경 대신 낯설고 화려한 꿈같은 환영들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것은 마치 생명 없는 이국적인 가로수 길이나 그림처럼 그를 둘러쌌고, 때로는 부드러운 손길이 몸을 어루만지는 듯한 기묘한 감각을 불러일으켰다.

공부에 집중하기가 무척 힘겨웠다. 흥미 없는 내용은 그림자처럼 손 아래서 사라져 버렸고, 히브리어 단어는 수업 직전에야 겨우 머릿속에 집어넣을 수 있었다. 기억력은 날로 흐릿해지는 반면, 과거의 기억들은 불길할 정도로 선명하게 되살아났다. 수업 도중이나 책을 읽을 때면 불쑥 아버지나 하녀 안나, 고향의 선생님들이 눈앞에 나타나 그의 주의를 온통 빼앗아 갔다. 슈투트가르트에서의 시험이나 낚시터의 풍경이 생생하게 떠올랐지만, 동시에 그 시간들은 아주 먼 과거의 일처럼 느껴졌다.

어느 흐리고 습한 저녁, 한스는 기숙사 복도를 거닐며 하일너에게 고향과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하일너는 하루 종일 갖고 놀며 만지작거리던 자로 허공을 휘두르며 잠자코 듣기만 하다가, 이윽고 창가에 걸터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있잖아, 한스.” “왜?” “아냐, 아무것도.” “아니야, 말해 봐.” “그냥, 네가 네 얘기를 하니까 좀 생각이 나서….” “뭔데?” “저기, 너 여자 꽁무니를 쫓아다닌 적 없니?”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들은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한스는 그 주제가 두려우면서도 마법처럼 끌렸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손가락을 떨었다. “딱 한 번 있어.” 한스가 속삭였다. “아주 어렸을 때야.” 다시 침묵이 흐른 뒤 한스가 되물었다. “너는, 하일너?” 하일너가 한숨을 쉬며 고백했다. “관두자! 그런 얘기 해봤자 소용없는 거 알잖아.” “아니야, 말해 줘! 의미 있어.” “나한테는 애인이 있어.” “정말이야?” “고향 이웃집 여자애야. 지난겨울에 키스도 했어. 저녁에 스케이트장에서 스케이트 벗는 걸 도와주다가 그랬어.” “그 애가 아무 말 안 했어?” “말? 아니. 그냥 도망가 버렸어.” “그리고는?”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지.” 하일너가 다시 한숨을 쉬었고, 한스는 금지된 구역에서 돌아온 영웅을 바라보듯 친구를 응시했다. 그날 밤 한스는 하일너의 키스를 생각하며 한 시간 넘게 잠들지 못했다. 다음 날 한스는 더 묻고 싶었지만 부끄러워 입을 다물었고, 하일너 역시 쑥스러워 먼저 말을 꺼내지 않았다.

한스의 성적은 곤두박질쳤다. 선생님들은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교장 선생님은 불길한 분노를 내비쳤다. 동급생들도 한스의 추락을 눈치챘지만, 오직 성적 따위엔 관심 없는 하일너만이 이를 모르는 듯했다. 하일너는 풍자 신문 일에 싫증을 느끼고 다시 한스에게 집중했다. 그는 교장 선생님의 명령을 보란 듯이 어기고 한스의 산책에 동행하여 시를 읽어주거나 교장 선생님을 조롱했다. 한스는 하일너가 연애담을 더 들려주길 기대했지만, 하일너가 입을 다물수록 차마 더 물어볼 수가 없었다. 두 소년은 여전히 학생들 사이에서 미움을 받는 신세였다. 하일너가 풍자 신문 《고슴도치》에 쓴 악의적인 글들이 누구의 신임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봄이 무르익어 학생들이 운동장에서 활기를 되찾을 무렵, 마울브론 신학교에 또다시 소란이 일었다. 그 중심에는 역시나 헤르만 하일너가 있었다. 교장 선생님은 하일너가 금지령을 비웃듯 매일 한스 기벤라트와 산책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를 서재로 호출했다. 교장 선생님의 질책에 하일너는 자신이 한스의 친구이며, 누구도 그 우정을 금지할 권리가 없다고 당돌하게 맞섰다. 격렬한 소동 끝에 하일너는 몇 시간의 감금 처분을 받았고, 한스와의 접촉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다음 날 오후 수업, 하일너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예전 힌두가 사라졌을 때와 흡사한 상황이었으나, 이번에는 교수들조차 그가 고의로 도망쳤음을 직감했다. 인근 경찰서에 전보가 가고 수색대가 숲을 뒤지는 동안, 기숙사의 소년들은 밤늦도록 수군거렸다. 모두가 한스가 내막을 알 것이라 여겨 그를 주시했지만, 정작 한스는 친구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혀 이불 속에서 공포와 비탄에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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